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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인천 키보드 2016. 10. 4. 13:35

   *한국속기의 역사를 곡필, 기망, 진실왜곡으로 역사를 기록하는

   속기사를 죄인으로 만들다

   -협회에서 모든 속기를 창안으로 만드는 이유는 글쓴이(협회 임원) 자신들과 관련된

     법식이 비도덕적인 속기이기 때문이다.-

                           

 

 

                                             한국속기의 역사[비교]

 

                                    [대한속기협회]

......우리말 속기의 기원은 다른 구미제국에 비하여 매우 뒤떨어졌다.

그 이유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라는 지리적 여건으로 말미암아 외부세력의 잦은 침입과 더불어 일찍이 우리의 글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식자들의 한자우월사상에 따라 그만큼 우리 한글에 대한 연구가 불충분했기 때문이다. 우리말 속기를 발달사적으로 구분할 때 1945년 8·15해방 이전의 속기를 비실용속기, 그 이후를 실용속기로 구분하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기록에 의하면 우리말 속기가 처음으로 창안 발표됐던 때는 미국 이민2세 박여일(朴如日)이라는 사람이 1909년 [조선속기법]을 발표하여 미국에 거주하는 한국인을 대상으로 보급하면서부터이다.

한편 국내에서 우리말 속기법이 처음으로 발표된 때는 이로부터 6년이나 지난 1925년에 방익환, 이원상이 공동으로 발표한 [조선어속기술]이다. 우리말 속기의 실상에 대해 1934년판 [일본속기50년사]의 내용중에 "…조선어 속기법을 창시하였다는 보도에 접한 것이 大正9년(1920년) 6월이었다"는 기록에 나타난 그 속기법이 박여일이 1909년에 창안 발표하였다는 [조선속기법]인지 아니면 또 다른 우리말 속기법인지에 대해서는 우리 속기인들이 앞으로 계속 조사 연구해 봐야 할 과제 중의 하나이다.

해방후 발표된 속기방식으로는 장기태가 창안한 [일파식], 김천한이 창안한 [고려식], 이동근이 창안한 [동방식], 강준원이 창안한 [서울식], 김세종이 창안한 [세종식], 박 송이 창안한 [한국식], 남상천이 창안한 [남천식], 의회속기법식 연구위원회에서 창안한 [의회식] 등이 있다.

 

                           

 

                         [한글속기록학연구소]

             -간추린 한국속기의 역사-

한국어 속기의 기원은 외국속기에 비해 매우 뒤떨어져 있다. 그 이유는 세종대왕이 우리 민족문화의 독립과 조선 백성의 문맹을 없애어 생활의 자유를 위하여 위대한 한글을 창제해 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식자들이 한자우월사상에 사로잡혀 한글을 등한시하여 한글의 다각적인 연구나 속기에 대한 인식은 제쳐두고서라도 무엇보다도 우리가 고유문자인 한글을 수백 년 동안 소중히 생각하지 않았던, 열심히 쓰지  않았던 영향이 가장 컸으리라 본다.

 

한국어 속기를 발달사적으로 구분할 때 1945년 광복을 기점으로 8.15 이전의 속기를 아마추어(비전문)속기, 그 이후를 프로(전문)속기로 나누고 속기의 완성도,전문성,창의성,독창성에 따라 창안속기와 계열속기로 크게 구분된다.

 

오늘날과 같은 필체를 가진 한국어 속기는 기록에 의하면 1909년 박여일이 하와이 한인거류민이 간행하는 한국어 신문 신한일보에 조선속기법의 초보이론을 발표(창안 못함)한 것이 시초이다. 국내에서는 1920년 5월 방익환이 매일신보에 '조선문의 속기술'을 처음 발표하였고, 이후 중국 상하이에서 1922년 김두봉이 깁더조선말본의 부록에 '날젹', 1927년 김환터가 신조선 창간호에 '우리말속기법'을, 같은 해 엄정우가 동광에 '조선속기술', 1930년 박 송의 '조선속기식', 1934년 김용호가 동래고보교우회지에 '조선어속기법'을, 1935년 강준원이 동아일보에 '조선어속기법신안'으로 각각 연구발표했으나 속기학을 완성하지 못하고 아마추어속기에 그치고 말았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가장 먼저 기록된 공식속기록은 1919년 중국 상하이에 설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입법기관인 임시의정원(국회)에서 의회속기록을 작성한 것이다. 

 

8.15광복 후 1946년 남조선과도입법의원과 1948년 제헌국회 개원으로 한글체계의 속기라는 기록적 과업과 우리말을 순우리식으로 창안된 진정한 의미의 독립속기의 필요성을 통감하고 한글식속기 연구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1946년 6월 친일 속기인 일파(逸波) 장기태(張基泰)가 다선자미문자를 기본으로 한글의 자모와 소리변화에 따르는 복잡한 현상을 변자,실용약자,음절약자로 구성하는 실용적인 '일파식 우리말속기'를 부분 출판함과 더불어 동년 9월 일파식속기사양성소를 설립하면서 프로속기가 시작되었다. 1948년 다선자두문자를 근원으로 해방속기를 저술한 후 동방속기전문학관을 설립해 후진양성에 노력한 일본어속기사 출신인 이동근(李東根)의 '동방식속기학', 1989년 9월 일음일필의 동선속기문자를 최초로 창안하고 국내에 속기를 널리 전파한 하림(下林) 류승화(柳承和)의 '한글속기학' 등이 대표적인 창안속기이다. 그외 다양한 방향을 제시하는 속기법식들이 있으나 창안과 단순한 속기 형태를 지니는 저술의 구별은 연구해야 될 사항으로, 대표적인 계열속기로는 일파계열의 고려법식,의회법식과 조선계열의 남천식 등이 있다.(수필속기 가운데 국회는 가장 먼저 발표된 일파식과 일파계열속기, 학교에서는 교과서에 채택된 남천식, 일반인에게는 한글속기학이 널리 활용되었다.) 

 

 

 

                

                       -한국속기의 역사-

    

  오늘날은 정보화시대요, 스피드시대이다.

  정보화시대라함은 더욱 간편하고 신속, 정확, 편리한 것을 추구하는 실용적인 시대를 일컬으며, 미래를 걱정하는 이도 있지만 더 나은 문화생활과 보다 나은 세계를 갈망하는 우리 인간에게 더없이 좋은 장을 펼칠 수 있는 기회의 장으로 보는 이는 더 많다. 이 정보화시대에 우리는 삶의 윤택속에서 소중한 것을 잊기 쉬우며, 물질만능주의에 빠지기 쉬우나 문득 깊은 고뇌와 사색에 잠겨 헤매일때, 가장 소중한 것이란 우리 주변에서 없는 듯이 존재하는 것임을 새삼 느낀다.

   그 가운데 인간이 보다 나은 삶을 창조하고 영위하며 존재 가치를 인식시키는 것은 '문자'가 있기에 가능했고, 또한 인류가 오늘날과 같이 발달된 문명을 가지게 된 원동력도 문자요, 그것은 인간의 정신문화를 이룩하는 가장 직접적이고 실천적인 것이었다.

   문자의 발명과 아울러 속기록학도 함께 발달해 오지 않았나 하는 추측도 해보지만 초창기의 속기는 보통문자의 불편함을 덜기 위해 음절을 줄이거나 요령하는데 그쳤다.

  우리말 속기문자는 고려나 조선시대 때 왕과 문무관들의 시정 전체에 관한 사항을 기록하는 일을 담당하는 관원인 사관에 의한 한자의 필기법과는 기록적인면은 일맥상통하나 속기라는 측면에서는 개념이 다르고, 1443년(세종 25년) 한글창제 이후 몇 백년 동안도 한자필체 위주의 기록으로 지금 논하는 우리말 속기문자는 그 어디에도 없어 한글속기인으로서 부끄러울 따름이다. 외국속기에 비해 우리말 속기가 한참 더딘 이유는 '세종대왕이 위대한 한글을 창제해 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수백 년 동안 소중히 생각하지 않았던, 열심히 쓰지 않았던 죄' 이것이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라고 본다.

 특히 근대에 이르러 일본에 국권을 강탈당하는 치욕적인 일제강점기에는 일선동조론, 성명말살과 일본어 보급정책의 수단으로 일상생활에서 일본어를 상용하도록 강요하는 한국어말살로 우리말속기 보다는 오히려 일어속기에 관심을 가지는 한국인이 늘어나 순우리말속기를 연구하는 사람이 적었고, 우리말 속기에 대한 애착심 및 인식의 부족과 실용적인 속기의 쓰임이 별로 없던 시대적 상황의 한계점을 극복하지 못하고 아마추어속기 수준에 머물고 말았다. 그리고 일제강점시기의 한국인 일본어속기사가 10여명이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8.15광복 이전에 우리말 프로속기를 완성하지 아니하고 해방 이후에서야 비로소 순우리말 속기인이 아닌 일어속기사(장기태 이동근 김천한 박송 강준원 박인태 박준태 박종완 이용길) 출신인들에 의해 일본속기를 바탕으로 창안,연구되어 온 것은 노고에 감사 드리지만 한국속기의 역사적인 의미에서 많은 아쉬움을 남기는 부분이다.

  우리말 속기의 발달을 시대사로 구분할 때 1945년 광복을 기점으로 8.15 이전을 근대아마추어속기, 그 이후를 현대프로속기로 나누고, 속기의 실용화나 한글속기 자격등급을 기준으로 한글프로(전문)속기와 한글아마추어(비전문)속기로 구분하는 것이 오늘날 속기인들의 견해이다. 

  우리말 속기문자의 기원과 종류에 앞서 분류나 표기방식, 표현방법을 알아야 되기에,

  우리말 속기문자의 분류는 지금까지의 프로속기문자를 대부분 글자모양 중 자두와 자미만을 기준으로 나누는 분류체계와는 다른 새로운 이론으로 분류하고자 한다.

  첫째, 문자의 전반적인 배열인 행과 열에서 글자길이의 자요(글자 중간부분)를 기준으로 

     ㄱ. 동선속기문자 ...... 한 행이나 열에서 글자의 길이가 동일한 방식

     ㄴ. 다선속기문자 ...... 한 행이나 열에서 글자의 길이가 다양한 방식

  둘째, 문자의 부분적인 배열인 행과 열에서 글자의 개수를 기준으로

     ㄱ. 단수속기문자 ...... 한 행이나 열에서 글자의 개수가 한 개로 배열된 방식

     ㄴ. 복수속기문자 ...... 한 행이나 열에서 글자의 개수가 두 개로 배열된 방식

  셋째, 문자의 전반적인 배열인 행과 열에서 글자모양의 자두(글자 머리부분)와 자미(글자 꼬리부분)를

          기준으로

     ㄱ. 자두속기문자 ...... 한 행이나 열에서 글자모양이 머리부분을 기준으로 구성되는 방식

                                   (모음+자음, 종성+중성+초성, 종성+초성.중성의 문자 형태)

     ㄴ. 자미속기문자 ...... 한 행이나 열에서 글자의 꼬리부분을 기준으로 구성되는 방식

                                   (자음+모음, 초성+중성+종성, 초성.중성+종성의 문자 형태)  

     ㄷ. 두미속기문자 ...... 자두와 자미를 혼합하는 배열방식

   넷째, 자의 부분적인 배열인 행과 열에서 글자모양을 기준으로

     ㄱ. 결합속기문자 ...... 두 개의 문자가 합해져 한 글자로 표현되는 배열방식 

     ㄴ. 복합속기문자 ...... 동일한 행에서 선의 모양을 다르게 구성하는 방식 

  셋째의 보충설명으로 글자의 모양이라면 자두.자요.자미가 기본인데, 왜 자요가 없는가?  이유는 자두.자요.자미의 전부를 기준으로 분류하는 방식은 첫째의 글자길이를 기준으로 나누는 방식에 내포되거나 중심선에 있고, 글자모양 중 자두.자미 분류방식에서는 자요가 큰 의미를 가지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속기분류법은 첫째를 기준으로 둘째, 셋째가 보완하는 형태가 현실성이 있겠으나, 자두.자미만의 분류체계법은 동일한 속기방식 내에서도 글자의 배열이나 빈도수를 이용한 비창안속기와 미완성속기가 실제 많은 창안속기로 둔갑하면서 후진양성과 기록보국이라는 명분하에 이를 합리화시키거나 정당성을 외치는 빌미를 주었고 이것이 창안문자와 구별되는 고안없이 오히려 창안속기를 시기심으로 비판하는 현실 그 자체에 속기계의 깊은 갈등과 화합을 저해하는 근본적인 원인으로 올바른 한국속기의 정립을 바라는 속기인과 속기사의 사명,양심 앞에 본질은 드러나게 되어 있다.

  특허법으로 좀더 쉽게 실용성있는 문자분류로 설명하면은  

      ㄱ. 발명특허 ...... 동선속기문자, 다선속기문자, 복합속기문자(한글체계 및 한글프로속기의 특징인

                                모아쓰기와의 부조화)

      ㄴ. 실용신안 ...... 복수속기문자 (단수속기문자-제외)

      ㄷ. 의장등록 ...... 자두속기문자, 자미속기문자, 두미속기문자 등으로 구분할 수 있고, 결합속기문자는 프로속기에서 실용성이 없어 제외한다.

  이를 다시 세부적인 분류체계는

      ㄱ. 동선속기 ...... 동선문자,동선단수,동선복수,동선자두,동선자미,동선두미,동선결합,동선복합문자

 

      ㄴ. 다선속기 ...... 다선문자,다선단수,다선복수,다선자두,다선자미,다선두미,다선결합,다선복합문자 등 두 중심문자에서 모두 열여섯 방식의 속기문자로 나누는데, 결론적으로 자요를 중심으로 자두.자미를 혼합하는 배열방식으로 분류화하였다. 예로 류승화 한글속기학의 경우는 한 행에 길이가 일정한 동선문자와 'ㅔ'열의 배열이 두 개로 구성된 복수문자, 기본문자의 자미문자와 ㄹ.ㅅ받침의 자두문자가 결합된 (동행동렬)동선복수두미속기문자임을 알 수 있다. 

  법식이란 속기방식에 따라 필법를 다르게 쓰거나 다양한 방향을 제시하는 문자를 따로 구분하는 표현으로 법식이나 식 따위로 호칭하는 말이다. 다만 법식이나 어떤 식이 모든 속기의 창안문자를 의미하는 뜻은 아니며, 일반적인 속기의 종류를 구분해서 부르는 말과 창안.계열.발표.저술속기를 표현하는 말이 함께 쓰이고 있다. 덧셈을 하면 창안저술속기와 저술속기를 동일시 하거나 혼동을 해서 책만 출판하면 창안과 법식이 난무할 뿐만 아니라 속기계에 알만한 법식도 독창적인 창안의 체계와 설명은 찾을 수 없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해방 이후 한국속기의 역사에서 무슨 식, 법식이니 거론하는 것 중 한글속기학연구소에서 개념정립을 하기 전에는 식,법식은 곧 창안자나 저자를 내포하였기에 법식의 대부분이 창안과는 거리가 먼 사이비적 속기이고 아주 악덕 속기사기꾼들이다. 또한 속기협회라는 이름하에 협회가 마치 진실의 열쇠인양 흔들며, 우리속기역사를 기망하는 행위는 속기인의 기본 자질을 의심케 한다. 

  오늘날과 같은 필체를 가진 우리말 속기문자는 기록에 의하면 1909년 박여일 씨가 하와이 한인거류민이 간행하는 한국어 신문 신한일보에 조선속기법의 초보이론을 발표한 것이 시초이다. 우리말 속기가 국내에서 태동조차 못하던 시기에 해외에서라도 먼저 속기사(速記)의 새벽을 깨우는 선구자가 탄생했다는 것은 그 의미가 매우 클 뿐만 아니라 황무지나 다름없는 우리말 속기를 개척해 놓은 점은 결코 이 시점의 잣대를 놓고 아마추어속기나 프로속기 따위로 논할 수 없는 존재 그 이상의 상징성을 지닌다. 국내에서는 1920년 5월 방익환 씨가 매일신보에 '조선문의 속기술'을 처음 발표하였고, 이후 중국 상하이에서 1922년 김두봉 씨가 깁더조선말본의 부록에 '날젹'을 수록, 1927년 2월 김환터 씨가 신조선 창간호에 '우리말속기법'을, 같은 해 엄정우 씨가 동광 제15호, 16호에 '조선속기술', 1930년 박 송 씨의 '조선속기식', 1934년 김용호 씨가 동래고보교우회지 제11호에 '조선어속기법'을, 1935년 강준원 씨가 동아일보에 '조선어속기법신안'으로 각각 연구발표했으나 속기록학을 완성하지 못하고 아마추어속기에 그치고 말았다. 이러한 일제강점기의 어려운 속기여건과 시대적 상황속에서도 가장 먼저 기록된 공식속기록은 1919년 중국 상하이에 설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입법기관인 임시의정원에서 의회속기록을 작성한 것이다. 

  8.15광복 후 1946년 남조선과도입법의원과 1948년 제헌국회 개원으로 한글체계의 속기라는 기록적 과업과 우리말을 순우리식으로 창안된 진정한 의미의 독립속기의 필요성을 통감하고 한글식속기 연구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1946년 6월 친일 일본어속기사 일파(逸波) 장기태(張基泰) 씨가 다선자미문자를 기본으로 한글의 자모와 소리변화에 따르는 복잡한 현상을 변자,실용약자,음절약자로 구성하는 실용적인 '일파식 우리말속기'를 부분 출판함과 더불어 동년 9월 일파식속기사양성소를 설립하면서 프로속기가 시작되었다. 1948년 다선자두문자를 근원으로 해방속기를 저술한 후 동방속기전문학관을 설립해 후진양성에 노력한 일본어속기사 출신인 이동근(李東根) 씨의 '동방식속기학', 1989년 9월 일음일필의 동선속기문자를 최초로 창안하고 국내에 속기를 널리 전파하여 오늘날 속기.속기사의 존재를 누구나 알 수 있도록 공헌한 하림(下林) 류승화(柳承和)  씨의 '한글속기학' 등이 대표적인 창안속기이다. 그외 다양한 방향을 제시하는 속기법식들이 있으나 창안과 단순한 속기 형태를 지니는 저술의 구별은 연구해야 될 사항으로, 대표적인 계열속기로는 일파계열의 고려법식,의회법식과 조선계열의 남천식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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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속기록학연구소]      

     "100년의 한국속기사(速記史)에서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한글속기문자는 한 손가락(2~3)으로 꼽을 정도의 극소수에

    불과하다." 

      일반인이 처음 여러 속기문자를 보면 '뭐 다 비슷비슷하다. 그런데 뭐가 달라요?'라는 질문이 많다보

      니, 속기를 수십 년연구하는 제가 봐도 거의 동일하고 이건 정말 아니다 싶고, 속기인으로서 너무

      나 부끄러울 지경이다. 문제는 순간의 잘못이나 실수를 반성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친일(추종)

      세력들이 속내를 숨기고 보란 듯이 우리말 속기의 역사를 조작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부 속기단체는 계열.유사속기는 하나도 없고 전부 창안이라는 웃지 못할 해괴한 논리를 펴고 있음-

    

                    

                                                           *순서: 동선-자미-자두-두미

                                               

                                 -동선속기문자          <기본문자> 류승화

                      

 

 

                              -계열속기가 창안으로 자칭하면 이름이 계열이지 유사속기와 같은 비도덕적인 속기이다.-

 

                        -다선속기문자-         <기본문자>장기태

                     

                           

                                                                             계열속기   김천한

 

 

                                                                                                                       

                                                                        계열속기  김세종 

                        

 

                                                                                                                            

                                                                유사속기   정아랑

 

 

       계열속기    의회속기법식연구위원회

 

 

 
 
  이동근                                                                   유사속기   노영민

 

 

               준전문속기       박  송(남상천속기와 비교) 

 
 
 

                     남상천(위의 박 송 속기와 비교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