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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평가(朴正熙 大統領에 대한 評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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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10. 29.


10/26일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79년 10・26사태로 서거한지 42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좌파들은 그분을 독재자라고 혹평을 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를 세계의 최빈국에서 선진
공업국으로 탈바꿈시켜 놓은 신화를 낳은 민족의 영웅이십니다.
그런 과정에서 그분의 애국 열정의 일화와 전 세계의 지도자와 석학들이 평가하는 내용을 
살펴봅니다.

 

朴正熙 大統領에 대한 評價(8-1)

1. 西獨 國賓(국빈) 訪問
 
 ① 서독 파견 광부와 간호사  
 
   o 독일은 우리나라에서 광부가 가기 전에 유고‧터키‧아프리카 등지에서 광부
     들을 데리고 왔었다. 이들은 아주 나태하여 결국 광산을 폐쇄할 수 밖에
     없었다.
 
   o 하지만 한국에서 온 광부들이 투입되면서 생산량이 엄청나게 높아지자,
     독일 신문들이 대대적으로 보도를 하였고, 이렇게 근면한 민족을 처음 봤다
     면서 한달 급여 120달러에 보너스를 줘야한다는 여론이 일어났다.
 
   o 한편, 왜 간호사가 필요하였는가?
     국민소득이 올라가니 3D업종이나 힘든 일은 기피하는 현상은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이다. 특히 야간에는 간호사가 없었다. 특근 수당을 많이 준다 하
     여도 필요 없다는 것이다.
 
   o 한국 간호사들에 대하여서는 아주 후진국에서 왔는데 일을 맡길 수 없다하
     여 일부는 죽은 사람 시체를 알코올로 닦고, 수의를 입히는 일도 하였으며,
     일부는 임종이 가까운 환자들을 돌보도록 호스피스 병동에서도 근무하였는
     데, 한국 간호사들은 환자가 사망하면 그 시신들을 붙들고 울면서 염을
     하는 것을 보고 독일 사람들은 깊은 감명을 받았던 것이다.
 
   o 우연한 기회에 담당 간호사가 자리를 비우든지 아니면 갑자기 간호사가 없
     을 경우에는 주사도 놓고 환자 다루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서 한국 간호
     사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기 시작하면서 의료분야를 맡기기 시작하였다.
 
   o 더욱이 위급한 사고 환자가 피를 흘리면서 병원에 오면 한국 간호사들은
     몸을 사리지 않고 그 피를 온 몸에 흠뻑 적시면서도 응급환자를 치료하는
     가 하면, 만약 피가 모자라 환자가 위급한 지경에 빠지면 한국 간호사들은
     직접 수혈을 하여 환자를 살리는 등 이런 헌신적인 봉사를 하는 것을 보고
    “이 사람들은 간호사가 아니라 천사다” 하면서 그때부터 태도가 달라지
     기 시작하였고,

 

 

朴正熙 大統領에 대한 評價(8-2)

   o 이런 사실이 서독의 신문과 TV에 연일 보도되면서, 서독은 물론 유럽 전
     체가 “동양에서 천사들이 왔다” 라고 대대적으로 보도하였다.
     우리 간호사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뉴스化 되자, 서독 국민들은 “이런 나라
     가 아직 지구상에 있다는 것이 신기한 일”이라며, “이런 국민들이 사는 나
     라의 대통령을 한 번 초청하여 감사를 표하자”는 여론이 확산되었다.
 
   o 특히 도시에 진출한 간호사들의 실력이 독일 간호사들 못지않다는 인정이
     일고 있던 시기, 한독협회 ‘바그너 의장’ 은 “병원에 오면 꼭 한국 간호사만
     찿는데 왜 그러느냐” 고 기자가 물으니 “주사를 아프지 않게 놓는 특별한
     기술자”라 하여 주변을 놀라게 하였다는 것이다.
 
 ② 西獨 國賓(국빈) 訪問
 
   o 서독 정부도 “그냥 있을 수 없다”하여 朴正熙 大統領을 초청하였다.
     이것이 단군 이래 처음으로 우리나라 국가 원수가 국빈으로 외국에 초청되
     는 첫 번째 사례였다.
 
   o 우리로서는 안 갈 이유가 없었다. 오지 말라고 해도 가야할 다급한 실정이
     었다. 그래서 많은 준비를 하였으나 일행이 타고 갈 항공기가 없었다.
     한국이 가진 항공기는 일본만을 왕복하는 소형여객기로 이것을 갖고 독일
     까지 갈 수 없어 아메리칸 에어라인을 전세내기로 하였는데, 미국 정부가
     군사 쿠데타를 한 나라의 대통령을 태워갈 수 없다 하여 압력을 가해 무산
     됨으로 곤경에 처한 것이다.
 
   o 그래서 연구한 것이 어차피 창피는 당하게 되었는데 한번 부딪쳐 보자.
     이래서 당시 동아일보 사장이었던 최두선 선생이 특사로 서독을 방문하여,
     뤼브케 대통령을 예방한 자리에서 “각하, 우리나라에서는 서독까지 올
     비행기가 없습니다. 독일에서 비행기 한 대를 보내 주실 수 없겠습니
     까?”
 
   o 당시를 회고하는 백박사에 의하면 그들이 깜짝 놀라 말을 못하더란 것이다.
     결국 합의가 된 것이 홍콩까지 오는 여객기가 서울에 먼저 와서 우리 대      
 통령 일행을 1등석과 2등석에 태우고 홍콩으로 가서 이코노미석에 일반

 

 

朴正熙 大統領에 대한 評價(8-3)

     승객들을 탑승하게 한 후 홍콩, 방콕, 뉴델리, 카라치, 로마를 거쳐 프랑크
     푸르트로 간 것이다.
 
   o 1964. 12. 6. 루프트 한자 649호기를 타고간 대통령 일행는 퀼른 공항에서
     뤼프케 대통령과 에르하르트 총리의 영접을 받고 회담을 한 후, 다음날 대
     통령과 함께 우리 광부들이 일하는 탄광지대 ‘루르’지방으로 갔다.
 
   o 그 곳에는 서독 각지에서 모인 간호사들과 대통령이 도착하기 직전까지 탄
     광에서 일하던 광부들이 탄가루에 범벅이 된 작업복을 그대로 입고 강당에
     서 기다리고 있었다.
     새까만 얼굴을 본 박정희 대통령은 목이 메기 시작하더니 애국가도 제
     대로 부르지 못하였고, 연설 중 울어버렸다.  
     광부들과 간호사들과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가 한 덩어리가 되어 부둥켜 안
     고 통곡의 바다를 이루었으니 얼마나 감동적이었을까.
 
   o 떠나려는 대통령을 붙들고 놓아주지를 않았던 광부들과 간호사들은 “대한
     민국 만세” “대통령 각하 만세”로 이별을 告하였다.
 
   o 돌아오는 고속도로에서 계속 우는 우리 대통령에게 뤼브케 대통령이 자
     신의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아 주기도 하였는데, 대통령을 붇들고 우는 나
     라가 있다는 이 사실에 유럽 여론이 완전히 한국으로 돌아선 것이다.
 
   o 박대통령 방문 후 서독은 제3국의 보증 없이도 한국에 차관을 공여하겠다
     는 내부 결정을 하였지만, 국제관례를 도외시 할 수 없는 상황이기에 한국
     광부와 간호사들이 받는 월급을 1개월간 은행에 예치하는 조건으로 당
     초 한국이 요구하였던 차관액수보다 더 많은 3억 마르크를 공여하였다.
 
   o 서독에 취업한 우리 광부와 간호사들이 본국에 송금한 총액은 연간 5000
     만 달러, 이 금액은 당시 한국의 국민소득의 2%를 차지하는 엄청난 금액
     이었으며, 이 달러가 고속도로와 중화학공업에 투자되었다.
 
   o 이후 한국과 서독 간에는 금융문제는 물론 정치적으로도 진정한 우방이 되
     었다.      

 

 

朴正熙 大統領에 대한 評價(8-4)

     서독에서 피땀흘린 광부와 간호사들이야 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조국근대
     화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위대한 ‘국가 유공자들’ 임에도 우리들은 그들을
     잊어버린 것은 아닌지? 국가는 당연히 그들에게 ‘국가 유공자’ 로 대우하여
     야 한다.  
 
   o 아우토반, 1920년대 말, 히틀러가 만든 세계 최초의 고속도로다.
     히틀러는 이 도로를 전쟁을 위하여 만든 것이지만, 이 도로가 있었기에 2차
     세계대전 후 독일 경제부흥의 초석이 된 것이다.
 
   o 이 도로를 달리던 우리 대통령은 3번이나 차를 세우고서 도로 상태를 면
     밀히 조사하면서 울었다는 것이다.
      - 경상매일신문 논설고문 박영근「최근세사의 재조명」 올챙이 시절 잊지말자 -
 
3. 朴正熙 大統領에 대한 世界 碩學들의 評價
 
 o 나는 새마을 운동을 많이 연구했다. 상당수의 중국 국민들이 박정희를 존
   경한다.  - 후진타오 -
 
 o 예전에 유신에 대해서 말들이 많지만, 박정희는 새마을운동을 통해서 경
   제를 성장시키지 않았는가? 서울을 보라, 서울은 도쿄보다 나은 민족의
   자산이다.     - 김정은이 정주영과 대화 중 -
 
 o 19∼20세기 세계적 혁명가들 5인 중 경제발전에 기적을 이룩한 사람은
   오직 박정희 한 사람이었다. 그는 産業化 후에 民主化를 이룩한 소위 민
   주화의 토대를 다진 인물이라서 나는 그를 존경한다.    - 카다피 -
 
 o 民主化는 産業化가 끝난 후에 可能하다. 이런 인물을 독재자라고 말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박정희라는 모델을 누가 뭐라고 말해도 세계가 본받
   고 싶어 하는 모델이다.      - 엘빈 토플러 -
 
 o 박정희는 세계 최빈국가를 불과 20년만에 세계 정상급 국가로 만든 인물
   이다. 박정희에 관한 책은 어떤 책이라도 다 가져와라. 그는 나의 모델이  

 

 

朴正熙 大統領에 대한 評價(8-5)

    다.     - 푸틴 러시아 대통령 -
 
 o 박정희 대통령이 눈앞의 이익만 쫓았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없다.
                                                 - 싱가폴 리콴유 -
 o 박정희가 없었다면 공산주의 마지노선이 무너졌다.
                                                 - 아이젠하워 대통령 -
 
 o 나는 박정희 대통령을 최고로 존경한다.        - 마하티르 훈센 -
 
 o 박정희는 나의 멘토이다.    - 등소평 -
 
 o 박정희가 없었다면 오늘날의 한국도 없다. 박정희는 헌신적이었고, 개인
   적으로 착복하지 않았으며 열심히 일했다. 그는 국가에 일신을 바친 리더
   였다.   - 에즈라 보걸 미 하버드大 명예교수 (노무현 대통령과의 만남에서)
 
 o 그는 진정으로 국력을 키웠다. 그는 다른 후진국 지도자와 달리 부패하지
   도 않았다. 1970년대는 박정희가 重化學工業政策으로 국가 기간산업을 이
   뤄냈다. 1980년대도 박정희의 성공이 이어지는 시기였다.
                                        - 브루스 커밍스(워싱턴大 교수) -
 
 o 세계 최빈국의 하나였던 한국이 박정희의 새마을운동을 시작으로 불과 20
   년만에 세계적인 무역국가가 되었음을 경이롭게 본다.
                                        - 폴 케네디(예일大 교수) -
 
 o 박정희의 역사적 큰 공헌은 그의 뛰어난 指導力下에 한국을 저개발의 농
   업국가에서 고도로 성장한 공업국가로 변모시킨 것이다.
                                 - 앨리스 앰스턴(MIT 정치경제학 교수) -
 
 o 박정희는 조국 근대화에 확고한 철학과 원대한 비전을 바탕으로 시의적절
   한 제도적 개혁을 단행했다. 매우 창의적이며 능률적이었다.
                                            - 카터 에커트(하버드大 교수) -
 o 박정희는 한국경제발전의 유공자.   - 백남청(서울대 명예교수) -
 
 o 박정희는 비록 民主化運動을 억압하였으나, 역설적으로 民主主義에 필수

 

 

朴正熙 大統領에 대한 評價(8-6)

    적인 중산층을 대폭 창출시켜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 김상기(충남大 역사학 교수) -
 
 o 당신이야말로 한국의 박정희를 만나야 할 것 같다. 내가 보니 대단한 사
   람이다. 만나면 서로 의기투합할 것이다.
       - 허만 칸(미 허드슨 연구소장)의 권유에 리콴유 수상은 한국방문을 수
         락하게 됐다 -
 
 o 박정희의 近代化 成功으로 중산층이 창출되고 이것이 韓國民主主義의 토
   대가 되었다. 박정희야 말로 韓國民主主義 發展에 가장 크게 기여했다.
                                - 오버 홀트(미 카터대통령 수석보좌관) -
 
 o 1960년까지도 南韓은 성인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79달러로 가나나
   수단과 같은 지구상 가장 가난한 나라였다. 그 당시 세계은행보고서는 버
   마와 필리핀의 앞날을 장밋빛으로 보았다. 천연자원이 부족하고 에너지원
   이 없는 남한은 경제적 전망이 없다는 것이다(중략) 불리한 자연 공간적
   전제에도 불구하고 남한은 경제기적을 이루어냈다.
                              - 독일 국정교과서(고교 상급반 지리 92쪽) -
 
 o 남한은 세계경제로 통합되었다. 대통령 박정희(1961∼79)는 강력한 손으로
   남한을 농업국가에서 산업능력을 가진 국가를 형성했다. 수도 서울은 비
   약적으로 성장했다.   - 독일 국정교과서(중학교 지리 109쪽) -
 
 o 박정희의 경제개발 정책은 중국 경제개발의 훌륭한 모델이었다.
   (러시아 뿐만 아니라 천하의 중국도 박정희의 대통령을 모방)
                                                   - 원자바오(중국 총리) -
 
 o 박정희는 적어도 한국에서 가장 작으며 가장 偉大한 人物이다.
                                             - 허버트 험프리(미 부통령) -
 
 o 어렵던 시절, 한국을 이끌어 고도로 공업화된 민주국가로 변화시킨 역사
   적 역할을 담당한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 깊은 존경심을 가지고 있다.
                                  - 페르베즈 무샤라프(파키스탄 대통령) -

 

 

朴正熙 大統領에 대한 評價(8-7)

 o 한국은 전쟁 후 빈 손으로 일어선 나라고, 캄보디아 역시 내전 후 재건을
   위해 노력 중이다. 캄보디아 경제발전을 위해 여러 사례를 연구했는데 한
   국이 캄보디아와 유사했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모델을 많이 따르고 있다.
                                                 - 훈센(캄보디아 총리) -
 
 o 박정희의 업적은 동남아와 전세계 빈곤국가에게 한가지 대안을 제시할 수
   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 오히라 마사요시(일본 총리) -
 
 o 동남아 국가들은 70년대 한국을 거울삼아 경제개발을 해야할 것이다.
                                                 - 리콴유(싱가포르 총리) -
 
 o 1965년 필리핀의 1人當 GNP가 270달러였을 때 한국의 1人當 GNP는
   102달러였지만, 2005년 필리핀의 1人當 GNP가 1030달러였을 때 한국의
   1人當 GNP는 16,500달러로 변하였다.
   가난한 절대빈곤의 후진국에서 조국보다 잘살던 동남아국가들을 따돌리고
   산업화의 기틀을 마련한 박정희 대통령의 指導力이 존경스럽다.
                                                - 아로요(필리핀 대통령) -
 
 o 황병태 경산大 총장(69)은 우리나라 보다 중국에서 훨씬 더 인기있는 인
   물이다.
   1993∼95.12까지 2대 주중대사를 역임한 그는 7년 세월이 지난 요즘도 중국
   정부가 안부를 물어오고 환대를 할 만큼 중국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
   다.
   장쩌민 주석은 그가 중국에서 이임할 때 전례없이 석별의 정을 읊은 ‘早發白
   帝城(조발백제성: 이른 아침 백제성을 떠나다)’이란 이백의 詩를 친필로 써주
   며 각별한 情을 표시하기도 했다.
   중국 외교부는 지난(2002년)7월 22일부터 29일까지 그를 잊지않고 공식 초청
   해 국빈에 버금가는 환대를 했다.
   중국에서 그렇게 인기있는 비결을 물었다.
   아마도 제가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경험한 우리나라 경제발전의 노하우를
   아주 성심성의껏 중국측에 전수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중국은 한국경제
   의 성공 배경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장쩌민 주석 등 고위관계자들이 주중대사 시절 저만 보면 장관들 토론회나  

 

 

朴正熙 大統領에 대한 評價(8-8)

   全人大會에서 한국경제개발의 노하우를 얘기해 달라고 했습니다.
   중국의 장쩌민 주석은 당시 황병태 주중대사에게 새마을운동과 한국의 경제
   개발5개년계획 등 한국의 발전모델을 전수해줄 것을 특별히 요청했고, 각 省
   長과 인민대표들에게도 황대사의 특별교육을 받도록 지시했다.
   러시아 뿐만 아니라 중국이라는 초강대국의 롤모델이 노골적으로 한국의 박
   정희임을 알 수 있었다.
 
 o 좌파, 친중파들에게 !
   몇몇 한국인들은 국경을 초월하여 세계인들의 모델이자 영웅이자 희망이신
   그분을 한없이 자랑스러워하기는커녕 한낱 독재자로 추락시켜 비난하고 있
   다. 같은 한국인으로써 얼마나 황당한 상황인가!
   설마 아직까지도 지금까지의 너희들의 생각에 의심이 들지 않는가?
   세계 어디에서도 인정받지 못할 주장을 아직까지 고수하고 있는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

<참고>

가보셨습니까, 박정희 대통령 기념관 ★ (daum.net)

 

가보셨습니까, 박정희 대통령 기념관 ★

 가보셨습니까, 박정희 대통령 기념관 ★ 서울특별시 마포구 상암동에 오랜 진통 끝에 어렵게 2012년2월21일 새로 개장한 "박정희대통령 기념 도서관" 박정희대통령을 사랑하는 국민의 성금과

blog.daum.net

 

 

 

<출처> 과천시 노인복지관 박점수 강사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