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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宗의 죽음에 대한 의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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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7. 9.

  文宗의 죽음에 대한 의혹          

o개요
  癸酉靖難(계유정난)은 首陽大君이 어린 조카 ‘端宗(단종)’을 죽이고 王
  이 되는 事件이다. 그리고 그 事件의 始發은 文宗의 健康이었다. 文宗이
  健康해서 强力한 君主의 地位를 구축해 놓은 상태에서 成年이 된 단종
  에게 王位를 물려주었더라면 首陽大君은 王位에 오르지 못하였을 것.
  그런점에서 癸酉靖難의 始發이 된 文宗의 죽음에 대하여는 의혹이 있는
  것이다. 文宗 死亡의 가장 큰 受惠者(수혜자)는 首陽大君이었다.
 
o文宗의 죽음에 대한 의혹
 
 - 御醫(어의) ‘전순의’ -
 ․큰 지병이 없던 39세의 王이 돌연 病死했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고
 ․당시 치료를 맡은 어의 ‘전순의’는 조선왕조 5代 임금의 질환을 치료
   한 당대 最高의 名醫로서 첨지중추원사에 까지 올라갔던 사람이다.
 ․文宗을 죽음에 이르게 한 病의 原因은 바로 등에 난 종기이다.
 ․전순의가 의혹을 받는 이유는 그가 종기 치료를 하면서 名醫라는 칭
   호에 어울리지 않는 이상한 治療方法을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文宗의 病患이 점점 惡化되어가고 있는데도 大臣들에게 ‘점점 回復되
   어가고 있다’고 安心을 시켜 大臣들이 問病을 못하게 막고 있었다.
 
 - 首陽大君 -
 ․宗親은 政事에 관여할 수 없음에도 文宗의 病治療를 主導하고 있었다.
 ․王의 祕書室長인 승정원 도승지는 ‘王의 치료절차를 도맡아 處理’해야
   함에도 首陽大君이 名山大刹로 데리고 다니며 王의 治療를 妨害했다.
 ․御醫가 文宗의 治療 및 經過에 대한 일체를 自己한테만 報告토록하고
   大臣들을 철저히 따돌리고 있었다.
 ․사간원에서 御醫를 重刑에 처하도록 강력히 요구하고 있음에도 罰을
   주지 않고, 자신이 王位에 오르는데 아무런 관련이 없는 그를 1等 좌
   익공신으로 봉하여 종2품의 자헌대부라는 관직을 주어 특별 우대했다.

<출처> 과천시 노인복지관 박점수 강사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