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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여행] 지리산 벽송사(碧松寺) & 칠선계곡(七仙溪谷) 입구 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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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3. 30.









[함양여행] 지리산 벽송사(碧松寺) & 칠선계곡(七仙溪谷) 입구 탐방

(2022/03/21 현재)


임인년 봄을 맞아 산수유 매화등 봄꽃 나들이 남도여행의 일환으로
먼저 경남 함양 지역의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지안재 와 오도재, 지리산 제1관문
그리고 지리산 조망공원 을 둘러본후 방문한, 지리산 벽송사(碧松寺) 와
가장 이름난 계곡 칠선계곡(七仙溪谷) 입구 탐방 전경입니다.

지리산 칠선계곡 입구의 벽송사(碧松寺)는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사찰로, 조선 중종 1520년 벽송 지엄선사에 의해 창건된 고찰이다.
서산, 사명대사가 수행하여 도를 깨달은 유서 깊은 사찰이며, 우리나라 선종 불교의
최고의 종가로 유명하다.

창건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옛 터에 남아 있는 삼층석탑의 양식으로 미루어
신라 말기나 고려 초기로 추정되기도 한다. 조선 중종 15년인 1520년에 벽송대사로
불리던 장군 출신의 승려 송지엄이 중창한 뒤 벽송사라고 불렀다.

한국 전쟁 때 지리산이 조선인민유격대의 근거지로 사용되면서 벽송사는
야전병원으로 이용되었다. 벽송사 건물은 이때 불에 타 소실되었고 본래 벽송사
자리보다 약간 아랫쪽에 새로 지은 건물이 남아 있다.

중앙에 법당인 보광전을 중심으로 좌우에 건물 한 채씩, 앞쪽에는 일주문과 종루가 있고
뒤쪽에 산신각이 있다. 대한민국의 보물 제474호로 지정된 삼층석탑과 나무장승 2기가
남아 있다. 경상남도 민속자료로 지정된 벽송사의 나무장승은 표정이 풍부하여
민중미학의 본질을 보여주는 빼어난 조각인 것으로 평가된다. 참나무로 만들어진
약 2미터 높이의 남녀 장승으로 각각 금호장군과 호법대장군이라는 음각이 새겨져 있다.

벽송사는 신재효의 판소리 가루지기타령에서 무대가 되는 장소로 추정되는 곳이기도 하다.
가루지기타령에서는 옹녀와 변강쇠가 눈이 맞아 지리산으로 들어가 함께 살게 된다.
변강쇠가 나무를 하는 대신 장승을 뽑아 불을 때자 장승의 원혼이 억울함을 호소하고, 장승
우두머리는 통문을 돌려 팔도의 장승을 모두 불러모아 변강쇠를 혼내준다는 줄거리이다.

칠선계곡은 지리산에서 꼭 한번 가보아야 할 명소임에는 틀림없는 듯하다. 그러나 칠선계곡을
오르기가 그리 쉽지는 않다. 계곡이 길기도 하거니와 중간지점인 선유담에서 통제를 하고
있어서다. 계곡 오르는 길은 급경사로 시작한다. 힘들여 고개마루에 올라서면 계곡 전경이
한눈에 펼쳐지며 본격적으로 계곡 품에 안기게 된다.

평탄한길을 조금 더 가면 계곡 안의 유일한 먹거리촌인 두지마을이 있다. 마을이래야
두집 뿐이지만 말이다. 이곳에서 식음료랑 간단한 간식거리를 마지막으로 준비할 수 있다.
여기서부터 험한 계곡길이 선녀탕까지 계속된다.

선녀탕에는 재미있는 얘기가 있다. 하늘에서 일곱 선녀가 내려와 목욕을 하고 있었는데,
이를 본 곰이 옷을 훔쳐 바위 뒤 나뭇가지에 숨겨 놓았단다. 그런데 곰이 선녀들의 옷을
걸어두었던 것이 나뭇가지가 아니라 사향노루의 뿔이었다네. 선녀들이 옷을 찾아 헤매는
것을 본 사향노루는 자기 뿔에 걸려 있던 옷을 가져다 주었고 선녀들은 무사히 하늘나라로
되돌아 갔다. 그 후 선녀들은 자신들에게 은혜를 베푼 사향노루는 칠선계곡에서 살게
해 주고 곰은 이웃의 국골로 내쫓았다는 얘기다.

선녀탕에서 좀더 오르면 옥녀탕과 비선담까지 길게 숲길이 이어진다. 이렇게 비선담까지
올랐다 내려오는 데는 꼬박 5 시간이 걸린다. 칠선계곡을 되내려오면서 보는 추성마을은
또 다른 느낌이다. 이곳에서 하룻밤을 보내며 조용한 산마을의 정취를 느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벽송사(碧松寺)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시      대 고려
-건립시기 신라말기
-소 재 지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 259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지리산(智異山) 칠선계곡(七仙溪谷)에 있는 조선전기 승려 벽송이 중창한 사찰. 대한불교조계종 12교구 본사인 해인사(海印寺)의 말사이다. 예로부터 수행처로 널리 알려진 곳이지만 여러 번의 화재로 인하여 사적기(事蹟記)가 없어 창건연대 및 자세한 역사는 알 수 없다. 다만, 현 위치에서 50m 위의 옛 절터에 있는 삼층석탑이 고려 초기의 양식을 보이고 있으므로, 이 절의 창건 역시 신라 말 내지 고려 초로 보고 있다.
 
1520년(중종 15)에는 벽송(碧松)이 중창하여 벽송사라 하였으며, 6·25 때 소실된 뒤 곧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법당인 보광전(普光殿)을 중앙으로 좌우에 방장선원(方丈禪院)과 간월루(看月樓)가 있으며, 전면에는 산문(山門)과 종루를 배치하였고, 후면에는 산신각이 있다. 중요문화재로는 보물 제474호인 벽송사삼층석탑 1기가 있다.
 
전래되는 설화로는 승려 서룡(瑞龍)의 이야기가 있다. 만년에 이 절에 머물렀던 서룡은 1890년(고종 27) 12월 27일에 문도를 불러서 입적할 것을 고하였으나, 제자들은 그믐의 바쁜 일이 끝나거든 입적할 것을 청하였다. 정월 초이튿날 다시 입적하려고 하자 제자들은 불공하러 오는 신도들이 많다는 이유로 다시 며칠을 미루도록 하였다. 4일에는 “이제 가도 되겠느냐?”고 물은 뒤 제자들을 불러 “불법을 닦을 때 생사를 해탈하려면, 먼저 생사가 없는 이치를 알아야 하고(知無生死), 둘째 생사가 없는 이치를 증득하여야 하며(證無生死), 셋째 생사가 없는 것을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用無生死).”는 유명한 말을 남기고 입적하였다.
 
 
●벽송사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벽송사(碧松寺)는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사찰이다. 조계종 제12교구 본사 해인사의 말사이다. 지리산 북쪽의 칠선계곡 근처에 있다. 벽송사 소속 암자였다가 사찰로 승격한 서암정사는 바위 더미 위에 지어진 절로 벽송사와는 가까운 거리에 있다.
 
창건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옛 터에 남아 있는 삼층석탑의 양식으로 미루어 신라 말기나 고려 초기로 추정되기도 한다. 조선 중종 15년인 1520년에 벽송대사로 불리던 장군 출신의 승려 송지엄이 중창한 뒤 벽송사라고 불렀다.
 
한국 전쟁 때 지리산이 조선인민유격대의 근거지로 사용되면서 벽송사는 야전병원으로 이용되었다. 벽송사 건물은 이때 불에 타 소실되었고 본래 벽송사 자리보다 약간 아랫쪽에 새로 지은 건물이 남아 있다.
 
중앙에 법당인 보광전을 중심으로 좌우에 건물 한 채씩, 앞쪽에는 일주문과 종루가 있고 뒤쪽에 산신각이 있다. 대한민국의 보물 제474호로 지정된 삼층석탑과 나무장승 2기가 남아 있다. 경상남도 민속자료로 지정된 벽송사의 나무장승은 표정이 풍부하여 민중미학의 본질을 보여주는 빼어난 조각인 것으로 평가된다.[1] 참나무로 만들어진 약 2미터 높이의 남녀 장승으로 각각 금호장군과 호법대장군이라는 음각이 새겨져 있다.
 
벽송사는 신재효의 판소리 가루지기타령에서 무대가 되는 장소로 추정되는 곳이기도 하다.[2] 가루지기타령에서는 옹녀와 변강쇠가 눈이 맞아 지리산으로 들어가 함께 살게 된다. 변강쇠가 나무를 하는 대신 장승을 뽑아 불을 때자 장승의 원혼이 억울함을 호소하고, 장승 우두머리는 통문을 돌려 팔도의 장승을 모두 불러모아 변강쇠를 혼내준다는 줄거리이다.
 
 
 
◈함양 벽송사 삼층석탑(咸陽碧松寺三層石塔)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시          대 조선
-문화재 지정 보물 제474호
-건립    시기 1520년
-크기 높이 3.5m
-소재지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광점길 27-177(추성리) 벽송사
 
요약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벽송사에 있는 조선전기 에 조성된 석탑의 전형양식을 계승한 불탑. 보물. 보물 제474호. 높이 3.5m. 1520년(중종 15)경 벽송사의 창건과 함께 조성되었다고 생각되며 우리 나라 석탑의 전형양식을 계승한 점에서 주목되는 작품이다.
 
지표에 넓은 지복석(地覆石 : 지대 맨 밑에 가로놓은 돌)을 깔고 그 가운데에 높은 지대석(地臺石)을 마련한 뒤 그위에 중석(中石)을 얹었는데, 중석 하단에 1단의 얕은 턱을 둔 것은 실상사삼층석탑(實相寺三層石塔)과 같은 양식이지만 이것이 지대석을 표현한 듯이 보여 양식상의 혼란이 있다.
 
중석에는 우주(隅柱 : 모서리기둥)와 각 면 1주씩의 탱주(撑柱 : 받침기둥)가 표현되었다. 갑석(甲石)은 폭이 좁아서 중석 하단의 턱이 폭과 같으며, 위는 경사진 가운데 1단의 굄이 있으며 약간의 반전(反轉)이 있다. 상층기단 면석은 각 면 1매의 판석으로 구성하고, 각 면석에는 우주와 탱주 1주씩이 모각(模刻)되었다.
 
갑석은 1매석인데 밑에는 부연(副椽 : 갑석 하부에 두른 쇠시리)이 있고 위에는 역시 모퉁이에 반전이 있다. 탑신부(塔身部)는 옥신석(屋身石)과 옥개석(屋蓋石)이 각각 1석씩이고 각 층 옥신석에는 우주가 있을 뿐 장엄조각은 없다. 옥개석은 초층과 2층에 4단, 3층에 3단의 받침이 있고 낙수면 모퉁이에서는 심한 반전을 보인다.
 
상륜부(相輪部)에는 노반(露盤 : 탑의 최상부 옥개석 위에 놓아 복발·앙화·상륜 등을 받치는 장식)과 복발(覆鉢 : 탑의 노반 위에 놓는 엎은 주발 모양의 장식)만 남아 있다. 이 탑의 건립위치가 법당 앞이 아니고 후면의 언덕 위라는 점은 탑파 건립의 일반적인 원칙에서 벗어나고 있어 주목된다.
 
 
 
◈함양 벽송사 삼층석탑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함양 벽송사 삼층석탑(咸陽 碧松寺 三層石塔)은 경상남도 함양군, 벽송사 사찰에 있는 조선시대의 삼층석탑이다. 1968년 12월 19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474호로 지정되었다.
 
벽송사는 조선 중종 15년(1520)에 벽송(碧松)이 창건한 사찰이다. 석탑은 2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세운 통일신라시대 양식을 보이고 있다. 벽송사의 창건연대가 1520년인 것으로 보아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신라양식 탑이라는 점에서 매우 주목되는 작품이다.
 
2단으로 구성된 기단은 아래층 기단에 가운데돌의 네 모서리와 면의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얕게 조각하였는데, 특이한 점은 바닥돌과 아래층 기단의 사이에 높직하게 딴 돌을 끼워놓은 것이다. 위층 기단의 맨윗돌은 한 장의 널돌로 이루어졌으며 밑에는 수평으로 얇은 단을 새겼다.
 
탑신부의 몸돌은 각 층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새겨 놓았다. 지붕돌은 추녀가 얇고 반듯하며 마무리 부분에서 치켜오른 정도가 완만하다. 하지만 지붕돌 윗부분은 경사가 급하고 치켜올림의 정도도 심하다. 지붕돌 밑면의 받침수는 1·2층이 2단, 3층이 3단이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으로 노반(露盤)[1]과 복발(覆鉢)[2]만 남아있다.
 
이 석탑은 조형예술이 발달한 신라석탑의 기본양식을 충실히 이어받고 있으며 짜임새 또한 정돈되어 있는 작품으로, 조선 전기에 세워진 것으로 짐작된다. 또한 일반적으로 법당 앞에 탑을 두는 것과 달리 탑을 절 뒤쪽의 언덕 위에 세우고 있어 주목할 만한 점이라 할 수 있다.
 
 
 
●벽송사 - 함양군 문화관광
 
 
-주소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광점길 27-177
-전통사찰 제12호(등록 1973. 11. 3)
 
이 사찰은 대한불교 조계종 제12교구인 해인사(海印寺)의 말사(末寺)로 신라말경에 창건된후 조선 중종 경진년(1520)에 벽송 지엄대사(碧松 智嚴大師)가 중창, 『벽송사』라 하였다고 전한다
 
서산대사 청허휴정(淸虛休靜)이전에 한국선맥을 이어온 벽계정심(碧溪正心)과 벽송지엄(碧松智嚴), 부용영관 뿐만 아니라 환성지안(喚醒志安), 서룡상민(瑞龍祥玟)등 조선 선맥을 빛낸 8분의 조사가 이 벽송사에서 수도 정진한 도량으로써 한국선(禪)과 벽송사의 인연은 각별하다
 
숙종30년(1704) 실화(失火)로 소실(燒失)되었다가 환성지안(喚醒志安)대사가 중건하였고, 철종 원년(1850)에 서룡당 상민(瑞龍堂祥玟)대사가 중수하였으나 1950년 6.25동란때 다시 소실되어 1960년 원응 구한(元應 久閒)스님이 쓰러진 가람을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堂宇)로는 법당인 원통전(圓通殿)을 중심으로 좌우에 방장선원(方丈禪院)과 간월루(看月樓)가 있으며, 전면에는 산문(山門)과 종루(鐘樓)를 배치하였고, 후면에는 산신각(山神閣)이 있다
 
또한 경내에는 보물제474호인 『벽송사3층석탑』과 민속자료 제2호인 『벽송사 목장승』, 경상남도 유형문화재인 벽송당지엄영정(碧松堂智嚴影幀), 경암집책판(鏡巖集冊版), 묘법연화경책판(妙法連華經冊版)등의 많은 문화재가 보존되어 있다
 
 
특히 이 사찰은 1950년대 전란(戰亂)시 빨치산 루트로 사용되는 등 처참한 비극의 역사를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벽송사의 창건연대는 정확하게 알수 없으나 절 뒤쪽의 창건당시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3층석탑으로 미루어볼 때 그 시기를 신라말이나 고려초로 보고 있으며 현재 3층석탑은 보물 제474호로 지정되어 있다.
 
조선 중종 15년(1520)에 벽송 지엄대사가 중창하여 벽송사라고 전하여지며 한국전쟁때는 인민군의 야전병원으로 이용된적도 있으며 이때 불에타 소실된 이후 곧 중건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벽계 정심의 맥을 이어 조선 불교 태고 선맥의 5대 정통이 되었고 부용영관, 원오, 일선등 60여명에게 선을 가르쳤던곳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벽송사 나무장승은 그 풍부한 표정에서 민중미학의 본질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빼어난 장승가운데 하나이며, 순천 선암사 앞에 있었던 나무장승과 쌍벽을 이룰 만큼 조각솜씨도 뛰어나다. 전체 높이는 4m 정도 되는데, 예전에는 지하에 1m 정도가 묻혀 있고 썩은 몸통을 지탱하기 위해 둑을 쌓아 1m 정도가 더 묻혀 있어, 드러나 있는 것은 2m 정도였으나 현재는 벽송사 경내에 정려를 지어 보관하고 있다.
 
왼쪽 장승은 몸통 부분에 '금호장군' 이라 음각돼 있고, 오른쪽 장승은 '호법대장군'이라 음각돼 있다. 두 장승에 새겨진 명문으로 미루어, 사찰 입구에 세워져 사천왕이나 인왕의 역할을 대신하여 잡귀의 출입을 막는 수문장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인근의 서암은 벽송사에 따른 암자이다. 벽송사 주차장위 삼거리에서 왼편으로 100m정도 가면 서암이 나타난다.
 
현재의 벽송사의 원응 주지스님이 1989년 이곳으로 옮겨온뒤 화엄경 금자사경을 완성하고 주위의 자연석 암반위에 대방광문(大方廣門:부처님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 극락전(極樂殿 : 아미타여래가 주불이 되어 무수한 불보살이 조각된 부처님의 이상 세계 모습), 광명운대(光明雲臺 : 구름 일듯이 무수한 불보살이 상주하는곳), 사자굴(스님들의 수행장소)등을 조각하고 만들어 그 화려함과 정교함, 웅장함이 과히 장관을 이루고 있다.
 
서암의 절경은 오밀조밀한 기암괴석에 온갖 기화요초로 정원을 만들어 생전에 볼수 있는 극락세계로 요즘들어 부쩍 탐방객들이 늘어나고 있다. 바위와 바위사이를 철판으로 길을 만들어 연결해서 다니고 있고 바위굴을만들어 스님들이 수도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곳이다.
 
입구의 마애상은 바위에 나한을 양각해 놓은것으로 이 곳에 들어서면 저절로 엄숙하고 경건한 마음이 생겨지는 불교 예술의 극치이며 연중 참배객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대법당 건물 1층에는 할머니가 차를 만들어 팔기도 하는데 그 맛이 일품으로 1잔에 2,000원을 받는다.
 
 
 
●길따라 절따라-지리산 벽송사 - 불교신문
 
 승인 1994.12.10 00:00 호수 1 댓글 0페이스북
 
경남 함양군 마천면 추정리, 지리산 비경중의 비경인 칠선계곡에위치한 벽송사는 제12교구본사 해인사의 말사로 예로부터 수행도량으로유명하다. 지리산 추성동 입구에서 천연의 늙은 소나무 숲을 지나 2km 오르면 벽송사 목장승인 금호장군과 호법대신이 서있고 이를 지나 골짜기를 오르면 벽송사를 만난다. 벽송사는 여러번의 화재로 창건연대및 자세한 역사를 알수는 없지만,벽송사에서 50미터 위의 옛절터에 있는 삼층석탑이 고려초기의 양식을 보이고 있어 이절의 창건역시 신라말 내지 고려초기로 보고 있다.
 
1520년 碧松이 중창하여 벽송사라 하였으며 6.25때 兵火로 소실된 뒤곧 중건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법당인 보광전을 중앙에 두고 있으며, 좌우에 방장선원과 간월루가 있다. 또 전면에는산문과 종루가 배치돼 있으며 후면에는 산신각이 있다. 중요문화재로는 보물 제474호 삼층석탑이 있다. 삼층석탑은 벽송사 창건과 함께 조성됐으며 우리나라 석탑의 전통양식을 계승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만하다. 반면 건립위치가 법당 앞이 아니라 후면의 언덕위라는 점은 탑파 건립의 원칙에서 벗어나고 있어 학계의 연구 대상이 되고 있다.
 
전래되는 설화로는 승려 서룡의 이야기가 있다. 영험록에 의하면 서룡화상은 1890년 12월27일 문도들을 모아놓고 [오늘은 내가 갈곳으로 가야겠다. 내가 떠난 뒤에도 늘 독경과 염불을 게을리 하지말라]며 입적할 것을 알렸다. 재자들은 그믐의 바쁜일이 끝나는 때 입적할 것을청했으며, 다시 서룡이 초이튿날 입적하려 하자 제자들은 신도들이 많다는 이유로 며칠을 미루도록 청했다. 4일이 되자 [이제 가도 되겠느냐]고 제자들에게 물은뒤 [불법을 닦을때 생사를 해탈하려면, 먼저 생사가 없는 이치를 알아야 하고(知無生死), 둘째 생사가 없는 이치를 증득해야 하며(證無生死), 셋째 생사가 없는 것을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用無生死)]는 법문을 남기고 법상에 앉은채 입적했다.
 
입구의 벽송사 목장승은 사찰에 잡귀의 출입을 막고 사원 경내의 각종규제와 풍수비보를 지켜주는 수문과 호법 신장 역할을 해온 것으로 전해온다. 밤나무로 만들어진 이 장승은 그 기능에 따라 과장적이고 질박한 민속적 조각수법의 전형을 보이고 있으며, 
 
장승이 절의 수문신장으로 세워져 있다는 사실은 불교가 민속신앙의 전통으로 자리잡아 왔다는 좋은 실례를 보여주고 있다. 벽송사는 마천이나 인월에서 버스를 타고 추성동 입구에서 내려 20분정도 순탄한 길을 걸으면 닿을수 있다. 주변에 실상사등의 명찰과 괴암절벽이 늘어선 청류계곡이 있어 가족등반의 휴양처로도 적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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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주소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 산 100번지
 
지리산은 경남의 함양, 산청, 하동, 전남의 구례 전북의 남원시를 사이에 두고 천왕봉~노고단의 지리산맥은 45km에 이르는 장관이며, 그 둘레만도 700km에 달하는 반도의 영산이며 반달곰이 서식하는 자연생태계의 보고이다.
 
우리민족의 기상과 혼이 서린 지리산은 금강산, 한라산과 더불어 삼신산으로 불리워 왔다. 신라 5악중 남악으로 어리석은 사람도 지혜를 얻는다고 智異山으로 명명되었다 하며, 백두산이 흘러 내려왔다하여 頭流山으로 불리며, 불가에서는 깨달음과 득도의 산이라하여 큰스님의 처소라는 뜻의 방장산(方丈山)이라고도 불린다. 지리산의 정상 천왕봉은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 100번지이다
 
 
●지리산 여행
 
지리산 서쪽에서 섬진강이 흘러가며 온갖 볼거리와 먹거리를 만들어 낸다면,
반대쪽은 운봉에서 시작한 남천이 인월과 마천을 지나면서 보석 같은 경관을 만들어낸다.
골이 깊어 많은 이들이 찾지를 않지만, 원시적인 지리산의 매력은 오히려 더 좋다고 할만하다.
 
구산선문 시조사찰인 실상사가 여기에 있고, 지리산을 대표하는 백무동과 칠선계곡도 여기에 있다.
지리산 둘레길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인월 금계구간이 지나고, 벽송사와 서암정사, 금대암도 볼만하다.
칠선계곡을 필두로 이곳에 숨어있는 지리산 속살들을 파헤쳐 보자. 칠선계곡으로 가는 길은 함양에서 시작한다. 함양터미널에서 마천을 거쳐 추성까지 가는 버스가 있다.
서울에서는 동서울터미널에서 백무동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마천에서 내린 다음 추성가는 버스로 갈아 타도 된다
 
◈금계마을과 의탄마을
 
칠선계곡 가는 길은 금계마을을 꼭 지난다. 지리산 둘레길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인월금계 구간이 끝나고, 금계동강 구간이 시작되는 곳이다. 마을 건너편으로 천황봉에서 노고단으로 이어지는 지리산 줄기가 한눈에 보인다. 마을 앞에는 엄천강이 흐르고 강 위에 의탄교가 놓여 있다. 본래는 양쪽에 줄을 매단 현수교가 놓여 있었는데, 1984년 7월에 폭우로 동네사람 여섯 명과 함께 물에 쓸려갔다고 한다. 지금도 동네사람들은 이 다리를 원망스럽게 바라본다.
 
강을 건너면 의탄마을이다. 칠선계곡 바로 아래 마을이다. 고려시대 때부터 나라에 쓰일 숯을 굽던 의탄소가 있어서 여태껏 불려오고 있는 이름이다. 금계에서 의탄을 지나면 칠선계곡이 시작되는 셈이다.
 
600여 년 전 김종직이 천황봉을 오르던 길이 바로 이 길이다. 유두류록에 "닭과 개, 송아지를 이끌고 들어와서 밭을 개간하고 잡곡을 심으면 무릉도원보다 나을 것이다.
 
그곳에 눌러 살고 싶다"고 적은 것을 보면 의탄마을이 얼마다 아름다웠던지 짐작할 수 있을 듯하다. 의탄마을을 지나면 추성마을에 닿는다. 칠선계곡 여행에서 베이스캠프역할을 하는 곳이다. 따라서 마을 전체가 숙박과 음식점을 한다.
 
 
◈칠선계곡
 
지리산에서 가장 이름난 계곡이 칠선계곡이다. 설악산 천불동계곡, 한라산 탐라계곡과 함께 우리나라 3대 계곡으로 꼽힐 만큼 길고 웅장하다. 몇 년 전에 모 신문에서 여행전문가를 대상으로 지리산을 대표하는 3대 요소를 뽑으라 했더니, 봉우리로는 천왕봉, 문화재로는 화엄사, 자연경관으로는 칠선계곡을 으뜸으로 말하더란다.
 
이러한 내용만 보아도 칠선계곡은 지리산에서 꼭 한번 가보아야 할 명소임에는 틀림없는 듯하다.
그러나 칠선계곡을 오르기가 그리 쉽지는 않다. 계곡이 길기도 하거니와 중간지점인 선유담에서 통제를 하고 있어서다. 계곡 오르는 길은 급경사로 시작한다. 힘들여 고개마루에 올라서면 계곡 전경이 한눈에 펼쳐지며 본격적으로 계곡 품에 안기게 된다.
 
평탄한길을 조금 더 가면 계곡 안의 유일한 먹거리촌인 두지마을이 있다. 마을이래야 두집 뿐이지만 말이다. 이곳에서 식음료랑 간단한 간식거리를 마지막으로 준비할 수 있다. 여기서부터 험한 계곡길이 선녀탕까지 계속된다.
 
 
선녀탕에는 재미있는 얘기가 있다. 하늘에서 일곱 선녀가 내려와 목욕을 하고 있었는데, 이를 본 곰이 옷을 훔쳐 바위 뒤 나뭇가지에 숨겨 놓았단다. 그런데 곰이 선녀들의 옷을 걸어두었던 것이 나뭇가지가 아니라 사향노루의 뿔이었다네. 선녀들이 옷을 찾아 헤매는 것을 본 사향노루는 자기 뿔에 걸려 있던 옷을 가져다 주었고 선녀들은 무사히 하늘나라로 되돌아 갔다. 그 후 선녀들은 자신들에게 은혜를 베푼 사향노루는 칠선계곡에서 살게 해 주고 곰은 이웃의 국골로 내쫓았다는 얘기다.
 
선녀탕에서 좀더 오르면 옥녀탕과 비선담까지 길게 숲길이 이어진다. 이렇게 비선담까지 올랐다 내려오는 데는 꼬박 5 시간이 걸린다. 칠선계곡을 되내려오면서 보는 추성마을은 또 다른 느낌이다. 이곳에서 하룻밤을 보내며 조용한 산마을의 정취를 느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참고>
 
●벽송사(碧松寺)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벽송사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함양 벽송사 삼층석탑(咸陽碧松寺三層石塔)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함양 벽송사 삼층석탑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벽송사 - 함양군 문화관광
 
 
 
●칠선계곡 여행 - 지리산 둘레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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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섭의 지리산이야기 <17>벽송사 이야기] 조선불교 정통 법맥을 이은 '벽송지엄'
 
 
 
●길따라 절따라-지리산 벽송사 - 불교신문
 
 
 
●지리산 칠선계곡 들머리 벽송사와 서암 - 경남도민일보
 
 
 
●불교 조형예술의 극치, 서암정사(瑞嵓精舍) - 건축사신문
 
 
 
●지리산 칠선계곡과 서암정사 - 경남도민신문
 
 
 
 
●경남 함양여행(지안재,오도재,서암정사,벽송사) - 네이버블로그
 
 
 
●함양 칠선계곡 서암정사 벽송사- 네이버블로그
 
 
 
●함양여행 벽송사 서암정사, 원응큰스님의 석굴법당- 네이버블로그
 
 
 
●함양여행 가볼만한곳 칠선계곡 옆 벽송사 목장승 네이버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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