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의 여행이야기

"백운"의 Daum Column입니다...

프랑스의 역사-프랑스는 어떤 나라인가?

댓글 0

스크랩

2021. 1. 5.

●프랑스는 어떤 나라인가- 1

 

1. 프랑스人의 氣質

 

o프랑스 大革命

 

․1789년 7월 14일은 프랑스 大革命이 일어난 날이다.

그해 8월 26일 革命立法議會가 議決․宣布한 人權宣言, 이는 라파에트 등

美國獨立宣言文을 모델로 작성한 것이다.

 

제1조에서 인간의 自由, 平等을 강조한다. 그밖에 主權在民(3조), 言論과 思

想의 自由(11조)등 現代 市民 民主主義의 기틀을 마련한 宣言文이다.

프랑스가 世界 歷史에 끼친 影響은 참으로 크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오늘날 우리가 한 個人과 市民으로서 누리고 있는 自由와 權利,

人權은 인류 역사를 통해 統治者의 壓制를 市民의 힘으로 물리치고 새

世上을 연 프랑스 大革命이 그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보나파르트 나폴레옹. 그는 율리우스 카이사르에 이어 두 번째 유럽 統一

을 이루어 새로운 유럽 帝國을 꿈꾸었고, 그 꿈은 平和를 통한 유럽聯合

(EU)으로 이루어졌다.

 

o프랑스人과 독일人의 氣質의 비교

 

․유럽사람들은 과거에 이런 우스겟소리를 즐겨했다.

獨逸人의 경우 󰡒한 명이면󰡐天才󰡑이며, 두 명이면󰡐組織󰡑을 만들고, 세

명이 모이면󰡐戰爭󰡑을 한다.󰡓이 말은 독일이 第1次 世界大戰, 第2次 世界

大戰을 일으킨 것을 비꼬아 만든 말이었다.

 

프랑스人은 혼자 있으면 에스프리(조금 뒤에 할게요), 둘이 있으면 사랑을

하고, 셋이 모이면 革命을 한다. 프랑스 大革命이라는 역사와 그들의 急한

性格 때문에 나온 말이기도 하다.

 

o프랑스人들이 革命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프랑스인들이 革命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역사적으로도 증명된다.

革命이란 낡은 것을 새것으로 과격하고 두려움 없이 빠르게 바꾸는 것인데,

革命이란 그 過激性과 急進性으로 언제나 完全한 準備없이 터지게 마련이

지만, 이런 과감한 試圖가 없이는 歷史의 수레바퀴란 도무지 앞으로 구르려

하지 않기 때문에 過去 矛盾으로 가득 찼던 사회에서는 革命이 갖는 意味

가 대단히 컸다.

 

●프랑스는 어떤 나라인가- 2

 

우리가 상상할 수있는 모든 改革과 社會的 革命이 프랑스에서 일어났다.

市民의 힘으로 統治者를 屈服시킨 1789년의 大革命, 1848년 첫 勞動階級의

革命, 1871년 세계 최초의 共産主義 政權이었던 파리코뮌, 1968년 學生革命

에 이르기까지 프랑스는 모든 社會進步의 實現을 다른 나라보다 앞서 겪은

요란한 나라였다.

 

․이처럼 많은 理念과 哲學이 뒤엉킨 프랑스 社會이고 온갖 自己 主張을

내세우는 知識人들이 相對方을 說得하려 나서니 이 나라가󰡐조용하고 차

분하다󰡑면 오히려 이상하다.

 

革命이 일어나면 그 不完全함으로 인해 後遺症이 심각해져 反革命 勢力

의 反撥과 抵抗이 거세져, 프랑스만큼 온갖 가능한 革命을 실천에 옮기고

後遺症으로 몸살을 앓는 나라도 찿기 드물다.

 

o合理主義的인 思考方式이 프랑스人의 基本

 

․社會雰圍氣가 이런 만큼 모든 國民이 제 목소리 내고 자기 見解를 굽힐

줄 모르니, 프랑스는 論爭과 討論으로 해가 뜨고 해가지는󰡐말 잔치의 나

󰡑가 될 수밖에 없다.

 

아무리 사소한 일도 그냥 넘기는 일이 없이 그 일을 충분히 생각하고 분

석하며󰡐合理的인󰡑解決策을 찿는 것은 물론 그 일에 대해 자신만의 獨特

한, 남과 다른 見解를 지니고 있다고 믿는다.

 

․유럽 사람들 사이에서도 프랑스 사람에 대한 評判은 다른나라와 다르다.

󰡒自尊心이 强한 프랑스人. 論理的이고 따지기 좋아하고. 哲學을 주제로 討論

을 시작하면 끝이 없고. 말 많고 지기 싫어하고. 文化는 오직 자기네만 가지

고 있는 줄 알고 있다.󰡓

 

2. 料理

 

o高級 西洋 料理

 

西洋料理 중에서 프랑스 料理를 으뜸으로 치고 또 高級 西洋料理는 프랑

스 料理에서 시작된다.

세계 어느 나라엘 가도 프랑스 料理는 값도 엄청나게 비싸다.

․中國에서 中國 料理가 다채롭고 材料가 多樣하다고 해서 심지어 제비집에

百年 묵은 달걀까지 料理에 쓰인다지만, 西洋에선 프랑스처럼 여러 가지를

먹는 民族도 드물다. 달팽이개구리 다리까지 먹는 사람들이다.

 

 

●프랑스는 어떤 나라인가 -3

 

o프랑스 料理가 이처럼 다채로운 理由

 

․우선 온갖 材料를 구할 수 있는 데여러 다른 民族 즉 켈트, 라틴, 게르

만이 모여 사는 나라이므로 온갖 입맛이 다모여 있다고 봐야 한다.

․材料가 풍부

 

프랑스는 유럽 제2의 工業國家이면서 또한 유럽 제일의 農業國家라는 점을

중요하게 봐야 한다.

 

우선 프랑스의 位置를 보면 추운 北쪽과 더운 南쪽의 땅에서 寒帶性 植物

과 熱帶性 植物이 골로루 자라므로 北쪽의 추운 나라인 英國, 獨逸, 스칸

디나비아에서 나지 않는 채소과일이 풍부하고 北海와 大西洋, 따뜻한

地中海에서 잡히는 물고기와 해산물 등 水産資源이 풍부한 이점도 있으며,

유럽 대륙에서 가장 기름진 平野를 독차지하여 품질 좋은 곡식포도

자라고, 끝없는 풀밭에 수천 마리의 , 1천여 마리의 돼지, 같은 수의

염소에서 얻는 고기와 젖도 이들의 食生活을 豐富하게 해주고 있다.

 

서로 다른 民族의 색다른 입맛과 王과 貴族의 호화찬란한 입맛

 

게다가 서로 다른 民族이 얽혀 살기 때문에 여러 가지 색다른 음식 맛을

예로부터 읽힌데다가, 王과 貴族들의 호화찬란한 생활까다로운 입맛

프랑스 料理의 高級化를 추구해 오늘의 명성을 얻게 되었다.

 

o프랑스 料理에서 가장 高級으로 치는 것

 

다채로운 材料와 葡萄酒를 사용하는 것이다. 葡萄酒와 프랑스 料理는 뗄

수 없는 관계이다.

 

․두 번째로 오븐에 넣어 뜨거운 空氣로 굽는 것.

․그 다음으로 직접 불에다 굽거나 프라이팬에 구운 것.

․가장 下級으로 치는 料理는 냄비에 끓인 것이다.

 

o프랑스 料理가 왜 비쌀까?

 

․프랑스 사람들이 좋아하는 요리 가운데󰡐코코뱅󰡑이란 게 있다. 글자 그대

로 풀이하면 포도주에 끓인 닭고기 요리인데, 닭 한 마리에 대게 붉은 포도

주 1병 또는 2병이 통째로 들어간다.

葡萄酒뿐 아니라 고급 술인 코냑이나 샹파뉴(삼페인)같은 술도 요리에

아낌없이 넣는다.

 

●프랑스는 어떤 나라인가- 4

 

3. 禮儀凡節

 

o禮儀凡節을 지켜야 하는 이유

역사가 깊은 民族일수록 禮儀凡節이 까다롭기 마련이다.

 

o西洋의 禮儀凡節은 프랑스 王宮生活에서 완성된 宮廷禮節에 그 뿌

 

․西洋에서 말하는 禮儀凡節이란

 

17세기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을 떨치던 프랑스 王宮 生活에서 완성된

宮殿禮節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太陽王이라고 불린 당시의 프랑스 王「루이 14世」는 유럽에서 처음으로

貴族들의 세력을 누르고 그 어느 나라보다 강력한 王의 權威와 勢力을 단

단히 다진 다음 偉大한 王의 偉業을 온 누리에 떨치기 위해 호화로운 베르

사유 宮殿을 짓는가 하면, 貴族들과 더불어 다른 어느 나라의 王도 흉내

지 못할 華麗한 宮殿生活을 누렸는데,

 

이때 王과 貴族들의 華麗한 生活과

우아한 몸가짐다른 나라 王과 貴族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어, 유럽의

여러나라들은 앞다투어 베르사유와 같이 豪華로운 宮殿을 짓는가 하면

프랑스 王과 貴族들의 生活과 몸가짐을 흉내내게 되었는데, 이것이 오늘날

까지 내려오는 西洋式 禮儀凡節의 本보기가 되고 있다.

 

4. 프랑스人들의 사치스런 食習慣의 起源

 

o무엇보다 먼저 유럽 제일의 農業國家이므로 다른 나라에 비해 農作物

이 풍부하고 海産物이 흔한데다, 多民族으로 이루어져 서로 다른 民族들의

固有한 料理가 널리 퍼져있다.

 

o닭고기

 

프랑스 사람들은 일요일마다 닭고기를 먹 닭고기는 일요일에 먹는 것으

로 생각하고 있는데 이러한 습관은 몇 백년 전부터 내려오고 있고 나라의

상징도 아예󰡐닭󰡑으로 되었을 정도이다.

 

 

●프랑스는 어떤 나라인가- 5

 

5. 유럽의 패권 다툼

 

o유럽의 歷史를 간단히 훑어보면 그리스, 로마 帝國이 滅亡한 후 歷史의

舞臺 는 프랑스 北쪽으로 옮겨져󰡐프랑크 王國󰡑이 유럽의 한복판을 統一한

후 프랑스는 여러 民族으로 이루어졌으나 라틴 文化로 융화된 統一된 勢力

神 聖로마帝國이란 이름 아래 도이칠랜드, 오스트리아 등의 게르만 民族의

勢力英國이라는 海洋 民族과 유럽의 覇權(패권)을 놓고 서로 으르렁거리며

움을 했다.

 

o英國과 프랑스, 도이칠란트, 오스트리아 間 실력 다툼의 무대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大陸을 발견한 다음 新大陸에서 쏟아져 들어온 막대

한 寶物로 富强해진 에스파냐가 한때 유럽의 最强者로 등장하여 동네방네

약방의 감초처럼 유럽대륙의 정치에 참여하여 네델란드, 벨기에 등을 植民

地로 삼는 등 큰소리를 쳤으나, 바다를 통한 貿易 利權을 놓고 세계로 뻗어

가려던 英國과 정면으로 부딪치게 되어

 

․누가 바다의 最强이 되느냐를 놓고 한바탕 큰 싸움을 벌인 끝에 에스파냐

의 자랑이자 세계 최강의 無敵艦隊1588년 프랜시스 드레이크 提督이 이

끄는 英國-네델란드 聯合艦隊에 무참히 擊破됨으로써 에스파냐의 全盛時代

는 막을 내리고 유럽은 바다의 왕자 英國과 프랑스, 도이칠란트, 오스트

리아 間 실력 다툼의 무대가 된 것이다.

 

․그러나 프랑스는 700年代 프랑크 王國時代부터 統一된 國土를 가지고 있

었고 1400年代부터 强力한 中央集權體制 이루고 있었으므로 아직 나라

꼴이 제대로 잡히지 않은 이웃 나라들보다 훨씬 强한 軍隊를 길러서 1871

년 統一된 도이칠란트와의 전쟁에서 질 때까지 사실상 400년 이상을 유럽

에서 가장 힘센 나라로 大陸을 호령해왔다.

 

․이에 거의 모든 유럽의 나라들이 힘을 합하여 너무 强해지는 프랑스를 막

기 위해 싸웠으므로 中世 以後 500여 년의 유럽 역사는 프랑스를 中心으

로 엮어졌다고 볼 수 있다.

 

․한편 도이칠란트宗敎問題로 싸움이 그치지 않은데다가 프랑스, 英國 등

의 干涉으로 統一된 國家를 이루지 못하고, 1871년 비스마르크가 統一하기

까지 수십 개의 조그만 나라들로 나뉘어져 있었으므로 도이칠란트가 유럽

의 强者로 큰소리치기 시작한 것은 130년 정도에 불과하다.

 

●프랑스는 어떤 나라인가- 6

 

․이때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이 나타나 시끄러운 프랑스 政治를 安定시키고

英國과 同盟을 맺은 나라들을 하나하나 무찔러 유럽大陸을 그의 발아래 屈

服시키자, 드디어 두 宿命의 敵 英國과 프랑스는 한판 크게 겨루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英國을 치지 않고는 유럽의 統一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나폴레

옹은 1805년 大艦隊를 파견하여 英國의 艦隊와 맞붙었으나 수백년의 海洋

國家로 바다를 지배해온 英國의 노련한 海軍에는 상대가 되지 못해 넬슨

提督이 이끄는 海軍에게 트라팔가에서 크게 敗하고 말았는데, 이 트라팔가

海戰에서 英國이 이기지 못했더라면 世界 歷史는 크게 바뀌었을 것이다.

․결국 英과 同盟軍은 1813󰡐라이프치히󰡑大戰, 1815󰡐워털루󰡑大戰에서

나폴레옹의 군대를 무찔러 프랑스에서 나폴레옹을 몰아내고 도이칠란트로

도망갔던󰡐루이 18世󰡑를 도로 王朝로 올려놓는데 성공했다.

 

o獨逸이 强해지자 英國과 프랑스가 손을 잡다

 

․한편 英國은 섬나라라는 특성상 强한 海軍을 내세워 다른 나라의 干涉을

英國을 危險하게 만들 强한 나라가 유럽대륙에 나타나지 못하도록 사

사건건 干涉을 하여 强한 나라가 나타날 때마다 그 反對편과 同盟을 맺

고 싸웠는데, 사실상 500年이 넘는 동안 프랑스가 유럽에서 가장 큰 세력

을 떨친 만큼 英國은 500年이 넘는 동안 프랑스의 敵들과 同盟을 맺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 긴 역사동안 英國과 프랑스는 개와 고양이 같은 사이로 서로 으르렁

거렸으며 지금도 國民間 感情이 결코 좋다고는 할 수 없다.

英國과 프랑스의 이런 관계는 이미 800年이 넘도록 계속되어 왔다.

 

o英國도 한때는 유럽大陸을 征服해 보려는 試圖를 한 적이 있었다.

 

․四方이 바다로 둘러싸인 비좁은 英國 國土를 벗어나 大陸에 領土를 갖고

싶은 慾心 엉뚱한 트집을 잡아 프랑스를 공격하여 전쟁이 벌어졌는데,

이 전쟁이 지긋지긋하게 오래 계속된 百年戰爭(1337~1453, 116년간).

․百年戰爭 後에도 서로 으르렁대는 관계가 계속되고 사사건건 프랑스가 하

는 일엔 英國이 발벗고 나서 妨害를 했다.

 

o프랑스 大革命(1789)후, 英國은 다시 王을 모시도록 脅迫

 

●프랑스는 어떤 나라인가 -7

 

․1770년경 美國이 英國을 상대로 獨立戰爭 일으키자 프랑스는 엄청난 돈

을 들여 美國을 支援하고 義勇軍을 보내 美國의 勝利를 도왔다. 이때 너무

무리한 나머지 나라 살림이 엉망이 되었다. 이는 大革命의 原因이 되기도

했다.

 

․1789년 프랑스에서 大革命이 일어나 國王「루이 16세」와 王妃「마리 앙

투아네트」를 斷頭臺에서 處刑하자, 英國 다른 유럽 나라들과 東盟을 맺

어 프랑스 革命을 누르고 다시 王을 모시도록 脅迫했다. 그리하여 프랑스

革命軍은 全 유럽을 상대로 戰爭을 벌이지 않을 수 없었다.

 

o나폴레옹, 英國과 싸움에서 敗北― 트라팔가 海戰

 

․이때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이 나타나 시끄러운 프랑스 政治를 安定시키고

英國과 同盟을 맺은 나라들을 하나하나 무찔러 유럽大陸을 그의 발아래 屈

服시키자, 드디어 두 宿命의 적 英國과 프랑스는 한판 크게 겨루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英國을 치지 않고는 유럽의 統一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나폴레

옹은 1805년 大艦隊를 파견하여 英國의 艦隊와 맞붙었으나 수백년의 海洋

國家로 바다를 지배해온 英國의 노련한 海軍에는 상대가 되지 못해 넬슨

提督이 이끄는 海軍에게 트라팔가에서 크게 敗하고 말았는데,

 

이 트라팔가

海戰에서 英國이 이기지 못했더라면 世界 歷史는 크게 바뀌었을 것이다.

․결국 英國과 同盟軍 1813󰡐라이프치히󰡑大戰, 1815󰡐워털루󰡑大戰에서

나폴레옹의 군대를 무찔러 프랑스에서 나폴레옹을 몰아내도이칠란트로

도망갔던󰡐루이 18世󰡑를 도로 王朝로 올려놓는데 성공했다.

 

o獨逸이 强해지자 英國과 프랑스가 손을 잡다

 

그 후에도 아프리카, 아시아 등 植民地를 차지하는 競爭에서 끝없는 실랑이

가 계속되었고, 1870년 이후 도이칠란트를 통일한 프러시아가 유럽에서 큰

소리 치게 되자, 이젠 英國은 프랑스와 손잡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 후 프러시아가 統一 도이칠란트 되어 세계 정복을 꿈꾸며 第1次 世界

大戰(1914~1918), 第2次 世界大戰(1939~1945)을 일으키자 英國과 프랑스는

聯合軍이 되어 戰爭을 勝利로 이끌었다.

 

o캐나다 퀘벡地方의󰡐分離獨立運動󰡑

 

․하지만 프랑스와 英國의 國民感情은 아직도 서로 强한 競爭意識 사로

 

●프랑스는 어떤 나라인가 -8

 

잡혀 있으며, 최근에 와서 프랑스-도이칠란트 國民間의 사이는 크게 좋아

졌으나, 프랑스-英國 間의 뿌리 깊은 反目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英國-프랑스 間의 뿌리깊은 反目은 그들의 후손들이 이룩한 아메리카 大

에서도 이어져, 가령 캐나다란 나라만 해도 英國系와 프랑스系 캐나다

國民끼리 아옹다옹 하고 있는 실정이다.

 

원래 캐나다는 프랑스의 植民地였는데 나중에 英國이 빼앗아 그들의 植民

地로 만든 나라로 經濟, 文化의 中心地인 퀘벡지방 아직도 프랑스系 캐

나다 사람들이 지배하고 있다.

 

이 지방에서는 프랑스 말이 쓰이고 英語가 통하지 않는 등 완전한 프랑스

文化圈에 속해 있다.

 

․이상하게 프랑스 文化圈인 퀘벡지방은 점점 富裕해져 케나다에서 차지하는

比重이 커져서, 이젠 퀘벡지방은 캐나다에서 獨立하여 프랑스 캐나다 사람

들로 이루어진 나라를 만들겠다고 일어나 캐나다에서는 프랑스語圈地域의

󰡐分離獨立運動󰡑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가장 잘 살고 있는 퀘벡地方이 떨어져 나가면 캐나다 國力이 형편없어질

뻔한데도 英國의 피와 프랑스의 피는 도저히 서로를 곱게 봐주지 못

하고 있다. 두 民族의 反目이 그 後世들이 이룩한 캐나다란 나라에서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6. 프랑스란 어떤 나라인가?

 

o國土

 

南韓의 5倍半의 면적에 약 5500萬名의 人口로 이웃 도이칠란트나 네델란드

에 比하여 상당히 餘裕(여유) 있는 형편이다.

 

南쪽으로는 피레네 산맥이 東쪽으로는 알프스, 쥐라 산맥이 國境을이루고

있고, 중앙 마시프 산악지대를 제외하곤 거의가 平地라 農事짓기에 좋은 땅

을 가지고 있다.

 

o人種

 

․全 國民의 91%가 갈리아, 로마, 프랑크(게르만계)族, 그리고 바이킹의 後孫

노르만族이 뒤섞인󰡐프랑스人󰡑이며, 이들 프랑스 말을 쓰는 91%의 프

랑스 사람 외에도 상당한 少數民族이 있어서

도이칠란트 말을 쓰는 알자스․로렌 지방의 120萬名, 로마의 피와 섞이지

 

●프랑스는 어떤 나라인가 -9

 

 

않은 約 120萬名의 순수한 켈트族브르타뉴에 살고 있으며, 이 지방에서

는 아직도 켈트語를 쓰고 있고 프랑스語는 外國語로서 의무적으로 배워야

한다.

 

에스파냐와의 國境 地帶를 카탈루냐 地方이라고 하는데 이곳에 약 30萬名

의 프랑스人과는 다른 카탈루냐 사람이 살고 있다.

 

大西洋쪽 에스파냐와의 國境地帶에 프랑스 말과 전혀 다른 말을 쓰는 약

10萬名의 바스크族, 벨기에와의 國境地帶에 약 20萬名의 플라망族, 약 80

萬名의 이탈리아人이 프랑스에 살고 있으며, 그 밖에 약 800萬名의 外國

人이 있다.

 

․이 外國人 가운데엔 植民地에서 흘러들어온 베트남 사람, 中國 華僑를 비

롯하여 일자리를 찾아서 北아프리카에서 건너온 아랍 사람들까지 프랑스

정부에 정식 등록된 外國人만 800萬이라니까 밤에 몰래 프랑스에 배를 타

密入國한 사람들이 헤아릴수 없고 이들이 또 2~3명의 아내와 10~20명

의 아이들을 프랑스로 데려오므로 실제 프랑스에 있는 外國人은 줄잡아

1,000萬에 이를 정도이다.

 

․또한 프랑스 남쪽󰡐마르세유󰡑또는󰡐몽팰리에󰡑같이 더운 도시의 인구는

50% 以上을 아랍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을 정도이다.

 

프랑스에 처음 오는 사람은 마치 人種 博覽會場 온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多樣한 人種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원래 單一 民族으로 이루어졌던 나라들도 오랜 歷史를 통해 이 나라 저 나

라가 서로 침략을 받고, 또 침략하는 동안 자연히 피도 섞이게 되어, 그 나

라를 이루는 民族의 핏줄이 복잡해지는데 다른 유럽의 나라들에 비하여

랑스는 하나의 큰 특징 있다.

 

英國 民族의 경우

 

유럽에서도 비교적 여러 핏줄이 뒤얽혀 多民族으로 이루어진 나라가 英國

인데, 유럽 대륙 北쪽에서 살다가 건너간󰡐켈트人󰡑뒤를 이어 로마軍隊

건너갔다 물러갔고, 지금의 도이칠란트 북쪽에서 건너간󰡐잭슨인󰡑, 지금의

덴마크 지방에서 건너온󰡐데인族󰡑즉, 나중에 지금 프랑스의 노르망디 地

方에서 건너온 바이킹족의 후손인 노르만族󰡑등 英國 국민의 핏줄도 복잡

하기 짝이 없다.

 

英國 民族의 핏줄이 비록 복잡하다고는 하나, 큰 줄기를 이루고 있는󰡐켈

트󰡑,󰡐섹슨󰡑,󰡐데인󰡑,󰡐노르만󰡑등의 민족들은 서로 다른 성격을 갖고

 

●프랑스는 어떤 나라인가- 10

 

있다고는 하지만 모두가󰡐게르만󰡑이란 北方 民族에서 갈라져 나온 民族들

로 커다란 共通點을 갖고 있다. 이에 비해

 

o프랑스의 民族은 서로의 共通點이 없는 아주 다른 두 民族인󰡐게르

만族󰡑과󰡐라틴族󰡑이 섞였다는 獨特한 性質을 가지고 있다.

 

․원래 프랑스 땅에 살고 있던󰡐켈트族󰡑은 게르만族과 마찬가지로 北方民族

의 하나로서 금발과 파란 눈, 그리고 하얀 피부를 지닌 민족이었고,

 

․로마의 갈리아 땅 정복과 함께 건너온 라틴族무잡잡한 피부자그마

한 몸집검은 눈과 검은 머리털을 가진 놀기 좋아하고 性質이 急한 民族

었다.

 

․또 로마帝國이 弱해지면서 북쪽에서 떼를 지어 내려와 프랑스 땅에 자리잡

게르만族켈트族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모습을 지니고 있었으나, 라틴

族에 비해서 무뚝뚝하고 여간해서 自己 感情을 드러내지 않고 윗사람 말을

잘 듣는 訓練된 民族이었다.

 

o이처럼 複雜한 民族으로 이루어진 프랑스란 나라가 어떻게 지금까

지 하나의 統一된 國家로서 여러 작은 나라로 갈라지지 않고 버텨

왔으며, 서로다른 민족끼리 다투지않고 지금처럼󰡐프랑스 사람󰡑으

로서 살아왔는가?

 

서로 다른 말과 풍속을 가진 여러 民族인데도 갈리아-로마文化라는 빛나는

文化에 여러 民族 文化가 融和되어 共通된 프랑스 文化를 지녔기에 精神的

으로 하나로 뭉칠 수 있었으며,

 

性質이 다른 여러 지방, 민족을 한데 묶을 수 있는 强力한 中央集權政府

유럽에서 가장 먼저 이룩할 수 있었다는 데 그 原因을 찾을수 있다.

 

o로마帝國

 

中央集權이란 나라의 모든 權力을 王이 쥐고 있다는 예긴데, 다른 나라의

왕들에 비해 프랑스의 王은 훨씬 먼저 큰 勢力을 잡게 되었다.

 

옛날의 王들은 그렇게 큰 勢力을 갖고 있지 못했다. 그 까닭은 人類의

歷史가 시작되고, 사람들은 氏族이나 部族 中心으로 여기저기 흩어져 살다

가 차츰 氏族, 部族들이 뭉쳐󰡐나라󰡑라는 것을 만들게 되었다.

 

․이런 작은 나라들은 地中海를 중심으로 여기저기 흩어져 發展하였고, 나라

 

●프랑스는 어떤 나라인가 -11

 

들이 커감에 따라 차츰 자기네 領土를 넓히게 되고, 힘센 나라는 이웃 나라

를 힘으로 굴복시켜 자기 나라의 領土를 넓히고 드디어는 한 나라가 여러

다른 地方을 征服하여 하나의 거대한 나라, 즉 帝國을 이룩하게 되는데,

유럽에서는 역사상 가장 먼저 帝國󰡑 이룩한 나라가 바로󰡐로마󰡑였다.

 

로마帝國 强力한 軍隊를 뒷받침으로 하여 國境 밖의 外敵이 감히 侵犯할

꿈조차 못 꾸었으므로 로마의 支配아래 있던 유럽은 오랫동안 平和를 누

릴 수 있었다.

 

로마帝國의 皇帝는󰡐神󰡑으로 崇拜되어 나는 새도 떨어뜨릴 만큼의 權勢와

威嚴을 한 손에 잡고 皇帝의 命令 한 마디에 모든 것이 뒤바뀔 정도로

帝의 權力은 대단했다.

 

로마皇帝는 자기의 部下를 여러 나라의 總督으로 임명하여 다스리게

였으며, 아무 때고 皇帝 마음대로 總督을 갈아치울 수 있었으므로, 總督이란

皇帝가 보낸 官吏에 지나지 않았다.

 

비록 皇帝는 로마의 宮殿에 앉아 있다 해도 모든 로마帝國의 領土 안의 權

力이 皇帝의 손에 달려있는, 즉 權力이 한곳으로 모이는󰡐中央集權󰡑이 로

마帝國 時代에 이루어졌다.

 

로마帝國이 융성할 당시엔 감히 그 領土를 侵犯할 者가 없어 로마帝國

안의 百姓들은 戰爭 걱정, 外敵 侵入의 걱정없이 平和로운 生活을 할 수 있

었다. 다시 말해서 百姓들은 皇帝에게 忠誠과 服從을 맹세하는 대신, 生命

과 財産을 保護받은 것이다.

 

o로마帝國의 滅亡

 

․百姓들은 목숨과 財産에 큰 威脅

 

그러나 안으로부터 썩기 시작한 로마帝國은 오래가지 않아 滅亡했고, 生命

과 財産을 지켜줄 로마帝國의 滅亡과 동시에 오랑캐가 들끓고 盜賊과 强盜

가 날뛰자 지금까지 平和롭게 살던 百姓들은 목숨과 財産에 큰 威脅을 느

끼게 된다.

 

․하나의 巨大한 勢力, 즉 로마帝國이 무너지자 지금까지 로마皇帝 밑에서

끽소리 못하고 지내던 작은 나라의 王들은 때는 지금이라는듯 서로서로

들고 일어나 勢力다툼을 벌이는 통에 유럽은 순식간에 전쟁터가 되어버렸

다.

 

․百姓들은 王보다 領主들에게 忠誠

 

 

●프랑스는 어떤 나라인가 -12

 

 

百姓들은 자기를 지켜줄 사람이 필요했고 生命과 財産을 지키고, 먹고 살기

위해 일을 하려면 누구에겐가 忠誠을 바쳐 保護를 받아야 했다.

 

․그러나 나라의 힘이 弱하고 戰爭 통에 秩序가 잡히지 않았으므로 王은

큰 勢力을 갖지 못했다. 王의 權力이 크지 못하면 당연히 地方 領主의

勢力이 클 수밖에.

 

․領主의 職業軍人

 

그래서 百姓들은 그 地方에서 가장 勢力이 큰 사람을 찾아가 盜賊, 强盜를

막아주는 댓가로 土地를 바치고 그 대신 땅을 조금 떼어 받고 生命과 財産

의 保護를 받게 되었는데, 그 地方의 勢力者는 땅을 맡은 대신 그 땅에서

나는 穀食을 稅金으로 받고 땅과 百姓을 지키기 위해 職業軍人을 고용하게

되었다.

 

7. 封建主義

 

o封建主義

 

․이런 職業軍人들이󰡐騎士󰡑라는 새로운 계급으로 나타나고, 地方勢力者는

이 騎士들을 거느리는 領主가 되었으나 몇몇의 騎士만으로는 큰 敵을 맞아

싸울 수 없으므로 좀 더 勢力이 큰 사람의 保護가 필요하게 되었다.

그래서 작은 領主는 큰 領主를 찾아가 稅金을 바치고 忠誠을 하는 조건으로

生命과 財産을 보호받는다.

 

이런 식으로 農民- 騎士- 領主- 大領主 서로 간에 忠誠과 稅金을 내고, 그

리고 生命과 財産의 保護를 약속하는 中央集權과 다른 새로운 위아래의 秩

序가 생기는데 이것을󰡐封建主義󰡑라고 한다.

 

領主의 막강한 權限

 

領主는 農民이나 騎士들로부터 稅金으로 농사지어 거둬들인 穀食과 만들어

바치는 옷을 받아 생활하는 대신 生命과 財産을 지켜주기 위해 警察과 法官

의 權利도 갖고 있었다.

 

大領主

 

大領主는 더 큰 地域을 다스리며 사실상 國王과 맞먹는 領土와 勢力을 가져

그 勢道가 대단했으며, 한 나라는 몇몇의 大領主와 國王이 다스렸는데, 封建

主義 制度에서 큰 領土와 많은 騎士들을 거느린 大領主들의 勢力은 사실 王

과 다름이 없었으나, 그래도 그들이 제멋대로 王이 되겠다고 들먹거리지

 

 

●프랑스는 어떤 나라인가 -13

 

못한 것은 다른 大領主들과의 싸움을 두려워한 까닭이다.

 

․大領主와 王과의 關係

 

따라서 은 실제로 큰 權力도 없으면서 大領主들을 거느리게 되었는데, 大

領主들은 王에게 忠誠을 맹세하고 臣下의 禮를 갖추며, 稅金을 바치고 戰爭

이 나면 騎士와 兵丁을 보낼 책임을 지되, 王이 일체의 干涉을 말도록 했다.

 

․封建制度下에서 王은 허수아비에 불과

 

王은 서울에 앉아있는 허수아비이고 나라의 實勢는 地方에 흩어져있는 몇몇

大領主가 쥐고 있었으며, 大領主들 또한 부하인 小領主들이 자기 영토에서

무슨 짓을 하든 간섭하지 않았으므로, 大領主․小領主․騎士 등 모두가 자

기 땅에서는 王과 다름없는 큰 세력으로 자기 部下나 農民을 죽이든 살리든

마음대로 하였기 때문에 百姓들에게는 위로 위로 끝없이 上典들만 있었다.

 

로마帝國이 滅亡한 후 800年 동안의 유럽은 暗黑의 世界

 

오늘날 民主主義 社會에선 상상할 수 없는 嚴한 階級의 序列이 있었으며,

비록 한 나라라도 大領主가 다스리는 여러 개의 地方으로 나뉘어 각 地方마

다 독특한 風習과 制度가 發展했기 때문에 말만 한 나라지, 사실상 한 國王

을 모시는 여러 개의 나라나 다름이 없었다.

 

게다가 大領主들끼리 툭하면 戰爭을 벌이기 일쑤였으므로 統一된 막강한 나

라를 세운다는 것은 封建主義 制度 아래에선 어려웠던 까닭에, 로마帝國이

滅亡한 後 약 700~800년 동안 이렇다 할 强大한 나라가 나타나지 못하고

온통 유럽이 여러 나라로 갈라져 끊임없는 싸움만 계속되는 暗黑의 時代

다.

 

o封建制度를 가장 먼저 깨뜨린 프랑스

 

․封建制度를 깨뜨리기 위해 外國과의 戰爭

 

封建制度를 깨뜨린다는 것은 바로 地方 大領主들의 勢力을 빼앗고 王이 큰

勢力을 차지하여 大領主들을 王 아래 무릎을 꿇게 만들어야 하는데, 大領主

들의 勢力을 빼앗으려면 外國과의 戰爭이 필요하다.

 

外國과의 戰爭이 벌어지大領主들은 좋든 싫든 部下들을 이끌고 戰爭에

參加해야 된다.

 

王이 大領主들을 이끌고 戰爭에 나가면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指揮者

로서 强力한 勢力을 갖게 되는데, 누가 감히 王의 命令을 거역하리오?

令을 拒逆하면 바로 死刑이었다.

 

戰爭을 하게되면 많은 軍人들을 새로 모아야 하고 또 軍人들 俸給과 武器

 

프랑스는 어떤 나라인가- 14

 

를 장만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돈이 있어야 하는데, 이 돈 또한 大領主들이

대야할 義務가 있었다.

 

․戰爭이 終了될 때 軍人들에 대한 處理

 

그래서 戰爭이 나면 갑자기 軍隊가 늘어나고 돈도 엄청나게 필요해진다.

戰爭이 끝나면 勝敗와 관계없이 늘어난 軍人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王이 敵軍의 侵入에 對備하도록 國家의 常備軍으로 하고, 온 나라의 領主와

百姓은 스스로의 生命과 財産을 지켜줄 國家 常備軍을 먹여 살릴 責任과

義務가 있으며, 그에 따라 王은 軍隊를 먹여 살릴 稅金을 거둘 權利가 있게

되었다.

 

․이리하여 國王은 강력한 軍隊와 稅金을 거둘 수 있는 權利를 갖게 되는데

이 두 가지야 말로 王이 地方 領主들의 勢力을 누르封建制度를 부수

王의 絶對權力을 行使하는 中央集權을 이루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나라의 實際 權力은 地方에 있는 大領主들이 갖고 있다고는 하나, 國王은

稅金과 軍隊로 大領主들의 勢力을 눌러 絶對權力을 차지하게 되었다.

 

o프랑스에서 封建制度가 무너지고 王이 絶對權力을 잡게 된 계기는

 

1337年에 시작되어 1453年까지 계속된 이른바 百年戰爭이었다.

英國과의 戰爭에 쓰였던 軍隊를 계속 갖게 된 프랑스 王은 더욱 勢力이

强해졌다.

 

116年에 걸친 지긋지긋한 戰爭 끝에 전쟁터가 된 프랑스는 온통 엉망이 되

었고, 農事지을 땅도 황폐해져 農民들의 生活이 말이 아니었다.

 

農民들이 잘 살아야 富者가 될 수 있었던 地方 領主들의 勢力은 弱해질 수

밖에 없었고, 같은 戰爭 끝이라도 英國과 프랑스는 서로 그 처지가 달랐다.

프랑스는 大陸에 자리잡고 있으므로 이웃에 에스파냐, 도이칠란트와 같은

敵이 많았고, 프랑스를 安全하게 지키기 위해서는 軍隊를 계속 키워야

며, 그 軍隊를 維持하기 위해 稅金을 거둘 權利를 王이 가져야 한다.

 

․强力한 中央集權政府

 

그래서 프랑스의 王은 軍隊와 稅金으로 세력있는 領主들을 계속 밀어 붙여

결국엔 그 누구도 감히 對抗할 수 없는 엄청난 權力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프랑스에서는 큰 땅을 가진 領主가 계속 줄어들고 王에게 忠誠하여,

그 部下로서 權勢를 누리는 貴族階級이 나타나 王과 王을 끼고 도는 貴族

 

●프랑스는 어떤 나라인가 -15

 

으로 이루어진 强力한 中央集權政府가 들어서게 되었던 것이다.

地方 領主들은 王의 臣下가 되다

 

王과 貴族을 중심으로 한 中央政府, 즉 宮中의 勢力이 커지자 地方에 뚝 떨

어져 혼자 잘난 척하던 領主들은 차츰 王과 가까이 해야만 勢力을 계속 누

릴수 있다는 것을 눈치채게 되었다.

 

그리하여 貴族 파리를 중심으로 온 나라와 百姓을 호령하는 絶對的

인 힘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王의 權力이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絶對的인 것이 되어, 地方에서

王과 다름없는 생활을 하던 領主은 이제 王 앞에서 쩔쩔매는 臣下가 되

어 王의 命令에 服從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o太陽王「루이 14세」

 

․이런 王의 權勢와 威信이 絶頂에 달했을 때가「太陽王」이라는 루이 14世

인데, 王의 勢道가 얼마나 대단했으면 루이 14세는 이런 말까지 했을까?

 

󰡒朕(짐)이 곧 國家니라󰡓

 

루이 14세 때 그가 살던 베르사유 宮殿은 다른 궁전과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雄壯하고 華麗했으며, 베르사유 宮殿 근처엔 자그마치 7천여명의 貴

族이 모여 살았다니 그 당시 王의 威嚴과 勢道가 정말 대단했다.

 

大革命(1789)

 

온 나라의 거의 모든 貴族들이 파리로 몰려 법석을 떨었는데, 결국 이 豪華

版 貴族生活이 피비린내 나는 大革命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o英國― 王은 허수아비, 實際 權力은 領主들의 모임인 議會가 갖음

 

․軍隊와 稅金으로 王이 막강한 權力을 쥘 수 있었던 프랑스에 비해서 英國

은 입장이 달랐다. 지방 領主들이 權勢를 가지고, 王은 별 勢力이 없었던 것

은 英國도 마찬가지였다.

 

․프랑스와의 百年戰爭이 끝나자 英國 王 역시 계속 軍隊를 가지고 稅金

을 거두려고 했다. 그러나 英國의 領主들은 의견이 달랐다.

 

󰡒軍隊를 가지고 우리를 때려잡을 계획인 걸 뻔히 알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는 섬나라로 바다만 지키면 되는데 웬 군대냐고요? 적이 쳐들어오면 우리

가 군대를 이끌고 바람처럼 달려올테니 걱정을 마세요. 稅金도 우리가 알

아서 거둬들일 테니 걱정을 마세요.󰡓

 

프랑스는 어떤 나라인가- 16

 

․그래서 英國의 王은 역사를 통해 프랑스 王과 같은 勢道를 누리지 못했

고, 王이 가끔 稅金問題 같은 것으로 地方 領主를 누르고 勢力을 부리려

면 그때마다 지방 領主들이 團結하여 들고 일어나는 통에 實權없는 王은

번번히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또한 王의 勢力이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領主들이 서로 모여 수군덕거

리던 것이 國會를 중심으로 한 英國 議會 民主主義의 始初가 된 것이다.

․그래서 英國의 王은 나라를 상징하여 最高의 指導者이긴 하나 權勢가 없

는 자리이다.

 

󰡒王은 君臨하나 支配하지 않는다󰡓王이 政治를 제멋대로 못하도록 계속 쐐

기를 박았으므로, 英國에서는 피가 강물처럼 흘렀던 프랑스 大革命같은 회

오리바람을 겪지 않고도 民主主義가 발달할 수 있었다.

 

이는 바로 英國이 섬나라여서 外敵의 侵入을 바다라는 自然이 막아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英國의 王그냥 王일뿐이고, 實際 權力은 領主들의 모임인 議會

가 갖고 있었다.

 

o이와 反對로 여러나라와 國境을 접한 프랑스는 王이 모든 權力을 갖

는 强한 政府를 갖게 되었고, 政府의 힘이 워낙 세고 보니 조그만 地

方이 獨立하겠다고 설쳤다간 당장 호되게 혼만 나게 되므로

 

․아무 소리 못하고 지내다 보니 오랜 歲月이 흐르는 동안 서로 피가 섞이

갈리아․로마란 共通된 文化에 融化되어 라틴, 게르만, 노르만, 켈트 등의

복잡한 여러 民族으로 이루어졌음에도󰡐프랑스-프랑스 사람󰡑이라는 이름

아래 함께 어울려 사는 統一 國家를 이루게된 것이다.

 

․만약 프랑스에 王을 中心으로 한 强力한 政府가 없었더라면 오늘의 統一

된 强國 프랑스는 있을수 없고, 여러 개의 작은 나라들로 나뉘어져 있었을

것이다.

 

파리의 中央政府가 워낙 强했기 때문에 서로 다른 性格을 가진 民族들이

󰡐프랑스-프랑스 사람󰡑이라는 共通된 意識 아래 平和롭게 살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民族들 사이에 피가 섞였다고는 해도 게르만 民族이 대부분

프랑스 北部라틴 民族이 주로 많은 프랑스 南部 國民들의 性格은 크

게 다르다.

 

․어떻든 몇백년 전부터 내려오는 强力한 中央政府의 傳統은 지금도 變하지

 

●프랑스는 어떤 나라인가- 17

 

않아서 프랑스의 모든 政治, 經濟, 文化의 中心은 파리이고, 프랑스 大統領

權限은 國王에 비할 만큼 莫强한 것이어서 7년동안의 任期 중에 나라의

重要한 決定은 주로 大統領의 손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英國은 政府만 하나이지 사실상 4個의 나라

 

서로 다른 民族이󰡐프랑스󰡑라는 이름 아래 프랑스人으로 단결되는 프랑스

에 비해 이웃나라 英國은 국민의 대부분이 게르만 系統의 비슷한 民族임에

政府만 하나이지, 사실상 4個의 나라라고 봐야 옳을 것이다.

 

왜냐하면 英國에서는 地方 領主들의 勢力이 오랫동안 계속되었고, 서로 다

른 地方의 特徵이 오랫동안 섞이지 않은 까닭에 오늘날 英國을󰡐大英帝國󰡑

이라는 이름으로 일컫긴 하지만 사실상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北아일랜드,

웨일스 등 4個의 나라라고 봐야 한다.

 

가령 월드컵 축구에도 英國은 單一팀을 보내지 않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팀을 보내는 것만 봐도 英國 各 地方의 特徵이 두드러지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다른 地方 사람들은 서로 競爭心도 대단할뿐더러 猜忌心(시기심)도 强

해, 가령 운동경기 때 잉글랜드 팀이 도이칠란트 팀과 맞붙으면 스코틀랜드

와 웨일스 사람들은 오히려 도이칠란트 팀을 응원할 정도이다.

 

英國 사람에게󰡐당신은 어느나라 사람이냐?󰡑고 물으면󰡐나는 스코틀랜드

사람이오󰡑라고 하는 등 英國 사람들의 地方色은 대단하다.

 

․프랑스 사람들의 氣質

 

같은 유럽에서도 北方지역, 南方지역 사람들의 氣質은 전혀 달라서 北部사

람들생각이 깊萬事에 조심성이 있으며 차가운 性格을 가진데 대해,

南部 사람들은 적극적이고 수다스럽고 性質이 急하고 변덕도 심한데다

尊心이 너무 세자기를 굽힐 줄 모르는 특징이 있다.

 

라틴 계통의 피를 이어받은 南프랑스 사람들은 性質 急하기 이를데 없

어서 이야기를 할 때 말만 가지고는 急한 마음을 따라갈 수 없어 손짓, 몸

짓, 표정 등 意思表現 手段은 모조리 동원하는데, 프랑스 말이 그렇지 않아

도 빠른데다가 웬만한 것은 손짓과 몸짓으로 말 대신 넘어가버리기 때문에

外國 사람들이 아무리 프랑스에 오래 살아도 그들과 100% 意思疏通하기는

힘들다.

 

7. 프랑스 大革命

 

●프랑스는 어떤 나라인가- 18

 

o프랑스 大革命

 

․이렇게 性質 急한 國民이 사는 나라에서 大革命이 일어났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프랑스 大革命이 왜 重要한가?

 

프랑스를 이야기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는데, 世界 歷史에서 큰 影

響(영향)을 준 프랑스 大革命다.

 

1789년에 터진 大革命은 2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그 맥이 이어진다.

세계 역사를 보면 戰爭, 革命, 叛逆 등 피비린내 나는 싸움이 잠시도 그치

지 않았는데 그 싸움의 原因을 가만히 살펴보면 몇 안되는 王과 貴族

百姓들 위에서 호강하고 支配하던 사람들의 끝없는 慾心을 채우기 위한 것

이었다.

 

戰爭에 지든 이기든 언제나 損害보고 고달프고 시달리는 건 百姓들이었

는데, 수천년간을 힘없는 百姓들은 하늘이 정해준 운명이려니 하고 살아온

것이다.

 

그러한󰡐하늘이 정해준 운명󰡑을 거부하고 힘없는 百姓들이 들고 일어나

자기들을 억누르던 支配者들을 쫓아내民衆이 支配者를 이겨, 오늘날 市

民 民主主義를 이루는데 큰 役割을 한 것프랑스 大革命이다.

 

지금까지는 거의 몇 안 되는 支配 階級이 大多數인 被支配 階級, 즉 百姓

위에서 큰 소리치고 살아 온 것이다.

 

총칼을 가진 支配 階級에게 목숨을 걸고 自己의 權利를 지키기 위해 일

어선 첫 보기가 바로 프랑스人들이다.

 

․地方 領主들이 勢力을 가지고 있던 封建主義 制度가󰡐百年戰爭󰡑을 겪고

나면서 무너지며 서서히 王의 勢力이 커지고 드디어 1600年代 루이 14世

때엔 王의 權勢가 가장 强했다.

 

王의 權勢가 强해지니, 그 주변에 貴族들이 몰려들고 王을 中心으로 한 貴族

들의 勢力 또한 대단했다. 그래서󰡐루이 14세󰡑이후의 프랑스는 貴族

톨릭敎의 聖職者, 이 두 階級이 나라의 모든 權勢를 차지하고 있었다.

 

․모든 富貴榮華를 독차지한 貴族들의 生活은 날이 갈수록 奢侈스러웠고,

그들의 奢侈스러운 生活을 뒷받침하기 위한 턱없이 많은 稅金에 百姓들

은 뼈가 휠 지경이었으므로 百姓들의 生活은 점점 어려워졌다.

 

貴族과 平民의 差異는 더욱더 벌어져 결국 平民은 貴族들에게 제대로 사람

취급조차 못 받게 되었다.

 

더구나 王과 貴族들은 툭하면 이웃 나라와 쓸데없는 戰爭을 벌였으므로 貴

 

●프랑스는 어떤 나라인가- 19

 

族에 대한 怨望(원망)과 미움은 뼈에 사무쳤다.

 

o제3계급

 

․百姓과 貴族 間의 미움과 差別을 이용해서 自己의 勢力을 넓히려는 또

하나의 階級이 있었다.

 

․제3계급

 

프랑스 사회에서 王을 中心으로 모든 權勢와 富貴를 누리던 두 階級, 즉

職者와 貴族 以外平民보다 높다는 優越感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

다. 聖職者나 貴族들 밑에서 그들을 도와주는 일을 하던 사람들로서 높은

사람들의 돈거래를 맡아보고 돈놀이를 해서 돈을 번 銀行家, 높은 사람들

의 法的인 問題를 맡아 解決해주는 法律家, 醫學 知識으로 높은 사람들의

健康을 돌보던 醫師, 그리고 장사로 돈을 번 商人들로 이들을󰡐제3계급󰡑

이라고 했다.

 

․이들 法律家, 醫師, 돈 많은 商人, 工場 主人 등으로 이루어지 제3계급의

특징은 고귀한 핏줄을 타고나지 못한 平民 出身들로서 出世를 하기 위해

많은 工夫를 했든가 아니면 돈이 많은 富裕한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이런 法律家, 醫師 등의 직업은 平民이 가질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직업이었

다. 貴族들과 직접 關係를 맺고 있던 唯一한 平民 階級인 동시에 平民들에

게는 工夫를 많이 한󰡐知識人󰡑으로서 尊敬을 받던 사람들로서 平民이기는

하나, 돈 또는 知識으로 인해 貴族과 平民 사이에 자리잡고 있던 또 하나의

階級이었다.

 

이들은 貴族들 앞에서는 머리를 숙이平民들 앞에서는 거만했던 두 개의

얼굴을 가진 것이들의 특징이었다.

 

․城 안 사람(부르조아)

 

옛날 都市의 모습을 보면 어느 都市이건 한가운데 그 마을의 支配者인 領主

가 사는 邸宅이 있고, 領主의 邸宅을 中心으로 外敵의 侵入을 막기 위해 城

을 쌓아 城 밖에는 平民들이 살고 城안에는 官吏, 法律家, 醫師 또는 商人

이 살고 있었는데, 제3계급 領主 邸宅 近處에 신분이 비슷한 사람들끼

리 모여 살았으므로 이들 즉 城 안에 사는 사람들을 일컬어󰡐城 안 사람󰡑

이라고 불렀는데,󰡐城󰡑이란 말이 프랑스 말로󰡐부르(bourg)󰡑이므로󰡐

안 사람󰡑이란 프랑스 말로󰡐부르조아(bourgeios)󰡑가 된다.

 

法律家, 醫師, 돈 많은 商人, 銀行家들을󰡐부르조아(bourgeios)󰡑階級이라

고 부르게 된 것도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

 

●프랑스는 어떤 나라인가- 20

 

o부르조아 階級과 프랑스 大革命과 關係

 

․이들 제3階級,부르조아 階級이 後에 權勢와 財産을 손아귀에 넣게 되

고 나중에는 여러 가지 事業을 벌여 많은 勤勞者들을 고용하여 부리는

本家가 되는데, 共産主義者들은 이들 부르조아 階級이 勤勞者를 搾取하는

惡質이라고 철천지 怨讐 취급을 하고 있다.

 

순수한󰡐城 안 사람󰡑이라는 프랑스 말로 이들 부르조아 階級이 어떻게 프

랑스 大革命과 關係를 맺게 되는가를 이야기 하려는 것이다.

 

․王을 모시고 聖職者와 貴族이 사실상 모든 權勢와 富貴를 누리며, 더구나

貴族들은 타고난 핏줄로 代를 이어가면서 온갖 호강을 다 하는데 비해,

民들은 아무리 잘나고 똑똑해도 出世의 길은 限界가 있었다.

 

平民으로서는 가장 成功하는 길이 장사나 돈놀이로 돈을 벌든가, 공부를 열

심히 하여 法律家, 醫師가 되는 것이 고작이었다.

 

․옛날에야 모든 게 하늘이 정해준 運命이려니 하고 自己의 身分에 滿足했지

만, 차츰 사람들의 生覺이 깨이고 또 머리에 든 知識人이 많아지자, 점점 뭔

가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고, 모든 것을󰡐하늘이 定해준 대로󰡑滿

足해선 안 된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o장자크 루소(1712~1778)

 

․이처럼 차츰 知識있는 사람들이 貴族과 平民의 差別에 不滿을 갖기 시작할

이들의 不滿에 불을 당긴 한 사나이가 나타났다. 그의 이름은󰡐장자크

루소(1712~1778)󰡑였다.

 

․루소는 그의 책을 통해 이렇게 주장했다.

 

󰡒사람은 자유롭게 태어났다. 사람은 태어날 땐 모두 똑같단 말이다.

그러나 태어나자마자 곧 쇠사슬에 얽매이게 된다. 똑같이 自由롭게 태어난

사람인데 누구는 누구를 억누르고, 누구는 누구에게 억눌리고.... 이건 말도

안 된다.

 

모든 사람은 自己의 生命과 財産을 지킬 權利와 自由가 있고, 이런 平等한

사람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것이 한 國家와 社會이므로, 나라의 主人은 바로

한 個人, 즉 百姓이며 나라의 주인인 百姓들이 願하는 사람들로 나라를 다스

리는 政府가 이루어져야 된다.󰡓

 

o루소의 主張은󰡐부루조아󰡑들의 열렬한 歡迎을 받았다.

百姓이 나라의 主人이라는 루소의 생각이 바로 오늘날󰡐民主主義의 바

 

●프랑스는 어떤 나라인가- 21

 

탕󰡑이 된 것이다. 겨우 200年 前의 일이다.

 

모든 사람은 平等하며 나라의 主人은 바로 國民이라는 루소의 主張은 貴族

과 平民의 階級 差異에 不滿을 품고 貴族들만이 독차지하고 있던 政治 舞

臺에 오르기를 갈망하던 知識과 財産을 갖추고 있던 제3계급, 즉󰡐부루조

아󰡑들의 열렬한 歡迎을 받았다.

 

․이 같은 루소의 主張 國民의 意識을 눈뜨게 한󰡐啓蒙主義의 밑거름󰡑이

되었으며, 프랑스뿐 아니라 세계 여러 곳에 큰 影響을 끼쳐서 英國의 植民

地로 英國 王의 統治를 받던 美國 사람들이 獨立을 宣言, 오랜 전쟁 끝에

英國人을 몰아내고 獨立國家를 세우게 되었다.

 

․이러한󰡐平等󰡑의 물결은 프랑스의 知識人 平民들에게 큰 영향을 주어

지금까지 聖職者와 貴族들만이 參與할 수 있던 政治에 스스로 나설 決心

을 하게 되었다.

 

옛날 같으면 찍소리 못하고 물러났을 이들󰡐제3계급󰡑이었지만, 루소 이후

의 제3계급은 이미 精神的으로 크게 깨었으며 가진 돈이라든가, 地位를 볼

때 일반 百姓들의 尊敬을 받는 사람들이었고 같은 階級의 사람들끼리 굳게

團結하고 있었으므로 제3계급인󰡐부르조아󰡑들을 계속억누르고 자기네들만

權勢를 누리려던 貴族階級과 크게 부딪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이들의 충돌

이 불러일으킨 것이 바로 프랑스 大革命이다.

 

사실 貴族과 聖職者들이 百姓들의 미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

 

1780년경,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220年 前 프랑스의 人口가 2,500萬名이었

는데 제1계급인 聖職者, 제2계급인 貴族은 전체 인구의 1%인 27萬名으로

나라의 重要한 자리나 機關은 이들이 모조리 독차지했을 뿐더러 전체 인구

의 1%인 이들이 가진 땅은 프랑스 全 國土의 40%나 되었으며, 이들은 특

별한 사람들이라 하여 나라에 稅金조차 안 내고 있었다.

 

o나라살림이 엉망인데도 美國의 獨立戰爭 支援

 

․權勢와 富를 독차지한 이들은 가난한 百姓들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奢侈와

浪費를 일삼다 보니 物價는 계속 오르고 나라 살림은 엉망인 데다가 凶年

이 계속되어 民心이 극도로 凶凶(흉흉)한 판에 美國에서 獨立戰爭이 터졌

던 것이다.

 

獨立戰爭美國 市民들이 英國의 統治에서 벗어나기 위해 벌인 것인데,

英國과 프랑스는 수백 년 동안 개와 고양이처럼 늘 으르렁거리던 사이라

프랑스는 엉망진창인 나라 살림은 생각지 않고, 눈엣가시 같은 얄미운

 

●프랑스는 어떤 나라인가- 22

 

國을 골탕먹이기 위해 어마어마한 돈을 들여 美國 獨立戰爭에 뛰어들어 軍

隊와 武器를 무제한으로 쏟아 넣게 되었다.

 

․라파예트 將軍이 이끄는 프랑스 軍隊의 도움으로 美國이 獨立戰爭에서

이겨 英國을 몰아내고 獨立國家가 된 것까지는 좋았는데, 이 戰爭에 엄청

난 돈을 쏟아 부은 프랑스의 나라살림은 당장 망할 형편에 이르고 말았다.

뒤늦게야 國王󰡐루이 16세󰡑는 기울어가는 나라 형편을 일으켜보려고 온갖

노력을 다하였으나 계속되는 凶年에 워낙 기울어진 살림이라 뾰족한 수가

없고 그야말로 큰 수술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o三部會

 

․그리하여 稅金을 더 걷으려 하자 貴族들과 平民들이 不評이 대단했다.

이렇게 되자 후끈 몸이 단 사람은 財務長官󰡐네케르󰡑였다.

 

네케르는 왕의 허락을 받아 貴族들의 反對를 무릎쓰고 제1계급 聖職者, 제

2계급 貴族, 제3계급 平民 代表로 이루어진󰡐三部會󰡑를 열게 되었다.

․프랑스는 옛날부터 王이 정치를 하는데 重要한 決定을 내리기 위해 여러

階層 사람들의 意見을 듣고자 할 경우 이󰡐三部會󰡑를 열곤 했었다.

 

그러나 말이 3계급을 통틀은 三部會이지, 三部會가 곧 국민의 뜻을 그대로

전했던 건 아니었다. 왜냐하면 제1계급인 聖職者와 제2계급인 貴族은 전체

프랑스 人口의 1%밖에 안 되었고 나머지 프랑스 國民의 全部인 99% 중

三部會에 얼굴을 내밀 수 있었던 제3계급의 대표들은 논 갈고 땅파던 보

통 백성이 아니라 貴族과 平民 사이에 자리잡고 있던 몇몇 안 되는󰡐부르

조아󰡑階級이었으므로 사실 이 三部會란 國民의 뜻을 代表한다기보다는

自己들 利益을 代表하던 몇몇 特權層이었다는 것이였다.

 

그나마도 身分이 높은 聖職者와 貴族들에게 눌려 제3계급은 아예 입도 뻥

긋 못하고 구경만 하던 들러리에 지나지 않았다.

 

王의 權力이 强해져 모든 權力을 王 혼자 휘두르게 되자, 형식에 지나지

않던 三部會는 1614년부터는 아예 열리지도 않다가 175년만에 다시 열리게

된 것이다.

 

o國民議會

 

․그러나 1614年에 門 닫을 때와 1789年에 다시 열렸을 때는 커다란 변화

가 있었는데, 聖職者와 貴族에 눌려 머슴이나 從정도의 대접밖에 못 받던

 

●프랑스는 어떤 나라인가- 23

 

제3계급 이젠 實力이나 知識 등 어느 면으로 보나 크게 자란 하나의

당한 勢力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聖職者와 貴族들의 머릿속에 뿌리 깊이 자리잡은 제3계급에 대한

差別意識은 아직도 사라지지 않아 1789년 5월 5일 나라의 危急한 形便을

의논하기 위한 三部會에서 조차 제3계급은 다른 방에 머물러 貴族과는 자

리조차 함께할 수 없는 수모를 겪었다.

 

․會議場에는 王을 중심으로 휘황찬란한 옷차림의 聖職者와 貴族들이 들어섰

會議場 옆방에 검은 옷차림의 제3계급이 자리를 잡았다.

 

全 프랑스 國民의 99%나 되는 市民 즉 피땀 흘려 稅金을 바치는 市民을

代表하는 이󰡐제3계급󰡑은 무엇을 바라고 있었는가?

 

󰡒平等한 社會를 이루기 위해 분명히 글로 쓰인 나라의 기본법 즉󰡐憲法󰡑

을 정해야 한다.󰡓

 

․그러나 새로 열린 이 三部會에서 제3계급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稅金 더

거둬들일 궁리만 하니 納稅者의 대표인 제3계급 대표들은 크게 실망

수밖에 없었다.

 

이리하여 제3계급 議員들로 이루어진 무리가 三部會에서 떨어져 나와 스스

로 會議를 열게 되었는데 이를󰡐國民議會󰡑라 일컬었다.

 

o‘주 드폼의 宣言’ 또는󰡐테니스 코트의 宣言󰡑

 

․이로써 三部會는 완전히 둘로 갈라져 聖職者, 貴族과 國民議會가 對決

게 되었다. 國民議會 代表들은󰡒우리는 稅金을 바치는 百姓들을 代表하고

있다. 따라서 이󰡐國民議會󰡑를 열지 못하게 하면 百姓들은 稅金을 내지

않을 것이다. 代表없는 곳에 稅金은 없다.󰡓

 

稅金을 내는 대신 權利를 지키겠다는 國民議會의 宣言은 貴族과 聖職者

들에겐 큰 威脅이 아닐 수 없었다.

 

제3계급 代表들이 三部會를 벗어나 스스로 國民議會를 만들자, 크게 위협

을 느낀 貴族과 聖職者들은 國王에게 壓力을 가하여 國民議會를 禁止토록

하였다.

 

貴族과 聖職者의 등쌀에 견디지 못한 國王 루이 16세는 國民議會가 열리지

못하게 會議場 門을 걸어 잠그도록 명령하였다. 會議場을 빼앗긴 國民議會

議員들은 근처에 있는 테니스 코트(주 드폼)에 모여󰡒國民議會는 결코 解

散하지 않을 것이며, 우리의 뜻이 이루어질 때까지 언제고 어느 곳에서나

모일 것이다.󰡓

 

●프랑스는 어떤 나라인가- 24

 

이것이 훗날 國民의 自由로운 모임, 團體를 이룰 權利의 바탕을 이룬 유명

󰡐주 드폼의 宣言󰡑또는󰡐테니스 코트의 宣言󰡑으로 불리우는 歷史的

인 事件이었다.

 

․國民議會가 自身들의 權利를 主張하고 나서자 貴族과 聖職者들은 國王에게

그들을 會議場에서 몰아내라고 壓力을 가했다. 이에 國王 루이 16세는󰡒

어먹을 것들, 會議場에 있든 말든 제멋대로 하라고 해󰡓라고 말했다.

 

․제3계급의 革命 成功

 

國王이 國民議會 議員들을 會議場에서 굳이 몰아내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는 사실을 사람들은 國王이 國民議會를 認定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國王 폐하께서 우리 國民議會를 正當한 百姓들의 代表機關으로 認定하셨

다. 이제 國民議會는 貴族, 聖職者들에 맞서는 당당한 또 하나의 勢力으로

나타난 것이다. 貴族, 聖職者만이 설치던 시대는 이제 지났다. 이제 새로운

自由와 平等의 時代가 왔도다.󰡓

 

프랑스는 피 한방울 흘리지 않고 그토록 바라던 새 時代를 이룩한 것이다.

革命을 이룬 것이다.

 

o大革命(1789년 7월 14일)

 

國民議會가 貴族과 聖職者에 맞서 당당하게 나오자 國民들은 자기들의

대표인 國民議會를 열렬히 支持하게 되었고, 國王이 國民議會를 認定

것을 市民들은 마치 새 時代가 열린 듯, 그들이 勝利한 것으로 믿었으나,

 

그것도 잠시 1789년 7월 11일, 宮廷의 貴族과 聖職者들은 마음 약한 國王

을 꼬드겨 國民議會를 反對하는 貴族들의 주장에 따라 國民議會 便을드는

貴族 長官들을 몰아내고 國民議會와 百姓들의 뜻을 外面하는 貴族, 聖職者

로 王의 周邊이 채워지자 자유, 平等時代가 왔다고 기뻐하던 市民들은 크게

失望하게 되었고, 곧 이 失望은 憤怒가 되어 貴族에 대한 市民들의 미움과

憤怒는 건드리기만 하며 터질 지경이 되었다.

 

․1789. 7. 11 의 파리는 당장 무슨 일이 터질 것만 같은 雰圍氣

 

市民과 百姓의 希望을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고 자기네의 利益과 特權만 지

키려는 貴族과 聖職者들, 오랫동안 쌓여온 貴族에 대한 不滿과 그들이 꺾어

놓은 自由, 平等의 希望에 대한 憤怒로 가득찬 市民들, 거기에 도탄에 빠진

나라 살림, 모자라는 食糧에 굶주리는 百姓들, 1789年 7月 11日의 파리는 당

장 무슨 일이 터질 것만 같은 雰圍氣였다.

 

이제 서로 개와 원숭이처럼 怨讐가 된 貴族과 市民 사이에는 무슨 일인가

 

●프랑스는 어떤 나라인가 -25

 

터지지 않을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일반 國民들의 뜻을 무시하고 國民議會를 反對하는 貴族들로 宮안이 가득차

게 되자 國民들의 不滿은 하늘 끝까지 치솟았 국민들을 대표하던 부르

조아들은 거리에서 不滿에 가득 찬 市民들을 煽動하기 시작했다.

 

‘市民들이여, 貴族 무리들은 우리들의 希望을 짓밟고 자기들의 利益을 지키

는데만 열중해 있다. 12만 명의 파리 市民이 굶어 죽어가는 데도, 貴族들은

빵配給을 反對하고 있다. 시민들이여, 貴族들을 때려잡으라. 그대들의 權利

를 지키라. 그러기 위해 그대들의 손에 무기를 잡으라. 그리고 軍人들이여.

그대들은 貴族의 利益을 지키는 개가 아니다. 시민들의 길을 총칼로 막지

마라.’

 

드디어 市民들의 憤怒는 터지고야 말았다. 프랑스 大革命의 불길이 붙은

것이다.

 

1789년 7월 12일 흥분한 市民들은 武器 倉庫를 습격, 小銃 2만 8천 자루, 大

砲 5門을 약탈하여 武裝하였다. 소총․창․칼 등으로 시민들이 무장한 파리

軍隊도 警察도 없는 恐怖의 都市로 변하고 市民들은 초록색 밤나무 잎

무늬를 모자에 붙임으로써 서로 同志라는 표시로 삼았다.

 

‘바스티유 요새로 진격하자. 바스티유에는 화약과 탄환이 가득 저장되어 있

다. 바스티유만 손에 넣으면 그 누구도 무섭지 않다.’

 

바스티유 요새란 지금은 헐려 없어졌지만 당시 파리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

던 군사요새였으며, 바른말 잘하고 말 안 듣는 政治 罪囚들을 가두던 監獄

이기도 하였다.

 

․드디어 1789년 7월 14일이 밝았다. 파리 시민들은 약탈한 銃과 大砲를

앞세우고 바스티유로 진격하였다.

 

무기다운 무기가 없는 사람은 죽창, 부엌칼 등 무기가 될 만한 것이면 어느

것이나 손에 들고 婦人네들까지 바스티유 攻擊에 參加했다. 당시 바스티유

의 司令官이었던󰡐드 로네이󰡑는󰡒兵士들이여, 우리는 市民들의 敵이 아니

다. 요새를 지키되 함부로 시민을 죽이지 마라.󰡓

 

․市民들의 攻擊으로 바스티유 요새의 戰鬪는 시작되었다.

 

프랑스 大革命은 드디어 막이 오른 것이다. 흥분한 시민들과 시민들을 상대

로 전투를 할 의욕이 없었던 守備隊의 戰鬪는 市民들의 勝利로 끝났다.

 

전투 도중 피를 본 시민들은 걷잡을 수 없이 흥분하게 되었고, 바스티유

를 점령한 흥분한 시민들은 어쩔수 없이 맡은 임무 때문에 시민과 전투를

벌일 수밖에 없었던󰡐드 로네이󰡑司令官을 비롯한 바스티유 守備 軍隊를 降

 

●프랑스는 어떤 나라인가- 26

 

服하여 武器를 버렸는데도 모조리 虐殺하는 잔인한 행동을 했고 드로네이

司令官과 파리 市長 플레제이유의 머리를 창 끝에 꽂고 파리 거리를 누비

등 피는 피를 불러 한번 터진 革命의 불길은 더욱더 크게 번지기만 했다.

 

․大革命의 歷史的 意義

 

바스티유를 점령한 1789년 7월 14일은 오늘날 프랑스의 가장 큰 國慶日인

革命 記念日온 프랑스 국민이 이날로부터 몇 날 몇 밤을 춤과 노래

지새우는데, 그 까닭은 파리 市民의 바스티유 占領이 뜻하는 것이 다스림을

당하는 百姓이 스스로 깨닫고 團結하여 다스리는 계급에 대하여 거둔 歷史

上 첫 勝利로서, 나라의 主人인 國民들이 支配者의 손에서 主權을 도로 빼앗

은 첫 본보기이며, 人類의 역사에서 民主主義로 向하는 偉大한 디딤돌을 놓

아준 重要한 事件이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서 革命 記念日이 그토록 重要한 理由는

 

國民 스스로의 實力으로 그들의 壓制者를 물리쳤다는󰡐經驗󰡑이 프랑스 國

民들에게 自身의 實力을 스스로 깨닫게 해주었고, 이 經驗이 프랑스 사람들

의 핏속에 남아 그들을 억누르는 어떠한 支配者라도 자신의 손으로 몰아낼

수 있다는 自信感이 생겨, 國民의 權利를 無視하는 支配者는 그 누구든 언제

라도 國民의 손으로 몰아낼 수 있는󰡐實力󰡑있는 國民으로, 支配者는 國民

을 얕볼 수 없다는 高貴한 經驗과 敎訓을 남겼기 때문이다.

 

․수백년 동안 계속된 國王을 정점으로 하는󰡐中央集權󰡑이란 傳統에 따라

프랑스 國民은 그들을 다스리는 强力한 指導者를 認定하고 받아들이지만

들을 억누르는 指導者는 결코 그냥 보아 넘기지 않고 國民의 힘으로 몰

아내는 보기를 늘 보여 왔다.

 

드골, 지스카르 데스탱 등 강력한 세력을 가진 大統領들이 國民의 投票에 의

해 물러난 것도 좋은 보기이다.

 

o大大的인 貴族에 대한 虐殺

 

․1789년 프랑스 大革命이 시작되자 國民을 억누르고 自己네의 利益에만 관

심이 있던 貴族들에 대한 復讎(복수)의 물결이 터져, 大大的인 貴族에 대한

虐殺이 시작되었다.

 

男女老少 가릴 것 없이, 다만 貴族이라는 理由 하나로 死刑에 처해 外國으

도망가지 못하고 프랑스에 남아있던 貴族들은 전체의 80% 이상이 죽임

을 당하는 悲劇을 겪었다.

․革命이 한창 뜨겁게 進行될 때엔 1年 내내 하루 평균 8千名이나 死刑

 

●프랑스는 어떤 나라인가 -27

 

했는데, 하루 종일 死刑을 계속해도 넘치는 死刑囚를 󰡑다 죽이지 못해 드

디어는 斷頭臺가 등장했다.

 

이를 발명한󰡐기요탱 博士의 이름을 따󰡐기요틴󰡑이라고 부른다.

우습게도 기요탱 博士 자신도 자기가 만든 斷頭臺에서 목이 떨어졌지만... 기

요틴은 파리 한복판 콩코르드 광장에 설치되어 國王󰡐루이 16세󰡑, 王妃󰡐

마리앙투아네트󰡑도 여기에서 목숨을 잃었다.

 

o프랑스 革命의 利益은 國民이 아닌󰡐부르조아 階級󰡑이었다.

 

․프랑스 大革命은 마치 國民들의 勝利인 것처럼 보였고, 國民들은 勝利에 도

취되어 自由, 平等, 博愛의 3色旗를 앞세우고 새로운 그들의 世界가 펼쳐질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프랑스 革命으로 실제 利益을 얻은 사람國民이

아니고 제3계급이었다.

 

부르조아 階級은 제3계급 출신으로 平民이면서도 知識과 財産으로 貴族과

平民 사이에 자리잡은 또 하나의 階級이었던 것이다.

 

이들󰡐부르조아󰡑들이 出世하고 勢力을 잡는데 가장 큰 敵은 바로 高貴한

핏줄 덕택에 좋은 官職을 모조리 차지하고 있었던 貴族이었다.

 

점점 커가는 부르조아 계급은 더욱 많은 權利와 勢力을 希望했고 이미 좋

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貴族들은 그들의 利益을 지키기 위해 부르조아

계급을 억누룰 수밖에 없었으므로 이 두 階級은 언젠가는 한 번 크게 부딪

치지 않을 수 없었다.

 

․混亂에 빠진 나라 살림과 不滿에 가득 찬 國民들을 利用하여 부르조아 階

級은 모든 잘못을 貴族에게 돌려 國民의 憤怒에 불을 지름으로써 貴族들

을 國民의 敵으로 만드는데 성공했고, 不滿에 찬 國民들을 꼬드기고 煽動하

여 革命을 일으키게 하여 配 階級이었던 貴族들을 모조리 몰아내國民

의 代表라는 口實 아래 貴族들이 잡고 있던 政權을 휘어잡는데 成功했던

것이다.

 

․결국 프랑스 大革命支配 階級에서 貴族을 몰아내貴族들이 차지했던

支配者의 자리에 부르조아 階級이 대신 들어간 다시 말해 貴族과 부르조아

사이의 階級 싸움이었고, 부르조아 階級이 國民을 利用하여 貴族을 몰아내

고 政權을 빼앗은 부르조아 계급의 勝利라고 말할 수 있다.

 

․大革命 以後 100年間은󰡐부르조아󰡑들의 全盛期

 

부르조아 階級은 그들의 敵인 貴族 階級이 그들의 勢力을 도로 빼앗으려

들 것을 두려워하여 지나치도록 殘忍하게 貴族들을 모조리 죽이는 등 아예

 

●프랑스는 어떤 나라인가- 28

 

貴族의 뿌리를 뽑으려 들었다.

 

이리하여 수백년간 꽃피어온 貴族의 時代는 幕을 내리1789년 大革命

부터 100여 년간은 부르조아들의 全盛期로, 부르조아 文化의 꽃이 피게 되

었다.

 

o프랑스 大革命의 유럽에 끼친 영향

 

프랑스 大革命은 世界를 뒤흔들었고 특히 이웃 나라들에게 엄청난 영향

을 끼쳤다.

 

이웃의 英國오스트리아도이칠란트 같은 나라들은 그때까지도 貴族이

權勢를 잡고 있었으므로 프랑스에서 일어난 革命을 두려운 눈으로 지켜보

고 있었으며, 자기네 나라에서도 프랑스와 같은 革命이 일어날까봐 가슴을

졸이지 않을 수 없었다.

 

부르조아 階級이 프랑스에만 있는 게 아니라 자기 나라에도 있는 만큼 유

럽의 여러 나라 支配者들에게 프랑스 革命은 자기들이 겪게 될지도 모

를 정말 무서운 事件이었을 밖에....

 

프랑스 이웃 나라의 王族과 貴族들은 프랑스 大革命의 불길이 자기 나라에

도 번져 自己들이 危險해질 것을 두려워하여 프랑스에서 도망쳐 와서 다시

政權을 잡을 꿈을 키우던 프랑스 貴族들프랑스를 征服할 軍隊를 보낼

궁리를 하게 되었다.

 

․마침 프랑스에서는 國王󰡐루이 16세󰡑와 王妃가 宮殿에 갇히는 몸이 되

었다. 王妃󰡐마리 앙투아네트󰡑는 프랑스와 앙숙인 오스트리아 사람으로

皇帝 프란츠 2세의 동생이었으므로 구실을 찾던 이웃 나라들에겐 커다란

干涉의 機會가 아닐 수 없었다.

 

8. 對유럽 戰爭

 

o오스트리아와의 戰爭 개시

 

․1700年代에 유럽을 支配하던 세 나라가 있었는데 대륙의 프랑스오스트

리아, 그리고 섬나라 英國이었다.

 

英國이야 워낙 1300년경 百年戰爭 以後 프랑스와 앙숙이어서 사사건건

서로 으르렁대던 사이니까 더 말할 필요조차 없지만, 오스트리아는 유럽

大陸에서 프랑스와 아웅다웅하던 强한 나라였고, 더구나 프랑스의 國王 루

 

●프랑스는 어떤 나라인가- 29

 

이 16世의 王妃󰡐마리 앙투아네트󰡑가 오스트리아의 皇帝 프란츠 2세의 女

동생이었던 까닭에 프랑스 國民들의 오스트리아에 대한 미움은 더욱 커졌

.

 

․새로운 世界, 自由로운 時代를 만들겠다고 大革命을 일으킨 프랑스 國民들

에겐 오스트리아야 말로 그들의 革命을 妨害하는 미운 存在일 수밖에 없

었다.

 

이렇게 해서 革命으로 소란한 판국임에도 프랑스는 오스트리아와 戰爭

시작하게 되었는데, 이 전쟁이야말로 오스트리아로선 목을 빼고 기다리던

이었다.

 

o戰爭은 全 유럽을 상대로 하는 것으로 擴大

 

․이로써 프랑스는 1792년 4월 20일 오스트리아와 戰爭을 시작했는데, 프랑

스 이웃 나라로 혁명의 물결을 불안하게 바라보던 프러시아가 곧 오스트리

아와 동맹하여 프랑스는 오스트리아와 프러시아 두 敵을 상대로 戰爭을 하

게 되었다.

 

․사실 말이 두 나라와의 戰爭이지, 유럽의 모든 나라가 王과 貴族들이 權力

을 잡고 있던 터라 自由, 平等, 博愛를 내건 프랑스의 革命 理念에 反對하

던 터였으므로 쉽게 얘기해서 프랑스는 홀로 모든 유럽을 상대로 戰爭을

시작한 셈이다.

 

그러나 革命을 치르느라 나라 形便이 뒤죽박죽이 된 프랑스는 도저히 오스

트리아와 프러시아를 상대로 전쟁을 할 힘이 없었던 데다 王妃󰡐마리 앙투

아네트󰡑를 비롯한 貴族들도 프랑스가 戰爭에서 지기를 바라고 있었다.

 

프랑스軍의 連敗

 

프랑스가 오스트리아와 프러시아를 상대로 시작한 전쟁은 처음부터 지기만

했다. 어쨌든 프랑스는 안으로 革命, 밖으론 戰爭 때문에 말 못하게 뒤죽박

죽, 힘든 형편이었다.

 

프랑스가 戰爭에 질 수 밖에 없었던 것 革命의 소용돌이로 戰爭에서 가

장 중요한 武器를 제대로 손볼 겨를이 없어서 쓸만한 大砲 하나 제대로 손

질된 게 없었고, 혼란통에 軍人들 訓練도 전혀 되어 있지 않은데다가 將軍

등 중요한 軍隊의 指揮者들은 대부분 貴族 出身이었으므로 外國에 도망갔

거나 處刑당한 까닭에 軍隊를 이끌 指揮者가 없軍人들이란 거의가 訓練

이 전혀 안 된 烏合之卒(오합지졸)이었다.

 

●프랑스는 어떤 나라인가 -30

 

그나마도 프랑스 전국을 통틀어 그 수가 8萬 名 밖에 되지 않았는데 상대

는 오스트리아의 전력을 뺀 프러시아만으로도 16萬의 大軍을 전선에 보냈

다.

 

프랑스軍은 敗戰에 敗戰을 거듭, 오스트리아와 프러시아 同盟軍은 단번에

프랑스를 박살낼 기세였고, 안으로는 權力을 되찾으려는 貴族인󰡐王黨派󰡑

의 陰謀로 프랑스의 운명은 정말 폭풍 속의 촛불처럼 위태롭기 짝이 없었

다.

 

․프랑스 國民들 一致團結

 

하지만 이러한 안팍의 危險은 프랑스 國民들을 團結시켰고, 나라를 지켜야

겠다는 覺悟(각오)로 스스로 武器를 손에 쥐게 만들었다.

 

계속되는 敗戰으로 나라는 危機에 빠졌고 敵軍을 끌어들여 權力을 다시 잡

으려는 貴族 中心 王黨派의 陰謀는 프랑스 國民들의 愛國心에 불을 질렀

다.

 

이리하여 젊은이들은 너도나도 義勇軍에 支援하기 위해 몰려들었고 프랑

스 革命軍의 士氣는 갑자가 하늘을 찌를 듯이 드높아졌다.

놀란 것은 자연 敵軍과 王黨派였다.

 

․軍歌󰡐라 마르세예즈󰡑

 

이때 마침 프랑스 남쪽 港口都市인󰡐마르세유󰡑에서 약 600名의 義勇軍이

革命軍에 가담하기 위하여 파리로 왔는데, 거의 800㎞나 머나먼 길을 걸어

서 행진했다. 그들이 行軍하면서 부르던 軍歌인󰡐라 마르세예즈󰡑는 곧 모

든 프랑스 革命軍 사이에서 流行했는데 이 노래는 오늘날 프랑스의 軍歌

이기도 하다.

 

현재 프랑스 軍歌인󰡐라 마르세예즈󰡑는 원래󰡐루제 드릴󰡑이란 사람이

만든 軍歌로 프랑스가 오스트리아를 상대로 宣戰布告했다는 소식을 듣고

하룻만에 가사와 곡을 완성한 것이다.

 

그 당시 프랑스의 나라 형편과 조국을 지키려던 프랑스 革命軍의 愛國心을

잘 나타내고 있다.

 

《라 마르세예즈》

나아가자 조국의 아들 딸들이여∕ 영광의 날은 왔도다∕ 폭군에 결연히 맞

서서∕ 피 묻은 전쟁의 깃발을 올려라......

 

․革命軍의 連勝

 

敗戰을 거듭하던 프랑스 革命軍의 士氣는 갑자기 드높아져 1792년 9월 20

일 발미에서 마주친 오스트리아․프러시아 聯合軍을 擊破, 프랑스 革命軍

 

●프랑스는 어떤 나라인가 -31

 

의 첫 勝利를 장식하게 되었다.

 

훈련도 제대로 안된 革命軍이 精銳 오스트리아․프러시아 聯合軍을 擊破하

자 革命軍의 士氣는 더욱 더 치솟았으며, 모든 사람들의 예상을 뒤엎고

命軍은 乘勝長驅(승승장구), 勝利에 勝利를 거듭하게 되었다.

 

혁명군이 지나는 곳엔 自由․平等․博愛의 革命思想이 심어졌고, 드높은

프랑스軍의 士氣에 氣가 죽어 있던 오스트리아․프러시아 聯合軍은 멀리

서 들려오는 革命軍의󰡐라 마르세예즈󰡑軍歌만 듣고도 도망을 쳤다.

 

o루이 16세 處刑

 

․프랑스가 오스트리아․프러시아 聯合軍을 相對로 한창 戰爭을 치를 무렵,

프랑스 안에서는 貴族들을 中心으로 한 王黨派가 權力을 되찾기 위한 陰謀

를 꾸미고 있었고, 革命에 反對하는 이들 王黨派를 없애야 한다는 국민들의

소리에 한 때 하늘을 나는 새도 떨어뜨릴 만큼 큰 권세를 휘두르던 프랑스

國王 루이 16世도󰡐國民의 敵󰡑이란 이름으로 裁判을 받게 되었다.

 

國王 루이 16세 夫婦는󰡐國民의 敵󰡑으로 고발되어 裁判에 부친결과 1793

년 1월 21일 파리의 한복판 콩코르드 광장에서 온 파리 市民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프랑스 역사에서 처음으로 國民은 자기들 王의 목을 자르고야 말았

.

 

o제1차 對프랑스 同盟 또는󰡐對프 同盟󰡑

 

․그리고 革命軍의 계속되는 戰爭勝利는 유럽의 여러 나라들을 크나큰 不

安 속으로 몰아넣었고, 이래서 랑스를 相對로 이웃의 나라들은 同盟軍

을 만들었는데, 이에 앞장선 것은 물론 프랑스와 앙숙인 英國이었다.

 

英國을 비롯하여 오스트리아․프러시아․에스파냐․러시아 등 유럽의 힘있

는 나라들이 同盟軍을 만들어 프랑스에 戰爭을 宣言하니 이것을󰡐제1차 對

프랑스 同盟󰡑또는󰡐對프 同盟󰡑이라고 한다.

 

․革命을 치르느라 混亂에 빠진 프랑스는 홀로 유럽 國家들을 상대로 戰爭

을 치르게 되었는데, 비교가 되지 않은 不利한 戰爭이었으나 危機에 빠진

祖國을 救하고자 스스로 志願한 革命軍의 士氣는 하늘을 찌를듯 했다.

 

o皇帝 나폴레옹 1世

 

나라 밖으로는 온 유럽을 상대로 한 戰爭이 계속되고, 안으로는 權力을 두

 

●프랑스는 어떤 나라인가 -32

 

고 指導者들 사이에 싸움이 끊이질 않아, 프랑스는 混亂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오르는 物價, 계속되는 戰爭, 指導者들의 權力 싸움으로 프랑스

국민들은 차츰 피로해지기 시작했다.

 

프랑스 國民은 차츰 自由․平等의 世界를 이룩한다는 꿈보다는 당장 戰爭

없고 배불리 먹을 수 있는 平和로운 時代를 그리워하게 되었고, 그들의 希

望을 이루어 줄 强力한 指導者를 바라게 되었다.

 

이때 나타난 사람이 다름아닌󰡐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이었다.

․軍人 나폴레옹은 軍隊의 힘으로 政權을 잡고 1804년에는 프랑스 역사상 첫

번째󰡐皇帝 나폴레옹 1世󰡑가 되었다.

 

權力을 잡은 나폴레옹은 獨裁政治로 나라 안의 權力 싸움을 끝냄으로써 平

和를 가져왔고, 나폴레옹은 프랑스와 戰爭을 해온 對프同盟 國家들인 오스

트리아․프러시아․러시아․에스파냐 등을 차례로 무찔러 英國을 빼놓은

거의 모든 유럽을 발아래 屈服시킴으로써 프랑스의 權威와 威信을 크게 떨

으나,

 

총칼로 이룬 平和는 오래가지 못하는 법이라 나폴레옹에게 占領 당한 나라

들이 反抗을 계속하고 이를 억누르기 위해서는 또다시 軍士를 일으켜야 했

으므로 戰爭은 끊임없이 계속되어 프랑스 國民들은 戰爭에 진저리를 칠 정

도가 되었다.

 

o프랑스는 다시 王을 모시게 되었다― 나폴레옹 時代 幕을 내리다

 

․결국 나폴레옹은 쫓겨나는 신세가 되어 엘바섬으로 귀양을 갔는데, 엘바섬

을 도망쳐 나온 그는 軍士를 모아 다시 한 번 勢力을 잡으려 했으나 英

國․프러시아․오스트리아․러시아 聯合軍에게 워털루 戰鬪에서 敗北함으

로써 나폴레옹 시대는 幕을 내리고 프랑스는 다시 王을 모시게 되었다.

 

․프랑스 革命은 부르조아 階級의 勝利

 

革命이 일어나기 前의 프랑스는󰡐王→貴族→市民󰡑의 階級 順序가 있었으

나, 革命 後의 프랑스는󰡐王→市民󰡑으로 市民 즉 부르조아 階級이 貴族의

자리를 차지한 부르조아 階級의 勝利라고 할 수 있다.

 

․루이 18世

 

프랑스 大革命이 부르조아의 支持를 받은 나폴레옹의 登場으로 일단 幕을

내렸으나, 나폴레옹이 물러간 후󰡐루이 18세󰡑가 王으로 프랑스에 돌아왔

고, 프랑스는 다시 革命 前과 다름없는 宮庭 中心의 政治를 하게 되었다.

 

●프랑스는 어떤 나라인가- 33

 

․샤를 10世→ 루이 필리프

 

다만 貴族 대신 實力있는 부르조아가 이전 貴族이 누리던 奢侈를 누리게

된 것이 큰 差異이지만,󰡐루이 18世󰡑가 죽은 뒤󰡐샤를 10世󰡑가 王이 되

면서 自由平等의 革命精神과는 달리 몇몇 사람의 富貴榮華를 위한 特權政

를 펴자,

 

1830년 7월 프랑스 國民은 또다시 들고 일어나 결국 國王󰡐샤를 10세󰡑를

쫓아내고 自由․平等主義者로 알려진󰡐루이 필리프󰡑를 王으로 모셨으나,

󰡐루이 필리프󰡑또한 王이 되면서 차츰 國民의 뜻과 달리 몇몇 돈 많고 勢力

있는 부르조아들에게만 有利한 政治를 폈다.

 

․1848년 2월 프랑스 國民은 다시 武器를 들고 일어나 이틀간의 치열한 市

街戰을 政府軍과 벌여 政府軍을 누르고 勝利하니 國王󰡐루이 필리프󰡑는

英國으로 도망가고󰡐루이 필리프󰡑를 마지막으로 프랑스에서 다시는 國王

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o프랑스 大革命의 意味

 

․프랑스 大革命에 대해 자세하게 이야기한 까닭은 도대체󰡐民主主義󰡑란

얼마나 어려운 길을 밟아 이루어지는 것인가를 설명하기 위함이다.

󰡐民主主義󰡑란 國民에게 나라의 主權이 있으며 國民 누구에게나 골고루 같

은 權利와 機會가 주어지는 制度인데, 이런 좋은 制度란 게 오랜 기간 동안

國民 스스로가 싸워 얻어내야 하는 神聖한 權利라는 것이다.

 

․民主主義를 위해 싸운 國民

 

프랑스 국민은 세계 그 어느 나라의 국민보다 이 民主主義를 위해 싸운 國

이며, 스스로가 自身의 權利와 利益을 위해 엄청난 피를 흘린 國民이라는

것, 그 德으로 가장 앞선 民主主義의 惠澤을 오늘날 즐기고 있다고 할 수

있다.

 

․1789년 大革命이 터진 이래 수백만명이 自由․平等을 위해 피를 흘리며 죽

갔고 한 명의 國王을 死刑시키고 두 명의 國王은 外國으로 追放시키는 등

국민들의 權利와 幸福을 妨害하는 指導者를 自身들의 힘으로 몰아낸 經驗

있는 까닭에 支配者에게 업신 여김을 받지 않는 國民으로서 眞正한 民主主

義를 향해 한 걸음 앞서 간 國民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프랑스 사람들은 말한다.

 

󰡒우리들의 革命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우리들 革命의 目標는 自由․平等

社會이다. 그러나 보라. 아직도 잘 사는 者, 못사는 者의 不平等이 얼마나

 

●프랑스는 어떤 나라인가- 34

 

 

큰가? 모든 國民이 골고루 自由롭고 平等해질 때까지 우리 핏속에서 革

命의 불은 꺼지지 않을 것이다.󰡓

 

․이런 프랑스 사람들의 氣質만약 政府나 指導者가 國民의 뜻에 어긋나는

을 하면 결코 그냥 보아 넘기지 않고 당장 들고 일어나 國民의 뜻에 指導

者가 따르도록 하기에 政府가 國民의 뜻을 無視하고 제멋대로 權力을 휘두

를 수가 없다.

 

우리나라엔 나폴레옹이 프랑스가 자랑하는 英雄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

러나 프랑스에서는 나폴레옹이 별로 사랑받지 못하고 있다.

 

󰡒자신의 野心을 위해 프랑스를 戰爭 속으로 끌어들인 獨裁者지요. 똑똑하긴

했지요. 그러나 프랑스엔 온통󰡐나폴레옹󰡑투성이가 아닙니까? 紀念品이라

든가... 나폴레옹이 外國에 英雄으로 알려져 있으니까. 그 점을 노려 돈을 버

는 거죠. 돈 벌리는데 그 누군들 못 팝니까?󰡓

 

<자료제공 :박점수 과천시 노인복지관 역사문화 강좌 강사님>

 

                         <참고>

                           Click  ▼

프랑스는 어떤 나라인가.hwp
0.18M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