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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양역에서 아라뱃길 자전거길 따라 아라 서해갑문 정서진 까지-(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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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및산행

2021. 11. 4.









계양역에서 아라뱃길 자전거길 따라 아라 서해갑문 정서진 까지-(1/2)

(2021/10/30 현재)


공항철도 계양역에서 경인 아라뱃길 자전거 길을 따라 계양대교 에서
자전거를 타고 아라 인천여객터미널이 있는 서해갑문 정서진 까지
다녀 오면서 살펴본 주변 전경 입니다.

경인아라뱃길은 지난 2012년 5월 25일 완성되었으며 아라뱃길의 ‘아라’는
우리 민족의 대표 민요인 아리랑의 후렴구 ‘아라리오’에서 따온 말로 바다를
이르는 옛 말 입니다.경인 아라뱃길은 우리나라 최초의 운하입니다.

운하란 배가 다닐 수 있도록 육지에 만든 인공 수로(水路)를 말하는데, 경인 아라뱃길은
서해(인천 서구)와 한강(서울 강서구)을 연결해 그 사이로 배가 다닐 수 있도록 만든
인공 수로예요. 운하는 불리한 지형의 개선이나 선박의 항로를 단축할 목적으로 세계
곳곳에서 아주 오래전부터 개발되어왔지요.주요 세계 3대 운하로는 수에즈 운하
(Suez Canal), 파나마운하(Panama Canal), 코린트운하(Corinth Canal)가 있습니다.

아라뱃길 주운수로의 길이는 경인 아라뱃길 사업추진 전 건설 중이던 굴포천 방수로 15km
구간을 포함, 인천 서구 오류동(서해)부터 서울 강서구 개화동(한강)까지 총 18km에
이른답니다.경인 아라뱃길은 선박 통항 기능만을 담당하는 세계 다른 나라의 운하와는
달리 친수문화 공간을 조성하고, 역사와 문화가 함께 흐르는 아름다운 뱃길을 창조하기
위해 주변에 수향8경이라는 수변 테마 공간 8개소를 조성 했답니다. 


 


■아라뱃길 역사

 

한강과 서해를 안전하면서도 빠른 뱃길로 연결시키려는 경인아라뱃길 개척 노력은 과거부터 계속 이어져 왔습니다. 최초의 경인 아라뱃길 개척시도는 800여 년 전인 고려 고종 때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각 지방에서 거둔 조세를 중앙정부로 운송하던 조운(漕運) 항로는 김포와 강화도 사이의 염하를 거쳐 서울의 마포 경창으로 들어가는 항로였으나, 염하는 만조 때만 운항이 가능했고 손돌목(강화군 불은면 광성리 해안) 은 뱃길이 매우 험했다고 합니다.

 

이에 안정적인 조운항로를 개척하기 위해 당시 실권자인 최충헌의 아들 최이는 손돌목을 피해서 갈 수 있도록 인천 앞바다와 한강을 직접 연결하기 위해 인천시 서구 가좌동 부근 해안에서 원통현(일명 원통이 고개)과 지금의 굴포천을 거쳐 한강을 직접 연결하는 우리 역사상 최초의 운하를 시도하였지만, 원통현 400m 구간의 암석층을 뚫지 못해 결국 운하건설 시도는 실패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그 이후로도 간헐적으로 운하건설이 계속 추진되었으나, 인력과 기술의 한계로 좌절되어 오다 현대에 들어서 지난 1966년 서울시 영등포구 가양동에서 인천시 서구 원창동 율도까지 총연장 21km, 수심 4m, 하폭 90m의 운하 건설이 추진되었습니다. 그러나 경인지역의 급격한 도시화와 지역개발로 이역시도 중단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다 '87년 굴포천유역의 대홍수로 큰 인명과 재산피해가 발생하자 방수로를 신설하여 홍수량 일부를 서해로 방류하는 내용의 굴포천 치수대책을 수립하게 되었습니다. 굴포천 유역(인천 계양 ㆍ 부평, 경기 부천 ㆍ 김포 등)은 40%가 한강 홍수위 이하의 저지대로 평상시에는 하천물이 한강으로 흐르나, 홍수시에는 한강수위가 굴포천 수위 보다 4m 이상(100년 빈도) 높아 자연배수 불가능해지기 때문에 홍수피해 방지를 위해서는 서해로 직접 방류하는 방수로건설이 필수적이었습니다.

 

그러나 방수로만 건설할 경우 홍수 발생시에만 사용하는 임시수로의 역할밖에 하지 못했습니다. 또한, 방수로시작점(굴포천유역)에서 한강 쪽으로 조금만 더 연결해주면 홍수대비뿐 아니라 평상시에도 운하로 활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에 홍수예방을 위한 대량수송로 확보와 평상시에는 운하로 사용하기 위해 '95년도부터 경인운하사업을 추진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민자사업자까지 선정하여 사업이 탄력을 받는 듯 하였으나, 이후 계속되는 환경단체의 반대와 경제성 논란 등으로 사업은 수년간이나 계속 지연되었고, 이런 와중에도 굴포천유역의 홍수피해가 계속되자 경인운하사업은 잠정보류되고 임시방수로공사만 우선 착수하게 되었습니다.

 

이 후 오랜기간 동안 경인운하 사업계획 및 타당성에 대한 재검토가 계속되었고 두 번에 걸친 용역수행 결과 타당성이 있다는 결론(DHV: B/C 1.76, KDI : B/C 1.07)을 얻게 됨에 따라 '08년 국가정책조종회의에서 민자사업에서 공공사업으로 전환하여 사업시행자를 K-water로 변경, '09년 드디어 첫 삽을 뜨게되었고, '11년 마침내 국민들 앞에 경인아라뱃길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