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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여행] 남원 광한루원(廣寒樓苑) & 요천(蓼川) 승월교(昇月橋) 주변 탐방-(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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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3. 30.









[남원여행] 남원 광한루원(廣寒樓苑) & 요천(蓼川) 승월교(昇月橋)
주변 탐방-(2/2)


(2022/03/21 현재)


임인년 봄을 맞아 산수유 매화등 봄꽃 나들이 남도여행의 일환으로
먼저 경남 함양 지역의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지안재 와 오도재, 지리산 제1관문
그리고 지리산 조망공원 ,지리산 벽송사(碧松寺) ,칠선계곡(七仙溪谷) 입구를
둘러본후 , 방문한 남원시에 있는 광한루원(廣寒樓苑) 과 인근 소재 요천(蓼川)
승월교(昇月橋) 주변 탐방 전경입니다.

광한루는 조선시대 이름난 황희정승이 남원에 유배되었을 때 지은 것으로 처음엔
광통루(廣通樓)라 불렀다고 한다. 광한루(廣寒樓)라는 이름은 세종 16년(1434) 정인지가
고쳐 세운 뒤 바꾼 이름이다. 지금 있는 건물은 정유재란 때 불에 탄 것을
인조 16년(1638) 다시 지은 것으로 부속건물은 정조 때 세운 것이다.

춘향전의 무대로도 널리 알려진 곳으로 넓은 인공 정원이 주변 경치를 한층 돋구고 있어
한국 누정의 대표가 되는 문화재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1461년 부사 장의국은 광한루를 보수하고, 요천의 맑은 물을 끌어다가 하늘나라 은하수를
상징하는 연못을 만들었다. 호수에는 지상의 낙원을 상징하는 연꽃을 심고, 견우와 직녀가
은하수에 가로막혀 만나지 못하다가 칠월칠석날 단 한번 만난다는 사랑의 다리 ‘오작교’를
연못 위에 설치하였다. 이 돌다리는 4개의 무지개 모양의 구멍이 있어 양쪽의 물이
통하게 되어 있으며, 한국 정원의 가장 대표적인 다리이다.

1582년 전라도 관찰사로 부임한 정철은 광한루를 크게 고쳐 짓고, 은하수 연못 가운데에
신선이 살고 있다는 전설의 삼신산을 상징하는 봉래·방장·영주섬을 만들어 봉래섬에는 백일홍,
방장섬에는 대나무를 심고, 영주섬에는 ‘영주각’이란 정자를 세웠다. 그러나 정유재란 때
왜구들의 방화로 모두 불타버렸다.

현재의 광한루는 1639년 남원부사 신감이 복원하였다. 1794년에는 영주각이 복원되고
1964년에 방장섬에 방장정이 세워졌다. 이 광한루원은 소설 『춘향전』에서 이도령과 춘향이
인연을 맺은 장소로도 유명하여, 1920년대에 경내에 춘향사를 건립하고 김은호 화백이
그린 춘향의 영정을 모셔 놓았다. 해마다 음력 5월 5일 단오절에는 춘향제가 열린다.

요천(蓼川)은 섬진강의 지류들 중 하나로서 전라북도 장수군 장안산(1237m)과 팔공산
(1151m)에서 발원해 전라북도 남원 분지에 있는 남원시의 중앙부를 지나 남원시 금지면
하도리에서 섬진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전라북도의 강이다. 하천연장은 60.03km이며,
유역면적은 485.70㎢이다. 하천 주위에 여뀌꽃이 많이 핀다하여 蓼(여뀌 요)川이라 한다.


●우주를 담은 조선 정원의 밤과 낮, 남원 광한루원 - 대한민국 구석구석
 
춘향과 이몽룡이 인연을 맺은 남원 광한루원(명승 33호)은 조선 시대 사람들의 우주관을 담은 정원이다. 중심 누각인 광한루(보물 281호)는 전설 속의 달나라 미인 항아가 산다는 ‘광한청허부’에서 이름을 따왔다. 그 앞에 하늘나라 은하수를 상징하는 호수를 만들고, 견우와 직녀를 만나게 해주는 오작교를 놓았다. 호수에는 신선이 산다는 삼신산을 닮은 삼신섬을 세우고, 각각 봉래섬과 방장섬, 영주섬이라 이름 지었다. 이렇듯 하늘 세계를 지상에 구현한 광한루원은 아름다운 조명이 켜지는 밤이면 더욱 신비한 모습을 드러낸다.
 
 
오후 6시부터 입장권을 받지 않는 정문으로 들어서면 수중 누각 완월정이 관람객을 맞는다. 완월정은 1971년 광한루원 경내를 확장할 때 세웠다. 누각의 이름은 옛 남원성 남문의 문루인 완월루에서 따왔는데, 완월(玩月)은 ‘달을 가지고 놀다’라는 뜻이다. 춘향의 생일인 초파일이면 완월정 앞 수상 무대에서 춘향제가 열린다.
 
삼신섬을 지나면 오작교다. 하늘의 은하수를 잇는 오작교는 까마귀와 까치가 만들었다는데, 지상의 광한루원 오작교는 선조 때 남원부사 장의국이 튼튼한 돌다리로 만들었다. 덕분에 정유재란 때 광한루가 불탔지만, 오작교는 옛 모습 그대로 남았다. 길이 57m, 폭 2.4m로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호수 안 다리로는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다리 가운데 아치형 물길 통로가 4개나 있어 운치를 더한다.
 
아름다운 오작교를 건너면 드디어 광한루에 이른다. 광한루는 1419년 남원으로 유배 온 황희가 지은 광통루에서 비롯됐다. 이후 하동 부원군 정인지가 이곳의 아름다운 경치가 마치 달나라 같다면서 광한루라 이름 지었다. 정유재란 당시 불탔지만, 인조 때 다시 지으면서 오늘에 이른다. 건물 뒤쪽의 ‘호남제일루’라는 현판처럼 광한루는 호남을 대표하는 누각이다. 평양 부벽루, 진주 촉석루, 밀양 영남루 등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누각이기도 하다.
 
광한루는 낮에 보는 풍광 또한 근사하다. 오작교와 어우러진 광한루뿐만 아니라 영주각, 방장정, 완월정 등이 밤과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광한루원은 계절마다 다른 풍경으로 유명하다. 맑은 호수 위로 녹음이 우거진 여름도 좋지만, 눈이 하얗게 쌓인 겨울 풍경도 그림 같다.
 
 
정문 왼쪽에 자리 잡은 월매집과 춘향관은 낮에만 볼 수 있는 시설이다. 춘향이 살던 곳을 재현한 월매집은 춘향과 몽룡이 백년가약을 맺은 부용당과 행랑채 등으로 꾸몄다. 춘향이 입은 치마에 사랑의 맹세를 쓰는 몽룡의 모습, 부엌에서 정담을 나누는 방자와 향단이도 보인다. 집 밖에서는 그네와 투호 등 전통 놀이를 즐길 수 있다.
 
월매집과 이웃한 춘향관은 《춘향전》을 주제로 한 전시관이다. 《춘향전》의 내용, 춘향제의 역사를 담은 포스터와 사진, 《춘향전》을 모티프로 제작한 영화와 뮤지컬, 오페라, 창극 등 다양한 콘텐츠를 살펴볼 수 있다. 당시 생활상을 보여주는 서화류와 장신구, 서책 등도 전시돼 《춘향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춘향전》의 내용을 실감 나게 살펴보고 싶다면 광한루원에서 1km쯤 떨어진 춘향테마파크를 찾는 것이 좋다. 이곳은 《춘향전》을 크게 다섯 마당으로 나눠 조성한 공원이다. ‘만남의 장’부터 ‘맹약의 장’ ‘사랑과 이별의 장’ ‘시련의 장’ ‘축제의 장’까지 대표적인 장면을 실물 크기 모형으로 구성했다. 이밖에 전통문화체험관, 돌탑, 맹약단, 옥사정 등과 영화 〈춘향뎐〉 세트장까지 볼거리가 다양하다.
 
춘향테마파크도 광한루원처럼 오후 6시 이후 무료이며, 야경이 볼 만하다. 겨울에는 폐장 시간이 광한루원보다 한 시간 늦은 오후 9시니, 광한루원의 야경을 즐기고 와서 둘러봐도 좋다. 입구의 아담한 대나무 숲부터 시작된 조명이 조형물과 세트장 등을 비춘다. 곳곳에 춘향과 몽룡의 사랑을 상징하는 하트 조형물도 불을 밝혀 포토 존으로 인기다.
 
광한루원과 춘향테마파크가 남녀의 사랑을 보여준다면, 남원 만인의총(사적 272호)은 조국에 대한 사랑을 상징한다. 이곳에는 정유재란 때 남원성 전투에서 순절한 군인과 백성 1만여 명이 잠들어 있다. 조선군 1000여 명과 명나라 군사 3000여 명, 남원 백성 6000여 명이 왜군 5만 6000명에 맞서 마지막까지 성을 지키다 목숨을 잃었다. 왜군이 두고 간 시신을 전쟁 뒤 한 무덤에 모시고 사당을 건립했다. 원래 남원역 부근에 있던 것을 1960년대에 이곳으로 확장·이전했다고 한다.
 
 
 
●광한루원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광한루원(廣寒樓苑)은 전라북도 남원시 천거동에 있는 정원이다. 천체 우주를 상징하여 조성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전통누원이다. 광한루를 중심으로 영주(한라산), 봉래(금강산), 방장(지리산) 등을 뜻하는 세 개의 삼신산이 있는 호수와 오작교가 있다. 오작교는 해마다 칠월칠석이면 견우와 직녀가 만난다는 안타까운 천상의 사랑을 춘향과 이몽룡을 통해 완성시킨 사랑의 다리이기도 한다. 2008년 1월 8일 대한민국 명승 제33호로 지정되었다.
 
 
▶연혁
 
1414년 조선 태종 14년 황희가 세운 민가의 광통루만 있었던 것이 효시다.
1444년 세종 26년 하동 부원군 정인지가 광통루를 광한루라고 이름을 고쳤다.
1582년 선조 15년 전라도 관찰사 정철은 은하수를 상징하는 연못을 파고 홍예 4틀로 된 길이 58m, 폭 2.6m의 오작교를 설치하고 못 속에는 삼신도를 조성하였다. 봉래도에는 목백일홍, 방장도에는 대나무를 심고, 영주도에는 영주각을 건립하였다.
 
1626년 인조 4년에 임진왜란 때 모두 소실된 것을 남원부사 신감이 재건하였다.
1795년 남원부사 이만길이 영주각 중수
1879년 고종 6년에는 큰들보를 고치고, 난간 설치
1931년 남원군수 백정기, 남원면장 양재영, 진사 이수봉 등이 광한루 정비 완료
1963년 남원군수 이화익이 광한루원 경역 확장 및 정비
1983년 7월 20일 사적 303호 지정
2008년 1월 8일 사적 303호 지정 해지, 명승 33호 지정[1]
 
==시설==
 
▶광한루
 
광한루는 조선시대 이름난 황희정승이 남원에 유배되었을 때 지은 것으로 처음엔 광통루(廣通樓)라 불렀다고 한다. 광한루(廣寒樓)라는 이름은 세종 16년(1434) 정인지가 고쳐 세운 뒤 바꾼 이름이다. 지금 있는 건물은 정유재란 때 불에 탄 것을 인조 16년(1638) 다시 지은 것으로 부속건물은 정조 때 세운 것이다.
 
규모는 앞면 5칸·옆면 4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누마루 주변에는 난간을 둘렀고 기둥 사이에는 4면 모두 문을 달아 놓았는데, 여름에는 사방이 트이게끔 안쪽으로 걸 수 있도록 해 놓았다. 또한 누의 동쪽에 있는 앞면 2칸·옆면 1칸의 부속건물은 주위로 툇마루와 난간을 둘렀고 안쪽은 온돌방으로 만들어 놓았다. 뒷면 가운데 칸에 있는 계단은 조선 후기에 만든 것이다.
 
춘향전의 무대로도 널리 알려진 곳으로 넓은 인공 정원이 주변 경치를 한층 돋구고 있어 한국 누정의 대표가 되는 문화재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청허부
 
지상의 사람들이 천상의 세계를 꿈꾸며 달나라를 즐기기 위해 지은 것으로 달이 뜨는 동쪽을 향해 있는 수중누각이다. 춘향제 행사의 주요 무대로 사용되고 있다.
 
▶춘향사당
 
춘향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만든 사당으로 광한루의 동쪽, 절개를 상징하는 대나무 숲 속에 있다. '단심'이라 쓰여진 대문을 들어서면 '열녀 춘향사'란 현판이 걸려 있고 사당안에는 이당 김은호 화백이 그린 춘향의 영정이 있다. 춘향묘는 전라북도 남원시 주천면 호경리에 있다.
 
▶완월정
 
완월정은 지상 사람들이 천상의 세계를 꿈꾸며 달나라를 상상해 축조한 수중 정자이다. 춘향제 무대로도 활용된다.
 
▶월매집
 
춘향과 이몽룡이 백년가약을 맺은 부용당과 행랑채를 재현해 놓은 월매집은 당시 생활상을 알 수 있게 밀랍인형과 생활도구들을 전시해 놓았다. 또한 사랑의 동전던지기대와 장원급제 기원단이 있다.
 
▶춘향관
 
1992년 완성했으며, 박남재 화백이 그린 유화 9폭의 춘향 일대기와 당시 생활상을 보여주는 서화류, 장신구, 서책 등이 전시되어 있다.
 
 
●광한루원 (廣寒樓苑) - 문화재청
 
-분       류  자연유산 / 명승 / 역사문화경관
-수량/면적  78,166㎡
-지정(등록)일 2008.01.08
-소   재   지 전북 남원시 요천로 1447, 등 (천거동)
-시         대 조선시대 초기
-소유자(소유단체) 남원시 외 
-관리자(관리단체) 남원시(남원시장) 
 
신선의 세계관과 천상의 우주관을 표현한 우리나라 제일의 누원이다. 
원래 이곳은 조선 세종 원년(1419)에 황희가 광통루라는 누각을 짓고, 산수를 즐기던 곳이었다. 1444년 전라도 관찰사 정인지가 광통루를 거닐다가 아름다운 경치에 취하여 이곳을 달나라 미인 항아가 사는 월궁속의 광한청허부(廣寒淸虛府)라 칭한 후 ‘광한루’라 이름을 부르게 되었다. 1461년 부사 장의국은 광한루를 보수하고, 요천의 맑은 물을 끌어다가 하늘나라 은하수를 상징하는 연못을 만들었다.
 
호수에는 지상의 낙원을 상징하는 연꽃을 심고, 견우와 직녀가 은하수에 가로막혀 만나지 못하다가 칠월칠석날 단 한번 만난다는 사랑의 다리 ‘오작교’를 연못 위에 설치하였다. 이 돌다리는 4개의 무지개 모양의 구멍이 있어 양쪽의 물이 통하게 되어 있으며, 한국 정원의 가장 대표적인 다리이다.
 
1582년 전라도 관찰사로 부임한 정철은 광한루를 크게 고쳐 짓고, 은하수 연못 가운데에 신선이 살고 있다는 전설의 삼신산을 상징하는 봉래·방장·영주섬을 만들어 봉래섬에는 백일홍, 방장섬에는 대나무를 심고, 영주섬에는 ‘영주각’이란 정자를 세웠다. 그러나 정유재란 때 왜구들의 방화로 모두 불타버렸다.
 
현재의 광한루는 1639년 남원부사 신감이 복원하였다. 1794년에는 영주각이 복원되고 1964년에 방장섬에 방장정이 세워졌다. 이 광한루원은 소설 『춘향전』에서 이도령과 춘향이 인연을 맺은 장소로도 유명하여, 1920년대에 경내에 춘향사를 건립하고 김은호 화백이 그린 춘향의 영정을 모셔 놓았다. 해마다 음력 5월 5일 단오절에는 춘향제가 열린다.
 
 
 
●광한루원(廣寒樓苑)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건립시기 조선중기
-규      모 6만 9795㎡(지정구역), 8,371㎡(보호구역)
-소  재 지 전라북도 남원시 요천로 1447 ,  전라북도 남원시 천거동 78 등
 
 
전라북도 남원시에 있는 조선전기 에 조성된 광한루의 정원. 누원. 명승. 남원역 근처의 시내에 춘향과 이도령이 만났다는 광한루가 있고, 그 광한루가 있는 정원을 통칭하여 광한루원(廣寒樓園)이라고 한다. 명승 제33호. 지정면적 6만 9795㎡.
 
◈역사적 변천
 
지금의 광한루는 1170년(의종 24) 전중감(殿中監)이었던 황공유(黃公有)가 무신의 난으로 벼슬을 버리고 남원으로 내려온 뒤, 그의 후손 황감평이 이곳에 일재(逸齋)라는 조그마한 서실(書室)을 지은 때부터 유래된다.
 
광한루의 시초는 조선 세종 원년(1419) 황공유의 아들인 황희(黃喜)가 한때 남원에 유배되었을 당시, 일재의 옛터에 광통루(廣通樓)라는 작은 누각을 지어 산수를 즐긴 것에서 비롯된다.
 
1444년(세종 26)에는 전라도관찰사 정인지(鄭麟趾)가 광통루의 아름다움을 월궁(月宮)에 비유하여 광한청허부(廣寒淸虛府)라 칭한 것에서 광한루라 부르게 되었다.
 
1461년(세조 7) 부사 장의국(張義國)은 누원 일원에 요천강의 맑은 물을 끌어다가 은하수를 상징하는 호수를 만들었다.
 
1582년정철(鄭澈)이 전라도관찰사로 부임하여 또다시 은하의 못 가운데 신선이 살고 있다는 전설의 삼신산을 상징하는 봉래(蓬萊)·방장(方丈)·영주(瀛洲)섬을 만들어, 봉래섬에는 백일홍을 심고 방장섬에는 녹죽(綠竹)을 심었는데, 영주섬에만 영주각을 건립하고 섬과 섬 사이에는 사다리꼴 다리로 연결하였다. 이로써 광한루원은 천체와 우주를 상징하는 누원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 때 왜적들의 방화로 모두 불타버렸다. 1607년(선조 40)에 작은 누각이 복구되고, 1639년(인조17)에 남원부사 신감(申鑑)이 현재의 광한루를 복원하였다. 1794년(정조 18)에는 부사 이만길(李萬吉)이 영주각을 재건하였다.
 
1869년(고종 6) 무렵 광한루 본관이 차츰 북쪽으로 기울어져 이를 방지하기 위해 누의 북쪽에 다락을 세워 층층대를 만들어놓았다. 1925년 수리공사 때에 누의 동쪽 구석에 직실(直室)을 마련하였다.
 
1963년에는 주변의 토지를 매입하고 호수 주위를 정비하여 국악원, 월매(月梅)의 집과 방장섬에 육모정을 세웠으며, 이듬해인 1964년에는 방장섬에 방장정(方丈亭)이 건립되었다. 1965년에는 영주각을 단청하고, 1969년에는 호수를 확장하고 수중누각 완월정을 세우는 한편, 지금까지 북쪽을 정문으로 써 오던 것을 후문으로 삼고 따로이 남쪽에 정문을 신축, ‘廣寒淸虛府(광한청허부)’라는 현판을 써 걸었다. 1983년에는 다시 경역을 확장하여 누원 주변을 정비, 사적으로 지정하였다.
 
이 광한루는 이몽룡과 성춘향의 「춘향전」으로 더욱 유명하여졌는데, 1931년에 지어진 춘향사에는 ‘만고열녀춘향사(萬古烈女春香祠)’라는 현판이 걸리고 김은호(金殷鎬)가 그린 춘향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다.
 
해마다 음력 5월 5일 단오절(端午節)에는 춘향제가 성대히 열린다.
 
◈내용
 
누원에는 호수와 오작교·삼신산(三神山)·춘향사(春香祠)·충혼각·남원국악원·수중누각인 완월정(玩月亭)과 광한루(보물 제281호) 등이 펼쳐져 있다.
 
누원의 북쪽으로는 교룡산(蛟龍山)이 우뚝 서 있고, 남쪽에는 금괴같이 보배롭다는 금암봉(金巖峰)이 있으며 멀리 지리산이 보인다.
 
호수에는 지상의 낙원을 상징하는 연꽃을 심고 은하수에 가로막힌 견우성과 직녀성이 칠월칠석에 만난다는 오작교를 가설하였으며, 배를 띄워 상한사(上漢沙)라 이름하고 베틀바위를 호수에 넣어 지기석(支機石)이라 불렀다. 오작교에는 4개의 궁륭식 무지개 구멍이 있어 양쪽 호수의 물이 통하고 있다.
 
광한루의 전·후면에는 호남제일루(湖南第一樓)·계관(桂觀)·광한루의 현판이 걸려 있으며, 새로 마련한 남쪽 정문 문루에는 청허부(淸虛府)의 현판이 걸려 있다.
 
‘광한’과 ‘청허부’는 하늘나라 옥경(玉京)주 01)에 들어서면 ‘광한 청허부’의 현판이 걸려 있다는 신화적 전설을 상징하고 있으며, ‘계관’은 달나라의 계수나무를 상징한다.
 
광한루 현판은 신익성(申翊聖)이, 호남제일루·계관·영주각의 현판은 1855년(철종 6) 부사 이상억(李象億)이 본관을 중수하면서 손수 써 걸었으며, 이 중 ‘계관’ 현판은 동학운동 때에 강대형(姜大炯)이 다시 써 걸었다.
 
◈특징
 
광한루원의 호수에는 지상의 낙원을 상징하는 연꽃을 심고, 견우와 직녀가 은하수에 가로막혀 만나지 못하다가 칠월칠석날 단 한번 만난다는 사랑의 다리 ‘오작교’를 연못 위에 설치하였는데, 이 돌다리에는 4개의 무지개 모양의 구멍이 있어 양쪽의 물이 서로 통하게 되어 있는, 한국 정원의 가장 대표적인 다리이다.
 
이곳은 소설 『춘향전(春香傳)』에서 이도령과 춘향이 인연을 맺은 처소로도 유명하다. 또한 천체와 우주의 상징요소가 충만한 특징적 누원으로도 손꼽힌다.
 
아름다운 풍취와 풍류로 인해 강희맹·김시습·김종직·정철 등 당대문호의 시문이 수두룩하다.
 
◈의의와 평가
 
광한루원은 은하수(銀河水)를 상징하는 연못가에 월궁(月宮)을 상징하는 광한루와 지상(地上)의 낙원인 삼신산(三神山)이 함께 어울려 있는 아득한 우주관(宇宙觀)을 표현한 한국 제일의 누원(樓苑)이다.
 
 
●광한루원 - 나무위키
 
 
 
1. 개요
 
대한민국의 명승 제33호.[1] 전라북도 남원시 천거동에 있으며 조선 중기 천체와 우주를 상징하여 조성한 한국의 대표적인 전통 누원이다. 하나의 건물인 광한루의 이름을 따서 누원의 이름이 붙은 광한루원은 춘향전의 무대로도 매우 유명하다.
 
그 외에도 각종 영화촬영을 했으며, 광해, 도리화가 등에서도 나온다. 매년 춘향 선발대회가 이곳에서 열린다.
 
2. 역사
 
1414년(태종 14년) 황희가 광통루라는 누각을 새운 것이 시초이다. 1444년(세종 26년) 하동 부원군 정인지가 광한루로 이름을 고쳤고 1461년(세조 7년) 장의국(張義國)이란 사람이 요천의 물을 끌어다가 누(樓) 앞에 은하수를 상징하는 커다란 연못을 파고 견우와 직녀의 전설이 담긴 오작교를 가설하였다. 각각의 섬은 지리산을 상징하는 방장도, 금강산을 상징하는 봉래도, 한라산을 상징하는 영주도이다.
 
1626년(인조 4년), 임진왜란 때 모두 손실된 누각을 남원부사 신감이 재건하고 이후 영주도의 영주각을 중수하고 광한루의 큰들보를 고치고 난간을 설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3. 시설
 
야간 무료개장을 실시하고 있다. 4~10월까지는 19~20시, 11월~3월까지는 18~20시이다.
 
3.1. 광한루
 
광한루원의 중심 건물로, 대한민국의 보물 제281호다. 1419년 황희가 남원에 유배되었을 때 누각을 짓고 광통루(廣通樓)라 하였다. 그 후 1434년 세종 16년에 남원부사 민여공이 중수하고 당시 충청 전라 경상 삼도 순찰사였던 하동부원군 정인지가 이 누에 올라 경관을 감상하다가 “오호라 호남에서 가장 뛰어난 경관은, 나의 고향의 경승을 감상하게 되면 나의 고향보다 나은 곳이 없고, 더욱이 이곳 광한루보다 나은 곳이 없더라"라며 용성지(龍城誌)로 했다. 또 일설에는 ”호남의 승경으로 달나라에 있는 궁전 광한청허지부가 바로 이곳이 아니던가“하고 감탄하여 그 후 광한루로 개칭되었다.
 
광한루 앞뒤에는 ‘호남제일루(湖南第一樓), 계관(桂觀), ’광한루(廣寒樓)란 편액이 걸려있다. 호남제일루라는 말 그대로 호남에서 제일가는 누각이라는 뜻이며, 광한과 청허부는 하늘나라 월궁의 옥경에 들어서면 ‘광한 청허지부’가 있다는 신화적 전설을 상징하고, 계관은 달나라의 계수나무 신궁을 상징한다. 광한루 누각에 걸린 여러 편액 중 광한루란 편액은 신익성, 호남제일루와 계관의 편액은 1855년 남원부사 이상억이 누각을 중수하면서 손수 써 걸었다. 이 중 계관의 편액은 동학농민전쟁 때 없어진 것을 1930년대 광한루를 대대적으로 보수할 때 남원유지 강대형이 다시 써 건 것이다. 또한 현재 광한루에 걸린 광한루란 편액은 전 민의원 조정훈이 쓴 글씨이다.
 
1879년 광한루가 차츰 북쪽으로 기울어져 이를 방지하기 위해 루 북쪽에 다락(월랑)을 세워 층층대를 만들어 놓았다. 북쪽의 층층대는 1877년(고종14년)에 부임한 남원부사 이용준이 광한루가 퇴락하여 본관 전체가 북쪽으로 기울어져 무너질 우려가 있어 수지면 고평리에 사는 추(秋) 대목의 묘안을 받아들여 북쪽에 누를 오르내리는 계단을 만들되 본관과 같이 아름드리 기둥을 세워 튼튼하게 고정시켜 본관의 기울음을 바로 잡고 외관으로도 더 화려하게 하였다. 이는 결과적으로 누각 건축사상 큰 의의를 가지게 되는데 그것은 우리나라 누각에 월랑을 가설하게 된 시초이며 이전까지는 누상을 오르내리는 사다리만 설치하였다.
 
3.2. 오작교
 
까마귀 오(烏), 까치(鵲), 다리(橋)자를 쓴다. 견우와 직녀의 전설이 담긴 바로 그 다리이다.[2]
 
1461년(세조 7) 남원부사 장의국이 광한루를 수리하면서 다리를 새로놓고 오작교라 부르게 됐다. 그 이후 광한루는 정유재란때 불타 1626년 복원됐지만 오작교는 처음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오작교는 길이 57m, 폭 2.4m, 4개의 홍예경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현존하는 연지교 중 국내에서는 규모가 가장 크다.
오작교를 함께 건너면 부부 금실이 좋아진다는 전설이 있고 춘향과 이도령의 사랑이 어려있는 곳이기에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처녀가 아닌 사람이 다리를 건너면 다리가 무너진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3.3. 완월정
 
1971년 신축. 동쪽을 향해 있는 수중누각이다. 옛날 옥황상제가 계식 옥경에는 광한전이 있으며, 그 아래 오작교와 은하수가 굽이치고 아름다운 선녀들이 계관의 절경 속에서 즐겼다는 전설이 있다. 이 전설에 따라 광한루는 천상의 광한전을 재현한 것이며, 이 완월정은 지상인이 달나라를 즐기기 위하여 전통 조선식 누각을 세워 광한루원의 절경을 한층 돋보이게 하고 있으며, 춘향제 등 각종 행사를 치르는 무대로 활용하고 있다.
 
4. 교통편
 
남원역에서 남원시 시내버스 133번, 161번, 142번으로 이동할 수 있다. 남원고속버스터미널에서는 남원시 시내버스 220번, 281번, 230번, 211번, 161번, 공용버스터미널에서는 남원시 시내버스 101번과 220번을 이용할 수 있다. 어디서 접근해도 택시비 5천 원 이내 구간이다.
 
승용차로는 광주대구고속도로 남원IC가 가장 가깝다.
 
5. 입장료
 
어른 3,000원, 청소년 및 군인 1,500원, 어린이 1천 원, 남원시민은 무료이다.
 
-주차 요금
ㆍ승용차 당일 주차 2천 원, 월 주차 3만 원
ㆍ15인승 이하 소형버스 당일 주차 2천 원, 월 주차 3만 원
ㆍ16인승 이상 중대형버스 당일 주차 4천 원, 월 주차 6만 원
 
6. 인근 관광지 및 편의시설
 
구 도심 남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만복사 절터나 만인의총 등으로 이동하기 편하다.
 
멀지 않은 곳에 승월교나 사랑의 다리를 통해 춘향테마파크로 향할 수도 있으니 참고하자.
 
 
 
 
●춘향이는 그네를 타고사람들은 아름다운 풍경과 ‘썸’을 타는 곳-전라북도토탈관광
 
◈지상의 인간이 천상의 세계를 노닐다
 
곳은 원래 1419년 황희 정승이 남원으로 유배되어 왔을 때 ‘광통루’란 작은 누각을 지어 산수를 즐기던 장소였단다.
 
달나라 궁전을 뜻하는 ‘광한’으로 이름이 바뀐 것은 세종 26년(1444)때의 일이다. 당시 하동 부원군 정인지가 이곳의 아름다운 경치에 반해 달나라 미인 항아가 사는 월궁 속 ‘광한청허부’를 본따서 ‘광한루’라 바꿔 부르게 된 것.
 
광한루 앞 호수 속에는 세 개의 작은 섬이 있다. ‘영주(한라산)’, ‘봉래(금강산)’, ‘방장(지리산)’을 뜻하는 세 개의 삼신산을 표현한 것이란다. 3개의 섬이 동서방향으로 거의 같은 간격으로 배치되어 있다. 호수 북쪽 광한루 앞에는 돌자라가 동남방향으로 향해 놓여 있다. 이는 신선사상에 입각한 지킴이의 기능을 갖고 있어 전체적으로 광한루원 (명승 제33호)은 넓은 은하세계 즉 천체우주를 상징한다. 이런 내력을 몰라도 좋다.
 
호수에 비치는 영주각과 봉래정, 방자정의 모습, 그리고 초록이 무성한 나무들의 물그림자에 취하다 보면 이곳이 마치 딴 세상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몽룡과 춘향이 이 풍경 속에서 서로를 바라 보았으니 어찌 상대가 어여뻐 보이지 않았겠나.
 
 
◈부부 금술 좋아지는 사랑다리, 오작교
 
광한루 서편에는 오작교가 있다. 1년에 단 하루, 칠월칠석에 은하수 동쪽과 서쪽으로 떨어져 살던 견우와 직녀가 까마귀와 까치가 만든 다리를 밟고 만나는 다리, 옥황상제의 딸 직녀와 미천한 소몰이였던 견우의 사랑은 신분의 벽을 뛰어넘은 이도령, 성춘향의 사랑과 닮았다.
 
그래서 ‘오작교’는 ‘까마귀 오(烏), 까치 작(鵲), 다리 교(橋)’자를 쓴다. 그런 연유에서일까. 오작교를 밟으면 부부 금슬이 좋아지고 연인은 영원한 사랑을 꿈꿀 수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한마디로 사랑의 다리인 것. 손을 잡은 젊은 연인이 서로에게 의지해 오작교를 건넌다. 역시 사랑이 있는 풍경은 아름답다.
 
 
◈달나라를 즐기는 수중누각, 완월정
 
바람에 넘실거리는 버드나무 이파리 사이로 완월정이 보인다. 완월정은 동쪽을 향해 있는 수중누각이다.
 
광한루가 천상의 광한전을 재현한 것이라면, 완월정은 지상에서 달나라를 즐기기 위해서 만든 것. 아름다운 선녀들이 달나라의 계수나무 신궁의 절경 속에서 즐겼다는 전설에 뿌리를 두고 있다.
매표소를 지나 광한루원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누각이기도 한데 시야가 트여 있어 광한루원의 풍경을 막힘없이 바라볼 수 있다.
 
광한루원의 모든 것은 혼자 도드라지지 않는다. 누각과 호수, 오작교와 자연이 서로를 돋보이게 해준다. 사랑이 그이를 높여 둘이 함께 높아지는 일인 것처럼 해마다 완월정은 춘향제의 주요무대가 된다.
 
◈사랑 사랑 내 사랑이야, 온통 사랑이로구나
 
광한루가 앉아 있는 방향에서 동편으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춘향사당이 있다. 임향한 일편단심을 의미하는 ‘단심문’을 지나 사당에 들면 ‘열녀춘향사’라는 현판이 보인다.
 
안에는 춘향의 영정이 안치되어 있다. 여기에서 축원을 하면 백년가약이 이루어진다는 속설이 알려지면서 참배객이 제법 많다고 한다. 이곳 말고도 광한루원 곳곳에서 춘향을 만날 수 있다.
 
춘향의 일대기를 9폭의 대형 화폭에 담아놓은 춘향관, 춘향과 이몽룡이 백년가약을 맺은 부용당과 행랑채를 재현해 놓은 월매집도 있다.
그네에 올라 춘향이가 되어볼 수 있다.
 
 
 
 
 
●천년의 사랑이 숨 쉬는 겨울 남원 광한루원을 가다.-시사종합신문
2021년 01월 28일(목) 19:00
 
[시사종합신문 = 남재옥 기자] 전라북도 남원 하면 떠오르는 것, 시대를 뛰어넘고 세대를 아우르는 성춘향과 이몽룡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이다. 남원은 춘향의 고향이자 고전 춘향전의 발상지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있어서 영원한 사랑이라면 가장 먼저 머릿속에 떠오르는 곳, 그중 가장 핵심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겨울 광한루원을 다녀왔다.
 
춘향전의 배경으로 유명한 광한루원은 우리 선조들이 자연에 순응하고 자연을 닮고자 하는 생각을 표현해낸 공간으로, 신선이 사는 이상향을 지상에 건설한 조선시대 대표적인 정원으로 명승 제33호로 남원시 요천로에 자리 잡고 있다.
 
광한루원은 경회루, 촉석루, 부벽루와 함께 우리나라 4대 누각에 들 정도로 만듦새가 뛰어난 곳으로, 우리 선조들이 자연에 순응하고 자연을 닮고자 하는 생각을 표현해낸 공간으로, 신선이 사는 이상향을 지상에 건설한 조선시대 대표적인 정원이라 할 수 있는데, 넓은 대지위에 한국적인 미가 가장 잘살아난 기와지붕과 마치 견우와 직녀의 오작교처럼 광한루원과 호수를 연결하는 오작교가 만들어내는 하모니는 정말 이야기속의 춘향과 몽룡이 손을 잡고 정답게 오작교 위를 건너 광한루원의 누각에 올라 사랑을 속삭일 것 만 같은 착각을 만들어낸다.
 
 
특히, 하늘나라 월궁을 광한루라 하였고, 그 아래 천상의 은하수를 상징하는 호수와 오작교를 놓았으며, 신선들이 산다는 전설속의 삼신산을 연못 가운데 조성하여 전체적인 구성이 천체우주를 상징한다고 한다. 이외에도 완월정, 춘향사당, 춘향관, 월매집, 그네, 전통놀이 체험장 등 오랜 역사와 더불어 다양한 볼거리와 체험을 해볼 수 있는 곳이다.
 
아이의 손을 잡고 도란도란 춘향전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가족들과 마치 자신들이 성춘향과 이몽룡인 듯한 연인들이 어우러져 광한루원 전체에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인연을 상징한다는 월하노인의 붉은 실들이 둥실 둥실 떠다니는 듯한 광경을 연출한다.
 
흔히들 아름답고 슬픈 사랑이야기하면 영국의 극작가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떠올린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그보다 더 오래전에 쓰인 춘향전이 있다. 사랑하는 이를 위해 믿음과 신의를 다한 성춘향과 이몽룡처럼 이들의 사랑이야기가 가득찬 남원 광한루원으로 이 겨울이 가기전 즐거운 발걸음을 옮겨보는 것을 추천해본다.
 
 
●관아원림의 상징 광한루원 - 우리명승기행
 
 
-문화재 지정 명승 제33호
-소    재   지 전북 남원시
 
동문 밖 나가면 금수청풍(錦水淸風)의
백구(白鷗)난 유랑(遊浪)이요
(중략)
남문 밖을 나가면
광한루(廣寒樓), 오작교(烏鵲橋), 영주각(瀛洲閣)이 있사온디
삼남 제일승지니 처분하여서 가옵소서
 
늬 말을 듣더라도 광한루가 제일 좋구나
광한루 구경가게 나귀 안장 속히 지어
사또님 모르시게 삼문 밖에 대령하라
- 〈춘향가〉 중에서
 
남원은 《춘향전》의 배경이 된 고장이다. 남원시로 들어가는 입구에 위치한 ‘춘향이 눈물방죽’을 시작으로 광한루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춘향을 상징한다. 이 지방에 전해지는 판소리와 국악의 중심에도 춘향이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광한루원이 단지 춘향과 관련된 무대 정도로만 알고 있다. 하지만 이는 글과 이야기와 노래로 전해지는 허구일 뿐이다. 광한루원은 《춘향전》의 무대이기보다는 조선시대 지방관아에서 조영한 관아원림이라는 것이 더욱 중요한 역사적 사실이다.
 
호남 지방의 내륙으로부터 지리산에 닿아 있는 남원시에는 섬진강의 지류인 요천이 흐르고 그 가장자리에 너무나 잘 알려져 있는 광한루원이 위치하고 있다. 지금은 광한루원과 요천 사이로 제방이 높게 축조되었고 바로 옆에는 도로가 넓게 개설되어 있어 광한루원과 요천의 관계가 단절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예전에는 요천변을 따라 천변 숲이 무성하게 조성되어 있었으며 광한루원이 이 숲과 연결되어 아름답고 광활한 풍광을 연출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광한루원은 1983년 ‘사적 제303호’로 지정되었다가 2008년에 명승 제33호로 재분류된 국가유산이다. 2007년에 명승지정 기준이 개정되었을 때 고정원, 원림, 옛길 등과 같은 역사 · 문화 경관적 가치가 뛰어난 경승지를 명승으로 지정하는 발판이 마련되어 광한루원 또한 명승이 된 것이다.
 
광한루원은 관아원림을 대표하는 고정원으로 우리나라 조경사에서 매우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조선시대 지방관아에서는 누각을 지어 경영한 예가 많았다. 남원의 광한루를 비롯해 진주의 촉석루, 밀양의 영남루, 삼척의 죽서루, 평양의 부벽루, 무주의 한풍루 등이 모두 지방관아에서 지은 공루다. 이러한 누각들이 서 있는 위치는 대부분 경관이 수려한 곳으로 주변의 경치를 감상하기 좋은 장소를 선택해 누각을 지은 것임을 알 수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광한루는 누각과 더불어 고정원이 매우 아름답게 조성된 특별한 관아원림이다.
 
 
광한루원은 2층 누각인 광한루를 중심으로 완월정, 영주각, 방장정, 삼신산과 연못, 오작교 등을 비롯해 《춘향전》과 관련된 춘향사, 월매집 등이 설치되어 있다. 본래 이곳은 1419년 황희가 ‘광통루’라는 작은 누각을 지어 산수를 즐기던 곳이었다. 그런데 세종조에 정인지가 누원의 경치를 보고 감탄하여 마치 달나라의 미인 항아가 살고 있는 월궁의 ‘광한청허부’와 같다고 하여 광한루로 이름을 고친 것이라 한다. 그 후 남원부사로 부임한 장의국은 광한루를 중수하고 요천의 맑은 물을 끌어들여 은하수를 상징하는 못을 만들었다. 이곳에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사랑의 다리 오작교도 함께 설치했다.
 
 
선조조에 관찰사로 부임한 정철은 연못 속에 신선이 살고 불로초가 있다는 봉래, 방장, 영주의 삼선도를 조성했다. 그리고 봉래섬에는 백일홍, 방장섬에는 대나무를 심고 영주섬에는 영주각이라는 정자를 세웠으며 또한 연못에 연꽃을 심어 광한루원을 신선의 땅으로 승화시켰다. 조선시대 정원은 유교문화, 풍수지리, 음양오행설, 신선사상 등에 그 기초를 두고 조성되었다. 그중에서도 신선사상이 가장 큰 영향을 주었는데 광한루원 역시 이를 바탕으로 조성된 대표적인 고정원으로서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광한루원은 정유재란 때 누각이 소실 및 황폐화된 후 1639년 남원부사 신감에 의해 다시 복원되었다. 이후 구한말과 일제강점기를 지나면서 수차례의 중수가 이루어졌으며, 공간의 구성이 바뀌고 시설이 추가되어 현재의 광한루원을 형성했다. 그러나 광한루원의 가장 큰 변화는 《춘향전》에 의한 장소의 상징성이라고 할 수 있다. 광한루원은 1419년에 설립되어 약 600여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춘향전》과 관련된 춘향사는 1931년에 지어졌다. 현재 이곳에는 ‘만고열녀춘향사’라는 현판이 걸리고 김은호가 그린 춘향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다.
 
 
요즈음 광한루원을 찾는 이들의 상당수가 이곳이 조선시대 지방의 관아원림을 대표하는 고정원이라는 중요한 역사적 사실은 모른 채 《춘향전》의 무대로만 기억하고 있다. 사실 《춘향전》이라는 이야기가 광한루원의 장소성을 변화시킨 것은 춘향사가 건립된 이후 불과 80여 년밖에 되지 않았다. 광한루원에 대해 일반대중이 이처럼 잘못된 인식을 가지게 된 상황을 고려해보면 명승으로 지정된 국가유산의 정체성에 관한 올바른 인식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된다.
 
광한루원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조선시대의 관아원림이라는 사실이다. 광한루원은 앞으로 《춘향전》과 관련된 이질적인 요소를 누원 경역 내의 특정한 장소로 이전해야 한다. 또한 관아원림의 특성이 잘 나타날 수 있도록 오작교, 봉래도, 방장도, 영주도 등이 위치한 구역 내에는 전통원림 시설만이 자리할 수 있도록 관아정원을 완전히 복원해야 한다. 이러한 정비를 통해서 광한루원을 찾는 사람들에게 올바른 정체성을 전달해야 할 것이다.
 
 
 
●광한루원(廣寒樓苑) - 디지털남원문화대전
 
 
 
-지역 전라북도 남원시 천거동 78[요천로 1447]
 
 
 
전라북도 남원시 천거동에 있는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대표적인 정원. 광한루원은 신선의 세계관과 천상의 우주관이 잘 표현되어 있다. 광한루 전면 동서 양편에 평호(平湖)를 만들어 은하수를 상징하게 하였으며, 못 안에는 삼신산(三神山)을 상징하는 삼신도(三神島)를 만들어 한 섬에는 대나무를, 또 한 섬에는 백일홍을 심고, 나머지 한 섬에는 연정(蓮亭)을 지었다.
 
또 가운데에는 연(蓮) 꽃을 심고 못을 가로지르는 오작교(烏鵲橋)를 놓음으로써 광한루원은 하늘나라를 상징하는 조경이 되었다.광한루(廣寒樓), 춘향사(春香祠), 오작교, 비석군, 월매집, 연지(蓮池), 그네 놀이터 등이 아름다운 수목(樹木)과 어우러져 장관을 이루는 곳으로 고전 소설 「춘향전」의 주무대이기도 하다.
 
[건립경위]
 
고려시대에 황감평(黃鑑平)이 고려 때 무인난(武人亂)을 피해 남원에 낙향하여 ‘일재(逸齋)’라고 하는 조그마한 서실(書室)을 지은 데서 비롯되었다.
 
[변천]
 
황감평이 지은 일재(逸齋)의 옛터에 후손 황희(黃喜)가 1419년(세종 원년) 광통루(廣通樓)를 세웠다. 1434년(세종 16)에 부사 민여공이 주변을 고치고 새로 누각을 중수하였다.
 
1444년(세종 26) 정인지가 누각에 올라 승경에 대하여 감탄하고 주위 경치가 월궁(月宮)의 광한청허부(廣寒淸虛府)와 흡사하다고 하여 광한루로 고쳐 불렀다. 1461년(세조 7)년 장의국(張義國)은 요천의 물을 끌어다가 누(樓) 앞에 은하수를 상징하는 커다란 연못을 파고 견우와 직녀의 전설이 담긴 오작교를 가설하였다.
 
누각은 1597년 정유재란 때 왜구의 침입으로 소실되었다. 1607년(선조 40) 남원부사 원진이 소실된 누각 자리에 작은 누(樓)를 세웠다. 1626년(인조 4) 신흠(申欽)의 아우인 남원부사 신감이 작은 누(樓)를 헐고 그 자리에 원래의 크기로 복원하였다. 영주각은 1792년(정조 16)에 부사 이만길이 세운 것이다.
 
1855년(철종 6)에는 남원부사 이상억이 광한루 누각을 대대적으로 보수하고 “호남제일루(湖南第一樓)”라는 현판을 크게 써서 걸었다. 이 현판은 지금은 현관 옆에 걸려 있다. 1877년(고종 14) 광한루 본관이 차츰 북쪽으로 기울어지자 부사 이용준이 익루를 만들었다. 1971년 경역 확장 작업으로 크고 아름답게 단장되었다.
 
[구성]
 
광한루원은 관아에서 조성한 것이다. 자연 경관을 훼손하지 않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잘 이용하여 그에 어우러진 건축물을 만들고 자연과 인공의 조화를 이루게 하였다. 특히 광한루원은 신선이 사는 이상향의 세계를 실현하려는 마음으로 조성하였다.
 
광한루원은 광한루, 오작교, 청허부, 춘향사, 30 비석군, 호석, 영주각, 완월정, 방장정, 연지와 비단 잉어, 호수와 삼신산, 편액 100여 점, 월매집, 그네타기와 널뛰기 놀이터, 대나무 숲과 버드나무와 백일홍 등 여러 다양한 종류의 수목들로 구성되어 있다.
 
누각에는 분합문을 달아 열어 놓고 지내니 외부에서 보았을 때는 건물이 환하게 뚫린 느낌이 들게 하고 필요할 때만 문을 사용하였다. 누각 정면의 현판은 선조 임금의 사위였던 신흠의 아들 동양위(東陽尉) 신익성(申翊聖)의 글씨이다. 누각 천장과 벽면 가득 실려 있는 편액은 광한루의 또 다른 자랑거리로, 그 내용은 주로 광한루에 올랐을 때의 아름다운 경치와 그에서 느낀 감회를 표현한 시이다.
 
광한루원의 아름다움을 찬양한 시와 누정기, 중수기 등으로 200여 수의 시문(詩文)이 있다. 한시를 지은 작가들이 조선시대 전기로부터 중기, 후기까지 고르게 분포되어 있어 가히 조선시대 전체의 한시(漢詩) 문학을 한 곳에서 지켜볼 수 있는 한시문학의 보고(寶庫)라고 할 수 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편액으로는 김종직, 정철, 신흠, 백광훈, 이경여, 송대빈 등의 작품이 있다.
 
누각 앞에 있는 호수는 은하를 상징하도록 꾸미고 하늘의 세계를 연상케 하는 오작교 다리를 놓아 천상옥계(天上玉界) 같은 느낌이 들도록 하였다. 오작교는 선조 15년(1582) 남원부사 장의국이 삼신산과 더불어 조성하였다. 현재 폭 2.8m, 길이 58m, 네 개의 수로 구멍을 가진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홍예(虹蜺) 다리이다.
 
청허부는 광한루원을 들어가는 정문이다. 1971년 경역을 확장하면서 신축한 건물이다. 달나라 옥경이 광한청허부이므로 옥경에 들어가는 문이라는 뜻으로 청허부라 명명하였다. 솟을 삼문에 맞배지붕 형태의 고풍스런 대문이다. 청허부 현판은 김충현(金忠顯)의 글씨이다
 
춘향사는 광한루원 동쪽 모퉁이에 있는 「춘향전」에 나오는 절개의 여인 성춘향의 영정을 모신 사당이다. 절개를 상징하는 대나무 숲으로 쌓여 있다. 일제강점기에 남원 사람 이현순이 발의하여 권번 선생이었던 이백삼과 퇴기 최봉선 등이 뜻을 모아 기금을 모았는데, 진주·평양·개성·동래 등 전국 권번을 찾아가 성금을 모금하여 1931년 사당을 건립하고 그해 6월 단오절에 준공식과 함께 제사를 지냈다.
 
사당 안의 단아한 자태의 춘향 영정은 이당 김은호가 그렸다. 원래 진주사람 강주수가 그린 것이 있고, 나중에 김은호가 그린 것을 현준호가 기증하였는데, 그것이 한국전쟁 당시 훼손되었다. 1962년 정부내각수반 송요찬이 김은호가 그린 그림을 기증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춘향사 옆에 담장을 따라 길게 늘어서 있는 30기의 비석은 두 줄로 나란히 세워져 있다. 전라도나 남원에 수령이나 어사로 봉직하여 선정을 베풀거나 남원 지역민에게 덕을 베푼 사람들에 대한 선정비와 선덕비들이다. 이 비석은 본래 동헌이나 부내 여러 곳에 산재해 있던 것을 광복 후에 비석의 보존과 도시 미화의 일환으로 광한루원 안에 옮겨 보존하게 되었다.
 
호석(虎石)은 호랑이 모양의 돌조각이다. 광한루원 완월정에서 서문 방향에 위치해 있다. 전라도관찰사 이서구에 의해서 만들어졌다고 전한다. 전언에 의하면 남원시 수지면 고평리 속칭 개머리산[견두산]에 들개떼들이 인명을 해치고 큰 화재가 빈발하여 괴변이 잦았다.
 
이서구는 남원부사에게 명하여 개는 호랑이로 제압해야 한다고 말하고 호석을 만들어 견두산을 바라보게 하였다. 광한루 경역이 확장되기 이전에 시장자리였는데 그곳에 호석이 있었으므로 그곳을 한 때 호석거리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완월정은 1971년 경역 확장 당시에 수중(水中)에 세워진 정자(丁字) 집 모양의 누각이다. 영주각은 1794년(정조 18)에 광한루원 안에 세운 누각으로 삼신산의 하나인 영주산의 이름을 따서 영주각이라 하였는데, 정면 3칸, 측면 2칸 겹처마에 마루와 계단만 있다.
 
방장정은 1963년 당시 남원군수 이화익의 창안으로 세웠는데, 육각정 형태의 정자이다. 삼신산, 봉래산, 영주산, 방장산의 세 산에 조응하여 완월정, 영주각, 방장정을 지은 것으로 보여진다.
 
월매집은 고전소설 「춘향전」의 무대로 자주 등장하는 집이다. 비교적 최근에 만든 집으로, 문간채를 들어서면 마당을 지나 세워진 초가삼간 집이다. 월매집 앞쪽에는 그네와 널뛰기판이 있다.
 
[현황]
 
해마다 음력 5월 5일 단오절에는 광한루원에서 춘향제가 열린다. 2008년 1월 8일 명승 제33호로 지정되었다.
 
 
●요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요천(蓼川)은 섬진강의 지류들 중 하나로서 전라북도 장수군 장안산(1237m)과 팔공산(1151m)에서 발원해 전라북도 남원 분지에 있는 남원시의 중앙부를 지나 남원시 금지면 하도리에서 섬진강으로 흘러들어가는 전라북도의 강이다. 하천연장은 60.03km이며, 유역면적은 485.70㎢이다. 하천 주위에 여뀌꽃이 많이 핀다하여 蓼(여뀌 요)川이라 한다.
 
 
 
 
<참고>
 
●우주를 담은 조선 정원의 밤과 낮, 남원 광한루원 - 대한민국 구석구석
 
 
 
●광한루원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광한루원 (廣寒樓苑) - 문화재청
 
 
 
●광한루원(廣寒樓苑)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광한루원 - 나무위키
 
 
 
●광한루원 - 디지털남원문화대전
 
 
 
●춘향이는 그네를 타고사람들은 아름다운 풍경과 ‘썸’을 타는 곳-전라북도토탈관광
 
 
 
 
●관아원림의 상징 광한루원 - 우리명승기행
 
 
 
●남원 가볼만한곳 : 남원 예촌 광한루원 - 네이버 블로그
 
 
 
●남원 대표 여행지 광한루원 광한루 오작교 주차장 입장료 시간 - [생각과 실천]
 
 
●성춘향과 이몽룡이 그려지는, 남원 광한루
 
 
 
 
 
●[UHD] 하늘의 정원, 남원 광한루원
 
 
●[남원여행] 1582년에 만들어진 남원 광한루원에서 한복을 입고 춘향이의 향수를 느끼다
 
 
 
●남원광한루원 2021년 봄 풍경 4K 풀영상 (남원여행코스, 남원여행지, 남원가볼만한곳, 남원여행 브이로그, 남원여행 당일치기)
 
 
 
●천년의 사랑이 숨 쉬는 겨울 남원 광한루원을 가다.-시사종합신문
 
 
 
●요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