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타락한 한국교회에서 탈출했고...오직 성경만을 읽으며 믿음을 유지 할려고 합니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스크랩] 나는 왜 삼위일체 교리를 거부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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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권교회 삼위일체의 문제점

2010. 6.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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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하나님을 설명할 수 없다는게 저의 입장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계시된 하나님을 이해할수 없습니다. 온전하게 말입니다. 다만 믿어야 하고 믿어지고 믿을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시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실상 사람들은 특히나 신앙에 대하여 나름 믿음있다 하는 많은 이들이 결국은 하나님을 글로서 공부로서 학문으로서, 인간의 지식으로써 이해하려고 시도를 합니다.

 

그리고 각종 자료를 통해서 억지로 가르치고자 주입하고자 시간을 허비합니다. 성경은 공부하는 책이 아니라 생명의 양식으로써 예수를 먹고 마시는 유일한 선물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경을 이리 저리 분석하고 자르고 빼고 더하고 첨가하면서 갈기갈기 찢어 버렸습니다.

 

성경을 훼손하는 자들이 신학자들입니다. 그러한 신학의 방대한 이론과 주장들에 의하여 영향을 받은것의 파편들이 지금 말하는 각종 성경공부 교제들입니다. 그런 교제로 공부한다해서 하나님의 온전하심이 이해가 되겠습니까? 실제로 삼위일체를 가르치고 말하는 신학자들이나 목사들도 이렇게 주장합니다.

 

[하나님의 삼위일체 되심에 관한 것은...엄밀히 말하면 믿음의 차원이지, 이해의 차원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어떤 논리로도 설명이 불가능 하기 때문입니다. 비록 이런저런 사물들을 예로 들어 설명들을 시도해 보지만, 그 어느 것도 반론의 여지가 나오는 등, 만족스럽지 못합니다.]

 

제가 강퇴를 당한 해와 달이라는 게시판에 댓글 달으신 목사님의 표현입니다.


설명이 불가능 하다고 말하면서도 삼위일체교리를 인정해야한다는 주장입니다. 결국은 자기 논리에 빠져서 본인들도 헤맨다는 것을 스스로 폭로하고 있습니다. 모르는것은 모른다고 말해야 옳은것입니다. 모르는것을 왜 안다는식으로 돌려서 말하는지요. 모르는것이 많은게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모든것을 보시고 들으시고 아시고 만드시고 부수시고 살리시고 죽이시고 세우십니다. 우리는 다만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경외하면서...지독히도 미련하고 멍청함을 인정하고...그렇기에 그 아들을...우리와 같은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보내셨구나 하고 감사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 하나님을 찾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스스로 숨어 계십니다.
은밀한 중에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신을 감추십니다. 모세의 간절한 간청에도 불구하고 등만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을 보고 살 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그 아들을 보는자는 하나님을 본것이라 증거하십니다. 그 아들을 믿는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합니다. 그 아들에 관하여 성경은 말합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알기위하여 보기 위하여 믿기 위하여서 신약에 약속대로 오신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면 족한것입니다. 신약에 오신 예수를 알고 믿으면 구약이 열립니다. 

 

구약이 어렵고 딱딱하고 봉한 것처럼 우리에게 막혔지만, 그 문을 열수 있는 키가 오셨습니다. 그 열쇠가 예수입니다. 예수를 알고 믿으면 모든 의문이 풀립니다. 구약의 에스겔과 다니엘이 희미하게 하나님을 경험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신학자들이 다니엘의 계시에 대한 기록을 열심히 풀어 보려했지만 안되는것입니다. 각종 이론과 가설들만 난무한것입니다.

 

예수를 모르고 구약을 이해하는것은 어림도 없습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사람들이 구약의 전문가들이었지만, 예수를 알고 믿어 제자가 된 갈릴리 어부들과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요?
당시 가말리엘 학파의 제자였던 엘리트 사울이라는 청년과 비교하면 어떨까요? 사울이 부활하신 주 예수를 만나기 전이었다면 그도 역시 제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처럼 시각의 차이가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부활하신 주님 이 후에 제자들과 바울과의 인식에서 공통점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지요? 한 성령안에서 주 예수안에서 사는 자들에게는 더 이상 차별이 없다는것입니다. 예수를 구주로 믿는 형제 자매들에게 더 이상 비밀이나 구별이 없습니다.

요한이 바라본 계시록을 이해함에 있어서도 제자들과 바울과 다른것이 있습니까?

이것을 성경적으로 사람의 생각을 쫒는자와 영을 따라 행하는 자들의 차이라고 합니다. 성령이 오시면 나이가 상관 없습니다. 학벌이 상관 없습니다. 지식의 정도가 상관 없습니다. 모든것이 선명하게 보여집니다.

구약의 모든 계시의 본체이신 예수께서 우리안에 성령으로 오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 아들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비밀이신 예수를 우리에게 내어 주셨습니다. 그 비밀이 우리에게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심이 예수안에 다 있습니다.

 

예수 한분 이면 충분합니다.

하나님이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내가 저를 기뻐한다. 너희는 저의 말을 들어라." 삼위일체 교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인지요? 하나님을 설명하려고 하면 더 어렵습니다. 

요한복음14장입니다.(요14:4-11)


내가 가는 곳으로 가는 길을, 너희가 알고 있다." 도마가 예수께 말하였다. "주님, 우리는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도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 수 있겠습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올 사람이 없다.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을 것이다. 이제 너희는 내 아버지를 알고 있으며, 그분을 이미 보았다."


빌립이 예수께 말하였다. "주님,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십시오. 그러면 좋겠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사람은 아버지를 본 사람이다. 그런데 네가 어떻게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십시오' 한다는 말이냐?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네가 믿지 않느냐?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은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면서, 자기의 일을 하신다.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어라. 믿지 못하겠거든, 내가 하는 그 일들을 보아서라도 믿어라.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왜 예수면 충분합니까?

그 분이 바로 우리의 영생의 길이요 오직 한 진리요 참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아들을 내어 주심은 우리가 영원하신 하나님을 사모하고 찾고 구하고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구원이란 우리 속에서 우리가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사람으로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결코 구원을 만들어 내거나 찾거나 할 수 없습니다.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비유하기를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즉 구원을 받는것이 얼마나 어렵냐면 "약대가 바늘귀로 통과하는것이 더 쉬울정도로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제자들이 얼마나 놀라 자빠졌겠습니까?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얻겠습니까?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쫒았습니다만 그러면 우리도 안되는 것입니까? 주님 우리들도 어림없다는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제자들이 모든것을 버리고 주를 쫒았어도 안된다는 것입니다. 구원이란 인간편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불가능한것이라는 뜻입니다. 죽음을 피할 수 없는것이 인간의 실존이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기쁜 소식이 있습니다.

구원이 오면 가능한 것입니다. 인간으로서 도저히 불가능하지만 구원이 오면 가능합니다. 인간 내부에서 만들어 내는 구원이 아니라 인간 외부에서 침투해 들어 오는것입니다. 하나님이 오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인간 세상에 밀려 오는것입니다. 이것이 구원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 구원의 절대자이신 하나님이 하시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이 아들을 보내시고 믿으라고 하십니다. 그 아들이 오셔서 제자들에게 나를 본자는 아버지를 본것이다고 하십니다. 아버지를 본 제자들이 어떻게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과 같을 수 가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아들을 보았습니까? 아들 예수를 보았습니까?

그 아들이 진리이며 생명이며 길임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왜! 사람이 만든 삼위일체 교리에 그토록 억메이시는지요? 아래 어느분이 이렇게 까지 말하는것을 저는 안타갑게 생각합니다. 


[각각 신성을 가지신 <성부하나님>, <성자하나님>,<성령하나님>.. 성경에 분명히 언급되어 있는..삼위일체 하나님입니다..인간의 이성으로는 도저히 파악할 수조차 없는 신비입니다. 따라서 그저 성경에 나와있는 대로..그대로 받아들이면 되는 것입니다.. 즉 삼위일체론은.. 성경에 없는 내용을 인간이 만들어 낸 교리가 아니라, 명확한 성경적 근거를 가지고 있는, 기독교가 성립하기 위한 아주 핵심적인 개념인 것입니다..  이러한, 각각 다른 사역들을 담당하시지만..동일한 위격의 삼위일체 하나님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창세기에 나오는 하나님의 창조사역도,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도 성립하지 않는 것입니다...아니, 기독교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 것입니다..]


 


제가 굳이 닉을 거론하지 않는 이유는 본인이 아실 것이고 또한 인격적으로 감정이나 논쟁을 위함이 아니라는 것입니다.그리고 대부분 삼위일체교리를 수긍하고 그것을 긍정하는 분들의 공통적인 인식이라 생각하였기에 발췌를 한것입니다.


당사자 분께 만일 심경이 불편하셨다면 정중하게 사과 드립니다. 위 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삼위일체교리가 ,정확하게 삼위일체 하나님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기독교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식으로까지 완곡하게 주장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자체가 성립이 안된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독교를 세우라고 그토록 많은 역사와 시간들을 참으셨다는 것일까요? 이미 아담의 후예들은 노아의 홍수로 크게 멸절의 상황까지 경험하였지만 당시에 이미 종교가 성립이 된 상태였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불의함이 탄로가 나서 반역하던 천사들이 내어 쫒겼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에덴 동산과 아담과 하와를 엿보았습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직접적으로 항거할 수 없었던 악한 사단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아담을 공격하여서 유혹하였고 속인것입니다. 속아 넘어간것입니다.
하나님 처럼 가장한 사단의 속임수에 걸려 넘어갔습니다.그 사단이 공중권세 잡은 이 세상의 왕입니다. 세상 나라의 권세자가 죽음과 사망의 왕 노릇하는 사단입니다.

 

그 나라에 누가 침투한 것입니까?

하나님의 아들이 오셨습니다.절대적인 구원하실 자가 오셨습니다.자기 백성들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자기백성들을 살리시려고 오셔서 죄의 삯을 대신 십자가로 지불하셨습니다.마귀에게 사로잡혀서 죽을 날만 기다리던 우리들에게 생명이 오신 것입니다.이것이 구원사건입니다.

 

성경을 통해서 우리가 무엇을 확인해야 합니까?

구원입니다.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이라는 사단의 왕국에서 종살이 하다가 죽을 그 운명에서 구원자 모세를 보내서 자기백성들을 빼어 내오신 것입니다. 이 출애굽 기사가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요 모형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기독교가 성립되느냐 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모두가 죽을 운명에서 살았다는 것입니다. 도저히 그 사망에서 피할 수가 없었던 죄인들이 구원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구원자가 예수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성경은 선언하고 있습니다.


사도들이 무엇을 전하였습니까?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예수가 그리스도요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으며 그를 믿는자마다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이 땅을 살다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다는것입니다.

그 구원하실 자가 예수라는 것을 전파하는것입니다.


초기 예수의 제자 공동체가 기독교를 성립 하고자 제도를 만들고 법을 개량하거나 학교를 세워서 교육을 하거나 기독교 국가를 만들고자 한적이 있습니까? 바울 사도가 3 차에 걸쳐서 선교 여행을 가면서 교회를(믿는자들) 세운것이 마치 기독교회를 성립한것이라고 생각하면 성경을 오해하는것입니다.


그러한 오해가 어떻게 나타났습니까?
십자가 깃발들고 무력으로 침공한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해서 영토를 확보하고 자기들의 야망을 채운 피의 역사일 뿐입니다.

 

그것이 모양만 바뀌어서 어떻게 나타납니까?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라는 구호를 외치는 것입니다.그리고 기독교가 안들어간 나라는 다 못살고 가난 하다는등 불교가 들어간 나라가 못산다는등...예수 믿어야 축복받고 잘산다는 헛소리들이 스스럼없이 목사들의 입에서 줄줄 나오는 것입니다.

거침없이 내 뱉는 것입니다.
겉으로 말을 하지 않아도 그렇게 생각하는 철없는 목사들과 후보생들로 넘쳐나는것이 그 현상입니다.지금 우리는 그 열매를 절실하게 뚜렷하게 보고 있을 뿐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기독교가 창조와 구원 섭리가 성립되지 않는다니오?

 

무슨 소리입니까?

하나님의 이름이 인간의 인정과 도움을 받아야만 존중되어진다는 것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구세주 되심과 그의 십자가의 피로 씻겨진 주홍같이 붉은 죄가그 아들 예수의 피로 말미암아 깨끗하게 씻겨짐이 우리가 인정해야 만 성립이 된다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긍휼을 베푸시고 그 죄악들을 빽빽한 구름속에 감추시고 동이 서에서 먼 것처럼 주의 등 뒤에 던져 버리시고 도말 하심이 우리가 인정 하느냐 안하느냐에 달렸다는 것입니까?


우리가 삼위일체 하나님을 고백하고 인정하는것에 의하여 하나님이 높임을 받으신다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우리 때문에 존재하신다는 것입니까? 우리가 없으면 하나님은 하나님이 아니신 것입니까?

 

하나님은 홀로 충만하시고 부족함이 없으십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존재하시며 영원하시며 무한하시며 완전하시며 충만하시며 지극히 높으시며 그 이름이 영원하십니다.
인간이 아니라도 하늘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만물들이 찬양합니다. 하늘을 손수 펴시며 궁창을 나누시며 바다의 경계를 정하시며 태양을 수천 억개나 만드실 수 있으시며 모든 나라와 민족들을 세우시기도 하시며 뽑으시기도 하시며 흩으시기도 하시며 흑암을 광명한 대낮처럼 보시며 무엇이든지 드러나게 하시며 감추시기도 하시며 모든것을 스스로 원하는데로 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을 인간의 얄팍한 지식으로 삼위일체 하나님이라는 교리를 만들어서 존중해 드리고 높여 드리고 숭배하자고요?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그토록 혐오하시고 미워하신 바벨론 신앙이며 우상숭배이며 가증한 이방신들을 섬기는 것이며 귀신을 섬기는 것이며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가나안에 살고 있는 가증한 족속들을 멸하라하신 원인입니다.

 

전쟁을 위하고 인간의 피를 흘리기를 기뻐하는 악한 신으로 까지 거짓으로 속이는 세상의 사상들을 받아 드리는 것입니다.구약의 하나님은 폭군이기에 이스라엘이 가는 곳마다 전쟁으로 무고한 사람들을 죽였다고 거짓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따위 교리들은 우리가 철저하게 거부하고 부정해도 전혀 하나님은 손상을 입지 않으십니다.걱정하지 마시고 예수를 믿으십시오. 예수가 길이며 진리며 생명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하나님을 믿는것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완전히 부정해도 예수를 믿으면 그가 바로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아들을 믿는것입니다. 아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아직도 세상의 헛된 신화와 족보에 착념하여서 어리석은 변론으로 시간을 축내지 말고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으십시오.예수를 믿으십시오. 그의 말씀을 통해서 그를 만나십시오.

 

그가 우리에게 오셔야 합니다.

진리가 우리에게 찾아 오셔야 합니다. 참 생명이신 예수

구원자이신 예수가 구원을 받아야 하는 저와 여러분에게 오셔야 합니다.

 

내가 열심히 찾고 구하고 두드린다고 오시는 분이 아닙니다.

만일 그렇다면 우리의 공로나 열심이나 정성 때문에 하나님의 뜻이 바뀐다는 것이 됩니다. 그리고 우리의 노력 여하에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을 조종한다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본성은 우리가 하나님처럼 되고자 함입니다.

하나님처럼 되지 못하니까 하나님을 우리가 원하는 모양으로 만들어서 고정시켜 버리기를 좋아합니다.그것이 우상을 섬기는 신앙의 특징입니다. 파라오가 라암셋을 건축하고 바벨탑을 쌓으려하고 그모스와 밀곰과 바알과 아세라상을 만들어서 절하고...별을 숭배하고 달을 신으로 섬기고하는등... 나무를 섬기고 돌을 섬기도 코끼리와 쥐를 섬기고 각종 자연세계를 섬기는등등....

 

무엇이든지 꼼짝 못하도록 형상화 시켜서 거기 세워두고 찾아 가서 인간의 소원을 위하여 빕니다. 종교의 특성이 어떤 장소를 신성하게 여긴다는 것입니다. 어떤 건물을 섬기고 어떤 모양이나 형상을 아로 세겨서 그것을 이미지화 시킵니다.하나님이 저기 계셔서 거기에 절하고 헌금하고 봉사하면 복을 내리신다.하나님이 저기 가면 언제나 보고 있으니까 거기 가서 빌어라. 기도해라등...

 

그렇게 보이는 것이 존재해야만 인간은 안심을 합니다.눈에 보여야 안심하고 걱정하지 않습니다.만일 그것이 어느날 사라지거나 그런 흉상에서 눈에 핏자국이 있다거나 눈물이 흘러내린 흔적이라도 발생하면 난리도그런 난리가 없습니다. 그 훙상이 넘어지기라도 하면 불길하다고 불안해 하며 야단입니다.그러니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은 눈에 안보이니까 두려울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자꾸 인간은 무엇인가를 보기를 원합니다.
표적을 보여 달라고 합니다. 내가 봐야만 믿겠다는 것입니다. 호랑이나 사자가 단단한 동물원 우리에 있으면 안심하고 즐거워 합니다.그러나 만일 우리의 문이 열려져 있고 그 안에 있어야할 사자나 호랑이가 안보니면 큰일 나는것입니다.


그러니까 성당을 건축하고 교회당을 호화스럽게 건축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십자가를 걸어 놓고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가르칩니다.교회 건물을 가리키면서 저기 하나님의 성전이니 거룩하게 옷 예쁘게 차려입고 새 돈을 은행에서 교환해서 정성을 들여서 십일조 봉투를 경건하게 주일헌금을 경건하게 바치라는 것입니다.

 

밖에서 실컷 화를 내다가도 교회당만 들어오면 한결같이 경건한 신자들이 되어 버립니다.목사님 앞에 겸손하게 고개 숙여 인사하고 말도 작게하며 은혜스러운 말만 하면서 마치 하나님의 은혜를 몽땅 받은자 처럼 화사하게 미소짓느라 땀을 뻘뻘흘립니다. 완전히 교회당 안에만 들어가면 그런 은혜받은 신자들로 가득합니다.목사의 축복을 가득 듣고 기쁨으로 교회당을 떠나갑니다.하나님이 교회안에서 모든 교인들이 섬김과 고백과 찬양과 기도와 헌금을 받으셨기에교인들은 당당하게 흐믓하게 위로와 만족을 맛보면서 교회당을 벗어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변함없이 교회안에 좌정하시면서 또 일주일을 기다려 주십니다.

세상에서 온갖 부끄러운 일들과 말들과 거짓을 밥먹듯이 하여도 주일날에 교회만 나와서 순서에 따라서 대표기도 깔끔하게 하고 회개하고 주여 삼창하고 찬양하면 그는 다시 경영하는 회사의 오너가 되거나 이사가 되어서 또 다시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동물적인 본능을 유감없이 발휘합니다.


임금을 어기고 깍거나 하면서 직원을 해고 시키고 새로운 직원을 채용하기도 하면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아도 주일날에 십일조 두둑하게 준비하고 목사님 선물도 챙기고 교인들을 위한 작은 선물꾸러미도 챙깁니다. 목사와 교인들의 열열한 환호를 받으며 거룩하게 인사를 나누고 광고시간에 선물들을 베풀어줍니다.

'역시 우리 장로님은 너무 은혜로우시고 큰 기업을 경영하시는데도 저렇게 목사님과 교인들을 섬기시고 십일조 꼬박꼬박 잘 하시니...  복을 아니 받을수가 있는가' 라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일색이니...당연히 교회와 목사에게 충성을 할 수 밖에....


하나님은 주일날에만 만나서 한꺼번에 좋아하시는 돈을 퍼다 안겨 드리니 일거리마다 넘쳐나고 장로로서 귀감이 되니 이거야 말로  수지 맞는 장사 아닌가? 역시 하나님을 잘 믿어야 복받는구나 죄를 지어도 여기와서 진심으로 회개만 하면 용서해 주시니 이렇게 고마우신 하나님께 십의 일조가 뭐냐 째째하게...십의 삼조 오조까지라도 아깝지 않지...많이 바치는 많큼 많이 부어주시는 하나님이시니 심는대로 거두신다 하셨으니 얼마나 좋은 하나님이신가........................

 

우상을 숭배하고 특정한 건물을 숭배하고 형상을 만들어서 특별한 장소에 보관하는 것이 무슨 이유 때문일까요?

신을 잘 믿어서일까요? 정말 하나님을 믿어서일까요?하나님을 두려워 하거나 믿지 않습니다. 오히려 만홀히 생각하고 무시하는 것입니다.하나님을 말하고 겸손을 표현하고 교회당안의 조직에 적응을 잘하면 하나님을 진실로 믿는것일까요?

아닙니다. 인간은 스스로 하나님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그러나 다른 면으로서는 하나님을 두려워 합니다.죄의 속성이 두려움과 부끄러움입니다.

 

아담이 범죄하였을 때 하나님이 그의 이름을 부르시고 찾으실 때 두려워서 나무 뒤에 숨었습니다.이것이 본능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만나면 숨게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이 하나님을 본성적으로 두려워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그것은 자신의 불의함이 드러나기에 그런 것입니다.자기의 죄가 탄로가 나기에 언제나 두려워 하는 것입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제사와 성전을 신성하게 숭배하였을까요?자기들의 죄가 노출되기 때문에 그런것입니다.

이 말은 그러니까 하나님이 싫어하는 죄를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하였다는 것입니다.그러니까 선지자들이 싫은 것입니다. 마치 모든것을 꿰뚫어 보듯이 이스라엘을 향하여 죄를 고발하고 책망하고 회개하라고 하니까듣기 싫은것입니다.

 

자기들의 양심을 향하여 어떻게나 속속히 아는듯이 죄에 대하여 고발하니까 미운것입니다. 그래서 선지자들을 죽였습니다.

선지자들이 하나님이라도 되는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말씀으로 죄를 보여주셨기에 들은바 말씀만을 전한것입니다.듣고 돌이켜야 하는 이스라엘은 끝까지 완고하게 고집을 꺽지 않고 대항하였습니다. 예수께서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을 향하여서 화! 를 선언하셨습니다.그들이 하는 행위가 바로 우상을 섬기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보이는 성전과 제사제도를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으로 착각한것입니다.사실은 그것이 좋아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욕망을 위하여 눈 감아 주는 하나님이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더 정직하게 말해 볼까요?
모든 종교인들이 왜 우상이나 형상을 만들어서 섬기는것일까요? 거기에다가 절하면 소원이 들어줄 것이라고 믿어서요?


천만에요.우리 솔직하게 말해 봅시다.
그까짓 돌이나 나무로 만든 형상에게 수 천번 절하고 빈다고 소원이 이뤄지겠습니까?그러면 뭐하러 그러느냐고요?

 

자기들의 죄를 보고도 아무런 징계나 벌을 내리지 못하는 존재라는것을 알기에 그런것입니다. 말하자면 내가 나의 욕심을 위하여 불의한 짓을 해도 우상에게 엎드리어 절하고 회개하면 양심이 조금은 위안이 되기에 그런것입니다. 그러니까 자기 만족과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섬기는 것입니다.

돌이나 나무가 생각이 있습니까?
그것들이 손이 있어서 발이 있어서 걷거나 잡기를 합니까? 넘어져도 꼼짝도 못해서 사람들이 일으켜 세워 줘야합니다.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그것을 피할 방법이 없습니다.절대적으로 무능한 것이 우상입니다.헛된것들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바로 하나님을 그렇게 스스로 만들어서 부패하였다는 것입니다.자기들이 죄를 짓고 살아도 아무런 심판을 하지 않는 하나님. 자기들을 위하여 원할 때 승리를 주고 복을 주는 통로가 되는 하나님.그런 하나님을 이스라엘은 원한것입니다. 말씀하시는 하나님, 대화하기를 원하는 하나님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일일히 간섭하시고 끼어들기하는 하나님은 거절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거절합니다.


오늘날 기독교는 어떻습니까? 너무나 동일하지 않은지요?

교회를 성전으로 숭배하고 목사를 하나님의 종이라고 숭배하고 십일조가 하나님의 것이니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고 거짓말하고.... 십일조가 하나님의 것인데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고요?


온 우주와 만물들이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우리의 생명이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원래 우리 것이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것이 아닌데도 그것이 하나님의 것이니까 교회를 통해서 십일조를 하나님께 돌려 드려야 한다고요? 이미 하나님의 것입니다. 웃기는 소리 하지 마십시오.하나님을 시험해 보라고요? 십일조로요? 그것이 원래 누구 것인데요?

니것입니까? 당신것입니까? 하나님 것인데 그것을 하나님께 드리자고요?

 

삼위일체 교리나 건물 교회나 눈에 보이는 제도나 조직을 수호하려는지 아십니까? 멀리 갈것도 없습니다. 구약의 이스라엘이 보이는 제도나 전통이나 관습에 철저하게 열심을 낸 것이 증거입니다. 자기들의 범죄와 불의함을 감추고자 보이는 하나님을 형상으로 제도로 만들어서 섬겼다고 합법화 시키는 것입니다.하나님을 금송아지 형상으로 변질시켜서 지들 멋대로 춤추고 제사하고 난리 부르스를 춘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섬겼으면 감동 받으셔서 어지간한 죄는 눈감아 주시겠거니 한것입니다. 법관들은 뇌물을 받고 재판하며 불법이 성행하며 제사장들은 하찮은 것들은 십일조라고 속이고 터진것 저는것 눈먼것으로 바꾸고 살찌고 건강한 것들은 뒤로 빼내서 자기들이 챙기고 백성들의 장로들은, 지도자들은 남의 아내를 빼앗고 음행을 하고 하나님의 성전은 외면당하고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하였건만 장사꾼들과 강도의 소글로 만들어버린 것입니다.

 

그래놓고도 하나님을 우리가 언제 버렸느냐 떠났느냐고 항변합니다.
우리가 주일을 철저하게 지키고 십일조를 하고 수요일도 금요일도 하나님을 예배하였답니다.
성경공부 열심히 가르치고 제자훈련 해서 배출하고 전도 특공대 조직해서 열심이었고 신학교를 세우고 목사를 양성해서 양들을 양육하였다고 자랑합니다. 교회건물 수백웍원씩 대출까지 받아가면서 충성했다고 자랑합니다.기독교 장로 대통령을 만들었다고 큰소리칩니다.새벽기도 운동으로는 우리를 따라올 나라가 없다고 목에 힘을 줍니다.이정도로 우리가 하나님을 열심으로 섬긴다고 억울하게 하소연 합니다.

 

이만 하면 후한 점수를 주셔야하지 않느냐고 열변을 토로합니다.그런데 교회의 이름으로 목사의 이름으로 교단의 이름으로 그 안에서는 온갖 부정과 부패와 탐욕과 부끄러운 짓거리들이 자행되어 버립니다. 강도의 소굴로 만들어 놓고도 회개할 줄을 모릅니다. 어쩌면 그렇게도 유대인들과 한치도 어긋남이 없습니까? 하나님이 이러한 조직과 제도와 교리들이 없으면 하나님이 안되시는 것입니까?

 

사도들은 어떻게 살았습니까? 그들에게는 오직 예수 뿐이었습니다.예수 한분만 모시면 다 된것입니다.전혀 부족하지 않았습니다.오히려 예수로 충만하였기에 그들은 너무 많아서 그 예수를 전하려고 살았던 것입니다.

 

당신에게 예수로만 충분하십까?

그렇다면 무엇이 그리도 불편하고 무엇이 또 필요한 것인지요?아직도 교리나 사상이 견고 해야만 하나님이 하나님 다우심이 되는 것이라 생각하시는지요? 아직도 인간들이 무엇을 다하거나 지켜야만 교회가 유지가 되고 기독교가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 하시는지요? 그래서 열심으로 교리와 사상과 신학으로 이단들을 막아내고 교리를 거부하면 개종하게 만들어야 하고 심지어는 끝까지 삼위일체 하나님을 모르거나 부정하는 자들을 찾아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죽여야만 하는지요?

 

삼위일체 하나님을 모르거나 부인하면 하나님을 망령되게 하는 것인지요?
그러면 칼빈이 만든 삼위일체 교리를 굳게 인정하고 고백하는 자들만 구원을 받는 것인지요?
그렇다면 사도들과 사도들이 전한 복음만을 듣고 예수를 믿은 초대교회 성도들은 삼위일체 교리를 모르니까 전부 주님과 상관없는 곳에 가 있겠군요? 그렇다면 천국에는 온통 칼빈의 교리를 굳게 인정하고 가르치고 전파한 자들만 우글 우굴 하겠군요?

 

저는 주 예수가 계신 곳에만 가기를 원합니다.

주여 나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나는 그저 십자가에 달려 나의 모든 죄를 깨끗하게 씻겨주시고 그 피로 말미암아 그 공로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을 믿을 뿐입니다. 주 예수만이 나의 전부이시며 나의 구세주시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고 믿을 뿐입니다. 앞으로도 나는 이러한 주 예수 그리스도만을 알것이며 그 예수 그리스도만을 전할 것입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의 은혜와 구원하심을 가리우고 속이고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를 만난다면은 물러나지 않도록 힘과 용기와 성령의 지혜를 부어주시기를 구하옵니다. 내 입에 할 말을 넣어주시고 생각나게 하여 주시고 깨닫게 하여 주셔서 두려워서 타협하거나 비겁하게 주 예수를 부인하지 않도록 은혜와 긍휼을 주시옵소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전하게 하여 주옵소서.

 

 (고린도후서4장1-18)
이와 같이 우리가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힘입어서 이 직분을 맡았으므로,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부끄러워서 드러내지 못할 일들을 우리는 배격하였습니다. 우리는 간교하게 행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진리를 밝히 드러냄으로써, 하나님 앞에서 모든 사람의 양심에다가 우리 스스로를 떳떳하게 내세웁니다.


우리의 복음이 가려 있다고 하면, 그것은 멸망하는 자들에게 가려 있는 것입니다. 그들의 경우를 두고 말하면, 이 세상의 신이 그 믿지 않는 자들의 마음을 어둡게 하여서,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의 영광을 선포하는 복음의 빛을 보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선전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선포합니다. 우리는 예수를 따르므로, 우리를 여러분의 종으로 내세웁니다.


"어둠 속에서 빛이 비쳐라" 하고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 속을 비추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지식의 빛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보물을 질그릇 속에 담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 엄청난 능력이 하나님에게서 나오는 것이지, 우리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님을 드러내시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러가지로 환난을 당해도 곤경에 빠지지 않으며, 난처한 일을 당해도 절망에 빠지지 않으며, 박해를 당해도 버림을 받지 않으며, 거꾸러뜨림을 당해도 망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예수의 죽임 당하심을 우리 몸에 짊어지고 다닙니다. 그것은 예수의 생명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 있으나, 예수를 위하여 늘 몸을 죽음에 내맡깁니다. 그것은 예수의 생명이 우리의 죽을 몸에 나타나게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서는 죽음이 힘을 떨치고, 여러분에게서는 생명이 힘을 떨칩니다.


성경에 기록한 대로 "나는 믿었으므로 말했다" 하였으니, 우리도 그러한 믿음을 일으킨 같은 영을 지니고 있으므로, 우리도 믿고 있고, 또한 우리도 말합니다.
우리는, 주 예수를 살리신 분이 예수와 함께 우리도 살리시고, 여러분과 함께 자기 앞에 세워 주시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모든 일은 다 여러분을 유익하게 하려고 일어났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은혜가 점점 더 많은 사람에게 퍼져서, 감사하는 마음이 넘치게 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는 것입니다.

 

속사람의 생활

 

그러므로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 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나날이 새로워 갑니다. 우리가 지금 겪는 일시적인 가벼운 고난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영원하고 크나큰 영광을 우리에게 이룩해 줍니다. 우리는 보이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봅니다. 보이는 것은 잠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고린도후서4장1-18)아멘.


주후2009년7월20일.ⓒ 사랑그리고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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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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