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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연해주 여행] 블리디보스톡 공항 거쳐 인천공항으로 귀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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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및산행

2019. 8. 9.









[러시아 연해주 여행] 블리디보스톡 공항 거쳐 인천공항으로 귀국

(2019/6/21일~6/25일,4박5일)


하나투어에서 주관하는 러시아 극동 지역 연해주에 있는 하바롭스크
블라디보스톡 우수리스크등에 있는 관광 명소와 한인 독립운동 유적지가 있는
관련 지역을 중점적으로 둘러보는 패케지 여행으로 2019년6월21일~6월25일(4박5일)
기간 동안 실시한 "하바롭스크/블라디보스톡/우수리스크 5일◈킹크랩/4성호텔/
시베리아 횡단열차" 여행 일정을 모두 마치고 숙소인 아지무트 호텔 블라디보스톡
(AZIMUT HOTEL VLADIVOSTOK)을 여행 5일차 아침에 출발하여 블리디보스톡 공항을
거쳐 인천공항을 통하여 귀국하다













여행 일정을 모두 마치고 숙소인 아지무트 호텔 블라디보스톡
(AZIMUT HOTEL VLADIVOSTOK)을 아침에 출발하여 블리디보스톡 공항으로 향하다. 






블리디보스톡에서 안내해준 최주영 가이드와 작별인사 하다. 
























































블라디보스톡에서 2시간 정도 비행, 귀국후 인천공항에서 기념사진 찰칵!! 








■러시아 극동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러시아 극동(러시아어: Д́альний Вост́ок Росс́ии 달니 보스토크 로시[*], 문화어: 로씨야 원동 지역)은 러시아의 동쪽 부분에 해당되는 부분이다. 극동의 러시아 부분이다. 사하 공화국을 제외한 극동 연방관구 전역이 러시아의 극동 부분에 해당된다.

러시아 극동에는 아무르주, 축치 자치구, 유대인 자치주, 캄차카 지방, 하바롭스크 지방, 마가단주, 프리모르스키 지방, 사할린주가 있다. 러시아 극동의 주요 도시는 블라디보스토크, 하바롭스크, 니콜라옙스크나아무레, 유즈노사할린스크, 콤소몰스크나아무레이다.


원래 이곳은 예벤키인, 니브히족, 우데게이인, 울치인, 나나이족과 다른 소수 민족이 거주한 곳이었다. 그리고 극동에서 수렵 생활을 하면서 생활했다.


17세기부터 러시아인에 의한 식민 지배가 시베리아와 극동에 시작되고 있었다. 1632년에 야쿠츠크가 세워졌다. 1647년, 코자크인들은 오호츠크 해연안에 항구를 건설했는데, 오호츠크는 러시아인들이 세운 최초의 항구였다.



●하바롭스크지방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하바롭스크 지방(러시아어: Хаба́ровский край, 문화어: 하바롭스크 변강)은 러시아의 지방으로 극동 연방관구에 속한다. 중심지는 하바롭스크이다. 면적은 788,600km²이다. 


북쪽으로는 마가단주, 서쪽으로는 사하 공화국과 아무르주, 남쪽으로는 중국과 프리모르스키 지방, 동쪽으로는 오호츠크 해에 접해 있다. 북쪽에는 타이가와 툰드라가 위치해 있다.



▶ 하바로프스크 (Хабаровск)


  러시아 극동관구 하바로프스크 지방의 중심도시. 러시아의 탐험가 예로페이 하바로프(Ерофей Павлович Хабаров)에서 이름을 따왔으며, 극동의 교통과 행정의 중심지. 19세기부터 러시아의 극동 진출 거점으로 자리 잡았다. 아무르강이 도시를 감싸며 유유히 흐르고 있는 고풍스런 도시.


아무르 강이 우수리 강과 만나는 지점에서 약간 하류 쪽에 있다. 17세기 중엽 아무르 강 유역을 여러 번 탐험했던 러시아 탐험가 E.P. 하바로프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현대적인 도시는 1858년에 군사전초기지로 세워졌다.

시베리아 횡단철도가 아무르 강을 가로지르는 길목에 있는 요충지로서 소비에트 체제하에서 줄곧 극동 지방의 중심지였으며, 한때는 베링 해협까지 이르는 극동 지방 전역을 관할하기도 했다


이 땅은 예로페이 하바로프(Yerofey Khabarov)라는 러시아 탐험가에 의해 1649년에 발견되었습니다. 하바로프는 벨리키우스튜크(Veliky Ustyug) 지역 출신입니다. 하바롭스크라는 도시 이름과 시베리아철도의 예로페이 파블로비치라는 철도역의 이름이 하바로프의 이름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는 1625년 토볼스크(Tobolsk)에서 만가제야(Mangazeya)까지 항해하였습니다. 3년 후에는 그의 탐험대와 함께?타이미르(Taimyr) 반도의 동쪽 부분에 있는 헤타강(Kheta River)에 도달하였습니다. 1632-1641년 그는 레나강에 도착했고 쿠타강(Kuta River)과 키렌가강(Kirenga River)의 어귀에 있는 레나강을 따라서 제염소를 갖춘 농업 정착촌을 발견하였습니다.


1651-1653년에는 우르카강(Urka River)이 아무르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지점에서부터 우수리강(Ussuri River) 어귀까지 내려갔던 것입니다. 이 아무르강은 우리말로는 흑룡강, 중국어로는 헤이룽강이라고 불립니다.

하바로프스크 시내를 흐르는 아무르강은 몽골고원 북부에서 발원하여 중간에 송화강, 우수리강 등과 합치면서 넓어져, 하바로프스크 동북쪽의 오호츠크 해(海)로 흘러갑니다. 그래서 극동지방의 물류 이동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이곳은 하바롭스크 지방의 행정, 산업, 교통의 중심지이자 극동지방 최대의 도시로서 인구는 60만 명 정도입니다. 우수리강(江)과의 합류점에 가까운 헤이룽강(江) 중류 우안(右岸)에 있는 요충지로서 시베리아 철도가 지나며, 헤이룽강 수운의 중심을 이루는 하항(河港)이 있습니다.


이 현대적 도시는 1858년에 군사전초기지로 건설되었습니다. 그리고 1905년 시베리아 철도의 부설과 함께 급속히 발전하였습니다. 케이블, 터빈, 디젤기관, 기계, 정유, 조선, 목재가공, 식품 등의 제조업이 성하며, 석탄, 철광석, 망간, 주석, 금, 올리브덴, 텅스텐 등 광물자원이 풍부합니다.


알래스카, 일본, 한국, 중국 등과 정기항로가 개설되어 있습니다. 극동과 연안주의 역사, 풍속, 자연에 관한 자료 및 매머드 상아, 고대 원주민의 생활용품 등이 전시되어 있는 향토박물관(1896)과 적군의 극동전사에 대한 상세한 자료 및 일본, 중국, 소련군의 전투자료가 소장되어 있는 박물관이 있습니다. 또, 교육도시로서 의과대학, 교육대학, 농업대학, 사범대학, 철도공학대학, 기술대학 등과 더불어 많은 고등 과학연구소가 있습니다.


이 도시는 한국에서 2,000km 정도 북쪽에 위치하며, 차가운 대륙성 기후로서 1월 평균기온이 영하 섭씨 22도이고 7월에는 영상 18-22도 정도 됩니다. 한인들은 하바로프스크 시(市)에 4,000 여명, 하바로프스크 주(州) 전체에 19,000 여명이 살고 있습니다.


한국과의 교통편도 좋은 편이며, 러시아를 통과하는 중계무역의 요지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와의 교역량이 계속 증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주요 수출품은 버스, 합성섬유, 절연전선 등 케이블, 냉장고, 냉동고, 세탁기 등이고, 주요 수입품은 기증기, 선박, 특수 선박, 고철, 원목 등이 있습니다.



●프리모르스키 지방(연해주)-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프리모르스키 지방(러시아어: Примо́рский край, 문화어: 연해 변강(沿海 邊疆))은 러시아 극동에 위치한 러시아의 지방이다. 프리모르스키는 러시아어로 "바다와 접해 있다"를 뜻한다. 한자로 훈차해서 연해주(沿海州)라고도 불린다. 행정 중심지는 블라디보스토크이다. 면적은 16만5,900 km², 인구는 207만 1,210명(2005년 기준)이다.


프리모르스키 지방은 서북쪽으로 중국, 서남쪽으로 한반도, 동쪽과 남쪽으로 동해와 접한다.
국경의 길이 — 3,000 km 이상, 해상국경 1350 km 포함.
최고점 — 아닉 산 (1,933 m — ).
큰도시 — 블라디보스토크 (613,400명), 나홋카 (174,600명), 우수리스크 (156,000명), 아르툠 (111,500명).
호수 — 한카호(о́зеро Ха́нка,興凱湖)가 중국과 러시아 양국에 걸쳐 있다



▶ 블라디보스토크 (Владивосто́к)


  '동방을 지배하라'라는 뜻을 가진 블라디보스토크는 연해주의 중심도시.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종착점이자, 연해주의 어업 · 문화 · 교육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19세기 중반부터 러시아가 개발하기 시작해 항구와 군항으로 발전하여, 연해주 최대의 항구도시이자 군항도시로 성장하였다.


  하바로프스크와 블라디보스토크는 서울과 +1시간 차이나며, 수도 모스크바와는 -7시간 차이가 난다.


◈역사


고고학적 자료에 의하면 연해주에 최초로 살았던 사람들은 고아시아인들과 퉁구스 인들이었다. 5~6만 년 전의 구석기 시대에 이주해 온 것으로 추정된다. 나나이, 우데게, 에벤키 같이 퉁구스어를 사용하는 부족들이 아직도 연해주와 아무르주에 거주하고 있다.


698년부터 926년까지는 발해가 이 지역을 통치하였다. 발해는 연해주 외에도 만주와 한반도 북부를 통치했으며, 만주와 이 지역의 일부를 통치하였던 고구려의 후예와 퉁구스 계통의 말갈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발해는 동아시아의 중세봉건국가로, 농업, 목축 등의 산업과 함께 고유의 전통과 예술을 발전시켰다. 발해는 당, 일본과 지속적인 교류를 하였다.


1115년부터 1234년까지 극동 러시아의 남쪽 부분은 보다 강력한 제국인 여진족의 금나라가 지배하였다. 여진족은 퉁구스계의 민족이다. 유목과 농업이 그들의 경제적 기반이 되었다. 금나라는 또한 야금, 조선(造船) 등의 산업이 있었다. 금나라는 발해와 마찬가지로 송, 고려, 일본과 긴밀한 관계를 맺었다. 북중국을 점령한 금나라는 꽤 강한 국력을 과시하였다.


금나라는 몽골 제국 칭기즈 칸의 침입으로 멸망하였고, 이후 300년 이상 이 지역은 비옥한 토지와 독특한 동식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다 할 문명이 발달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 지역과 만주를 기반으로 활동한 만주족(금나라 여진족의 후신)이 17세기 초 중국 대륙을 정벌하고 청나라를 건설하면서 청나라의 영토가 되었다.


17세기 중엽 러시아 제국이 헤이룽 강(黑龍江, 아무르 강) 방면으로 남하하면서 청나라와 충돌하였다.(청-러시아 국경 분쟁) 1689년에 양국은 네르친스크 조약을 체결해 스타노보이 산맥을 국경으로 정하고, 연해주는 계속 청나라에 속했다. 그러나, 제2차 아편 전쟁(1856년 - 1860년)으로 청나라가 혼란에 빠지자, 러시아 제국은 남진하여 1858년 하바로프스크를 건설하였다.

니콜라이 무라피요프-아무르스키 백작에게 있어서 러시아가 해안지방을 획득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였다. 러시아는 1858년 체결한 아이훈 조약으로 아무르 강(헤이룽 강, 黑龍江)의 이북 지역을, 1860년에 체결한 베이징 조약으로 우수리 강 동쪽인 연해주를 차지하였다.


1859년부터 1882년 사이에 95개의 정착지가 건설되었다. 블라디보스토크와 우수리스크도 이 시기에 건설되었다. 당시 인구의 3분의 2 이상은 농업, 수렵, 생선 교역에 종사하고 있었다. 19세기 말엽에 석탄 채굴이 발달하기 시작했다. 또한 케일, 녹용, 목재, 게, 건어물, 해삼 등도 수출되기 시작하였다. 1905년에는 시베리아 횡단 철도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우랄산맥 아래의 첼랴빈스크까지 개통되었다.


1920년 3월 12일에는 니콜라옙스크 사건으로 독립군과 붉은 군대는 일본군과 백군를 전멸시켰다.[

러시아 내전이 끝난 1922년부터 이 지역의 발전은 러시아를 새로 차지하게 된 볼셰비키의 계획에 따라 이루어졌다. 어업과 광업 등에 초점이 맞추어져 왔고 철도와 해운업 역시 발달했다.

 


러시아의 군주 목록-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