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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락산 전철역에 전시중인 클로드 모네전 탐방 & 봄꽃이 피고있는 주변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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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4. 27.









수락산 전철역에 전시중인 클로드 모네전 탐방 & 봄꽃이 피고있는 주변전경

(2022/04/26현재)


수락산 전철역 안에서 전시중인 프랑스의 화가로 인상주의 회화의
창시자 클로드 모네 그림 전시회 탐방과 봄꽃이 피고있는 주변 전경 입니다.

클로드 모네는 19~20세기 인상파를 주도했던 프랑스의 화가로 주요 작품은
<인상, 해돋이>와 <파라솔을 든 여인>과 <수련> 연작. 인상파 또는
인상주의의 창시자로 그 이름 또한 모네의 작품인 <인상, 해돋이>에서 유래된
것이다. 어려서 바닷가 마을 생트아드레스에서 자라면서 자연과 빛에 대한
통찰력을 얻었고 화풍은 스승 외젠 부댕과 바르비종파 화가들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인상파가 대두했던 1870년대에는 자연광과 야외 생활의 움직임을
즉흥적이고 간결하게 해석하여 화폭에 담았고 1890년대부터는 빛과 기후 조건을
달리해 같은 주제를 되풀이 하는 연작을 즐겨 그리기 시작했다. 카미유 피사로,
프레데리크 바지유, 오귀스트 르누아르와 같은 화가들과 인상주의를 발전시켰다


■클로드 모네 - 다음백과
 
 
-출생 1840년 11월 14일, 프랑스 파리
--사망 1926년 12월 5일, 프랑스 지베르니
국적 프랑스
 
<요약> 19~20세기 인상파를 주도했던 프랑스의 화가로 주요 작품은 <인상, 해돋이>와 <파라솔을 든 여인>과 <수련> 연작. 인상파 또는 인상주의의 창시자로 그 이름 또한 모네의 작품인 <인상, 해돋이>에서 유래된 것이다. 어려서 바닷가 마을 생트아드레스에서 자라면서 자연과 빛에 대한 통찰력을 얻었고 화풍은 스승 외젠 부댕과 바르비종파 화가들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인상파가 대두했던 1870년대에는 자연광과 야외 생활의 움직임을 즉흥적이고 간결하게 해석하여 화폭에 담았고 1890년대부터는 빛과 기후 조건을 달리해 같은 주제를 되풀이 하는 연작을 즐겨 그리기 시작했다. 카미유 피사로, 프레데리크 바지유, 오귀스트 르누아르와 같은 화가들과 인상주의를 발전시켰다.
 
 
<개요>
 
인상파의 창시자이자 지도자이며 한결같이 확고한 옹호자였다. 원숙기의 작품에서는 빛에 따라, 또는 자신의 흥미가 바뀜에 따라 캔버스를 바꾸어가면서 같은 주제를 연작으로 제작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연작'에는 대개 날짜가 적혀 있고, 함께 전시되는 경우가 많았다. <노적가리(Haystacks)>(1891)·<루앙 대성당(Rouen Cathedral)>(1894)은 그 좋은 예이다. 모네는 지베르니에 있는 집에 수련이 가득한 연못을 만들었는데, 이 연못은 그의 <수련(Nymphéas)> 연작에 영감을 주었다.
 
 
루앙 대성당(Rouen Cathedral)
1893년 모네의 작품
ⓒ Claude Monet/wikipedia | Public Domain
 
 
◈어린시절과 초기 작품
 
식료품 잡화상 아돌프 모네의 맏아들로 태어나 5세 되던 해, 가족과 함께 르아브르 근처에 있는 생트아드레스로 이사했다. 아버지의 집안이 이곳에서 선박용품과 식료품 따위의 잡화를 파는 번창한 상점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그의 아버지가 이 가게의 경영을 맡게 되었던 것이다. 생트아드레스로 이사한 일은 단순한 전기적 사실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 그당시 어린애였던 모네는 바닷가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짐에 따라 바다와 변화무쌍한 노르망디의 날씨를 직접 체험하게 되었다. 바로 여기에서 자연에 대한 그의 참신한 통찰력이 생겨나게 되었다.
 
15세 때 모네는 주의깊게 관찰하고 훌륭한 솜씨로 그린 풍자 만화를 팔아서, 처음으로 화가로서 성공을 거두었다. 이무렵에 그린 돛단배들의 연필 스케치도 보존되어 있는데, 그 뚜렷한 묘사는 거의 전문가의 솜씨라고 말할 수 있다. 그의 숙모인 르카드르 부인은 아마추어 화가였는데 모네가 그 지방 화가에게 그림을 배우러 다닌 것은 아마 이 숙모의 제안 덕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화가로서 그의 인생이 시작된 것은 외젠 부댕 (Eugène Boudin)과 친구가 된 뒤였다. 부댕은 오만한 이 학생에게 야외에서 그림을 그려보도록 권했는데, 그것은 당시의 화가들에겐 보기드문 제작방법이었다.
 
그림을 그린 단 하루 만에 야외의 자연광선에 대한 그의 지식과 화가로서의 타고난 재능이 완연히 드러났다. 이 경험은 그후 60년이 넘도록 그가 걸어간 방향, 즉 눈에 보이는 현상에 몰두하여 감각을 그림물감으로 바꾸는 효과적인 방법의 혁신에 노력을 집중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외광회화). 유화 풍경화는 16세기경부터 그려졌지만, 야외가 아닌 화실 안에서 제작되었기 때문에, 감각기관이 직접 인식한 것을 기록한 그림이 아니라 자연에 대한 관념을 표현한 그림들이었다.
 
810년 이전에 영국의 화가 존 컨스터블(John Constable)과 J. M. W. 터너(Joseph Mallord William Turner)는 야외에서 작은 유화 스케치를 그렸지만, 모네가 이 습작들을 알고 있었을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1859~60년 그는 처음으로 파리를 방문하여, 바르비종파 화가인 샤를 도비니(Charles Francois Daubigny)와 콩스탕 트루아용(Constant Troyon)의 작품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는 파리 국립미술학교에 등록하기를 거부하여, 가족을 당황하게 했다. 그대신 진보적인 예술가들의 모임에 자주 드나들었고, 스위스 아카데미에서 그림을 그렸으며, 여기서 카미유 피사로(Camille Pissarro)를 만났다. 이 비공식적 수업은 그가 군대에 소집되는 바람에 중단되었다. 그는 알제리에서 군복무를 시작했는데, 아프리카의 햇빛과 색깔은 그를 매료시켰다. 1862년 병에 걸려 생트아드레스로 돌아와 다시 부댕과 함께 바다를 그렸고, 그곳에서 네덜란드 바다 풍경 화가인 요한 바르톨트 용킨트 (Johan Barthold Jongkind)를 만났다.
 
그해 말 다시 파리로 간 그는 전통주의자인 샤를 글레르(Charles Gleyre) 밑에서 그림공부를 계속했으며, 글레르의 화실에서 프레데리크 바지유(Jean Frédéric Bazille), 알프레드 시슬리(Alfred Sisley),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Pierre Auguste Renoir)를 만났다. 이들은 스승과 의견 충돌이 일어나자 퐁텐블로 숲의 바르비종 근처에 있는 샤이앙비에르라는 마을로 떠났다. 모네가 일본 판화를 발견한 것은 이무렵이거나 늦어도 1872년 이전이었다. 일본 판화의 장식성과 평면성은 마침내 프랑스 근대회화의 발전에 강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그가 알제리에서 복무하기를 자원한 것은 아마 낭만파 화가인 외젠 들라크루아(Eugène Delacroix)에 대한 존경심 때문이었던 듯한데, 들라크루아는 1832년의 모로코 여행에서 많은 영향을 받아 색채를 강조한 작품들을 남겼다(일본 미술).
 
모네가 이 시기에 그린 수많은 작품들 가운데 특히 놀라운 성과는 1865~70년에 완성한 작품들이다. 이때는 그가 훗날 인상파 기법의 특징이 된 단편적인 붓놀림에 의한 특유의 불연속 터치로 그리기 이전이었다. 이 초기 작품들 가운데 가장 야심적인 작품(이 작품은 끝내 완성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귀스타브 쿠르베(Jean-Désiré Gustave Courbet)의 부정적 논평 때문이었던 듯함)은 1863년 낙선전에 출품된 <소풍(The Picnic)>(1865~66)으로, 이 작품에는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의 악명높은 그림 <풀밭 위의 식사(Déjeuner sur l'herbe)>와 같은 부제가 덧붙여졌다.
 
르네상스 양식을 배경으로 해 풍자적으로 개작한 마네의 걸작과는 전혀 달리, 높이가 약 3.5m에 폭이 6m나 되는 모네의 그림은 최신 유행의 옷을 차려입은 소풍객들이 퐁텐블로 숲에 무리지어 있는 모습을 솔직하게 묘사하고 있으며, 도발적인 것은 아니었다. 야외에 가서 풍경을 직접 보고 그리는 소위 외광파 양식을 시도하는 젊은 화가에게 이 작품은 야외에서 완성하기에는 너무 커서 적절하지 않았다.
 
오늘날 루브르 박물관에는 원래 그림의 단편밖에 보존되어 있지 않지만, 모스크바의 푸슈킨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축소화를 보면 이 그림의 전체 구도를 알 수 있고, 바지유와 모네의 애인 카미유 동시외(Camille Doncieux)를 그린 커다란 습작(미국 워싱턴 국립미술관 소장)을 통해 이 대작의 초기 인상파 양식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의도된 역사적 주제나 낭만적이고 환상적인 주제가 아니라, 현대 생활의 실제 장면에 새로운 관심을 가졌다는 점에서 모네는 마네와 공통점을 갖는다. 따라서 그의 <소풍>은 좀더 직접적인 경험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쿠르베의 사실주의를 더욱 확장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모네는 실물 크기의 그림을 완전히 야외에서 그릴 수 있도록, 베르사유 근처의 빌다브레에 있는 셋집 정원에 높이 2.4m의 캔버스를 도랑 속으로 내려보내는 장치를 만들었다.
 
이무렵에 모네가 쓴 편지와 기타 자료들을 보면, 자신의 곤궁한 처지와 생활고, 시력 장애, 첫 아이 장의 출생(1867)에 따른 문제 등을 애처롭게 이야기하고 있다. 사실 그는 존경받는 거장이 되어 유복해진 1890년대까지는 생활이 어려워 줄곧 곤궁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이런 고통은 그당시에 그린 그림에는 드러나 있지 않다. 이 시기의 그림은 오히려 안락한 중산층의 가정생활을 반영하고 있다.
 
인상주의는 넓게 보면 중산층 생활의 즐거움을 찬양하는 것이었지만, '현대 생활'을 그리는 것이 모네의 주요 목표는 아니었다. 그의 경우에는 근본적인 자연관을 표현할 회화 수단을 끊임없이 찾는 것이 더 중요했다. 미국 시카고 미술연구소에 소장되어 있는 <강(The River)>(1868)·<생트아드레스 해변(The Beach at Sainte-Adresse)>(1867)은 그가 의욕적으로 그린 인물화보다 인상파 양식으로 나아가는 발전과정을 더 잘 보여주고 있다. 또한 여러 시기에 걸쳐 여러 유형으로 그린 모든 그림들 가운데 1865~67년 해변과 바다를 그린 그림은 '일상적'(즉 무심코 바라보는) 풍경에 가장 가까운 것처럼 보인다.
 
 
생트아드레스 해변(The Beach at Sainte-Adresse)
1867년 모네의 작품
ⓒ Claude Monet/wikipedia | Public Domain
 
그는 분명 눈앞에 보이는 광경을 자세히 관찰하여 그대로 베끼려고 애쓴 것이 아니라, 느긋하고 순간적인 시각이 받아들일 수 있는 인상(이성으로 안 것이 아니라 눈으로 본 것)을 그것이 갖고 있는 모든 생기와 움직임을 곁들여 그 자리에서 기록하려고 애썼다. 그는 배, 건물, 우연히 그 자리에 있었던 인물, 그리고 자갈이 깔린 해변을 단조로운 색채로 재빨리 그려냈고, 그 무게나 부피는 거의 고려하지 않았다.
 
 
◈초기 인상파 그림
 
1860년대 모네는 불안정한 뜨내기 생활을 했고, 그림은 거의 1점도 팔지 못했다. 그러나 해마다 열리는 살롱 전에서는 몇몇 작품이 입선했으며, 특히 카미유의 초상화는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 그림은 훌륭하긴 했지만 아직 인상파 회화는 아니었다. 1868년에는 르아브르에서 훈장을 받았다. 게다가 그는 온갖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파리를 비롯해 르아브르·샤이·옹플뢰르·트루빌·페캉 등 여러 곳에서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1860년대에는 라그르누예르라고 알려진 센 강 연안의 휴양지 부지발에서 순조롭게 지냈다.
 
여기서 그는 르누아르와 처음으로 함께 그림을 그렸다. 그들은 휴양객들과 목욕하는 사람들, 뱃머리를 까딱까딱 움직이고 있는 보트들, 그리고 찰싹거리는 물 속에 비친 반짝이는 그림자를 거의 같은 양식으로 화폭에 재빨리 담았다. 모네가 '형편없는 스케치'라고 말한 이 그림들은 이미 인상파 양식을 보여주고 있었다. 두 화가의 스케치는 자연광과 야외생활의 움직임을 감지한 순간 즉흥적이면서 강렬하고 간결한 붓놀림으로 해석하고 있으며, 이 붓놀림들은 한데 어울려 시각적 경험과 동등한 역할을 하고 있다.
 
시각적 경험이 그토록 솔직하게 화폭에 옮겨진 적은 일찍이 없었다. 1870년 트루빌 해변에서 모네는 카미유를 대담하고 자신만만하게 그렸다(런던 테이트 미술관 소장). 이 그림은 그때까지 그려진 모든 그림들 가운데 가장 생기발랄한 시각적 사실주의를 보여주었다. 이 그림에는 모래알들이 그림물감 속에 그대로 박혀 있었다. 1870년대에도 모네는 자연 현상에 대한 연구를 계속했다.
 
프랑스와 독일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자, 그는 이 전쟁을 피하기 위해 얼마 전에 결혼한 카미유와 아들 장을 남겨놓고 런던으로 갔다. 그곳에서 피사로와 함께 도비니를 통하여 미술상 폴 뒤랑 뤼엘(Paul Durand-Ruel)을 소개받았다. 뒤랑 뤼엘은 그의 그림을 맡아서 팔아주는 대리인이 되었다. 1871~72년 네덜란드의 운하·배·풍차를 그렸고, 다시 르아브르로 와서 작업한 모네는 프랑스로 돌아오자마자 파리 근처 센 강변에 있는 아르장퇴유에 집을 빌렸다. 그가 이곳에서 산 기간은 인상파 운동이 절정에 이른 때와 일치한다.
 
◈인상파 말기
 
빛과 기후 조건을 달리해 같은 주제를 되풀이 묘사하는 모네의 유명한 연작 제작방법은 1890년대에 이르러서야 완전히 확립되었지만, 첫번째 연작으로 널리 알려진 것은 1876~77년 겨울에 파리의 생라자르 역 구내나 그 주변에서 그린 작품들이다. 인상파의 관례적인 주제와는 동떨어진 주제, 즉 역 안에서 연기와 수증기를 내뿜고 있는 기관차는 1844년 터너가 그린 <비·증기·속도 : 대서부 철도(Rain, Steam, and Speed : The Great Western Railway)>를 연상시키고, 1909년 이후 이탈리아의 미래파 화가들이 그린 기계적 주제를 예시해준다.
 
파리에서 멀리 떨어진 베퇴유로 이사한 뒤, 모네의 생활은 이전 같지 않았다. 1876년 그는 백화점 주인이자 그림 수집가의 아내인 알리스 오슈데(Alice Hosched)와 불륜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그는 아르장퇴유에서 빚에 시달렸고, 임신한 카미유는 병에 걸렸다. 그들이 베퇴유로 이사하자, 남편과 사별한 오슈데가 자녀를 데리고 모네의 빚을 갚아 주고 병든 카미유를 돌봐주었지만, 카미유는 1879년 9월에 죽었다.
 
1881년에 이르자 원래의 인상파 집단은 해체되기 시작했지만, 그후에도 2차례의 전시회, 즉 신인상파가 출연한 뒤 1886년에 열린 8번째 전시회와 마지막 전시회(모네는 작품을 출품하지 않았음)가 더 열렸다. 오직 모네만이 똑같은 열정으로 자연 탐구를 계속했다. 그가 1880년대에 선택한 장소는 노르망디의 푸르빌·에트르타·페캉·바랑제빌·브르타뉴에 있는 울퉁불퉁한 외딴섬 벨일, 황량한 크뢰즈 강 골짜기, 프랑스 남부 지방의 망통·앙티브, 그리고 이탈리아의 보르디게라 등이었다.
 
1886년 그는 2번째로 네덜란드를 방문하여 튤립 꽃밭을 그린 다음, 에트르타와 벨일에 잠시 머물렀는데, 이 체류는 매우 중요하다. 1883년 모네와 오슈데, 오슈데의 자녀들, 그리고 모네의 아들인 장과 미셸은 파리에서 84km 떨어진 베르농 근처에 있는 엡트 강변의 작은 마을 지베르니에 정착했다. 이곳에서 모네는 과수원으로 둘러싸인 농가를 샀는데, 이 농가는 죽을 때까지 그의 집이 되었고, 오늘날에는 프랑스 국립기념관으로 지정되어 있다. 1880년대에는 여러 곳을 여행했지만, 1890년대에는 지베르니, 혹은 그 부근에서 지내면서 연작을 제작하는 일에 전념했다.
 
◈말년
 
1900년 이후 새로운 주제를 찾던 모네는 지베르니에서 멀리 떨어진 곳을 주제로 한두 가지의 야심적인 연작 계획을 세웠다. 첫번째 계획(이 계획을 위해 1899~1904년 런던을 적어도 3번 방문함)은 템스 강, 워털루 다리, 체링크로스 다리, 영국 국회의사당을 묘사하는 방대하고 다양한 연작이었다. 이국적인 색채와 신비롭고 낭만적인 분위기로 터너와 제임스 맥닐 휘슬러(James Abbott McNeill Whistler)의 템스 강 그림을 연상시키는 이 연작의 주제는 건축물이 아니라 대기였다. 이 연작에서 두드러진 것은 건물과 다리 그 자체가 아니라, 빛으로 가득찬 안개에 영감을 주는 힘찬 붓놀림이다.
 
그가 2번째이자 마지막으로 다룬 건축물은 이 연작을 1908년부터 그리기 시작해 1909년에도 계속했으며, 그후 1912년까지 지베르니에서 계속 작품을 다듬었다. 베네치아가 인상파의 완벽한 주제이기는 했지만, 햇빛·물·움직임·건축물, 그리고 물에 비친 그림자를 <노적가리>와 <대성당> 연작의 특수한 날씨 효과보다 더 보편적으로 묘사했다.
 
1890년 모네는 지베르니의 집과 정원 건너편에 있는 늪지대를 사들였는데, 이 늪지대를 가로질러 엡트 강의 지류가 흐르고 있었다. 그는 이 시내의 물줄기를 돌려, 수련 연못을 만들기 시작했다(→ 색인 : <수련>). 얼마 후에는 수양버들·붓꽃·대나무가 연못 주위에 자라났고, 수련의 커다란 잎과 꽃들이 잔잔한 물 위를 무리지어 떠돌았으며, 연못 한쪽 끝에 놓인 일본식 다리가 연못 풍경을 마무리지었다. 1900년에 이르자 모네의 상상력이 낳은 이 독특한 작품(그의 인상주의는 좀더 주관적으로 변모함)은 그 자체가 주요한 환경 미술품이 되었다.
 
이 이국적인 도원경에서 그는 그후 20년이 넘도록 명상에 잠기고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수련과 물, 그리고 일본식 다리를 그린 최초의 그림들은 크기가 사방 90cm 정도에 불과하지만, 큼직한 꽃과 잎이 마치 허공에 매달리듯 떠 있는 유례없이 개방적인 구도와 구름이 비치는 푸른 물은 그림의 테두리를 넘어서서 그 주제를 둘러싸고 있는 주위 환경을 암시해 주고 있다.
 
주위의 공간까지 그림에 끌어들인다는 이 개념은 회화사에서 전혀 새로운 것으로, 최초의 수련 그림에는 그저 막연히 암시되어 있을 뿐이지만, 1925년경에는 이 개념이 더욱 확대되어 파리의 튈르리 공원에 있는 오랑주리 미술관의 거대한 벽화 연작을 낳았다. 이 벽화가 설치된 곳은 길이가 24m에 이르는 2개의 타원형 방인데, 1952년 화가인 앙드레 마송(Andre Aime Rene Masson)은 이 방을 '인상주의의 시스티나 예배당'으로 묘사했다.
 
오랜 시일에 걸친 모네의 끈질긴 자연 탐구(그의 표현을 빌리면 "가장 순간적인 효과에 맞서서" 자신이 받은 인상을 표현하고자 하는 노력)가 이룩한 이 최고의 성과는 그가 죽을 때까지 공개되지 않았다. 1916~25년 연못 정원에서 그린 독특하고 전례가 없는 다른 작품들만이 아니라 오랑주리 벽화를 위해 그린 수많은 스케치도 1950년대까지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오늘날에는 전세계의 주요한 개인 소장품과 미술관에 널리 퍼져 있다. 모네는 시력이 약해진 뒤에도 1926년 죽을 때까지 계속 그림을 그렸다.
 
 
 
■모네 '수련이 있는 연못' 최초 공개…'이건희컬렉션' 1주년전
 
 
국립중앙박물관 '어느 수집가의 초대'
'인왕제색도' 등 7기관서 355점 전시
정약용 '정효자전' '정부인전' 공개
한달치 온라인 예매분 마감
 
등록 2022-04-27 오후 1:51:00
수정 2022-04-27 오후 11:41:59
 
이윤정 기자
 
[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빛의 사냥꾼’으로 불리는 프랑스 인상주의의 거장 클로드 모네(1840~1926). 모네는 40여년 동안 수련을 그리며 동일한 사물이 빛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를 탐구했다. 모네의 수련 연작은 높은 가치를 인정받아 지난해 5월 미국 소더비 경매에서 수련 작품 하나가 798억원에 팔리기도 했다. 말년의 모네는 주변의 풍경 등에는 관심이 사라지고 오직 수련과 물 표면의 변화에만 집중했다. 이러한 경향을 볼 수 있는 대표작 ‘수련이 있는 연못’이 처음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4월 28일부터 8월 28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리는 이건희 회장 기증 1주년 기념전 ‘어느 수집가의 초대’에서다.
 
‘어느 수집가의 초대’는 이건희 삼성 회장 유족의 문화재·미술품 기증 1주년을 맞아 대규모 기증품을 선보이는 전시다.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이 공동 주최하고 공립미술관 5개처가 참여한 전시로 7개 기관에서 기증품 295건 355점을 전시한다. 전시품은 금속, 토기, 전적, 목가구, 조각, 서화, 유화 작품 등으로 시기와 분야가 다양하다.
 
27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린 언론 공개회에서 민병찬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이건희 회장이 수집해서 국가에 기증한 문화유물과 미술품의 정수를 보여주는 전시”라며 “작품을 기증받은 7개 국공립박물관과 미술관이 지난 1년간 각자 전시를 열었는데 이번에 한 자리에 모두 모여서 최대 규모로 진행한다”고 설명했다.
 
 
‘어느 수집가의 초대-故이건희 회장 기증 1주년 기념전’ 언론공개회가 27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가운데 관람객들이 클로드 모네 ‘수련이 있는 연못’을 관람하고 있다(사진=이영훈 기자).
 
 
◈정약용 ‘정효자전’ 첫선
 
‘세기의 기증’으로 화제를 모은 ‘이건희컬렉션’이 일반에 공개된 건 지난해 여름이었다. 이 회장의 유족은 지난해 4월 문화재와 미술품 총 2만3181점(국립중앙박물관 2만1693점, 국립현대미술관 1488점)을 기증했다. 근현대 미술품 102점은 광주시립미술관(30점), 대구미술관(21점), 양구 박수근미술관(18점), 제주 이중섭미술관(12점), 전남도립미술관(21점) 등 지역미술관 다섯 곳에 나누어 기증했다. 이에따라 그해 7월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은 각각 특별전을 개최했다.
 
 
이번 전시는 기증품을 한 자리에 모았다는 점에서 지난 전시와 차별화된다. 국립중앙박물관은 국보로 지정된 조선 후기 화가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 등 249건 308점을, 국립현대미술관은 클로드 모네의 ‘수련이 있는 연못’ 등 34건 35점을 출품한다. 광주시립미술관은 김환기의 ‘작품’, 대구미술관은 이인성의 ‘노란 옷을 입은 여인상’, 박수근미술관은 박수근의 ‘한일’, 이중섭미술관은 이중섭의 ‘현해탄’, 전남도립미술관은 천경자의 ‘만선’ 등 공립미술관 5개처에서 총 12건 12점을 출품한다. 전시품 중 국가지정문화재는 국립중앙박물관 출품작인 ‘일광삼존상’ 등 국보 6건 13점과 ‘삼현수간첩’ 등 보물 15건 20점이다.
 
특히 정약용의 ‘정효자전’과 ‘정부인전’이 대중에 최초로 공개된다. ‘정효자전’과 ‘정부인전’은 정약용이 강진 사람 정여주의 부탁을 받아 그의 일찍 죽은 아들과 홀로 남은 며느리의 안타까운 사연을 글로 쓴 서예 작품이다. 이수경 학예연구관은 “‘정효자전’은 가족에 대한 애틋한 마음과 정약용의 필치를 감상할 수 있는 귀중한 작품”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한달 예매분 4만장 동나”
 
전시는 ‘문화유산’과 ‘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전시품을 선별해 한국 문화의 정체성이 드러나도록 했다. 제1부 ‘저의 집을 소개합니다’에서는 이 회장의 안목과 취향을 보여주는 수집품을 선보인다. 장욱진의 ‘가족’을 비롯해 18세기 ‘백자 달항아리’, 김환기의 1950년대 ‘작품’, 작은 정원에 전시해 놓은 ‘동자석’을 만나볼 수 있다.
 
제2부 ‘저의 수집품을 소개합니다’는 수집품에 담긴 인류의 이야기를 △자연과 교감하는 경험 △자연을 활용하는 지혜 △생각을 전달하는 지혜 △인간을 탐색하는 경험 등 네 가지 주제로 나눠 살펴본다. ‘수월관음도’와 ‘천수관음보살도’ 등 불교미술을 비롯해 기록 문화를 지키려는 사명감으로 이 회장이 수집한 ‘초조본 현양성교론’(고려 11세기, 국보), 금속활자로 인쇄한 초간본 ‘석보상절 권20’(조선 1447~1449) 등 귀중한 옛 책도 전시해 놓았다. ‘범종’의 경우 타종 소리를 파동으로 연출한 영상과 함께 종소리도 들어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
 
4개월 간 진행되는 전시 기간 중 1개월마다 주요 서화작품을 교체한다. 지난해에 선보였던 ‘인왕제색도’와 ‘추성부도’는 쉽게 손상되는 고서화를 보호하기 위해 한달씩 전시한다. ‘인왕제색도’에 이어 박대성의 ‘불국설경’, 이경승의 ‘나비’를 순차적으로 교체해 선보인다.
 
예매는 1개월 단위로 진행하는데 이미 1차 예매(3월 28일~5월 31일)분 4만장이 동이 났다. 현장 발권은 30분당 30장씩 진행한다. 이 학예연구관은 “이번 전시는 선사시대부터 21세기까지 전 분야를 망라한 문화유산과 미술품을 한 자리에 모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보통 사람들이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상이 정말 한국적이라고 느낄 수 있을 때 문화적인 경쟁력이 생긴다’고 했던 이건희 회장의 말대로 이번 기증이 한국의 예술품을 접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참고>
 
 
●클로드 모네 - 나무위키
 
 
 
●클로드 모네 - 다음백과
 
 
 
●인상파를 창시한 수련의 화가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 미술사를 움직인 100인
 
 
 
●모네는 왜 수련 정원을 만들었을까 - 문득, 묻다: 세 번째 이야기 
 
 
 
●모네 '수련이 있는 연못' 최초 공개…'이건희컬렉션' 1주년전 - 이데일리
 
 
 
 
●[죽은 예술가의 사회-63] 클로드 모네 (화가, 1840~1926) -매일경제(다음카페)
 
 
 
 
●클로드 모네전(수락산 전철역에서) - 다음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