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운동 연구공동체 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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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추천글] 진보당 해산에 부치는 반성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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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추천글

2014. 12. 23.


<뿌리> 연구원이기도 한 오민규 동지의 경향신문 기고문을 외부추천글로 등록합니다. 박근혜 정부의 통합진보당 강제해산조치가 결국 누구를 겨냥한 것인지, 통합진보당에 대한 방어가 결국 어떤 정치적 전망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짚어봅니다.


진보당 해산에 부치는 반성문
(오민규 | 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

“나에게 한 문장만 달라. 누구든 범죄자로 만들 수 있다.” 나치의 악명 높은 선전상 괴벨스의 말이다. 이를테면 ‘나는 가족을 사랑한다’고 하면 ‘그럼 국가는 사랑하지 않는가?’라며 반역죄를 뒤집어씌울 수 있다는 거다.

대통령에 당선된 지 꼭 2년이 되던 날, 박근혜 정권은 통합진보당을 역사 속으로 묻어버렸다. 하지만 이게 시작에 불과하다는 건 정치에 조예가 깊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종북몰이 공안 광풍은 정권에 반기를 든 세력 중에서 또 다른 사냥감을 찾을 것이다.


“쌍용차와 스타케미컬 노동자들이 올라간 굴뚝에는 종북 색칠을 할 수 없을까? 저들을 응원하는 국내외 지식인들 몇몇을 북한과 연결시킬 소재 한두 개쯤 없어? 규제 완화와 민영화에 저항하는 공공부문 노조 간부들 중에는? 이참에 전교조도 같이 묻어버릴 방법 없을까?”

설마 그렇게까지 하겠느냐는 말은 하지 말자. 박근혜 정권이 위헌정당 심판을 제기할 때만 해도 사악함으로 가득 찬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예상한 이는 없었다. 증거? 애초부터 그런 건 필요하지도, 중요하지도 않았다. 냉전 시기 ‘미국 곳곳에서 암약하고 있는 297명의 공산주의자 명단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며 시작된 유명한 매카시즘 역시 297명은커녕 단 1명의 공산주의자도 밝혀내지 못했다. 하지만 ‘혐의가 의심된다’는 이유만으로 무려 1만여명의 노동자들을 해고하는 데 성공했다. 공안몰이의 목표는 언제나 노동계급의 저항을 분쇄하는 데 있었다는 얘기이다.

경제위기로 치달아가는 한국 자본주의에 내년은 중요한 시점이다. 재정위기를 공무원 노동자들에게 떠넘기고, 재벌들 이윤율 유지를 위해 구조조정을 밀어붙여야 하는데 노동자들의 집단적 저항이야말로 박근혜 정권에 가장 큰 걸림돌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공직선거가 없는 내년은 대중이 야권연대라는 허상이 아니라 노동자투쟁에 희망을 걸 가능성이 높다. 희망버스 수백대가 한진중공업으로 향하던 2011년도 선거가 없는 해 아니었던가.

안타깝게도 SNS상에서는 수많은 표현들이 난무하는 반면 이 사태를 접하는 민주노조운동의 태도는 조용하다 못해 차분하기까지 하다.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이 너무 어처구니없는 탓이기도 하지만 진보정당운동에 실망한 이들이 노동조합 활동에만 주력해온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그들의 노력으로 내년엔 비정규직 총궐기를 조직하자, 공공부문 총파업을 만들어보자는 등의 과감한 제안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박근혜 정권은 자신을 위기로 몰아넣을 노동자투쟁에 종북 딱지를 붙이기 위한 사전정지작업을 해놓은 것이다.

경제위기의 책임을 전가하려는 저들에 맞서 노동자들의 정당한 저항을 엄호하기 위해서도 통합진보당 해산 시도에 견결히 맞서야 했다. 통합진보당만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저항을 조직하려는 모든 이들에게 겨눠진 칼이었기에 함께 방패를 들어야 마땅했다. 그런 노력 속에서만 비정규직 총궐기, 공공부문 총파업 등 노동자투쟁을 엄호하며 새로운 세상을 향한 꿈을 전파할 진짜 노동자당을 건설할 에너지가 만들어지는 법인데 말이다.

늦 었지만 반성하고 다시 출발하자. 비록 너무 늦어버려서 사악해진 종북몰이라는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하겠지만, 절망과 패배주의는 극우세력의 자양분이 될 뿐이다. 비정규직 총궐기와 공공부문 총파업, 그 속에서 새로운 세상을 그려나갈 진짜 노동자당이라는 전망을 포기하지 말자.

그러고 보니 한 달에 한 번 써온 이 칼럼이 40회가 넘어가도록 통합진보당 문제를 다뤄본 적이 없다. 그래서 이 글은 통합진보당 해산에 부치는 반성문이다. 노동조합에만 갇혀 있지 않겠다는 다짐이 흔들릴 때마다 다시 꺼내 읽을 반성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