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어린왕자 2021. 12. 27. 22:28

황량한 속리산

날이 많이 추웠다. 아내는 날이 춥고 몸상태도 좋지 않다며 산에 못 가겠다고 했다. 슬쩍 그동안 미루어 온 북가치~문장대 능선을 타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 보지 않은 길이고, 정규 탐방로도 아니라, 가는 길이 제대로 있을지, 지난번 밤티능선을 가다가 겪은 당황스러움과 두려움을 되풀이하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가다가 길이 끊기면, 갔던 긴 길을 다시 돌아와야 하기 때문인데, 이날도 그런 어려움이 있었다.

 

수정초등학교 앞에 자전거를 내려놓고 더 올라가 여적암 아래 차를 세웠다(09:00). 여적암서 북가치까지는 참 지루하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호흡을 느끼며 걸으려 했다. 날이 추워 손발이 시렸다. 북가치 다 가서야 손에 열기가 났고, 발은 여전히 시렸다. 혼자 가는 길인데도 북가치까지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10:04).

 

북가치부터는 처음 가는 길이다. 표지판에는 그곳에서 문장대까지 2.9km이라고 적고 있는데, 거리가 생각보다 짧아 오래 걸릴 것 같지 않았다. 그러나 암릉을 타고 가는 길은 배가량 시간이 더 걸린다. 여기가 그랬다.

 

속사치에 이르니, 오른쪽으로 법주사, 왼쪽으로 중벌리 가는 길이 조릿대 사이로 작게 나 있었다. 오른쪽 길을 따라 법주사 쪽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도 했다. 그때까지 온 길은 그리 험하지 않았으나, 그다음부터 본격적으로 펼쳐질 암릉길을 앞두고 두려운 마음이 생기는 것을 어찌할 수 없었다.

 

관음봉까지는 그런대로 표지기도 있고 밧줄도 잘 매달려 있어 어렵지 않게 갈 수 있었다(11:50). 생각보다 시간이 훨썬 더 많이 걸리고 있었다. 정상 표지석이 높은 바위 위에 아슬하게 서 있는데, 그곳까지는 차마 무서워 올라갈 수 없었다. 그 아래에 서서 낭떠러지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두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 같았다. 혼자 있으니, 더 두려웠을 것이다. 그다음에 이어질 길은 어떨지 걱정이 두껍게 쌓였다.

 

예상대로였다. 어느 순간 바위를 타고 올라가야 하는데, 밧줄이 중간에 끊어졌다. 위로 남은 밧줄도 가늘어, 그걸 잡은 나를 버티어줄지 무서웠다. 밧줄을 잡고 올라가다 끊어지면 한참을 굴러떨어져야 한다. 2시간도 넘게 왔는데 다시 돌아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 뒤꿈치를 들고 팔을 뻗으니, 끊어진 밧줄 끝을 간신히 잡을 수 있었다. 몇 번 힘주어 잡아당겨도 끊어지지는 않았다. 그 줄을 잡고 올라섰다. 크고 위험한 모험이었다. 다행히 줄은 끊어지지 않았다. 그런 곳이 한 번 더 나왔는데, 밧줄이 중간에 끊어졌어도 그 윗부분 상태는 튼튼해 보여 걱정은 덜 되었다.

 

큰 바위들이 앞을 가로막고, 그 바위들 사이에 높낮이가 심해, 아래에 있는 바위로 내려갔다가 앞으로 가는 길이 없으면 도로 올라올 수 없는 상황에 맞닥뜨렸다. 무척 난감했다. 눈앞에 문장대가 보이는데, 다시 돌아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발길을 돌려 커다란 바위 왼쪽으로 난 내리막길로 내려섰다. 표지기도 하나 있었으나 정말 제대로 가는 길인지 안심할 수 없었다. 다시 올라가는 길이 나왔는데, 경사가 심한 데도 밧줄이 없었다. 부실하게 보이는 관목 뿌리를 잡고 올라가야 했다. 그곳도 떨어지면 한참 굴러야 하는 곳이었다. 심장이 벌렁벌렁했다. 무사히 지나기는 했지만, 안전을 더 확실하게 확보한 후에 갔어야 했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그 방법을 찾기도 어려웠다. 그래도 불확실한 모험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게 마지막 위험이었다.

 

내 키보다 더 큰 조릿대 숲을 따라 난 길을 한참 지나고, 오르막을 한번 오르면 문장대다(13:10). 북가치에서 3시간도 더 걸렸다. 문장대 바람이 무척 세고 찼다. 내가 다녀온 밤티능선(백두대간)과 칠형제봉 능선에 펼쳐진 바위들이 희고 앙상한 나뭇가지들 사이에서 무척 황량하게 느껴졌다. 마치 달이나 화성 표면처럼 느껴졌다. 눈을 돌려, 내가 지나온 관음봉 쪽을 바라보았다. 내가 자주 노니는 애기업은바위, 묘봉, 상학봉 등이 아득하게 보였다.

 

하산길에 휴게소에 들러 요기하는 동안, 하유정 전 의원을 만났다. 문장대를 백번도 넘게 올랐다고 한다. 내가 먼저 휴게소를 나와 한참 걸어가는데, 하 의원이 동생과 함께 뛰어 나를 지나쳤다. 둘 다 마라톤 매니아다.

 

수정초등학교 앞에 세워놓은 자전거를 타고 여적암으로 갔다. 다리는 지쳐 무겁고 약간 오르막이라 앞으로 나가기 어려웠다. 차라리 걷는 게 나을 것 같아 자전거에서 내렸다. 여적암 아래 차 세워놓은 곳에 가니, 피로가 찬 기운에 가득 쌓였다(16:00). 긴 산행이라 힘들었지만, 이제 드디어 충북알프스를 다 이어 홀가분했다.

 

일시 : 2021. 12. 25.() 맑고 매우 추움

일행 : 없음

코스 : 여적암 ~ 북가치 ~ 관음봉 ~ 문장대 ~ 법주사 ~ 여적암 (7시간 걸림)

관음봉 

 

관음봉

 

문장대

 

문장대서 바라본 밤티능선

 

밤티능선과 칠형제봉 능선

저 멀리 시루봉도 보인다. 

 

문장대서 바라본 관음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