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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한국사傳 – 등신불이 된 신라왕자 김교각 / KBS 2008.5.24.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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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락 유머 다큐

2021. 5. 20.

https://youtu.be/t6SljaYgd4k

소설 ‘등신불’의 모델, 중국 구화산
그곳 최초의 등신불은 신라왕자 김교각이었다! 
왕자의 신분을 버리고 선택한 고된 수행의 길, 무엇이 승려 김교각을 등신불로 남게 했을까?

- 1,200년간 썩지 않은 등신불의 비밀 
김동리의 소설 ‘등신불’의 원형인 중국 안휘성 구화산. 
중국에서 유일하게 등신불이 존재하는 곳이다. 
해발 1,352m의 고지에 비가 많고 습한 이런 곳에서 오랜 세월 동안 썩지 않고 등신불이 된다는 것은 과학적으로도 풀 수 없는 신비이다. 그런데 구화산 최초로 등신불이 된 이는 바로 바다를 건너 중국으로 온 신라왕자 김교각이었다. 김교각 스님이 직접 지었다고 전해지는 수혜미에는 “본디 나는 신라의 왕자(原身乍是尊王子...)” 라는 구절이 나온다. 중국 불교학의 최고권위자로 불리는 셰수톈 교수는 [삼국사기], [구화산지], [화성사기] 등 역사서의 기록을 추적해 김교각 스님이 신라 성덕왕의 첫째 아들 김수충일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김교각과 김수충은 과연 동일 인물일까? 

- 지옥이 텅 비기까지 결코 성불하지 않으리... 
서기 755년 당나라에서 안사의 난이 일어나 나라 전체가 폐허가 됐다. 백성들의 하루하루 삶을 살아나가기도 힘겨운 상황이었다. 김교각 스님은 중생의 삶과 밀착하여 생활 속에서 지장신앙을 실천해나갔다. 겨울에도 삼베옷을 입었고 직접 농사를 지어 생계를 어려운 민중에게 의지하지도 않았다. 
그는 백성들을 위하여 기도했다. 지옥이 비기까지 성불치 않으리라는 그의 염원은 실천적 메시지와 함께 당시 흉흉했던 민심을 보듬어 안았고, 이는 민중들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이끌어냈다. 

- 중국 땅에서 보살로 추존되다 
중국이 달마대사나 육조대사에게도 붙이지 않은 보살의 칭호를 당시로선 조그만 나라였던 신라의 스님에게 붙인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다. 심지어 김교각 스님이 수행하던 절에 당황제가 직접 절 이름을 지어 편액을 내렸으며 서기 757년 김교각 스님의 신앙세계를 높이 받들어 금인을 하사했다. 
이것은 김교각의 수도가 당나라로부터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았음을 의미한다. 열반 후 김교각의 육신은 돌로 만든 상자에 보관됐다. 입적한 지 3년이 되어 다시 그 상자를 열어보았을 때 그의 시신은 마치 살아있는 육신과도 같았다고 한다. 그가 평생을 바쳐 빈 중생구제의 서원. 
마침내 김교각 스님은 지장왕보살이 되어 영원히 중생들과 함께 하게 되었다.

한국사傳  42회 – 등신불이 된 신라왕자 김교각 (2008.5.24.방송)
http://history.k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