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의 여행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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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절과 단군왕검(開天節과 檀君王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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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10. 29.

우리나라의 역사에서 10월은 개천절이 있고, 명성황후가 시해당한

을미사변, 훈민정음(한글) 반포,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황제가 다스리는

대한제국의 선포 등 중요한 사실들이 많은 달입니다.

그 중 개천절에 대해 기히 잘 알고 계시는 내용을 다시 한번

일깨워보기로 하겠습니다. 

 

開天節과 檀君王儉

o開天節(개천절)
  開天은 바로 하늘을 열었다는 말이다. 開天節은 단군왕검이 古朝鮮을
  세운 것을 기념하는 날이며, 桓雄(환웅)이 하늘에서 太白山의 神檀樹(신
  단수) 아래로 내려온 것을 의미한다.
 
o開天節의 意味(의미)
 ․開天節 行事는 일제강점기의 암울했던 植民支配下(식민지배하)의 상황
   에서 民族意識(민족의식)을 鼓吹(고취)시키는데 큰 힘이 되었다.
 ․上海臨時政府(상해임시정부)에서도 이날을 국경일로 定하였으며 光復
   後(광복후)에는 大韓民國政府가 계승하여 음력 10월 3일에 지내던 행
   사를 양력 10月 3日로 바꾸어 지금의 開天節이 되었다.
 
o開天節의 由來(유래)
  이러한 명절을 開天節이라 이름짓고 시작한 것은 大倧敎(대종교)에서
  비롯한다. 즉 1909년 1월 15일 서울에서 나철을 중심으로 大倧敎(대종
  교)가 창시되자, 開天節을 경축일로 제정하고 매년 行事를 거행했다.
  ※ 원래는 1904년에 백두산 道人 백봉(白峯)이 창교한 檀君敎(단군교)였다.
 
o日帝强占期― 만주에서 抗日運動(항일운동)
 ․韓國史에서 檀君이 부각되었던 理由가 실제로는 檀君 숭배보다도
   日帝에 대한 저항에 초점을 두었다는 것이 歷史學界의 분석이다.
 ․日帝가 1911년 民族宗敎를 탄압하기 시작하자, 대종교 교단 지도부는
   만주 북간도에 총본사를 옮기고 비밀결사인 중광단을 설립했다.
 ․重光團(중광단)은 항일 독립운동 단체로, 3ㆍ1 운동 후에 정의단, 북로
   군정서(1920년 靑山里 대첩에 가담)로 계승ㆍ발전하여 무장항일운동단
   체의 母體(모체)가 되었다. 서일, 현천묵, 김좌진, 이범석 등이 활동.
 
o大倧敎人들이 해방 후에 國內에 大學을 설립, 인재 양성에 主力했다.
  정인보― 國學大學(초대학장), 이홍수― 弘益大學校, 장형― 檀國大學校,
  이시영― 新興大學校(경희대학교 前身)

 

 

檀君神話와 檀君王儉의 歷史的 意義

1. 檀君神話(단군신화)
 
 o檀君神話는 민족이 累卵(누란)의 危機(위기)에 처한 高麗時代에
   비로서 整理(정리)된 것으로
  ․民族發祥(민족발상)의 根源(근원)을 확인하고
  ․이를 통해 民族의 團結力(단결력)을 고취함으로써,
  ․우리 民族의 優越性(우월성)을 재확인하게 하여
  ․결국 累卵의 危機에 처한 祖國을 救(구)하는 原動力으로서 檀
    君神話는 존재한다.
     ※ 累卵(누란)― 쌓아놓은 새알 즉, 위험에 비유한 말
 
 o檀君神話에 대한 最高의 기록은
  ․고려 때의「三國遺事(삼국유사)」속에 인용한「古記」와
  ․魏書(위서)의 2가지가 있다.
     ※ 중국 漢나라의 역사서인「魏書」에 古朝鮮에 관한 記錄이 있다. 즉,「지
         금으로부터 2,000년 전, 檀君王儉이 있었는데, 이것은 堯(요)와 같은 時
        期였다」고 記錄되어있다. 그러나 古記와 魏書는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
 
 
2. 檀君王儉(단군왕검)이란 말은
 
 o당시 시대가 祭祀(제사)를 담당하던 무당이 統治者가 되어 나라
   를 다스리는「祭政一致(제정일치)」의 社會였음을 말해 준다.
  ․檀君이란 원래「무당」을 가리키는 말 (조선시대에는 당굴, 몽골에
     서는 터걸) 이었고
  ․王儉이란 임검 즉, 임금 (정치적인 지배자)를 뜻한다.

<출처> 과천시 노인복지관 박점수 강사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