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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제49대 헌강왕(憲康王) 시절 처용랑(處容郞) 설화 관련 처용암(處容岩) 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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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12. 2.









신라 제49대 헌강왕(憲康王) 시절 처용랑(處容郞) 설화 관련
처용암(處容岩) 탐방


(2021/11/06 현재)


동해안 해파랑길 주변 해안가 도로를 따라 간성에서 울산까지 종단 여행
3일차로 먼저 월성 원자력 발전소 부지에 있는 신라 제4대 석탈해왕탄강유허와
신라 30대 경주 문무대왕릉, 이견대(利見臺),경주감은사지(慶州感恩寺址) ,
울산 장생포고래박물관(長生浦--博物館) 을 살펴 보고 방문한 신라 제49대 헌강왕
(憲康王) 시절 처용랑(處容郞) 설화 관련 처용암(處容岩) 탐방 전경 입니다

처용암(處容岩)은 남구 황성동 세죽마을 해변에서 약 150m 떨어진 바위섬이다.
처용암의 유래 전설은 『삼국유사』에 실려 있다.
신라 헌강왕(憲康王 : 재위 875~886년)이 이곳에 놀이를 와서 쉬고 있을 때, 갑자기
구름과 안개가 가려 앞을 볼 수 없었다. 일관이 동해 용(龍)의 조화이니 좋은 일을
해주어 달래주어야 한다고 보고하였다. 왕이 즉시 이 근처에 용을 위한 절을
세우도록 명령하자 구름과 안개가 걷혔다고 한다. 그리하여 이곳을 개운포라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또한 당시에 세운 절은 현재 울주군 청량면 율리에
터가 남아 있는 망해사(望海寺)이다.

왕의 명령에 동해용이 크게 기뻐하여 바다에서 일곱 왕자를 거느리고 왕의 앞에
나타나 춤을 추고 음악을 연주하였다. 그 가운데 한 아들이 왕을 따라 서울로 와서
왕의 정사를 도왔는데, 그가 처용이다. 왕이 그에게 아름다운 여자를 아내로
삼게 하여 머물러 있도록 하고, 급간(級干)의 관등을 주었다. 아내가 대단히 아름다워
역신(疫神)이 흠모한 나머지 사람으로 변해 밤에 몰래 그 집에 가서 동침하였다.

이 때 밖에서 돌아온 처용은 두 사람이 누워 있는 것을 보고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었다. 이에 역신은 본래의 모습을 나타내어 처용 앞에 꿇어앉아 “내가 당신의 아내를
사모해 잘못을 저질렀으나 당신은 노여워하지 않으니 감동하여 아름답게 여긴다.
맹세코 이제부터는 당신의 모양을 그린 것만 보아도 그 문 안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하였다. 이 일로 인해 나라 사람들은 처용의 모습을 그린 부적을 문에 붙여 귀신을
물리치고 경사스러운 일을 맞아 들였다고 한다.

『삼국유사』에서는 처용을 용의 아들이라고 하였으나, 처용의 신분에 대해서는
울산 지방 호족의 아들, 혹은 아리비아 상인 등의 학설이 있다.


■처용암 - 대한민국 구석구석
 
-위          치 울산광역시 남구 황성동 668-1
-문화재 지정 [처용암] 울산광역시 기념물 제4호(1997.10.09 지정)
 
처용암은 울산시 남구 황성동 세죽마을 앞 개운포 한 가운데 떠 있는 바위섬이다. 6평 가량의 아주 작은 바위섬으로, 귀신을 물리치는데 효력을 발휘한다는 처용부적과 관련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 기록된 처용랑(處容郞) 설화와 관계 있는 유서깊은 바위이다. 
 
신라 제49대 헌강왕(憲康王 : 재위 875∼886)이 이 곳에 와서 놀다가 돌아가려고 물가에서 쉬고 있었는데, 낮인데도 갑자기 구름과 안개가 짙게 끼어 길을 찾을 수 없었다. 일관(日官)이 아뢰기를 동해의 용이 조화를 부리는 것이니 좋은 일을 해주어 풀어야 한다고 했다. 임금이 명령을 내려 근처에 용을 위한 절을 세우라고 하자 구름과 안개가 걷혔다. 그 절이 현재 울주군 청량면에 그 터가 남아 있는 망해사(望海寺)이다. 
 
그리고 이 곳은 구름이 걷힌 포구라고 해서 개운포(開雲浦)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동해 용왕이 크게 기뻐하며 왕자 일곱을 거느리고 나와서 춤을 추고 음악을 연주했다. 그 가운데 한 아들이 임금을 따라 신라의 서울인 경주(慶州)로 들어가 나라의 정사를 도우니 그가 처용이었다. 임금은처용에게 아름다운 여인을 아내로 맞게 하고, 급간(級干)이라는 벼슬까지 주어 그를 왕의 곁에 머물러 있게 하였다. 
 
그러나 아름다운 처용의 아내를 흠모한 역신이 사람으로 변하여 밤에 몰래 침입하여 동침했다. 처용은 밖에서 자기 집에 돌아와 두 사람이 누워 있는 것을 보고도 화를 내지 않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물러 나왔다. 그러자 역신이 무릎을 꿇고 처용의 관용에 감격하면서 앞으로 그의 모습을 그린 그림만 보아도 그 곳에는 들어가지 않겠다고 맹세했다고 한다. 
 
처용이 아내와 동침하는 역신(疫神)에게 불렀던 노래가 유명한 신라향가 [처용가]인데, 옆에 있는 비석에 새겨진 것은 그 노랫말이다.처용이 추었다는 처용무는 중요무형문화재로서 보전되어 있고, 이 곳 처용암은 동해용이 일곱 아들을 데리고 나온 개운포 성지의 바위로, 지방기념물로 지정되어 처용설화와 함께 세인들의 입에 오르내리게되었다.동백과 참등나무 등 사철 푸른 나무로 뒤덮여 절경을 자랑하는 목도(천연기념물)가 지척에 있어 볼거리 많은 관광지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처용암 (處容岩) - 문화재청
 
-지정(등록)일 1997.10.09
-분           류 울산광역시 기념물
-수량/면적  207,000㎡
-소 재 지 울산 남구 황성동 668-1번지
-관리자(관리단체) 남구 
 
처용암은 남구 황성동 세죽마을 해변에서 약 150m 떨어진 바위섬이다. 처용암의 유래 전설은 『삼국유사』에 실려 있다.
 
신라 헌강왕(憲康王 : 재위 875~886년)이 이곳에 놀이를 와서 쉬고 있을 때, 갑자기 구름과 안개가 가려 앞을 볼 수 없었다. 일관이 동해 용(龍)의 조화이니 좋은 일을 해주어 달래주어야 한다고 보고하였다. 왕이 즉시 이 근처에 용을 위한 절을 세우도록 명령하자 구름과 안개가 걷혔다고 한다. 그리하여 이곳을 개운포라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또한 당시에 세운 절은 현재 울주군 청량면 율리에 터가 남아 있는 망해사(望海寺)이다.
 
왕의 명령에 동해용이 크게 기뻐하여 바다에서 일곱 왕자를 거느리고 왕의 앞에 나타나 춤을 추고 음악을 연주하였다. 그 가운데 한 아들이 왕을 따라 서울로 와서 왕의 정사를 도왔는데, 그가 처용이다. 왕이 그에게 아름다운 여자를 아내로 삼게 하여 머물러 있도록 하고, 급간(級干)의 관등을 주었다. 아내가 대단히 아름다워 역신(疫神)이 흠모한 나머지 사람으로 변해 밤에 몰래 그 집에 가서 동침하였다.
 
 이 때 밖에서 돌아온 처용은 두 사람이 누워 있는 것을 보고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었다. 이에 역신은 본래의 모습을 나타내어 처용 앞에 꿇어 앉아 “내가 당신의 아내를 사모해 잘못을 저질렀으나 당신은 노여워하지 않으니 감동하여 아름답게 여긴다. 맹세코 이제부터는 당신의 모양을 그린 것만 보아도 그 문 안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하였다. 이 일로 인해 나라 사람들은 처용의 모습을 그린 부적을 문에 붙여 귀신을 물리치고 경사스러운 일을 맞아 들였다고 한다.
 
『삼국유사』에서는 처용을 용의 아들이라고 하였으나, 처용의 신분에 대해서는 울산 지방 호족의 아들, 혹은 아리비아 상인 등의 학설이 있다.
 
 
 
●처용암(處容岩)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문화재 지정 울산광역시 시도기념물 제4호
-성          격 바위
-소    재   지 울산광역시 남구 황성동
 
 
울산광역시 남구 황성동에 있는 처용랑과 개운포의 설화와 관련된 바위. 시도기념물. 울산광역시 기념물 제4호. 세죽마을 해변에서 약 150m 떨어진 울산만 가운데 있는 186평 규모의 바위섬으로 되어 있다.
 
처용암에 관한 유래전설은 《삼국유사》 권2 처용랑 망해사(處容郞望海寺)조에 실려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처용암은 처용랑과 개운포의 설화와 관계가 있는 바위이다.
 
신라헌강왕이 이곳 개운포에 놀이를 와서 쉬고 있을 때, 갑자기 운무가 가려 앞을 볼 수 없게 되었다. 일관이 아뢰기를 바다 용의 조화이니 좋은 일을 해주어 풀어야 한다고 하였다.
 
왕은 즉시 영을 내려 이 근처에 용을 위한 절을 세우도록 하였다.(현 울주군 청량면 망해사) 그러자 운무는 씻은 듯이 걷히고 해가 나서, 이곳을 개운포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 때 동해 용왕이 크게 기뻐하여 바다에서 일곱 왕자를 거느리고 나타나 춤을 추었는데, 이 중 처용이 왕을 따라 서울(경주)로 가서 미모의 여자를 아내로 맞고 급간이란 벼슬을 얻어 정사를 도왔다고 한다. 이 때 처용은 바위 밑에서 나왔는데, 이를 처용암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렇듯 신비롭고 영험이 있는 바위로 여겨져 온 처용암은 흑색 화강암 바위와 그 사이를 비집고 자라난 관목 몇 그루로 이루어져 있는데, 문헌에 의하면, 임진왜란 때 의병장 등이 처용암에 모여 기풍제(祈風祭)을 지낸 효험으로 왜적선 13척을 침몰시킨 바 있다고 하였다.
 
1985년울산문화원과 전국시가비건립동호회가 공동주최하여 세죽마을 바닷가 처용암 입구에 〈처용가〉를 음각한 처용가비를 세웠으며, 울산광역시에서는 처용문화제를 열어 처용무를 비롯한 처용놀이 등의 행사를 하고 있다.
 
 
●처용암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처용암(處容岩)은 울산광역시 남구 황성동 외황강 하구에 떠있는 바위섬이다. 1997년 10월 9일 울산광역시 기념물 제4호로 지정되었다.
 
 
▶개요
 
처용암은 남구 황성동 세죽마을 해변에서 약 150m 떨어진 바위섬이다. 처용암의 유래 전설은 『삼국유사』에 실려 있다.
 
신라 헌강왕(憲康王 : 재위 875~886년)이 이곳에 놀이를 와서 쉬고 있을 때, 갑자기 구름과 안개가 가려 앞을 볼 수 없었다. 일관이 동해 용(龍)의 조화이니 좋은 일을 해주어 달래주어야 한다고 보고하였다. 왕이 즉시 이 근처에 용을 위한 절을 세우도록 명령하자 구름과 안개가 걷혔다고 한다. 그리하여 이곳을 개운포라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또한 당시에 세운 절은 현재 울주군 청량면 율리에 터가 남아 있는 망해사(望海寺)이다.
 
왕의 명령에 동해용이 크게 기뻐하여 바다에서 일곱 왕자를 거느리고 왕의 앞에 나타나 춤을 추고 음악을 연주하였다. 그 가운데 한 아들이 왕을 따라 서울로 와서 왕의 정사를 도왔는데, 그가 처용이다. 왕이 그에게 아름다운 여자를 아내로 삼게 하여 머물러 있도록 하고, 급간(級干)의 관등을 주었다. 아내가 대단히 아름다워 역신(疫神)이 흠모한 나머지 사람으로 변해 밤에 몰래 그 집에 가서 동침하였다. 이 때 밖에서 돌아온 처용은 두 사람이 누워 있는 것을 보고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었다.
 
 이에 역신은 본래의 모습을 나타내어 처용 앞에 꿇어 앉아 “내가 당신의 아내를 사모해 잘못을 저질렀으나 당신은 노여워하지 않으니 감동하여 아름답게 여긴다. 맹세코 이제부터는 당신의 모양을 그린 것만 보아도 그 문 안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하였다. 이 일로 인해 나라 사람들은 처용의 모습을 그린 부적을 문에 붙여 귀신을 물리치고 경사스러운 일을 맞아 들였다고 한다.
 
『삼국유사』에서는 처용을 용의 아들이라고 하였으나, 처용의 신분에 대해서는 울산 지방 호족의 아들, 혹은 아리비아 상인 등의 학설이 있다.
 
▶유래
 
처용암에는 신라 제49대 헌강왕(憲康王)과 처용의 만남에 관한 설화가 있다.
 
▶삼국유사의 기록
 
《삼국유사》의 〈처용랑(處容郞)과 망해사(望海寺)〉에서 다음과 같이 전한다.
 
第四十九憲康大王之代, 自京師至於海內, 比屋連墻無一草屋, 笙歌不絶道路, 風雨調於四時. 於是大王遊開雲浦. (在鶴城西南今蔚州.) 王將還駕, 晝歇於汀邊, 忽雲霧冥, 迷失道路. 怪問左右, 日官奏云, 此東海龍所變也, 宜行勝事以解之. 於是勅有司, 爲龍佛寺近境. 施令已出, 雲開霧散, 因名開雲浦. 東海龍喜, 乃率七子現於駕前, 讚德獻舞奏樂. 其一子隨駕入京, 輔佐王政, 名曰處容. 王以美女妻之. 欲留其意. 又賜級干職.
제49대 헌강대왕의 대에는, 서울에서 해내(海內)에 이르기까지, 가옥이 이어지고 담장이 연이어 있고 초가가 하나 없었으며, 길에는 노랫소리가 끊이지 아니하였으니, 풍우는 사철로 순조로웠다. 이 때에 대왕이 개운포(학성의 서남쪽에 있으며, 지금의 울주이다.)에서 노닐었다. 왕이 돌아가려고 낮에 물가에서 쉬고 있으니, 홀연히 구름과 안개로 어두워져 길을 잃었다. 괴이하여 좌우 신하들에게 물으니 일관(日官)이 아뢰기를, "이는 동해에 있는 용의 조화이니, 마땅히 승사(勝事)를 행하여 이를 풀어야 합니다."라 하였다. 이에 유사(有司)에게 명하여, 근처에 용을 위한 절을 짓게 하였다. 명이 내리자, 구름이 열리고 안개는 흩어졌으니, 개운포라는 이름은 이 때문이다. 동해용이 기뻐하여, 일곱 아들을 거느리고 왕의 가마 앞에 나타나, 덕을 찬양하고 춤추며 노래하였다. 그 중 한 아들이 서울로 들어가, 왕의 정치를 보좌하니, 이름을 처용이라 하였다. 왕이 미녀로 하여금 그를 처로 삼게 하고, 머물게 하기를 원하여, 급간(級干)의 직을 주었다.
 
▶삼국사기의 기록
 
《삼국사기》의 〈신라본기 제11권 헌강왕조〉에서는 다음과 같이 전한다.
 
三月, 巡幸國東州郡, 有不知所從來四人, 詣駕前歌歌{舞}. 形容可駭, 衣巾詭異, 時人謂之山海精靈.[古記謂王卽位元年事.]
3월에 왕이 나라의 동쪽 주군(州郡)을 순행할 새, 어디서 온 지 모르는 네 사람이 왕의 가마 앞에 나타나 가무를 하였다. 그 모습이 해괴하고 의관은 괴이하여, 당시 사람들이 그들을 일컬어 산해의 정령이라고 하였다. [오랜 기록에는 이것이 왕이 즉위한 해의 일이라고 전한다.]
그 외 자료의 기록
이 외에 《동국여지승람》의 〈경주부 고적 월명항〉과 〈울산군 고적〉, 《세종실록 지리지》의 〈울산군 처용암조〉, 《경상도 지리지》의 〈영이지적(靈異之跡)〉에 처용암의 유래에 대한 기록이 있다.[1]
 
▶교통
울산광역시 시내버스 266번이 20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처용암 입구 정류장에서 하차한다.
 
 
 
울산 처용암(處容岩)     
 
 - 울산 남구  황성동 668-1
 
 
울산 황성동 세죽나루터 앞바다 가운데에 놓여 있는처용랑(處容郞)과 개운포(開雲浦)의 설화와 관계가 있는 바위섬이다.
 
신라 49대 헌강왕(875 - 886재위)이 이곳 개운포에 놀이를 와서 쉬고 있을 때갑자기 운무(雲霧)가 가려 앞을 볼 수 없게 되었다.일관(日官)이 아뢰기를 바다용(海龍)의 조화이니 좋은 일을 해주어 풀어야 한다고 했다.
 
왕은 즉시 영을 내려 이 근처에 용(龍)을 위한 절을 세우도록 하였다. (현 울주군 청량면 망해사) 그러자 운무는 씻은 듯이 그치고 해가 나 이곳을 개운포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때 동해 용왕이 크게 기뻐하며 바다에서 일곱왕자를 거느리고 춤을 추었는데 이중 처용이 왕을 따라 서울(경주)로 가서 아름다운 여자를 아내로 맞고 급간(級干)이란 벼슬을 얻어 정사를 도왔다고 한다.
 
이때의 처용이 바위 밑에서 나왔다고해서 이를 처용암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세종실록지리지 울산군 처용암 조에도 ‘고을 남쪽 37리 개운포 가운데에 있다.
 
세상에 전하기를 신라때 동해 용왕의 아들이 거기서 나왔으며, 모양이 기괴하고 가무를 좋아하여 사람들이 처용옹이라 하였다.’고 기록돼 있다.처용암이 있는 세죽나루는 90년대 초까지는 한적한 어촌에 불과했는데. 공단이 들어서면서횟집이 들어서기도하였지만 오염때문인지 지금은 나루터 인근에 식당 한집이 있을 뿐이며
 
나루터에는 출조인들을 위한 배와 유람선인듯한 작은 배들이 떠 있으며, 처용가시비와 정자, 화장실 등이 세워져있다. 처용암 위에 빽빽하게 들어선 사철나무 등의 상록수와 이름모를 철새들, 갈매기 떼들이 개발의 무게에 짓눌려 애처러울 뿐이다
 
 
 
▶처용가 (處容歌)   
 
삼국유사》 기이편 “처용랑과 망해사조(處容郞望海寺條)”에 수록되어 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신라 49대 헌강왕 때 처용이란 인물이 지었다고 하며 역신이 그의 아내를 흠모하여 동침하고 같이 잠자리에 있는 것을 보고 돌아와서 시를 읊었다고 한다.
 
그러자 역신은 처용이 노하지 않은 것에 감동하여 그 앞에 나타나 꿇어앉았다고 한다.
그 후로 사람들은 처용의 형상을 문에 붙여서 역신을 쫓았다고 한다.
 
 
동경명기월랑(東京明期月良)서울 밝은 달밤에
야입이유행여가(夜入伊遊行如可):밤늦도록 놀고 지내다가
입랑사침의견혼(入良沙寢矣見昆):들어와 자리를 보니
각오이사시랑라(脚烏伊四是良羅):다리가 넷이로구나.
 
이혜은오하오질고(二兮隱吾下於叱古):둘은 내 것이지만
이혜은수지하이고(二兮隱誰支下焉古):둘은 누구의 것인고?
본의오하시여마오은(本矣吾下是如馬於隱);본디 내 것(아내)이다만
탈질랑을하여위리고(奪叱良乙何如爲理古):빼앗긴 것을 어찌하리.
 
 
●처용암 망해사 그리고 처용문화제 - 울산신문
     김현우 2020.10.06 16:59 0페이스북
 
 
[현장담론] 김현우 처용무보존회 처용탈제작가
 
예로부터 울산은 물산이 풍부하고 살기 좋은 처용의 고장이다. 울산에는 처용암이 있고 일연스님의 '삼국유사' 중 '처용설화'에 헌강왕이 동해 용왕을 위해 지어준 망해사가 있다. 
 
처용암은 울산광역시 기념물 제4호로 남구 황성동, 지금은 공해로 인해 마을이 철거되고 처용 공원으로 조성된 옛 세죽마을 자리 터에서 사람이 헤엄쳐서 갈 수 있는 위치에 소재하는 동해 용왕이 나타난 바위섬이다. 
 
일부 옛 기록에는 동해 용왕이 나타난 것이 아니라 '처용이 바위를 딛고 나왔다' 또는 '바위 아래서 나왔다'라고 기록이 남은 유서 깊은 섬이다. 
 
온통 바위와 돌로 이뤄진 섬에는 커다란 입석이 있다. 그 앞에는 흙으로 된 부분이 있는데 그곳은 천하의 명당으로 예전에 외지인이 아버지의 묘를 써서 인근 마을에 줄초상을 당하는 재앙이 일어나 수소문 끝에 묘를 쓴 사실을 알고 파묘를 하자 재앙이 멈췄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지금도 처용암은 영험한 곳으로 알려져 섬 안은 보호구역이라 들어가지 못하지만 처용가비가 있는 공원 인근은 기도의 장소로 쓰이고 있다.
 
망해사는 울주군 청량면 율리에 있다. 동해 용왕은 헌강왕을 칭송해 노래와 춤을 췄고 용왕의 일곱 아들 중에 처용을 서라벌로 보내 급간이라는 벼슬을 내려 백성들을 교화하고 국정을 돕도록 했다.  
 
헌강왕은 처용암에서 동해 용왕을 만난 이후 환궁해 영축산 동쪽의 좋은 땅에 절을 지어 망해사 또는 신방사라 했다. 그 뒤의 역사는 미상이며 조선 후기에 소실 됐다가 1962년 주지 영암(影菴)이 중창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옛날 절터에는 신라 때의 망해사지 석조부도 2기가 있고 석조부도가 있는 위편 공터에 주춧돌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그곳에 절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한 가지 더 보태면 신라 49대 헌강왕은 필자도 수염을 길게 기른 나이든 왕으로 생각했는데 11세의 소년 왕으로 등극해 11년을 통치하고 병으로 요절했고, 서라벌에서 활동했던 처용옹은 나이가 들어 동해로 돌아갈 때 망해사에 있던 작은 연못에서 용으로 화해 동해로 돌아갔다는 민간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축제는 그 고장을 대표하고 홍보할 수 있는 행사인데 해마다 개최되던 울산의 축제들은 코로나19로 인해 취소되거나 비대면으로 개최되는 등 안타까운 상황이다. 
 
그 중 처용문화제는 1967년 시작된 울산공업축제를 시작으로 1992년 시 승격 30주년을 기념해 '제27회 처용문화제'로 명칭을 변경한 후 올해로 54회째 이어져 오고 있다. 
 
그동안 처용문화제는 처용문화제추진위원회가 주관해 개최하다가 몇 해 전부터 울산문화재단이 주관해 행사를 치르고 있다. 올해는 구 태화호텔 앞 태화강 둔치 체육공원에서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병행해 개최 된다고 추진단은 밝히고 있다. 행사 규모도 지난해와 비교하면 코로나19로 인해 사회적 거리 두기의 일환으로 다소 축소된다고 한다.
 
올해 열리는 제54회 처용문화제는 해마다 10월 초순에 개최됐으나 코로나19가 잠잠해지기를 기다려서인지 10월 30일에 개막해 11월 3일까지 3일간 개최된다. 전국 문화예술단체를 대상으로 처용 콘텐츠 무대공연 작품을 공개모집하고 참가부문은 무용, 음악, 퍼포먼스, 음악극 등 장르에 특별히 제한을 두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예술인 공연 영상을 선보이고 울타리를 쳐서 처용마을 정원을 조성해 볼거리를 제공하고, 전국적으로 캐릭터 공모전을 실시해 공모전에서 당선된 작품을 마을기업 등에 의뢰해 캐릭터 응용 상품을 만든다고 한다.
 
해마다 열리던 다양한 일부 프로그램이 취소됐지만 처용문화제의 간판격인 올 들어 24년째 전시해온 필자의 처용탈전은 그대로 전시된다. 
 
강산이 두 번 바뀌는 세월 동안 한해도 거르지 않고 울산 시민들에게 선보이는 필자의 처용탈전은 보람된 일들도 있었지만 말 못 할 애환도 많았다. 
 
전시장을 찾는 사람들 중에는 주로 두 가지를 궁금해 하는데 처용이 아랍인이 아니냐고 질문하면 난감했다. 대부분 처용의 아랍상인설 논문을 읽어보지 않고 언론에 보도된 단편적인 것들을 그대로 믿어 처용은 아예 아랍인이라고 단정 짓는 것과, 또 하나는 역신이 처용의 처를 범하였으니 남자라고 생각하는데 역신은 천연두를 옮기는 여성으로 조왕신이나 삼신처럼 여자임을 설명해야 했다. 이 모든 것은 제대로 연구하지 않고 논문을 발표한 학자들의 잘못이라고 결론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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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처용암 - 대한민국 구석구석
 
 
 
 ●처용암 (處容岩) - 문화재청
 
 
 
 ●처용암(處容岩)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처용암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처용암 - 나무위키
 
 
 ●처용암(處容岩) - 무인도서
 
 
 
 
 ●처용설화의 발상지...#8 처용암과 개운포(동영상)
 
 
 
 ●언택트 힐링 🚁드론으로 보는 울산 처용암(동영상)
 
 
 
 ●처용암 - 울산의 바위섬, 그곳에 가다! - 울산광역시 대표 블로그 
 
 
 
 ●설화가 있는 작은 바위섬 처용암, 장생포 둘레길 한 바퀴 - - 울산광역시 남구 블로그 
 
 
 
 ●울산남구 문화유산과 관광명소 - 울산남구 블로그 공모전
 
 
 
 ●울산 처용설화 처용암과 개운포성지를 찾아서-블로그
 
 
 ●처용암에 대하여
 
 
 
 ●유산답사ㅡ망해사, 처용암
 
 
 
 ●처용암(處容岩)과 주변의 모습들 (울산) - Daum 블로그
 
 
 
 
 ●천년설화 처용랑과 관계가 깊은 울산 처용암
 
 
 
 
 ●처용암 망해사 그리고 처용문화제 - 울산신문
 
 
 
[ ●영상] 처용설화의 발상지...#8 처용암과 개운포 - 울산신문
 
 
 
 ●울산 망해사·처용암에서 뮤지컬 ‘신처용가’ 공연-파이낸셜뉴스
 
 
 
 ●울산 처용암ㆍ망해사 - 금강신문
 
 
 
 ●공장 연기만이 춤추는 처용암 - 한겨레
 
 
 
 ●'해오름시대 문화유산 탐방' 16. 울산 처용암·망해사 ... - 울산매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