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정원이야기/봄

송정섭 2011. 3. 28. 09:24

 

 

 

'이본느'는 프리지아 대표품종이었다. 글라디올러스, 칼라, 유코코리네... 구근화훼류들이다. 

구근류는 다른 화훼류와 마찬가지로 계절, 소비유형, 수출 등 우리나라 화훼산업에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이런 구근화훼류들이 우리 과학원 조해룡 박사님을 만나면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국내에서 재배되는 거의 모든 품종이 로열티를 내야 하는 외국품종인데, 이에 견줄만한 품종들이 조 박사님의 눈과 손에 의해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조 박사님은 우리나라, 아니 구근화훼 육종에 관한 한 세계적인 학자이셨다.

그의 유전자원에 대한 해박한 지식, 철저한 육종목표와 좋은 계통을 선발하는 예리한 눈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였다.

그가 만든 품종은 국내 농업인들은 물론 네덜란드 육종회사들도 탐내는 양질의 품종들이다. 

 

이런 명성덕분에 그의 품종들은 바로바로 농가가 선호하는 일등품종이 되었다.   

조 박사님의 이런 살아있는 연구성과, 실용품종 개발과 육종에 임하는 자세는 주로 현장에서 나온다.

많은 농업인을 만나며 현장에서 문제점을 찾고 현장의 애로를 해결하는 자세가 몸에 베어있기 때문이다.

 

프리지아 '샤이니골드', '이본느'보다 꽃도 크고 수량도 많이나면서 일본 수출주력 품종으로 바로 자릴 잡았다. 글라디올러스, 칼라도 마찬가지다. 그의 손에만 가면 농업인들이 좋아하고 시장에서 알아주는 품종들이 속속들이 개발되어 이땅에서 외국품종들을 뽑아내게 만들었다.

그는 이땅의 진정한 애국자, 육종학자, 따스한 심성을 가진 연구자, 동료의 한 사람이었다.

 

이런 그가 48세에 세상을 떠났다. 혈전성혈소판감소성자반증이라는 희한한 병으로...  

피부가 멍든것 같고 어지럽다며 잠깐 병원에 다녀온다며 나간지 9일만에...

이제 그를 다시 볼 수 없다. 

 

아마 하늘에도 나라가 있어서 꽃을 아는 사람, 심성이 꽃처럼 진실하고 따뜻한 일꾼이 필요했나 보다.

안치실에 도착한 그의 얼굴은 평안하였다. 이미 하늘나라에서 자릴 잡은 것 같다.

오늘 그가 다니던 서둔교회 목사님 말씀도 여기보다 훨씬 좋은 나라로 가셨으니 축복해주자 하신다.

 

생전에 그가 즐기는 일은 온실, 포장, 연구실, 교회를 오가는 것이 다였다.

허구헌 날 밤 11가 되어야 연구실을 떠나는 그는 진정한 연구자요 육종학자였다.

그의 이런 업적과 심성을 아는지 그가 가는 자리에 많은 사람들이 함께 했다.

 

조 박사님이 만든 품종을 재배하며 그를 스승으로 여기는 많은 농업인들의 조문도 줄을 이었다.

바로 얼마전 농진청 합창단까지 만들어 지휘까지 하셨는데...

농촌진흥청에서 그를 아는 많은 사람들이 함께 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슬퍼하였다.

 

우리 과학원에서 20년을 연구자로 살았지만 그의 업적은 타인의 40년간 것보다 많았다.  

그의 화훼분야에 대한 출중한 역량을 생각하면 참으로 안타깝다. 짧지만 정말 굵게 살다 갔다.

이제 그의 자리는 채워질지 몰라도 육종가로서 인간으로서 탁월했던 그의 눈과 역량 그리고 따스한 심성은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을런지... 

 

고인이 생전에 지었던 인자한 웃음과 함께 항상 동료들을 챙기고 배려하는 속깊은 정을 되새겨본다.

주변 동료들이 안타까워 할 정도로 일만하면서 몸과 마음을 혹사시켰으니 이젠 정말 편안하시길...

영정속의 고운 미소처럼 하늘나라에서 편안히 영면하시길...

 

삼가 조해룡 박사님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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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저희 가족 모두 고개숙여 진심으로 인사드립니다.
조해룡박사님의 향기는 우리 원예원에 그리고 화훼산업에 함께 한 모든 이들의 마음 속에 오래 남을 것입니다. 같이 지내는 동안 아껴 주지 못해 참으로 안타깝고 미안한 마음입니다. 하늘나라에서 더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 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후리지아, 글라디올러스 재배 농가에 함께 가서 농민들의
이야기를 들은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 다시는 볼수 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의 빈자리가 얼마나 큰지 시간이 갈수록 느끼겠지요.
좀 쉬어 가면서 일하라고 권면하지 못한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립니다.

조 박사님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십시요.
다시 한번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저의 업무 상 조 박사님의 한 일을 평소에는 잘 몰랐지만, 아까운 인재를 잃은 슬픔에 멍 할 뿐입니다. 합창 지휘를 한 모습이 마지막 모습이 되고 말았군요. 우리 모두 본인은 물론 주위 동료들의 건강도 다시 한번 챙겨봅시다.
오늘 소식듣고 무너지는 느낍입니다. 원에연구소에 일했을 때 글라디올러스 프리지아 도와드렸습니다. 2년간 정말로 박사님께서 좋은신 선생님이십니다. 올 초에도 안부인사 까지 했는데 이런 소식듣고 하염없이 눈물이 나네요 선생님 고맙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천국에서 지켜봐주세요
부디 천국에 가셔서 주님과 함께 계세요! 명복을 빕니다.
조해룡 박사님! 이제 불러도 대답없는 이름이네요. 왜 그렇게도 빨리 우리 곁을 떠나셨나요. 너무나 원망스럽습니다. 조박사님께서 이룩한 훌륭한 연구성과는 영원히 빛날 것입니다. 지난 20년간 정말 수고많으셨습니다. 이제 속세의 무거운 짐 다 내려놓으시고 편안히 영면하십시요.
선생님. 이제 선생님이 안계시다는것이 믿기지 않네요..
선생님과 함께했던 시간들과 제게 해주셨던 말씀을 잊지 못할것 같습니다.
그곳에서 행복하세요.
명복을 빕니다.
저희 아빠 이야기 이렇게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아빠 막내딸 한은이라고 해요.
지금 고등학생 2학년으로 학교를 다니고있어요.
요즘 계속 아빠께서 박사학위다 뭐다 하셔서 계속 못만났는데..
만나니까 이젠 이세상에 안계시네요...
저랑 언니랑 오빠 앞으로 힘낼거구요 장례식때 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래요. 아빠는 정말 훌륭한 분이셨어요. 그런 아빠를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꿋꿋하게 훌륭한 사람으로 성장하리라 믿어요. 우리 직원들도 자녀 세분 모두 올곧게 잘 자라길 기원할께요.
아직도 제 카메라 속엔 합창연습 당시 찍은 조해룡 박사님의 따뜻한 사진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손으로 잡으면 잡힐 만큼 가까웠던 시간이기에 정말 믿기지가 않습니다. 프리지아 꽃처럼 아름다운 향기를 남기시고 떠나신 조해룡 박사님의 명복을 빕니다. 멀리 하늘나라에서도 프리지아 향기가 가득할 것입니다.
죄송하지만요... 쪽지를 보내고 싶은데.. 메일 주소라도 남겨주세요...
조해룡 박사님에 하나뿐인 동생인데요.. 오빠 사진들을 구하고 싶은데요...
답장좀 주세요.. 부탁드려요..제 메일 주소는 hanl2438@naver.com이에요..
조해룡 박사님 동생입니다..
이렇게 많은 분듣이 저희 오빠 챙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빠가 병원에 있을때 함께 얘기하던게 엇그제 같은데.. 옆에 없다는게 실감이 나지 않네요.. 그래도 마지막까지 많은 분들이 함께 해주셔서 오빠는 행복했을겁니다..
많은 분들에 가슴속에 오래 남아 있을거구요..
제가 결혼 후에 좀이라도 오빠를 챙겨주었다면... 하는 가슴 아픈 마음만 남네요..결혼전엔 가서 밥도 해주고 했는데...결혼후엔 애기가 자주 아파서 그걸 못했으니...오빠 생각만 하면 눈물이 자꾸 나네요..
장례식장에서 도와주셨던 청 식구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아직도 핸드폰 속에서 조해룡 박사님의 번호를 지울수가 없습니다...언제쯤 지울 수 있을련지.. 오늘도 곁에서 프리지아 얘기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부디 하늘에서는 영원하시길...
그래요, 국 사장님은 유난히 조 박사님과 가까이 지내셨으니..., 이젠 하늘나라에서 편안히 우릴 내려다 보시겠죠~, 그 뜻을 잘 받들어 계속 화이팅 하셔야지요. 고맙습니다. 참 고맙습니다.
이제야 이런 공간이 있는걸 알았네요.
여러분들이 올려 놓으신 글들을 읽느라니 눈물이 앞을 가리고 가슴이 너무나 아파서 아직도 이렇게 진정한 맘으로 울수 있구나...그런 생각이 듭니다.
연구자이면서 농민의 편에서 보다 인간적으로 믿을 수 있었던 의지할 수 있었던 그런 사랑스러운 선생님 이셨는데...
현장에 오시면 항상 프리지아에 대한 열정을 보이시고 농민으로서도 자부심을 가지라면서 어찌하면 발전시킬 수 있는지 너무나 많은 고민을 하고 계셨습니다.
많이많이 보고싶고 청명한 목소리 듣고 싶습니다.
그많은 선생님의 흔적들이 아마 영원이 맘속에 자리 잡을것 같습니다.
조해룡박사님... 사랑합니다. 편안하십시요...
예, 이미영님 고맙습니다.
큰 위인은 떠난 뒤에야 비로소 남아있는 사람들이 그 자리가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순직 처리가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쉽지 않네요. 현재도 관련 부서에서 계속 노력하고 있는 중입니다.
원예에 막 발을 딛는 학생입니다.

삼가 조해룡박사님의 명복을 빕니다...
고마워요, 한아름 학생, 좋은 원예학자가 되실 끼와 소양이 글속에서 한아름 느껴집니다.
순직처리 문제는 관련부서에서 노력한대로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요.
최선을 다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행정소송을 제기해야 하는데 이길확률이 워낙 낮아 유족측에서 마무리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군요. 직원이 열심히 일하다 갑자기 돌아갔는데 일말의 책임의식이 있는 부서장은 없는가 보군요. 예전에 그런 사례가 있었는데 가족이 수년에 걸친 소송에서 이겼다는것은 알고 계시겠지요. 행정쪽에 미루지 말고 직접 사서야 하는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부끄럽지 않도록.....
이미주님, 그 부서장은 조 박사의 선배이자 누구보다 조 박사를 아끼는 분이셨습니다. 모든 일 제쳐두도 자기 일처럼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최선을 다했구요. 씁쓸합니다.
오래된 이야기라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만 진흥청에서 약 15년도 더 된것 같습니다만 시기는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유전공학쪽에서 근무하시던 분께서 출장중 쓰러지신후 병원에서 돌아가신 일이 있었습니다. 그분의 경우에 순직 처리가 안되었습니다만 (아마 내부에서는 지금과 같은 경우 였겠지요) 사모님께서 이후 수년간의 법적 소송을 통해 승소한 경우가 있습니다. 지역 신문에도 났습니다. 부끄럽게도 내부에선 결과적으로 한것이 하나도 없었죠. 책임지는 이도 하나 없었죠. 또 호남쪽에서 열차 사고에 따른 순직 처리- 이건 내부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서 처리가 된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입장을 바꾸어 놓고 생각해 봐도 유족에게만 미루기에는 너무 한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조박사 부친께서도 과거에 진흥청에 계셨던 분이라 이것저것 걸리는게 많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미치광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가 아니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미치광이 처럼 나서서 자기 부하를 위해 나선다면 많은 다른 부하직원들의 충성은 말할 나위가 없을텐데요. 관련부서 담당자 또는 부서장들 만나서 회의 몇번 했겠지요 (제 말이 틀리다면 구체적으로 최선을 다한 내용을 좀 올려 주세요). 세상은 그리 간단하지 않습니다. 관련 판례라도 조사해 보셨나요? 소송을 하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아무 욕심없이 일만하다 간 (남의 일까지 도 맡아서 하다가 간) 그런 후배를 위해 미친듯이 나서주는 이는 없고 모두 안타까운 마음들만 가지고 계시는 그런곳 바로 RDA입니다. 이제 얼마 있어 은퇴라는것을 해 보세요. 즉 바깥에서 그곳을 보시라 이야기 입니다. RDA가 어떤 곳인지 바로 알게 되실 것 입니다.
열심히 하는 척 만 하는 사회 바로 그런 곳 입니다. 부정 하실 수 있나요?
"씁쓸합니다" 라는 글에 흥분이 되어 그만 ...
하여간 최선을 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나 그말은 그냥 변명입니다.
곧 오빠의 기제사가 얼마 안남아서 오빠생각에 검색어로 돌다보니 이곳으로 와서 글을 다시 봅니다. 오빠를 생각해주시는 분들이 아직 계신 걸보니..감사합니다.
제 블로그에 오빠의 흔적이나마 올리고 있는데요..오빠가 생각나시면 오셔서 보시고 가세요..다시 한번 고맙습니다.
참 이곳에 올리신글 제가 답아가도 되겠는지요..
오빠의 관련글이나 사진등을 한곳으로 모으고 있어요..나중에 조카들에게 남겨주고 싶어서요..우선 담아갑니다.
추후에 말씀 하시면 삭제 하겠습니다.
조해룡박사님의 자료가 조금이나마 있는 블로그 입니다.
http://freesialove.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