노동자운동 연구공동체 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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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세대 노동조합의 물결 - 어느 계급을 대변하는 트로이의 목마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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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2021. 5. 14.

‘MZ노조’ 흐름에 자본가들이 투영하고 싶은 것

 

‘MZ세대’의 노동조합 결성을 보도하는 기사들이 늘어나고 있다. 올해만 해도 LG전자와 금호타이어에서 사무직 중심 노조가 닻을 올렸고 현대차그룹에서도 사무연구직들이 노조설립 신고를 했다.

 

MZ세대는 1980년부터 2004년생까지를 일컫는 밀레니얼 세대와 1995년부터 2004년 출생자를 뜻하는 Z세대를 합쳐 일컫는 말이다. MZ노조는 2019년 기준 약 1,700만 명으로 국내 인구의 약 34%를 차지하는 2~30대 중심의 노조를 가리킨다.

 

‘MZ세대를 대표하는 노동조합’, 맞는 말인가?

 

자본가언론들은 이 노조의 등장을 시대에 뒤떨어지고 있는 늙은 노동자 세대와는 다른, 젊은 노동자 세대를 반영한다고 일방적으로 규정해버린다. 그러므로 시대의 흐름으로 알고 잠자코 받아들이란 말이다. ‘MZ세대 노동조합’이라고 명명한 것도 그런 의도를 반영한다.

 

이 노조들이 MZ세대를 주요기반으로 삼고 있음은 물론 사실이고, 그건 주목할 일이다. 하지만 자본가언론이 부각시키는 노조의 조합원들이 MZ세대의 다수를 대표하지는 않는다. 그중 작은 일부인 대기업 사무직, 연구직만을 대표할 뿐이다. MZ세대의 다수는 미조직 노동자들이고, 일부는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으로 조직돼 있다. MZ세대 사무직, 연구직 노조들의 경우에도 민주노총으로 조직된 경우가 많다. 중소 IT 노조들이나 중소기업 사무직들이 그렇다. 따라서 현재 대기업에서 등장하는 사무연구직 노조들을 ‘MZ세대 노동조합’으로 단순히 일반화하는 것은 동의할 수 없다. 이 노조들을 다루는 정확한 이름은 ‘대기업 사무직, 연구직 노조’인데, 주로 MZ세대가 조합원들인 것이다.

 

깃발

 

최근 결성되는 대기업 사무직, 연구직 노조들이 내거는 깃발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직무와 능력에 걸맞은 보상체계, 성과에 대한 확실한 보상 요구다. 직무급제, 성과급제 같은 경쟁주의 임금체계를 그들은 지지한다. 살벌한 경쟁을 인정한 가운데 ‘공정한 기준’을 적용하라는 것인데, 이게 ‘공정성’으로 규정되고 있다. 노동자 분열은 불을 보듯 훤하고, 자본주의 경쟁체제는 정당성을 획득하면서 노동자들을 밑바닥으로 내려가기 경쟁으로 내몰 것이다. 다만 ‘능력’을 발휘한 만큼 자본가들이 ‘성과’를 확실히 보장하라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생산직 노동자를 비롯한 일반 노동자들과 함께 노동조합을 꾸리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민주노총 가입도 당연히 부정된다.

 

이런 노조의 탄생에 대한 자본가언론들의 반응은 이 노조들이 당장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그리고 자본가들이 이 노조들을 어떻게 유도하려 하는지를 정확히 보여준다. 민주노조들이 탄생했을 때 분노와 두려움, 적대감으로 접근했던 것과는 정반대다. 자본가언론과 정부 실세들은 MZ노조가 경쟁과 능력, 업무 기여도를 배제하는 기존 노조와는 달리 임금체계에 대해 합리적인 입장을 갖고 있다며 큰 기대감을 보낸다. 노동자를 분열시키고 자본의 입맛대로 부릴 수 있게 노동조합이 나서고 있으니 박수를 보낼 수밖에.

 

나아가서 기존 강성 노동조합들을 합리적인 노동조합 즉 협조적인 노동조합으로, 자본의 정책을 자발적으로 집행하는 노동조합으로 재편할 수 있단 기대감도 숨기지 않는다. 다만 과도한 성과급을 요구함으로써 자본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정도가 걱정거리일 뿐이다.

 

계급적 지위

 

대기업 사무연구직들은 상당히 특권화된 노동자들이었고, 중간계급 의식에 강하게 물들어 있었다. 그들이 받는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 노동의 특수성, 노동시장에서의 특별한 지위, 고학력, 취업 경쟁제도 등이 그걸 뒷받침했다. 중소기업 사무직, 연구직 노동자들은 생산직과 함께 노조를 꾸리는 것이 흔한 반면, 이들에게는 그건 상당히 드문 일이었다. 정리해고에 맞선 투쟁의 필요성 앞에서 각성하며 생산직과 단결해 하나의 노동조합을 꾸린 한국지엠 사무직 노동자들 정도가 예외일 것이다.

 

최근 대기업 사무직, 연구직 노조들이 등장하고 있는 배경에는 이들에게도 노동조합이라는 보호 울타리가 필요해졌다는 점도 영향을 미친다. 사무자동화와 인공지능 등이 발달하면서, 그들이 누렸던 과거의 특권적 지위가 점차 약화되기 시작하고, 안정적인 미래를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독립해서 사업으로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도 거의 소멸했다. 어딜 가도 스카우터의 손길이 기다리던 것도 좋은 시절 얘기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부동산가격은 돈을 빨리 모아 자기 집을 사야겠다는 조바심을 부추긴다. 이런 불안정성과 기득권 약화는 이들이 임금인상 요구에 눈뜨고 노동조합이란 뜨거운 감자를 만지게 된 중요한 계기가 됐을 것이다.

 

그 점에서 대기업의 젊은 사무직, 연구직들이 노동조합 결성에 나서게 된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중간계급 의식에 물들어 있거나 노동귀족적 상태에 있던 상층 사무연구직 노동자들이 그로부터 벗어나 노동운동에 합류해 들어오는 출발점을 뜻하기 때문이다. 자본가언론들의 환영인사는 그 점에서 생각해볼 일이다. 이 노동조합들은 성과급 인상요구나 자본의 일방통행식 통제 거부 등 골치 아픈 문제들을 일으킬 것이며, 특히 정리해고 같은 공격에 직면할 때 저항할 것이다. 이것은 중간계급 혹은 노동귀족적 지위를 가졌던 보수적인 노동자들이 자본주의의 버팀목에서 위험요소로 변화하게 되는 역사적 과정을 반영한다.

 

모순적인 요소

 

하지만 대기업 사무직, 연구직 노조들의 등장이 자본주의에 위협만 되는 것은 아니다. 노동귀족적 지위에 있는 노동자들의 조직, 혹은 중간계급 요소에 강하게 영향받는 상층 노동자들의 조직은 자본주의 체제의 안정성을 뒷받침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안정성과 기존의 특권적 지위를 위협받는 상층 노동자들이 노동운동으로 들어올 때 이들은 불가피하게 소부르주아적, 노동귀족적 오물을 함께 가지고 온다. 그래서 이들은 노동조합 같은 노동자조직 속으로 소부르주아적, 노동귀족적 요소를 침투시킨다.

 

노동운동이 이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노동운동의 영향력 확대는커녕 퇴보하면서 개량주의적, 기회주의적 추락으로 귀착될 수도 있다. 이러한 위험은 세계 노동운동의 역사에서 거듭 나타났고, 이를 활용해 자본주의 체제는 안정을 꾀할 수 있었다. 지금 자본가언론이 보내는 환호는 그런 기대감과 함께 그렇게 활용하고자 하는 영악한 목적의식을 반영한다.

 

따라서 이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해 노동운동에 첫걸음을 내딛을 때 노동운동이 팔짱만 끼고 방심해서는 안 된다. 이들이 묻혀오는 소부르주아적, 노동귀족적 오물, 즉 자본주의적 요소에 노동운동이 제대로 맞서고 그걸 제거함으로써 노동운동의 일부로 통합시켜가는 적극적 지도력을 발휘해야 한다.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으며, 자본주의 체제가 근본적으로 철폐되기까지 결코 완전하게 수행될 수 없는 지난한 과정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들이 놓여 있는 객관적 지위를 고려할 때, 이들은 소부르주아적 요소로부터 완전히 자유롭기 어렵고 노동과 자본 사이에서 어느 정도 동요할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누가 헤게모니를 발휘할 것인가?

 

결국 MZ세대 중심의 대기업 사무연구직 노동조합의 등장은 누가 누구에게 지도력을 발휘할 것인가라는 핵심 화두를 던진다. 이들이 아직 떨쳐버리지 못한, 심지어는 이들이 내면화하고 있는 자본주의적 요소들이 노동자계급 속에 영향력을 확대하고, 노동운동이 소부르주아적, 기회주의적 요소에 감염되도록 방치할 것인가? 아니면 노동운동의 올바른 관점으로 그들을 설득하고 동화시켜, 노동자계급의 한 부분으로 통합시킬 것인가?

 

자본가언론들은 전자를 현실화시키기 위해 발악하고 있다. 이 노조들에서 등장하는 자본주의적 의식과 요구들, 가령 경쟁주의 성과급제 요구를 대서특필하고 임금체계 전반을 그렇게 변화시켜 노동운동을 길들이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민주노총, 심지어는 한국노총과도 다른 제3의 노조를 건설해 MZ세대 노동자 전체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했으면 하는 기대감도 숨기지 않는다. 많이 허물어져 있을지라도 1980년대 노동자 대투쟁의 성과가 여전히 각인돼 있는 민주노총의 고참 노동자들을 완전히 길들이기는 어렵겠지만, MZ세대 노동자들을 경쟁주의와 협조주의로 길들여서 지난 노동운동의 성과를 완전히 지워버리겠다는 야심이다.

 

현재 대다수 언론을 지배하는 목소리는 바로 그런 자본주의 체제의 논리이자, 자본가계급의 계획이다. 대기업 사무연구직 노동조합이 갖는 취약성이 그런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 그들이 내거는 공정한 경쟁을 통한 성과급제 요구, 그리고 새로운 노조운동의 외투를 쓴 생산직 노동자들과의 분리주의 요구는 분명 자본주의적이다.

 

그 점이 너무나 분명하기에 일부는 성급하게 이런 흐름이 갖는 약점과 한계만을 주목하기 쉽다. 물론 그에 대한 경계는 아주 필수적이다. 하지만 그런 위험만이 존재할까? 노동운동이 헤게모니를 발휘해, 자본가계급의 계획을 박살내고 노동운동을 위력적으로 강화하는 기회로 삼을 가능성은 없는 것일까? 나아가서 그렇게 능동적으로 대응하지 않고서 어떻게 자본가계급의 계획을 좌절시킬 수 있을까? 우리는 그 가능성을 검토해야 한다. 당장에는 아무리 밉더라도 우리는 그들에게 다가가서 설득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실마리

 

관념적 설교로는 그들을 설득할 수 없다. 하지만 삶의 객관적 논리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것은 어떤 관념으로도 거역할 수 없는 강력한 힘으로 그들의 뇌를 두드릴 것이다. 단적으로 성과급제 요구를 들어보자. 그들의 주장대로 경쟁논리를 수용하고 소위 ‘공정한 기준’을 세워 성과급제를 완전하게 집행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조합원들 사이에서 피말리는 경쟁이 일어날 것이다. 아무리 ‘공정한 기준’을 세우더라도, 누구는 승자가 돼 더 많은 성과급을 챙길 것이고, 누구는 패자가 돼 피눈물을 삼킬 것이다. 단순히 임금의 문제를 떠나서, 자존심에 깊은 상처가 생길 것이다. 그 뒤에는 패자들 사이에 ‘공정한 기준’에 대한 문제제기와 불만이 터져나온다. 게다가 스스로 자초한 무한대의 경쟁의 링에서 그들 모두가 엄청난 스트레스와 삶의 질 저하를 맛볼 것이다. 애당초 노동자에게 ‘공정한 경쟁 기준’이란 존재할 수 없고, 경쟁논리를 수용하는 순간 노동자 모두가 자본의 포로가 된다는 점이 그들에게 분명해질 것이다. 그 앞에서 그들은 자신이 가진 관념이 얼마나 위험하고 모순적인지 쓰디쓴 경험으로 배울 수밖에 없다. 바로 거기에 노동운동이 그들에게 발휘할 수 있는 지도력이 작동할 수 있는 터전이 존재한다.

 

 

자본이 허락하는 공정성

 

 

그뿐만이 아니다. 그들이 그토록 자부심을 갖고 있는 MZ세대 노조를 지탱하기도 힘들어진다. 경쟁과 성과급제에 따른 분열과 대립이 노동조합이라는 집단적 기구의 존립을 지속적으로 위협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 앞에서 그들이 단결과 노동조합을 유지하려 한다면, 다음의 선택지만 남는다. ‘공정한 경쟁의 기준’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다. 성과급제를 거부하는 것이다. 최소한 개별 성과급이 아닌, 노동조합 내부의 분열의 싹을 최소화하는 집단성과급제를 요구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들은 IMF 때 부모세대의 경험을 뼛속 깊이 기억하고 있다. 대기업의 안정성이 결코 영원하지 않으며, 해고당했을 때의 처절한 고통과 절망을 알고 있다. 다른 무엇보다 자본주의 사회의 냉혹함을 알고 있다. 이 냉혹함은 대기업 취업경쟁의 링에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으로 나타났지만, 동시에 해고에 대한 불안과 저항의지를 잉태하고 있다. 불행하게도 그들이 경쟁의 링에서 이룬 승리는 일시적일 뿐이기 때문이다. 늙은 노동자 세대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사무자동화, 신기술 등이 그들을 덮칠 것이고, 경쟁논리는 그들 자신을 찌르는 날카로운 비수가 될 것이다. 노동조합은 바로 그런 불행한 미래에 대한 버팀목임을 그들은 마음속에 직감하고 있다. 아직 젊은 그들에게 노동자로 살아야 할 날은 매우 길다. 바로 그만큼 그런 보험은 절실하다. 노동조합은 다른 누구보다도 젊은 노동자들에게 가장 절실한 생존수단이다.

 

그 결과 일정하게는 반노동자적인 의식과 요구에서 출발한 이 노동조합들은 점차 노동자적인 의식과 요구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할 것이며, 급기야는 그런 방향으로 변화하기 시작할 것이다. 이런 실마리는 만약 노동운동이 현명하게 접근한다면, 그리고 그들 자신의 뼈저린 경험을 통한 변화가 동반된다면, 그들이 노동자계급 의식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소중한 수단이 될 것이다.

 

노동운동이 해야 할 일은 그들이 스스로 직면하게 될 그런 모순적인 상황을 예측하면서, 줄기차게 그들의 환상에 경고하고 노동운동의 원칙과 관점을 수용할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들이 살아온 역사, 그리고 그들이 놓인 객관적 삶의 토대를 정확히 이해하고, 이걸 노동운동이 그들에게 다가가는 통로로 삼는 게 핵심이다. 이를 위해서 거시적인 사회적 맥락에서도 이 문제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

 

또 다른 질문

 

이 노동조합들이 흥미로운 이유 중 하나는 MZ세대가 주력이고, 주도권을 쥐고 있다는 사실이다. 노동조합의 주력 연령대만이 아니라 노동조합 대표자들의 연령대가 2~30대다. 이건 낯설지 않다. 1980년대 민주노조들이 막 등장할 때 그 노동조합들이 바로 그랬다. 20대 후반의 패기 넘치는 젊은이들이 노동조합을 주도했다. 연령대만 보자면 딱 그런 상황이다.

 

이건 아주 우연적인 상황인가? 사회적 맥락에서 보자면, 이건 우연이 아니다. 최근 선거 결과는 아주 흥미로운 그림을 보여준다. 2~30대 유권자들의 표심이 요동치고, 이게 정치적 결과를 규정하기 시작했다는 분석은 새삼스런 게 아니다. 이제껏 우리 사회를 규정해왔던 386, 486세대가 노쇠하면서, MZ세대가 우리 사회를 규정하는 주역으로 부상하기 시작하는 분기점에 우리는 서 있다. 그들이 생산에서 갖는 경제적 영향력이 갈수록 높아지고, 이것은 사회·정치 영역으로까지 본격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으로 중무장한 MZ세대가 사회적 발언을 주도하기 시작하고, 이런 주도력은 이제 정치 영역에서도 본격적인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1980년대 민주화운동으로 떨쳐 일어났던 20대는 군사독재를 뚫고 다가오는 새로운 시대를 반영했다. 봉건적 위계서열이 지금보다 훨씬 강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20대는 이 사회의 미래를 그들이 결정지을 거라는 자신감과 미래에 대한 사명감으로 불탔다. 이 흐름이 1980~90년대의 거대한 정치, 사회적 격변을 잉태했고, 그 연장선에서 민주노조운동을 탄생시켰다. 우리는 그런 시대 변화의 2라운드의 문턱에 서 있다. 모든 영역에서 그 점은 뚜렷하게 감지된다. MZ세대는 기존 사회체제가 낡았다고 느낀다. 이건 자본주의 쇠퇴 과정, 그리고 이것을 상부구조에서 반영하는 자본주의 정치구조의 위기와 불안정성 심화를 반영한다. 대기업 MZ세대 사무연구직 노조 등장도 그런 사회적 맥락에 놓여 있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시대가 MZ세대에 의해 열리고 있고, 열릴 것임을 의심해서는 안 된다. 변화는 불가피하다. 문제는 변화의 방향이다. 이 새로운 물결이 1980년대의 물결처럼 민주화와 민주노조운동의 탄생과 같은 소중한 결실을, 단 이제 그것을 넘어서는 결정적인 결실을 맺도록 우리는 본격적으로 준비해야 한다. 노동운동은 이러한 시대적 격변에 뒤처져서는 안 되고, 오히려 앞서 나가야 한다. 시대의 과제를 MZ세대 노동자들이 당당히 붙잡고 기운차게 전진할 수 있도록 그 길을 터줘야 한다.

 

이미 자본가계급 정치세력과 소부르주아 정치세력들은 그런 미래의 결정적인 향배를 자신이 좌우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노동운동과 사회주의운동도 움직여야 한다. 그것도 시급히 움직여야 한다.

 

두 전선 – 이데올로기 전선과 물리적 전선

 

어떻게 그 길을 터줄 수 있을까? 1980년대 운동에서 그 포문은 학생운동과 생산직 노동운동이 열었다. 학생운동은 급진적인 정치이념을 공급했고, 운동의 이데올로기적 선진부위를 배출했다. 전노협으로 대표되는 생산직 노동자들은 집단적 노동자들의 잠재력을 유감없이 발휘했고, 경쟁논리와 관료제를 거부하고 집단주의와 노동자 민주주의에 입각한 민주노조운동을 기운차게 밀어나갔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사뭇 다르다. 젊은이들 사이에서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는 경쟁논리를 담고 있는 부르주아적 ‘공정성’ 이념이다. MZ세대 노동자들은 민주노조로 아직 충분히 조직되지 못했고, 조직됐더라도 노동조합운동에 똬리를 튼 관료제 때문에 주도권을 쥐고 전면에 쉽사리 떠오르지 못하고 있다.

 

바로 이런 사회적 지형 위에서 대기업 사무연구직 MZ세대 노동자들이 스스로를 조직하고 있다. 자본주의 의식이 지배하고 있는 상황에서, 반면 그것에 맞서는 혁명적, 노동자적 의식은 전혀 확산돼있지 않은 이데올로기 지형에서, 다른 무엇보다도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 말고는 다른 탈출수단이 제공되지 않았던 상황에서 그들이 집착했던 건 ‘공정한 경쟁’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진정으로 새로운 변화를 잉태하는 미래를 여는 것은, 그리고 그들의 삶을 진정으로 대변할 수 있는 건 다른 종류의 공정성이다. 자본의 착취에 맞서 노동자가 단결해서 주장하는 공정성이고, 자본주의 정치구조의 위선과 억압에 맞서 주장하는 노동자 민주주의의 공정성이다. 이런 이데올로기 지형을 사회주의자들과 선진적 노동자들이 앞장서서 열어야 한다. 사회적 이데올로기 전투를 감행하기 위한 대담한 기획이 필요한 이유다. 미래를 이끌어갈 MZ세대의 의식과 철학, 지향점을 안내해주고, 그들이 설계해야 할 사회의 도면을 보여주는 그런 이데올로기 전투 말이다. 그것도 5~60대가 과거 1980~90년대에 적용했던 방식이 아니라, 스마트폰과 인터넷으로 연결돼 있는 MZ세대에 적합한 새로운 수단과 방식을 활용한 이데올로기 전투여야 한다.

 

그와 함께 물질적 힘을 조직해야 한다. 청년의 미래를 노동운동이 지켜주고 안내할 수 있음을 보여줘야 한다. 평생을 자본의 노예로 갈아 넣는 피말리는 경쟁이 아니라, 노동운동을 통한 단결된 투쟁에 희망과 탈출구가 있음을 실질적으로, 물질적으로 보여줘야 한다. 바로 노동운동의 강력한 집단적 투쟁을 통해서 말이다. 사회적 차원에서 청년 일자리를 정규직으로 제공하도록 자본을 강제하고, 국가가 책임지고 일자리를 보장하도록 노동운동이 압박해야 한다. 청년실업자들, 광범한 MZ세대 노동자의 삶의 안정성을 보장하는 무상주택, 무상의료, 무상교육 등을 둘러싸고 사회적 전투를 감행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요구를 내건 MZ세대의 투쟁이 승리하도록 헌신적으로 연대하고 책임져야 한다.

 

젊은이들에게 주도권을!

 

그런 과정에서 1980~90년대부터 투쟁해온 고참 활동가들은 중요한 안내자가 될 수 있다. 수십년 동안 가다듬어온 이론과 함께 수많은 실천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MZ세대 노동자들이 앞길을 개척하는 데서 엄청나게 유익한 자산이 될 수 있다. 정치 사회운동에서든, 노동조합운동에서든 젊은이들이 희망을 찾아 움직이고 저항을 조직하는 모든 곳에서 그 자산은 길잡이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할 것이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바로 여러 굴절을 거치더라도 MZ세대 자신의 주도성과 능동성을 보장하는 것이다. 노동조합을 비롯한 모든 노동자 민중 조직들에서 대기업 사무연구직 노조들처럼 2~30대의 젊은 동지들을 조직의 중심부에 전진 배치해야 한다. 고참 동지들의 적절한 도움이 뒷받침된다면, 그들은 자신의 직접적 경험과 책임성 아래 가장 빠르게 성장할 수 있고 운동에 대한 주도력을 키워갈 수 있다. 이렇게 사회주의운동을 비롯해 노동자 민중운동 전반을 MZ세대의 물줄기를 이끌어갈 능동적인 젊은 세력으로 과감히 재편해가야 한다. 그 가운데 운동의 노쇠화와 함께 강화된 관료제의 낡은 틀을 젊은 에너지로 청소하며, 노동자조직들을 노동자 민주주의에 근거한 조직들로 재탄생시켜야 한다.

 

구체적으로 두 지점을 특별히 강조할 수 있는데, 두 지점은 서로 긴밀히 연결돼 있다. 하나는 MZ세대 내에서 이데올로기 투쟁을 주도하면서, 그 흐름을 혁명적, 노동자적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 중핵들을 변혁적 학생운동 속에서 건설해내는 것이다. 이들은 학생들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는 ‘부르주아적 공정성 담론’을 깨면서 그것을 ‘노동자계급의 공정성’ 즉 ‘평등과 연대’의 방향으로, 궁극적으로는 사회주의의 방향으로 이끄는 이데올로기적 선진부위로 도약해야 한다. 나아가서 이렇게 형성된 이데올로기 역량을 노학연대와 노동운동으로 확장해서 MZ세대 노동자들이 붙잡을 수 있는 이데올로기적 무기를 공급해야 한다.

 

다른 하나는 노동운동 내 MZ세대 노동자들을 능동적 주체로 일으켜 세우는 것이다. 거기서 우선적인 중요성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가장 단호한 중핵이 될 수 있는 노동자들은 바로 비정규직을 비롯해 밑바닥 젊은 노동자들이다. 이들은 자신의 본능과 열망을 반영하는 이데올로기를 붙잡지 못하는 상황에서 경쟁주의 공정성 이데올로기에 질식당해왔다. 대기업이나 공공부문의 MZ세대 정규직 노동자들이 이 경쟁에서 일시적 승리자로 기득권을 누리면서 그 이데올로기에 깊이 감염돼 있다면, 다수의 일반적인 젊은 노동자들은 그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이들은 그런 경쟁에서 밀려난 패배자로 규정되지만, 그들 마음 깊은 곳에는 ‘강요된 패배자’ 지위에 대한 분노로 가득 차 있다. 이들이 패배자의 지위에서 벗어나 자존감을 회복하고 집단적 승리자로 전진하기 위해서는 경쟁주의 공정성 논리를 거부하고, 모든 노동은 소중하다는 노동의 자존심으로 무장해 굳게 단결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비정규직 노동조합을 비롯해 밑바닥 젊은 노동자들의 조직들이 바로 이 전투의 선봉이 될 수 있게 헌신적으로 이끌어야 한다.

 

여기서 부르주아 경쟁주의 공정성에 맞서는 젊은 선진투사들의 이데올로기와 젊은 밑바닥 노동자들의 열망이 하나로 만나서 융합하게 된다. 이데올로기와 물질적 운동이 하나로 결합해 자본주의와 자본의 착취, 억압에 맞서는 거대한 젊은 물줄기가 탄생할 것이다. 그 물줄기가 본격화하면, 낡은 부르주아적 공정성 논리에 사로 잡혔던 일시적 승리자들, 하지만 영원히 경쟁과 분열의 굴레에 갇혀 살아야만 하는 대기업 상층 MZ세대 노동자들도 그 틀에서 벗어나 이 흐름에 가세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것 말고는 MZ세대 노동자 모두가 자본의 굴레에서 탈출해 지금과 다른 빛나는 미래를 열 수 있는 수단이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