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타락한 한국교회에서 탈출했고...오직 성경만을 읽으며 믿음을 유지 할려고 합니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스크랩] 인디언 대학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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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죄악사 (조찬선목사지음)

2016. 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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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언 대학살.

 


 

콜럼버스 일행이 처음 섬에 도착하였을 때, 마리엔 왕국인디언 원주민들은 신기한 배와 이상한 사람들이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인 줄 알고 전원을 초대하여 성대한 환영 만찬을 베풀었다. 또한 콜럼버스가 타고 온 배 중 한척이 폭풍우에 파선되었을 때도 온 주민이 나서서 구조하는 일을 도왔을 뿐만 아니라 필요한 재료를 모두 제공하여 배 수리까지 도와주었다. 그들의 도움으로 콜럼버스 일행은 죽음의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1451∼1506)

 

 

 

그러나  기독교도들은 은혜를 배은망덕으로 보답하였다. 며칠 후 안정을 되찾자 그들은 악마로 돌변하였다. 그들은 원주민 마을을 포위하고 기습공격하여 순식간에 거의 모든 주민을 살해하였고 그들의 왕국을 점령하였다.

 


 

그들에게 아낌없는 도움을 베풀었던 왕은 모든 것을 포기한 채 남은 사람들과 함께 숲속으로 피난가야만 했다. 그러나 그들은 도망하여 피신한 나머지 생존자들마저 추적하여 섬멸하였다. 진실로 배은망덕하고 교활하고 비인간적이며, 사악한 학살행위였다. 그러나 콜럼버스가 인솔하고 온 기독교도들이 처음 발견한 섬에서 일으킨 이 만행은 시작일 뿐이었다. 

 

 

 

 

 

 

도미니카 섬의 중심부에 위치했던 하라과 왕국은 비옥한 땅과 발달한 문화를 지니고 있었다.

 


 

스페인의 천주교도들이 처음 이 나라에 왔을 때, 원주민들이 낯선 손님에게 베푼 호의와 또 콜럼버스 일행을 수차 죽을 위기에서 구하여준 이야기는 많다.

 


 

그런데 천주교도들은 그들의 고마움을 배은망덕으로 갚았다. 60여명의 기병과 300여 명의 군대를 동원하여 일시에 그들을 불로 태워 죽였다. 그들의 계략은 먼저 그 나라의 유력자, 귀족들 300여 명을 은혜를 갚는다는 구실로 만찬에 초청하여 몇 채의 가옥에 집합시켰다. 그리고 일시에 불을 놓아 태워 죽였다. 불을 피하여 집 밖으로 뛰쳐나오는 귀족들은 사전에 포위하고 있던 군인들이 창으로 찔러 죽였다. 도망가다 넘어진 어린애는 칼로 다리를 잘라 버렸다. 하라과 왕국의 여왕에게는 경의를 표한다면서 총이나 칼을 사용하지 않고 목매달아 죽였다.

 


 

학살의 현장에서 달아나서 살아남은 주민들은 카누를 타고 다른 무인도로 도피해야 했다. 그러나 콜럼버스는 그들을 끝까지 추격하여 한 명도 남김없이 모두 사로잡으라고 명령하였다. 많은 원주민을 잡아 노예로 삼은 콜럼버스는 다음과 같은 구실로 그들의 행동을 정당화하였다.

 

 

 

“원주민들은 식인을 즐기는 잔인하고 욕심이 많고 타락한 영혼이기 때문에 이들을 천주교 신앙으로 무장시켜야 구원의 백성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남자 노예들은 금을 채굴시키려고 광산으로 보냈고, 부녀자들은 땅을 개척하여 농사를 짓도록 하였다.”

 


 

노예부부가 함께 살면 아기의 출산으로 노동력이 저하될 것을 우려하여 서로 만나지도 못하게 하였다. 그들의 식사는 잡초였다. 그들은 동물로 취급되었는데, 아이가 태어나면 산모의 영양부족으로 젖이 나오지 않아 굶어죽을 수밖에 없었다. (Ibid)

 


 

정복자들은 엄마젖 빠는 아이들을 빼앗아 바위에 머리를 으깼다. 그들은 "그리스도와 12제자들"을 기리기 위해, 13명(12+1)의 원주민들을 발이 땅에 닿을락말락하게 매달아 목이 졸려 죽지는 않게 한 상태에서 산채로 태워 죽였다.

 

 

 

 

 

 

중남미 지역에서 스페인에서 온 천주교도들이 원주민을 학살했다면, 북미대륙에서는 영국에서 온 청교도들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선교라는 미명하에 역시 원주민들을 학살하였다. 그들의 땅을 빼앗고 그들의 종교와 문화를 말살했으며, 오늘날 살아남은 원주민들은 겨우 멸종을 피했을 뿐이다.

 


 

처음 북미대륙 정착에 어려웠던 당시 청교도들은 생존을 위해 원주민들에게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러나 그들은 세력이 커지자 도리어 원주민들을 무차별 학살하는 악마로 돌변하였다. 결국 천주교도나 개신교도들은 잔인한 침략자, 약탈자 근성에 있어서 피차일반인 셈이다. 즉, 아메리카 대륙에서 1억여 명의 원주민들을 몰살시킨 기독교도들은 이점에서 똑같다고 할 수 있다.

 

 

 

 

 

 

기독교 침략자들은 가는 데마다 교회를 짓고 성경을 들고 기도하면서 선교하였다. 기독교 선교라는 미명아래 자기들의 침략행위를 개척과 발전이라는 명분으로 자화자찬하면서 약 350년 동안에 유럽의 네 배가 넘는 인디언들의 광대한 땅과 자원을 빼앗고, 1억2천만의 원주민들을 무차별 학살하며 북·중·남미대륙을 정복하였다.

 


 

천주교도들이 처음에 도착했을 때 중미의 원주민 인구는 약 2,500만이었는데, 침략이 시작된 후 약 100년 동안에 그 인구가 100만으로 줄었다는 백인들의 기록이 남아 있다.

 


 

이는 무엇을 뜻하는가? 100년 동안에 천주교도들이 최소한 2,400만 이상의 원주민들을 학살하였거나 죽게 만들었다는 증거이다. 또한 100년 동안의 인구증가율을 적용, 2,500만의 인구가 배로 증가할 수도 있다고 가정한다면 결과적으로 약 5,000만 명 정도의 원주민들을 말살한 것이 된다. (기독교 죄악사 상, 조찬선 저, 평단문화사 2000 p149))

 


 

1500년도 초기에 유럽에서 온 천주교도들은 남미 페루 지방 일대에서 840만~1,350만의 원주민들을 학살하였다. 그것은 그 지방 인구의 94%였다. 또 그들은 16세기 중에 중남미에서 6,000~8,000만의 원주민을 학살하였고 그 학살은 계속되었다. (기독교 죄악사 상, 조찬선 저, 평단문화사 2000 p151~152))

 


 

천주교도들이 중남미의 원주민 수천만 명을 학살하고 그 땅을 차지한 것이나, 청교도들이 북미대륙의 원주민을 거의 멸종시키다시피 하며 그 땅을 차지한 것은 바로 구약의 여호와 신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기 위해 먼저 그 곳에 살고 있던 다른 민족들을 모조리 몰살시킨 것과 같은 이유에서였다.

 


 

여호와 신은 부모형제, 자식도 다른 종교를 믿으면 돌로 쳐 죽이라고 명령하고 있다. [신명13:7~11] 그러니 기독교도들이 아무 거리낌 없이 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던 원주민들을 몰살시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던 것이다.

 


 

당시 대부분의 기독교도들은 기독교 이외의 모든 종교를 이단으로 생각하였다. 그래서 원주민들을 단순히 이단으로 취급하였을 뿐 아니라 자기들이 섬기는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능력이나 영혼조차도 없다고 생각하였다. 특히 성직자들이 그것을 강조하였다. 그런 종교적인 가르침이나 지침이 그들의 신념이 되었으니 그들의 원주민들에 대한 태도는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중남미 지역에서의 천주교도들과 같이 북미지역의 청교도들도 성직자들에 의해서 그러한 종교적인 독선을 북미대륙에 정착시켰다.

 


 

청교도의 목사들이 인디언을 사탄의 아들이란 말로 매도하고 그들을 몰살하도록 부추겼던 사실은 매우 주목할 만하다. (전쟁과 학살, 부끄러운 미국 2003-홍윤서 p39)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사탄의 아들이므로 그들을 몰살하고 그들의 땅을 빼앗는 것은, 정당하다고 설교했던 청교도필그림스 목사들에 의해 미국인들의 개척정신에 깊이 뿌리를 내렸던 것이다. (전쟁과 학살, 부끄러운 미국 2003- 홍윤서 p40) 

 

 

 

 

 

 

청교도들이 종교박해를 피해 미국 땅으로 이주해왔을 때,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그들의 정착을 도와주었다. 땅을 내어주고 집을 지어 주었으며, 그 밖에 적응해서 살 수 있는 방법 등을 가르쳐주어 추위와 굶주림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주었다. 그런데 신교도들은 자신들의 세력이 점점 커감에 따라 원주민들을 몰아내고 더 많은 영토를 확보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천연두를 전염시켜 면역력이 없던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몰살시켰다.

 


 

친절을 가장하고 모포에다 천연두균을 묻혀서 인디언에게 보냈다. 그들은 근본적으로 인간적인 심성이 부족한 사람들이다. 이주민들이 인디언들을 죽이려는 목적으로 당시 영국에서 널리 퍼져 있던 천연두 환자들의 담요를 가져와 인디언 주민들에게 나눠줘 대부분의 원주민들이 전염병으로 사망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미국 역사학자들의 책에서 기술하고 있는 부분이다. (전쟁과 학살, 부끄러운 미국 2003 홍윤서 p39))

 


 

원주민들은 초기에는 청교도들을 선의로 도와주었으나, 그 후 침략자들의 태도와 잔인성을 알게 된 원주민들이 저항하거나 공격하면 청교도들은 전멸작전으로 대응하였다. 많은 이주자들이 몰려들면서 이주자들은 정착할 땅이 필요하였고 원주민들로부터 땅을 빼앗기 시작한다. 그렇게 해서 점점 충돌이 생기기 시작했으며, 충돌은 곧 학살로 이어졌다.

 


 

청교도들이 미 대륙에 도착한 초기에 굶주리고 헐벗고 병들어 곤경에 처했을 때, 원주민들은 그들에게 각종 식량과 가죽 등 입을 것을 갖다 주면서 온정과 구원의 손길을 폈다. 이때 청교도들은 감격에 넘쳐 원주민들을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천사"라 믿고 환대하였다. 그러나 미대륙에서의 정착이 성공적으로 되어가자 청교도들은 한없는 토지욕에 불타기 시작했고, 원주민들의 존재는 장애물이 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더욱 원주민들을 이교도로 취급하며 사탄(마귀)의 앞잡이로 낙인을 찍었다.

 


 

청교도들이 얼마나 잔인했는가를 미국의 제7대 대통령 앤드류 잭슨의 말이 잘 증명해 주고 있다. 그는 "자유와 문명과 종교의 축복을 받은 우리들이 서진(西進)하는 찬란한 길에 방해가 되는 것들을 제거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숲 속에 사는 야만인들에게 그들의 숲과 강과 땅을 빼앗은 것은 당연지사이다."라고 자랑스럽게 주장했다. 

 

 

 

 

 

 

인디언 마을을 침략하는 선봉에는 항상 선교사들이 있었다. 세네카 족 추장인 사고예와타는 자신들을 가르치러 온 선교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백인들은 온갖 나쁜 짓을 행하면서도 그것도 모자라 자신들의 교리를 인디언의 입에 강제로 구겨 넣으려 하고 있다." (류시화 편,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p. 49)

 


 

<동물기>로 유명한 어니스트 시튼(E. Seton)은 자신의 책 <인디언의 복음>에서 17세기의 프로테스탄트주의자 묘비에 나타나는 전형적인 기록이라고 하면서 린 S. 러브라는 인물의 묘비명을 인용하고 있다.

 


 

"한평생 그는 주께서 그의 손에 부치신 인디언 98명을 죽였다. 그는 삶이 끝나 그의 본향에서 주의 팔에 안겨 잠들기 전에 100명을 채우길 바랐다." (<인디언의 복음>, p. 132)

 


 

맑스는 이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진정한 식민지들에서도 본원적 축적의 기독교적 성격은 나타나지 않을 수 없었다. 신교의 엄격한 주창자들인 뉴잉글랜드의 청교도들은 1703년에 그들의 의회의 결의에 의해 인디언의 머리 가죽 1장이나 포로 1명에 40파운드의 상금을 걸었고, 1720년에는 머리 가죽 1장에 상금이 100파운드로 되었다." (I, p. 1036)

 


 

그래서 맑스는 기독교를 전공하고 있는 하위트(W. Howitt)를 인용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른바 기독교 인종이 [정복할 수 있었던] 세계의 도처에서 또 모든 주민들에 대해 수행한 야만 행위와 잔인한 행위는 어떤 역사적 시기에도 그 유례가 없으며, 또 아무리 난폭하고 몽매하며 무정하고 파렴치한 인종도 그것을 따라갈 수 없다." (I, pp. 1033~1034)

 


 

이 참상을 주재하시는 위대한 축적의 신과 그의 선교사들을 이해하는 데는 전형적 사건 하나면 충분할 것이다. : 매사추세츠 해안에 정착한 청교도들은 자신을 '해안의 성자'라고 칭했는데, 이 성자들은 왐파노그 족, 피쿼트 족, 나라간세트 족, 니프무크 족 인디언들이 기독교를 받아들이길 거부하자 미스틱 리버라는 이름의 강 하구에 사는 피쿼트 족 마을을 공격했다.

 


 

그들은 마을에 불을 지르고 불길을 피해 달아나는 마을주민 7백 명 대부분을 학살했다. 포로로 잡힌 인디언들 가운데 남자는 서인도 제도에 노예로 팔려갔고, 여자들은 병사들이 나누어 가졌다. 메사추세츠의 플리머스에서는 기독교를 거부하는 인디언들에게 사형선고가 내려졌다. (북아메리카 원주민 2001- 래리j짐머맨)

 

 

 

 

검은주전자 마을에 미군들이 들이닥치는 것을 묘사해놓은 그림. (출처 : 와시타리버 전쟁터 사적지)

 

 

 

공격대열에 참여했던 코튼 매더 목사는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고 한다. (류시화편, 앞의 책, p.54)

 


 

"인디언들은 불에 구워졌으며, 흐르는 피의 강물이 마침내 그 불길을 껐다. 고약한 냄새가 하늘을 찔렀다. 하지만 그 승리는 달콤한 희생이었다. 사람들은 모두 하느님을 찬양하는 기도를 올렸다." (이진경, <자본을 넘어선 자본> 그린비 2004, pp.315~318)

 


 

보스턴에 거주하고 있던 청교도들은 광활한 농토를 차지하려는 욕심으로 월등한 무력을 앞세워 인디언들을 내몰았고, 뉴잉글랜드 지역에 거주하고 있던 피쿼트 부족도 모두 살육을 당했다. 청교도 목사들의 지시를 받은 청교도들은 1637년 피쿼트족에 대하여 날조된 살인혐의를 씌워 전쟁을 벌였던 것이다. 그리고 일부 살아남은 인디언들을 노예 상인들에게 팔아버리고 거의 대부분의 뉴잉글랜드 인디언 지역을 차지하였다. (전쟁과 학살, 부끄러운 미국 2003 홍윤서 p.41)

 


 

1637년, 청교도들은 대담하게도 민병대를 조직하여 원주민 촌을 습격하여 500명을 죽이고 살아남은 부녀자와 아이들을 노예로 잡아 서인도에 팔아버렸다. 그리고 청교도들은 "우리는 오늘 600명의 이교도들을 지옥으로 보냈다."고 하며 하나님께 감사예배를 드렸다.

 


 

이 사건은 청교도들이 북아메리카에서 '기독교 제국주의'의 본질을 유감없이 드러낸 최초의 대표적인 대학살이며, 침략전이라고 할 수 있다. (기독교 죄악사 하 -조찬선 저, 평단문화사 2000 p.160~161))

 


 

원주민들에게 “토지의 개인소유”란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개념이었다. 토지는 그 종족 전체의 공유물이며 그곳에서 공동으로 작업하여 얻은 결실을 공동의 식량으로 삼고 살아가던 것이 조상 대대로 전래되어 온 풍습이었다.

 


 

그런데 청교도들은 대지를 인위적으로 분할하여 개인소유로 만들어 놓고 타인은 거기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농사도 지을 수 없게 하였다. 뻔뻔스럽게 남의 땅을 빼앗고 그 농토에서는 사냥도 할 수 없게 만든 유럽인들의 사고방식을 원주민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원주민들은 땅은 물이나 공기처럼 공동의 재산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만일 땅이 필요하면 필요한 자가 적당히 일시적으로 사용하면 되었다. 이것이 원주민들의 토지의 공동소유였으며 기본적인 사고방식이었다. 그러므로 유럽인들이 땅이 필요하다고 하면 서슴없이 땅을 양보하고 빌려주기도 하였다. 그러던 중에 침략자들의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기 시작하였고, 또 땅에 대한 그들의 욕심이 한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부터, 원주민들은 땅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고 자기들의 농토를 지켜야 되겠다는 경계심과 함께 불안감을 갖게 되었다.

 


 

청교도들은 원주민의 토지에 대한 개념을 알고 있었으므로, 그것을 악용하여 비교적 간단하게 원주민의 토지를 빼앗았다. 즉 청교도들의 입장에서 합법적으로 빼앗기 위하여 권리 매각증서를 만들어 가지고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원주민에게 X표 서명을 얻는 방법을 썼다.

 


 

물론 원주민들은 문서상의 계약과 서명이 어떤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알 리 없었다. 또 문자가 없었던 그들은 문서에 서명하는 것이 그들이 개척해 놓은 광대하고 비옥한 지역에서 쫓겨나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은 물론 일단 서명해서 그들에게 빼앗긴 땅에는 들어갈 수 없고 거기에서 새 한 마리조차 사냥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백인들의 입장에서는, 토지에 대한 법적 권리를 증명하지 못하는 인디언들은 그 토지를 포기해야 마땅했으며, 계약을 지키지 않는다면 무력을 사용하는 것이 당연하였다. (전쟁과 학살, 부끄러운 미국, 2003 홍윤서)

 


 

이런 방식으로 취득한 토지에 경작을 했든 하지 않았든 관계없이 원주민들은 거기에 들어가도 안 되고 사냥을 해도 안 되었다. 청교도들이 방목하는 가축(소, 돼지 등)은 이웃 원주민의 밭에 들어가 마음 놓고 뜯어먹어도 원주민들은 아무런 항의조차 할 수 없었다.

 


 

만일 이럴 때 청교도들의 가축을 몰아내면 그는 범죄자가 되어 군청 재판소로 끌려가 시민재판에서 처형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여 청교도들은 북미에 처음으로 토지의 "개인 소유권제도"를 확립하고 소유권이란 개념도 모르는 원주민들의 땅을 빼앗아 분할하기 시작하였다. 그 후 약 260년 동안에 전 북미지역의 땅을 빼앗거나 매입하고 원주민들을 강제로 수용소에 이주시켜 버렸다.

 

 

 

 

강제이주를 거부하는 원주민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저항뿐이었다. 헐리우드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아파치족 역시 강제이주를 거부한 원주민이었다. 1866년 아파치 저항 지도자인 제로니모(맨 오른쪽)를 체포한 미군이 이를 사진으로 남겼다.

 

 

 

신대륙 탐험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식민지에서 폭정을 펼쳤음을 보여주는 자료들이 스페인에서 공개됐다고 AFP통신이 14일 보도했다.

 


 

스페인 국립문서보관소에서 발견된 자료에는 1492년 청교도가 현재의 도미니카공화국 일대를 정복한 뒤 얼마나 잔인한 행동을 했는지 보여주는 23건의 증언이 담겨있다.

 


 

증언에는 그가 자신에게 낮은 계층 출신이라고 말한 한 여성의 혀를 자르고 발가벗긴 채 길거리에서 당나귀에 끌려 다니게 했다. 또 재판없이 형벌을 내렸으며 식민지 개척자들에게 물자를 공급하지 않았다. 토착 원주민들을 노예로 부리기 위해 세례도 허락하지 않았다고 기록은 전하고 있다.

 


 

산티아고섬이라 불렸던 이 지역은 콜럼버스 원정대의 본거지로 청교도가 상륙한 이후 수십 년간 1,200만∼2,000만 명에 이르는 토착민들이 살해되거나 질병으로 숨졌다.

 


 

AFP통신은 1506년 5월20일, 발라돌리드에서 55세로 사망한 콜럼버스의 타계 500주년 기념행사가 스페인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지만 아메리카 토착 문명을 파괴한 그에 대한 기억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p.s)

 

 

 

 

 

※ 참조 : 기독교는 삼위일체(성부, 성자, 성령)이신 하느님, 참 하느님이시며 참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유일신으로 믿고 숭배하는 종교이다. 흔히 “기독교=개신교”로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그리스도교를 한자로 옮겨 적은 것이 기독교(基督敎)이다. 그러므로 기독교(基督敎)는 곧, 천주교(가톨릭), 정교회, 성공회(영국교회), 개신교(프로테스탄트) 등을 모두 포함한다.

 

 

 

 

 

 

 

가톨릭 신부 라스 카사스의 보고서.

 


 

아메리카 대륙에 콜럼버스가 첫발을 디딘 이후, 선교라는 이름으로 학살과 착취를 자행한 현장에서 학살극의 현장을 생생하게 목격한 가톨릭 신부가 그것을 기록하여 스페인 왕 카를 5세에게 보고한 보고서가 출판되었다.

 


 

그들은 3G(글로리-영광, 고스펠-복음, 골드-금)의 성취라는 목표를 세우고 인디언들을 닥치는 대로 학살하였는데 약 1억 명 가량을 학살했다는 기록이 있다.

 

 

 

 

가톨릭 신부 라스 카사스가 직접 목격하고 기록한 인디언 학살보고서. 

 

 

 

 

목격한 것을 기록하고 있는 아메리카 원주민의 인권을 외친 유럽 최초의 반식민주의자 바르톨로메 데 라스 카사스 신부의 초상화.

 

 

 

 

 

 

 

 

 

 

 

인디언들을 발가벗겨 나무에 매달고 그 밑에 장작을 쌓아 불로 태워 죽이는 그림. 왼쪽에 한 군인은 어린아이의 두 다리를 잡고 벽에 메어치고 있다. 

 

 

 

 

스페인 군대가 남녀구분 없이 인디언들의 손목을 자르고 있는 그림.

 

 

 

 

 

인디언 아이들을 산채로 뜯어먹게 하고, 인디언들을 물어뜯어 죽게 했던 스페인 군대의 사냥개 그림.

 

 

 

 

 

바르톨로메 데 라스 카사스.

 

 

 

 

Bartolomé De Las Casas

 

(1474년 8월 ~ 1566년 7월 17일)

 


 

 

 

스페인의 역사가이자 수도사도미니쿠스 수도회에 소속되었으며, 아메리카 최초의 수도사로 "인디오의 수호자"라 불린다.

 


 

1474년 세비야에서 소상인의 아들로 출생하였으며, 1497년에 그라나다에서 군대에 복무했으며, 1502년에는 아버지와 함께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두 번째 항해에 동행하였다가 영지를 받았으며, 스페인에 귀국해서 신학 공부를 하였다가 1510년에 아메리카로 돌아간다.

 


 

1513년에 군종 사제로써 디에고 벨라스케스 데 쿠엘라르와 판필로 데 나르바에스의 쿠바 정복 등 많은 탐험에 참가하였지만 그 탐험에서 스페인인들이 아메리카 원주민을 함부로 대하면서 학살하는 만행을 목격하였으며, 탐험에 참가한 공으로 원주민 농노를 받는다.

 


 

1515년에 스페인으로 돌아가서 원주민에 대한 처우를 개선할 것을 호소하였으며, 1516년 11월에 서인도 제도의 총독으로 원주민 실태조사의원을 맡아 떠났다. 1519년 2월에 열린 스페인의 의회에 참석하여 카를 5세 앞에서 스페인 사람과 원주민들이 협력해서 신대륙에 '자유 인디오 도시'를 세우는 계획을 발표하여 승인받았다.

 


 

1520년 12월에 다시 신대륙으로 떠나서 스페인 식민주의자들과 원주민들에게 자신의 주장을 밝히면서 협력하여 식민지를 개척하자는 방안을 내세우지만 양쪽 모두의 반발로 1522년 1월에 실패로 끝났다.

 


 

1523년에 도미니쿠스 수도회로 돌아가 종교 활동에 매진하다가 1526년에 변명의 역사를 저술했다. 1531년, 1534년, 1535년에 마드리드에 있는 원주민 통치기구인 인디아스 자문위원회에 엥코미엔다 제도를 이용하여 원주민을 억압하는 인물과 기관을 고발하는 편지를 보냈다.

 


 

1537년에는 <유일한 길 : 모든 사람을 참된 종교로 인도하는 유일한 길에 관하여>라는 책을 저술하였으며, 다른 수도사들과 함께 정복되지 않은 원주민들의 영토(지금의 코스트리카의 골포둘세 근처의 투수틀란)로 가서 평화적인 방법으로 포교하였다. 1542년에 원주민 파괴에 대한 짧은 보고서를 저술하였으며, 11월 20일에 카를 5세가 엥코미엔다의 세습을 금지하는 신법률을 발표하게 된다.

 


 

멕시코의 치아파스의 주교로 임명되자 1544년 7월에 아메리카로 가서 1545년 1월에 스페인 고해신부들에 대한 훈계와 규정을 저술하고, 그 규정에 따라 시행했지만 1545년에 신도들의 반대에 부딪치면서 1547년 스페인으로 돌아갔으며 서인도의 역사를 저술하였다.

 


 

1550년 8월에 원주민에 관한 논쟁이 벌어진 바야돌리드 논쟁에서 원주민들을 열등하다고 주장하는 후안 히네스 데 세풀베다에게 그들도 인간으로 신의 어린양으로써 누구도 그들을 함부로 할 권리가 없으며,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취해야 한다고 반박하여 1551년에 이 논쟁에서 사실상 승리하였지만 엥코미엔다들의 행동에는 변화가 없었기 때문에 원주민들의 혹독한 생활은 변함없었다. 더욱이 이 논쟁에서 그는 흑인 노예로 원주민을 노예에서 구하자는, 지금으로서는 많이 당황스러운 논리를 내놓았다.

 


 

1562년에는 <인디오의 역사>의 서문 부분만 출판하였다. 1566년 7월 17일에 누에스트라세뇨라데아토카데마드리드 수도원에서 사망하였으며, <인디오의 역사>는 그의 뜻에 따라 1602년에 출판되었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항해록 필사본을 남긴 인물로 콜럼버스가 적은 그 필사본이 그 아들인 디에고의 손에 있다가 수중에 들어오자 항해록을 대부분 베끼면서 간접 화법으로 요약해 필사했으며, 콜럼버스의 항해록이 현대에 남아있는 것은 이 라스 카사스가 남긴 것이다.

 


 

멕시코 치아파스 주에 있는 산 크리스토발 데 라스 카사스(San Cristobal de Las Casas)는 그의 이름을 기려서 지어진 도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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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백두산토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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