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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연해주 여행]우수리스크 시청앞 혁명광장 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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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및산행

2019. 8. 8.









[러시아 연해주 여행]우수리스크 시청앞 혁명광장 탐방

(2019/6/21일~6/25일,4박5일)


하나투어에서 주관하는 러시아 극동 지역 연해주에 있는 하바롭스크
블라디보스톡 우수리스크등에 있는 관광 명소와 한인 독립운동 유적지가 있는
관련 지역을 중점적으로 둘러보는 패케지 여행으로 2019년6월21일~6월25일(4박5일)
기간 동안 실시한 "하바롭스크/블라디보스톡/우수리스크 5일◈킹크랩/4성호텔/
시베리아 횡단열차" 여행 일정중 전날 블라디보스톡 지역에 명소를 돌아본 다음
우수리스크에서의 4일차 일정으로 당일 아침 블라디보스톡의 아지무트 호텔을
버스로 출발 약 2시간 정도 이동하여 첫번째로 탐방한 우수리스크의 중심인
시청 소재지가 있는 혁명광장 탐방 전경 입니다.

우수리스크 시청광장에는 당당한 기념동상이 서 있습니다.사회주의 혁명 이후
적백 내전과정을 거치며소비에트 정권을 수립하기 위해 싸웠던 사람들을 기념하는
조형물입니다.1918년 4월 일본이 극동에 출병하게 되며극동지역에서는 적군과 백군,
일본군 간의 치열한 전투가 전개됩니다.1922년 10월25일 일본군 최종 부대가
블라디보스톡을 떠남에 따라 극동지역은 같은해 11월 15일 사회주의 연방소비에트
공화국에 포함되게 됩니다.

<1918~1922년 소비에트 권력을 위한 전사> 뒤쪽의 5층 건물이 우수리스크시 청사 건물.
1918~1922년은 극동지역에서 적군과 백군, 일본군 간의 전투가 치열했습니다.
<우수리스크를 위한 전투에 참여한 노동자, 적위군, 전사, 유격대원, 전사자에게 영광을!>
이 기념 동상 앞의 광장에서는 '전승기념일(5월9일)' '우수리스크시 설립일(9월12일)' 등
각종 행사가 열리고 행진이 펼쳐집니다.

내전 기간 중 일본군에 의해 고려인 사회도 커다란 피해를 받게 됩니다.1920년 4월4일 밤
일본군은 우수리스크를 비롯한 극동의 소비에트 지도부와 한인(고려인) 사회의 지도부를
검거해 처형을 자행합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최재형선생이 있습니다.우수리스크에서는
해마다 4월5일을 전후해 한국과 공동으로 4월참변의 희생자들(한.러)을 추모하는
행사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연해주는 과거 말갈의 땅이었고, 고구려 유민이 중심이 되어 발해가 세워지자 발해의 영토에
편입되었다. 발해의 15부 가운데 하나인 솔빈부가 우수리스크 지역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발해가 멸망한 뒤에는 여진족이 이곳에 살았다. 12세기 여진족의 금(金) 왕조는 이곳에 휼품로를
설치해 상경로의 속로로 두었고 다시 17세기 만주족의 청(淸) 왕조가 수립되자 청 왕조의 영토로써
주르호톤(만주어:Juru hoton, 한어:双城子) 또는 풀단 호톤(Furdan hoton, 한어:富爾丹城)로
불리게 되었다.

1866년에 청 왕조는 이곳을 제정 러시아에 할양했고, 6년 후 차르 니콜라이 1세의 이름을 딴
니콜리스크예 마을을 두었다. 동청철도(東清鉄道)와의 연락을 위한 우수리스크 철도가 개통되고,
이 마을의 중요성은 더욱 커져서 1898년, 니콜리스크 우수리스크 시가 되었다.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최재형이 머물렀는데, 함경도의 노비 출신으로 연해주로 이주, 군수업을
통해 모은 막대한 재산을 쏟아부어 당시 연해주로 망명한 한국 의병들에게 성능 좋은 소총을
지급하고 러시아 내의 항일 의병 세력을 모아 무장단체 '동의회'를 결성, 러시아 국경의 일본군
초소와 소규모 부대들을 모두 격파하고 많은 탄약과 소총을 탈취하는 등 적극적인 무장 독립투쟁을
펼쳤으나, 러시아 내의 일본인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연해주로 온 일본군에게 1920년 4월 5일
체포되었고  63세로 총살되었다. 우수리스크에는 최재형이 일본군에게 체포되기 전 거주했던
집이 현재까지도 남아 있다.

1935년, 스탈린의 측근이었던 클리멘트 보로실로프의 이름을 딴 보로실로프 시로 이름이 바뀌었다.
스탈린이 죽은 뒤 보로실로프가 실각하면서 1957년에 지금의 이름인 우수리스크 시로 개칭되었다.
1988년, 러시아 연방 정부의 결정으로 우수리스크는 역사 도시로 편입되었다.

극동지역의 내전과 당시의 '극동공화국'에 관한 내용은 아래의
블로그에 자세하게 정리되어 있습니다.

블로그 의미의 공간
http://blog.daum.net/zhy5532/15890740?srchid=BR1http://blog.daum.net/zhy5532/15890740
- 극동 (시베리아) 공화국 역사






우수리스크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북쪽으로 112㎞ 정도 떨어진
연해주 제2의 도시다. 과거 발해의 5경 12부 중 한 부인 솔빈부가 있던 곳이다
우수리스크 시청 앞 혁명광장에 있는 동상은 1918 ~ 1922년 혁명군과 제국군과의
전쟁을 기념하는 동상이다. 동상 뒤로 시청 건물이 보인다. 1918~1922년은
극동지역에서 적군과 백군, 일본군 간의 전투가 치열했습니다. 























우수리스크 혁명광장 옆에 있는 우수리스크 호텔 입니다. 










■우수리스크- 혁명광장



우수리스크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북쪽으로 112㎞ 정도 떨어진 연해주 제2의 도시다. 과거 발해의 5경 12부 중 한 부인 솔빈부가 있던 곳이다. 발해 멸망 뒤 중국 영토였다가 1860년 베이징조약 체결로 러시아 영토가 됐다. 그 후 한인의 이주가 시작돼 항일독립운동의 주요 거점이 됐다.


우수리스크는 ‘늪지대’란 뜻이다. 현재 고려인 1만명 이상이 살고 있다. 북한ㆍ중국과 연결된 횡단철도(TSR)가 지나가는 물류 중심지다. 조선시대 말 두만강을 넘어온 유ㆍ이민들은 추운 지역이라 벼농사가 가능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수이푼 강물을 이용해 벼농사를 지었다. 벼농사의 북방한계선을 위로 끌어올렸다. 대단한 우리 민족이다. 이번 여행에서는 가보지 못했지만 고려인들의 정착촌인 우정마을이 있고, 고려 아리랑가무단과 같은 우리 문화가 비교적 많이 남아 있다.



우수리스크 시청 앞 중앙광장으로 혁명광장, 시청광장이라고도 한다. 시청사 건물, 러시아 극장, 혁명동상 등이 있다.


우수리스크 시청 앞 혁명광장에 있는 동상. 1918 ~ 1922년 혁명군과 제국군과의 전쟁을 기념하는 동상이다. 동상 뒤로 시청 건물이 보인다. 1918~1922년은 극동지역에서 적군과 백군, 일본군 간의 전투가 치열했습니다.


<1918~1922년 소비에트 권력을 위한 전사>

뒤쪽의 5층 건물이 우수리스크시 청사 건물.


<우수리스크를 위한 전투에 참여한 노동자, 적위군, 전사, 유격대원, 전사자에게 영광을!>


우수리스크 시청광장에는 당당한 기념동상이 서 있습니다.사회주의 혁명 이후 적백내전과정을 거치며 소비에트 정권을 수립하기 위해 싸웠던 사람들을 기념하는 조형물입니다. 1918년 4월 일본이 극동에 출병하게 되며 극동지역에서는 적군과 백군, 일본군 간의 치열한 전투가 전개됩니다. 1922년 10월25일 일본군 최종 부대가 블라디보스톡을 떠남에 따라 극동지역은 같은해 11월 15일 사회주의 연방소비에트 공화국에 포함되게 됩니다.


이 기념 동상 앞의 광장에서는 '전승기념일(5월9일)' '우수리스크시 설립일(9월12일)' 등 각종 행상가 열리고 행진이 펼쳐집니다. 내전 기간 중 일본군에 의해 고려인 사회도 커다란 피해를 받게 됩니다.


1920년 4월4일 밤 일본군은 의해 우수리스크를 비롯한 극동의 소비에트 지도부와 한인(고려인) 사회의 지도부를 검거해 처형을 자행합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최재형선생이 있습니다. 우수리스크에서는 해다마 4월5일을 전후해 한국과 공동으로 4월참변의 희생자들(한.러)을 추모하는행사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행사 사진 스케치 참조)


극동지역의 내전과 당시의 '극동공화국'에 관한 내용은 아래의 블로그에 자세하게 정리되어 있습니다.


<블로그 의미의 공간>

http://blog.daum.net/zhy5532/15890740?srchid=BR1http://blog.daum.net/zhy5532/15890740

- 극동 (시베리아) 공화국 역사



●우수리스크 -나무위키


러시아 프리모리예 지방(연해주)의 도시. 인구는 소련 말기부터 15만 정도로 정체 상태에 있다. 연해주 제3의 도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약 100km 떨어져 있다. 로컬선으로 2시간 반 정도 걸리는 거리다. 즉, 블라디보스토크의 근교권이라고 볼 수 있다. 한때는 블라디보스토크보다 더 크고 중요했던 유서 깊은 도시.철도가 모이는 곳이다보니 지금도 연해주의 수부도시 블라디보스토크만큼은 아니지만 상당히 중요한 위치이다.


이 지역은 전통적으로 말갈족의 한 부족인 쉬르빈족(솔빈족)이 터를 잡고 살아가던 지역으로, 청나라의 영토였을 때는 만주어로 주루 호톤(Juru hoton)[2]이라는 이름이었으며, 러시아 제국이 영유하면서 1866년 성 니콜라스의 이름을 따서 니콜스코예라는 이름이 붙었다. 1898년 도시가 되면서 니콜스크-우수리스키라는 이름으로 변하였고, 소련이 들어서면서 1935년 클리멘트 보로실로프의 이름을 따 '보로실로프'였다가 1957년 현재의 이름이 되었다. 1954년 세워진 천문대가 있다.


발해시대에는 솔빈부가 있던 곳이다. 우수리스크의 옛 이름 쌍성자(雙城子)는 백범일지를 비롯한 국외 독립운동 사료에 이따금 등장하는 지명이기도 하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가깝고, 고려인 관련 유적이 있어서 한국인 관광객도 종종 들르는 듯 하다. 대표적인 유적지로 이상설 선생의 유허비[3], 최재형 선생[4]의 생가 등이 있다. 또한 우수리스크의 한인(고려인) 이주 140주년 기념관 앞에는 2015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옮겨온 안중근 의사의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생전에 안중근에게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 사살하도록 제의한 것도 최재형이었으며, 그를 러시아 법정에서 재판받게 하려는 시도가 불발되고 안중근이 끝내 뤼순에서 사형된 뒤, 최재형은 안중근의 유가족을 돌봐주었다고 한다. 블라디보스토크 주립 의과대 앞에 세워져 있었던 해당 비석은 2012년 말 의과대에서 일방적으로 철거, 시청 창고로 옮겨졌던 것을 2014년 8월에야 우수리스크로 옮겨  지반 공사를 거쳐 현재의 위치에 세워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우수리스크에선 최재형 기념비가 세워졌고, 최재형의 손자도 참석했다.


한민족이 러시아땅에서 가장 많은 수가 정착한 곳이 우수리스크였으며, 탈냉전 이후 이오시프 스탈린의 강제이주 정책으로 서쪽에 흩어져 있던 고려인들이 재정착하기 위해 '우정마을'이라는 마을을 재건하기도 했다. 또한 고려인 터전의 중심지답게 고려인문화센터도 건립돼 있다.



●우수리스크-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우수리스크(러시아어: Уссурийск, 문화어: 우쑤리스크)는 러시아 프리모르스키 지방의 남부에 위치한 도시이다. 우수리스키 군의 중심지이다.


옛 이름은 니콜리스크우수리스키(Nikol’sk-Ussuriiski, 1895~1935년), 보로실로프(Voroshilov, 1935~1957년)이다.


우수리스크는 러시아 극동의 교역 도시 가운데 하나로서, 중국이나 북한과의 국경 밀무역이나 일본제 자동차 밀수, 심지어 매춘 알선까지도 주도하는 마피아 활동이 왕성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2004년에는 우수리스크를 근거지로 하던 마피아 간부가 자신의 무용담이나 범죄, 투옥 경력을 본인이 직접 재현한 실화 드라마를 지방 텔레비전 방송국에서 방영하였는데, 생생한 실황이나 실탄 발사를 사용한 액션 등의 연출로 주목을 끌기도 하였다.


한편 우수리스크는 우수리 강 연안 지방에서 경제적 영향력을 갖고 있다. 다만 도시의 이름과는 달리 우수리 강이나 그 지류도 이곳을 지나지는 않는다


▶역사


연해주는 과거 말갈의 땅이었고, 고구려 유민이 중심이 되어 발해가 세워지자 발해의 영토에 편입되었다. 발해의 15부 가운데 하나인 솔빈부가 우수리스크 지역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발해가 멸망한 뒤에는 여진족이 이곳에 살았다. 12세기 여진족의 금(金) 왕조는 이곳에 휼품로를 설치해 상경로의 속로로 두었고 다시 17세기 만주족의 청(淸) 왕조가 수립되자 청 왕조의 영토로써 주루호톤(만주어:Juru hoton, 한어:双城子) 또는 푸르단호톤(Furdan hoton, 한어:富爾丹城)으로 불리게 되었다.


1866년에 청 왕조는 이곳을 제정 러시아에 할양했고, 6년 후 차르 니콜라이 1세의 이름을 딴 니콜리스크예 마을을 두었다. 동청철도(東清鉄道)와의 연락을 위한 우수리스크 철도가 개통되고, 이 마을의 중요성은 더욱 커져서 1898년, 니콜리스크 우수리스크 시가 되었다.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최재형이 머물렀는데, 함경도의 노비 출신으로 연해주로 이주, 군수업을 통해 모은 막대한 재산을 쏟아부어 당시 연해주로 망명한 한국 의병들에게 성능 좋은 소총을 지급하고 러시아 내의 항일 의병 세력을 모아 무장단체 '동의회'를 결성, 러시아 국경의 일본군 초소와 소규모 부대들을 모두 격파하고 많은 탄약과 소총을 탈취하는 등 적극적인 무장 독립투쟁을 펼쳤으나, 러시아 내의 일본인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연해주로 온 일본군에게 1920년 4월 5일 체포되었고, 63세로 총살되었다. 우수리스크에는 최재형이 일본군에게 체포되기 전 거주했던 집이 현재까지도 남아 있다.

 

1935년, 스탈린의 측근이었던 클리멘트 보로실로프의 이름을 딴 보로실로프 시로 이름이 바뀌었다. 스탈린이 죽은 뒤 보로실로프가 실각하면서 1957년에 지금의 이름인 우수리스크 시로 개칭되었다.

1988년, 러시아 연방 정부의 결정으로 우수리스크는 역사도시로 편입되었다



▶명소


◈소련이 붕괴되고 많은 수의 러시아 정교 교회가 재건되었는데, 도시 한복판의 생신녀비호성당(生神女庇護聖堂,Pokrovskaya tserkov, The Church of the Intercession)은 1914년에 세워졌고, 1917년 이래 한 번도 손을 대지 않은, 교회 본래의 역할로 쓰인 연해주 유일의 교회이다.


◈소련다운 거대한 퍼레이드용 광장이 있는 등 러시아 혁명 뒤 일본의 시베리아 침공 때 러시아 적군(赤軍)과의 전투를 기념하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도시 북쪽에는 북동아시아 최대 규모의 호수로 람사 조약에도 등록된 철새 도래지 한카 호수(중국명 흥개호興凱湖)가 있다.

◈시내의 우수리스크 드라마 극장은 1937년에 세워졌고, 러시아 육군이 보유한 두 개의 극장 가운데 하나다(다른 하나는 모스크바에 있다).


◈라즈돌나야 강 근교에는 발해의 옛 성터와 함께,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이상설의 유허비가 세워져 있는데, 이상설이 "독립된 조국이 아니면 그곳에 내 시신도 들여놓지 않겠다"며 사후 유해를 화장해 이 강에 뿌려줄 것을 유언한 데서 기인한다.


◈우수리스크의 한인이주 140주년 기념관 앞에는 2015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옮겨온 안중근 의사의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생전에 안중근에게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 사살하도록 제의한 것도 최재형이었으며, 그를 러시아 법정에서 재판받게 하려는 시도가 불발되고 안중근이 끝내 뤼순에서 사형된 뒤, 최재형은 안중근의 유가족을 돌봐주었다고 한다. 블라디보스토크 주립 의과대 앞에 세워져 있었던 해당 비석은 2012년 말 의과대에서 일방적으로 철거, 시청 창고로 옮겨졌던 것을 2014년 8월에야 우수리스크로 옮겨, 지반 공사를 거쳐 현재의 위치에 세워지게 된 것이다.


◈고려인 문화센터(한인이주 140주년 기념관) 및 최재형 선생의 우수리스크 생가가 소재하고있다.


◈라즈돌리노예 역


고려인 강제 이주 역 ,1937년 9월, 스탈린의 철저한 계획 아래 고려인들을 중앙아시아로 강제로 집단 이주 시켰던 역입니다. 고려인들에게 있어서는 타의에 의한 억울한 이주였으나 러시아 통치자에겐 중앙아시아 노동력 보충을 위한 수단 중 하나였습니다. 시대적으로 일본인이었던 한인들은 일본을 대상으로 한 스파이 활동을 명분으로 강제로 이주를 당한 것입니다. 17만 5천 명의 고려인 중 2천5백 여 명의 지식인들은 처형 당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1만 5천 명의 고려인이 사망에 이르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