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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慈藏律師)가 창건한 태백산 정암사(淨巖寺) 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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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1. 24.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慈藏律師)가 창건한 태백산 정암사(淨巖寺) 탐방

(2022/01/13 현재)


경북 봉화에서 오지길을 따라 태백거쳐 동해까지 1박2일코스 여행지중
두번째날로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 소재 강원랜드 와 하이원리조트 스키장을
둘러본다음 탐방한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慈藏律師)가 창건한
태백산 정암사(淨巖寺) 주변 전경 입니다.

정암사(淨巖寺)는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 태백산(太白山)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승려 자장율사가 창건한 사찰.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月精寺)의
말사이다. 우리 나라 5대 적멸보궁(寂滅寶宮)의 하나로서 갈래사(葛來寺)라고도 한다.
신라의 대국통(大國統) 자장율사(慈藏律師)가 창건한 사찰이다.

사적기(事蹟記)에 의하면 자장율사는 말년에 강릉 수다사(水多寺)에 머물렀는데,
하루는 꿈에 이승(異僧)이 나타나 “내일 대송정(大松汀)에서 보리라.”라고 하였다.
아침에 대송정에 가니 문수보살(文殊菩薩)이 내현하여 “태백산 갈반지(葛磻地)
에서 만나자.” 하고 사라졌다.

자장율사는 태백산으로 들어가 갈반지를 찾다가, 어느 날 큰 구렁이가 똬리를
틀고 있는 것을 보고 제자에게 ‘이곳이 갈반지’라 이르고 석남원(石南院)을 지었는데,
이 절이 정암사이다. 자장율사가 643년(선덕여왕 12) 당나라에서 돌아올 때 서해
용왕이 자장율사의 신심에 감화되어 마노석(瑪瑙石)을 배에 싣고 동해 울진포를 지나
신력으로 갈래산에 비장해 두었다가, 자장율사가 이 절을 창건할 때 이 돌로써
탑을 건조하게 했다고 하여 마노탑이라 하였다 한다.

또한, 물길을 따라 이 돌이 반입되었다고 해서 수 자를 앞에 붙여 수마노탑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이 탑을 세운 목적은 전란이 없고 날씨가 고르며, 나라가 복되고
백성이 편안하게 살기를 염원하는 데 있다고 한다. 또 이 절에는 금탑과 은탑의
전설이 있다. 정암사의 북쪽으로 금대봉이 있고 남쪽으로 은대봉이 있는데,
그 가운데 금탑·은탑·마노탑의 3보탑이 있다고 한다.

마노탑은 사람이 세웠으므로 세인들이 볼 수 있으나, 금탑과 은탑은 자장율사가
후세 중생들의 탐심(貪心)을 우려하여 불심이 없는 중생들이 육안으로 볼 수
없도록 비장(秘藏)하여 버렸다고 전해진다. 자장율사는 그의 어머니에게 금탑과
은탑을 구경시키기 위하여 동구에 연못을 파서 보게 했는데, 지금의 못골이
그 유지이며 지상에는 삼지암(三池庵)이 있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그 밖에도 적멸보궁 입구의 석단에는 선장단(禪杖壇)이라는 고목이 있다.
이 나무는 자장율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심은 뒤 수백 년 동안 자랐으나
지금은 고목으로 남아 있다. 신기한 점은 고목이 옛날 그대로 손상된 곳이 없다는
것인데, 다시 이 나무에 잎이 피면 자장율사가 재생한다고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정암사(淨巖寺)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 태백산(太白山)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승려 자장율사가 창건한 사찰.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月精寺)의 말사이다. 우리 나라 5대 적멸보궁(寂滅寶宮)의 하나로서 갈래사(葛來寺)라고도 한다. 신라의 대국통(大國統) 자장율사(慈藏律師)가 창건한 사찰이다.
 
사적기(事蹟記)에 의하면 자장율사는 말년에 강릉 수다사(水多寺)에 머물렀는데, 하루는 꿈에 이승(異僧)이 나타나 “내일 대송정(大松汀)에서 보리라.”라고 하였다. 아침에 대송정에 가니 문수보살(文殊菩薩)이 내현하여 “태백산 갈반지(葛磻地)에서 만나자.” 하고 사라졌다.
 
자장율사는 태백산으로 들어가 갈반지를 찾다가, 어느 날 큰 구렁이가 똬리를 틀고 있는 것을 보고 제자에게 ‘이곳이 갈반지’라 이르고 석남원(石南院)을 지었는데, 이 절이 정암사이다.
 
이 절에는 자장율사와 문수보살 사이에 있었던 유명한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자장이 이곳에서 문수보살이 오기를 기다리던 어느 날, 떨어진 방포(方袍)를 걸친 늙은 거사가 칡 삼태기에 죽은 강아지를 담아 와서 자장을 만나러 왔다고 하였다.
 
시자(侍者)가 스승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것을 나무라자 거사는 스승에게 아뢰기만 하라고 말하였다. 시자가 자장에게 이 사실을 알렸으나 미처 깨닫지 못하고 미친 사람으로 생각하여 만나지 않겠다고 하였다.
 
거사는 “아상(我相)을 가진 자가 어찌 나를 알아보겠는가.” 하고 삼태기를 쏟자 죽은 강아지가 사자보좌(獅子寶座)로 바뀌었으며, 그 보좌에 올라 앉아 빛을 발하면서 가 버렸다.
 
이 말을 들은 자장이 황급히 쫓아가 고개에 올랐으나 벌써 멀리 사라져 도저히 따를 수 없었다. 자장은 그 자리에 쓰러진 채 죽었는데, 뼈를 석혈(石穴)에 안치했다고 전한다.
 
또, 창건에 관한 일설에는 자장이 처음 사북리 불소(佛沼) 위의 산정에다 불사리탑(佛舍利塔)을 세우려 하였으나, 세울 때마다 붕괴되므로 간절히 기도했다.
 
그랬더니 하룻밤 사이에 칡 세 줄기가 설상(雪上)으로 뻗어 지금의 수마노탑(水瑪瑙塔)·적멸보궁·사찰터에 멈추었으므로 그 자리에 탑과 법당과 본당(本堂)을 세우고, 이 절을 갈래사라 하고 지명을 갈래라고 했다고 전한다.
 
이 절은 창건에 얽힌 전설 외의 역사는 거의 전하지 않는다. 절 입구에는 일주문(一柱門)이 세워져 있고, 일주문을 들어서면 왼편에는 근년에 완공된 선불장(選佛場)이 있다.
 
오른쪽에는 고색(古色)의 적멸보궁이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32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수마노탑을 등에 지고 있다. 중간 도량가에 종루가 있고, 선불장 옆에는 무량수전(無量壽殿)과 자장각(慈藏閣)·삼성각(三聖閣)이 있다.
 
이 중 적멸보궁은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석가모니불의 사리를 수마노탑에 봉안하고 이를 지키기 위하여 건립한 것으로, 수마노탑에 불사리가 봉안되어 있기 때문에 법당에는 불상을 모시지 않고 있다.
 
이 보궁 안에는 선덕여왕이 자장율사에게 하사했다는 금란가사(錦襴袈裟)가 보관되어 있었다고 한다. 적멸보궁 뒤쪽의 수마노탑은 국보 제332호로 지정되어 있다.
 
자장율사가 643년(선덕여왕 12) 당나라에서 돌아올 때 서해 용왕이 자장율사의 신심에 감화되어 마노석(瑪瑙石)을 배에 싣고 동해 울진포를 지나 신력으로 갈래산에 비장해 두었다가, 자장율사가 이 절을 창건할 때 이 돌로써 탑을 건조하게 했다고 하여 마노탑이라 하였다 한다.
 
또한, 물길을 따라 이 돌이 반입되었다고 해서 수 자를 앞에 붙여 수마노탑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이 탑을 세운 목적은 전란이 없고 날씨가 고르며, 나라가 복되고 백성이 편안하게 살기를 염원하는 데 있다고 한다.
 
또 이 절에는 금탑과 은탑의 전설이 있다. 정암사의 북쪽으로 금대봉이 있고 남쪽으로 은대봉이 있는데, 그 가운데 금탑·은탑·마노탑의 3보탑이 있다고 한다.
 
마노탑은 사람이 세웠으므로 세인들이 볼 수 있으나, 금탑과 은탑은 자장율사가 후세 중생들의 탐심(貪心)을 우려하여 불심이 없는 중생들이 육안으로 볼 수 없도록 비장(秘藏)하여 버렸다고 전해진다.
 
자장율사는 그의 어머니에게 금탑과 은탑을 구경시키기 위하여 동구에 연못을 파서 보게 했는데, 지금의 못골이 그 유지이며 지상에는 삼지암(三池庵)이 있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그 밖에도 적멸보궁 입구의 석단에는 선장단(禪杖壇)이라는 고목이 있다. 이 나무는 자장율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심은 뒤 수백 년 동안 자랐으나 지금은 고목으로 남아 있다.
 
신기한 점은 고목이 옛날 그대로 손상된 곳이 없다는 것인데, 다시 이 나무에 잎이 피면 자장율사가 재생한다고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정선 정암사 수마노탑(旌善 淨岩寺 水瑪瑙塔) - 다음백과
 
 
-문화재 지정 국보(2020.06.25 지정)
 
[요약]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 고한리에 있는 고려시대 7층모전석탑. 정암사 뒤편 천의봉 중턱에 축대를 쌓아 마련한 대지 위에 서 있다. 화강암제로 된 6단의 기단 위에는 모전석재로 2단을 쌓아 7층의 탑신과 상륜부를 받치고 있다. 옥개석은 비교적 넓은 편으로 추녀 밑에 약간 반전이 있으며, 층급받침은 1~7층 1단씩 줄어 1층은 7단이고, 7층은 1단으로 되어 있다. 1972년 해체·수리할 때 5개의 탑지석과 기단부의 적심부에서 청동합·은제외합·금제외합 등의 사리장엄구가 발견되어 1770, 1778, 1874년 등 여러 차례에 걸쳐 보수되었음을 알려주었다.
 
국보(2020.06.25 지정). 높이 900cm. 정암사 뒤편 천의봉 중턱에 축대를 쌓아 마련한 대지 위에 서 있다. 이 절은 636년(신라 선덕왕 5) 자장법사(慈藏法師)가 당나라에서 석가세존의 신보를 얻어 귀국한 뒤 세운 절로 이 탑에 세존의 사리를 봉안했다고 하여 현재 법당에 불상이 없다.
 
화강암제로 된 6단의 기단 위에 모전석재로 2단을 쌓아 7층의 탑신과 상륜부를 받치고 있다. 모전석재는 회록색의 수성암질 석회암인데, 길이 30~40cm, 두께 5~7cm로 정교하게 가공하여 전(塼)처럼 보인다. 1층은 폭 178cm, 높이 103cm로 크며 남면 중앙에 감형의 방광을 만들고 가운데 1매의 판석을 끼웠는데 중심에 철제 문고리를 달아 문비임을 나타내고 있다. 옥신석은 전체적으로 체감비율이 낮아 높고 불안정해 보인다.
 
옥개석은 비교적 넓은 편으로 추녀 밑에 약간 반전이 있으며, 층급받침은 1~7층 1단씩 줄어 1층은 7단이고, 7층은 1단으로 되어 있다. 낙수면의 층단도 각 층마다 1단씩 줄어 1층은 9단이고, 7층은 3단으로 되어 있다. 추녀 끝에는 풍령이 달려 있다. 상륜부는 화강암 석재로 된 노반 위에 청동제 상륜이 거의 완전하게 남아 있는데, 꽃 모양으로 투각된 오륜 위에 복발·보륜·병형이 있고, 병형의 목에서 4개의 철쇄가 나와 4층 옥개까지 늘어져 있다. 맨 위에는 4각으로 돌출된 수연형이 있다.
 
1972년 해체·수리할 때 5개의 탑지석과 기단부의 적심부에서 청동합·은제외합·금제외합 등의 사리장엄구가 발견되어 1770(영조 46), 1778(정조 2), 1874년(고종 11) 등 여러 차례에 걸쳐 보수되었음을 알려주었다.
 
 
●여기가 그곳-태백산 정암사 - 법보신문
 
 
기자명 이창윤 사설 입력 2004.08.10 16:00  댓글 0
 
-적멸보궁으로 유명한 자장스님 열반처
`-일백 번 굽이쳐 흐르는 냇물이요, 천층으로 층계가 된 절벽'이라고 옛 사람이 노래했던가.
 
강원도땅 정선은 외지 사람들이 마음처럼 쉽게 다가설 수 없는 곳이다.백두대간의 한 가운데에 위치한 정선땅은 `어지러운 봉우리들이 높고 깎아지른 듯하여 겹으로 된 성과 같다 '는 말처럼 태백산, 중봉산, 문래산, 가리왕산 등 1천 미터가 넘는 산으로 겹겹이 둘러싸여 있다.
 
사북·고한 탄광촌으로도 유명한 이곳 정선땅 태백산 기슭에는 사부대중의 수행도량이자 적멸보궁인 정암사가 자리하고 있다. 정암사는 자장 스님이 만년에 머물면서 수행한 곳이자 열반처이다. 스님은 삼국불교 중 가장 늦게 출발한 신라불교를 사상적으로나 국가적·대중적으로 가장 화려한 꽃을 피울 수 있도록 기틀을 마련한 분이다.
 
스님의 속성은 김씨이고 이름은 선종랑(善宗郞)이다. 스님의 아버지인 무림(茂林)은 늦게까지 아들이 없자 관음상을 조성해 사월 초파일날 스님을 낳았다. 스님의 속명이 선종랑이었던 것도 그 때문이라고 한다. 부모를 여읜후 홀로 깊은 산에 들어가 백골관(白骨觀)을 닦으며 정진했다. 《삼국유사》〈자장정률(慈藏定律)〉조에 따르면 스님은 재상자리를 주고자 세상으로 나오라는 왕명에도 `하루 동안 계율을 지키다 죽더라도 백년 동안 계율을 어기고 살기를 원치 않는다'며 듣지 않았을 정도로 용맹정진했다고 한다.
 
이후 스님은 선덕여왕 5년(636) 중국에 유학해 중국 오대산에서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부처님의 친착 금란가사와 진신사리를 전해받아 귀국한다. 분황사와 황룡사에 머물면서 《대승론》을 강의하고 보살계본을 설하는 등 대중 교화에 힘쓰던 스님은 선덕여왕의 명으로 대국통(大國統)이 된 후 교단의 기틀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한다.
 
모든 스님들에게 매년 봄과 겨울 두 차례 시험을 치렀고 한달에 두 번씩 계를 설했다. 또 순사(巡使)를 보내 지방의 사찰을 일일이 살피고 승려들의 과실을 징계하도록 했으며, 불경과 불상을 정비했다. 그 결과 열 집 중 여덟아홉 집에서 계를 받았으며, 출가하려는 사람이 해마다 달마다 불어났다고한다.
 
스님은 또, 황룡사에 9층 목탑을 세우도록 건의해 불교사상 통한 나라의안정과 번영을 꾀했고, 당의 연호나 복식을 도입하는 등 국가체제를 정비하도록 하기도 했다.
스님의 이런 노력으로 신라불교는 국가사상의 주축으로서 자리매김할 수있었고, 사상적으로나 대중적으로 신라사회에 깊이 뿌리내릴 수 있었다.
 
정암사의 창건에 대해서는 《삼국유사》 〈자장정률(慈藏定律)〉조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전한다. 자장 스님이 만년에 경주를 떠나 강릉부에 수다사를 세우고 살 때였다. 어느날 꿈에 이승(異僧)이 나타나 “내일 그대를 대송정(大松汀)에서 보겠소”라고 말했다. 스님이 놀라 다음날 일찍 대송정에 이르니 문수보살이 현신했다. 스님이 불법의 요체를 물으니 문수보살은 “태백산 갈반지(葛蟠地)에서 다시 만나세 ”라며 자취를 감추었다. 이에 스님이 태백산에 이르러 큰구렁이가 나무 밑에 서리고 있는 것을 보고 이곳에 석남원(石南院, 지금의정암사)을 세우고 문수보살이 다시 오기를 기다렸다.
 
예컨대 문수보살을 다시 만나기 위해 보살이 일러준 갈반지에 정암사를창건했다는 것이다. 이미 밝혔듯이 정암사는 양산 통도사, 오대산 상원사, 영월 법흥사, 설악산 봉정암과 함께 우리나라 오대 적멸보궁의 하나다. 스님이 이곳에 언제수마노탑을 세워 진신사리를 봉안했는지 알 수 없지만 정암사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스님이 진신사리를 모실 탑을 세우려고 할 때마다 번번히 탑이 무너졌다. 이에 스님이 간절히 기도했더니 하룻밤 사이에 칡 세 줄기가 눈 위로 뻗어나 수마노탑과 적멸보궁, 사찰 자리에 멈추었다고 한다. 그곳에 탑을 세우고절을 `갈래사(葛來寺)'라 이름하고 지명 또한 `갈래'라고 했다고 한다. 지금도 정암사 인근에는 상갈래, 중갈래 등의 지명이 남아 있다.
 
《정암사사적》에 따르면 이 수마노탑은 서해 용왕이 자장 스님이 불탑을 세울 때 사용하도록 옮겨둔 마노석으로 건립됐다. 스님은 수마노탑을 세울때 금탑과 은탑을 함께 세웠는데, 사람들의 탐심을 우려하여 불심이 없는 중생들은 육안으로 볼 수 없도록 비장(秘藏)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은 돌로 쌓은 수마노탑만 볼 수 있다고 한다.
 
립 이후의 수마노탑에 대해서는 18세기까지 남아있지 않다. 1713년 천밀(天密) 스님이 중수했으나 이듬해 벼락으로 다시 무너져 1719년 보수했다. 1770년부터 3년간 취암 스님이 다시 중수했다. 이때 중수된 탑은 `본탑의 높이가 칠층, 놋쇠 상륜부가 오층, 풍경이 서른둘이었다'고 한다.
 
수마노 탑은 이후 1874년 벽암(蘗庵)·남호(南湖) 스님에 의해 다시 중수되고, 1972년에 문화재관리국에 의해 전면 해체복원됐다. 이때 탑의 각 부에서 다섯 매의 탑지와 사리 장치가 발견되었는데, 이들 유물은 탑안에 재봉안됐다.
 
정암사 경내에 있는 적멸궁은 이 수마노탑을 보호하고 관리하기 위해 세워진 전각으로 '75년 11월까지 선덕여왕이 하사한 자장 스님의 친착 금란가사가 보관돼 있었다.
 
이미 언급한대로 스님은 정암사에서 문수보살을 기다리며 말년을 보냈다.〈자장정률〉조에는 스님을 찾아온 문수보살과 스님의 최후에 관한 일이 기록돼 있다.
어느날 죽은 강아지를 담은 삼태기를 맨 늙은이로 변신한 문수보살이 찾아왔다. 그러나 스님은 문수보살을 미친 사람으로만 생각하고 만나지 않았다. 문수보살은 “아상을 가진 자가 어찌 나를 알아보겠는가”라며 사라졌는데, 이 말을 들은 스님이 황급히 쫓아 고개에 올랐으나 이미 사라진 뒤였다. 스님은 그 자리에서 쓰러져 입적했는데 스님의 법구를 화장해 굴 속에 안치했다고 전한다.
 
《정암사 사적》에는 이 사실에 덧붙여 스님이 유골을 암혈(巖穴)에 갈무리하여 훗날 찾아와 만져보는 이들이 함께 정토에 왕생케 하라고 유언했다는 사실과 스님의 유골을 조전(祖殿) 남쪽 바위에 안치했는데 때때로 빛을 발한다는 사실이 기록돼 있다. 스님의 유골이 안치돼 있던 조전 남쪽 바위는 정암사 뒤쪽의 산봉우리인`뽀족봉'에 있다. 이곳 정상부근에 석실이 있는데 이곳이 스님의 유골을 안치한 곳이라고 전한다. 이곳에는 40년 전까지만 해도 수마노탑에 쓰인 석재와 석질이 같은 가로 세로 50센티미터 가량의 석함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사실은 정암사 인근의 나이든 주민들은 대부분 알고 있다. 고한읍에 사는 방순애(62)씨는 동네 사람들이 이 석실을 `자장법사' 또는 `자장바위' 등으로 불렀고 자신이 50여 년전에 가봤을 때 석실 안에 백자 그릇과 향로 등이 있었다고 말했다. 또한 정암사 인근 사람들은 “50년 전까지만 해도 스님들이 정기적으로 석실에서 다례법회를 했다 ”거나 “10년 전만해도 그곳에 청자편이 많이 있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이 정암사 신도인 만법화 보살에 따르면 이 석함에는 뼛가루가 있었는데, 이것을 먹으면 시험에 합격하고 재수가 좋다는 소문이 퍼져 마을 사람들이 다 가져갔다고 한다. 정암사는 이처럼 자장 스님의 발자취가 서려 있는 곳이다. 비록 자장 스님의 유골을 모신 석함도 사라지고 그 발자취마저 가물해졌지만 스님이 꽂은 지팡이가 자랐다는 고목(지금은 죽었다)만은 스님이 다시 와 새로 잎을 피워낼 그 때를 묵묵히 기다리고 있다.
 
이창윤 기자
 
 
 
●정암사-나무위키
 
 
 
1. 개요
 
淨巖寺. 정암사는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 함백산에 있는 절이다. 함백산은 태백산의 북쪽 자락에 위치하여 정선군과 태백시의 경계를 이룬다.
 
정암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의 말사이며, 한반도의 5대 적멸보궁 가운데 하나가 자리하고 있기도 하다.[1]
 
2. 역사
 
신라의 고승 자장(慈藏)율사가 636년(선덕여왕 5년)에 당(唐)나라에 들어가 산시성 운제사에서 21일 동안 치성을 올려 문수보살을 친견하여 석가모니의 신령스런 보물인 진신사리, 가사, 염주 등을 얻어 귀국한 후 전국 각지 5곳에 나누어 모셨다고 하는데, 그중에 정암사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창건설화 외에는 정암사에 대해 전해지는 자료는 딱히 없다.[2] 정암사의 상징인 국보 수마노탑이 고려시대의 모전석탑이므로 늦어도 신라 후기~고려시대에는 완전히 사찰의 원형을 갖추었을 것이다.
 
3. 가람 및 중요 문화재
 
정암사는 일반적인 산사와는 달리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셨다고 예부터 전하는 곳이니만큼 일반적인 가람배치와는 약간 다르다. 대웅전이 중심이 되는 다른 절과는 달리 적멸보궁이 중심이다. 하지만 적멸보궁이 절의 정중앙에 있는 것은 아니다. 일주문을 통해 절로 들어가면 관음전, 육화정사, 요사채, 범종루, 삼성각, 자장각 등의 건물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데 이를 지나 작은 개울 하나를 건넌 곳에 푸른 기와 지붕을 올린 적멸보궁이 있다. 적멸보궁 뒷편의 작은 산길을 따라 올라가면 산중턱에 수마노탑이 있는데, 평지가 아니라 산비탈 절벽 위 돌로 쌓은 축대 위에 있다.
 
경내의 중요 문화재로는 국보로 지정된 수마노탑 외에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32호로 지정된 적멸보궁이 있다. 또한 절 옆의 작은 개울은 열목어의 서식지인데, 여기는 한반도 내에서 열목어가 자연 서식하는 남한지(남방한계지역) 중 한 곳으로서 천연기념물 제73호 정선 정암사 열목어 서식지로 지정되었다.
 
 
3.1. 정선 정암사 수마노탑
 
3.1.1. 국보 제332호
 
 
▶문화재청 홈페이지 : 정선 정암사 수마노탑 (旌善 淨岩寺 水瑪瑙塔)
 
 
「정선 정암사 수마노탑」이 있는 정암사는 「삼국유사」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신라 자장율사(慈藏律師)가 당나라 오대산에서 문수보살로부터 석가모니의 몸에서 나온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받아 귀국한 후, 643년(선덕여왕 12년)에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는 사찰임. 정암사에는 수마노탑을 바라보는 자리에 적멸보궁이 자리 잡고 있으며, 이는 통도사, 오대산 중대, 법흥사, 봉정암의 적멸보궁과 더불어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으로서의 위상을 가지고 있음.
 
수마노탑이라는 명칭은 불교에서 금·은과 함께 7보석 중의 하나인 마노(瑪瑙)와 관련이 있으며, 자장율사가 진신사리를 가지고 귀국할 때 서해 용왕이 자장의 도력에 감화하여 준 마노석으로 탑을 쌓았고, 물길을 따라 가져왔다 해서 물 ‘水’ 자를 앞에 붙여 ‘수마노탑(水瑪瑙塔)’이라 불렀다는 설화가 전함.
 
수마노탑은 총 길이가 9m에 달하며, 화강암 기단 위에 세워진 1층 탑신에 감실(龕室)을 상징하는 문비가 있고, 그 위로 정교하게 다듬은 모전(模塼)석재를 포개어 쌓았고 옥개석 위 낙수면과 아래 층급받침의 단 수를 층별로 일정하게 더해 쌓았음. 이처럼 수마노탑은 국보 제30호인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 등 신라시대 이래 모전석탑에서 시작된 조형적인 안정감과 입체감 그리고 균형미를 잘 보여주고 있어 늦어도 고려 시대 이전에 축조된 것을 알 수 있음.
 
1972년 수마노탑 해체 당시에 함께 나온 탑지석(탑의 건립 이유, 수리 기록 등을 적은 돌로 탑 안에 넣어 둠)은 조성역사, 조탑기술 등을 연구하는 데 매우 귀중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으며, 경주 불국사 삼층석탑(석가탑, 국보 제21호)·다보탑(국보 제20호)을 포함해 탑의 이름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는 희소한 탑임.
 
우리나라는 2,000여기에 가까운 석탑이 건립되었으나 탑의 중수과정을 알 수 있는 사례는 불국사 삼층석탑(국보 제21호)과 포항 법광사지 삼층석탑 등 그 예가 매우 희귀함. 수마노탑은 1972년 보수과정에서 출토된 5매의 탑지석과 적멸보궁 옆에 중수비 1기가 전하고 있어 모전석탑의 특성상 여러 차례 중수가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으며, 보수시기와 범위, 공사기간, 참여인원 및 참여사찰 등에 대한 세부적인 기록이 남겨져 있는데, 이러한 자료가 전하는 사례는 수마노탑이 유일함.
 
정암사와 수마노탑은 현존 적멸보궁 가운데 설악산 봉정암과 함께 석탑을 이용해 보궁을 형성한 사례로 주목됨. 특히, 석재를 벽돌 형태로 가공해 축조한 모전석탑 형식과 정암사 가람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장소에 건립한 것은 고려시대 유행한 비보사탑 개념 속에서 건립이 이루어졌음을 보여줌으로써, 시대 변화에 따라 다양한 목적으로 수마노탑이 인식되었음을 알 수 있어, 한국 석탑 발전사에 있어 주목되는 석탑임.
 
수마노탑은 기단에서 상륜부까지 완전한 모습을 갖추고 있는 모전석탑으로, 석회암 지대라는 지역 특성을 반영하여 고회암(苦灰巖)으로 제작되었고, 쇠퇴한 산천의 기운을 북돋운다는 ‘산천비보(山川裨補) 사상’과 사리신앙을 배경으로 높은 암벽 위에 조성된 특수한 석탑임. 특히, 탑지석을 비롯한 자료에서 수리기록과 연혁을 알 수 있고, 모전석탑으로 조성된 진신사리 봉안탑으로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다는 점에서 국가지정문화재(국보)로 역사·예술·학술 가치가 충분함.
 
 
▶문화재청 홈페이지 : 정선 정암사 수마노탑 (旌善 淨岩寺 水瑪瑙塔)(보물 제410호일 때의 과거 설명)
 
정암사 적멸보궁 뒤의 산비탈에 세워진 7층의 모전석탑이다. 모전석탑이란 전탑을 모방한 탑으로, 돌을 벽돌 모양으로 깎아 쌓아올린 탑을 말한다.
 
화강암으로 6단의 기단(基壇)을 쌓고 탑신부를 받치기 위해 2단의 받침을 두었다. 탑신(塔身)은 회녹색을 띤 석회암으로 쌓았는데, 표면을 정교하게 잘 정돈하여 벽돌을 사용한 것처럼 보인다. 1층 몸돌의 남쪽면에는 감실(龕室:불상을 모시는 방)을 마련했으며, 1장의 돌을 세워 문을 만들고 그 가운데에는 철로 만든 문고리를 달았다. 지붕돌은 추녀 너비가 짧고 추녀끝에서 살짝 들려있으며, 풍경이 달려 있다. 지붕돌 밑면의 받침수는 1층이 7단이고, 1단씩 줄어들어 7층은 1단이며, 지붕돌 윗면도 1층이 9단, 1단씩 줄어들어 7층은 3단으로 되어있다. 꼭대기의 머리장식으로는 청동으로 만든 장식을 올렸다.
 
돌벽돌의 일반적인 크기로 보아 그리 거대한 편은 아니지만 형태가 세련되고 수법 또한 정교한 탑이다. 탑 앞에 돌이 하나 있는데, 여기에 새겨진 연꽃무늬, 안상(眼象) 등은 모두 고려시대의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이 석탑은 파손이 심해서 1972년 해체·복원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탑을 세운 이유를 담은 탑지석(塔誌石) 5개와 금·은·동으로 만들어진 사리구가 발견되어 조선 후기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 보수되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의 모습이 언제부터 전해진 것인지에 관해서는 여러 설이 있어서 확실하지 않지만, 정암사에 있는 여러 유물과 비교해 볼 때 고려시대에 처음 만들어졌을 것으로 짐작해 볼 수 있다.
 
<비고>
[1] 정암사 적멸보궁 외의 나머지 적멸보궁은 통도사, 상원사, 인제 봉정암, 영월 법흥사에 있다.
[2]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정암사
 
 
●자장(신라) - 나무위키
 
 
 
-慈藏 (590~658)
 
1. 소개[편집]
 
신라 시대의 승려. 신라십성(新羅十聖)에 속하는 인물이다. 보통 법명에 경칭인 율사(律師)[1]를 더한 자장율사(慈藏律師)로 칭하는 경우가 많다.
 
원효ㆍ의상ㆍ도선과 더불어 대한민국 각지 오래된 사찰의 창건자로 자주 이름이 오르내리는 승려이다. 통도사처럼 신라 시대 유물이나 확실한 1차 사료가 남아 정말로 자장이 창건했다고 말할 수 있는 곳도 있지만, 대부분은 사찰의 역사나 정통성, 권위를 끌어올리기 위한 허구이다. 자장이 참으로 하나하나 창건했다기엔 전국에 그렇게 주장하는 절의 숫자가 너무 많다.
 
2. 생애[편집]
 
골품제상 진골 출신으로 김무림(金茂林)[2]의 아들이며 속세의 본명은 김선종랑(金善宗郞)이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자장의 부모님은 오랫동안 자식이 없어 고민이었는데 어느날 김무림이 관세음보살 앞에서 자식이 생기기를 빌며 만약 "아들을 낳는다면 출가시켜 불교에 귀의하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발원하자 그날 자장의 어머니가 품속으로 별이 날아드는 꿈을 꾸고 그를 잉태했다고 한다.
 
부모를 일찍 여의자 자장은 전 재산을 희사하여 원녕사(元寧寺)를 세운 뒤 출가했다. 선덕여왕은 깊은 산에서 수행 중이던 자장에게 태보(台輔) 관직에 오를 것을 종용하고 이를 듣지 않고 출가하면 목을 베겠다고까지 위협[3]했지만 자장의 의지가 확고해 선덕여왕도 어쩔 수 없이 출가를 허락했다고 기술했다.[4] [5]
 
선덕여왕 5년(636)에 왕명으로 제자 승실 등 10여 명과 함께 당나라로 가서 섬서성 종남산에 있는 운제사에서 3년 동안 수도했다. 이후 오대산(五臺山)에서 문수보살의 현신을 만나 "너희 나라에 외적의 침입이 많은 이유는 여자가 왕이라서 그렇다. 고국에 돌아가서 절을 창건하면 부처님이 국가를 지켜줄 것이다."라는 말을 들었으며 석가모니의 정골사리와 가사 등을 받고 이후 화엄종의 두순(杜順)과 계율종(戒律宗)의 도선(道宣)에게 배웠지만 선덕여왕이 귀국을 요청하여 선덕여왕 12년(643)에 장경 1부와 불구를 가지고 돌아왔다.
 
귀국 후 신라 최고 승직인 대국통(大國統)에 임명되었고 대대적인 불교 정비에 나서 불교를 확고한 통치 이념으로서 국력의 신장과 국론 통일을 꾀했고 불교의 토착화에 공헌했다. 이 때 서라벌 황룡사[6]의 황룡사 9층 목탑도 건설하는데 탑의 층마다 신라가 앞으로 물리쳐야 할 오랑캐의 이름을 정하였다. 이외에도 불보사찰 통도사 등을 창건했는데 통도사에 금강계단을 세우고 중국 오대산에서 문수보살로부터 받았다는 정골사리를 안치했다고 한다. 진덕여왕 3년(649)에는 신라 조정의 복식 제도를 당나라의 제도와 같게 하였으며 다음 해에는 당나라의 '영휘' 연호를 사용하게 하였다.[7]
 
삼국유사에 따르면 말년에 초라한 거지 행세를 한 채 그를 만나러 온 문수보살을 알아보지 못하고 시자를 시켜 박대하자 문수보살이 "아상[8]을 가진 자가 어찌 나를 볼 수 있겠는가."라고 꾸짖은 뒤 죽은 강아지로 둔갑시켰던 사자보좌(獅子寶座)를 타고[9] 광채를 발하며 허공으로 사라져버렸다. 시자로부터 광경을 전해 들은 자장은 거지 노인이 문수보살의 현현임을 깨닫고는 빛을 쫓아 남쪽 고개에 올랐지만 따라갈 수 없었다. 그토록 고대하던 성인과 만났건만 자신의 아상 때문에 무산됐음을 탓하다 그대로 쓰러져 죽었다는 설화가 전한다.[10]
 
<新羅十聖>
 
삼국유사에 기록된, 신라 최초의 절 흥륜사에 모셔졌던 역대 신라 10대 불교 성인.
 
금당의 동쪽에 아도(阿道), 염촉(厭髑, 이차돈), 혜숙(惠宿), 안함(安含), 의상(義湘)이 있었고 서쪽에는 표훈(表訓), 사파(蛇巴), 원효(元曉), 혜공(惠空), 자장(慈藏)이 있었다고 한다. 또다른 신라의 대표 사찰인 황룡사에도 십성의 탑이 있었다고 한다.
 
십성에 임명한 기준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화랑의 세속오계로 유명한 원광대사처럼 꼽혀도 충분할 만한 유명한 사람이 누락돼 있기도 하다. 아무래도 현대인 기준이 아니라 신라 당시에 가장 이름높았던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다.
 
 
 
<참고>
 
 
●태백산 정암사
 
 
 
●정암사(淨巖寺)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정선 정암사 수마노탑(旌善 淨岩寺 水瑪瑙塔) - 다음백과
 
 
 
●여기가 그곳-태백산 정암사 - 법보신문
 
 
 
●정암사-나무위키
 
 
 
●자장(신라) - 나무위키
 
 
 
●태백산 정암사, 자장율사 원력 계승할 개산문화제 봉행
 
 
 
●정선 태백산(함백산) 정암사,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5대 적멸보궁
 
 
 
●5대 적멸보궁 산사 - 태백산 정암사(강원도 정선) : 네이버 블로그
 
 
 
●사찰이야기54 - 태백산 정암사 - 다음블로그
 
 
 
 
●[다시보는 BTN] 한국의 명찰 – 태백산 정암사 (1995년제작)(동영상)
 
 
 
●무여스님과 함께 하는 사찰여행 – 정암사(강원 정선), Jeongamsa Temple[4k](동영상)
 
 
 
●강원도 정선에서 만나는 아름다운 국보, 천년의 역사를 품은 정선 정암사 수마노탑-천년의 여행 28회(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