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온글

문흥골 2009. 11. 13. 14:45

法曹 人物 - 法曹人  可人 金炳魯


부정을 행하기보다 굶어서 죽는 편이 영광....

우리나라 초대 대법원장을 지낸 가인 김병로(1887∼1964)는 불의·부정과 타협하지 않는 청렴, 강직한 원칙론자로 우리나라 법조인의 사표로 추앙 받고있다. 법학교수 변호사 사법부장 대법원장 정치인으로서 가인은 일제하 항일투사를 용기 있게 변론한 법정투쟁과 정부수립 후 사법부의 기틀을 세우는 과정에서 법조인으로서의 수범을 보인 일생을 살았다. 해방 후 그를 보면서 똑똑한 젊은이들이 법조계로 몰렸고, 판사들은 긍지를 느꼈다고 말하는 우리 법조계의 자랑이다. 파란만장한 한국근대사를 함께 살아온 그의 생애는 나라의 기구한 운명, 그 속에 독립의 외길 인생을 살다간 민족투쟁사와 그대로 포개어진다.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 하리에서 사간원 정언을 지낸 김상희의 3남매 중 외아들로 태어난 가인은 14세 때까지 한학을 공부했다. 그러나 2년 뒤 일본의 신문화에 충격을 받고 고향에서 친구들과 일신학교를 설립, 신학문에 뛰어들었다. 가인은 이듬해인 1905년 일제의 강압으로 을사조약이 맺어지자 학교를 그만두고 최익현이 이끄는 의병에 가담, 순창읍 일인보좌청을 습격하는 등 항일투쟁에 몸을 던졌다. 하지만 최익현의 순국을 목도한 그는 민족이 살길은 신학문을 통한 민족자강 뿐이라는 신념으로 1910년 일본으로 건너가, 명치대를 거처 중앙대 고등연구과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귀국했다.


경성전수학교와 보성법률상업학교에서 법학을 강의하던 그는 1919년 부산지방법원 밀양지원 판사로 취임하지만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재판을 거부, 1년도 못돼 사임했다. 민족변호사로서의 그의 활동은 이때부터 시작된다. 3.1운동 이후 광복때까지 무료변론을 맡았던 독립운동 사건은 안창호 여운형 등 민족지도자에 대한 치안유지법 위반사건, 광복단 김상옥 의사 사건, 광주학생운동, 6.10만세, 105인 사건, 홍사단 사건, 대구학생 비밀결사, 조선공산당·간도공산당 사건, 원산파업 등 무려 1백여건에 달한다. 그의 변론사는 일제치하 항일투쟁사와 일치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23년엔 형사공동연구회를 결성, 법정투쟁과 함께 형무소에 구금된 애국투사들과 그 가족들을 뒷바라지했다.


민족지도자로서의 가인은 신간회 활동을 통해 더한층 빛을 발한다. 그는 신간회의 회계겸 재정부장, 중앙집행위원장 등을 맡아 민중대회들을 이끌었고, 항일투사와 억압받는 민중들을 위한 법률투쟁을 벌였다. 특히 1924년 조선일보 등을 통해 실태가 부분적으로 보도됐던 갑산 화전민 박해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일경의 협박과 살해 위협을 무릅쓰고 백두산 화전민마을들을 직접 답사, 일제의 잔혹한 만행을 세상에 알린 일은 유명하다.


해방후에는 혼란된 정국에서 좌-우익 연합을 시도했었고, 정부수립 후에는 초대 대법원장에 취임 반독재와 인권보호, 사법권독립, 사법부 청렴운동 등 사법부 상의 정립에 온 힘을 쏟았다. 친일파 처벌을 위한 반민특위 재판관으로 이승만 대통령의 유화적 담화에 정면으로 반박했으며 사사오입 개헌의 부당성에 대해서도 통렬한 비판을 서슴지 않았다. 57년12월 대법원장을 정년퇴임 한 후 야인으로 돌아가서도 신문을 통해 정부의 법관회의 대법원장 제청권 삭제 시도를 규탄하는 등 반독재 항거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그는 투철한 사법정신을 청렴 강직의 법조 윤리로 연결시켜 생활로 실천했다. 법관들에게 `부정을 행하기보다 굶어서 죽는 편이 영광`이라며 사법정신을 심어주려고 전념했다. 가인은 공사를 가려 공직 윤리에 충실했고, 법의 기초가 되는 윤리를 강조하고 상도 정치를 역설했다. 그의 일생은 한마디로 사법의 제도보다도 법률가의 인격과 윤리가 더욱 중요하다는 사실을 몸소 보여준 삶이었다. 가인의 일생은 사법개혁의 목소리가 높아만가는 이 시대에 법조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바가 크다.

 

 

 

 

 

 

 

 

"서울시가전의 용장 김상옥의사" 가 KBS TV제작국 요청으로
"1: 1000의 독립전쟁"으로 제목이 바뀌어 11월17일 순국선열의 날 행사전
오전 10시 방영됨을 알려 드리며. 제블로그에서 예고 동영상을 볼수 있으며
김상옥의사님이 하신 일을 한분이라도 더알려지게 널리 알려 주셨으면 합니다
http://blog.naver.com/56dhyoon/220179253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