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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인천 키보드 2017. 10. 12. 17:32


 

                     

                                    천지인천(=아래아천지인) 키보드 사용법

 

         

       '천지인천(아래아천지인)키보드'는 

      훈민정음 창제 원리인 천지인을 적용하여 단순하고 배우기 쉬우며 빠르게 손으로 쓰면서 입력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한 번에 ㅏㅓㅗㅜㅡ ㅣㅢㅚㅘㅟㅝㅐㅙ 입력. 그 외 전부 2타(획)

     

      

              

구글 플레이스토어-->천지인천 한글-->무료다운

 

               

         *자음의 특징

                   ㄴ    ㄹ    ㄹㄹ(쌍ㄹ)

           한 번 누르면 이 나오고,  한 번 더 누르면 이 나오고, 한 번 더 누르면 ㄹㄹ(쌍ㄹ)

          입력되는 것이 특징이다.

 

                                                  두 번 누르면 ㅑ,ㅕ


                                                            

                                                          

                                

New천지인! 손으로 쓰는 키보드

 

ㅗ는 12긋기(ㅛ는 ㅗ+.)

                      

 

 

ㅜ는 25긋기(ㅠ는 ㅜ+.)

 

 

ㅐ는 53긋기(ㅒ는 ㅐ+.)

 

 

 

 

ㅟ는 253긋기(다른 양손 방법: ㅜ+ㅣ)

 

 

 

 

ㅝ는 251긋기(다른 양손 방법: ㅜ+윗점.)

 

 

 

ㅘ는 125 또는 15긋기

 

 

 

ㅙ는 153긋기(다른 양손 방법: ㅘ+ㅣ)

    

     ---------------------------------------------------------------------

  

       

                                      *특수 약타

ㅖ는 ㅣ를 두 번 누른다

 

 

                                                    ㅞ는 ㅡ를 두 번 누른다

 

                        @속기 드래그

                       'ㅂ'을 오른쪽으로 드래그하여 'ㅂ니다' 입력

                      'ㅅ'을 오른쪽으로 드래그하여 'ㅆ습니다' 입력

                             

 

                                *쌍자음

 

ㄱ ㄷㅂ ㅅ ㅈ을 아래로 긋는다

                                    

 

               *천지인과 천지인천의 비교

                 왜 내 얘기를 안들어줘----천지인천 25

                 왜 내 얘기를 안들어줘----천지인 38                                                                                                                                                                 

        

   *키보드 버튼 중 [영]버튼을 길게 누르면 키보드 크기(높이), 색깔, 진동세기 유무, 소리발생 유무 등을

    설정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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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인천 키보드 2017. 9. 26. 13:31


                                    

                                                  앉아있는 필기사


 이 유명한 상은 이집트 예술의 걸작품 중의 하나로 현재 루브르박물관에 소장.전시하고 있다.

이집트에서 문자를 쓰는 것은 고도의 교육을 받은 전문 필기사의 일이었다. 그들은 글과 관련된 일은 대부분 참여해 높은 사회적 지위를 부여받고 실질적인 권력도 누렸다.


  이 작품은 자세히 관찰하면 필기사가 글을 기록하는 전통적인 자세로 무릎 위에 파피루스 두루마리를 놓고, 오른손에는 붓을 쥐는 듯 보이고(구멍만 있음), 현장에서의 상황.분위기를 먼저 파악하려는 예리한 눈빛과 경청하려는 집중된 태도의 마른 얼굴과 이와는 대비로 편안한 마음가짐을 나타내는 풍족한 가슴과 배의 모습은 오늘날 속기인의 기록자세와 무척 닮았다. 그리고 색상이나 눈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생기, 그리고 몸 전체에서 풍겨지는 인상은 문외한 기록인이 볼 때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

 

                              Le Scribe accroupi B.C 2600~2350  -고대 이집트 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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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인천 키보드 2017. 9. 24. 21:14


                               헌법기초 당시의 회고담[국회보]


                                                          兪鎭午(1906~1987) 친일반민족행위자.법학자



            *행정연구회 측, 헌법초안을 실제로 기초한 사람은 유진오가 아닌 자신들이라고 주장.

  

  1958년 6월 5일

◯질문

 오늘 바쁘신데도 불구하고.....(중간 생략)

 회고담 중에서도 선생님의 저서를 통해서 널리 일반에 알려진 것은 다 알고 있습니다마는 저서를 통해서 소개하지 못한 부분, 일반에게 소개하신 중에서도 흥미있다고 생각하신 점 몇 가지만 간단히 소개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유진오

 글쎄요. 대개 저서에 줄거리는 다 썼고요. 한데 그 초안하던 것이 한 두어 단계가 될 것입니다. 맨처음에 헌법초안을 부탁맡은 것이 그 전해 가을에 법전편찬위원회가 처음으로 구성이 되어가지고... 그대에는 민법, 형법은 생각도 못하고 우선 그 중에 헌법분과위원회가 구성이 되었어요. 그래서 그 멤버가 지금 자세한 것은 다 잊어버렸으나 당시의 대법원장 김용무 씨, 법무부장 김병로 씨, 또 그때 검찰총장이던 이인 씨, 이북으로 납치된 강병순 씨 그리고 나하고 그외에 또 몇 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위원회에서 심의할 초안을 나더러 쓰라 이렇게 위촉이 되었는데 그것이 그 전해 가을입니다. 그때는 선거도 하기 전이니까, 5.10선거입니까... 훨씬 전이니까 이것이 정말 될려나 안될려나 하면서 이리 저리 구상을 하고 있었지요. 그런데 몇달 후에 유엔임시총회 소총회가 열려서 남한에만 선거를 하게 되고 유엔위원단이 내한할 무렵이 되어가지고 김성수 선생이 찾아와서, 그때 그 어른은 한민당 당수로 있었습니다. 김성수 선생이 또 나더러 초안을 해달라 부탁했어요. 그래서 좌우간 내가 초안은 하나 할테니 무슨 어느 당이나 어느 회(會)의 초안이라고 해서 하는 것보다도 내 독자적인 초안으로 할테니 나중에 봐서 쓰겠으면 쓰시요. 이렇게 대답을 했지요. 그때는 아마 유엔위원단이 오던 무렵입니다. 겨울입니다. 순전히 혼자 앉아서 일단 최초의 초안을 했어요. 초안을 했는데 그 무렵에 입법의원의 법무사로 있던 윤길중 씨와 황동준 씨가 내가 초안을 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자진 찾아오고 그래서 청량리 우리집에서 그 두 분의 협조를 얻어서 검토를 쭉 한번해서 더러 고치기도 하고 더러 빼기도 하고 넣기도하고 그랬습니다.

 그러자 그때에 해공(신익희) 선생이 독립촉성국민회 부의장인가요... 의장인가 위원장은 이(우남 이승만) 박사가 하고, 그 분이 부의장인가 부위원장으로 계셨는데 날더러 만나자고 사람을 보내서 청하셨어요. 그래서 낙원동 어디로 가니까 그때 거기에 최하영 씨도 있고 또 누가 있었던지 잘 기억이 안나는데 해공 선생 말씀이 '사실은 그전부터 동지들과 헌법초안을 준비하던 것이 있는데 당신이 초안을 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으니 암만해도 당신한테 부탁하는 것이 좋을 것 같소' 그래서 그전에 했다고 하는 그 초안은 그때에 내가 받았습니다. 그것이 대체로 아마 임시정부가 귀국한 직후에 헌법기초위원회라는 것이 되었었는데 그때에 거기서 마련되었던 것 같았어요. 그 위원회 명단에는 정인보 씨 이름이 기억이 나고 신익희 이런 분들 이름하고 내 이름이 끼었던 생각이 나요. 나는 그 위원회에 가지 않았기 때문에 자세한 내용은 모르겠으나 하여튼 그 헌법안은 그 위원회에서 된 것으로 생각하였어요. '한국헌법안'이라고 이렇게 되어 있었어요. 그것을 쭉 보니까 사실 내가 초안한 것이 훨씬 신식이더군요.(웃음)

 그래서 나는 대답하기를 그러면 무슨 국민회안인 둥 한국민주당인 둥 법전편찬위원회안인 둥 할 것 없이 우리가 협력을 해서 하나 만들자고 했어요. 그래서 그후로는 최하영 씨 댁으로 자리를 옮겨 내가 기초한 헌법초안을 다시 여러 사람이 처음부터 토의하기 시작했는데 한편 법전편찬위원회에는 내가 기초한 후에 윤길중, 황동준 두 분하고 토의해서 만든 초안을 제출했지요.

 

◯질문

 그러면 헌법초안작성이 두 갈래로 된 셈이군요?


유진오

 그렇습니다. 내가 기초한 안을 가지고 한편으로는 법전편찬위원회에서 토의하게 되고 한편으로는 같은 안을 가지고 최하영 씨 댁에서 동지들끼리 토의하게 된 것입니다.


◯질문 

 법전편찬위원회의 토의에는 선생님은 출석하지 않으셨던가요?


유진오

 처음 한두 번 출석하고는 출석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위원들과 시대적 거리도 있고 해서 토의하기가 힘이 들 뿐아니라 빨리 될 것 같지도 않아서 나는 위탁받은 사명을 다했으니 그 안을 가지고 독자적으로 검토하라 해놓고 나는 나대로 최하영 씨 댁에서 다른 동지들과 검토를 시작했던 것입니다.


◯질문

 최하영 씨 댁에서 토의하시던 경과를 좀 말씀해 주시지요.


◯유진오

 그때 그곳에서는 해공 선생이 가끔 들리시고 그랬는데 그때 토의에 참가한 분은 윤길중, 황동준 두 분 외에 차윤홍 씨, 최하영 씨, 김용근 씨, 노용호 씨 등이었고 장경근 씨도 여러 차례 참가했습니다. 나중에 헌법기초전문위원으로 임명된 분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지금은 납치되었지만 그때 대법관으로 있던 이상기 씨도 한두 차례 만났던 일이 있습니다. 사법부 문제로해서... 그래서 초안이 작성된 것입니다. 6월 초에 국회의원 30명으로 조직된 헌법기초위원회에서 전문위원 10명을 임명했는데 대부분 그전에 의논하던 사람이고 전에 토의에 참가한 일이 없던 분으로서는 한근조 씨, 권승렬 씨, 고병국 씨, 임문환 씨 등이었습니다.

 헌법기초위원회에서는 내가 준비한 안을 내놓으라 하여 내놓았는데 권승렬 씨가 또 하나 안을 내놓아서 안이 둘이 된 셈입니다. 하나는 여태 이야기한 최하영 씨 댁에서 여러 사람이 토의한 안이고 하나는 법전편찬위원회에 내가 제출한 초안을 가지고 주로 권승렬 씨가 외국법전도 참고해서 가감한 것이지요.

 그 두 가지 안을 내놓고 그 위원회에서 어떤 안을 심의의 토대로 삼을 것이냐? 그래서 토의를 한 결과 내가 낸 것을 원안으로 채택을 하고 권승렬 씨가 따로 법전편찬위원회로서 낸 것은 참고안으로 해서... 그래서 심의가 시작된 것입니다.


◯질문

 그후로 말씀이지요. 헌법이 제정된 이후 헌법의 운영면에 있어서 선생님이 당초에 구상했던 것과... 가장 이상적으로 실현되고 있는 점이 중요한 것으로서 무엇 무엇인가를 좀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유진오

 그후에 중대한 개정이 있었으니까 지금 뭐라고 말씀하기가 어렵지요... 근본원칙이 변했으니까.


◯질문

 그래도 그 점에 대한 소감이 있으시겠지요.


◯유진오

 그러면 거기에 얘기를 좀 첨가하겠는데 대체로 헌법기초위원회에서는 내가 낸 안이 거의 90% 이상이 대개 그대로 채택이 되어서 제1독회에서는 물론이고... 대체토론이 지나가고 제2독회... 조문을 정리 중에 아시다시피 내각책임제로 헌법안이 되어있던 것이에요. 그런데 그 제도로는 암만해도 안되겠다... 국회불신임결의로서 국무위원이 나가고 그래서는 안된다, 그렇게 되면 정부가 안정이 되지 못한다는 강력한 말씀을 국회의장으로 계시는 이 박사가 수차 하시고... 자세한 이야기는 말하기가 거북한 점이있어 빼겠구요... 좌우간 헌법기초위원회에서는 끝까지 내각책임제로 하기로 되었는데 참 최후 순간에 가서 태도를 일변해서 국회에서 국무위원을 불신임한다는 그 조문을 빼고 또 정부에서 국회를 해산하는 그 권력을 빼고 그랬습니다. 그래가지고서 나는 그렇게 되면 내가 구상했던 헌법하고 전연 다르게 되니까 나는 여기에 관계할 수 없다.

 나는 애초에 기초를 시작할 때에 몇가지 원칙을 세웠댔어요. 법전편찬위원회에서는 특별한 원칙을 지시받은 것이 없이 내 마음대로 써내라고 했던 것이고 김성수 씨와 말씀할 때도 내가 이렇게 구상하고 있는데 몇가지 원칙이 있소. 이것에 찬성이라면 내가 안을 작성하겠다 해서 몇가지 원칙을 말씀한 것이 있는데 양원제도, 내각책임제도, 농지개혁 등이 그것이었습니다. 모두 지금 다섯 가지가 되는데 나머지는 지금 생각이 안 나는군요. 농지개혁을 내건 것은 공산당을 막을려면 그 길밖에 없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1차 세계대전 후에 동구라파 제국 루마니아라든지 헝가리라든지 체코슬로바키아라든지 이런 나라에서 공산당 천하가 다 되었던 것인데 농지개혁을 해서 농민들이 홱 돌아가지고 공산화되는 것을 방지한 그러한 역사상 예가 있었어요. 김성수 선생도 다 좋다해서 합의가 된 것인데, 나중에 해공 선생하고 말씀할 때에도 초안을 만드는 것은 좋은데 이 몇가지 원칙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요. 그랬더니 당신은 물론 다 좋은데 가만히 있으라고 그리고서는 이 박사께 의견을 들어야 하겠다고 그러더니마는 이 박사도 다 좋다고 그러신다, 그래서 헌법을 초안하였던 것인데 양원제도는 단원제가 된다, 책임내각제도의 중요 골자는 뺀다... 이렇게 되면 나는 학자로서 헌법초안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없다고 생각하였어요. 정부에서 무슨 짓을 해도 불신임결의도 못하고 국회가 아무리 횡포한 짓을 해도 해산도 못하고 그런가하면 정부는 정부대로 국회는 국회대로 으르렁거리고 의견이 서로 대립될 때에 헌법상 그것을 합법적으로 해결하는 길이 없는 것이니, 나라 정치는 아주 '데드록'이 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나는 그런 헌법에는 책임 못지겠다고 그 이튿날부터 국회에 안 나갔습니다.

 그래서 사실은 헌법기초위원회의 손에서 국회본회의에 나간 초안에 대해서는 나는 관계를 안했어요... 안 나갔어요. 이렇게 옥신각신하고 있는데 정부가 수립된다하여 외국 신문기자들은 전세계에서 서울에 모이고 유엔위원단은 주시하고 있고, 자 이것이 어떻게 되느냐하고 보고 있는데 물론 국회에서는 나더러 자꾸 나오라고 하는데 안 나가고 있었지오. 그러자 어느날인가 날짜는 잊어버렸으나 내일은 상정한다. 내일 국회본회의에 상정한다고 그래서 국회에서 세 분이 나를 찾아왔어요. 그때에 찾아왔던 분이 내 기억에 정도영 씨, 김준연 씨 또 한 분이 생각이 안 나는데 대표로 와가지고 내일 본회의에 상정되니까 꼭 나오시요... 나는 그래도 못나가겠다 했더니 그 분들 말이 사실 말이지 지금 헌법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별로 없지 않느냐. 그래서 유일한 전문가인 당신이 초안하고 있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큰 망발은 안하겠지 하고 국회의원이나 국민이 보고 있는데 지금 당신이 이 초안을 책임 못지겠다고 하고 안 나오면 이것이 대한민국이 성립되느냐 못되느냐 하는 중대기로요 지금 당신은 전문위원이라고 하지만 전문위원이 아니라 커다란 정치적 존재가 되어 있소. 그러니까 꼭 나오시요. 그래도 나는 안 나간다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그 이튿날 아침에 국회의 개회하는 시간이 다 되어도 안나가고 드러누워 있는데 그때에 나는 청량리에 살 적인데 국회에서 차를 보내고서 누구인가 와서 덮어 놓고 가자는 것이에요. 말은 안해도 좋으니 가만히 앉았기만 하라는 것이에요. 가만히 앉았기만 해도 당신 얼굴만 봐도 국회의원이나 일반 국민이나 헌법의 내용이 과히 나쁘지 않는 것이로구나 하고 안심할 것이고, 그러니 나가 앉았기라도 해야지 지금 이렇게 되었는데 어떻게 하오, 그래서 끌려나갔지요. 나갔더니 내외국 손님, 신문기자, 방청객들은 잔뜩 앉았는데 개회하는 시간이 자꾸 늦어지고 그러니까 시간을 기다리다 못해서 할 수 없이 시작을 해놓고는 그때에 기초위원장이 서상일 씨에요. 서상일 씨가 올라가서 그 동안의 경과만 얘기하고 나는 안 오고 해서 얘기를 질질 끌고 하고 있는 판이었는데 내가 들어가니까 자리에 채 앉기도 전에 이것을 기초한 전문위원 유진오 씨가 나왔으니까 유진오 씨가 나와서 한다고 그러고는 내려 오잖아요.(웃음)

 그러니까 의장은 '유진오 씨 나와서 설명하시요' 그래요. 그런데 이것을 못한다고 할 수 없고 그래 나가가지고 헌법 내용을 설명하는데 원고 한 장 없이 했습니다. 내 저서에 그 기록(속기록)이 그대로 실려있지마는 그 자리에서 이 헌법에 이러이러한 모순이 있다고 이렇게 얘기할 수 있어요? 그래서 거기에서는 운영만 잘하면 잘 될 수 있다. 이러이러한 장점과 이러이런한 단점이 있는것인데 운영만 잘하면 될 수 있다. 그러한 취지로 설명하고 내려온 것입니다. 물론 경과가 어찌되었던 간에 내가 나가서 제안이유를 설명했고 그러니까 책임이 나한테에 없다고 할 수 없지마는 전문위원이 무슨 법안에 대하여 표결권이 있나요. 더군다나 경과는 그렇게 되었습니다.

 

◯질문

 그런데 헌법 전문이 잘되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것은 선생님이 직접 유 선생님께서 담당하셔서 초안을 하셨는가요?


◯유진오

 네. 내가 쓴것이지요. 조금 어구를 고친 것과 한두 마디 첨가된 것이 있고 그렇지요.

 고친 것은 헌법 전문의 봉건적 누습이라고 하는 말을 이 박사도 말씀하시고 그래서 사회적 폐습이라고 고쳤으나 그런 것과 또 무엇인가 한마디 낀 것이 있고 내가 쓴 그대로지요.


◯질문

 고친 것은 국회에 올라온 후 겠지요?


유진오

 잘 기억이 안 나는데 아마 국회에 나온 후일 것입니다... 그런데 국회본회의에서 심의하던 때의 일을 조금 얘기해야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얘기한 것과 헌법기초위원회에서 최종적으로 국회본회의로 넘어간 헌법안에는 나는 손을 안 댔지만 이왕 도로 관계를 하게된 이상에는 어떻게 해서든지 좀 내가 생각하는 방향으로 가까이 가져가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국회본회의에서 심의하는 동안에 나는 몇가지 수정안을 국회의원들을 시켜서 제출하게 했어요. 국무총리 임명에는 국회의 동의가 있어야 하고 또 국무위원을 국무총리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 그런것 하나하고 또 하나는 초안에는 예산제도에 있어서 예산이 성립되지 않는 경우에는 전년도 예산대로 집행한다고 되어있었는데 그것은 구일본헌법 예전 독일헌법 계통의 제도인데 암만해도 예산이 제일 중요한 것인데 그것을 이렇게 해버린다면 정부에서 독재적인 권한을 너무 질 것 같아서 안 되겠어요. 그래서 예산이 성립되지 못하는 경우에는 1개월 이내에 가예산제도로 해서 어쨌든지 국회의 결의를 얻어야 정부에서 예산을 쓸 수 있도록 하자는 것하고 또 하나는 뭐더라... 여하튼 이 세 가지를 의장인 이 박사께서도 말씀을 드리고 국회의원들로 하여금 수정안을 내게했어요. 그래서 그때 예산제도는 그대로 되고 또 무엇인가 그것도 그대로 되고 국무총리의 임명에 있어서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것도 그렇게 되었으나 국무위원 임명에 있어서 국무총리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는 그 제청제도가 깎였지요.


◯질문

 이 이외에 재미난 여담 같은 것이있으면 한마디 말씀해 주십시오.


◯유진오

 뭐있나... 그때 국무총이의 제청권이 삭제되었는데 자세한 내막은 말할 수 없으나 우스운 얘기를 하나 하지요. 국무총리는 대통령이 임명하고 국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제1항인데 제1항까지 통과시키고서 점심시간이 되었어요. 그렇게 한 것이 지금 생각하면 계획적으로 일부에서 그랬던 것 같은데 점심을 먹으러 나가자고 모 씨들이 그래서 따라서 점심을 먹으러 갔다가 국회가 오후에 속개할 시간을 몇 분 늦게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들어가 보니 그 동안에 국무위원은 국무총리의 제청으로 임명한다는 수정안을 부결해 버리고 원안(헌법기초위원회에서 제출된 안)을 통과시켰다는 것이예요.(웃음)

 그러니까 지금 생각하면 계획적으로 나를 그 자리에서 격리시키도록 했던 것 같아요. 그때는 내 말이 국회의원 한테 대한 영향이라는 것은 절대적인 것이거든. 내가 그 자리에 있어서 삭제해서는 안 된다고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질문

 그러니까 몇 분 사이에 한국 헌법의 중요한 골자가 왔다갔다 했군요.


◯유진오

 그렇지요. 몇 분 안되는 동안에 그렇게 되었지요.


◯질문자

 바쁘신데 대단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