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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인천 키보드 2013. 6. 26. 14:57

 

                   세초연(洗草宴)

                       

                                                       조문명(趙文命,1680~1732), 학암집 권2

 

 

 

                  寸管那能 盡畵天  작은 붓으로 어찌 하늘을 다 그려 내리요?

                  於休盛德 百王前  아아! 성대한 덕은 백왕보다 앞서도다

                  十年始訖 編芸役  십년만에 실록 편찬의 일을 마치고

                  暇日初開 洗草筵  한가한 날에 세초 씻는 잔치를 막 열었네

                  晩後溪炊 當美饌  저녁에 계곡에서 밥지으니 맛난 음식이요

                  雨餘山水 勝嗚絃   비 온 뒤의 물소리는 거문고 소리보다 낫네

                  舊時簪筆 今如夢   지난날 붓을 들었던게 이제 꿈결 같은데

                  手閱成書 更泫然  직접 완성된 책을 보니 다시금 눈물이 흐르네

                                

숙종~영조때의 문신인 조문명(趙文命,1680~1732)이 숙종실록을 편찬한뒤 세초연에 참석하여 노래한 시(詩)이다. 세초연은 실록(實錄)의 편찬이 완료된 이후 사초(史草)나 초고(草稿) 등을 자하문(紫霞門) 밖의 조지서(造紙署)가 있었던 근처 세검정(洗劍亭) 앞 개천에서 세초한 뒤 차일암(遮日巖)에서 참여한 관원들에게 열어준 잔치. 세초(洗草)는 조선시대에 실록을 편찬한 다음 사초(史草)나 초고(草稿)들을 보통 물에 씻어 글씨를 지우고 종이는 재생, 활용하게 했으나 때로는 초본을 파기,소각하기도 하였다. 

 

 

 

 

                   겸재(謙齋) 정선(鄭歚,1676~1759)의 '세검정도(洗劍亭圖)

 

 

 

 

 

                    

 

 

                                         포사(曝史)

 

                                            신정하(申靖夏,1680~1715) 서암집(恕菴集) 권3

 

 

                       我來啣丹詔  나는 임금의 조서를 받들고 

                    馹騎橫秋風  가을 바람에 말을 달려
                    再拜手啓錀  두 번 절한 뒤 손수 자물쇠를 열고서

                    曝之蓮臺畔  연대 가에서 포쇄를 하네 
                    金箱三十六  귀한 상자 서른여섯 개를 내놓으니
                    白日當天半  해가 하늘 중앙에 이르렀네
                    過風時與披  지나는 바람에 때로 함께 책장을 열고
                    度鳥忽遺影  날아가던 새가 갑자기 책에 그림자를 남기네
                    時於簡編中  때때로 서적 가운데서
                    是非獨自領  시시비비를 스스로 깨닫네

 

이 시는 1709년(숙종 35) 가을날 신정하(申靖夏,1680~1715)가 포쇄관에 임명되어 태백산사고(봉화 각화산)에서 포쇄를 할 때 지은 한시이다. 

사고(史庫)는 실록을 비롯한 사적을 보관하는 사각(실록각)과 선원록 등 왕실관련 자료를 보관하는 선원각(선원전)으로 구성되어 있다. 조선시대 사고의 서적들을 점검하고 실록과 사초 등 습기가 차거나 좀이 쏠기 쉬우므로 정기적으로 햇빛과 바람을 쐬어 먼지나 습기 등을 털거나 말리던 일을 포쇄(曝曬)라 하는데 이것은 춘추관에서 담당하였으므로 춘추관사고의 실록은 춘추관당상이, 외사고에는 기사관이 파견되었다. 이 기사관은 예문관 소속 전임사관(한림)인 봉교.대교.검열과 예문관원이 아니면서 사관을 겸임한 별겸춘추(別兼春秋)가 주로 담당을 하였는데 이들을 포쇄관(曝曬官)이라 한다. 실록포쇄형지안에는 봄.가을에 날씨가 화창한 날 차일을 치고 바람에 말리는 포쇄를 했지만, 선원록형지안을 보면 보통 바람을 쐬어 말리는 것이 원칙이었으나 온돌을 이용하여 포쇄를 하기도 하였다. 예로 적상산사고 봉안 시기가 11월에서 2월의 겨울에 주로 행해졌기에 일조량이 적어 대별관으로 옮겨와 하루 낮밤 불을 때서 포쇄가 10여회가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포쇄를 마친 실록은 옻칠을 한 나무궤짝에 해충이나 습기 등에 의해 손상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천궁과 창포 같은 약재를 넣거나 실록 사이사이에 초주지 두 장씩을 넣어 달라붙지 않게 한다. 그리고 악귀를 쫓기 위해 붉은 보자기로 실록을 싸서 제일 상단 부분에 물이 스며들지 않도록 사슴가죽을 덮고, 그 위에 기름종이로 덮는다. 마지막으로 함부로 열 수 없도록 자물쇠로 잠근 다음 궤짝에 포쇄사관의 수결로 마무리 한다.

포쇄에 대한 기록으로는 박정양(朴定陽, 1841~1905)이 1871년(고종 8) 별겸춘추(別春秋, 겸임사관 역임자 중 청요직에 있는 자 가운데서 특별히 선임하는 직)로 포쇄관(曝官)에 임명되어 봉화의 태백산사고(太白山史庫)와 무주의 적상산사고(赤裳山史庫)를 다녀와서 지은 박학사포쇄일기(朴學士曝日記)에 포쇄사관 선임, 사관일행 구성, 포쇄인원 및 장소, 소요물품, 절차 및 방법 등에 대해 적어 놓았다.

*사관의 임무는 사초작성, 실록편찬, 세조 이전 조보작성, 포쇄사관과 임금이 특별히 내리는 유고(諭告).유지(諭旨)나 지시.분부를 전달하는 별유사관(別諭史官) 등 다양한 일을 하였으나 속기계는 사초작성,실록편찬과 세조 이전까지 조보작성에 역점을 두어도 충분하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