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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건국 육부촌장을 기리는 육부전(六部殿,경주양산재, 楊山齋) 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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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답사

2022. 4. 6.









신라 건국 육부촌장을 기리는 육부전(六部殿,경주양산재, 楊山齋) 탐방

(2022/04/03현재)


경상북도 경주시 남간길 37-10(탑동)에 있는 신라 건국 육부촌장을 기리는
육부전 (六部殿,경주 양산재, 楊山齋) 탐방 전경 입니다.

과거 양산재(楊山齋)로 불렸던 육부전(六部殿)은 양산 아래 자리 잡고 있는
이 전각건물(殿閣建物)은 진한(辰韓) 육촌장(六村長)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사당이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따르면 신라가 건국하기 전 진한 땅에 고조선의 유민들이
산곡 사이에 나뉘어 살면서 육촌을 이루었다. 첫째는 알천양산촌(閼川楊山村), 둘째는
돌산고허촌(突山高?村), 셋째는 취산진지촌(?山珍支村), 넷째는 무산대수촌(茂山大樹村),
다섯째는 금산가리촌(金山加利村), 여섯째는 명활산고야촌(明活山高耶村)이라 하였다.

서기전 57년에 여섯 촌장이 알천(閼川) 언덕에 모여 알에서 탄생한 박혁거세(朴赫居世)를
추대하여 신라의 초대 임금이 되게 하니 이 해가 바로 신라의 건국년(建國年)이 되었다.
그 후 신라 제3대 유리왕(儒理王)이 여섯 촌장들의 신라 건국 공로를 영원히 기리기 위해
육촌을 육부(六部)로 고치고 각기 성을 내리게 되니 바로 양산촌은 양부(梁部) 이씨(李氏),
고허촌은 사량부(沙梁部) 최씨(崔氏), 대수촌은 점량부(漸梁部) 또는 모량부(牟梁部) 손씨(孫氏),
진지촌은 본피부(本彼部) 정씨(鄭氏), 가리촌은 한기부(漢祇部) 배씨(裵氏), 고야촌은 습비부
(習比部) 설씨(薛氏)이다.

이로써 신라 초대 여섯 성씨(姓氏)가 탄생되었고 각기 시조 성씨가 되었다. 이 사당은 1970년
이들 육촌장을 기리기 위해 건립하여 양산재(楊山齋)라고 부르다가 2019년에 강당을 새로
증축하고 육부전(六部殿)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진한 6부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진한 6부(辰韓六部) 또는 사로 6촌은 현재 한반도 동남쪽에 있었던 부족연맹체 진한에서 신라의 기반이 된 서라벌의 여섯 부락이며, 씨족 집단으로 육촌(六村) 또는 육부촌(六部村)이라고도 한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따르면, 고조선의 유민이 나뉘어 살며 생겨났다고 하였다.[1] 
 
첫째는 알천(閼川)의 양산촌(楊山村), 둘째는 돌산(突山)의 고허촌(高墟村), 셋째는 취산(觜山)의 진지촌(珍支村) 혹은 간지촌(干珍村), 넷째는 무산(茂山)의 대수촌(大樹村), 다섯째는 금산(金山)의 가리촌(加利村 혹은 加里村), 여섯째는 명활산(明活山)의 고야촌(高耶村)이다.[2]
 
유리 이사금이 32년에 개편하여 양산촌을 양부(梁部)라 하며 이씨(李氏)를, 고허촌을 사량부(沙梁部)라 하며 최씨(崔氏)를, 대수촌을 점량부(漸梁部) 혹은 모량(牟梁)이라 하며 손씨(孫氏)를, 간진촌을 본피부(本彼部)라 하며 정씨(鄭氏)를, 가리촌을 한기부(漢祇部)라 하며 배씨(裵氏)를, 고야촌(명활부, 明活部)를 습비부(習比部)라 하며 설씨(薛氏) 성을 주었다.[3]
 
대체로 부족사회의 6촌이 점차적으로 분화되어 단계적으로 행정 구역의 명칭으로 변화된 것 같다.
 
 
●개요
 
일찌기 진한 땅에서도 지금의 경주지역에는 골짜기마다 조선의 유민들이 흩어져 살았는데, 6촌이 있었다. 6촌의 촌장들이 모여 박혁거세를 맞아 '사로(斯盧)'의 왕으로 받들어 진한 12소국의 하나인 사로 6촌이 되고, 점차 신라 6부로 발전하였다. 이들이 나중에 그 공으로 각기의 성(姓)을 받아 신라 6성을 이루었다고 전하고 있다.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한 이후에는 경주 6부로 개편되었다.
 
사로 6촌의 촌장들은 처음 표암봉(瓢嵒峰)에 내려온 알천 양산촌장 알평(謁平), 형산(兄山)에 내려온 고허촌장 소벌도리[4](蘇伐都利), 화산(花山)에 내려온 진지촌장 지백호(智伯虎), 이산(伊山)에 내려온 대수촌장 구례마(俱禮馬), 명활산(明活山)에 내려온 가리촌장 지타(祉陀), 금강산(金剛山)에 내려온 고야촌장 호진(虎珍, 설거백)을 말한다.
 
●6촌의 근거지
 
▣알천 양산촌
 
알천[5] 양산촌의 남쪽은 고려시대의 담엄사이다. 고려시대의 파잠(波潛)·동산(東山)·피상(彼上)·동촌(東村)이 여기에 속한다.[6]
 
경주시 동방(東方), 인왕(仁旺), 구황(九黃), 노동(路東), 노서(路西), 동부(東部), 성동(城東), 성건동(城乾洞) 일대.
 
▣돌산 고허촌
 
고려시대의 구량벌(仇良伐) · 마등오(麻等烏) · 도북(道北)· 회덕(廻德) 등 남촌(南村)이 여기에 속한다.[7]
 
경주시 배동(拜洞), 내남면 덕천리, 울주군 두서(斗西), 두동면(斗東面) 일대.
 
▣취산 진지촌
 
진지(또는 빈지, 빈자, 영지)촌이다. 고려시대의 시파 등 동남촌이 여기에 속한다.[8]
 
경주시 진현동(進峴洞), 외동읍(外東邑) 일대.
 
▣무산 대수촌
 
무산[9] 대수촌[10]은 고려시대의 박곡촌(朴谷村) 등 서촌(西村)[11]이 여기에 속한다.[12]
 
경주시 현곡면(見谷面) 일대.
 
▣금산 가리촌
 
고려시대의 금강산 백률사의 북쪽 산이다. 고려시대의 상ㆍ하서지(上下西知) · 내아(乃兒) 등 동촌(東村)이 여기에 속한다.[13]
 
경주시 감포읍(甘浦邑) 양남(陽南). 양북면(陽北面) 일대.
 
▣명활산 고야촌
 
고려시대의 물이촌(勿伊村) ·잉구미촌(仍仇旀村) · 궐곡(閼谷, 또는 갈곡(葛谷)) 등 동북촌(東北村)이 여기에 속한다.[14]
 
경주시 천북면(川北面) 화산(花山), 물천(勿川) 동산리(東山里) 일대.
 
●신라 6부
 
사로가 신라로 발전하면서 6촌은 6부로 자리잡았다.
 
▣양산촌은 급량부(及梁部, 또는 양부(梁部)),
▣고허촌은 사량부(沙梁部, 또는 사탁부(沙啄部)),
   ▶인물 : 최치원[15]
 
▣진지촌은 본피부(本彼部),
▣대수촌은 점량부(漸梁部, 또는 모량[16](牟良, 牟梁)),
 
▣가리촌은 한기부(漢歧部, 또는 한지부(漢祗部)),
▣고야촌은 습비부(習比部)로 자리잡아 신라의 6부로 발전했다.
   ▶인물 : 원효[17], 설총
 
양산촌, 고허촌, 진지촌은 왕경 내에 있었고, 대수촌, 가리촌, 고야촌은 외곽 지역에 있었던 것으로 비정된다. 
 
왕경 내의 양산촌, 고허촌, 진지촌이 세력이 컸을 것이고, 그 중에서도 초기에는 양산촌이 중추로 있다가 6부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고허촌인 사량부와 진지촌인 본피부가 핵심적 역할을 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18][19]
 
●신라 6성
 
서기 32년(유리왕 9) 6부의 후손들이 알평은 이씨(李氏), 소벌도리는 최씨(崔氏), 지백호는 정씨(鄭氏), 구례마는 손씨(孫氏), 지타는 배씨(裵氏), 호진은 설씨(薛氏)를 성씨(姓氏)로 받아[20] 각 성씨의 시조가 되었고, 뒤에 후손들이 모두 계림(鷄林, 경주)을 본관으로 삼았다고 한다.[21]
 
왕성(王姓)인 박씨(朴氏), 석씨(昔氏), 김씨(金氏)와 함께 신라 토성(土姓)으로 인식된다.[22]
 
●경주 6부
 
고려가 통일한 뒤인 940년(고려태조 23)에 '경주'(慶州)라는 이름과 함께 급량부는 중흥부(中興府), 사량부는 남산부(南山部), 본피부는 통선부(通仙部), 점량부는 장복부(長福部), 한기부는 가덕부(加德部), 습비부는 임천부(臨川部)로 개편되었다.
 
 
 
■양산재, 신라를 건국한 사로육촌의 촌장들 - 책방나정
 
 
경상북도 경주시 탑동에 있는 사당으로 1970년에 세운 재실(무덤이나 사당 옆에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지은 집)이다. 신라 건국 이전 서라벌 땅에 있었던 여섯 마을(사로육촌) 촌장들의 위패(제사를 받는 사람의 이름을 적은 나무패로 보통 밤나무로 만듬)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삼국유사』의 기록에 의하면 진한 땅에는 예부터 여섯 마을이 있었다고 하며 여섯 마을의 위치와 시조에 대해 기록하고 있는데, 각 마을의 시조들은 모두 하늘에서 내려왔다.
 
 
1. 알천 양산촌 : 남천 남쪽과 남산 서북쪽 일대에 위치하였다. 촌장은 알평으로 하늘에서 표암봉으로 내려왔는데 급량부 이씨의 조상이 되었다.
 
2. 돌산 고허촌 : 남천 이북, 서천 이동(일설에는 서천 이서)에 위치한 듯하다. 촌장은 소벌도리이며 하늘에서 형산에 내려왔는데 사량부 정씨의 조상이 되었다.
 
3. 무산 대수촌 : 서천의 지류인 모량천 유역에 위치한 듯하다. 촌장인 구례마가 하늘에서 이산(혹은 개비산)에 내려와 점량부 또는 모량부 손씨의 조상이 되었다.
 
4. 자산(취산) 진지촌 : 빈지촌·빈자촌·빙지촌이라고도 하는데 현재의 경주시 인왕동 일대에 위치한 듯하다. 촌장은 지백호라고 한다. 하늘에서 화산으로 내려와서 본피부 최씨의 조상이 되었다.
 
5. 금산 가리촌 : 북천 북쪽의 소금강산 일대에 위치한 듯하다. 촌장은 지타라고 한다. 하늘에서 명활산으로 내려와서 한기부 배씨의 조상이 되었다.
 
6. 명활산고야촌 : 명활산 서남쪽에서 낭산에 이르는 일대에 위치한 듯하다. 촌장은 호진이며 하늘에서 금강산으로 내려와 습비부 설씨의 조상이 되었다.
(삼국유사 제1권 기이 제1 신라시조 혁거세왕)
 
 
●『삼국사기』에는 혁거세 거서간이 나라를 세우기 전에 조선(우리가 흔히 이야기 하는 고조선)의 유민(망하여 없어진 나라의 백성)들이 산골짜기에 나뉘어 여섯 마을을 이루었다고 한다.
 
 
...조선의 유민이 산골짜기에 나뉘어 살아 여섯 마을을 이루었다. 첫째는 알천 양산촌, 둘째는 돌산 고허촌, 셋째는 취산 진지촌(혹은 우진부이라고도함), 넷째는 무산 대수촌, 다섯째는 금산 가리촌, 여섯째는 명활산 고야촌이다. 이것을 진한의 육부라고 하였다.
(삼국사기 권 제1 신라본기 제1 시조 혁거세거서간 조)
 
신라 제3대 유리이사금 9년(32)에 육부(사로육촌, 진한육촌)의 명칭을 고치고 이어서 성을 내려 주었다. 양산부(알천 양산촌)는 양부로 고치고 성은 이씨(시조의 이름은 알평), 고허부(돌산 고허촌)는 사량부로 고치고 성은 최씨(시조의 이름은 소벌도리), 대수부(무산 대수촌)는 점량부(모량)로 고치고 성은 손씨(시조의 이름은 구례마), 우진부(취산 진지촌)는 본피부로 고치고 성은 정씨(시조의 이름은 지백호), 가리부(금산 가리촌)는 한지부로 고치고 성은 배씨(시조의 이름은 지타), 명활부(명활산 고야촌)는 습비부로 고치고 성은 설씨(시조의 이름은 호진)로 하였다.
(삼국사기 권 제1 신라본기 제1 유리이사금 조)
 
 
신라를 세우는데 큰 역할을 한 여섯 마을의 시조인 촌장들의 성과 이름에 대해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의 기록에 차이가 있는데, 삼국사기의 기록을 따르는 것이 좋다.
 
사로육촌은 삼한 중 진한의 한 소국인 사로국을 이루었던 6개의 촌락으로 서벌육촌이라고도 한다. 삼국사기에는 알천양산촌, 돌산고허촌, 취산진지촌, 무산대수촌, 금산가리촌, 명활산고야촌 등 6개 촌이 서기 32년(유리이사금 9)에 6부로 고쳤다고 한다. 6촌의 위치는 지금의 경주시 일대이며, 각 촌의 크기는 지름이 약 10㎞ 정도였다고 한다.
 
 
 
사로 6촌 (斯盧六村)
  알천양산촌
(閼川楊山村)
돌산고허촌
(突山高墟村)
자산진지촌
(觜山珍支村)
무산대수촌
(茂山大樹村)
금산가리촌
(金山加利村)
명활산고야촌
(明活山高耶村)
6부명
(6部名)
급량부
及梁部
사량부
沙梁部
본피부
本彼部
점량부
漸梁部
한지부
漢祗部
습비부
習比部
촌장
(村長)
알평
謁平
소벌도리
蘇伐都利
지백호
智伯虎
구례마
俱禮馬
지타
祗陀
호진
虎珍
강림지
(降臨地)
표암봉
瓢巖峰
형산
兄山
화산
花山
이산
伊山
명활산
明活山
금강산
金剛山
후손 성씨
(後孫 姓氏)
이씨
李氏
최씨 · 소씨
崔氏 · 蘇氏
정씨
鄭氏
손씨
孫氏
배씨
裵氏
설씨
薛氏
 
 
 
■경주시, 육부전(양산재) 낙성식 개최
 
전학후묘의 배치에 따라 홍익문 전면에 강학공간인 강당 건립 - 관람 편의와 이해를 돕고 향토 문화재로서의 면모 일신 기대
변상범 기자   |   2019-09-22 [14:33]
 
[코리아투데이뉴스=경주] 경주시는 21일 신라 건국의 주역인 6촌장의 위패를 모신 육부전(양산재)에서 낙성식을 개최했다. 
 
 
이날 행사에는 주낙영 경주시장, 김석기 국회의원, 도·시의원, 양산재 보존회 관계자, 6촌장 성씨의 후손들, 박석김 대표자 및 관계자 등 200여 명이 참석했다.
 
이번 강당 낙성식은 양산재를 이용하는 이용자와 관광객의 관람에 편의와 이해를 돕는 한편, 전학후묘의 배치에 따라 제향공간인 입덕묘(立德廟)로 들어가는 홍익문(弘益門) 전면에 강학공간인 강당을 건립해 신라건국을 이룬 6촌장의 유서 깊은 역사를 재조명하고 향토 문화재로서의 면모를 새롭게 갖추고자 추진됐다. 
 
주낙영 경주시장은 “양산재 강당 낙성식은 6촌장의 신라건국 공로를 기리기 위한 역사·문화적 공간으로  재조명될 수 있는 기회”라고 하며, “신라의 기원에 대한 의미를 되새기며 천년고도 경주 문화유산의 깊은 격과 면모를 보여줄 수 있는 대표적인 향토 문화재로 자리매김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변상범 기자(tkpress82@naver.com) 
 
 
<참고>
 
●진한 6부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양산재, 신라를 건국한 사로육촌의 촌장들 - 책방 나정
 
 
 
●육부전(六部殿) - 문화유산 위키
 
 
 
●육부전 -대한민국 구석구석
 
 
 
●경주시, 육부전(양산재) 낙성식 개최 - 경주시
 
 
 
●경주시, 육부전(양산재) 강당 낙성식 개최 - 프레시안
 
 
 
●경주시, 육부전(양산재) 낙성식 개최 - 코리아투데이뉴스
 
 
 
●신라 건국 ‘육부 촌장’ 추계향사 봉행...초헌관에 이철우 도지사 -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