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어린왕자 2010. 2. 4. 21:46

  만 배


2009. 9. 22.

만 배가 시작되었다. 대수련장에서. 대중과 같이 밥 먹는 시간을 빼 놓고는 각자 알아서 절을 하면 되었다. 절의 숫자를 헤아릴 수 있도록 알이 108개인 염주가 지급되었다. 이 염주를 100번 돌리면 만 배가 된다(정확히는 만 800배다). 만 배를 3일 안에 마쳐야 한다. 그러려면 하루에 3,300배 이상 해야 한다. 내가 그 때까지 가장 많이 절을 해 본 것은 기껏해야 300배 정도였다. ‘만 배를 해낼 수 있을까’ 하고 은근히 걱정이 되기는 하였으나, 평소 마라톤이나 등산으로 단련된 몸이니 해낼 것이라고 스스로를 격려하였다. 입승 소임을 맡고 계신 무변심 법사님께서 날이 갈수록 힘이 드니 첫날 절을 많이 해야 한다고 하셨다.

 

처음에는 400배를 하고 수련장 부근을 산책하면서 쉬었다. 그다지 힘들지는 않았으나, 그 페이스를 만 배가 끝날 때까지 유지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으라는 불안이 아주 구체적으로 솟았다. 내가 믿었던 마라톤이나 등산의 힘이 너무나도 약하게 느껴졌다.

 

두 번째 절부터는 300배, 그 후 어느 순간부터는 200배를 하고 쉬는 방식으로 절을 했다. 무리하지 않고 천천히 정성을 기울여 절을 하였으나 갈수록 다리가 무거워져 갔다. 땀이 비오듯 쏟아졌다. 1,500배쯤 되면서부터는 무릎 통증이 강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절을 하기 위해 무릎을 굽힐 때, 일어나기 위해 무릎을 펼 때, 절 한 번에 두 번씩 무릎에 통증을 뼈저리게 느껴야 했다. 절을 하면서 ‘관세음보살’ 염불을 하였는데, 염불과 호흡을 조화시키는 것이 쉽지 않았다. ‘관세음보살’이 어느 순간에는 ‘반세음보살’, ‘반사음보살’ 등으로 소리났다. 정말로 만 배를 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이 강하게 엄습했다. 출가 전에 아내나 주변 사람들에게 백일출가에 대해 자랑스럽게 떠벌리고 왔는데, 만 배를 다 못하고 3일도 안되어 집으로 돌아가게 되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도 들었다.

 

같이 절하는 도반들도 힘들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만 배 기간 동안에는 묵언을 해야 함에도 서로 힘들다고 이야기를 하는 도반들도 있고, 수련장 바닥에 드러누워 자는 도반들도 있었다. 무릎의 통증을 이기지 못하고 앉고 일어설 때 손으로 바닥을 짚는 도반들도 있었다. 나도 그러고 싶었으나 참았다. 순결한 만 배를 하고 싶었다.

 

희양산 쪽으로 펼쳐진 저녁 노을이 무척 아름다웠다. 첫날에는 3,500배를 하였다. 무릎 통증이 상당하였다. 하룻밤 자고 나면 나아지지 않을까 하고 간절히 기대하였다. 

 

만 배 둘째 날. 전날 잠자리에 들기 전의 기대와 달리, 무릎 통증은 별로 완화되지 않았다. 오히려 허벅지, 종아리 등에 근육통이 가세해 상황은 더 나빠졌다. 갈수록 절이 힘들다고 하신 무변심 법사님의 말씀이 실감났다. 그렇게 생각하니, 둘째 날보다도 셋째 날 겪을 고통이 미리 공포로 다가왔다.

 

우리 8기 행자들은 대오(隊伍)를 이루어 절을 하였다. 몇몇은 그 대오에서 빠져나와 자기가 편한 곳에 가 절을 하기도 하였다. 수련원에 와서까지 그렇게 요령을 피우는 것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하였다.

 

우리 8기들의 대오 앞에는 6기 선배인 김○○ 행자님이 우리들의 절을 이끌었다. 일종의 페이스 메어커라고 할까. 그녀는 관세음보살 염불이나 절하는 자세에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정석으로 절을 하였다. 그녀는 셋째 날 밤 늦게까지 우리와 함께 하였다. 그녀가 없었다면 우리들의 만 배는 불가능하였을 것이다. 나중에 들은 바에 의하면, 그녀는 만 배 동호회 회원이라고 하였다. 만 배가 힘들기는 하지만, 신심을 돋구는 데 그만한 것이 또 있을까 싶기도 하다. 그러니 동호회까지 생기지.


어느 순간부터 오른쪽 무릎 아래가 까졌다. 처음에는 까진 것을 몰랐다가 법복 바깥으로 진물이 배어나온 것을 보고 알았다. 절을 계속 하면 아픈 것을 잊을 수 있었다. 그러나 쉬었다가 다시 시작할 때는 고통스러웠다. 묵언 중이라, ‘무릎이 까져 밴드가 필요하다’고 적은 종이를 수련원 스태프에게 보여주고, 밴드를 얻어 무릎에 붙였다. 그런데도 무릎의 까진 부위가 계속 넓어져 갔다. 언젠가부터는 사타구니까지 바지에 쓸려 살갗이 벗겨졌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견디기 힘든 것은 무릎 통증이었다. 무릎이 까지고, 사타구니가 쓸린 것은 절을 하다보면 잊을 있는데, 무릎 통증은 절 한 배 할 때마다 두 번씩, 어김없이, 그대로 다 느껴야 했다. 통증이 무릎 여기저기로 옮겨다녔다. 발가락도 아파오기 시작했다. 내가 정말로 만 배를 해낼 수 있을까. 아직 다가오지 않은 셋째 날이 무척이나 두려웠다. 저녁 공양 시간에 밴드를 더 구해 사타구니 까진 곳에 붙였으나 효과가 없었다.

 

밤이 되니 여치들이 날아들어 절 하는 머리 바로 앞까지 기어왔다. 여치를 눈 앞에 두고 한참을 ‘관세음보살’ 염불을 하면 절을 하니, 마치 여치들이 관세음보살이나 되는 것 같았다. 갈수록 고통스럽고 힘들었다. 그럴 때 어머니, 아내, 아이들을 간절하게 떠올리며 힘을 얻고자 하였으나, 무섭게 반복되는 무릎의 고통은 그대로 다 감수해야 했다.

 

사람들의 절 하는 자세가 많이 흐트러졌다. 여자 행자 한두 명을 빼고는 다들 정석에서 벗어났다. 앉고 일어설 때 양손으로 바닥을 짚는 사람, 아예 합장을 하지 않는 사람 등등. 남자 중 한 명은 마지막까지 자세를 지키려고 하는 것 같았는데, 왠지 그에게 지기 싫었다. 나도 양손으로 바닥을 짚고 싶었지만 이를 악물고 참았다. 전에도 들었고, 백일출가 막바지 회향수련에서도 들은 것인데, 내가 승부욕이 강하다는 것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그 남자가 자세를 푼 다음, 얼마 지나지 않아 나도 자세를 풀었다. 그 때부터 앉고 일어설 때 양손으로 바닥을 짚었다. 그 때까지 한 절의 숫자가 6,300배다. 절이 편해지기 보다는, 자세를 끝까지 지키지 못했다는 것에서 생기는 패배감이 더 컸다. 둘째날까지 모두 6,500배를 하였다.

 

 

만 배 셋째 날. 운동을 계속하면 근육에 탄력이 생겨 나중에는 힘이 덜 든다. 그러나 그것도 정도(程度)가 있다. 만 배는 운동이 아니다. 고행이다. 몸이 정상적으로 버틸 수 있는 운동 범위를 훨씬 뛰어 넘는다. 그래서 수천 배를 넘게 되면, 반복으로 인한 탄력보다는 마찰과 마모로 인한 고통만 늘어난다. 가끔씩 고행을 이겨낸다는 것에서 정신적 충만감이 생기기도 하지만, 그것은 아주 잠깐일 뿐이다. 어김없이, 파도처럼 밀려드는 무릎 통증 앞에서 그것은 금방 사라졌다.

 

절을 할 때, 손으로 땅을 짚고 앉고 일어서기는 하였지만, 200배를 하고 15분 정도 쉬는 패턴은 계속 유지했다. 가을날이 좋았다. 쉬는 시간에 천천히 걸으면서, 희양산을 바라보며, 맑은 공기를 들이마시는 맛이 좋았다. 힘들기는 해도, 시간은 가고 절의 숫자는 늘어갔다.

 

나보다 더 힘들어 하는 도반들이 많았다. 나보다 훨씬 더 많이 쉬는 것 같았다. 그렇게 해서 어떻게 만 배를 채우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그들 상당수는 나보다 절의 속도가 빨랐다. 절 하는 것에 들이는 정성의 정도가 다르다고 볼 수도 있었다. 난 간절한 마음으로 절을 했다. 내가 관세음보살이 되고, 부처가 되는 것을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하면 절이 더 간절해졌다. 아내와 아이들이 떠올랐다. ‘그들을 집에 두고 내가 왜 이곳에 와 있나’ 하는 생각을 하면 절이 더욱더 간절해질 수밖에 없었다.

 

저녁에는 사타구니 까진 것이 계속 신경이 쓰여 손수건을 대각선으로 접어 기저귀처럼 차고 허리는 테이프로 감았다. 한결 나아졌다. 오른쪽 무릎 까진 부분이 넓어지긴 하였지만 절을 하다보면 무감각해졌다. 여전히 고통스럽고 겁나는 것은 무릎 통증. 만(10,000)이라는 숫자가 우리가 흔히 쓰는 만 원짜리 돈을 생각하면 쉽게 느껴지지만, 일(1)부터 하나하나 차곡차곡, 그것도 하나마다 두 번씩 고통을 느끼며 쌓아가야 한다면, 그것은 엄청난 숫자다. 9,000배를 넘어 만 배가 가까와졌다.

 

우리의 대오 앞에서, 6기 김ㅇㅇ 행자님의 절은 여전했다.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도반들이 하나 둘, 만 배를 마치고 자리를 떴다. 관세음보살 염불을 하는 사람도 줄어 거의 나밖에 없었다. 마지막 400배를 남기고 쉬는 시간에, 김ㅇㅇ 행자님이 몇 배나 남았냐고 물어, 400배가 남았다고 하니, 쉬지 말고 한꺼번에 다 하라고 하였다. 그렇게 하였다. 밤 11시가 되어 만 배를 마쳤다. 마지막 100배는 더욱더 정성을 기울였는데, 자꾸만 울음이 나오려고 하여 관세음보살 염불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난 만 배에서 무엇을 얻었는가? 행자반장님은 나중에 "만 배는 그냥 만 배일 뿐"이라고 하였다. 그래도 만 배를 마친 것이 기뻤다. 끝내 만 배를 다 채우지 못한 도반 몇 명은 수련원을 떠났다. 행자반장님은 그에 대해서도, "좋다 나쁘다 말할 수 없다. 그것이 그들에게는 최선의 선택이다."라고 말했다. 만 배는 만 배일 뿐이고, 백일출가도 백일출가일 뿐이다. 지금 이 글을 쓰는 것도 그저 글을 쓰는 것일 뿐이다. 그것들에 의미를 부여하려고 하면, 금방 도에서 벗어난다. 만 배는 끝났지만, 절은 백일출가 내내 '지겹도록' 계속되었다.

(2010. 2. 5. 09: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