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천지인천 키보드 2013. 6. 13. 22:20

  

            누락된 대한민국 역사를 복원하라. 국회속기록!

 

  제2대국회 제7회임시회 제3차본회의부터 제6차본회의(1950.6.22~6.26)까지 4일간의 본회의속기록 및 동년 6월 27일 새벽 2시~5시까지 국회긴급회의와 제8회국회 제1차본회의에서 제37차본회의(1950.7.27~10.12)속기록은 전쟁 중 속기사가 동반하지 못해 기록을 못하거나 6.25전후 속기록은 속기는 하였으나 인쇄소에서 원고 소실 등 안타깝게도 누락되어 있다. 하지만 누락된 이 대한민국 역사를 그냥 앉아 포기한채 가만히 있을 것이 아니라 본 한글속기학연구소에서는 언관의 신문기자가 쓴 신문을 1차적 사료로 모아 국회속기록을 복원하는 시발점으로 생각하면서 차근히 준비하는데 의의를 두고자 한다.(제7회 제3차~제6차본회의의 속기록은 원고 분실, 제8회국회 제1차본회의부터 제37차본회의까지는 일시 장소 출석의원 의사일정 등 회의록부본이 있음)

*기자가 작성한 신문자료에 본회의 회차수 등등 오류가 많이 발견됩니다.

 

                                                                         최초 자료모음

                 누락된 국회속기록 1950.6.22~10.12  41일간 본회의

 

 

 

제목 제7회 3차 국회본회의, 쌀값 폭등대책을 정부에 추궁
게재지명 서울신문
게재일자 1950년 06월 23일
날짜 1950년 06월 22일

국회 22일 제3차 본회의는 전차회의에서 결의한 바와 같이 미가대책, 귀속재산경매 및 광목경매문제, 비료배급 등에 관한 각 관계장관에 대한 긴급 질문을 일정으로 하고 상오 10시부터 申翼熙의장 사회로 개의하였다. 보고사항에 이어 제안자 李鎭洙의원으로부터 설명이 있은 후 먼저 미가대책문제에 대하여 尹농림장관에게 긴급질문을 전개하였다. 그리하여 결국 이날 본회의는 긴박한 식량대책에 대한 질문으로 始終하고 崔國鉉의원(高陽)의 동의로써 각 도별로 1인씩 식량긴급미가대책위원회를 구성할 것을 재석 196명 중 187 대 0으로 가결하고 곧 각 도별로 동 위원을 선출하였는데 李宗鉉(서울)·朴濟煥(경기)·郭義榮(충북)·李錫基(충남)·池蓮海(전북)·金用茂(전남)·趙憲泳(경북)·李時穆(강원)·姜昌瑢(제주) 등 10의원이 선출되었으며 하오 1시 20분에 산회하였다. 그런데 이날 미가대책에 대한 윤농림장관과의 질의응답 내용은 다음과 같다.
李鎭洙의원(楊州 을):방출미는 1,400원인데도 불구하고 시장가격은 3,000원대를 하고 있다는 것은 방치할 수 없는 문제이다. 이 나라의 주인공인 농민·근로대중은 악질모리배의 奸計로 미가는 폭등하여 도탄에 빠지고 있다. 이와 같은 현상을 빚어낸 농림장관에 대하여 몇 마디 질문하고자 한다.
(1) 정부가격과 시장가격의 차이가 심한데 350만 석 수집내용을 말하라 (2) 방출미 1,400원의 법적 근거 여하 (3) 배급대상은 근로대중이냐 악질모리배냐 (4) 양곡정책으로서의 釀造米에 대한 대책은? (5) 현 농촌실정을 알고 있는가. 그리고 현 식량정책은 선정이냐 악정이냐 그렇지 않으면 失政이냐?
윤농림장관:82년도 정부매상예정량은 350만 석이었는데 실시 매상량은 325만 석이다. 정부는 미곡증산에 노력하여 탄력성있는 수집과 조절을 도모하겠다. 방출미가격에 대하여는 법정 근거가 있는 것이 아니다. 방출수량은 70만 석인데 가격에 대한 차액은 70억 원인데 보상비료로써 환원하고 있다. 그리고 농촌의 실정은 나도 잘 알고 있다. 양조미에 대하여는 공공연한 것은 취체하고 있다.
李宗鉉의원(서울 마포 을):식량정책은 (1) 근본적 해결과 (2) 긴급사태 때의 임시조치들을 구분할 수 있다.
(1) 糧政에 있어서는 국무총리 이하 각 부처장관의 연대책임제로 하여야 한다. 과거 농림장관에 있었던 나의 경험으로 볼 때 각 부에서 양정에 협조하여 주지 않은 일이 많았다. 그러므로 식량정책에 절실히 느끼는 바 있었다. 농림장관은 이를 대통령과 국무회의에 요구할 의사가 있는가. 없다면 국회에서 건의하겠다 (2) ECA 관계도 있으나 비료는 3배로 가격인상하고 미가는 안정價로 수집함은 모순인데 이를 조절해야지 않는가 (3) 식량만은 통제해야 하겠는데 그 용의가 있는가 (4) 서울에만 보유미를 방출하고 있는데 각 지방에도 해야하지 않는가 (5) 3홉 배급을 하겠다는데 확고한 각오가 있는가
윤농림장관:대통령과 국무회의에 그 안을 올려보겠다. 현 식량정책은 자유도 아니고 통제도 아니다. 수집의 방식은 모든 부문에 관계되므로 정부는 물론 국회도 연구하여 주기 바란다. 비상조치로 서울에만 방출하고 있으나 지방에도 할 예정이다. 현재 보유미는 100만 석 있으며 각지에 산재하여 있는데 극히 곤경에 빠진 지방에는 3홉 실시도 생각하고 있다.
곽상훈의원(인천 을):종래의 식량정책을 논의하자는 것이 아니고 오늘 목적은 화급한 당면 식량문제에 있다. 이에 대하여는 국회와 정부가 合心戮力하여 난관을 돌파해야 한다. 앞으로 철저한 대책을 강구하기를 바란다.
윤농림장관:상인이나 농가에 있는 미곡량은 대략적으로 알 수 있으나 정확한 것은 알 수 없다. 그리고 앞서 수입한 미곡 10만 석은 서울시로는 충분하다. 수출미 70만 석 중 60만 석은 이미 수출하였고, 6만 석이 남아 있는데 정부에서는 각지에 산재된 보유미와 상인의 수중에 있는 양을 조사하여 재검토하겠다.
張澤相의원(경북 칠곡):현 농림장관은 무책임, 무자격이다. 동문서답의 답변은 무엇인가. 일제 때에도 7,000여 명의 기술자 지도원을 동원하여 식량증산에 노력하였는데 현재도 1,500여 명의 기술자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각 부에 4·5인의 기술자가 배치되어 있을 뿐 또 그들은 식량증산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으니 이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리고 정부보유미경매원칙론을 말하라. 모 장관은 1,500원에 머리가 날라 갔는데 3,000원에 폭등한 이때에 물러갈 자신이 있는가?
윤농림장관:식량증산에 대하여는 고려하지 않는 바도 아니다. 정부보유경매원칙론 운운하나 경매를 하게 된 것은 미가의 폭등이 서울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고 생산지인 지방에서 올랐기 때문에 이에 따라 자연 등귀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를 조절하기 위하여 경매에 처한 것이다.
김용무의원(전남 무안 갑):수집량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70만 석을 수출한 이유 여하?
윤농림장관:이것은 필요한 외화획득에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崔獻吉의원(강릉 을):38지구에도 보유미를 배급하지 않겠는가?
李判烈의원(전남 구례):반란지구에 대한 배급제는?
윤농림장관:식량수집의 목적은 38지구, 기타 반란지구를 위하여 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지구에 대해서 배급을 고려 중에 있다. 

 

 

미가대책에 대한 질의

1950년 6월 23일자 동아일보

이진수의원 : 정부의 350만석의 미곡매상과 실제 00에 차이가 있는데 그 이유는 나변에 있으며 620원에 매상한 미곡을 1400원에 방출한 법적근거는 어디있는가? 또한 제헌국회 당시에 농림장관은 방출미에서 생기는 이익금은 한해대책에 충당하겠다고 하였는데 현재 어느 정도 한해대책으로 나갔는가? 하곡수집은 계속할 작정인가?

윤농림장관 : 국민의 식생활의 책임을 맡은 농림장관으로서 미가를 등귀시킨데 대하여서 국민 앞에 송고하고 미안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4282년도의 정부의 미곡매상은 350만석이었는데 실지로 매상된 것은 290만석 정도이었으므로 여기서 약간의 차이가 생기는 것이다. 미곡방출에 대하여 하등의 법적근거도 없으며 방출에 이익금을 한해대책에 충당하겠다고 말한 일은 없다. 미가00 이유는 경매한 때문이 아니고 매일 서울 약 5000석식 필요한 방출미 절대량이 부정한데 기인한 것이다. 5월 8일 부터 6월 6일 까지 정부가 경매한 미곡은 8500석이고 보리 2만석이었다. 정부로서는 적은 보유미를 가지고 다른 별도리가 없으므로 할 수 없이 한 것이다.

이종현의원 : 식량문제를 해결하려면 근본적인 문제와 임시조치적인 문제가 있다. 즉 근본적인 문제로서는 식량문제에 한하여서는 국무총리 이하 관계각부처장이 연대책임을 지도록 하여야 할 것인데 이 문제에 대하여 농림장관은 대통령 내지 국무회의에 상정시켜 결정할 의사가 있는가? 만약 없다면 국회로서 그러한 결의를 대통령에게 건의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식량문제 해결에 있어서 자유경제냐 통제경제냐가 문제이다. 또한 농림장관은 현재 있는 쌀을 수집하여 원가로 사회0에 넘겨 사회정책으로 극빈자에게 무료로 줄 의사는 없는가?

윤농림장관 : 식량문제에 관하여 내각의 연대책임문제는 앞으로 대통령과 국무회의에 상정시켜 보려고하며 서울시, 인천, 부산 등의 극빈자용으로 미곡 10석과 보리 4000석을 수집할 계획이다.

곽상훈의원 : 일반 생산자가 가지고 있는 미곡을 조사한 일이 있으며 잡곡 10만석을 수입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가?

윤농림장관 : 정확한 수량조사는 곤란하며 웅곡 10만석 수입으로 충분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장택상의원 : 기아선상에서 전국민이 헤메고 있는데 농림장관은 동문서답을 하고 있으니 이는 비양심적이오 무책임한 것이다. 미곡증산에 대한 대책을 아직도 세우지 않고 있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그리고 경기 지방에 해충이 만연되어 농작이 우려되고 있는데 그 대책은 세웠는가? 그리고 미곡경매는 모리배조장책에 불과한 것인데 도대체 정부보유미경매 원칙을 설명하라. 그리고 전 장관은 쌀값 2400원 때 인책 사직퇴하였는데 윤장관은 눈 하나 깜짝 안하니 어떻게 된 셈인가?

윤농림장관 : 미곡증산에 대하여는 정부로서 주밀한 계획을 하고 있으며 해충구제문제는 방금 농업기술원에서 연구 실시 중이다. 그리고 미곡경매는 양곡임시조치법 제8조에 의하여 미가를 조절하기 위한 시장방출이다.

수입잡곡으로 당면미봉

장택상의원 : 경매의 법적근거여하

김용무의원 : 정부 보유미를 1400원으로 방출하는 것은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정부의 모리행위이므로 국민으로서 용인할 수 없으며 경매는 법적근거가 있어야 하는데 아무 법적근거도 없이 필지의 사태를 알면서도 경매를 감행한 그런 무능정책이 어디 있는가. 앞으로 어떠한 미가대책을 취할 것인가?

윤농림장관 : 미곡경매는 시장미가를 조절하기 위한 것이었고 미가 1400원은 신구두의 차에도 관계가 있다. 그리고 앞으로 수입되는 1800톤의 잡곡으로 당면문제를 완화할 방침이다.

조광섭의원 : 방직공장 노무자에게 주던 쌀배급을 중지한 이유여하?

윤농림장관 : 350만석을 매상하게된 정부의 식량방침은 일반배급을 중지하고 특수배급에 국한한다는 전제하에서 된것이다. 방직공장 노무원도 여기에 적용된 것이다.

최헌길의원 : 3합배급을 시울시에만 국한하지 않고 38선 세궁민에게도 실시할 의사는 없는가?

윤농림장관 : 이 문제는 비단 38선 뿐만 아니라 반란지구에서 볼 수 있는 일인데 정부가 특수예산으로 쌀을 사다가 주는 도리밖에 없다고 본다.

정일형의원 : 70만석의 미곡수출가격 보다 잡곡수입가격이 더 비싸다는데 사실인가?

윤농림장관 : 미곡수출로 획득한 불로 정부에서 필요한 건설자재와 이미 수입된 잡곡대를 제한 관계로 그런것 것이다.

이판열의원 : 전문위원을 망라하여 식량증산5개년 계획을 수립할 의도는 없는가?

윤농림장관 : 물론 장관으로서는 그런 용의를 가지고 있으며 앞으로 그러한 계획에 대하여 노력할 작정이다.

  이날 국회에서 구성된 긴급미가대책위원회 위원은 다음과 같다.

  이종현(서울)    박제환(경기)    곽의영(충북)    이석기(충남)    지연해(전북)

  김용무(전남)    조헌영(경북)    이시목(경남)    이종형(강원)    강창용(제주)

 

 

미가대책에 대한 질의응답

1950년 6월 23일자 경향신문

이진수의원 : 현하 쌀값이 광등하고 있는데 그 원인을 지정할 수 있는 대책이 있는가  2. 정부에서 매상한 가격 620원과 반출가격 1400원의 차액을 한해대책의 비용에 충당한다하였는데 어떻게 되었는가? 3. 양곡경매로 인하여 기아자는 혜택을 못받고 결과에 있어서 악질모리배를 조장하는 것으로 보는데 대상자는 누군가 기아자가 아니었던가.

농림장관 : 먼저 농림 책임자로서 쌀값으로 인하여 혼란을 초래하게 된데대하여는 대단 죄송할 뿐만 아니라 방출수량이 적은 탓이라고 본다. 그리고 경매는 이미 중지하고 있고 서울시내 시민에 대하여 10월말일까지 쌀 1홉, 잡고 2홉 도합 3홉을 배곱하려고 한다.

이종현의원 : 미가에 대해서는 두 가지 근본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첫째로 농림장관을 불러다 따져도 소용 없으니 식량문제에 한해서는 국무총리 이하 각부장의 연대책임을 질수있게 대통령에 건의 실시할 것과 식량에 한해서는 통제를 하라. 따라서 이에 대하여도 전부 통제를 해서 쌀을 싸게 사는 동시 쌀을 싸게 팔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작년 추곡 매상에서 남은 1000만석과 금년 하곡 수집에서 나올 50만석을 원가로서 굶는 사람에게 사회부를 통하여 노나 주라. 지금 주는 3홉 배급이 몇 달 갈 것인가.

농림장관 : 현재 보유미는 100만석이 있다. 그런데 200만석이 전국에 산재하고 있는터로 전국민에 골고루 배급할 수가 없었고 우선 서울 시민을 비상조치로 3홉 배급을 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 사회부에 쌀 1000석과 잡곡 4000석을 배당하여 극빈자에 분배할 것을 의뢰하였다. 

곽상훈의원 : 수출미를 폐지할 수 있는가. 

농림장관 : 수출미 70만석 중 60만석이 이미 수출되었으며 이는 국제적 문제이니 만큼 폐지할 수는 없다.

장택상의원 : 남한 동포가 아사 상태에 놓여 있는데 비양식적이며 무책임한 농림정책에 책임을 져라. 왜 증산대책에 대한 시책이 없는가. 양곡경매에 원측론을 말하라. 또한 지난 6월 10일에 전국 산업과장회의를 개최하고 하곡수립량을 할당하였다는데 시기가 늦인 것을 아는가?

보유량 100만석

극빈자엔 사회부를 통해 다량분배

농림장관 : 증산시책에 대해서는 계획 중이다. 문제는 경매에 있어서 말하건데 도시에 쌀이 4500석이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방출미로 2000석 밖에 대놓게 되니 부족되는 2500석을 자유시장에서 얻어 드려야만 되게되어 양곡관리법규에 의하여 정부는 할 수 없이 부족되는 수량을 자유시장에 경매로 사게 된 것이다. 한 때 3250원이란 유사이래 처음 보는 호가로 시민을 울리던 쌀값은 정부의 긴급조치로 대량 방출이 실시되자 비까지 나리어 50원, 100원씩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어제 아침에는 2700원대까지 나리어 앞으로도 시간이 호름에 따라 계속 저락될 것으로 보이는데 이대로만 계속된다면 이번 주일내로 2300원까지는 수월히 계속 저락될 것으로 보며 시민들의 찌푸려졌던 눈살은 점점 펴지고 있다.

 

 

 

제목 李鎭洙 외 16의원, 제7회 4차 국회본회의에 귀속재산처리 개정법률을 제출
게재지명 국도신문
게재일자 1950년 06월 24일
날짜 1950년 06월 23일

23일 제4차 국회본회의에서는 귀속재산처리법 중 개정법률안이 이진수 외 16명의 의원으로부터 제출되었다. 동 개정안은 국회에서 귀속재산의 경매제에 대한 국회측의 질문 끝에 정부의 경매강행을 방지코자 제출된 것이다. 본회의에서는 주로 귀재경매의 법적 근거가 있는가, 적자재정의 극복을 구실로 경매제도를 고집하여 국고수입에 손해를 초래할 것이 아닌가, 경매제는 모처럼 안정된 민심을 도리어 혼란케 하는 것이다. “사정가격에 의하여 연고자에게 불하하라”식의 질문에 대하여, 정부측의 대답은 “경매제에 의하지 말라는 법이 없으나 국민경제를 안정시킬 수 있다는 견지에서 실시한 것이다”라고 하여 경매제의 합법 타당성 및 앞으로 계속 실시할 것을 재천명하였던 것이다.
국회측에서는 개정법률안을 제출한 이유는 결국 귀재법 제16조가 애매한 까닭으로 경매제냐 사정가격제냐의 혼란을 일으킨 것이라 하여 조문으로써 경매제를 금지하자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며, 국회측의 해석은 제15조에 의하여 합법적이며 사상이 온건하고 운영능력이 있는 선량한 연고자에게 우선적으로 매각한 제16조에 의하여 지명 公費로써 매각하여야 한다고 보고 있다.
한편 23일 이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경매제에 대한 반대는 幾개인이 자기 권익을 옹호하기 위하여 주장하는 것이니 경매제를 계속 실시하겠다”고 언명한 바 있어 개정법률안의 통과여부가 극히 주목되고 있는 바이다.
그리고 今次에 제출된 개정법률 논쟁 조항 및 현행조항은 다음과 같다.
△개정안 제16조
前條 규정에 의한 매각은 경매입찰의 방법에 의하지 않고 귀속재산심사위원회에서 이를 매각한다. 전항의 귀속재산심사위원회의 구성 및 職能에 관하여는 따로 법률로써 정한다.
◊ 현행법 해당조항
△제15조:귀속재산은 합법적이며 사상이 온건하고 운영능력이 있는 선량한 연고자, 종업원 또는 농지개혁법에 의하여 농지를 매수당한 자와 주택에 있어서는 특히 국가에 유공한 무주택자, 그 유가족, 주택없는 빈곤한 근로자, 또는 귀속주택 이외의 주택을 구득하기 곤란한 자에게 우선적으로 매각한다.
공인된 교화·후생 기타 공익에 관한 社團 또는 재단으로서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아니하는 법인이 필요로 하는 귀속재산에 대하여도 우선적으로 매각할 수 있다.
△제16조:전조에 의하여 매각함이 불능 또는 부적당하다고 인정될 때에는 일반 또는 지명 공매에 附하여 최고 입찰자에게 매각한다. 정부는 입찰가격이 부적당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매각을 거부하고 재입찰에 부한다. 만일 재산에 대한 2차 입찰에도 부적당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그 재산을 隨意契約에 의하여 적정가격으로 매각할 수 있다. 但, 이 경과의 적정가격은 지명한 최고입찰가격보다 고가이라야 한다.
◊ 質疑전을 전개
23일 제4차 국회본회의는 상오 10시 개회 귀속재산경매에 대한 긴급질문이 있었다. 먼저 제안을 李鎭洙의원으로부터
1. 경매제의 법적 근거
2. 수혜자는 선의의 연고자인가 모리배인가
3. 적자재정의 극복을 구실로 경매제를 강행함으로써 국고에 손해를 끼치지 않을 것인가
4. 사정가격은 불합리하다
5. 민심을 혼란케 한다고 보는데 견해 여하 등의 질문이 있고 이어서
徐二煥의원:官舍拂下란 위법이 아닌가
朴定根의원:12戶의 경매에 불과 1호가 낙찰되었으니 이 상태로 간다면 전국 1□호의 불하는 며칠이 걸릴 예정이냐 등 정부의 불하방법의 졸렬성을 지적 질문한 데, 대하여 白관재청장은 “경매제를 하지 말라는 법도 없으며 경매제로 하라는 법도 없으니 국민경제의 안정에 공헌이 있으리라고 본 까닭에 채택한 것이다. 모리배의 助長이란 경매에만 있는 것이 아니며 통화가 수축되었다고 해서 경매를 중지할 의사는 없다. 관사는 총무처에서 주관하며 민심혼란이란 주택문제뿐이 아니라 경영에도 관련이 있으니 단독으로 답변치 못하겠다”고 경매제의 합법성을 주장.
이어서 李敎善·金宗順·梁又正·趙光燮·梁在厦의원으로부터도 민심혼란문제 및 애국지사의 유가족이 혜택을 입지 못한 점 등을 들어 질문하였는데, 백청장은 “민심혼란이란 근거없는 말이니 불하를 끝마쳐 놓고 보자”고 응답.
이어서 全총무처장의 관사불하에 관한 이유설명과 申법제처장의 경매제 및 관사불하의 합법성에 대한 법적 견해가 있은 다음 질문을 중지하였는데 귀속재정문제에 관하여는 24일 계속 토의키로 하고 하오 1시 산회하였다.

 

 

제목 제7회 4차 국회본회의, 귀속재산 경매에 대해 질의 문답
게재지명 자유신문
게재일자 1950년 06월 24일
날짜 1950년 06월 23일

해방 후 그 귀추가 이모저모로 주목되어 오던 수많은 귀속재산 불하문제도 돌연 정부방침에 의해 22일부터 우선 서울시 충무로 상가를 우선으로 하여 경매를 실시하게 되었는데 처음부터 그 경매제 실시를 반대하여 동 상가는 철시를 단행하는 등 적지 않은 사회 파문을 던지고 있어 동 경매제가 유종의 미를 거두게 될는지가 벌써부터 의문시되고 있거니와 작 23일 국회 제4차 회의에서는 귀속재산경매에 관한 긴급 질문건을 상정코 동 처사는 위법행위라고 정부를 논란하는 한편 동 석상에 참석한 白관재청장·申법제처장·全총무처장과 각 의원 간에 다음과 같은 격렬한 질의응답전이 있었다.
◊ 질 의
李鎭洙의원
1. 귀속재산처리법 정신 위배되는 경매제의 부당성
1. 경매를 실시한다면 그 상대가 능력 있는 선의의 연고자와 수요자인가? 모리배인가?
1. 금년 1년 간의 서울지역구만 100억 원 수입예상에 비하여 벌써 공고비 40억 원, 감정비 3억 원 합계 43억 원의 막대한 비용을 낭비면서도 적자예산 보충의 구실로써 경매제도를 고집하는 이유는?
1. 사정가격이 민간가격보다 고등한 원인 여하?
1. 14일 간이라는 짧은 기일로 선의의 연고자로 하여금 보증금 준비에 불가능한 기일을 제정한 것은?
1. 경쟁입찰로 가격을 인상하여 선의의 연고자로 하여금 매입할 수 없으며 사회적 혼란을 야기 시키는 이유 여하?
1. 경매입찰 때 언론계의 입회를 필수조건으로 규정하였다는데 그대로 실시하려는가?
1. 지난 29일 관사 우선 불하에 대한 불법행위
朴晩元의원
1. 외국인이 한인을 앞세우고 귀속재산을 매수하려고 책동하고 있다는데 이에 대한 대책 여하?
2. 부유인의 귀속재산 농단 방지책 여하?
元世勳의원
정치는 불안한 인심을 안정시키는데 그 효과가 있는 것이다. 정부는 고집말고 공연히 민심을 소란케 하는 경매제를 즉시 철회하고 사정가격으로 연고자에게 불하하여라.
梁在厦의원
국가가 번성하려면 양심적인 애국자가 필요하다. 귀속재산 처리법 제15조에 의하여 애국자에게 귀속재산 주택을 알선해준 일이 실지로 얼마나 되는지 밝혀주기를 바란다.
趙光燮의원
모리배 跳梁은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하는 관재총장의 무력을 한탄한다. 그를 방지할 엄연한 법이 존재하지 않은가?
◊ 답 변
백관재청장
1. 귀속재산 처리법에 경매를 하지 말라는 규정은 없는 고로 위법행위라고 생각지 않는다. 다만 행정부에서는 국가재정을 튼튼히 하여 국민경제를 안정시킬 목적으로 경매제를 실시한 것이다.
1. 경매에 있어서 최고 입찰자에게 무턱대고 주는 것이 아니라 그 최고입찰가격을 연고자에게 문의하여 연고자가 응하면 그에게 우선권을 주는 것이다. 그리고 모리배 跳梁문제는 반듯이 경매제 실시에만 따르는 것이 아닐 것이다.
1. 광고비 감정비 문제는 귀속재산처리를 위해서는 불가피한 비용일 것이다.
1. 경매입찰시 언론을 입회시킬 생각이다.
1. 내가 접한 보고에 의하면 충무로 귀속재산 12건에 대한 경매입찰은 전부 완료한 것으로 알고 있다.
1. 경매실시로 아직 인심의 불안, 사회의 혼란을 일으킨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1. 화폐가치의 불안정에 따르는 불하 이후의 가격은 화폐가격변동에 따라 징수할 수 있게 법의 규정이 있다.
1. 경매입찰로 모리배를 조장한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1. 법의 시행에 따르는 최소한도 소모는 불가피한 일인 것을 다시 밝힌다.
1. 애국자에 대하여 귀속재산주택을 알선하려고 전력을 다하고 있다. 그러나 현하 주택난이 극심한 실정에 비추어 그 완전 실천에는 애로가 많음을 이해해주기 바란다.
全총무처장
총무처에서 去 29일 관사를 우선 불하한 것은 관사수리에 필요한 재정난으로 공로있는 공무원에게 293호를 불하하여 그들에게 관리를 위임케 한 것이다.
申법제처장
귀속재산 경매는 위법행위라고 생각지 않는다. 원래 귀속재산처리법 제15조에 규정된 우선권 문제는 경매로써 침범 당하지 않을 것이며 다만 그 불하가격에 관한 경매라고 생각하면 무방할 줄 안다. 

 

 

1950년 6월 24일자 경향신문

 23일 국회 제4차본회의는 신의장의 사회로 개회주미 장면대사로 부터 국회로 보내온 멧세지 낭독이 있은 후 임영신의원 도미로 인한 청가신청을 가결한 다음 문제의 귀속재산경매 및 광목공매에 관한 긴급질문, 비료배급에 관한 긴급질문 등을 상정하고 제안자 이진수의원으로 부터 2면 별항과 같은 제안이유와 질문이 계속하여 각의원 질문에 대하여 백남칠 중앙관재청장이 종합적으로 답변하였다.

 다음 신법제처장과 총무처장 등의 답변이 있은 다음 박영출의원의 동의로 질문을 종결하고 명24일 제5차본회의에서 계속 토의하여 기대책을 수립하기로 되었는데 특히 귀재법의 개정안이 제출되었느니만큼 기 기추가 주목된다.


 

 

 제목 국회 쌀문제에 논전 결론에는 미달

신문명 경향신문

1950년 6월 25일 기사

통상초대국회가 개회되자 전국민의 현하긴급한 민생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벽두부터 미가대책 귀속재산경매등 대정부긴급질문 및 기대책을 수립하기 위한 맹렬한 논의가 전개 되고있거니와 작일 국회에서도 계속하여 저간 선정한 식량대책특별위원회의 대책협의경과를 위요하고 대논쟁이 전개되었다.

작입사일 국회제5차본회의는 상오 10시 5분 작일에 계속하여 귀속재산경매 및 광목공매에 관한 대책과 긴급질문비료배급에 관한 긴급질문을 의사일정에 상정하고 신익희의장사회로 개의 하였다먼저 일정순서에 들어가기전 지난 제3차 본회의에서 선정한 식량대책 특별위원회의 대표로 조헌영의원이 입삼일하오 동대책위원회에서 협의한 대책에 관하여 경과보고가 있었는데 기 대책안은 1.미곡에 의한 주류제조를 금지할것 2.칠십만석수출미대신잡곡을 조속히 수입하도록 할것 3.정부보유량곡은 원가로 배급하는 수량을 늘이고 기배급 대상을 확장 할것 4.양곡반입에 자유와 편리를 도모케 할것 등을 보고한바 있었다. 그런데이에 보고사항을 조상에 놓고 위원회의 대책안은 무가치하다는 반대론이 전개되었으며 특히 주농림차관의 하곡추곡 매상은 단행할것이라는데 대하여 조주영의원(경북남해출신)은 "공출과 강제매상을 하여 배급한다며는 농촌 실정에 배치되는 것이라"고 공출제를 반대하는 강경한 장이 있었다. 그런데 결국에 있어서 이용성의원(인천출신)은 대책위원회의 안중의 미곡양조를 금지한다는데 보충하여 잡곡까지 포함하여 일절 십월말까지 양조를 금지할 것을 부대하여 처리할것의 동의를 제기하였고 이에 대하여 원세훈의원은 대위회안 사개항목에 첨부하여 미가는 천오백원까지 저락케 할것 삼합배급은 십월말일까지 계속실시할것으로 개의를 제의 한편 소선규의원은 대책위원회의 대책안을 회부하고 동위원회로하여금 구체0을 작성하여 삼일후에 보고할것의 재개의가 제기되어 표결에 붙인 결과 내화요일까지 재차 대책위원회에서 구체안을 제출키로 재개의가 가결통과되었다뒤이어 귀속재산경매대책문제를 상정하고 제안자인 인진수의원의 대책안에 대한 설명이 있은 후결실을 못본채 명입오일 제6차회의에서 계속 토의하기로하고 하오 1시 산회하였다.

 

 


제목 歸財競賣로 質疑戰 國會는 違法政府는 適法固執處理法改正案 今日上程
신문명 동아일보

발행년월일 1950-06-24  

 

 

 

 

 

제목 제8회(제7회임- 잘못 표기됨) 6차 국회 본회의, 북한군의 전면 남침에 대한 6개항 결의
게재지명 동아일보
게재일자 1950년 06월 27일
날짜 1950년 6월 26일

26일 국회에서는 제6차 본회의를 열고 북한괴뢰군의 불법남침에 대한 긴급조치로서 다음과 같은 6개 조항을 결의하고 상오 11시부터 李대통령과 申국방장관, 蔡국무의장, 白내무장관 참석下에 비공개 연석회의로 들어갔는데 이 회의에서는 지금까지의 사태경로와 상황을 자세히 보고하는 동시에 국회 내에 긴급비상대책위원회 설치를 결의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날 통과된 멧세지, 결의안, 구성안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 美 要路에 멧세지
“6월 25일 早朝를 기하여 북한공산당이 남침을 개시하였다. 우리는 금일을 豫期하고 강고한 국군을 創設하여 민주보루를 튼튼히 하는 동시에 세계평화를 희구 노력하고 있음은 귀 국회(또는 대통령)가 이미 잘 아시는 바이다. 귀국이 지금까지 우리 민족의 해방과 대한민국정부의 수립에 절대적인 원조를 주심을 거듭 감사하며 더욱 이러한 민족적 위기에 대하여 감격하는 우리 민족에 대하여 일층 적극적이며 효과적인 원조를 신속히 軍備하여 세계평화의 파괴행위를 미연에 방지하기에 일층의 노력을 아끼지 말기를 바라는 바이다.” 

 

 

제목 제8회(제7회임- 잘못 표기됨) 6차 국회 본회의, 이대통령·행정 각료, 군수뇌부와 함께 긴급연석 비밀회의 개최
게재지명 경제신문
게재일자 1950년 06월 28일
날짜 1950년 6월 26일

[서울발 한국] 38선 전역에 걸친 북한괴뢰군의 불법남침의 비상사태에 대처하기 위하여 국회에서는 26일 상오 11시 10분부터 徐範錫의원 동의로 李대통령을 비롯한 국방, 내무 양부 장관과 군수뇌부의 열석을 요청하고 긴급연석 비밀회의를 개최하였는데, 동 석상에서 李대통령은 사태는 급속도 수습되고 있다고 말하는 동시에 擧國一致로 비상사태 수습에 총매진할 것을 강조하였다고 한다. 동 비밀회의는 하오 1시에 일시 휴회하고 하오 2시부터 속개되었다.
▹ 대통령, 국방부 방문
[서울발 한국] 李대통령 부처는 26일 하오 2시 30분경 高비서를 대동하고 경무대를 출발, 국방부장관, 張차관, 주한미군사고문단 라이스 참모장, 張정보국장, 金참모부장대리 등 참석下 약 1시간 반에 亘하여 국방부장관실에서 要談하였다 한다. 그리고 요담이 끝난 다음 국방부내 비상준비사령부 및 내무부장관실에 들려 격려의 말을 한 다음 하오 4시경 歸邸하였다.

 

 

 

제목 국회 원내교섭단체 명부 제출 현황
게재지명 서울신문
게재일자 1950년 06월 26일
날짜 1950년 6월 26일

지난 국회 제2차 본회의서는 院內 단체교섭회 명부를 26일까지 제출할 것을 의결하고 각파의 교섭단체 구성과 동시에 세력 확장에 맹렬한 공작전을 전개하여 왔거니와 금 26일 명부 제출일에 당하여 각파 세력 布陣은 결국 민주국민당, 대한국민당, 민정동지회, 무소속구락부, 국민구락부의 5파로 확정되고 나머지 약간의 의원이 교섭권을 상실한 채 소속없이 잔류하게 된 것이 판명되었다.
각파의 其間 교섭단체 구성과 세력확장 공작의 경위와 결과를 보면 첫째 기성정당인 민주국민당은 □□□□□자로서 23명이었으나 포섭공작의 결과로서 나타난 것이 36명으로 일반이 60명, □□□□□ 하였던 바와 상당한 숫자적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것은 종래 민주국민당의 黨籍에 있던 일부가 무소속을 □□으로 하여 당선된 이후 本黨으로 환원할 것을 반대하였던 것인데 동 의원들이 본당에의 환원을 보류하고 趙憲泳, 郭尙勳, 金光俊 등 제씨 중심의 무소속구락부와 金凡夫, 盧鎰煥, 鄭一亨, □□□, 李範奭 제씨 중심의 국민구락부에 가입한 관계인 것 같다.
다음으로 대한국민당의 최초명부는 24명이었으나 한동안 무소속으로 가담할 것 같이 보이던 吳夏英, 李甲成 제씨는 동당 가입을 □□하여 의원 43명으로 확대되었는데, 동당의 여·야당 양동작전은 앞으로 동요할 무소속 포섭에 초집중될 것이다. 민정동지회는 순수 □□계 출신으로 한동안 국민동지회와 합류하여 나갈 것 같이 전하여졌으나 독자적 입장으로 발족할 것을 표방하여 그 의원수는 22명인데 앞으로 3명이 더 증가될 것 같이 보인다.
그 다음으로 국회세력 분석에 중대□□으로서 주목되어 오던 무소속구락부는 趙憲泳, 金光俊, 郭尙勳, 金東成 제씨 중심의 일파와 安在鴻, 趙素昻, 元世勳씨 등 세칭 중간파 중심의 일파로서 분립되어, 安在鴻· 趙素昻 중심파에서는 전기 趙憲泳 중심의 일파와 □□□ 합류할 것을 예상하였으나 타협이 성립되지 못하여 趙憲泳·郭尙勳 중심세력은 명부를 무소속으로 하고 45명 정도로 추산되며 잔여의 무소속의원 세칭 무소속동지회는 국민동지회계와 24일 대동단결의 정권하 무조건 합류할 것에 합의를 얻어 44인의 당명 발인 서명을 보았는데, 앞으로 50명 정도의 추가□□세를 보이고 있다. 그리고 趙素昻·安在鴻·元世勳씨 등 세칭 중간파세력은 □□□□□ 없는 고립상태에 놓여 있어 과거 일민구락부에 소속하였던 4명의 태도는 아직 명백치 못하고 있다.□□□(이하 1단 누락)  


 

 

제목 국회 李鍾滎의원 등 식량긴급조치법을 발의
게재지명 경제신문
게재일자 1950년 06월 27일
날짜 1950년 6월 26일

[서울발 한국] 국회 李鍾滎의원(국민) 외 14의원은 긴박한 식량문제에 대처하여 來 10월까지 국민 식량을 확보할 것을 목적으로 한 식량긴급조치법 全文 18조 부칙을 국회에 제안하였는데 其 주요골자는 다음과 같다.
1. 何人을 막론하고 양곡을 보유한 자는 其 보유미를 정부에 보고케 하고 其中 3개월간 1인 3合의 비례로 계산한 수량을 초과한 分은 법에 의하여 양곡조합에 양도할 것.
2. 洞里 100세대 이상에는 양곡조합을 둔다.
3. 何人 막론하고 경찰관의 입회 하에는 양곡의 조사를 행할 수 있다.
4. 허가 이외의 주류제조를 금지한다.
5. 양곡 밀수는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제목 이승만 대통령, 긴급 국무회의를 소집
게재지명 동아일보
게재일자 1950년 06월 26일
날짜 1950년 6월 25일

비상사태에 대비키 위하여 李대통령은 25일 早朝부터 일요일인데도 불구하고 긴급 국무회의를 경무대에 소집, 하오까지 多시간에 亘하여 협의한 바 있었다 한다.

 

 

 

제목 국회 비공개회의, 무기구입대책위원회 구성 결의
게재지명 민주신보
게재일자 1950년 06월 28일
날짜 1950년 6월 26일

[서울 27일발 합동] 26일 하오 2시부터 속개된 국회 비공개회의에서는 白내무장관이 출석하여 비상사태에 대비하는 치안의 만전태세를 기하고 있다는 보고가 있었다고 하며 이어 白象奎의원으로부터 북한괴뢰집단의 불법 남침을 분쇄하는 동시에 태평양 방공전선을 사수하고 미국 및 기타 국가로부터 구입하기 위하여 정부와 적극 협력하는 무기구입대책위원회를 구성하자는 긴급동의가 있어 이를 만장일치로 가결한 후 하오 4시 산회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이날 무기구입대책위원으로 선출된 10명은 다음과 같다.
白象奎 池靑天 愼鏞頊 鄭一亨 金雄鎭 延秉昊 尹在根 李敎善 崔國鉉 李肯鍾 

 

 

 

제목 국회, 비상위원을 선출하여 긴급조치를 강구키로 함
게재지명 민주신보
게재일자 1950년 07월 07일
날짜 1950년 7월 4일

대구출신 국회의원 趙瓊奎씨가 전하는 바에 의하면 국가 초비상사태에 대비하여 국회에서는 비상위원 10명을 선출하여 정부의 정치공작 및 외교·군사·식량·정보 등 분야에 亘한 강력한 긴급조치를 추진하게 되었다 하며, 나머지 국회의원은 희망에 따라 각지에 순회하여 민심수습 등 국민의식을 고취하는 답사행각을 실시하고 있다 한다. 그런데 국회 비상위원은 다음과 같다.
申翼熙 張澤相 曺奉岩 鄭一亨 池大亨 金東成 李宗鉉 鄭憲權 黃聖秀 

 

 

 

제목 국회 긴급회의, 미국의 조치를 전적으로 지지하는 결의안을 채택 발송
게재지명 부산일보
게재일자 1950년 07월 08일
날짜 1950년 7월 4일

[워싱턴 7일발 USIS] 북한공산침략에 대하여 원조 諸국가의 군대와 어깨를 맞추어 전투할 것을 맹서하는 한국 국회의 결의안 전문이 당지에서 접수되었다.
7월 4일 국회긴급회의에서 채택된 동 결의안은 다음과 같다.
“국련 안보이사회가 한국의 국토로부터 침략자를 축출해내기 위하여 대한민국을 원조할 결의안을 통과시켰으며, 미국과 기타 UN 가입 諸국가가 안보의 이 결의안을 수행키 위하여 군대를 파견하고 있음에 際하여, 본 국회는 이를 우방국가와 어깨를 같이 하여 싸우기 위하여 인적, 물적 全 자원을 동원하려는 本府의 조치를 전적으로 지지할 것을 결의함.” 

 

 

 

제목 이승만 대통령, 전쟁 경과에 대해 국민에게 특별방송
게재지명 민주신보
게재일자 1950년 07월 06일
날짜 1950년 7월 4일

공산군이 서울을 침입하게 된 것을 생각할수록 통분해서 차라리 죽어서 모르고 싶습니다. 다만 잠시라도 이 亂逆輩들이 우리 수도에 들어오기에 이른 것은 우리의 씻을 수 없는 수욕입니다. 내 한 몸이 국군의 앞에 서서 죽음으로서 싸워야 옳을 것인데 피하여 나온 것은 구차히 목숨을 위해서 한 것이 결코 아니오 첫째는 성중에 있으면 軍警전투상에 도리어 곤란을 당하겠다는 것이 한 가지 이유요. 또는 내가 나와 앉아서 세계에 호소해서 공론이 일어나야 할 것을 각오한 것이 두번째의 이유인 것입니다.
우리 국군 각처 해면과 육지에서 엄연히 싸워서 적은 수효로 많은 무리를 대적하며 부족한 무장으로 우수한 병기를 항거에서 조금도 退縮이 없었으나 오직 의정부 방면에는 탱크와 장총을 막을 것이 없어서 국군이 어찌할 수 없이 퇴보한 것인데 공포해서 곤란상태를 이룬 것이 조금도 없었고 整濟히 물러간 것입니다. 적군이 입성한 후에도 군경과 청년단이 시내 각처에서 결사 투쟁한 것은 더구나 감복치 않을 수 없으며, 지금에도 계속 사수하여 쉬지 않고 싸우는 고로 연합군이 더욱 흥분해서 하루바삐 서울을 회복하기로 군기군물과 육해공군이 시시로 모여들어 수원을 향하여 올라가는 중이니, 우리 반도강산에 공산반역배들의 운명이 얼마 남지 않았으며 소련의 강폭 무도한 세력이 不久 뭇 소리니 히틀러와 같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한강철교를 끊은 것은 적군이 남방으로 오기에 장해를 만들자는 계획인데, 군기군물을 상당히 준비한 후는 몇 시 안에 다시 고쳐서 쓸 수 있도록 만든 것인데, 적군이 항공에 불화한 일기를 이용해서 대포와 장총으로 한강남변에 국군이 가까이 가지 못하게 만들어 놓고 뗏목과 선박으로 탱크를 실어서 한강상류에서 물결을 따라 내려와서 건너온 것인데, 국군이 격렬히 싸워서 영등포와 김포와 시흥, 수원 각지에 오늘까지 완전히 찍혀 있으며, 동시에 미육군이 경성 이북으로 비행장과 기타 군용기지를 연속 폭격하여 소련비행기를 파쇄시킨 것이 昨日까지 합 100여 대에 달하였다 하며, 오늘날에 얼마나 파쇄하였는지는 아직 보고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 정부는 다 임시주재소에 모여서 시행할 수 있는 정무는 시행하고 있으며 각 사회와 애국단체지도자들은 각처에서 전재민구호와 민심정돈 시키는 등 사업에 주야근무하고 있으며, 일반민중은 전란지역과 전재민 피난자 외에는 조금도 요동이 없고 각각 직업을 如常히 지켜 나가는 고로 내외국인 이목에 가장 담대하고 평온한 상태를 보이게 되니 다행입니다. 우리 마음이 지금부터는 민주전쟁의 내란정도를 지나고 세계전쟁으로 되어서 오늘까지 36나라가 가담되는 연합국 총 사령장관인 맥아더 장군이 지휘하고 그 부하로는 전에 우리나라의 군정장관으로 있든 우리 친우인 딘소장이 와서 처치소장과 합동하여 작전계획을 준비하는 중이니 준비가 된 후는 경성으로 올라갈 것입니다.
연합군이 지나가는 곳이나 주둔하고 있는데서나 우리 동포들이 극히 환영하는 뜻을 표시하여 국기를 날려 만세를 불러 친선의 성의를 보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만국적십자 총본부의 대표로 동경에 있는 빼리 박사가 금일에 와서 우리와 협의하고 즉시 일본으로 회환하였는데, 이번 전쟁에 부상한자들과 전재민들을 위하여 각종 약품과 의사와 간호부와 그 외에 식물과 의복 등 물품이 계속 들어올 것이니, 악독한 반역분자들의 손에 피해를 당한 남녀는 속절없이 악화를 당했지마는 난리중에 부상을 하고 병원에서 吨吟하거나 가옥, 의복, 식물을 다 빼앗기고 죽게 된 동포들은 세계의 모든 동정한 나라들의 자선심으로 보내는 구제로 많은 도움을 받을 것입니다.
40년 동안 우리가 남에게 원조를 주지도 못하고 남의 원조를 받지도 못하고 지내다가 지금에 처음으로 대대적 자선물자를 받게 된 것은 크게 위로도 되며 깊이 감사하는 바입니다. 소련은 전부터 이 전쟁을 준비했고 미국은 평화를 주지하는 중에 졸지에 이 전쟁은 시작하니 처음은 어찌할 수 없었으나, 지금은 전적으로 민심이 일어나서 싸워야 할 것을 결정하였으니 군기, 군물, 군인을 운반하기에도 시간이 걸리고 또 준비하기에도 약간 시간이 필요함으로 처음의 곤란이 없지 아니하나 미국은 싸움을 한 번 작정하면 끝내고 말 것입니다.
우리 문제는 이 중에서 다 해결되고 말 것이니 이것이 남북통일이 완수될 시작입니다. 우리가 다 아는 바와 같이 민주주의와 공산주의가 전쟁으로만 결말짓고 말 것이니 지금 그 전쟁이 시작되고 민주주의의 성공은 이미 다 판단된 것이며, 무죄한 동포들이 亂逆輩의 손에 피해당하는 것과 모든 곤란을 당하는 것이지마는 우리가 서로 각각 인내하며 서로 구제하여 한 마음 한 뜻으로 분투하여 나갈 것이니 그대로 절실히 양해하고 끝까지 붙들어 나갈 것을 부탁합니다. 

 

 

 

제목 신익희 국회의장, 부산에서 시국에 대한 담화를 발표
게재지명 민주신보
게재일자 1950년 07월 12일
날짜 1950년 7월 11일

지금 숨가쁜 이 난국을 돌파하면 내일의 민주발전에의 평야가 터일 이 마당에 마침내 來釜中인 국회의장 申翼熙씨는 11일 상오 10시 梁경남도지사를 방문하고 요담한 바 있었는데, 이날 申의장은 늠름한 체구와 보다 더 젊어 보이면서 긴장한 얼굴로 기자단과 회견하고 국민 총동원하여 魔의 38선을 부시고 국토통일을 할 때는 왔다고 다음과 같이 시국에 대하여 말하였다.
“괴뢰군의 남침은 소련제국주의의 실제행동으로 金日成 집단을 앞에 세우고 뒤에 감시하고 물자를 공급한데 있다. 다시 말하자면 인류의 공통의 적인 소련공산주의가 민주주의 국가로 지금 자라나려는 우리 대한민국을 대상으로 행동을 취한 것이다. 이 소련공산주의 전체와 중공이 아직 어린 대한민국의 역량 부족을 奇貨로 이 같은 야만적인 불법행동으로 인하여 우리의 국군장병과 경찰이 數萬이 고통을 당하고 또 희생된 것을 생각할 때, 국민대표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럽고 미안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3천만 민족이 염원하던 38선이 이제 터지고 우리 국토를 통일할 정의의 국제의 칼은 악마를 쳐부시기로 UN안보로 통과되어 47개국이 우리를 원조하기로 된 것이다. 그래서 制空權·制海權을 장악하고 유력한 육군과 연합군은 惡魔的 匪를 소탕하게 결정적인 시기에 도달한 것이다. 여기에 국민은 국가에 동원 모든 시책을 지지하고 복종하여야 할 것인 즉 국회에서는 비상위원회를 선출하여 정치공작, 군사본위, 민심안정에 노력하기로 결정하였다. 의장인 나도 일선에서 이 의무를 다할까 하여 來釜한 것이며 국내외 정세를 국민에게 그대로 전할 것이니 국민은 총동원 결의로 一層 분투하여 내일의 평화를 고대하기를 요망한다.” 
 



제목 이승만 대통령, 38도선 북진하여 한국을 통일할 것이라고 기자회견
게재지명 경제신문
게재일자 1950년 07월 15일
날짜 1950년 7월 14일

[한국某기지에서 UP특파원 제임스발 한국] 이승만 대통령은 14일 기자와 회견하고 今般 전투를 이용하여 남북으로 분단된 한국을 통일할 것이라고 다음과 같이 언명하였다.
“이번 전쟁은 한국 민족으로 하여금 비상한 전쟁인데 이 기회를 이용하여 한국의 통일을 실현코자 한다. 북한이 한국을 침략함으로서 이미 38도선의 분할선을 파괴하고 말았다. 그럼으로 우리들은 남한의 회복만으로서는 만족하지 않을 것이며 全 한국을 회복할 것이다. 이 전쟁은 단순한 한국의 내전이 아니라 국제공산주의와 국가주의자 간의 전쟁인 것이며 소련은 한국이 日就月進하여 성장하고 있는 것을 보고 이 기회를 逸失하면 其 야망을 위한 기회가 없다는 의도 하에 침략전쟁을 개시한 것이다.” 
 

 

 

제목 이승만 대통령, 계엄법 실시와 징발 징용 등에 대해 諭示를 발표
게재지명 경제신문
게재일자 1950년 07월 19일
날짜 1950년 7월 18일

李대통령은 전시계엄법 실시에 際하여 전시에 계엄령을 발포하는 것은 군인의 세력을 늘려서 평민을 속박하자는 것이 아니고 군인과 평민을 동일히 단속해서 군사행동에 지장이 없기를 기한 것이니 군경은 계엄령을 바로 실시해서 국민의 생명 재산을 보호할 것이며, 그 책임은 관계 장병들에 있으니 이 직책에 있는 군인이나 경찰이나 또는 정부소속 공무원들이 권한을 빙자해서 범법 作弊 행동이 있을 때에는 군법으로 즉석에서 징벌하겠으니 군경민은 조심해서 후회가 없도록 할 것이며, 징벌징용에는 징벌법이 없느니 만큼 계엄사령관이나 계엄사령관이 임명한 징용관이 徵發狀을 발행해서 합법적인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고 昨 18일 다음 諭示를 발표하였다.
▹ 유시내용
“전시에 계엄령을 발포하는 게 온 군인과 평민을 동일하게 단속해서 군사행동에 지장이 없게 하자는 것이니 군인이 의미를 자세를 알지 못하고 군인의 세력을 늘려서 평민을 속박하자는 줄로 아는 弊가 있으니, 이러한 오해로 인연해서 민간인만 폐단이 될 뿐 아니라 군사행동에까지라도 손실이 적지 않는 게 우려되는 바이다.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계엄령이 민간에 폐단이 된다는 것만 생각한다는 것은 옳지 않은 생각이니, 일반민중과 군경은 이를 자세히 알고 계엄령의 본의를 지켜주어야 될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계엄령을 바로 실시해서 국민의 생명과 자유를 보호하자는 정신을 확실히 알게 함에는 그 책임이 전혀 관계 장병들에게 달렸으니, 그 장병들이 그 직책을 다함으로서 군인이나 경찰이나 또는 정부소속 공무원들이 권한을 빙자하거나 □□를 의지하고 범법 작폐 행동이 있을 때에는 즉시 잡아서 군법으로 다스려 즉석에 징벌시킴으로 군령과 군법이 세져 良軍들을 보호해야만 치안과 국방상 많은 효과를 나타나게 한다. 平時에는 □□할 절도사범이나 강도 같은 것이 국가에 중대한 위험성을 끼칠 것이 아니므로 벌칙이 비교적 輕하므로 판결이 다소 지체가 되어도 많은 폐단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전시에는 이런 범죄로 인연해서 막대한 위험성을 가지게 되는 고로 평시에 사소한 죄목으로도 전시에 들어서는 생명을 잃을 수가 종종 있는 것이니, 군경이나 정부 관리들이나 국민들은 보다 조심해서 후회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특별히 헌병장병들에게 특히 주의하도록 명령하는 바는 어디든지 범행□이 있을 것을 몰라서 알지 못하던지 또 알면서도 잡지 않았다든지 하는 足跡이 탄로될 때에는 그 □城으로서 그 시간에 근무한 사람이 그 책임을 담당할 것이오, 그것도 못하게 될 때에는 그 상관이 그 책임을 지게 될 것이므로 절대 조심해서 계엄령의 근본정신대로 준행해야만 될 것이다. 또 계엄법에 지정된 계엄지역에의 행정사무는 그 소관된 각 부처장관이 이를 주관하되, 계엄사령관의 지도감독을 받아서 군사행동에 조금이라고 지체없이 敏速하게 행하여야 하며, 군수품의 징발징용에 관해서는 아직 징발법 제정이 되지 않았으므로 계엄사령관이나 □계엄사령관이 임명한 징발 또는 징용관이 징용비용장을 발행하여 피징발 징용자에게 이를 교부하고 징발 징용하되, 징발 전 물품에 대한 보상 내용까지라도 명시하여 합법적 조치를 취하여야 할 것이며, 그렇지 않고 징발이나 징용이라는 명의만 빌어서 무단히 빼앗아 가는 등 폐단은 일절 없어야 할 것이니, 만일 이때 위반된 행위가 있을 때에는 엄벌에 처할 것이다.


 

 

제목 신익희 국회의장, 대구에서 국회의원 긴급 소집
게재지명 부산일보
게재일자 1950년 07월 22일
날짜 1950년 7월 21일

지난 21일 경상남도 공보과에서 발표하는 바에 의하면 그 동안 휴가 귀향 중에 있는 국회의원들은 申국회의장의 명령으로 대구에서 긴급 소집키로 되었는바, 재향 諸의원들은 한시 빨리 집합하도록 요망하고 있다 한다. 
 

 

 

제목 이승만 대통령, 부패일소에 대한 담화를 발표
게재지명 민주신보
게재일자 1950년 07월 26일
날짜 1950년 7월 22일

22일 李대통령은 이번 전쟁을 기회로 해서 정부 및 전 국민은 부패한 습관을 淸刷一新하여야 한다는 특별 담화를 발표하였다.
“부패한 사람으로 신선한 나라를 만들지 못한다는 것은 중복 설명한 바이다. 군정 3년에 정부의 부패는 더 말할 수 없이 된 것을 교정하기 위해서 백방으로 노력해보았으나 충분히 청결하지 못한 것은 누구나 다 유감으로 아는 바이다. 이번 전쟁을 爲始해서 전 국민의 새 정신을 각성하여 정부나 민간이 부패한 습관을 청쇄일신해서 다시는 뇌물이나 挾雜이나 사기범포 등 모든 폐습을 전시군법으로 평시에 尋常한 죄로 보던 것을 이때는 군죄로 다스려서 여간 범죄이라도 극형에 처할 것이니, 정부관공리 이하 모든 사람은 지위의 고저와 죄의 경중을 막론하고 용서 없이 법으로 시행할 것이니 극히 조심해서 후회가 없기를 부탁하는 바이다.
국회의원은 특권으로 여간 중대한 일이 있어서도 정부에서 방임한 적이 있었으나 지금부터는 이렇게 아니될 것이니 조심하기 바란다. 군수물자나 경제원조물자나 적십자사와 기타 구휼물품으로 들어오는 것이 하나이라도 闇市에 나가서 팔리게 되는 것은 암상인이 어디서나 온 것을 알아서 보고하면 벌을 당하지 않을 것이로되 사서 팔다가 잡히면 그 사온 □ 從來를 알아서 그 증거를 분명치 못하면 도적질한 것으로 잡혀서 중벌을 당할 것이다. 그 물건을 도적질하던지 사사로하던지 해서 판 사람은 물론 모든 연루자까지 다해서 극한 죄로 처치할 것이다.
약품이나 식물·의복 등 필수품은 외국에서 구제로서 들어온 것을 구제 받을 사람에게 주어서 쓰지 않고 필요치 않은 사람이 받아서 쓰거나 남을 주거나 한 것이 들어나면 이것도 군벌로 처벌할 것이다. 특별히 군인이나 경찰관 중에서 이런 죄를 범한 자가 있으면 더욱 중하게 다스릴 것이니 군경이 또한 이런데 주의해서 罪犯이 하나라도 벗어날 수 없게 만들어야 할 것이고, 무슨 물자든지 도적질하거나 불법으로 어떻게 사리를 도모하는 것을 적발 보고해서 증명하는 자가 있으면 그 물자의 반이나 그 가격의 반을 상품으로 줄 것이다. 비록 난잡 중이로되 감찰위원과 審計院에서 극히 주의해서 些毫라도 불미한 일이 없도록 직책을 다하여야 할 것이다.”

 

 

 

제목 국회, 7월27일 대구에서 임시국회를 개최하기로 결정
게재지명 부산일보
게재일자 1950년 07월 25일
날짜 1950년 7월 23일

[부산 24일발 중앙사 합동] 국회는 27일 임시수도 대구에서 임시국회를 열고 李대통령이 발한 전국 총동원법의 사후 승인과 포로 취급을 토의하기로 되었다. 국회대변인은 23일 “이번 임시국회에는 전 의원 210명 중 서울에서 온 158명이 출석할 예정이다”고 언명하였다. 한편 괴뢰군에 억류당한 의원은 10명이며, 기타 3명은 살해되었는지 행방불명이다. 
 

 

 

제목 이승만대통령, 제8회 임시국회 개회에 치사
게재지명 경제신문
게재일자 1950년 07월 28일
날짜 1950년 7월 27일

▹ 이대통령 각하 치사
“무쵸 대사와 UN위원단 諸氏 그리고 국회의원 여러분과 오늘 이 자리에 모여 임시국회를 열게됨은 많은 감상과 소감이 없지 않습니다. 난리 중에 국회가 못 열리는 예가 적지 않은 것은 우리가 보아 잘 아는 바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들은 굳은 터전에서 그러한 다른 나라의 예를 떠나 다행한 국사를 이루게 됨은 국가 민족이 합심합력과 위로를 받고 있다는 증좌인 것입니다.
지금까지 보면 공산당과 민주진영이 서로 그 뜻이 한번도 맞은 적이 없다는 것은 지내온 역사가 설명하는 바입니다. 그러나 항상 민주진영이 이를 양보함으로써 인류 평화에 공헌을 쌓은 것이 오늘까지 지내온 자체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소련과 그의 위성국가는 항상 싸움이나 트집을 잡아 국가의 독립과 자유를 짓밟음으로서 국가를 망치고 인류를 좀먹었던 이 상습 수단이었던 것입니다. 북한의 예만 보려 해도 그들은 그 앞잡이로써 괴뢰 행세를 해오다가 이제는 그 운명을 세계만방이 잘 알만큼 낭떠러지에 빠트리고 만 것입니다. 그러나 평화를 주장하고 자유를 갈망하는 나라는 그들의 그 악독한 행세를 무찌르기 위해 착한 싸움을 계속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우리 조국도 지금 적색의 침입을 물리치기 위해 일어섰고 세계우방이 또 여기에 일어선 것입니다. 지금 세계대세를 본다면 절대 우세한 민주진영의 앞날을 위하여 일어섰으니 우리의 맘 같던 남북통일 문제는 이제야 좋은 기회를 얻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 통일이 쉽사리 된다느니 보다는 고난도 적지 않습니다. 여기에 따라 우리 국군은 힘과 목숨을 바쳐 자기의 생명을 희생해서까지 우리나라의 평화를 요구하는 것이니 얼마나 거룩한 뜻입니까? 그 뿐만 아니라 UN연합군도 역시 그러한 대전에서도 피를 흘리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그 목적 과업이 公道된 이념에 생사를 같이 하는 것이니 국민은 합력합심해서 여기에 총력을 기울여야만 될 것입니다. 끝으로 국회의원 여러분에 한 말씀하면은 과거 평화 시에는 정부를 책망도 하고 시비도 한 것입니다마는, 오늘의 당면한 국난타개를 기해서는 하□□□ 권리를 가져온다는 세력을 기울여주기 바랍니다. 거듭 말하거니와 오늘 든든한 이 터전에서 국회를 정식 개회한 것을 치사하는 바입니다

 

 

제목 제8회 임시국회, 대구에서 개막
게재지명 경제신문
게재일자 1950년 07월 28일
날짜 1950년 7월 27일

복잡 다난한 정세 아래 국가 민족의 大願을 달성키 위한 제8회 임시국회는 지난 27일 오전 10시 40분 대구 임시의사당에서 역사적인 개막을 보았다. 돌이켜 생각하면 人類共敵의 탈을 쓴 북한 적색괴뢰집단이 불법 남침을 감행한지 날수로 만 32일을 맞이한 오늘, 용감무쌍한 우리 국군과 연합군의 총공격 작전으로 이제야 비로소 死角圈內에 든 적의 최후 운명을 바라보며 열린 전시국회인 만큼, 3,000만 백의민족 視聽은 여기에 총집중되고도 남음이 있는 것이다.
이날의 국회는 130명의 국회의원이 參集, 정부로서는 李대통령과 전 각료, 내외 사신으로는 무쵸 대사 이하 내외 귀빈 다수가 임석된 자리에서 긴장한 공기를 뚫고 예정시간보다는 조금 늦게 10시 40분 사무총장 이철원씨의 엄숙한 개회선언이 있었다. 식순으로 들어가 애국가 봉창, 國旗向拜가 끝나자 申翼熙 의장의 별항과 같은 式辭, 이대통령의 致辭 그리고 만세삼창이 있은 후, 11시 반경 제8회 임시국회 개회식을 마쳤는데, 오후 2시부터는 국회의원만이 모여 비공식 비공개 비밀회의가 속행된 것이다.
▹ 신익희 국회의장 개회사
“오늘 우리 국회 제8회 임시국회를 열게됨에 즈음하여 두어 마디 말씀으로 개회의 식사를 드리기로 합니다. 나는 爲先 전국민을 대표하여 우리나라의 대불행이요 우리 민족의 大겁운인 今次 사변으로 인하여 충성 용감하게 전사한 여러 국군장병과 경찰동지들의 충렬한 영혼 앞에 삼가 애도의 뜻을 드리고, 수많은 무고한 동포 동지들의 생명 재산을 희생당하고 流離顚배하는데 대하여 또한 무한한 비통, 완惜과 죄송, 불안을 느끼며 더욱이 세계평화와 인류자유를 위하여 우리 한국을 원조하다가 신성하고 고귀한 희생으로 사상당한 여러 우리 연합군 전우장병 諸位에게 대하여 深切한 애통과 숭고한 조의를 아울러 표하여 드립니다.
세계의 강도이며 인류의 公敵인 소련의 공산주의, 이 적색제국주의는 禍心을 포장하고 凶謀를 적선하다가, 필경은 북한의 괴뢰반역도배들을 사주 지휘하여 우리 대한민국을 감히 침범한 것이 지난 6월 25일입니다. ‘德不孤必有’라는 고전의 □□이거니와, 우리 민주국가인 대한민국의 독립을 승인 지지한 국제연합은 안보이사회 결의로써 우리 한국을 원조키로 작정한 이래 금일까지 미·영·프·호·네·벨 등 52개국이 우리를 원조케 됨은 세계 유사 이래 처음 보는 위대한 사실입니다. 북미합중국을 비롯한 전세계 민주국가는 모두 우리 대한민국의 전우입니다.
적군공비가 제아무리 凶暴猖獗하다 하여도 정의 보검 아래에는 반드시 섬멸될 것입니다. □□된 지방을 극복하고 우리의 국도 서울을 탈환할 뿐만 아니라 우리 전 민족의 宿願인 38선의 소멸과 우리 국토의 완전통일까지가 指日可期의 사실입니다. 최후의 승리는 우리의 것입니다. 민주주의의 승리는 보장되고 있습니다. 天助自助의 원칙대로 우리의 군대·경찰·국민들의 일치단결의 노력과 국회와 정부와의 완전한 협조로만이 전 세계 민주국가들의 도움을 □□ 곳곳에 받아서 우리 국가 민족의 대사업을 성취케 할 것입니다. 사변으로 인한 희생과 고통은 불행이지마는 민족의 大願을 완수하고 국가의 大魂을 성취함은 幸인 것입니다. 이것이 불행 중 다행이며 또한 전화위복인 것입니다.
우리 국회는 국도를 失守하고 □□□ 播遷한 이래 이번에 처음으로 정식 개회를 하느니 만큼 그 의의가 중대합니다. 정치적으로 보아 민주주의 국가의 기본 초석인 국회의 법정인수 계속적 확보와 국내 국제적으로의 실재적 인식이 절대 긴요 적실한 바이며, 법률적으로 보아 비상시기의 정부 제긴급조치 등의 동의 및 비상 전시입법 등 문제가 긴급 절박한 바입니다. 此次 임시국회 회기는 극히 短促히 함이 가할 것입니다. 단촉한 시간에 多大한 문제를 해결하여 능률을 발휘하고 전시의 비상구호대로 말 많이 말고 일 많이 하도록 우리 의원 同仁 동지 여러분은 노력하십시다.
국가의 흥망과 민족의 사활이 결정되는 이 시간에 제8회 임시국회를 열게 되는 우리 의원동지들은 임무 다대합니다. 우리들은 우리가 대표하는 우리의 주인인 우리 국민 염원의 부탁이 헛되지 않도록 또 그들의 기대가 틀리지 않도록 서로 勉勵하고 서로 노력하여야 될 것입니다.


 

 

제목 국회, 비상경비예산안을 통과
게재지명 대구매일
게재일자 1950년 08월 03일
날짜 1950년 8월 1일

정부에서는 전시하 제2차로 2개월 사이의 사태수습 비상 銃費예산을 수립, 1일 국회에서 공보처 관계 예산이 일부 삭제된 이외 그 전액 43억 4,800만 6,300원의 무수정 통과를 보았다 한다. 통과된 예산 내역을 보면 국방부 所轄에서 예산총액의 7할 이상인 32억 900만 원이며 다음에 사회부 及 보건부 관계가 1할 5분인 6억 4,600만 원을 차지하여 제2차 비상예산면에서는 국방부 관계 이하 예산면에 있어서 피난민 구제 및 일반보건 관계가 중심되고 있다. 그런데 1개월간의 제1차 비상예산은 28억 만 원이었다는데 이번 제2차 예산면의 각부별 예산액을 보면 다음과 같다.
(원단위)
공 보 처 所轄 9,600,000 내 무 부 所轄 371,450,000
국 방 부 所轄 3,209,417,500 사 회 부 所轄 637,200,000
보 건 부 所轄 9,321,800 체 신 부 所轄 61,017,000
예 비 비 50,000,000 총 예 산 액 4,348,006,300 
 

 

 

제목 신익희 국회의장, 국회 휴회에 대해 담화를 발표
게재지명 대구매일
게재일자 1950년 08월 05일
날짜 1950년 8월 3일

[공보처 발표] 7월 27일 역사적인 개회를 본 제8기 국회는 지난 3일부터 임시휴회로 들어갔는데, 申국회의장은 휴회에 際하여 다음과 같은 담화를 발표하였다.
“7월 27일 집회한 제8회 국회는 오늘까지 7차의 본회의를 여는 동안에 8개의 상임위원회를 조직하고, 6·25사태 이래 정부가 긴급조치 한 재정처분과 긴급명령을 승인하고 정부에 전시내각 및 외교진의 강화를 건의하며, UN위원단에게 계속적인 지원을 요청하여 군경연합군에게 감사문을 보내는 등 20여 안건을 처리하였다. 그리고 明 3일부터 14일까지 국회의원들은 착착 분담하여 대구, 부산, 마산 등 방면과 전방 각지로 일선 장병 및 상이군인의 위문 후방 민중의 계몽선전 내지 정치공작 등을 하고, 일선 장병 사기앙양과 전투에 수반 호응하는 후방의 확고한 정신무장을 하여 거족적인 사변수습 태세를 갖추는데 전력을 다하기로 결의하였다. 그러므로 광복절에는 다시 대구 또는 일보 전진할 지역에서 국회를 속개하여 휴회 동안 얻은 성과를 토대로 삼아서 조국통일에 가일층의 능률적이며 효과적인 직능을 발휘하기를 기하는 바이다.”

 

 
제목 신익희 국회의장, 8월15일 국회를 속개하겠다고 기자와 문답
게재지명 대구매일
게재일자 1950년 08월 14일
날짜 1950년 8월 12일

[대구 12일발 대한통신] 대구에 있는 임시국회의 의원실에서 申翼熙 국회의장은 기자와의 단독 회의 석상에서 당면문제에 언급하여 다음과 같은 문답을 교환하였다.
(문) 국회 개회의 시일과 장소는?
(답) 국회는 폐회한 일이 없다. 그럼으로 오는 국회는 국회의 속개인 것인데 8월 15일 대구에서 상오에는 광복절의 축하전을 거행하고 하오에 본 회의를 속개할 것이다.
(문) 일부 설에는 국회의 부산이전과 의원가족의 집단 疏開가 전하여지고 있는데…
(답) 국회는 대구에서 이전한 일이 없다. 의원가족의 소개는 의원들의 자유의사인 것이며 집단 운운은 낭설이다.
(문) 대구방위에 대하여 귀하의 견해는?
(답) 어떠한 일이 있어도 대구만은 사수할 것이다. 적의 패망을 목전에 두고 있으니 만큼 일반은 안심하여도 좋을 것이다.
(문) 앞으로의 전망은?
(답) 우리들의 절대 승리를 확신한다. 일반 국민은 적5열에 주의하고 최선을 다하여 적을 물리쳐야 할 것이다.

 

 

제목 8·15 광복절 기념식이 대구에서 거행
게재지명 대구매일
게재일자 1950년 08월 16일
날짜 1950년 8월 15일

3천만 겨레가 한마음 한 뜻으로 멸공필승의 결의를 가지고 총진군하고 있는 이때 대한민국독립 제2회 기념일인 동시에 제6회 광복절의 기념식은 지난 15일 시내 문화극장에서 李대통령 및 각 장관, 외국사신, UN대표 등 내외귀빈 다수 임석 하에 성대히 거행되었다. 이날 식전 단상에는 태극기와 UN기가 단상 가운데 엄숙히 달리었고 주위에는 가지각색의 만국기가 찬란하게 장식되었다. 식은 정각 10시보다 조금 늦게 10시 20분경 개식사에 이어 국기에 대한 주목과 군악대 奏樂裡에 애국가 봉창으로 시작되었다.
먼저 許대구시장의 “대한민국 독립 제2주년 기념일에 제하여 이곳 대구에서 거족적으로 식전을 거행하게 됨은 무상의 영광으로 생각하는 바이다. 그러나 不俱載天의 仇敵 赤色 제국주의 공산당은 인류생존의 자유를 박탈하려고 발악을 하고 있어 忠節無雙한 국군과 연합군은 정의의 총검을 들고 섬멸작전에 돌입하고 있다”는 식사가 있은 후, 李대통령 각하로부터 “공산도당의 침략을 좌절시키고 만세 복리를 누리는 기초자가 되라’는 별항과 같은 간곡한 기념사가 있은 후, 이어 申국회의장으로부터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기념사가 있은 다음, 축사에 들어가 외국대표로 주한미국 무쵸대사의 “인류의 최고이념인 자유에 대한 이념을 다시 굳게 하고 이제 곧 자유에 굴복한다”는 축사가 있은 다음, UN위원단 대표로 인도 교체대표 곤피이어씨의 축사가 있었다. 이리하여 식은 순조롭게 진행되어 대법원장의 선창으로 만세삼창을 부르고 동 11시 10분 식은 폐회되었다.
▹ 대통령 기념사
“금년 8·15 경축일은 민국독립 제2회 기념일로서 전국민이 다 같이 지켜야 할 이때에 공산도배의 침략으로 말미암아 수도를 떠나서 임시로 천도중이며, 전민족이 난리를 당해서 도로에 방황하며 風雨□령한 이 처지에서 행정부와 입법부와 대구시 주최 하에 百折不屈의 기상으로 이와 같이 기념식을 거행하게 된 것은, 우리가 잠시 당한 위난보다 이날을 많이 중요시한다는 것을 세인에게 표시하는 것임으로 이 경축이 더욱 의미 있고 역사적인 것을 인증하는 바입니다.
우리가 더욱 치하할 것은 공산도배의 침략을 정지시키기 위해서 세계 모든 문명한 나라들이 군사와 물질과 성심으로 참전하고 있어서 날마다 원조가 들어오는 중임으로 비록 처음에는 침략자들에게 약간 승리가 있었다할지라도 얼마 아니 되어서 적군은 다 패망하고 남북이 민국정부 밑에서 통일을 완수할 것이매, 우리가 오늘 잠시 동안 곤란한 경우에 처한 것을 별로 관념할 것이 없는 줄로 아는 것입니다. 공산군의 난리를 만나서 얼마동안 곤욕을 보는 것은 우리뿐만 아니라 거의 세계 모든 나라가 다소간 당하는 것인데 한 나라가 당하는 환난을 위해서 세계 모든 나라가 일제히 일어나서 싸우게 되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비로소 처음 되는 일임으로 우리는 모든 우방에 대해서 무한한 감사의 뜻을 표시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북 공산주의 한인들이 이남민주주의 한인들을 침략한 것이 단순한 내란이라면 우리끼리 싸워서 남이 이기거나 북이 이기거나 국내에서 판결될 것인데, 세계 모든 민주국가들이 우리를 도와서 우리와 같이 싸우는 것은 우리의 싸움이 단순한 내란이 아니고 강한 이웃나라가 뒤에 앉아서 이북괴뢰군을 시켜 이남민주정부를 파괴한 후 무력으로 남북을 통일해서 저의 속국을 만들자는 야심을 가지고 침략을 시작한 까닭에 민주세계에서 이와 같이 公憤을 느끼고 싸우게 된 것입니다. 이 전쟁이 34년 전에만 시작되었어도 UN에서나 미국에서 전적으로 일어나서 이와 같이 싸우지 못했을 것이오, 또 싸우기를 시작했어도 전세계가 이와 같이 응원할 수 없었을 것인데, 지금은 소련이 도처에서 공산당에게 군기와 무장을 주어 모든 나라를 정복시켜서 세계를 한 나라로 만들겠다는 야심을 가지고 민주세계를 교란케 한 결과 각국에서 이 이상 더 참을 수가 없어 만일 한국의 침략을 방임해 두면 모든 나라가 다 침략되리라는 각오로 이와 같이 일어나게 된 것이므로 우리가 우리를 위해서 싸우는 동안에 우방들은 각각 자기나라를 위해서 우리 국군과 어깨를 견주고 싸워나가는 중입니다.
소련 사람들이 세계대세를 살펴서 지금이라도 고개를 숙인다면 우리 강토는 우리가 다 통일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세계대전도 면할 수 있을 것이지만 그렇지 않고 소련이 몽매해서 세계를 대항하려고 한다면 그때에는 우리와 연합군이 더욱 합동단결해서 침략주의를 없애버려야만 난리를 없이하고 세계평화를 회복할 것입니다. 이러한 중에서 우리가 마땅히 할 일도 많고 세계 모든 우방에 대한 부담도 또한 크고 무거운 것입니다. 그럼으로 우리 국민은 오직 한 마음 한 뜻으로 연합국과 합작해서 우리 문제를 단독적으로나 합동적으로나 완전히 해결하도록 진행해야만 될 것입니다. 국가의 독립과 인민의 자유는 내가 늘 말한 바와 같이 남의 예물이나 기부로 되는 일은 전에도 없었고 일 후에도 없을 것입니다. 그 나라와 그 사람들이 싸워서 귀중한 값을 상당히 갚아 논 뒤에야 그것이 참으로 그 나라의 독립이요, 그 민족의 자유인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얻은 것은 가치가 없고 따라서 오랫동안 扶待하지 못하는 법이니 미군이 일본을 타도시키고 우리를 해방한 것은 영구히 잊지 못할 은공이지만, 이 자유의 값을 우리가 갚기 전에는 우리의 것이 아님으로 오늘 이 전란에 있어서 우리가 우리의 독립과 우리의 인권을 보호하고자 귀중한 피를 흘리며 집과 재산을 다 버리고 도로에 방황하며 뼈에 무치는 고생을 달게 받으면서 용맹스럽고 굳센 마음으로 조금도 退縮하지 않고 싸워 나가는 것이니, 이와 같은 혈전과 고난을 충분히 지낸 뒤에야 우리가 과연 값진 독립과 빛나는 자유를 누릴 수 있을 것이며, 그러한 자유와 그 독립만이 비로소 우리의 자손만대에 영원히 유전될 것임으로 오늘 우리가 당하는 이 난리가 마땅히 당할 난리요, 또 우리가 끝까지 싸워서 마땅히 승리하여야 할 싸움인 것이다. 모든 동포들은 이러한 정신과 각오로서 더욱 □로하며 건전한 마음으로 끝까지 분투해서 만세 복리의 기초를 세우는데 큰 공헌이 있는 기초자가 되기를 바라며 이 말로써 기념사를 마칩니다.”
단기 4283년 8월 15일
대통령 李承晩 

 

 

 제목 신익희 국회의장의 8·15 기념사
게재지명 민주신보
게재일자 1950년 08월 16일
날짜 1950년 8월 15일

대구에서 개최된 독립 2주년 기념식 석상에서 申翼熙 국회의장은 요지 다음과 같은 기념사를 하였다.
“오늘은 응당 전국민이 쾌활하고도 희락한 가운데 이날을 맞이하여야 할 것인데, 비통한 이 정서가운데서 우리가 이날을 맞이하게 되었음은 유감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피의 힘으로 분투하고 있는 국군 및 UN군 장병에게 먼저 심심한 감사를 드리는 바이다.
그런데 세상에 만약 이치가 있다면 그것은 정의는 반드시 이긴다는 것일 것이다. 그런데 세계평화를 파괴하려는 공산도당들의 음모가 하루 이틀에 되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 금번 사태에서 명확히 되었다. 그러기에 53개국이 한국이 고립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알리기 위하여 이번에 총 궐기한 것이다. 이들 53개국이 우리와 같이 서서 싸우고 있는 이때에 승리가 누구의 것이라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일일 것이다.
먼저 우리는 독립을 하고서도 한데 뭉치지 못하였던 것을 얼마나 한으로 생각하였던가. 그러나 이번 사변을 계기로 우리의 이 소원이 성취되어 가고 있는 도중에 있는 것이다. 전쟁은 우리의 주관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객관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다. 우리가 제 아무리 내일은 서울로 올라가고 모래는 평양, 글피는 압록강이라고 하고 싶으나 우리가 할 일을 아니하고서는 그리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우리가 할 일은 우리가 하여야 한다. 이번 UN군의 참전은 참으로 우리 민족의 영광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남을 기다리지 말고 우리 힘과 생명을 바쳐서 일에 나아가야 할 것이다. 나는 최후에 대한민국 만세, UN군 만세, 우리의 승리 만세를 부르고 이 기념사를 마치고자 하는 바이다.

 

 

 

제목 이승만 대통령, 위생생활 문제에 대한 담화를 발표
게재지명 대구매일
게재일자 1950년 08월 17일
날짜 1950년 8월 16일

▹ 공보처 발표
李대통령께서는 아무리 공산당의 침략으로 전쟁을 하고 있으나 외국군이 우리를 위해 주둔하고 있으며 또한 일선에서 피흘려 싸우고 있는 이때 우리들은 후방에서 피난민이 왔어 그렇다고 할지나 남의 나라 사람에게 모욕을 받지 않도록 위생생활에 있어서 주거와 가로를 좀더 힘써 깨끗이 청소하여야 한다고 다음과 같은 담화를 발표하였다.
“공산반란으로 국가와 민생에 곤궁한 경우를 당하여 우리가 불결하게 산다는 사소한 문제를 말할 시간도 없을 뿐더러 이런 것을 세인 이목에 차마 문자로 설명하기 너무도 부끄러워서 우리 사람들에게 從容히 알려서 할 수 있는 대로 개량해 볼려고 하였으나, 지금 와서는 우리의 생활상 욕스럽고 수치스러운 內情이 세계 보도에 날로 발표되고 있음으로 부득이 공개로 설명해서 이런 것을 부끄러워하며 놀랍게 생각하는 동포들의 公心을 이르켜서 一邊으로 공산당과 싸우는 동시에 일변으로 수모를 막게 되도록 바라는 바이니, 이런 수모로 인연해서 우리나라에 대한 동정이 빈약하게 될 염려도 없지 않으며 그렇게 됨에 따라 戰勢에 영향되지 말라는 법도 없으니, 이 방면에 대하여 전민족이 힘써서 이러한 수치를 방지할 싸움을 시작해서 계속 분투해야 할 것이다. 통틀어 말하자면 지나간 40년 동안에 한인의 생활과 문화 정도가 어떻게 추락되었는지 국내에서 산 사람은 모르지만 내가 귀국한 이후 이것을 실지로 보고 깊이 한탄한 것이다.
우리 사람들이 어떻게 더럽게 살고 위생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해서 앞뒤에 人糞을 쌓아놓고, 또 어떤 집에는 이와 벼룩과 빈대가 방마다 흩어져 있는 것을 도무지 尋常히 보고 지내오며, 어떤 사람은 남의 점잖은 자리에 앉았다가 몸에서 벼룩과 빈대가 퍼져서 그 집에 전염하게 되었으므로 깨끗이 사는 사람들은 사람을 집안에 들여앉히기를 어렵게 생각할만큼 되고 있으니, 위생 방면으로 보아 우리가 40년 동안 추락한 것을 통탄히 여기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옛날에도 인분으로 비료를 만들게됨으로 변소나 밭 모퉁이에 쌓아두고 지냈으니 그 위에 재를 뿌리던지 잿물 같은 것을 뿌려서 구더기와 벌레와 파리가 모이는 것을 될 수 있는대로 금하며 무엇이나 덮어서 보이지도 않고 냄새도 나지 않도록 한 것인데 내가 귀국하여 처음보매 농부들이 밭 옆에 싯누런 인분을 그냥 퍼서 널어놓아 구더기와 파리가 엉키며 냄새가 나는 것을 그냥 보고 살고 있게 되니 외국인들이 이것을 보고 신문에 글을 써 보내며 말하는 것을 들으면 차마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고 나설 수 없었으나, 그때에는 공산당들이 한인에게 욕되고 흉칙한 것만 세계에 전파해서 미국인들이 한국에서 다 나가도록 계략을 써온 까닭에 심지어는 농부들이 추수를 걷어 드리지 못하게 하고는 한인은 독립해서 추수를 안해도 살수 있다고 하면서 일하지 않는다고 하므로 미국인들이 이것을 듣고 조소하며, 또 인분으로 더러워서 돌아가도록 만들어 한국에서 살다가 돌아간 사람들이 미국인뿐만 아니라 해외에 있던 한인 청년들 중에도 고개를 돌리고 해외로 다시 나간 사람들까지 있었다. 우리가 지금 이것을 교정하기 위해서 집집마다 사람마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부지런히 일해서 이러한 추잡한 것을 다 눈에 보이지 않고 코에 냄새를 맡지 않게 할 수 있으면 우리가 전쟁을 이기는 대로 큰 도움이 되고 그 후에라도 남의 대접을 받고 살수 있으나 이것을 개량할 수 없다면 세계 開明한 나라로 대우를 받을 생각은 다 버려야 할 것이다. 이러한 말을 하는 나로는 통분하고 수욕스러운 것을 금할 수 없어서 집집마다 길목마다 사람마다 붙잡고 大聲吐呼하고 싶다.
이에 따라 사람마다 급급히 생각하고 행해야 된 것을 집안이나 도시나 어디를 물론하고 사람 사는 데는 다 大청결해서 더러운 점이 눈에 보이거나 코에 맛치거나 몸에 다니지 않게 다 없애버리고 살자는 각오를 가지고 관민과 남녀를 막론하고 다같이 더러운 것과 싸워서 그것을 청소해 버리지 못한다면 그 결과로는 외국인이나 우리 군인이나 또는 모든 평민들이 괴질과 악질에 걸려서 죽은 수효가 전쟁으로 총검에 죽은 것보다 더 많을 터이니 이것은 문화적 도의적 언론에 그치는 것뿐 아니오 사람마다 급급히 제 생명을 구하는 동시에 동포의 생명을 위해서 일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전쟁에는 의례히 괴질과 전염병이 발생하지 않은 적이 없었으며 이것이 유행되기 시작되면 빈부귀천을 물론하고 생명이 위태하게 될 것이니 나라의 수치와 민족의 위생은 다 그만두고 각각 제 살길만 단순히 생각하더라도 몸과 거처와 동리와 가정과 도시와 도로 등 전부를 조직적으로 대청소해야만 살수 있을 것을 알아야 할 것이오. 이렇게 하고 사는 사람이라야만 세상 사람들의 대우를 받을 것이다.
이 금수강산을 가지고 지옥처럼 만들어 놓고 산다면 우리는 참으로 세계에 못난 사람으로 지목 받아도 억울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니 이 앞으로는 우리를 위해서 백방으로 세계에 선전해 주는 세계 각국 기자들이 보도하는 말을 번역해서 알려주려고 하나 아무렇게나 살다가 아무렇게나 죽고 말자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 다 일대 각성해서 방방곡곡에 단체를 조직해 가지고 순서적으로 일대 청결운동을 전개하야 시민의 책임과 인류의 책임을 지금부터 시작해서 게으르지 말고 間斷없이 계속해야만 사람다운 생활을 할 수 있고 나아가서는 세계 시민의 자격을 얻을 것이다.”

 

 

 

제목 이승만 대통령, 정부 기관 부산 이전에 따른 성명을 발표
게재지명 대구매일
게재일자 1950년 08월 19일
날짜 1950년 8월 18일

“우리가 북한괴뢰군의 不意의 침략을 받아온 지 50여 일 간 그동안 세계 모든 민주우방의 열렬한 지원과 또 미·영·호 등 연합군이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하여 생명을 내걸고 국군과 합작하여 싸워나가는 동안 전과는 날로 올라가고 있는 중이며, 특히 8월 15일을 전후한 연합군의 猛暴은 북으로 羅津·淸津과 서로 압록강 강변을 위시하여 남북한 각지에 적군이 잠재해 있거나 적의 군사물을 수송 또는 은닉 □치한 목표물에는 하나도 남김없이 모조리 폭탄을 퍼부어서 다시는 재기하기 어려운 만큼 군기나 병력에 일대 손해를 주어오고 있는 중이니, 우리가 군기와 군물이 부족하여 뜻 아니한 후퇴를 해오던 때와 비교해보면 실로 天壤之差가 있어 흔쾌함을 금할 바 없는 것이다.
우리는 임시수도로 정한 대구에서 최후의 한 사람까지 총단결해서 비록 적이 이리로 쳐들어오더라도 우리는 죽음을 각오하고 싸워야 되겠다는 것을 여러번 말하여 왔고 또 그만한 준비를 단단히 하고 앉았던 터이다. 그러나 우리 민주연합의 하는 싸움은 정정당당하게 차리고 나가는데 대하여 적군들은 좀도적처럼 이리저리 새며 들어오는 전술을 쓰는 고로 무엇보담도 인명을 아끼는 우리로서는 차마 가혹한 살육을 할 수 없어 주저하여 오던 터이나 이제와서는 저들의 보급로가 다 끊어져가고 최후의 발악으로 한데 모여 무찔러 들어오려는 자에 대해서는 용서없이 쳐부시지 아니할 수 없었던 것이니 8월 16일 낙동강 서북방의 폭격은 이러한 의미에서 대규모로 벌어졌던 것이요, 이러한 폭격은 적군들이 저희 잘못을 뉘우치고 물러나가는 날까지 계속될 것이다. 이만큼 戰局이 호전되어 가는 이때 최후의 승리가 목첩에 있을 것을 확신하게 된 우리로서는 하루바삐 천도할 준비를 하면서 다시 한번 마음을 돌려 우리나라를 위하여 오늘까지 싸워준 52개 민주우방의 세계평화정책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감사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연합군 사령부로서는 최후의 승리를 위한 총공격의 태세를 갖추어 나가는 중에 대규모의 작전이 가일층 필요하게 된 것이요 그러하기 위하여 대구시는 일반 행정도시 보담도 작전상 필요한 군경이나 교통□□을 완비하는 장소로 정해 가지고 一擧에 대결할 확호한 근본방침을 세우게 되었으므로 직접 작전에 관계없는 모든 행정기구는 천도하기까지 잠시 자리를 부산으로 옮겨달라는 요청이 있게 된 것이다. 만일 이것이 후퇴를 위한 것이라거나 또 적군이 쳐들어오는 것이 두려워서 이러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라면 대통령으로 앉았는 나로서는 그 자리를 내어놓고라도 애국청년 시민들과 함께 싸워서 이 대구시 한복판에서 사생을 결단할 각오를 벌써부터 가져왔던 것이요 또 이 뜻은 내가 수차 국민에게 알려왔던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 민국정부가 부산으로 올라가는 것은 작전상의 중대한 이유로 그리 되는 것이요, 또 한 가지는 우리 한국 독립을 위하여 처음부터 노력하여 온 UN한국위원단 본부가 부산에 있어서 정부와 여러 가지로 긴밀히 연락을 취해야 하게 되었으며, 더욱 수백만 전재동포를 위한 구호물자와 파괴된 도시들의 재건계획에 대한 진행 등 허다한 사무처리에 있어 막대한 편리가 있을 것이므로, 이러한 사무 운영상 관계로 정부기관은 수 일 내로 부산으로 즉시 천도하기로 작정한 것이다. 혹시 천도를 시급히 생각하는 이들 중에는 불편한대로 대구에 남아있다가 바로 서울 가는 것이 마땅하다고 할 것이요, 一方에서는 작전을 빙자하여 대구를 버리고 간다는 맹랑한 流言을 퍼뜨리는 이들이 있을 것을 생각하며 이상과 같은 실정을 적어서 애국동포들에게 널리 전해 다니는 바이니, 兒童婦老를 제외한 일반시민은 안심하고 생업에 가일층 勉勵할 것이요 그리하므로써 나라를 위하여 민족을 위하여 자손만대의 승리를 위하여 필사의 노력을 봉사와 애국정신을 發揚하여 조국방위와 통일독립 완수에 빛나는 공헌이 있기 바라는 바이다.”


 

제목 국회, 대구에서 철수하라는 이승만 대통령의 요청에 따라 휴회
게재지명 미국 국무부 정책연구과 문서 Korea Project File Vol. Ⅳ : 한국전쟁 자료총서 29권, 272쪽
날짜 1950년 8월 18일

대구에서 미 국무부로
어제 정오에 신익희 국회의장은 국회를 휴회하고 대구에서 철수해달라는 대통령의 제안을 국회에 알렸다. 이 제안에 대해 여러 가지 반응이 나타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회는 9월 1일 재소집하기로 하고 휴회했다. 들리는 소문에 따르면 대략 30명의 국회의원들이 지난밤 대구에서 부산으로 떠났다고 한다. 국회의장과 나머지 143명 대부분도 곧 떠날 것이다.
국회는 어제 내무장관이 국회에 제출한 김준태 의원의 석방문제를 남겨둔 채 떠났다. 제안한 입장은 8월 16일에 보낸 긴급전보 127에 대략적으로 설명되어 있다. 그러나 법무장관은 그에 대한 법적구속을 확신한다는 내무장관의 이전 입장은 잘못 인용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나서 국회는 대한청년단과 지방행정당국의 관리 하에 조직된 청년방위대를 지원하기 위해 내무장관이 제출한 향토방위대 설립안과 몇몇 안건들을 통과시켰다. 14세 이상의 모든 사람들은 여기에 가입해야 한다. 파괴활동을 탐지하는 등 향토방위대의 임무는 긴급한 경찰활동으로 제한되었다. 또한 국회는 국회 사무총장에 朴鍾萬 임명에 동의했으며, 유엔한국위원단의 교체위원이었던 인도 나야르(Nayar) 단장의 죽음을 애도했다. 그리고 피난민수용소 거주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피난민들에게 쌀 배급을 실시할 것을 권고했다.
무쵸(Muccio)
미국 국무부 정책연구과 문서 Korea Project File Vol. Ⅳ : 한국전쟁 자료총서 29권, 272쪽 


 


제목 이승만 대통령, 청소운동을 전개하자는 담화를 발표
게재지명 민주신보
게재일자 1950년 08월 27일
날짜 1950년 8월 26일

李대통령은 26일 공보처를 통하여 전 민족적으로 청소투쟁을 일으키자고 다음과 같은 담화를 발표하였다.
“외국신문에 우리나라에 대한 기사가 날마다 전폭적으로 보도되는데 그것이 거의다 우리에게 동정과 후원하는 언론임으로 희망에 넘치는 영광을 받게 되는 중 오직 인분냄새와 이, 벼룩, 빈대 때문에 살 수 없는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 종종 나고 있어서 開明한 세계 사람들의 안목에 짐승의 정도만 못지않는 감상을 주게 되니 이것은 우리 민족의 본래 문화정도가 빈천해서 그런 것이 아니요 왜정 하에서 퇴보 타락해서 이러한 생활태도에 이르러 지금은 더러운 것과 괴로운 것을 거의 다 알지 못할 만큼 되고 있음으로 한인들이 살고 있는 곳은 도성이나 촌락이나 그밖에 몇몇 가호가 있는 동리만 가더라도 냄새가 나며 추잡한 상태를 이루고 있어서 실로 견딜 수 없는 형편이니 이 전쟁을 기회로 우리가 크게 각성해서 관민남녀가 전적으로 궐기하여 일대 청소운동에 일으켜 누가 어디로 가던지 淸新한 공기와 청결한 환경속에서 마음놓고 행동하며 생각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고 살자는 결심을 가지고 공산도배를 淸刷하는 전쟁을 하는 동시에 우리의 생활상 원수되는 추잡한 것을 淸刷하기에 주야 쉬지 말고 분투 노력해야 할 것이다.
ECA 원조와 UN 협조로 DDT를 가루와 물로 거대한 수량을 가져오게 되니 들어오는 대로 집집마다 나눠주어서 의복과 주택과 가구와 寢褥寢床과 변소 등에 경제적으로 뿌려서 모기와 파리 벌레를 다 없이 하게 하되 한번에 많은 수량을 다 소비할 생각을 하지 말고 절약해서 연속 淸刷함으로서 去根시키도록 해야 할 것이며, 去根한 뒤에라도 다시 생기지 못하게 하는 방식은 DDT와 기타 약물도 쓰겠지만 첫째로 청결을 위주해서 때와 땀과 먼지와 쓰레기 등을 일일이 소제하여 虫이 생기지 못하게 하며 또 오穢物이 눈에 보이지 않게 해야 될 것이니 이것을 할줄 모르거나 게을러서 아니하는 사람들은 제집에서 사는 사람이라도 다 몰아내서 淸刷한 후에 살게 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깨끗이 살려면 이렇게 법에 넘치는 일이라도 부득이해야 할 것이니 그렇지 않고는 開明한 세계에서 전 민족이 개명한 사람의 대우를 받을 수 없고 또 이런 좋은 나라를 가지고 이와 같이 할 수 있다면 필경은 이것을 할 수 있는 사람에게 시켜서 주장하게 만들어야 될 것이니 우리가 잘사나 못사나 우리나라이니 만큼 인간지옥을 만들어 놓고 살더라도 우리 정도 그대로 살겠다는 사람들은 다 몰아내고서라도 날로 개량 전진해서 신세계 신문명과 함께 전진하자는 사람끼리 힘써서 우리도 문명되고 우리 뒤에 오는 자손들도 辱과 수모를 당하지 않고 남과 같이 살수 있게 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로부터는 우리가 구호로 방방곡곡에 붙여야 할 것은 인분과 악취와 이와 벼룩과 빈대를 다 없이하고 살자는 것이다. 우리 전 민족이 대궐기해서 더러운 것과 일대 전쟁을 개시함으로서 이를 극복하도록 결심해야 할 것이다.”  

 

 

 

제목 신익희 국회의장, 9월1일 국회가 續開될 것이라고 기자와 문답
게재지명 부산일보
게재일자 1950년 08월 28일
날짜 1950년 8월 26일

국회의장 申翼熙씨는 26일 의장실에서 기자와의 단독 회견석상에서 기자질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하였다.
(문) 국회는 언제 續開 되는가?
(답) 9월 1일 續開될 것이다. 장소는 미정이나 부산이 유력하다.
(문) 안보에서 인도대표가 제안한 한국문제 최후 해결안에 대한 귀하의 견해 如何?
(답) 한국문제에 관한 인도 태도는 불철저한 것임으로 그 내용도 호응을 얻지 못한 것으로 생각된다. 뿐만 아니라 소련 대표 말리크가 의장으로 있는 동안은 그의 모략과 간계로 말미암아 진정한 해결은 보지 못할 것이다.
(문) 이북에 대한 신탁통치가 논의되고 있는 모양인데?
(답) 군사행동이 끝나고 통일이 성취되는 날 UN의 외교관들은 이북을 탁치하여야 한다는 것을 고려 중에 있는 모양인데 이북은 대한민국 국토의 일부임에도 불구하고 새삼스럽게 탁치를 찬성한다는 것은 반대이다. 그러나 UN의 입장으로서는 이북에서 소련과 중공의 세력이 안전히 일소되고 진정한 민주주의적인 선거가 실시할 때까지 신탁통치를 고려하고 있다는 것은 무리도 아니라고 생각된다.

 

 

 

제목 제8회 임시국회, 부산에서 續開
게재지명 부산일보
게재일자 1950년 09월 02일
날짜 1950년 9월 1일

휴회 중이던 제8회 임시국회는 昨 1일부터 부산에서 속개되었는데 이날 정부 각 장관 UN한국 각국 대표 등 내빈 다수 참석 하에 상오 10시부터 속개국회는 개회되었다.  


 

 

제목 장면 주미 한국대사,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서 연설
게재지명 민주신보
게재일자 1950년 09월 14일
날짜 1950년 9월 1일

9월 1일 주미한국대사 張勉씨는 안보이사회에서 다음과 같이 연설하였다.
“안보이사회장 및 고명하신 각국 대표 여러분!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본인이 貴 안보이사회 앞에서 마지막으로 말씀한 이후 상당한 시일이 지났습니다.그동안 全 자유세계는 1950년 6월 25일에 일어난 한국사태의 진상을 평가하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그 평화로운 일요일 아침 한국에 대하여 불법무리하고 야만적인 공격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이사회는 24시간 내에 모여 躊躇치 않고 행동을 개시했습니다. 이사회는 공산침략자들에게 곧 전쟁을 정지하고 군대를 철퇴하라 했습니다.
이 국련의 요구는 무시를 당했습니다. 이 철면피의 침략자들은 국련 헌장은 물론 평화를 열망하는 허다한 사람들의 희망과 소원에 반하여 침략을 계속해 왔습니다.
침략자의 대변인은 이 자리에서 안보이사회를 마비시키기 위하여 온갖 수단을 다했습니다. 진실을 토의해야 할 곳이 거짓을 논하는 곳으로 악용되었습니다. 그러나 자유세계는 국련한위의 분명하고 틀림없는 진상보고로써 한국침략의 사실을 다 알게 되었습니다.
7개국 대표로 구성된 이 공정한 한국위원단은 그 진상을 여실히 보고하였으므로 북한공산집단과 그 조종자들이 비록 엉터리 없는 거짓말을 해 보았으나 사실을 어찌할 수 없었습니다. 한국 속담에 ‘물을 마시려거든 그 흘러나온 샘 머리를 알라’는 말이 있는데 한국침략에는 그 근원을 잘 알뿐 아니라 그는 물은 마시기에 너무 더럽다는 것을 우리 눈으로 볼 수 있습니다.
현재 북한괴뢰측과 그 상전들이 계속적으로 UN의 결정을 무시하는 것은 단순히 그들의 과거 행동의 반복입니다. 1945년 이래 북한에서 이러한 모든 사건은 소련이 한국 인민을 노예화하고 주관하려는 목적을 명백히 표시하고 있습니다.
1946년과 1947년에 한국에서 열린 미소공동위원회의 소련대표들의 행동과 변론은 민주주의 원칙을 무시하며 자유로운 자주정부를 건설하려는 한국 인민의 의사를 멸시하는 것이 웅변적으로 표시되었습니다. 소련은 한국에 공산주의 독재정부를 강요할 계획이라는 것이 이 회의기간에 명백하여졌습니다.
이 회의 중에 미국 정부는 완강히 민주주의 원칙을 고집하는 동시에 한국 인민을 노예화하고 공산화하려는 소련의 노력에 격렬히 반대하는 동시에 한국 인민의 의사를 꾸준히 존중하여 준데 대하여 무한한 감사를 드리는 바입니다.
1947년에 UN이 한국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결정한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UN은 한국에 총선거를 행하여 자기들의 원하는 정부를 자유로 선택케 하자고 압도적 다수 가결로 결의했습니다.
그러나 소련과 북한에 있는 그들 괴뢰측은 38이북의 선거를 방해하며 UN 결의를 무시하였으며 이북에 있는 우리 동포의 자유의지 발표를 무참하게도 억압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총선거는 38이남에서만 행하였으나 사실은 전 인구의 3분지 2가 이남에 있습니다. 이 총선거는 UN임시한위의 감시 하에 행하였고 1948년 UN총회는 이것을 한국 인민의 자유의사의 바른 표시라고 증명해주었습니다. 1948년 5월 선거 직후 국회가 성립되고 민주헌법이 채택되었으며 국회는 100개의 공석을 보류하기로 결의하였습니다. 그것은 북한인구의 비례로 그들이 UN 감시 하에 자유롭게 선거할 대비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시에 소련의 타산적 목적은 한국 반도에 그 군대를 정착시키려는 것이었습니다. 1949년 일본이 연합군에게 패북당한 후 소련은 그 주도한 계획을 가지고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추방되었던 적색 한인들을 데리고 들어와 그들을 핵심으로 북한 전 지역에 가장 야만적인 적색경찰국가를 수립하였습니다.
이리하여 북한에 거주하는 우리 동포는 전체주의에 구금당해 버렸습니다. 청년들은 강제로 군대에 편입되고 다수 인민은 강제노동이나 그렇지 않으면 군용 도로 교량 가설 등에 강제노역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뿐 아니라 소련은 UN을 무시하고 북한에 괴뢰정권을 세웠습니다. 소련이 북한 동포의 의사를 무참하게도 무시하고 권세를 부여할 괴뢰집단은 염치없고 폭악한 비밀경찰로 인민을 완전히 압박하고 있습니다.
공산주의의 가장 무서워하는 개인의 자유는 제일 먼저 또는 가장 많은 손해를 입었습니다. 우리의 북한동 포는 공포와 전율의 생활을 하며 남녀를 물론하고 자유의사를 표시하면 곳 그 사회에서 행방불명이 되어버립니다. 기독교는 공산주의의 제일 큰 원수입니다.
감독, 목사, 신부 기타 기독교의 신앙을 가진 자들은 감금을 당하고 있으며 더불어는 고문 옥사하였습니다. 예를 들면 한국 동북지방인 德原에서 일하던 싸워 감독은 옥중에서 공산주의자들에게 주검을 당하였습니다. 그는 35년 간 한국인을 위하여 일하였습니다. 또 한국인으로 洪감독도 공산도배들에게 끌려간 후 아무 소식도 없습니다.
또 한국의 애국자요 장로교 평신도인 曺晩植 선생도 소련이 북한에 들어오자마자 구금당하였습니다. 그의 죄상은 잔인한 전체주의에 굴종하지 않은 것뿐입니다. 조만식 선생처럼 공산주의의 희생이 되어 돌아오지 못하는 애국자가 적지 않습니다.
고명하신 소련대표는 북한선거에 언급하였으나 그것은 소련식 선거였습니다. 두개의 흑백투표상자를 준비하고 이미 선정된 후보자가 白상자에 투입하는 투표로 선거되는 것이었습니다. 黑상자에 잘못 투표한 이들은 큰 봉변을 당하는 것이었습니다. 언필칭 말하는 토지개혁이라는 것은 괴뢰측이 북한 농민에게 지운 것인데 불쌍한 농민들은 토지수확 중 7할 이상을 괴뢰정부에 바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도저히 생활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제목 제8회 12차 국회 본회의, 연합국의 총공세를 촉구하는 메시지 가결
게재지명 민주신보
게재일자 1950년 09월 03일
날짜 1950년 9월 2일

임시국회 제8회 12차 회의는 2일 하오 10시 30분 부산 문화극장 임시 의사당에서 曺奉岩 부의장 사회로 개최되었다. 국회 벽두 徐相德의원 외 9명으로부터 제시된 연합군의 총 공격을 촉진하여 달라는 메시지를 안보이사회와 맥아더 사령부에 보내자는 안건을 조상에 올려 이에 대하여 徐의원으로부터 자세한 설명이 있은 다음, 南松鶴, 趙柱泳의원 등 동의에 대하여 李容卨 의원(인천)으로부터 군사문제는 전문가인 연합군에게 일임하여 두면 좋을 것이라는 반대 의견으로 일단 장내는 찬부 양론으로 대립되자, 조주영 의원은 이에 반박하여 “우리 국민의 고충을 UN군에 호소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 무슨 실례가 될 것이냐”고 맹렬히 반박한 끝에 이 안건은 중대하니 만큼 안보와 맥사령부만 아니라 UN총회와 워커장군에게까지 추가 送翰하자는 동의가 만장일치로 가결되었다.
다음 朴永出 의원으로부터 이와 같은 중대문제를 전문으로만 할 것이 아니라 외무부 장관이나 정부 혹은 국회에서 대표자가 직접 UN이나 동경에 가서 친히 메시지를 전달하고 외교적 절충을 하는 것이 좋으리라는 발언을 한데 대하여, 사회로부터 각 방면으로 다사다난한 때이므로 좀 곤란할 것이니 양해하여 달라는 설명이 있은 다음, 1일 국회에서 체결된 전재민구호대책에 대한 정부 4장관의 설명을 듣자는 문제를 에워싸고 權仲敦, 姜昌瑢, 朴永出 의원 등으로부터 질문이 계속되어 오후 회의는 이에 대한 사회, 보건, 농림, 국방 4장관의 답변이 있을 모양인데 오전 중 질문 요지는 다음과 같다.
1. 전재민 구호대책에 대하여 사회·국방·농림·보건 4장관과 국회 기타 각층을 망라한 전문위원을 설치할 것
2. 각 도군 책임자로 하여금 전재민 제1선 감독을 철저히 시킬 의도는 없는가
3. 임시 공무원을 채용하여 현지를 담당시킬 의사는 없는가
4. 전재민 5,000명 단위로 의사 1명, 조수 1명, 간호부 1명으로 구성된 의료시설을 설치할 의도는 없는가
5. 구호 물자가 도난당한 예가 없지 않으니 이에 대한 강력한 감시망을 배치할 의사는 없는가
6. 敎化계몽단을 설치 또는 파견할 의사는 없는가
7. 식량 배급에 있어 군경과 민간에 차별 없이 2齊 3合으로 균형 배급을 할 의사는 없는가 

 

 

 

제목 이승만 대통령, 청년들의 궐기를 촉구하는 담화를 발표
게재지명 민주신보
게재일자 1950년 09월 04일
날짜 1950년 9월 3일

李대통령은 昨 3일 공보처를 통하여 대한 청년들은 용감히 나서자고 아래와 같은 담화를 발표하였다.
“우리 대한청년들은 대담히 궐기해서 千載一時인 이 기회를 놓치지 말아서 민국부강의 기초를 세워야 할 일이다. 민국건설 이후로 우리가 이것을 준비하려고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세계대세의 구속으로 못되고 있다가 이 患難을 당한 것인데 전화위복으로 지금은 이 기회가 와서 우리 청년들이 다 나서기만 하면 軍機 軍物은 상당히 얻을 수 있을 것인데 이 기회를 놓치면 晩時之歎이 또한 고려할 점이다.
그러므로 현금 경남북에 있는 청년들이 이 실정을 알고 이 기회를 이용하는 것이 절대 긴급한 일이다. 38선 이남에 우리 열렬한 청년들이 청년단으로 방위대를 조직하여 20만 자원병을 예비하였으니 군기만 있어서 충분히 무장시켰다면 오늘 공산군의 화를 이와 같이 당하지 않았을 것인데, 지금은 이 忠勇남자들이 거의 다 적군 점령지대에 있어서 나올 길이 막혔으므로 경남북 지대에 있는 청년들만을 모집하게 된 것이니 이 지대의 청년들은 이 기회를 이용해서 일일이 자원으로 등록할 것이오, 그 중에 혹 빠진 자들은 기왕 공포된 병역법에 의하여 징병에 참가시킬 것이다.
동서고금을 물론하고 병역에 복종하는 것은 국민의 당연한 직책이매 지원병으로 나오는 장정 외에는 의례이 병역법대로 등록 모병해서 국군에 충용해야 될 것이다. 지금 미국에서는 우리 전쟁에 보내기 위하여 징병령을 실시하는 중인데, 우리 청년들이 저의 가족과 국가를 위해서 자원 출원한다는 각 국인의 칭찬을 들으면서 도피하는 자가 있다면 결코 될 수 없는 것이다.
어느 나라이나 그 청년들이 저만 살자는 사심으로 겁을 먹고 退縮해서 저의 나라를 보호할 줄 모르게 되면 그 결과로는 저의 나라를 잃어버리고 백성이 남의 노예가 되어 그 上典 나라의 징병으로 뽑혀서 남의 관역이 되고 마는 것이다.”


 

제목 제8회 14차 국회 본회의, 헌법위원과 심판관 선발
게재지명 부산일보
게재일자 1950년 09월 05일
날짜 1950년 9월 4일

국회 제14차 본회의는 작일 상오 10시 30분부터 申의장 사회로 개회되었는데 3일에 이어 彈劾재판소 심판관 선거부터 시작되었는데 당선 뒤 헌법위원과 심판관은 다음과 같다.
▵헌법위원
南松鶴 鄭憲柱 蘇完奎 李道榮 金鳳祚(이상 정위원) 尹吉重 金光俊 梁炳日 李載灐 金益魯(이상 예비위원)
▵심판관
張澤相 郭尙勳 李錫基 李載灐 張洪琰(정위원) 李炳洪 李鍾榮 林興淳 尹宅重 權仲敦(예비위원)
그리고 이날 의사 일정은 UN총회에 국회대표 파견에 관한 결의안, 노재사이드 폐지법안 □치에 관한 兩件인데, 먼저 UN총회 국회대표 파견의 건에 관한 건부터 토의에 들어가 朴勝夏 의원의 제안 취지 설명이 있었고 ,이어 郭의원의 찬성 연설이 있은 다음 표결한 결과 절대 다수로 동의 가결되었다(정오 현재). 
   

 

 

제목 제8회 16차 국회 본회의, 연합군 총공격 촉구 결의안 가결
게재지명 부산일보
게재일자 1950년 09월 08일
날짜 1950년 9월 7일

국회 16차 회의는 7일 상오 10시 반부터 申의장 사회로 개최되어 지난 2일 상정 가결된 연합군의 총공격 촉구 제안에 대한 보충 成句가 있었는데 그 가결 내용은 다음과 같다.
“대한민국 국회는 북한공산군의 잔인성과 강제적인 공산화에 짓밟힌 한국국민의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을 염려하고 국련군이 추수기 전에 한국 곡창을 회복하지 못한다면 북한공산군 점령지역의 收獲을 脫却 중대한 □□가 있음을 인정하여 가능한한 즉시 총공격을 보고자 하는 한국국민의 열렬한 갈망을 표명하기를 결의하고 이 결의를 국련안보의장, 국련한위의장, 트루만 대통령, 맥아더장군 及 주한미8군 사령관 워커중장에게 전달하기를 결의함.”

 

 

제목 이승만 대통령, 군 인사이동에 대한 반발에 대해 담화를 발표
게재지명 부산일보
게재일자 1950년 09월 10일
날짜 1950년 9월 7일

“金弘一·金錫源 兩 장군은 우리 나라의 군사상 좋은 지도자로 알려진 분들인데 이번 그분들이 이동된 것은 다 관계가 있어서 그렇게 된 것이오, 이러한 변동이 아니고서는 전선이 어렵게 된 형편이므로 전쟁 중에 인사이동은 이롭지 못 할 줄을 알고서도 인내하여 오다가 부득이도 단행한 것이다.
이러한 것을 다 설명하면 사람이 다치게 됨으로 아무쪼록 말없이 임시 更迭해서 지도자가 적은 이 때에 사람을 아끼려고 한 것인데, 이 분들을 후원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선전이나 해 가지고 군사상 변동을 피한다면 이는 결코 될 수 없는 일이요, 또 자기들에게도 불리할 것이니 군인은 상부의 명령을 복종하는 것이 轉□이라는 것을 군인도 알고 그 분들의 후원자도 알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것을 모르고 돌연한 낭설을 조작해서 인심을 離反시키거나 정부의 사정을 어렵게 한다면 그것이 혹 개인상 派黨 운동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나 지금의 형편으로는 도저히 허용되지 못할 것이오. 또 따라서 일반국민들도 이러한 낭설에 현혹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제목 이승만 대통령, 신생활운동에 대해 담화를 발표
게재지명 부산일보
게재일자 1950년 09월 08일
날짜 1950년 9월 7일

“주민 □□으로 부산시의 개량을 착수한지 몇 일 안되는 동안에 이미 그 성적이 크게 표시되어 他處 사람들은 칭찬하며 본토 사람들은 즐거워 하니 개량 전진의 사업은 무엇에든지 착수하는 것이 곧 성공이다. 완고한 관습으로 아무렇게나 살면 그만이라는 백성들은 점점 퇴보되어 현대세계의 문명 발전된 백성들과 같은 대우와 같은 복리를 누리지 못하고 하등 노예의 자리에 멀어지게 되는 법이니 지금 세상은 이전 풍속과 제도를 일일이 개량해서 점점 좋게 만들어 가는 까닭에 남의 나라에서는 2년 전이나 3년 전의 문물이 고물로 되고 마는 것이다.
이렇게 됨으로 말미암아 생활이 편리하고 사회가 향상해서 그 사람들이 사는 곳은 곧 천국같이 알려지게 되는 것이니 우리 한인들이 이 때에 이것을 철저히 깨닫고 용감스러이 나서서 신세계의 신생활을 단행함으로서 세상 사람들이 놀랠 만큼 생활을 개량하는 동시에 短促한 시간 내에 성공하겠다는 결심을 가져야만 지나간 40년 동안 남의 압박 밑에서 잃어버린 세월을 회복할 것이다.
생활정도 개량이라는 것은 죽 먹든 사람이 밥을 먹고 돈 있는 사람이 갑부가 되어 사는 것보다 같은 재정과 같은 처지에서 남들이 하고 있는 모범을 따라가 일일이 고쳐서 옛 집이 신세대에 적당하고 오랜 나라가 新進국가들 같이 되어 옛 나라 문화를 새 제도로 개량해 나가며 더욱 우리의 고대문명의 특점을 발전시키게 된다면 우리는 동서양에 특수한 지위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이상에 말한 바 정신만을 흡수해서 누구나 이것을 표준삼고 날마다 개량하고 남의 좋은 것을 모범해 나가면 우리의 단결된 민심으로 얼마 안에 새로운 생활을 만들어 놓게 될 것이오, 이렇게 되면 첫째 모든 질병이 없어질 것이오, 음식과 의복 범절에 경제가 되어 부유하게 살 수 있게 될 것이니 사람마다 신식을 따라서 날로 日新于日新하기에 극히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이 함에는 천백가지를 들 수 있으나 일일이 다 제의할 수 없고 다만 가장 주목할 것은 인분이 눈에 띄거나 코에 찔리거나 발에 밟히지 않게 해야만 살아남는 곳이 될 것이요, 가정과 음식에서 못된 냄새가 나서 도저히 견딜 수 없이 한다는 것은 도의적으로 뿐만 아니라 법으로라도 금해야 될 것이며, 몸과 침구와 실내에 이와 벼룩, 빈대, 파리가 있다는 것은 우리가 문명세계에 머리를 들고 나갈 수 없는 표시이니 우선 이것을 다 없애 놓고 살 줄 알아야 될 것이다.
우리가 新국가건설 절차를 시작할 적에 하수도를 마련해서 도시마다 비료 만드는 공장을 세워 인분과 雜水를 기계 속으로 들어가서 비료가 되는 방법을 모범할 것이며, 도로는 시멘트와 기름□탈로 만들어 먼지가 나지 않도록 할 것이다. 이러한 기계가 어느 정도로 되어 이를 □□할 터인데, 이런 것을 시작해서 신생활의 세계를 만들려면 □물과 주택을 잘 만든다고 되는 것이 아니오, 그 집에서 살 사람들은 먼저 개량해 신식가옥과 새로운 도시를 청소하여 간수할 사람들을 만들어가야만 만드는 법이니, 우선 누구든지 서로 가르치며 우리가 목적하는 신생활을 발전시켜 신세계에 살만한 □□는 사람 만들기에 노력해야 할 것이다. 특히 우리의 생활면에 있어서 가장 초보적으로 주의할 것은 외국인들은 이와 벼룩, 빈대, 虫은 보도 담화□□나 又 □□□ 쓰지 않았으니 이는 무식무지한 자로 인증되는 연고이다. 우리도 이□□□에는 이런 종류의 모든 충을 ‘물것’이라고 통칭하였으니 보통 이러한 명사로 쓰는 것이 可할 것이다.
지금부터는 우리 전 민족이 각각 제 몸이니 집안에 물것 없이 살기로 결심하지 않고는 남과 섞여 사는 세상에서 밀려나고 말 것이다. 제 몸이나 제 집에 물것이 있는 사람은 남의 집이나 公廳에 들어가지 말아야 한다. 이런 사람은 親不親과 그 지위여하를 물론하고 남의 집이나 공청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여 부득이해서 들어오게 되는 때에는 잠시라도 있지 못하게 해야 할 것이다.
그것으로 정부에서는 DDT를 무료로 제공하니 물보다 가루로 만든 것을 얻어다가 조금도 낭비하지 말고 온 집안과 어린애들 머리털 속까지라도 뿌려주며 집안에도 어디든지 틈과 어진 곳에 뿌려주어 쓰거나 걸레질 할 때에 그대로 두던지 썰어내고 다시 뿌리거나 해서 충이 다 죽어 없어지도록 하여 각 공청과 공중집회소와 극장, 여관, 음식점 등은 우 책임자가 일일이 청결 시켜야 하며, 그렇지 않는 자는 벌칙을 세워 징벌해야 할 것이며 기차, 전차, 버스, 자동차, 트럭과 어선, 상선 등은 각각 그 주관자 책임하에 청결 시키지 못하면 역시 징벌해야 할 것이다.청결히하고 몸과 거처가 깨끗만 하면 물것을 걱정할 필요가 없으니 될 수 있는대로 의복과 침구를 자주 빨아야 할 것이니 때와 땀은 ‘물것’들의 양식이 번성하는 장소인 까닭이다. 그러므로 사람마다 주의해서 한인들은 더러운 사람이다. 한국은 물것 때문에 살 수 없는 나라라고 하는 등등의 부끄러운 말이 영영 없어지고 그 대신 한인들은 제일 깨끗한 인간이다. 한국같이 청결한 나라는 세상에 몇 안된다는 칭찬을 받도록 일하여 싸우기를 삼천만 동포에게 부탁하는 바이다. 




제목 제8회 17차 국회 본회의, 상이군경구호법안 통과와 비상경비예산안 심의
게재지명 민주신보
게재일자 1950년 09월 09일
날짜 1950년 9월 8일

제17차 국회본회는 8일 상오 10시 반 申의장 사회로 개회 전일의 회의록 낭독이 있은 다음 상이군경구호법안을 상정 제안자 李鎭洙 의원으로부터 “旣히 제정되어 있는 군사원호법안에 不備한 점을 보충하기 위하여 동 법안을 제정 병행 실시함으로써 일선 군경의 사기를 앙양코자 한다”는 요지로 법안 제정의 취지를 설명 재석의원 190명 중 98명의 동의를 얻어 동 법안을 통과시켰다.
다음 정부 9월분 비상경비예산안 심의에 들어가 재정경제위원장 金洙鶴 의원으로부터 동 위원회에서 심의 승인한 경과 보고가 있는데 대하여 南松鶴 의원 외 수명의 질의와 정부측 崔재무부장관의 답변 등 질의 문답이 전개되었는데 금반 정부 비상경비예산을 보면 국방비 71억 원을 필두로 내무, 사회, 보건, 체신부, 공보처, 예비비 등으로 大分하여 其 총액은 실로 99억 3,408만 원이란 방대한 액면으로 8월분 예산에 비하여 55억 4,880만 원의 증가를 보이고 있는데 예산 편성 방침을 보면 시국의 중요성에 비추어 주로 국방, 내무, 치안, 사회, 보건에 치중할 것이라 한다. 
 


 

제목 제8회 18차 국회 본회의, 이승만 대통령 참석 하에 회의 개최
게재지명 민주신보
게재일자 1950년 09월 10일
날짜 1950년 9월 9일

국회 제18차 본회의는 9일 상오 10시부터 申의장 사회로 비공개리에 개회하였다. 이날 회의는 전일 가결을 보지 못한 정부 9월분 비상경제 예산안 계속 심의와 朴晩元씨 외 9의원 동의로 제안된 피난민 수용대책 등이 토의될 것인데 당일 정부에서는 각 부·청장관은 물론 이대통령께서 친히 臨席하여 전 의원에게 격려 말씀이 있은 후, 대통령은 거반 선출된 국회방미사절단에 대하여 정부사절단의 자격을 겸임할 것을 특명하여 유엔총회에 당당히 참석케 하여 우리 민국 삼천만의 숙원인 통일완수에 張勉 대사와 더불어 적극 활약할 것을 요망하는 등, 회의는 개회 이래 처음 보는 긴장으로 전시 국회의 면목을 여실히 나타내었다 한다.

 

 

 

제목 제8회 20차 국회 본회의, 피난민 구호대책 건의안 가결
게재지명 민주신보
게재일자 1950년 09월 13일
날짜 1950년 9월 12일

국회는 20차 본회의는 12일 상오 10시 반부터 申의장 사회로 總開하였다. 개회 벽두 먼저부터 맡아 오든 피난민 구호대책에 관한 건의안을 상정, 재석 의원 170명 중 71대 0으로 동안을 가결 짓고 다음 어업에 관한 임시조치법 중 개정 법률안 제1독회로 들어가 산업위원회 위원장 이동현 의원으로부터 동 법률안 개정에 대한 설명이 있었는데, 崔元鳳의원은 어획의 침해와 어획근원의 고갈방지를 위하여 동안을 반대한데 대하여, 李鎭洙외 수 의원으로부터 同案이야 말로 수많은 피난어민을 구제함과 아울러 어업물 증산에 이바지하는 길로 당면한 긴급사라고 할 수 있으니, 총회를 생략하고 법제사법위원회에 同附하여 법률상 불비한 字句만을 수정하여 후일 본회의에서 再상정 심의하자는 개의가 88대 7이란 절대다수로 가결, 동 11시 50분 폐회하였다.


 

제목 이승만 대통령, 金弘一·金錫源의 軍 인사이동 불만에 대해 담화를 발표
게재지명 민주신보
게재일자 1950년 09월 14일
날짜 1950년 9월 13일

몸소 장병의 선전분투하는 전선을 시찰하고 돌아온 李대통령께서는 13일 전선시찰과 유언비어에 대하여 아래와 같은 담화를 하였다.
“내가 수차 전선을 시찰하여 본즉 전적에 매우 좋고 사기가 돌아서 적 군기, 군물을 포획한 것이 不少한데 현재 얼마한도 이외에는 더 밀고 올라가지 않으려는 계책 중 모든 지점을 확보하고 있으므로 적의 실의는 실패가 대단히 커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 군인들이 침식을 잊어버리고 싸워 나가는 데 있어서 그 열렬한 기상은 과연 우리의 의도에 盡한 바가 있다. 그러므로 미국인측에서는 많이 칭찬하는 중 워커 중장은 특히 우리 국군 某某장군과 병사들의 용맹과 공적을 한없이 칭찬하고 있으니 듣기만 하여도 우리가 다 영광스러히 생각되는 바이다.
일전 대통령 담화로 金弘一·金錫源 兩 장군에 대한 보도가 있어서 다소간 영향을 주게 되었으나 이것은 본래 우리의 의도가 아니오 그 實은 양 장군의 책망이라는 것보다 그 분들의 친우되는 사람들이 내용적 관계는 알지 못하고 私嫌이나 偏事로 그 분들을 偏僻되어 대우하는 줄로만 알고 여러 가지로 항간에 유언비어를 들어서 인심을 波動시키는 관계로 말미암아 그냥 방임하면 오해가 점점 더 전파될 염려가 있어서 이와 같이 된 것이오 양 장군이 사람을 내세워서 이러한 선전이나 선동을 했을 리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남을 위하거나 해치려는 말을 전하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나 사실을 먼저 알아보고 할 것이고, 사실을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 것이 옳은 방법이니 사실을 모르고 시시비비하는 것은 누구나 삼가야 할 것이다. 더욱 金弘一장군에 대해서는 몸이 약한 관계로 자기도 직책상 어렵거니와 중대한 전선에 손실을 끼칠 염려가 있어서 해임한 것을 접수한 것인데 이것이 여러 가지로 오전된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제목 제8회 21차 국회 본회의, 국회위문단 구성에 대해 토의
게재지명 민주신보
게재일자 1950년 09월 14일
날짜 1950년 9월 13일

국회 제21차 본회의는 13일 상오 10시 40분부터 속개 申의장이 개회를 선언하고 이어 대통령에서부터 사무국장을 통하여 국회에 보내온 정부파견 UN 사절단 일행의 여정에 대한 보고가 있은 다음 尹泳善 외 9의원의 긴급동의로 제출된 全南 각 島嶼 駐在경찰대 및 일반 피난민 위문파견에 관한 안건을 상정 이에 대한 尹의원의 설명이 있은데 대하여 朴永出 의원에서부터 이 문제는 전남에 국한한 것이 아니라 전반적인 문제이니 만큼 국회로서 시급히 위문단을 조직하여 일선 군경은 물론 상이군병 및 일반피난민 등을 위문케 하되 그 조직에 있어서는 내무, 국방, 사회 등 정부 당국과 구체적인 계획을 작성하여 15일까지 본회의에 再 상정 토의케 하 자는 개의가 90대 0으로 가결되었다. 그리고 계속하여 정부에서부터 제출된 오물소제법안을 심의중이라 한다.

 

 

 

제목 제8회 21차 국회 본희의, 오물청소법안을 정부에 반환키로 결정
게재지명 부산일보
게재일자 1950년 09월 14일
날짜 1950년 9월 13일

국회 제21차 본회의는 昨 13일 상오 10시 40분부터 申의장 사회로 개회되었는데, 외무·국방·문교·사회위원회로 하여금 국방부, 사회부, 보건부에 연락하여 일선장병 및 상이장병·피난민 등 위문시찰에 관한 정책을 본회 기내에 상정하도록 하자는 개표안을 가결하고 다음에 정부 제출 법안인 오물소제법안이 상정되었는데, 李奎甲의원은 이 법안을 정부에 반환할 것을 동의하자 법제처장 申泰益씨는 이 법안 규정의 동기와 필요성을 강조하였으나, 각 의원들은 행정조치로써도 충분히 소기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것을 구태여 법률화할 필요가 없다고 반대의견이 속출하여 표결에 부친 바, 재석 총원 112명 중 65명이 반대로 문제의 오물청소법안은 정부에 반환되기로 가결하고 상오 11시 40분 본회의는 폐하였다.  

 

 

 

제목 신익희 국회의장, 유엔에 대한 요구 사항을 표명
게재지명 부산일보
게재일자 1950년 09월 15일
날짜 1950년 9월 14일

국회의장 申翼熙씨는 昨 14일 상오 10시 의장실에서 기자와 회견하고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우리 독립은 우리 힘으로 우리 땀으로 우리 피로써 되는 것이지만 국련 관계 면으로 보아서는 UN의 감시 밑에 총선거를 거행하였고 또 UN의 승인으로써 독립된 우리로서는 국련총회에 대한 우리의 기대는 자못 큰 것이다. 종전에는 일본제국주의의 극평과 날조로 우리 사정이 세계에 오보되었던 까닭에 우리들의 주요 공작이 우리를 세계에 정확하게 소개하는데 있었지만, 현재에 있어서는 이러한 필요는 더 존속하지 아니하는 만큼 국제우방들은 진짜 한국을 다 잘 알고 있으므로 앞으로의 문제는 한국의 일을 여하히 결정하느냐가 문제이다. 이 문제로 우리의 일은 우리의 뜻대로 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정통대로이지만 우리로서 UN에 기대하는 바는 이러하다.
▵ 현재 연합군의 북한괴뢰 반역공산적군에 대한 총공격을 일일이라도 속히 하도록 할 것
▵ 연합군이 서울을 탈환할 뿐 아니라 두만강·압록강까지 진격해서 완전 통일할 것. 회복하는 각 지방에는 대한민국 행정기구를 설치하고 자유민주 총선거를 신속히 실시하여 대한민국 국회에 보류되고 있는 100석을 보충할 것
▵ 국제공산주의의 한국독립에 대한 위협을 배제하기 위하여 한국연방 국경에 UN경비군을 배치 상주케 할 것
▵ 한국의 부흥과 재건을 위해 UN 諸국가는 원조 구호하여 줄 □□전쟁으로 인한 재민구제에 특별 시급히 하여 줄 것
이상 몇 가지가 UN에 對 희망 요점이며 동시에 정당한 권리 주장인 것이다.”  

 

 

 

 

제목 제8회 22차 국회 본회의, 국회위문단 구성과 준전투원 조치 법안 심의

부산일보 1950년 09월 16일 

지난번 국회에서 가결된 국회의원들의 제1선 군경, 상이군경 피난민 위문에 관한 구체적 안은 그간 정부 관계 당국과 타협 중에 있었던 바 그 구체안이 昨日 국회에서 보고되었다.
이에 의하면 위문 지역만 9개 처로 나누어 15명 전후를 □일반으로 하여 UN군 하에 접근관계상 일반에 영어에 능통한 요원 각 1명, 기자 1명, □사 1명씩을 수반하게 되었으며 기간은 국회 휴회일로부터 10일간 예정이라고 한다.
▹ 準전투원 조치 법안 전문위원회로 회부

국회 제22차 본회의는 昨 15일 상오 10시 반 申의장 사회로 개회되었는데, 상정법안은 李鎭郁 의원 외 14명이 제출한 준전투원 전시 조치법안 제1독회에 들어 갔는데 이 법안은 □재□산을 위시하여 각처에 산재하고 있는 □관, 형무관, 소방관서를 재편하여서 현역군대로 개편하는 것이 골자이며, 내무치안위원회 위원장 徐珉濠씨가 심의하여 이 법안 심사결과 보고가 있었는데 법안을 제정치 않고 행정조치로 하기를 정부에 건의하기로 하고 이 안을 폐안키로 결의하였다고 보고하였는데, 이진욱의원의 제안 부연설명과 이에 대한 數 삼 의원의 찬부 토론이 있은 후 尹吉重 의원이 該 법안을 내무치안 위원회와 외무국방위원회 연석회의에 재교부하여 심사 보고케 한 후 본 회의에 상정하자는 동의가 있어 표결한 결과, 재석의원 140명 중 可 84명의 절대다수로 동의는 가결되었다.

 

 

 

제목 제8회 23차 국회 본회의, 경찰원호법안을 심의

민주신보 1950년 09월 17일 

국회 제23차 회의는 16일 상오 10시 40분 신의장 사회로 개회, 곧 경찰원호법안 제1독회로 들어가 내무치안위원장 徐珉濠의원으로부터 생계 구조, 직업 알선, 수용 보호 등이 동법 제정의 골자라는 취지를 설명하고 金光俊의원이 법안을 낭독. 權仲敦의원은 법안 제정의 필요를 느끼는 바이나 현 사정으로 보아 실시 난이니 今般 우리들의 일선 시찰을 마친 연후에 其 사실을 충분 파악하여 가지고 재토의하자는 동의를 제출, 李在學의원 역시 실시 곤란이기보다 군경의 성격 그 자체가 다르니 만큼 동법 실시에 앞서 신중을 기할 것을 요청한 바 표결한 결과 48 대 9로 權의원의 후일 재심의하자는 동의가 가결되었다.
다음 前 회의에서 字句 수정을 전문위원회에 회부 토의 중에 있든 어업에 관한 임시조치법 중 일부 개정안을 본회의에 상정, 법제사법 尹吉重의장으로부터 피난민 어업가 전반을 말함이 아니라 유동성 있는 어업에 한하여서만 피난지에 와서도 어업을 경영할 수 있는 점이 개정의 골자라는 것을 설명 同案 역시 무난히 가결, 피난민 구호에 대한 임시조치법안 독회로 들어가 문교사회위원장 李奎甲의장의 제안에 이어 朴永出의원이 내용을 설명 토의 중이다. 

 


제목 제8회 27차(24차- 잘못 표기) 국회 본회의, 부역행위특별심사법과 사형금지법안 심의
게재지명 민주신보
게재일자 1950년 09월 19일
날짜 1950년 9월 17일

머지않아 환도를 앞두고 국회에서는 벌써부터 제반 대책에 奔忙하고 있는데, 환도 후에 닥쳐올 일시적 혼란을 방지하기 위하여 부역행위특별심사법안 및 사형금지법안을 제정키로 되어 17일 제24차 본회의로부터 사형금지법안이 旣히 상정토의 중에 있는데, 동 법률 제정의 초안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 부역행위특별심사법 초안
제1조 본법은 逆徒가 점령한 지역에서 그 점령 기간 중 逆徒에게 협력한 자를 특별히 심사함을 목적으로 한다.
제2조 前條의 목적을 위하여 중앙에 부역행위특별심사 중앙위원회(이하 중앙심사위원회라 칭한다)를 두고, 도·시·군에 부역행위특별심사 도·시·군 위원회(도시군심사위원회라 칭한다)를 둔다. 중앙심사위원회는 서울특별시심사위원회를 겸하고 도심사위원회는 그 소재지의 시심사위원회를 겸한다.
제3조 심사위원회는 左에 의하여 조직된다.
1. 중앙심사위원회는 법무부장관을 위원장으로 하고 국회에서 선임한 위원 5인과 대통령이 임명한 위원 5인으로써 구성한다.
2. 도시군심사위원회는 법무부장관이 지정하는 각 기관 내의 검사장 또는 검사를 위원장으로 하고 당해 도지사가 其 관내 도시군 공무원 중에서 지정하는 위원 □인과 당해 도내 국회의원이 선임한 위원 3인으로써 구성한다.
제4조 심사위원회는 역도가 점령한 지역에서 그 점령 기간 중 역도에게 협력한 자의 범죄에 관하여 심사하고 검찰기관의 회부 여하를 결정한다.
1. 국가보안법에 위반하는 죄, 단 헌법 제1조 제1항 제1호, 제2호 同 조 제2항과 제7조의 죄를 제외한다.
2. 비상사태 하의 범죄 처벌에 관한 특별조치령 중 제4조 제3호 내지 제5호와 제5조의 죄
제5조 前條 1호의 죄에 관하여 그 혐의자를 구속하였을 때에는 24시간 이내에 소관 심사위원회에 보고하여야 한다. 소관 심사위원회에서 불구속 심사를 결정하였을 때에는 즉시 석방하여야 한다.
제6조 심사위원회는 직권이나 수사기관 본인 또는 이해 관계인의 신고에 의하여 심사한다.
제7조 심사위원회에서 심사의 결과 검찰기관에 회부하지 않기로 결정한 때에는 본법에 규정한 부역행위에 관하여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
심사위원회에서 전항의 결정을 할 때에는 左의 표준의 1에 해당하여야 한다.
1. 역도의 압력으로 정치적 이용을 당한 행위가 불가피하다고 인정될 때
2. 역도에게 이용을 당하였으나 다수 민중을 살리는 애족적 행위가 현저한 때
3. 애국자 또는 애국자의 자손을 은닉, 기타의 방법으로서 역도의 박해를 면하게 한 공적이 현저한 자
제8조 심사위원회는 위원 4分之 2 이상의 출석과 출석의원 과반수로써 의결한다.
제9조 중앙심사위원회는 도심사위원회에 도심사위원회는 시군위원회에 대하여 본법이 정하는 외에 심사에 관하여 필요한 방침과 사무조치를 지시할 수 있다.
제10조 각 심시위원회의 위원장은 관계기관 공무원 중에서 심사위원회의 사무 보조자를 지정하여 겸임케 한다.
제11조 심사위원회는 심사에 착수한 지역에서 7일 이내에 그 임무를 종료하여야 한다. 본법에 규정하는 죄는 전항의 기간이 경과함으로써 그 시효가 완성된다.
부칙
본법은 공포일부터 10일 후에 그 효력을 발생한다.
▹ 사형금지법안
제1조 본법은 단기 4283년 6월 25일 북한괴뢰집단의 侵寇에 의하여 발생한 비상사태 수습에 있어 특히 사용을 금지하여 민심의 안정과 우리 나라의 민주적 발전을 기함으로 목적으로 한다.
제2조 본법에서 사형이라 함은 역도 또는 부역행위자에 대한 처벌을 이유로 법률의 정하는 바에 의한 재판 또는 수납을 經하지 아니하고 타인의 생명·신체자유·재산에 침해를 가함을 말한다.
제3조 국군 또는 치안의 임무를 수행하는 자가 비상사태를 빙자하여 사형을 감행하거나 사형을 명령 또는 용인하였을 때에는 좌에 의하여 처단한다.
1. 살인에 대하여는 사형 또는 무기징역
2. 감금·고문 또는 타인의 재물의 약탈·파괴에 대하여는 무기 또는 1년 이상의 유기징역
전항에서 군사 또는 치안의 임무를 수행하는 자라 함은 군인, 경찰, 청년방위대, 자위대원 등 군사 및 치안의 임무에 종사하는 일절의 인원을 말한다.
제4조 본 법은 계엄지역 내에서도 그 적용이 제외되지 아니한다.
부칙
본 법은 공포한 날부터 시행한다.


 

제목 제8회 25차 국회 본회의, 사형금지법안 축조 토의
게재지명 부산일보
게재일자 1950년 09월 19일
날짜 1950년 9월 18일

국회 제25차 본회의는 昨 18일 상오 10시 30분 申의장 사회로 개회되었는데, 이날 상정법안은 사형금지법안, 부역행위특별심사법안, 국회의원징계에관한특별규칙안 외 11건인데, 먼저 林興淳의원 외 16명이 제출한 맥원수에게 감사 메시지를 보낼 것을 만장일치로 가결하고 안건 작성은 외무국방위원회에 일임하기로 하였다. 다음 17일에 계속하여 사형금지법안 제2독회에 들어가는 대체 토의는 24차 본회의에서 나오므로 이날은 逐條 討議에 들어갔다.
朴晩元의원 외 22인이 제출한 수정안을 朴晩元의원이 설명하고 □의원의 발언이 있었는데, 법안 명칭을 권력남용행위특별처벌법으로 하자는 수정안은 표결한 결과 부결되고, 원안대로 사형금지법안의 명칭은 재석의원 111명 중 72명의 찬성을 얻어 가결되었다. 이에 이어 법안 축조 토의에 들어갔는데 제1조, 제2조는 다 원안대로 가결되고 제3조를 토의 중에 있다(정오 현재).
그런데 본 법안의 제정 목적은 지난 8월 25일 북한괴뢰집단의 侵寇로 인하여 발생한 비상사태 수습에 있어 특히 사형을 금지하여 민심의 안정과 우리 나라의 민주적 발전을 기함에 있는 것이라고 한다.

 

 

제목 제8회 25차 국회 본회의, 부역행위특별심사법안 심의 계속
게재지명 부산일보
게재일자 1950년 09월 20일
날짜 1950년 9월 18일

제25차 국회 본회의는 18일 하오 2시 30분 장부의장 사회로 續開되어 정부에서 제출된 피난민 수용에 관한 임시조치법 중 개정 법률안을 가결한데 이어, 조선은행권 교환문제의 대통령령(긴급명령) 제10호를 승인하기로 만장일치로 가결한 후, 부역행위 특별심사법안의 제1독회에 들어갔다.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 尹吉重의원이 법안을 낭독 후 제안 취지 설명이 있었고 이에 이어 질문응답이 전개되었는데 시간관계로 제26차 본회의에서 계속 토의하기로 하고 하오 4시 30분 폐회하였다. 
 


 

제목 제8회 26차 국회 본회의, 군경 및 피난민에 대한 국회위문단 일정 확정
게재지명 부산일보
게재일자 1950년 09월 21일
날짜 1950년 9월 19일

제26차 국회 본회의는 하오 2시 반부터 申의장 사회로 속개되었다. 먼저 긴급동의로 金□□의원이 제안한 UN총회에 보내는 메시지를 만장일치로 가결하고 다음 국회의원 징계에 관한 특별세칙안은 징계자격위원장 趙□□의원으로부터 초안 낭독과 제안 취지 설명이 있었는데 李載學의원이 폐기동의가 있어 표결한 결과 폐기 동의는 절대다수 찬성으로 가결되었다.
다음 전반 가결된 일선 장병 및 상이군경 피난민 위문의 건에 대해 池靑天의원이 발언하여 戰勢가 가속도로 진전되고 의안 동의가 시급한 此, 일선 위문은 보류하고 상이군경과 피난민만을 위문하자는 동의가 있었는데 기왕에 작정한 것이니 계획대로 실행하자는 의견과 인천상륙을 하고 서울 돌입이 전해지고 있으니 이 지역까지 포함하여 계획대로 위문행을 決行하자는 의견 등이 속출하여 표결한 결과 계획대로 위문행을 결행하기로 만장일치 가결되었는데, 출발은 21일로 예정하고 3·4일간에 위문을 마치도록 申의장의 주의가 있었다.
다음은 李宗郁의원 외 14명이 제안한 회기 연장에 관한 결의안이 상정되었는데 이 역시 만장일치로 가결되어 제8회 임시국회는 다시 1개월간 연장되어 10월 22일까지 속개하기로 되었다. 그리고 20일부터 26일까지 휴회하기로 하고 하오 5시경 폐회하였다. 

 

 

 

군경 및 피난민에 대한 국회위문단, 방문 지역으로 출발  

연월일

1950년 9월 20일  

출전

민주신보 1950년 09월 21일  

군경 및 피난민에 대한 국회위문단, 방문 지역으로 출발
국회에서는 20일부터 26일까지 본회의를 휴회하고 휴회 기간 중 일선장병과 상이군경 일반피난민을 위문 행각키로 되었다. 위문구역은 서울의 最戰線을 비롯하여 전남북도 경남 등지 각 도서에 이르기까지 지역에 달하며 일반 평의원 15명 내지 20명의 의원으로 조직하되, 각 반에 1명씩 국회 출입기자가 동행하여 현지의 생생한 뉴스를 널리 보도하기로 되었다 한다.
▵제1지구:울산 경주 포항 ▵제2지구:청도 경산 영천 ▵제3지구:대구 달성 왜관 ▵제4지구:현풍 고령 창녕 ▵제5지구:마산 함안 창녕 ▵제6지구:밀양 김해 영산 ▵제7지구:부산 동래 양산 ▵제8지구:통영 거제
 

 

 

제목 이승만 대통령, 수도 탈환 이후의 제반 문제에 대해 기자문답
게재지명 민주신보
게재일자 1950년 09월 23일
날짜 1950년 9월 22일

李대통령각하께서는 昨 22일 상오 10시 중앙청 출입기자단과 회견한 석상에서 수도 탈환 이후의 제반 문제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요지의 문답을 하였다.
(문) 서울 탈환을 목전에 두고 대통령각하의 소감 여하?
(답) 우리는 비록 후퇴는 해왔을 망정 불법 남침해 온 공산괴뢰들께 우리 민국 영토를 빼앗겼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 이유는 우리에게 다만 공산도배들을 물릴 칠 무기가 결핍하였기 때문이었다. 이제 민주진영의 UN군과 우리 국군이 날로 진격하고 있어 전 민족의 갈망대로 수도 탈환도 이미 시간문제로 육박하게 되었으니 기쁘기 한량없는 바이다.
(문) 수도 탈환 후의 정부 환도는?
(답) 수도가 완전 탈환되고 전국이 호전되는 대로 환도할 작정인데 특히 서울 피난민들도 정부의 뒤를 이어 곧 귀환시키게 될 예정이다.
그런데 서울에 귀환케 되면 우선 긴급한 것이 동절을 앞두고 전재동포들의 의식주 문제일 것인데 벌써 인천지방의 전재동포를 위해 백미 100석과 잡곡 300석을 수송했으며 특히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시에 유럽에서 행하여진 전재민에게 의료와 식량을 공급해준 듯이 지금 인천지방에서도 그리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제 서울에 돌아가면 할 일이 많다. 이북에도 우리 전재동포가 있을 것이오 또한 집 없이 노숙하는 동포들도 많을 것이니 우리는 우선 이러한 諸문제가 해결될 시까지 상호협조 동거토록 동포 각자가 충분히 애국애족의 정신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문) 전재지구의 부흥문제와 전재동포의 구호책 여하?
(답) 전재지구의 부흥문제에 앞서 제일 긴요 문제는 전재 동포의 식량문제인데 현재 이것도 준비가 되어 있고 또 추수기에 임하여 곡물을 추수하는 대로 곧 전재지구에 수송케 할 작정이며 이밖에 외국에서도 많은 식량이 공급되어올 줄 믿는다. 그리고 전재지구의 가옥건축에 관해서는 ECA를 통하여 재목을 많이 요청했음으로 앞으로는 초가집을 없애고 기와집을 건축토록 할 것이 나의 희망이다.
그 다음 도로건설에 있어서는 종래의 불청결한 도로를 일소하고 세계수준에 달하는 근대적 도로를 만들어야 할 것이니 전 국민이 모두 합심하여 신세계 건설에 힘써야 할 것이다.
(문) 괴뢰군 학정하에 있는 피점령지구의 동포 포로문제는?
(답) 금번 괴뢰군의 남침 이래 피점령지구의 동포들은 그들을 환영한 자들이 있었다는 것은 우리 민국이 전 세계에 자랑할 만한 민주의 승리였다. 그러하기로 피점령지구 내에 있어서의 우리 동포들이 살기 위하여 부득이 그들 공비들에게 협력한 자가 있을 것이니 이에 대하여 정부로서는 그 진상을 조사케 한 다음 공론에 의해서 선처할 작정이다.
특히 표면으로는 공산도배들과 연락하는 따위의 즉 박쥐 노릇을 한 자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붕당무리들은 단연코 容許치 않을 것이다. 더구나 이러한 박쥐 놈들로 말미암아 외국에서는 우리 민국을 경찰국가니 하여 좋지 못한 비판을 받은 바도 있었는데 아무튼 민국에서 나쁜 사람을 적발하고 공산당이었다면 부모 형제 간이라도 용서하지 말고 처단토록 해야할 것이다. 
 


 

제목 휴회 중이던 국회 속개
게재지명 민주신보
게재일자 1950년 09월 28일
날짜 1950년 9월 27일

휴회 중이던 국회는 27일 상오 11시부터 임시 의사당인 문화극장에서 속개하였는데 이날의 회의는 신의장 사회로 비공개리에 국내외 정세와 기타 긴급한 2, 3 중요 문제를 보고, 토의하였다 한다. 
 

 

 

제목 이승만 대통령, 탈환지역에서의 사적 원한에 의한 타살·구타 금지 등을 촉구하는 유시를 발표
게재지명 부산일보
게재일자 1950년 09월 29일
날짜 1950년 9월 28일

“이번 전란에 군경과 청년과 기타 민간 지도자들이 국가를 위하여 많은 공헌을 하였고 또 순국한 열렬한 의사들과 그밖에 민간에서 무참한 학살과 피해를 당한 모든 동포와 참상은 실로 뼈가 저리고 피가 고른 바입니다. 그러나 독립과 자유는 보배로운 것임으로 이것을 장구히 복스럽게 발전시킬려면 우리가 먼저 이 귀중한 값을 갚아야 될 것인 바, 우리의 순절한 모든 애국동포의 피가 이 값을 상당히 갚게 되었으니 우리의 자손들이 그 功効를 천추만세에 누리며 기념하고 기념할 것입니다.
다행히 살아있어서 석 달 동안 죽게 되었다고 殘命을 부지하고 있는 수백만 전재민의 형편은 우리가 다 형언할 수 없는 중이다. 마침 추수 전에 적군을 격파하게 되어 우리손으로 식량을 보급하게 되었고 따라서 세계 우방들이 재정과 식량과 일용 필수품을 손수해서 지금 운반 들어오는 중이오, 또 앞으로도 이월하여 들어올 것이며 우리의 신생활과 신건설을 위해서는 미국의 원조로 들어오는 기계와 기구와 기타 물자가 우리의 희망 이상으로 넘치게 됨으로 금후 가정과 城市와 교량과 도로를 다 개량해서 새나라를 만들게 될 것이니, 이것을 받는 우리로는 새 정신과 새 사상을 一朝一夕에 발휘해서 이 원조를 받을만한 국민적 자격을 세상에 표명해야만 우방의 성심과 협력이 더욱 커서 한량없이 도움을 받게 될 것입니다. 지금부터는 사람마다 신세계 신국가를 만들어 신생활도 해야 될 터인바 이렇게 할려면 사람마다 새 정신으로 각각 자기의 마음부터 깨끗이 해가지고 새살림을 해야 새나라를 만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건설과 건축은 하루 이틀에 다할 수 없을 처지요 더욱이 겨울 당해서 몸둘 곳 없이 동토지경에 이른 동포를 살려서 겨울을 지내야만 될 것이니 이것은 우리 전 민족이 일심합력해서 먹을 것을 나누어 먹고 입을 것을 나누어 입으며 몸둘 곳을 나누어 살아야만 이것이 우리 동포의 애족심이오 우리나라 건설에 상당한 자격이 될 것임으로 정부 일반 공무원들과 각도 각군 관공리부터 일일이 정신을 받들어 집없이 寒地에 사는 사람이 하나라도 없도록 해야할 것이니 가옥의 대소를 물론하고 여유있는 것은 다 내놓아서 의지없는 동포들을 청하여 같이 過冬하도록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식량에 대해서는 배급으로 아사를 면할만치 정부에서 담임하고 진행할 터이니 거처에 대해서만은 모든 동포들이 합심 노력해야만 될 것입니다. 이에 따라 내가 국민에게 부탁하고저 하는 바는 정부나 민간에 협잡이나 賄物을 주고받거나 또는 원조물자를 도적해서 불법하게 쓰는 사람들은 그 물건의 대소를 막론하고 적발되는 대로 군법으로 못된 풍기와 행실을 영영 막으려는 방침이니, 누구나 이 의도를 절실히 양해하고 일절로 피해서 후회가 없도록 해야 할 것이나, 혹 지위나 세력을 믿고 輕忽한 생각으로 죄과에 빠진다 하더라도 벌은 한가지로 엄중할 것이니 부디 신중해서 日後에 남을 원망하거나 무익한 핑계를 찾는 불행한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중 가장 강조하고자 하는 바는 폭학무도한 공산도배의 잔악한 살육행위를 누구나 □□히 여기지 않는 사람이 없을 것임으로 우리 국군과 경찰이 연합군과 합작해서 반격의 앞뒤를 막어 빠져나갈 길이 없이 포위하고 공산군을 소탕하는 중이니, 항복 귀순하는 자는 포섭하지 않을 수가 없으나 그중에서도 人面黙心을 가지고 살육과 파괴를 꾀하는 자들은 비록 포로 중에 있을지라도 일일이 심사해서 법으로 판결하여 처단함으로서 민심의 후환을 없이 할 것이요, 전투로서 항거하는 자는 일일이 토벌해서 하나라도 넘겨두지 않을 것이니 이것이 즉 천심와 인심일 것입니다.
그러나 악으로 악을 갚는다는 것은 정의 인도를 주장하는 우리로서는 절대로 피해야 될 것이며 더욱 우리 문명한 민족으로 문명 세계 모든 우방의 도움을 얻어서 평화를 회복하려는 우리로서는 私事怨念이나 公怨으로 인연해서 법을 버리고 사사로히 살육이나 구타나 한도에 넘치는 행동으로 □□□□하는 일이 일절히 없어야만 우리가 더욱 우리의 문명 정도를 세계에 표명할 것입니다. 하물며 1949년 제네바회의에 협정된 동맹국과 동의해서 서명한 나라로서 우리가 그 규정을 절대 지켜야 할 것이니 관민을 막론하고 일절로 법에 넘치는 일은 행치 말아야 될 것이오, 이런 행동으로 범법하는 자는 일일이 □연할 것이며 이에 대입하여서는 사람마다 깊이 주의하는 것이 가할 것입니다.” 

 


제목 제8회 28차 국회 본회의, 부역행위 특별심사법안 심의
게재지명 부산일보
게재일자 1950년 09월 29일
날짜 1950년 9월 28일

제28차 국회 본회의는 昨 28일 상오 10시반부터 申의장 사회로써 비공개로 개회되었는데 부역행위 특별심사법안이 상정될 것이라고 하며 한편 탐문한 바에 의하면 금일 본회의 폐회 후 일단 휴회에 들어갈 것을 선언하고 서울에 귀환 후 속개되는 것이 아닌가 추측되고 있다.

 

 

제목 이승만 대통령, 서울 입성에 대한 특별 성명을 발표
게재지명 서울신문
게재일자 1950년 10월 01일
날짜 1950년 9월 29일

李承晩 대통령은 9월 29일에 환국하심에 際하여 수도 입성에 대한 다음과 같은 내용의 특별 성명을 발표하였다.
“이 기념될 오늘을 당하여 나의 감상과 애국동포의 감상을 무슨 말로 형언할는지 모릅니다. 대전과 대구에서는 앞길이 캄캄하였으며 소식은 모두 다 상심되는 소식뿐이오, 모든 성공은 멀찍이 하고 있어서 전세가 순환되기를 바라고 바랐으되 서울에 돌아갈 날짜가 가까워 보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적군을 제때에 정복함으로써 농민들이 향촌에 돌아가 추수를 거둘수 있게 될는지 이를 우려하며 초조하게 시일을 보내던 그 감상은 이루다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다행히 天意가 감격되어 맥아더 장군의 명석한 지도 하에 연합군의 성공으로 서울을 탈환하였으며 아직도 혈전고투를 다 지났다고는 하기 어려우나 오늘 전세로는 아무리 우미한 공산주의자라 할지라도 더 의심할 여지가 없게되어 오직 국군 중 몇 명이나 죽기를 원하며 몇 명이나 항복하고 살기를 원하는가 하는 것뿐입니다. 나는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을 대표해서 모든 우방 연합군들의 힘으로 오늘 우리가 凱歌를 부르고 돌아오도록 성공을 이룬 모든 장병들과 병사들에게 열정적 감사를 이에 설명하고자 하는 바입니다.
이 장병들이 어디서 싸웠으며 어떠한 공적을 이루었던지 다 각각 자기 나라에 영광을 돌릴 것이오 한족을 구원한 은공을 가지게 될 것이며 또한 유엔 국가의 많은 위신을 높게 한 것입니다. 제8군단은 제24사단과 제25사단과 제1기갑사단과 제1해병단과 제5전투연대, 영국 제27여단, 제29보병연대와 필리핀 원정군과 한국 제1·제2여단으로 구성된 대군으로서 국군이 완강한 세력을 가졌을 때에도 남부 일대지역을 장악하기에 여러 주일 동안 용맹스러운 혈전을 계속해서 그 지역을 완전히 보장했던 것입니다.
지금은 그 지역에서 전선을 밀고 적군을 포위하여 놓았으며 항복을 받거나 전멸시키거나 할 것인바, 모든 한인들은 월튼 워커중장의 지휘 하에서 이루어진 이 빛나는 승전의 기념을 영원히 보전할 것입니다. 제5항공대는 사령관 패트리지소장 지휘 하에 미국과 오스트레일리아의 공군으로 구성된 부대로서 우리는 동 사령관에게 萬歲不忘의 감사를 표시하는 것입니다. 이분들의 희생적 용감한 공헌이 아니었다면 우리가 오늘 어떻게 되었을 것을 알기 어려울 것입니다. 제77해병대는 미국,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 프랑스, 네덜란드, 뉴질랜드의 제국과 우리 한국 해군장병으로 구성된 병력으로써 우리의 해역을 봉쇄하는 동시에 이를 嚴切히 지켜주었고 알몬드소장 지휘 하에서 제10군단을 인천에 상륙케 한 것입니다. 미국 제1해병대와 육군 제7사단과 한국 육해군의 합동으로 稀有한 공적을 이루어서 그 결과로 민국정부의 선발대가 오늘 수도 서울에 입성하는 길을 열게 된 것입니다.
순국장병들의 유족에게 대해서 무슨 말로 위로하여야 할지 어려웁니다. 그러나 이 장병들이 목숨을 바쳐서 국가의 자유를 보호하였고 따라서 세계의 자유를 보호하는데 공헌이 된 것입니다. 그 유족들의 자손과 가장과 동생들은 죽음으로써 모든 사람의 자유를 위하여 목숨을 바친 것입니다. 더욱 UN군으로 보아서는 한국은 자기 나라에서 거리가 멀고 또 생소한 것입니다.
여기서 견딜 수 없는 진흙과 먼지속에서 온갖 고생을 당하며 혹은 우리가 왜 여기서 싸우는가 마음속을 생각했을 분도 없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유의 군병으로서 죽음을 주저하지 않고 나가서 자기의 나라를 위하여 생명을 바칠뿐만 아니라 세계를 정복하려는 공산군의 침략계획에 위협을 느끼고 있는 모든 나라에 의해서 싸운 것입니다. 이렇게 싸우는 중에 그들은 우리 한인을 위하여서도 생명을 바치게 된 것이니 이는 우리 한인들이 국가와 독립을 수호하는 정신이 어느 나라 사람에게도 못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번 전쟁으로 말미암아 우리나라는 파괴되고 파국 되었으며 또 불에 타서 우리는 재건과 구제에 대한 거대한 문제에 당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공산주의 괴수들이 우리 국민과 촌락과 □□국가에 대해서 헤아릴 수 없는 손해를 준 것입니다. 그러나 민국정부와 국민은 살육과 약탈을 감행한 자와 그들에게 끌려들어간 자를 분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리하여 □□수단을 쓰지 않을 것입니다. 죄를 범한 자는 체포될 것임으로 법에 의해 처벌될 것이나 아무 처단도 없이 무법하게 넘어갈 것은 아닙니다. 이전에 공산주의자가 되었든지 또는 공산주의자에게 강제로 끌려서 그들에게 봉사한 사람은 누구를 물론하고 항복하고 죄를 자백한 후에 장차 우리 국민의 복리를 위하여 일할 수 있도록 용서를 받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 대한민국은 1949년 제네바회의에서 협정된 제4조에 조인한 나라로서 귀순자와 포로는 그 법에 따라 처리될 것입니다. 그러나 동포를 잔인한 방법으로 괴롭힌 자들에게 내가 경고하고자 하는 바는 살인·방화와 반역행동으로 국가를 전복하려는 자를 다스리는 법은 준엄한 것이며 이 법은 반드시 실시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화 속에서 시련을 당하고 있는 중 국제연합을 통해서 우리를 도와준 모든 국가와 그 국민에게 대해서 나는 우리 국민과 아직도 해방되지 못한 불행한 동포를 대신하여 심심한 감사를 표하며 특히 현지에 와 있는 UN한국위원단 신사숙녀에게 경의를 표하여 마지않는 바입니다. 우리가 얻은 찬란한 승리와 정의가 개가한다는 이 새로운 증거를 위하여 나는 하느님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제목 제8회 30차 국회 본회의, 38선 북진문제에 대해 유엔총회에 메시지를 보낼 것을 가결
게재지명 민주신보
게재일자 1950년 10월 02일
날짜 1950년 9월 30일

제30차 국회 본회의는 30일 상오 10시 반부터 신의장 사회로 비공개리에 개의되었는데 환도를 앞두고 산적된 제반 안건 중 경찰원호법안의 제1독회를 마치고 전국의 급전적인 호전에 따라 피난민의 귀향 수송에 있어서 환자와 노약을 우선적으로 취급하라는 정부에 대한 건의안을 가결하는 동시 9월 20일부로 정부서 제출된 공무원 임시등록법안을 심의하여 원안대로 통과시켰다.
그리고 전 세계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는 38이북 진격문제에 관하여 민의를 대표하여 당당한 권리를 주장하는 국회의 태도를 UN총회에 보내는 메세지로써 표명할 것을 만장일치로 가결하였는데 제안자는 鄭一亨, 池靑天, 徐珉濠 외 9의원으로 되어 있으며 동 메세지 내용은 다음과 같다.
▵UN총회에 파견된 한국 대표단의 제출한 8항목을 즉시 실현하기를 요청한다.
▵38선 돌파 작전을 즉시 단행하여 통일자유의 한국을 실현할 것을 요청한다.
▵한국의 통일 독립에 장애되는 일절 행동을 절대 배제하며 대한민국의 주권을 존중할 것을 요청한다.
▵무수한 전재민의 구제와 한국의 부흥과 재건을 위한 즉각의 조치를 요청한다. 
 

 

 

제목 이승만 대통령, 주택난 해소와 신생활운동에 대해 공고문을 발표
게재지명 경향신문
게재일자 1950년 10월 04일
날짜 1950년 10월 2일

李대통령은 2일 당면한 주택난 해소 응급책에 힘쓸 것이며 국가 신건설 시대에 있어서 새 정신 새 결심을 가지고 새 생활로 광범한 길을 찾아나가야 될 것이라는 뜻의 공고문을 발표하였는데 그 전문은 다음과 같다.
“모든 전재민 중 가옥 파상으로 겨울에 얼어 죽게 될 동포들과 다 같이 살아야 하겠으므로 식량은 본국 소산과 우방들의 원조로 굶는 사람이 없을 만큼 노력하고 있는 중이나 동사 지경에 빠진 동포들을 살게 하기에는 거처할 처소가 가장 긴급한 문제이다. 정부 관공리부터 방 한 칸이나 혹 한 두 사람 거처할 자리만 있을지라도 다 채워서 빈자리가 없게 만들어야 될 것이고 적산 가옥에 든 사람들은 더욱이 거처 없는 사람을 청해서 같이 살게 해야 할 것이며 그렇지 않으면 거주권까지 물시해서 공심가진 사람들에게 맡겨서 빈자리가 없도록 만들 것이고 모든 가옥은 일일이 조사해서 인분이나 다른 추잡한 냄새가 없도록 만들고 DDT를 무료로 얻어서 물 것이 없게 해야 될 것이고 청쇄경결해서 위생상 손해가 없도록 할 것이며 공무원의 관저로 쓰던 집은 다 물시해서 다시는 관저로 쓰는 집이 없도록 할 것이니 공무원들은 각각 그들이 있는 집에 여러 사람들을 청해서 같이 살게 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다른 적은 집을 얻어서 옮기든지 할 것이니 정부 각원과 국회의원들도 일체로 시행하여야만 될 것이다.
정부 대소 공무원이나 국회의원이나 민간 사회에서나 뇌물을 주고받는 자는 일검할 것이오, 정부 물자와 외국 원조품을 도둑질하거나 사사로이 주고받거나 하는 등 모든 협잡 습관에 걸려서 증명되는 자는 그 죄의 다소 경중을 물론하고 다 일률로 군법 처벌할 것이니 관민은 물론하고 다 일제히 경성해서 후회가 없게 하기를 권고하나니, 이 글 보는 사람은 모든 사람에게 일일이 일러주어 이 국가 신건설 시대에 새 정신 새 결심을 가지고 신생활로 광명한 길을 찾아 나아가야 될 것이다.
원조물자나 정부 재산이 암시에 나는 것을 보거든 즉시 경찰에게 보고해서 당국의 조사로 그 소종내를 알아서 죄범을 찾아서 징벌할 것이고 소종내를 밝히지 못하는 자는 그 벌을 피치 못할 것이니 극히 조심해서 이러한 죄에 걸려서 생명을 잃는 사람이 없도록 할 것이며 범죄자를 알아 보고한 자는 증명된 후에 상당한 상급이 있을 것이다.”
단기 4283년 10월 2일
대한민국 대통령 이승만

 

 

제목 이승만 대통령, 겨울철 연료대책에 대해 담화를 발표
게재지명 서울신문
게재일자 1950년 10월 04일
날짜 1950년 10월 2일

2일 이대통령은 북한괴뢰군의 침격으로 별항과 같은 여지없이 파괴된 주택문제와 동시 앞으로 절박한 겨우살이에 대한 연료대책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특별담화를 발표하였다.
“신국가 신생활을 창시하는 초대에 있어서 화목으로 음식을 익히고 방을 덥게 하는 연료를 석탄이나 토탄으로 쓰지 않고는 생활 개량이 영영 무망할 것이오 산림을 보호해서 금수강산을 화려하게 만들려면 산림을 작벌하고는 될 수 없을 것이고 산림을 보호하지 못하고는 산의 사태를 막을 수 없어서 좋은 농지와 전답이 물에 씻겨서 강과 바다로 들어가는 것을 막을 수 없을 것이며 사태가 밀려나오는 것을 두고는 우리나라 강과 시내를 깊이 파고 양편에 담을 쌓아서 농지와 건축 기지를 만들어 낼 수가 없을 것이므로 무슨 고난을 당하든지 식목하는 법을 숭상하는 동시에 시행해야 될 것이다. 금년은 다행히 우방의 원조물자를 의뢰해서 이 법을 엄절히 시행할 수 있을 터이니 공유지나 사유지의 수목을 하나라도 베는 자는 범법으로 다스릴 것이니 관민을 물론하고 장작이나 통나무를 사서 화목 쓸 생각을 잊어버려야 할 것이고 그 대신에 우리나라에 무진장한 석탄과 토탄을 캐어다가 시내에 많이 저축해 놓아서 연료문제를 한 번 해결한 후 영구히 준행하기를 결심해야 되겠으니 추수 후에 땅이 얼기 전에 토탄을 캐어다가 도처에 쌓아 놓고 각각 자기 집에 과동할 계책을 만들며 또 연료가 없어서 곤란을 당하는 동포들에게 저가로 팔아서 다같이 살자는 정신을 발휘해야만 될 것이다. 구습에 젖은 사람들이 공유지나 사유지에 가서 좋은 수목을 보는 대로 베어가는 것을 막기가 어려울 것이나 이 기회를 타서 새 길을 찾아 나아가려는 정책이므로 이 의도를 준행해야 될 것이다.
헛되이 여러 가지 핑계를 찾거나 남을 원망하지 말고 좀 부지런히 힘만 쓰면 석탄을 사서 일부로 져다가서라도 적은 경비로 넉넉한 연료를 쓸 수 있는 것이므로 금년 추수 후에는 곧 토탄을 캐어 내서 사람마다 당지에 가서 싸게 사서 등에 져다가라도 말려 가지고 풍족히 쓰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미리 결심하고 각각 자비로 불 땔 것을 마련해야 될 것이며 그렇지 않으면 많은 고생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정부 당국은 토탄과 석탄을 많이 수입 해다가 쌓아 놓아서 싼값으로 민간에서 사다 쓰기에 편리하게 할 것이며 금년 겨울부터는 이북의 좋은 석탄을 철도와 각 공장에 쓰게 될 것이니 기타 무연탄은 사람마다 부지런만 해서 진흙 혹은 해초 같은 것을 섞어서 덩어리를 만들어 놓으면 밥 짓기도 좋고 온돌에 때면 오래 덥게 되니 이것을 관민이 일심으로 실행해 주어야만 될 것이며 가장 대도회지에서는 당국들이 더욱 노력해서 시기를 잃지 말고 많이 준비해 쌓아 놓아야 고생하는 사람이 적을 것이다.”

 


 

제목 이승만 대통령, 국회의원들과의 면담에서 주택문제 대책을 언명
게재지명 동아일보
게재일자 1950년 10월 05일
날짜 1950년 10월 2일

현재 서울에 머물러 있는 국회의원 27명은 시청 3층 국회연락처에 집합하여 2일 하오 1시 이대통령을 방문하고 식량과 주택에 관한 시국대책을 문의한 바 있는데 이날 회견에 참석하였던 崔國鉉의원의 말하는 바에 의하면 이대통령은 이날 국회의원에게 다음과 같은 대책을 언명하였다 한다.
1. 전재민 주택은 한 세대에 6평씩 건조케 하고 각 부 장관 관사는 전재민에게 주는 동시에 장관은 작은 주택으로 이주케 할 것이다.
1. 쌀 배급은 남한 전역에 걸쳐 1인당 2홉씩 1개월 분을 확보하고 있는데 방금 북한 1천만 동포에 대한 식량을 준비 중에 있다.
1. 배급식량을 부정처분하는 자는 유서 없이 포살형에 처할 것이다.

 

 


제목 申翼熙 국회의장, 국회의 서울 환도에 대한 담화를 발표
게재지명 민주신보
게재일자 1950년 10월 03일
날짜 1950년 10월 2일

국회에서는 선발대에 이어 수 일간 전원 환도하기로 되었는데 의장 신익희씨는 환도에 際하여 2일 요지 다음과 같은 담화를 발표하였다.
“국회는 3개월 동안 각지로 전전 피난하면서도 정부를 誠力을 다하여 협조하고 때로는 苦言으로 편달하였으며 대외적으로는 UN에게 여러 일을 호소하고 요청함에 나태하지 아니하였으며 대내적으로는 각종 전시 예산과 법규를 승인 통과하는 한편 국방장병과 각지 전재 피난동포들과 및 후방 병원의 상이장병들을 시시로 위문 구호하는 등에 진력하여 왔다.
지금 서울은 탈환되어 정부와 국회가 차제로 환도하여 역적도배의 총 붕괴 과정으로 들어가는 판이지만은 아직도 상실한 국토를 완전히 회복하여 백두산 산봉과 두만강가역에 태극기 휘날리게 되도록까지에는 국내 국제적으로 군사 정치적으로 우리는 일층 더 곱절의 노력과 분투하며 고통과 희생을 需要한다.
그 동안 곤란한 처지에서 우리 국회와 피난동포들이 부산시민 여러분에게 많은 폐를 오랫동안 끼친 것을 충심으로 감사드리는 한편 앞으로 여전히 계속하여 우리 국민 동포들의 기대에 틀리지 않도록 미력이나마 다하기 위하여 노력할 것이다. 임무 관계로 피난동포들보다 한 발 먼저 떠남을 널리 양해할 줄 믿는다.” 

 

 

 
제목 국회무사환도 금7일부터 본회의재개   
게재지명 동아일보

발행년월일 1950-10-07   

6.25전쟁 이후 부산에서 회의를 거듭하고 있던 대한민국국회는 이경 후 100일만인 재작5일 하오 6시 신국회의장을 비롯하여 대부분 의원이 무사히 서울에 환도하였다. 이와 아울러 국회사무처에서는 의사당수리와 의원숙소정비에 분망하고 있으며 자6일 상오 11시 재경의원을 합한 160명 의원들은 신의원 사회하에 시청 회의실에 집합하여 개회절차에 관한 비공식회의가 있었는데 이 결정에 의하여 동7일 상오 10시 부터는 병화에서 벗어난 중앙청의사당에서 감격적인 본회의가 계속될 것이라한다. 

 

 

1950년 10월 08일자 동아일보

지난 5일 환도한 대한민국국회는 작7일 상오 10시 반 이경 후 100일 만에 의사당에서 감격에 넘치는 본회의의 첫막을 열었다.

이번 회식은 제8회임시회 국회제30차본회의로서 이날 회의에 출석한 의원은 신의장을 비롯하여 116이었으며 통과된 안건은 1. 유엔군 총사령관 맥아더 원수와 미군24단총사령관 띤 소장에게 대한민국 일등훈장을 수여할 것과 2. 대한민국 전국민에게 국회로서 사과와 위문의 의사를 발포할 건 3. 수도탈환에 직접 참가한 연합군 각사단 장병에게 감사의 멧세지를 전달할 것 등 3개 안건이었다.

 

 

제목 제8회 32차 국회 본회의, 申翼熙 국회의장의 사임을 반려하기로 결의
게재지명 서울신문
게재일자 1950년 10월 09일
날짜 1950년 10월 8일 

국회 제32차 본회의는 8일 상오 10시 40분 申의장 사회 하에 개회되어 동 회의의 토의 안건으로써 ‘官紀肅正에 관한 특별조치법안’, ‘공무원 신분에 관한 특별조치법안’ 그리고 ‘전후재건에 관한 특별위원회 설치의 건’과 아울러 7일의 제31차 회의에서 동의되었던 ‘UN政委에 메시지 발송의 건’, ‘전재지구 시찰을 위한 휴회의 건’ 등 5안건이 상정된 뒤 7일의 제31차 회의에서 가결되었던 수도 서울을 탈환한 ‘공군 제5사단, 해군 제1사단 장병에게 보내는 메시지’, ‘故 딘장군에 보내는 추도사’(일등 명예훈장 증여), ‘맥아더장군에 보내는 감사 메시지’(일등 명예훈장 증여) 그리고 ‘서울시민에게 보내는 위로 메시지’ 낭독이 있어 무수정 통과시켰다. 이어서 朴국회사무총장으로부터 신익희 국회의장 및 曺奉岩 부의장을 비롯하여 각 분과위원장의 사임서가 제출되어왔다는 보고가 있어 일시 회장은 자못 긴장한 바 있어 드디어 이것을 수리하고 임시조치로 한시 의장에 李鏞郁의원이 당선되어 회의를 진행하게 되었는데 사표를 제출한 신익희 의장으로부터 국제공산제국주의와 만고의 역적 김일성 도배의 죄악으로 벌어진 금반 사변의 사전 준비와 사후조치에 있어서 십분 完業케 할 기본 임무를 수행하지 못함을 겸허한 태도로 사과하면서 이에 관해 절실한 도의적 책임감을 느낌으로 감연히 그냥 있을 수 없음으로 의장의 직임을 사퇴한다는 사임 인사가 있어 이것을 중심으로 김□□의원을 비롯하여 金光俊, 金從會, 禹文 등 諸의원으로부터 申의장 사표 제출은 그의 도덕적 양심의 발로인 의사표시로써는 정당하다고 하겠으나 현하 내외의 중대한 시국에 있어 申의장 사표 수리는 부당하다는 열렬한 진술이 있었으므로 드디어 李鍾郁 임시의장은 이것을 거수 가결에 부쳐 재석의원 117명 중 76대 1로써 신의장의 의장 사임수리를 각하시키고 하오 1시에 폐회하였다.  

 

 

 

제목 이승만 대통령, 노획한 군비물자의 유용을 경고하는 담화를 발표
게재지명 서울신문
게재일자 1950년 10월 09일
날짜 1950년 10월 8일

李대통령은 노획한 군비물자에 대하여 8일 요지 다음과 같은 담화를 발표하였다.
“이번 전쟁에 노획한 군비군물과 기타 모든 물자를 일일이 조사해서 역사적으로 영구히 보존할 것도 있고 다시 군용에 쓸 것도 있을 것이니 노획한 군경장교들의 지휘 하에 物目을 꾸며 증명을 소상히 만들고 물자를 보유해서 한가지라도 누락되거나 유실되는 것이 없도록 할 것이며 혹 군인이나 관민 중에 누구든지 부정행위로 뺏어 내거나 사용하다가 잡히는 자가 있으면 물건의 대소와 범죄의 경중을 물론하고 군법으로 엄징할 것이니 일반 동포는 이를 분명히 양해해서 보호하며 공익에 충용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부역처리법 회부

1950년 10월 10일자 동아일보

국회에서는 6.25사변 이후 괴뢰들에게 협력한 부역행위자를 처단함에 있어 사감과 격분에 넘침이 없이 공정관대하게 처리하기 위하여 9월 28일 제29차본회의에서 부역행위특별처리법을 통과하여 지난 7?정부에 회부하였다.

 

 

 

제목 제8회 34차 국회 본회의, ‘官紀肅正에 관한 특별조치법안’을 보류하기로 결정
게재지명 서울신문
게재일자 1950년 10월 10일
날짜 1950년 10월 9일

국회 제34차 회의는 9일 상오 10시 50분 중앙청 의사당 회의실에서 의장 申翼熙씨 사회 하에 개회되었는데 개회 벽두에 申의장은 33차 회의에서 신익희씨의 의장 사퇴 문제가 각하됨으로 인하여 의장직에 재취임 하게 된데 대한 인사의 말이 있은 다음, 동 회의의 토의 안건으로써 ‘관기숙정에 관한 특별조치법안’, ‘UN총회에 메시지 발송의 건’, ‘공무원 신분에 관한 특별조치법안’ 그리고 ‘전후재건에 관한 특별위원회 설치의 건’, ‘전재지구 시찰을 위한 휴회의 건’ 등의 諸안건이 상정되어 회의는 진행되었는데 ‘관기숙정에 관한 특별조치법안’은 尹吉重 법제사법위원장의 법안 심사보고에 의거하여 토론이 전개된 바 동 법안은 공무원의 최저생활이 확보되지 않고 있는 현 사태 하에 있어서 이 기본 문제의 해결에 대한 조치 없이 동 법안을 통과시키는 것은 본말전도이라는 의견이 압도적이어서 申의장은 이것을 거수 가결에 부친바 임석 의원 115명 중 73대 32로 동 법안은 보류하기로 결정하였다.
이어서 UN총회에 보내는 메시지 초안 낭독이 있어 검토하게 된 바 내용과 자구 수정 관계로 李判烈의원 외 2명의 의원으로써 초안 심사위원회를 구성하고 보류 결정키로 하였다.
다음에 ‘공무원 신분에 관한 특별조치법안’은 윤길중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의 심사 보고에 의거하여 토의된 바 내용에 약간의 결함이 있다 하여 법제사법위원회에 위탁하여 법안을 다시 심사하고 次회의에 다시 보고 심의키로 결정한 후 하오 1시 폐회하였다.
▹국민에 호소함
수도 서울을 불법 侵占한 공산도배를 물리치고 3개월 만에 입성하게 된 국회는 33차 본회의에서 수도 서울 회복에 際하여 전 국민에게 호소한다는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채택하였다.
▵수도 서울 회복에 제하여 전 국민에게 호소함
사랑하는 서울시민 및 전국동포 형제자매 여러분! 잔학무도한 공비가 학살한 시체가 산을 이루고 방화와 약탈로 초토화한 서울의 거리에 3개월 만에 다시 돌아와서 자녀를 잃은 부모, 부모를 학살당한 자녀들이 울고 부르짖는 것을 보게 되니 兩目慘憺 끝없는 슬픔과 함께 神人共怒할 공비의 만행에 대하여 가슴에서 치미는 분노와 통한을 억제할 수 없는 바이다. 그러나 우리는 한갓 슬퍼하고 울기만 하여서는 안된다.
이 국민적 참화를 계기로 전 국민은 ‘국민 각개의 幸과 불행은 언제나 국가의 운명과 함께 한다’는 것을 철저히 깨달아서 모든 개인의 사심을 떠나 국가에 바치는 희생적 정신으로 총역량을 기울이어 구국의 성업에 전력을 다하면 우리의 숙원인 국토통일과 함께 자손만대에 전할 이 나라의 터전을 奠定할 것이다.
그리되면 말할 수 없는 금번의 참화도 이른바 전화위복이 될 것이다.
이번 사변은 초토화한 모든 시설을 부흥 재건하는데 대하여 국제적으로 원호와 구조도 있을 것이나 이것을 가장 효과적으로 이용하여 사변 전의 원상을 회복할 뿐만 아니라 일층 힘찬 건설로 매진하려면 우리 전 국민의 자력갱생하는 총체적 노력이 절대로 요청되는 바이다.
금번 사변에 대한 사전의 준비와 사후의 조치에 대하여 본 국회는 국정 일체를 감시할 처지에 있으면서 그 감시를 충분히 하지 못한 관계로 동포의 피해가 더한 점이 있다면 깊이 미안하고 죄송히 여기는 바이다.

 

 

 

제목 제8회 35차 국회 본회의, 戰災지구 시찰을 위해 15일간 休會하기로 결정 
게재지명 서울신문
게재일자 1950년 10월 11일
날짜 1950년 10월 10일

국회 환도 제3차 회의(35차 본회의)는 10일 상오 11시 중앙청 의사당 회의실에서 申의장 사회 하에 개회되었다. ‘전후 재건에 관한 특별위원회 설치의 건’을 토의한 바 이것은 행정 각 부처에서 각 전문위원회 같은 것을 구성하여 능히 할 수 있는 문제이므로 국회의원으로서 조직할 필요가 없다는 견지에서 동 안의 동의를 부결시켰다. 그리고 다음 안건으로써 ‘전재지구 시찰을 위한 휴회의 건’ 토의에 있어서 먼저 금번 국회 회기 일자를 10월 22일로부터 11월 20일까지 연장하자는 金鍾順의원의 동의를 가결한 다음 휴회는 10월 13일부터 27일까지 15일간으로 하기로 결정하고 하오 1시에 폐회하였다. 
 

 

 

제목 제8회 36차 국회 본회의, 부역 의원 숙청에 관한 특별위원회 설치 논란
게재지명 경향신문
게재일자 1950년 10월 12일
날짜 1950년 10월 11일

昨 11일 국회 제36차 본회의는 상오 11시 중앙청 제1회의실에서 申의장 사회로 개의, 먼저 池蓮海의원의 제안인 양곡대책 급속 수립 촉구에 관한 건을 상정하여 朱농림차관의 “83년도 추곡매상환 총량은 520만 석으로 하며 매상 가격은 1叺당 6,000원이며 6할은 현금 교부 4할은 미곡 증권을 교부키로 하였으며 명년 하곡 매상량은 80만 석을 예상하고 있다”는 대체 보고가 있었는데 이에 대하여는 尹농림장관의 귀경 즉시 구체적 방안을 보고할 것이라는 朱차관의 답변에 의하여 尹장관 출석 시까지 보류되었다.
다음 郭尙勳의원 외 10의원 제안인 부역의원 숙청에 관한 특별위원회 설치의 건을 상정하고 북한괴뢰집단의 불법 侵寇로 인하여 수도 포기 이래 서울에 잔류한 국회의원 중 이적행위를 감행한 자에 대하여 국회는 특별위원회를 설치하여 신속히 흑백을 결정함으로써 국회의 健全權을 확립할 것을 건의한 바 이에 대하여 다수 의원의 원칙적인 찬성은 있었으나 특위 설치 문제에 갑론을박이 있은 다음 결국 鄭在浣의원의 제안인 “본건은 다음 10월 28일 계속 개의할 때까지 보류하고 휴회 중 의원 각자가 자성할 기한을 두어 스스로가 태도를 결정하도록 하되 그 후라도 특별위원회 조직의 필요가 있으면 조직하기로” 낙착 가결 통과하였다. 
 

 

 

제목 제8회 37차 국회 본회의, 정부의 양곡대책 보고에 대해 토의
게재지명 서울신문
게재일자 1950년 10월 13일
날짜 1950년 10월 12일

국회 환도 제8차 회의(37차 본회의)는 12일 상오 10시 50분 중앙청 의사당 회의실에서 申의장 사회 하에 개회되어 의안으로써 ‘양곡대책 조속 수립에 관한 건’과 정부에서 제출된 ‘침범지역 내 금융기관 예금에 관한 특별조치법안’의 2안건이 상정되었다. 의안 토의에 앞서 尹농림장관으로부터 양곡정책, 崔사회부차관으로부터 전재동포의 구호대책, 白문교부장관으로 교육재건대책, 金재무차관으로부터 현물세 징수 실시에 관한 대책, 金상공장관으로부터 물가 및 전력·석탄 등에 관한 대책 등 각각 보고가 있었다.
특히 尹농림장관의 양곡대책 보고를 위요하고 많은 질의 토론이 있었는데 尹농림장관은 동 보고에서 정부로서는 가급적 많은 양곡을 매상 수집하여 앞으로 도시에 있어서는 매인 당 1일 2합의 기본 배급을 실시할 방침이라고 언명하고 그 대책으로써 금년도 양곡 수집 목표는 670만석으로 계상하고 있는 바 그 중 70만석은 ECA 원조 그 나머지 600만석 중 80만 석은 명년도 하곡수집 520만석은 농지개혁에 의한 상환(200만석), 현물세(140만석), 일반 매상(180만석)으로 할 계획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식량 긴급대책으로써는 이미 인천항에 전후 9,000톤이 입하하고 앞으로 8만 톤이 입하할 예정이라는 보고가 있었다.
각 장관, 차관의 보고가 끝난 뒤 ‘침범지역 내 금융기관 예금에 관한 특별조치법안’이 상정되어 동 법안을 심사한 재정경제위원회로부터 심사 보고가 있어 동 보고를 중심으로 토론하게 된 바 이것은 비공개리에 진행되었는데 동 법안은 일부 삭제 수정으로써 통과된 것으로 보인다.
국회에서는 이상으로써 환도 제8차 회의를 끝마치고 전재지구를 시찰차 13일부터 27일까지 휴회하기로 되었다.

 

 

전후 행정계획 각부장관 국회서 천명

1950년 10월 13일자 동아일보

 12일 37차 국회본회의에서는 각부장관의 전후 행정계획을 청취하고 이어 침범지역내의 금융기관예금에 관한 임시조치법을 토의하였는데 이날 회의에서의 각장관 연설요지는 다음과 같다.

-윤농림장관

금년도 추곡 수확고는 작년에 비하여 약 3할 감수로 2400만석이 예상된다. 양곡행정의 원활을 기하기 위하여 금년도는 520만석을 수집할 계획으로 200만석은 농지개혁에 의하여 140만석은 현물세로, 160만석은 일반매로 상오로 수집할 계획이다. 매상 가격은 일입 6000원으로 그 중 6할은 현금으로 즉시 지불하고 4할은 증권을 발행하였다가 오는 4월 1일 부터 현금 교환할 작정이다.

-최사회부차관

이재동포 구호대책은 국내 생산이 거의 정지된 만큼 지난 7월 25일 유엔 결정에 의한 유엔 한국구호 기구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데 구호 한계는 생산건설부 면으 ECA에서 하게되고 각 개인의 재산파양에 한하여 유엔구호부에서 하게 되었는데 방금 정부에서는 유엔대표부와 긴밀한 연락을 취하고 있다. 식량은 유엔기구에서 이미 6000둔이 수입되었고 앞으로 8만둔이 계속 수입할 것이다.

-백문교부장관

교육문제는 교실, 교과서가 거의 소실되었고 교실이 다수 상실되어 교육재건에 커다란 난관이 가로 놓여있는데 이에 대하여는 국련과 유네스코를 통하여 재건에 노력할 계획이다. 그리고 교원은 될 수 있는데로 유력한 가정부인을 동원하여 교육에 협조케하는 동시에 학도 호국대를 강화하여 사상교육에 치중할 계획이다. 이북 교육에 대하여는 방금 5도지사를 통하여 세심 연구중이며 교육목표는 독송 보다는 실험에 치중하여 연구와 판단력을 양성시킬 작정이다.

-김재무차관

금년도는 과거 지주의 지세납부에 대치하여 경작자로 하여금 1할의 현물세를 납부케함으로써 국가재정과 식량대책을 원활케 발 방침을 세우고 있다.

-김상공부장관

전력과 석탄, 수도, 방적 등 우선 일상생활에 직접 관계되는 기구에 복구에 총력을 경주하고 있는데 전력시설은 대부분 파양을 면하여 석탄만 공급되면 복활될 것으로 노력중에 있으며 더욱이 이북전력을 불원사용하게 된다면 이 문제는 완전 해결될 것이다. 기타 석탄, 의료 등에 관하여는 긴급대책으로 국내 각지의 재고를 조사 중에 있으며 부족한 수는 유엔 원조와 외국품 수입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으나 상공부로서는 국내 생산 기구의 복구확충에 최대의 연구와 노력을 하고 있다.

 

 

제목 신익희 국회의장, 유엔한국임시위원단의 북한 행정문제 결의에 대해 담화를 발표
게재지명 서울신문
게재일자 1950년 10월 17일
날짜 1950년 10월 16일

申국회의장은 16일 상오 11시 중앙청 의장실에서 국회 기자단과 회견하고 최근 UN한위 비밀회의에 있어서의 한국문제 결의에 대하여 요지 다음과 같은 담화를 발표하였다.
“국회로서는 이번 제5차 UN총회에 대해서 또는 국회에서 파견한 예방사절단 및 정부대표단에 대해서도 의견을 지시하였을 뿐만 아니라 또한 국회 결의로써는 누차 의사를 표명한 바도 있지만은 이북에 있어서 군사 행동이 종식하는 直時로 대한민국의 법률에 의지한 통치를 행사할 것과 또한 直時로 민주주의 선거에 의하여 현재의 대한민국 국회 공석을 보충함으로써 우리 국민의 전체 숙원인 국토통일을 실현하기로 주장하였고 결의했던 것이다.
국제적 의견 여하와 또한 국내의 어떠한 의사 표시라도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의 결의를 경유치 않고서는 실현되지 아니할 것이라는 것을 특히 강조한 바 있었다.”
다음에 申의장은 국회의원 보선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금번 사변 후 최초에 남하한 국회의원은 147명인데 서울에 잔류했다가 탈출하여 其後 국회에 참가한 자 26명이었고 사망자 1명, 행방불명자 23명이 되고 있다. 의장으로서는 내무당국과 군당국에 대해서 행방불명자의 조사를 위촉하고 있다.”

 

 

 

제목 이승만 대통령, 유엔한국임시위원단의 북한 행정문제 결의에 대해 기자 문답
게재지명 서울신문
게재일자 1950년 10월 18일
날짜 1950년 10월 17일

이대통령은 17일 상오 12시 경무대에서 환도 후 처음으로 국내 기자단과 회견하고 다음과 같은 일문일답을 하였다.
(문) 외전이 전하는 바에 의하면 탈환한 북한지역은 UN 신탁관리 하에 맥아더장군으로 하여금 통치권을 부여케 하리라고 하는데 이에 대한 견해 여하?
(답) UN한국중간위원회의 결의안은 UN의 정책이라고는 볼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민중이 대한민국을 지지하고 있지 않다는 공산당의 선전모략을 오해한데 기인한 것으로써 해석할 수 있는데 UN으로서는 남북을 통일한 한국 정부의 수립만이 궁극의 목적으로 되어 있다. 한국의 독립은 1948년 5·10선거에 의하여 선포되었고 민국정부는 UN의 인정 및 가맹국의 개별적 승인을 받은 한국의 유일한 법적 통일정부인 것이다. 그러므로 38선이 끊어지고 소련이 조종하던 공산당이 한국 영토에서 철거되면 UN의 목적인 한국의 통일은 스스로 성취되는 것이다. 한국의 통일문제는 한국 국민만이 논의할 수 있는 것으로 타국이 간섭함을 용허할 수 없는 것이다. 지금에 와서 UN이 총선거를 실시하여 한국의 통일정부를 수립한다고 하는 것은 UN의 근본정신에 모순되는 것이며 불필요한 것이다. 우리는 한국 백성의 자유권리를 침해하는 여하한 외국의 간섭도 받을 수 없는 것은 물론이다.
(문) 국토 재건사업에 관한 대책은 어떠한가?
(답) UN 자체로서도 우리의 상상 이외로 많은 물자를 제공하여 전후 파괴된 제반 국가시설을 복구할 계획을 세우고 있는 모양이나 무엇보다도 우리 국민 스스로가 부지런히 일하여 외국 사람으로 하여금 한국을 원조하여 주어야만 하겠다는 인식을 갖게 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제목 국회, 국립극장을 의사당으로 사용키로 결정
게재지명 서울신문
게재일자 1950년 10월 18일
날짜 1950년 10월 18일

국회는 공비 침범 중에 중앙청 의사당 일부가 파손된 관계로 앞으로 태평로 국립극장을 사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국회 의사과에서는 18일 국립극장에 이사하기로 되었다고 한다. 

 

 

 

제목 이승만 대통령, 북한지역 통치 구상과 서북청년단의 적극 활용 등에 대해 담화를 발표
게재지명 경향신문
게재일자 1950년 10월 24일
날짜 1950년 10월 22일

22일 이대통령은 전 국민에게 다음과 같은 간곡한 諭示를 보냈다.
“단군 기자의 유업으로 4천 여 년 역사적 민족으로서 40년간 적국의 압박 하에서 고통을 면하게 된 후 소련의 세계정복주의 하에 공산당 괴뢰악마의 반역행동으로 소위 38선을 한정하고 남북을 강제로 분열시켰으나 이남에서는 총선거를 실시하고 민주정부를 수립해서 세계 문명국가에 승인을 얻어 날로 진전시켜 나가는 중 주야로 분투한 바는 우리의 힘으로 남북을 통일해서 이북동포들을 하루바삐 속박과 압제 하에서 해방시키려는 것이었고 또 이것을 뼈에 맺히고 피가 끓도록 주장해온 것이나 세계대세에 끌려서 우리가 뜻대로 못하고 기회만 기다리고 오던 중 이번에 공산도배들이 소련의 후원을 의지하고 대전쟁을 차려가지고 우리나라를 소련에 속국으로 만들고 우리를 타국의 노예로 만들려고 도처에서 살인방화를 일삼아 우리가 일시 危境에 이르렀던 바 연합군이 들어와서 소련의 침략을 방비하고 우리를 도와서 싸운 결과로 38선을 삭제시킬 뿐만 아니라 우리 국군이 승승장구해서 며칠 안에 압록·두만 兩江까지 밀고 올라가서 국토를 완전 회복할 것이니 이로써 우리 조상의 유업을 다시 회복시키고 이북동포를 비로소 해방시켜 완전무결한 통일국가로서 세계 우방의 원조를 얻어 破傷된 도시와 교량과 가옥과 공장을 일일이 복구시키는 동시에 공업과 상업을 발전시켜 신군가를 이루어 민국정부 밑에서 신생활을 영위하여 만세복리의 자유 기초를 굳건히 함으로써 자손만대에 영구히 강토를 遺傳케 하자는 것이 우리의 유일한 목적이니 이북동포들은 조금도 차별이나 方□이 없이 남북이 다 같은 권리와 직책을 분담해서 한 민족 한 족속의 정신과 행동을 동일히 지켜나가야 할 것이다.
국가의 통일은 강토를 합하느니보다 민심의 합동이 근본적 통일이 되는 것인 바 지나간 이조시대에는 정부에 사색파당이 있어서 서로 투쟁하는 중에 국세를 미약하게 만들었고 남북 민심이 분리될 만큼 된 것을 우리가 간담에 맺히는 유감사로 여기는 바이지만 우리가 지금 누가 잘하고 못한 시비를 캐려는 것이 아니고 다만 남북통일을 완수하는 벽두에 내가 이남 이북 동포들에게 한 말로 충고하고자 하는 바는 우리는 오늘부터 과거의 모든 폐단을 일소하고 3천만이 다 한 肢體요 한 가족으로서 서로 믿고 돕기로만 작정하고 사사 이해나 친소로 인연해서 조금이라도 서운한 생각을 가지고서는 우리가 또 日後 자손들에게서 면치 못할 죄명을 쓰게 될 것이다. 지나간 40년 동안 우리가 지옥생활을 당하게 된 것은 우리 민족이 합해서 다 같이 잘사는 민족정신을 잃어버리고 관민들이 각각 사심과 私情으로 동포를 해하며 나라를 결단내고라도 자기 혼자만 살려고 한 결과로 이렇게 되었던 것이다. 우리가 해내 해외에서 40년 동안으로 생명과 재력을 희생하며 애국애족의 義男義女들을 앞세우고 분골쇄신하며 勇鬪勇進하여 왔으나 불행히 지방구별을 고취하는 개인과 단체가 있어서 이것을 가지고 도처에서 싸우는 중에 애국남녀들의 통탄과 애국인사들의 비평을 면치 못하게 된 것을 누구나 한탄치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공산분자들이 남북인심을 분열시키기에 전력을 다해서 모든 악선전으로 사람의 마음에 독약을 넣어 주어서 지식이 빈약한 남녀의 마음을 離散시키도록 만든 것을 우리가 또한 명확하게 보고 아는 바로써 우리가 다 이것을 통분히 여기고 서로 계몽하여 서로 결탁해서 그러한 선동과 해독을 막지 않고는 우리 민족의 장래가 또다시 참담하게 될 염려가 있을 것을 주의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옛날에 문호를 닫고 우리나라가 동서남북이나 상하관민을 물론하고 한 덩어리와 한 뭉치가 되어 서로 보호하며 서로 제휴하지 않고서는 국권도 保持할 수 없고 국권을 보지하지 못하면 인민의 자유권을 누릴 수 없어서 필경에는 또다시 남의 노예가 될 것이니 우리가 이것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오늘 이 대전에 우리의 열렬한 피와 우방 군인들의 피를 흘리며 희생해서 성취하는 통일이 또한 무효가 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이때에 우리 부여족속의 모든 남녀들은 문벌이나 지위나 파당적 구별을 다 벽파하고 법률 밑에서는 모두 다 동등한 백성이오, 세계를 대해서는 다 한 족속의 결심으로 대접될 만큼 되어야만 우방의 추앙을 더욱 받을 것이오, 동시에 적국의 침략을 방비해서 우리 삼천리 강산에서 所産되는 물자와 우방에서 원조해 주는 물품을 이용하여 농업을 개량하며 공업과 상업을 세계에 발전시켜 부강한 국가로서 자유복락을 다 같이 누리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공산분자나 불평분자들이 무슨 선전이나 어떤 감언이설로 민족상 이간과 분열을 조장하는 일이 있으면 이에 대해서는 개인으로나 단체로나 이를 다 극복해서 이런 분자들이 의뢰할 곳이 없도록 만들어 놓아야 될 것이니 통일 벽두에 이 정신을 이남이북 동포들에게 일일히 알려주며 警醒고저 하는 바이다.
이 전쟁은 거의 다 歸正난 것이니 타국의 세력을 의지하고 민족을 包脅하여 남의 노예를 만들려고 하던 자 중 극렬한 분자들은 이북동포들이 다 철저히 알고 있을 것이므로 이런 분자들은 親子侄이나 형제들이라도 포용치 말고 국법대로 정죄해야 될 것이며 남의 선동에 따라다니던 자들이나 또는 包脅에 끌려서 복종하던 자들은 다 悔心改過하고 애국애족의 정신으로 국법을 지키며 직책을 행하기로 서약한 후에 다 해방시켜서 전과를 탕척할 것이다. 또 이북 남녀 중에 가정을 버리고 이남에 와서 風餐露宿하며 지내는 중 통일 촉성을 위하여 열렬히 분투노력하던 형제자매들이 도민회를 조직하여 自治自護하던 단체 중에서 명망 있는 지도자들을 택하여 5도지사의 임명을 주었으니 우선 해방되는 도마다 먼저 들어가서 치안과 후생을 주관함으로써 각도 당해 지사의 책임을 이행할 터이나 이에 대해서도 이북동포의 公議에 준행하기 위하여 도내의 민심이 정돈되는 대로 각 該 도민들의 자유분위기 속에서 UN 감시 하에 투표로 선정하도록 노력할 것이니 민정에서 하루바삐 민심을 정돈시켜서 선거방식을 행할 만큼 만들면 준비되는 대로 곧 지사 선거를 행할 것이오, 그 후로는 할 수 있는 대로 속히 국회의원을 인구비례로 10만 명에 한 사람씩 선거해서 국회의 자리를 채우게 할 것이며 서북청년단은 열렬한 청년지도자들 중에서 원만한 조직체로서 이루어진 이남청년단 중 한 부분이므로 통일 촉진과 반공투쟁에 다대한 공적을 가진 단체인 바 이 단원들이 전선 뒤로 들어가서 치안과 계몽과 조직 등등에 군경을 도와 적극 노력할 것이니 이북에 남아있는 모든 청년들은 다 이 청년단과 합동해서 不忠不義한 분자를 일일이 적발하여 당국에 부쳐서 법적으로 처리하게 될 것이며 도시와 촌락에서 국법과 생명 재산을 보호하기에 협의적으로 진행하되 민간에 강요하는 폐단이나 또는 법외에 행동은 일절로 금해서 범법행동은 계엄군법으로 처리하게 될 것이며 식량이 없어서 굶주리는 사람에게는 우선 정부에서 백미와 잡곡을 배급해서 구제사업을 착수할 것이나 一邊으로 추수를 부지런히 해서 금년에 추수되는 식량은 이남에서 실시하는 법안에 따라 2할이나 3할 정도는 지세 기타로 정부에서 수납하고 其外는 농민들이 다 차지할 것이며 추수가 지난 뒤에는 농지개혁법을 실시하여 농지는 이전 농주에게 돌리되 농주는 적당한 가격으로 정부에 팔고 정부에서는 그것을 법에 따라 농민들에게 분배한 후 공정가격으로 값을 다 주고 사는 사람은 완전히 자기의 소유로 만들 것이요 그렇지 못한 사람은 매년 얼마씩 갚아서 다 갚은 뒤에 자기의 소유가 될 것이며 농주들은 지가로 정부에서 채권을 받아서 그 채권으로 공장이나 기타 영업자금을 삼을 수 있도록 만들어 농민들에게서 대금을 다 받는 대로 이를 다 보상할 것인바 금년은 이미 늦어서 이를 시행할 수 없음으로 내년부터 이 법안을 실시하게 될 것이다. 이밖에 금융·상공 及 귀속재산에 관해서는 이남에서 행해 온 정부의 정책과 동일할 것이나 이에 대한 정부의 의도는 從次 발표되는 대로 이를 엄절히 준행해야 할 것이다.
끝으로 다시 부탁하는 바는 우리가 합하면 서고 나누면 쓰러진다는 것이니 이번 강제 분열로 인연해서 남북동포가 서로 애호하고 서로 협조하는 정신과 기맥이 전보다 더 공고하게 된 것을 다행으로 여기는 동시에 사람마다 이 정신과 기맥을 더욱 충실히 하기 위하여 남북동포들이 성심껏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제목 국회 본회의가 성원 부족으로 유회됨
게재지명 경향신문
게재일자 1950년 10월 29일
날짜 1950년 10월 28일

28일 속개된 국회 제8회 임시회는 금반 이전한 국립극장 대강당에서 개하였으나 其間 15일 간의 임시휴회로 각 의원은 재해지구 시찰차 귀향한 바 있어 이날 본 회의에는 교통 기타 관계로 귀경하지 못한 대부분으로 겨우 66명이 출석 결국 법적 성원 부족으로 본회의는 상오 11시 유회를 申의장이 선언하였다. 그리고 今 29일은 휴회하고 來 30일 상오 10시에 속개키로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