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소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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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콜라텍 올 지루박 19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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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 가요

2013. 1. 18.

 


 

관동팔경 시작은 천학정(天鶴亭)과 청간정(淸澗亭)

 

 

천학정은 화진포에서 청간정으로 향하는 길목에 위치한다.

관동팔경에는 들어 있지 않지만 해안가 절경에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정자 이름도 화려한 천학정은 조그만 봉우리의 숲 속과 동해 바다를

시원하게 바라볼 수 있는 기막힌 곳에 세워져 있다.

정자 난간에 기대어 바다를 보니 여름의 더위는 간 곳이 없다.

정말 정자가 시원한 곳에 세워져 있음을 실감할 수 있다.

스치는 바람 그리고 탁 트인 조망이 예전

선비들이 즐겨 찾을 수밖에 없음이 확연하다.

자리를 뜰 줄 모르는 관광객들 속에 섞여 맘껏 여유를 부리며 더위를 피해본다.

동해안을 따라 정자를 찾을 때 왜 여름에 가야하는지 해답을 얻는다.

정자여행은 여름에 가야 참맛을 느낄 수 있음이다.

천학정 표지석

천학정의 아침 풍경

천학정(강원 고성군 토성면 청간리)

노송과 깎아지른 듯한 해안 절벽에 자리잡고 있어 풍취가 뛰어나다.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교암리 177번지에 위치한 천학정은 서기 1931년에

한치응의 발기로 최순문, 김성운과 함께 건립한 것으로 정면 2칸, 측면

2칸, 겹처마 팔각지붕의 단층 구조로 지어졌다.

토성면과 죽왕면을 경계로 흐르는 문암천을 지나 1Km를 가면 교암리

마을 앞에 소나무가 우거진 조그만 산이 있는데 바로 이곳에 천학정이 있다.

동해바다의 신비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천혜의 기암괴석과 깎아지른

듯한 해안 절벽 위에 건립되어 경치가 아름다운 곳이며,

남쪽으로 청간정과 백도를 마주 바라보고

북으로는 능파대가 가까이 있어 한층 아름답다.

상하천광 거울 속에 정자가 있다하여 천학정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넘실거리는 푸른바다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모든 근심 걱정이 일시에

사라지고 드넓은 동해의 풍요로움을 만끽할

수 있어 이 고장사람들의 편안한 쉼터이기도 한다.

특히, 천학정의 일출은 가히 선경이라 할만하다.

봄, 여름, 가을에 동해바다를 찾는 관광객들이

이곳을 찾아 아름다운 추억을 가지고 돌아간다.

동해바다와 천학정

천학정 현판

현액(現額)

천학정기

천학정 천장 모습

천학정 난간에서 보이는 시원한 동해

본격적인 관동팔경의 시작은 청간(淸澗亭)이다.

천학정에서 정자 여행의 묘미를 발견하지만 진정한

의미에서의 관동팔경의 시작은 청간정이다.

송림의 꼭대기와 시야가 확 트인 동해 바다와 맞닿은 절경은 으뜸이다.

정자의 크기도 상당히 크고 아름다운데 설악산

신선봉과 울산바위가 지척으로 보이기도 한다.

해변의 모래톱에 일렬로 줄지어선 갈매기 떼의 앙증스런 모습과 군

초소의 철조망이 대비되는 불균형도 있지만 청간정의 정경은 절묘하다.

12개 난간에 우뚝한 청간정의 안정적인 모습과 널찍한 대청 그리고

팔각지붕의 화려함은 정자가 갖추어야 할 모든 것을 보여준다.

특히 최규하 대통령 친필인 현판의 글씨가 화려하다.

철썩이는 동해바다의 파도가 일으키는 하얀 물보라

모습이 절로 한 편의 시를 떠오르게 한다.

설악산에서 흘러내리는 청간천과 바다가 만나는 작은 구릉 위에

망망대해를 맘껏 품고 있는 청간정에는 먼 길 돌아온

바람도 쉬어갈 수 있는 아늑함이 가득하다.

청간정 현판

청간정 입구에 있는 비석

청간정에서 보이는 동해 바닷가

청간정 중수기

최규하 대통령 시문 편액

嶽海相調古樓上(악해상조고루상) 설악과 동해가 상조하는 고루에 오르니

果是關東秀逸景(과시관동수일경) 과연 이곳이 관동의 빼어난 승경이로구나!

이승만 대통령이 쓴 현판

청간정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청간리/강원도 유형문화재 제32호

팔경(八景)이라는 말은 원래 중국 호남성 동정호 남쪽

소상 지방의 아름다운 여덟 곳을 노래한 ‘소상팔경’에서 비롯되었다.

그것이 우리나라에 전해져 어떤 지역의 뛰어나게

아름다운 여덟 가지 경치를 지칭하는 말이 되었다.

관동은 대관령의 동쪽을 의미한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이곳의 아홉 고을을 ‘경치가

나라 안에서 실상 제일’이라고 했다.

그는 누대와 정자 등 훌륭한 경치가 많은 이곳을 칭송하면서

흡곡(통천) 시중대, 통천 총석정, 고성 삼일포, 간성 청간정, 양양

낙산사(의상대), 강릉 경포대, 삼척 죽서루, 울진 망양정을

사람들이 관동팔경이라 부른다고 했다.

흡곡의 시중대 대신 평해의 월송정을 넣기도 한다.

지금은 삼일포와 총석정, 시중대는 북한에 있고,

망양정과 월송정은 경북에 편입되어 있다.

김홍도의 청간정 산수화

正祖 임금 御製詩

層溟盡處最高臺 吳楚東南坼案開(층명진처최고대 오초동남탁안개)

푸른 물결 다한 곳 제일 높은데 오초 두 나라 동남쪽 터져 눈앞에 벌려있다.

巨浸漫天天四蓋 風流太史可停杯(거침만천천사개 풍류태사가정배)

큰 물 하늘에서 넘치고 하늘은 사방을 덮었으니 풍류 즐기는 태사가 술잔 멈출 만하다.

청간정에서 볼 수 있는 동해 해변의 절경

청간정은 옛 간성 땅, 지금의 고성에 있어 고성 팔경 중 4경에 속하기도 한다.

청간정은 관동팔경 중에서 북녘 땅에 있는 것을 제외하면 제일 북쪽에 있는 정자이다.

청간천 하구 언덕에 위치한 조선시대의 정자로 관동팔경의 하나이다.

수많은 시인묵객들이 관동팔경의 아름다움을 노래했으니, 고려 말의

문인 안축의경기체가 <관동팔경>에서 조선 선조 때의 정철의

가사 <관동별곡>까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다.

양사언과 정철, 숙종도 어제시를 내려 이곳 청간정을 노래했으며,

겸재 정선과 표암 강세황은 청간정의 경치를 그림으로 그렸다.

처음 지은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중종 15년(1520)에 군수 최청이

고쳐 세웠다는 기록으로 보아 그 이전에 세워진 것으로 생각된다.

고종 21년(1884) 갑신정변 때 불타 없어졌다가, 1928년에 다시 지은 것이다.

앞면 3칸·옆면 2칸의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의 누각형식 정자이다.

추녀 밑에 걸린 ‘청간정(淸澗亭)’ 현판은 1953년 이승만 대통령이 쓴 것이다.

관동팔경중의 하나며 고성군의 명소로 속초에서 약 7km 떨어진 곳에 있다.

청간정은 청간천과 검푸른 동해안이 만나는 기암절벽 위에 세워진

팔각지붕의 2층 누각으로 12개의 돌기둥이 누각을 받치고 있다.

청간정은 청간역의 정자라는 기록이 전하는데 역은 역참, 우역이라고도

불렀으며, 국가의 명령과 공문서의전달, 사신 왕래에 따른

영송과 접대 등을 위해 마련된 교통통신기관이다.

역참은 삼국시대부터 설치되어 왕의 지방 순행이나 행정

명령의 전달과 사신들의 왕래에 숙박편의를 제공하였다.

또한 파발제와 봉수와 함께 군사 통신 수단의 구실도 하였다고 한다.

이런 사정을 보면 왕족이나 관리, 사대부 등이 유람, 임지 발령,

파견 등 이동할 때 휴식과 풍류를 즐기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청간역의 북쪽으로는 죽포역과 화진포 북쪽의 운근역이

있었다. 남쪽으로는 물치항 부근의 강선역과

낙산사와 양양읍 중간에 연창역이 있었다.

까마득히 내려다보이는 벼랑 아래 하얀 모래벌이 아름다우며 이곳에서

바라보는 일출과 월출의 장엄함과 파도와 어우러지는

황홀경은 관동팔경중 수일경으로 손꼽히고 있다.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32호로 지정된 청간정의 창건연대나 창건자는

알 수 없으나 조선조 중종 15년(1502년)에

간성군수 최청이 중수한 기록이 남아 있다.

1884년 갑신정변 때 소실되었다가 1928년

당시 토성면장 김용집 씨의 발기로 재건하였고,

그 후 1980년 최규하 대통령의 동해안 순시 때

보수 지원을 받아 정자를 완전히 해체, 복원했다.

청간정의 현판은 이조 현종 때 우암 송시열이 좌상으로

재직할 때 이곳에 들러 친필로 썼으나 유실되고,

그 후 1953년 고 이승만대통령이친필로 쓴 현판이 걸려있다.

아울러 81년 4월 최규하 대통령이 청간정의 절경을 본 감상을

적은 휘호까지 걸려 우리나라 전직 두 대통령의 글을 직접 볼 수 있다.

겸제 정선의 그림 청간정 산수화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

중에서 청간정 부분을 살펴 보면 다음과 같다.

'고성을 저만큼 두고 삼일포를 찾아가니, 삼일포 남쪽 절벽에

영랑의 무리가 남석으로 갔다는 붉은 글씨가 뚜렸하게 남아있는데,

이곳을 유람한 사선(영랑, 남랑, 술랑, 안상)은 어디로 갔는가?

여기서 사흘을 머무른 후에 어디 가서 머물렀는가?

선유담, 영랑호 거기에 가 있는가?

청간정, 만경대 등 몇 군데에 앉아서 놀았던가?

청간정 바로 앞에 보이는 백도

해변의 갈메기 때

양사언의 시

벽해훈홍규일반 창태기백점구쌍(碧海暈紅窺日半 蒼苔磯白點鷗雙)

금은대상발고소 천지호연개팔창(金銀臺上發孤嘯 天地浩然開八窓)

푸른 바다에 햇무리도 붉게 아침 해 솟아오르는데,

푸른 이끼 낀 바닷가 바위엔 갈매기 떼 하얗게 점 찍혀 있다.

아름다운 대 위에서 외로이 싯귀를 읊조리는데

천지는 아득히 사방팔방으로 터져 있다.

청간정에 관한 시 등을 남긴 인물로는

송시열, 김극기, 이식, 윤이지, 양사준, 심수경 등이 있다.

 

 

 

 

 01. 사랑은아무나하나(지)
02. 내삶을눈물로채워도(지)  
03. 사나이눈물(지)
04. 슬퍼마오(지)    
05. 밀양머슴아리랑(지)
06. 님의등불[지] 
07. 내마음별과같이(지)
08. 효녀심청(지)  
09. 옥피리(지)      
10. 가뭄에콩나듯(지)
11. 천년바위(지)  
12. 앵두나무처녀(지)   
13. 잘난여자(지)
14. 땡벌(지)
15. 해바라기꽃(지)
16. 꽃을든남자(지)   
17. 정하나준것이(지)
18. 꽃바람여인(지)
19. 사나이눈물(지) 

 

 

     

     

     

     

     

     

    출처 : 아코디언 음악 사랑
    글쓴이 : 윤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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