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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미의병(乙未義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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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11. 25.

우리나라 역사상 11월에는 을미의병(1895), 광주학생항일운동(1929),

을사보호조약 강제 체결(1905) 등 중요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오늘은 먼저 을미의병에 대한 자료를 살펴 봅니다.

 

乙未義兵

o 乙未義兵

  1895년(고종 32) 양력 10월 8일 明成皇后가 日帝에 의해 弑害(시해)되
  고 뒤이어 皇后廢位詔勅(황후폐위조칙)이 발표된데 이어, 日帝의 강압에
  의해 실시된 甲午改革(갑오개혁)으로 斷髮令(단발령)까지 실시되자, 衛
  正斥邪思想(위정척사사상)을 계승한 地方 儒生層(유생층)을 중심으로
  전국 각지에서 義兵이 일어났다.

   ※ 斷髮令 : 상투와 망건을 제거하고 양복착용
   ※ 衛正斥邪 : 正學인 性理學과 正道인 성리학적 질서를 수호하고(衛正), 性理
                 學 이외의 모든 宗敎와 思想을 사학(邪學)으로 보아서 배격하
                는(斥邪) 운동
 
o 이들은 11월에 甲午改革과 明成皇后弑害事件을 日本과 開化派가 朝鮮
  의 國權을 위협한 사태라고 보고, 朝鮮王朝 保護를 궁극적 목표로 하여
  蜂起(봉기)하였다.
 
o 제천‧춘천의 유인석과 이소응, 홍주의 김복한 등의 儒生層과 東學農民
  軍의 잔여세력들은 地方官廳을 공격하고, 開化派 官吏들을 처단하거나
  日本軍을 공격하였다.  
 
o 그러나 이 시기의 兩班 儒生 義兵將(의병장)들의 身分差別 意識(신분차
   별의식)으로 인해 結集力이 弱하였고, 俄館播遷(아관파천) 이후 高宗이
   斷髮令을 취소하고 解散을 권유하자 活動을 중단하였다.  
 
o 意義와 評價
  乙未義兵은 비록 ‘勤王倡義(근왕창의 : 왕을 지켜야 나라가 산다)’라는
  王朝 中心的이며 衛正斥邪論的(위정척사론적)인 思想的 限界性을 탈피
  하지는 못하였으나, 淸日戰爭 중 우리나라를 강점한 日本에 對抗하여
  싸운, 東學農民運動에 뒤이어 임진왜란 이래 最初의 本格的인 抗日義兵
  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출처> 과천시 노인복지관 박점수 강사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