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운동 연구공동체 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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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보험고객센터 투쟁 | 공정성 이데올로기는 파업파괴, 노조파괴 이데올로기: 멈추지 말고 반격 전선을 넓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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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2021. 6. 17.

파업 결의는 간단하게 주머니에 넣었다 뺐다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역차별이다. 시험 보고 들어와라. 공정한 절차를 지켜라. 노력도 안 하고 로또취업이냐. 대규모 취업비리다.” 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 노동자들이 건강보험 공공성 강화, 직접고용 등을 외치며 파업에 돌입하자 이 투쟁을 물어뜯기 위해 달려든 자들이 내뱉는 소리다.

 

그들은 자신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화 투쟁 때문에 억울하게 피해를 입는 수십만 취준생’의 대표로, ‘정직한 노력으로 치열한 경쟁을 뚫고 가까스로 일자리를 구한 젊은 정규직 노동자’의 대표로 자리매김하려 한다. 그들이 그렇게 대표 행세를 할 수 있는 데에는 보수언론들의 협공이 큰 몫을 했다. 자본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언론들은 ‘무분별한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이 이 사태를 낳았다며 ‘노노갈등’을 전면에 부각시킨다.

 

‘완벽하게 공정한 경쟁’

 

이 흐름은 최근 국민의힘 당 대표 선출과정을 거치며 조성된 이른바 ‘이준석 현상’과 절묘하게 겹친다. 이준석은 “모두가 완벽하게 공정한 환경에서 경쟁을 펼칠 수 있도록 판을 짜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라며 자신의 삶을 소개한다. “저는 서울 목동에서 자랐다. 대부분의 친구들이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았다. 중학생 700명이 등수를 다퉜다. 그 치열한 경쟁을 뚫고 과학고에 진학했고, 미국 하버드대에 합격했다. 지금 생각하면 완벽하게 공정한 경쟁이었다.”

 

완벽한 헛소리이고, 완벽한 그들만의 경쟁이다. ‘개천에서 용 나던’ 시절은 진작 끝났고 한국에서 자본주의의 뿌리가 깊게 내리는 것과 나란히 ‘부모의 경제력’과 ‘자녀의 진학률’이 정비례하는 사회가 됐다는 건 이미 상식이다. 저들이 말하는 공정한 경쟁이란 누구 말마따나 ‘3루에서 출발한 인생’들 간의 경쟁일 뿐이다. 절대다수의 청소년, 청년들은 올림피아드 시험을 치르고 과학고에 진학하고 하버드대에 합격하는 저 경쟁의 무대에 진입해 보지도 못한다.

 

지난해 인천국제공항 정규직화 논란이 불거졌을 때에도, 비정규직 정규직화에 반대한다고 소리친 정규직 노동자들은 ‘그 치열한 경쟁’에 발이라도 들여놓을 수 있었던 상위 1% 미만의 공기업 정규직들이었다. 그들만의 리그에 끼지 못한 청년들은 남의 일 쳐다보듯이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지방에 사는 청년들은 아예 관심조차 가질 수 없는 형편이었다.

 

그럼에도 현실에선 이준석 같은 자가 주류정당의 대표가 됐고, 정규직 일자리를 꿰찬 젊은 공기업 노동자들과 함께 ‘완벽하게 공정한 경쟁’ 합창을 하며 시대의 대변자 행세를 한다. 만약 그들이 그들만의 세상에서 그들만의 잔치를 즐기는 거라면 그냥 내버려둬도 상관없다. 하지만 그들은 다른 것을 원한다. 완벽하게 공정한 경쟁이라는 그럴싸한 간판을 내걸고 이 세상 자체를 ‘3루에서 출발’한 자들의 세상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경쟁을 바라지도 않는 노동자들까지도 공정경쟁 이데올로기에 무릎 꿇게 만들어 그 경쟁의 들러리로 ‘완벽하게’ 전락시키는 것, 그럼으로써 노동자계급을 정치적으로 완벽하게 해체하는 것이다.

 

‘시험만이 공정한 절차’

 

이를 위해 그들이 화력을 집중하는 포인트는 ‘시험’을 공명정대함의 절대적인 잣대로 격상시키는 것이다. 정규직화를 바라며 투쟁하는 노동자들에게 ‘시험 쳐서 들어오라’고 앵무새처럼 외쳐댄다. 시험 자체는 누구도 차별하지 않으며, 누구라도 각자 노력해서 실력을 발휘하면 그에 걸맞은 보상을 얻어갈 수 있으니 시험만큼 공정한 절차가 없는 것 같다.

 

그러나 누군가는 3루에서 출발하고, 누군가는 저 먼 곳 어딘가에서 발목에 납덩이를 매단 채 출발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 앞에서 이 ‘공정한 시험’ 이데올로기는 순진한 환상이거나 교활한 사기에 불과하다. ‘공정한 시험’ 주장은 현실의 계급 불평등을 은폐한다. 이 불평등이 누구도 강요하지 않은 자신의 선택의 결과라거나, 그저 노력이 부족한 결과일 뿐이라고 조작하는 데에도 안성맞춤이다.

 

그들이 유일무이한 공정한 절차로서 시험을 통한 채용을 부르짖는 건 동시에 노동자의 단결투쟁에 대한 맹렬한 비난과 동전의 앞뒷면처럼 붙어있다. 이 점이 가장 중요하다. 그들의 사고회로 속에서 노동자투쟁은 공정한 절차를 지키지 않는 반칙이며 떼쓰기로 해석된다. 그러니까 집단적인 투쟁의 성과로 정규직화를 쟁취하는 것에 대해서도 대규모 취업비리라는 식의 딱지를 용감하게 붙이는 것이다.

 

이는 곧 노동자들이 투쟁의 역사를 거쳐 획득한 정당한 권리를 부정하고 무력화하려는 시도다. 자본가계급이 움켜쥐고 있는 경제적 부와 정치적인 권력, 군대 경찰 등의 물리력, 교육 언론 종교 등을 아우르는 사회적 문화적 이데올로기적 지배수단을 갖고 있지 못한 노동자계급에게 단결투쟁은 자신의 힘을 결집하고 지배체제에 맞서 싸울 수 있는 가장 유력하고 공정한 ‘절차’다. 가진 거라곤 일을 할 수 있는 몸뚱아리뿐인 노동자들은 노동력 판매를 중단하는 파업과 같은 투쟁 ‘절차’를 이용해 경제적 권리를 확장해왔고, 정치적 권리를 키워왔다. 자본주의 사회조차도 헌법에 포함된 노동3권을 통해 노동자의 단결권, 투쟁권을 인정하는 방식으로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구성했다.

 

그런데 이와 같은 투쟁을 노동자들이 사용할 수 있는 정당한 권리, 방식, 절차로 인정하지 않고 오직 시험만을 들이대는 것은 결국 노동자가 가진 최소한의 저항수단마저 박탈하려는 것이다. 부르주아 민주주의 수준에서 자리 잡은 노동3권조차도 허물어뜨리는 것이다. 여기서 노동자는 개인적인 경쟁의 룰 앞에 모래알처럼 원자화된다(노동자를 이렇게 ‘원자화’시키는 건 파시즘의 중요한 목표이기도 하다).

 

자본가들의 의도대로 움직이는 파업파괴자들

 

자본주의 규칙 앞에 노동자들이 단결과 투쟁을 포기하고 원자화되는 것이야말로 자본가들에겐 최상의 그림이다. 노동자계급의 일부라기보다는 중간계급 수준의 생활조건과 특권의식을 지닌 공기업 정규직 일부가 이런 자본가들의 계획을 실현해주기 위한 행동대원으로 움직이고 있다. 그들은 직접 노동조합 집행부를 장악하거나 영향을 미쳐 노동조합이 이 경쟁에서 승리한 자들의 특권을 보호해주는 도구로 작동하도록 만들거나, 그게 안 된다면 불필요하고 해악적인 것으로 낙인찍으며 무력화하거나 집단적인 탈퇴운동을 조직하는 방식으로 대응한다.

 

어떤 방식과 경로를 취하든 그 결말은 노동자계급의 원자화다. 그리고 파업이 진행되는 동안에 이들 세력은 파업파괴자로 움직인다. 건강보험공단 김용익 이사장은 비정규직 정규직화에 대한 기존 정규직 노조의 거부감을 고려해야 한다면서 적극적으로 파업파괴자들에게 길을 열어줬다. 정부와 공단이 책임지고 실행해야 할 공공부문 정규직화를 정규직, 비정규직 노조 사이의 갈등문제인 것처럼 치환했고, 보수언론의 지원사격과 함께 파업파괴자들의 이데올로기 공격 뒤에 숨어서 ‘공정하지 못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탐욕’이 문제의 근원인 것처럼 포장했다.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자본가들과 정부가 파업파괴자들을 동원하고 몽둥이를(물리적 몽둥이든 이데올로기적 몽둥이든) 휘두르며 짐승처럼 덤벼들 때, ‘머리를 맞대고 대화하자’는 태도로 대처할 수 있을까? 단결해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기본적으로 취해야 할 태도는 자본가들과 파업파괴자들을 단호하게 힘으로 밀어내는 것이다. 결코 물러서지 않고 끝장을 보겠다는 흔들림 없는 투쟁기세와 주도력을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물어뜯는 파업파괴자들의 입을 다물게 하고, 파업파괴자들에게 끌려나간 정규직 노동자 일부를 동요하게 하고 설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기며, 이들 자본의 2중대를 걷어내고 자본가들과 직접 대적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파업파괴, 노조파괴에 맞서

 

이런 상황은 건강보험고객센터 투쟁만이 아니라 노동자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모든 투쟁에 동일하게 파장을 미친다. 그런 점에서 이번 건강보험고객센터 투쟁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제2의 인국공 사태’라는 프레임은 줄기차게 따라붙을 것이다. 우리가 회피한다고 해서 그냥 사라지지도 않을 것이다. 경제위기의 먹구름이 해소되지 않고 절망과 불안이 퍼져갈수록 자신의 특권적 지위를 침해당하지 않으려는 자들의 광기에 찬 적대행위도 강화될 것이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를 외쳐놓고도 끊임없이 자본가들의 눈치를 살피며 ‘자회사 정규직화’ 따위의 기만을 거듭하는 문재인 정부의 행태가 상황을 계속 악화시킬 것이다. 국민의힘 이준석 현상은 공공부문에서 시작된 ‘완벽하게 공정한 경쟁’ 프로그램을 사회 전체로 확장하려 한다. 그리고 그 완벽하게 공정한 경쟁의 본질은 파업파괴이고, 노조파괴다.

 

이것이 우리가 서 있는 현실이다. 그래서 건강보험고객센터 투쟁은 출발점에서부터 사회적, 정치적 성격을 띠고 시작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만큼 이 현실을 직시하고 그에 걸맞은 투쟁 전망과 기세를 만들어가는 것 역시 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 노동자들만의 과제로 국한될 수 없다. 파업파괴, 노조파괴에 맞서야 할 모든 노동자의 과제다. 함께 전선을 만들어가야 한다.

 

그런 점에서, 아무것도 해결된 게 없는 마당에 건강보험공단과의 교섭을 이유로 파업을 중단하기로 한 것은 우리 스스로 강력한 투쟁의 무기를 내려놓는 것과 다름없다. 저들이 공정성 이데올로기라는 몽둥이를 사방팔방 휘둘러대고 있는 한, 노동자도 파업이라는 몽둥이를 내려놔서는 안 된다.

 

건강보험공단이 교섭을 수용한 것은 파업파괴가 목적이었기 때문에, 교섭에서는 정규직의 반발을 핑계로 자회사 방식에 대한 끝없는 공방과 민간위탁사무논의협의회와의 관계설정 문제로 시간만 늘어질 것이다. 직접고용 반대 1인 시위를 진행하던 건강보험공단 정규직 일부는 직접고용 반대를 위한 직원모임을 구성하고, 임시총회 소집까지 요청했다. 더 이상 파업파괴자들이 주도권을 가져가지 못하도록 최대한 빠르게 재파업을 결의해야 한다. 이 파업을 중심으로 공정성 이데올로기를 격퇴하기 위해 노동자들, ‘공정한 경쟁’에 끼어보지도 못한 청년들, 학생들의 연대를 사방팔방 조직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