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의 여행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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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역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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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12. 31.

요즘 전 세계가 코로나로 인해 수많은 인명이 고통 속에서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산 사람도 서로 만나는 것을 꺼려하고 통제된 삶을 살아가고 있어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역사적으로 조선시대에는 어땠을까요? 의료시설이 없던 당시에는 역병(전염병)

이 돌면 무조건 살던 집을 버리고 피난지에서 굶주림 속에 초근목피로 연명을 

해왔습니다.

속담에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하다”는 말이 있지요. 초근목피로 연명하다보니 

대변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 힘을 주면 항문이 찢어져서 피가 나게되는 상황을 

말하는 것입니다.

조선시대의 역병에 대처하는 고통에 대한 자료를 보내드림니다.

조선시대의 疫病(역병)

o朝鮮 後期에는 그 이전 어느 시대에도 볼 수 없었을 만큼 疫病(전염병)
  이 크게 유행하였다.
  17世紀 중반~19世紀 중반에 걸친 疫病 유행은 國家 人口를 현저히 감소시킬
  정도였다. 1660年(17代 현종)에서 1864年(25代 철종)사이의 약 200年間 疫病 이
  79차례나 있었고, 그 중 10萬名이상 죽은 경우만도 6차례나 등장한다.
  어떤 해에는 50萬名 以上이 疫病으로 死亡하기까지 하였다.
 
o1807年(순조 7년)의 경우 증보문헌비고에 나온 당시 人口는 756萬名
  이었는데, 그보다 18年 後인 1835年에는 661萬名으로 100萬名 정도가
  줄었다. 人口減少는 주로 疫病과 饑饉(기근) 때문에 발생한 것이었다.
 
o朝鮮 後期 主된 疫病으로는 콜레라, 두창, 성홍열, 장티푸스, 이질, 홍역
  등이 있었는데, 이 가운데 가장 被害가 컸던 것은 콜레라와 痘瘡(두창:
  천연두)이었다.
 
o疫病으로 因한 被害狀況(피해상황)
  疫病 流行으로 인한 두려움, 생활기반인 마을을 떠나야 하는 苦生, 피난지에
  서의 고통스러운 生活, 몸을 비트는 경련, 고통스러운 吐瀉(토사)와 살을 에는
  寒氣(한기), 家族을 잃는 슬픔 등 그 끔직함을 겪어야 했다.
 
o朝鮮 後期 社會에서 疫病이 크게 돌게 된 까닭은
 ․당시 痘瘡(두창: 천연두)이나 콜레라 등은 모두 中國으로부터 들어왔다.
 ․人口의 密集(밀집) 등은 傳染病이 流行하기에 좋은 條件을 조성하였다.
 ․목욕을 자주 하지 않았으며, 우물 가까운 곳에 뒷간(화장실)이 위치한 경우
   등 衛生狀態(위생상태)不良이었다.
 
o傳染病을 피할수 있는 가장 좋은 方法은“逃亡(도망)”이 상책이었다.
  하지만 逃亡生活은 바로 굶주림이었다. 서로 다투어 소나무껍질을 벗겨 먹고
  굶주림 끝에 자식을 죽여 먹기도 했고,“남편이 굶어 죽어감에도 자신의 죽그
  릇을 그러잡고 죽을 퍼먹던 女人의 모습”도 기록에 보인다.

<출처> 과천시 노인복지관 박점수 강사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