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타락한 한국교회에서 탈출했고...오직 성경만을 읽으며 믿음을 유지 할려고 합니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스크랩] ◈십자가는 성경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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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는 성경과 다릅니다

2015. 8. 29.


# 십자가와 영성?


이 것이
영성을 거론할때 항상 사용되는 성경입니다.

마태복음 10장
38.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정말 하기 어려운 이야기지만
한번 시작해 보겠습니다.

마태 마가 누가 복음서마다
공통으로 초기에 등장하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아직 자신의 죽음을
제자들에게 알리시지도 않았을 때입니다.

사도들과 같은 입장에서
곰곰히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십자가를 지라니?

우선 "지고"라는 말은 성경에 없습니다.

"들고" 또는 가지고 입니다.

그래도 십자가는 전혀 이해할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더구나 제자들에게 전도를 보내시면서
해주시는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10장
7.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이 왔다 하고


이 때 아무도 궁금해 하지도 질문하지도 않은
"십자가"
그들은 다들 알고 있는 그 무엇이었을 겁니다?

그렇죠?

그리고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마태복음 11장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십자가가 가벼운 멍에일까요?

예수님은 금방 말을 바꾸시는 분이신가요?



기독교 문헌이나 자료실에
십자가는 3세기 이전의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구약성경에는 단 한번도 안 나오는 십자가가
신약에는 쏟아져 나옵니다.

2세기 이전의 십자가 형틀과 같은 형태가 보존된
물체나 그림은 발견된 바가 없습니다.

심지어 벽화에도 돌에 세겨진 그림조차도 없습니다.

정말 이상합니다.


위경에는 십자가가 유난히 많이 등장하며
신비한 힘과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디다케, 베드로의 묵시록, 엘리야의 묵시록에는 십자가가 말을 하며 초능력도 있습니다.

5세기로 접어들면서
성화나 벽화 장신구 등등에
폭발적으로 십자가가 등장합니다.

그런데 초기의 십자가 처형장면에는
예수님의 손이 위로 모여 있습니다.

다 앞뒤가 안맞고 이상합니다.
그쵸?

성경은 예수님께서 나무에 달리심을
상징적으로 나타냅니다.

아시죠?

그렇다면 구약에는 그리스나 패르시아, 바빌론의
이방처형 방식이 전혀 나오지 않을까요?

나옵니다.

그 방식을
확실하게 묘사합니다.


그래서 에스더가 너무나 사랑스럽고
더욱 존경스럽습니다.

에스더 5장
14. 그의 아내 세레스와 모든 친구들이 이르되 높이가 오십 규빗 되는 나무를 세우고 내일 왕에게 모르드개를 그 나무에 매달기를 구하고 왕과 함께 즐거이 잔치에 가소서 하니 하만이 그 말을 좋게 여기고 명령하여 나무를 세우니라

여러번 다시 나옵니다.

십자가가 아닙니다.
그냥 나무기둥에 매답니다.

맞죠?

이것이 당시의 처형 방식입니다.


사도 베드로께서 다시 보증을 해 주십니다.

베드로전서 2장
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이제 십자가가 성경에 없는 단어일 것이라는
예상을 하실 것입니다.

맞습니다.

스타우로스는 크로스가 아닙니다.

헬라어는 스타우로스를
긴 나무라는 뜻으로 사용한 것이
다른 문서에 나옵니다.

그러면...
그렇다면...
이 십자가는 뭘까요?

누가복음 14장
27.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10장 전후를 잘 보시면
지팡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저의 단순한 추측?

그럼 제가 나쁜 놈입니다.
신앙은 추즉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분별로 하는 것입니다.

십자가가 등장한 가장 오래된
사진들을 몇개만 보겠습니다.





처형용이겠습니까?
휴대용 이겠습니까?









후대로 갈수록 점점 커집니다.

무슨 용도였을까요?

목자나 목동을 상징하는 지팡이가
모양과 크기가 점점 성스럽게 변조된 것입니다.





결국 이 지팡이가 자꾸 커져서
십자가로 승화됩니다.

다소 충격적이고
믿기 어려우셔도 기억에는 담아 두세요.

.....

십자가를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돌에 맞아 돌아가셨어도

그 고귀한 희생의 가치는
변함이 없습니다.

누군가 영성의 표준으로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라고 하면..

"너나 잘하세요~" 하시고

마태복음 11장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이 가벼운 멍에를 지고
지팡이를 들고 예수님을 따르시면 됩니다.

우리는 목숨을 바쳐도
어차피 반드시 죽을 죄인의 목숨을 바치는 것이니
전혀 손해 안보는 일입니다.

버려질 음식 나누어주고 생색을
내는 것이 됩니다.

어찌 죄없는 영원한 생명을 바치신
예수님의 희생과 인간의 희생을
감히 비교 할 수 있겠습니까?


더 많은 자료나 설명은
올리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하나만 기억하세요.
삼위일체, 영혼불멸, 등등에서 십자가까지
기독교의 모든 교리는
인간의 성화가 그 목적 입니다.

인간이 십자가를 진다...?

모든 것이
인간이 곧 하늘이라는
인내천의 근본에서 나오는
잘난척 하려는 악한 근성의 표현입니다.

이제
결국에는 예상대로
그 지팡이에 예수님을 매달고
권위를 나타내는 용도로 사용합니다.

혹시 교황을 만날 때
이런 똑같은 지팡이를 하나 들고 가보세요.

무슨 용도였는지
온갖 비난을 쏟아내는
천주교나 기독교 뉴스가 알려줄 겁니다.






조금이라도 불확실 하면
분명 쓰지도 않았을 것이나
기독교의 라이프 성경사전에도
십자가의 근원이 나옵니다.

"T(타우)자 모양의 성 안토니 십자가(crux commissa, 수도사 안토니우스가 사용한 지팡이 형태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성 안토니우스(251~356년)

십자가는 성경에 없습니다.


ps.


요한복음 3장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인자가 들려야 한다.
같은 일이 예수님께 일어날 것이라는
상징이며 예언이었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뱀을 지팡이에 달아서 올렸습니다.

아버지께서 나누신 언어이니
번역도 이해도 어려운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헬라어 스타우로스는
작던 크던 길죽한 나무 모양을
모두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두가지를 연결해서 생각해보셔야
진정한 뜻이 보입니다.

마태복음 11장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멍에는 지고 가야하는 짐과 같습니다.

마태복음 10장
38. 또 자기 ♡지팡이를 들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그렇다면 지팡이는...
짐을 진 사람이 의지할 도구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희생을 의지하고 살아가는 것이지
그것은 결코 짐이 아닙니다.

"지팡이를 의지하고"
이것이 "지팡이"의 진정한 뜻입니다.

그러나 사도들처럼 특별하게
지팡이가 다른 의미로 적용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잘 구분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출처 : 놀라운편지
글쓴이 : 사랑그리고편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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