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 이야기

하늘나라 -2- 2017. 4. 25. 22:40




"정치권력은 두려운 것자칫 너무 많은 사람에게 피해 줄 수 있어"



['야권 연대'로 안철수와 갈등·총선 불출마 이후 칩거… 김한길 前 의원 단독 인터뷰]


"세 가지 선거 전략 제시하자 노무현 얼굴이 벌게졌다…
'배짱 안 맞는 짓 안 해요' 라며 벌떡 일어나 나가버렸다"

"첫 만남에서 문재인이 물었다 '서울에선 방 어떻게 구하나?'
그와 여러 번 대화 나눴지만 끝나고 나면 그의 얘기 달라"



김한길(64) 전 의원은 적어도 물러날 때를 아는 정치인임은 틀림없다. 그는 작년 4·13 총선에서 '야권 연대'를 놓고 안철수와 갈등을 빚은 뒤 불출마 선언하고 칩거했다. 언론과의 접촉도 끊었다.

"내가 칩거하는 동안 안철수가 찾아온 적이 있었다. 감정적 앙금을 푼 지는 오래됐다."

김한길 전 의원은“안철수는‘보수 대표주자’의 프레임에 빠지면 안 된다”고 말했다.
김한길 전 의원은“안철수는‘보수 대표주자’의 프레임에 빠지면 안 된다”고 말했다. /조인원 기자


결과로 보면 그때 '독자 노선'을 견지한 안철수의 판단이 옳았지 않나?

"호남에서만 의석을 얻었고, 수도권에서는 거의 전패(全敗)해 전국 정당의 모습을 갖추지 못했다. 연대를 했으면 다른 결과가 나왔을 거다."

―그때와 유사한 상황이 됐다. 물론 연대 대상은 정반대가 됐지만?

"그때는 '야권 연대'이고, 지금은 정치적 명분이 약하다. 안철수나 다른 당 후보도 '그런 일은 절대 없다'고 공식적으로 말하고 있지 않나."

―하지만 일부 보수 인사는 문재인 집권을 막기 위해 '국민의당+자유한국당'의 연대까지 주장하는데?

"그런 발언 때문에 문재인 측에서 안철수에게 '보수 대표 주자'의 프레임을 씌운다. 안철수가 여기에 빠지면 안 된다. 이번에는 '야 대(對) 야'의 선거다."

―안철수와의 인연은?

"내가 진행하던 MBC 토크쇼 '김한길과 사람들'(1993년)에 안철수가 초대됐다. 그 뒤 지속적으로 만났다."

―안철수의 정치 입문에도 관계했나?

"6년 전쯤 안철수가 전국을 돌며 토크 콘서트를 하고 '안철수 신드롬'이 일어났을 때다. 내 사무실로 찾아와 '지금의 정치를 바꾸기 위해 정치판에 뛰어들겠다'며 상의했다. 나는 적극 찬동했다."

―안철수는 '새 정치'를 내걸었지만 그게 무엇인지에 대해 답을 못하고 있다.

"그와는 오랜 기간 많은 대화를 나눴다. 자기 나름의 원칙과 목표를 갖고 있다. 어떻게 정치를 변화시킬 수 있는지 고민하고 있다. 정치판에 뛰어든 뒤로 그는 압축 경험을 했다. 현실 정치에 대한 상당한 이해도를 갖추게 됐다."

―국가 현안에 대한 자기 주견과 판단력이 있는지에 대해선 여전히 의문스럽다. 이는 대통령이 됐을 경우 국정 운영과 직결되는 문제다.

"그는 매사에 자기 입장이 분명하다. 복잡한 사안을 단순하게 정리하는 능력이 있다."

―지난 후보 토론회에서 김대중 정부 시절의 '불법 대북 송금' 질문에 "공과(功過)가 있다"고 반복했다. 무슨 뜻인지 독해(讀解)가 안 됐다.

"그가 말한 그대로 봐 달라."

―그의 답변을 들으면 마치 '아버지를 아버지로 부르지 못하는(呼父呼兄)' 홍길동의 처지가 떠오른다. 대통령 후보는 자기 입장을 분명히 내보이고 유권자 선택을 받아야 하지 않나?

"인터뷰나 토론회에서 그는 수차례 자기 입장을 말해왔다. 그의 입장과 배치되는 당론(黨論)은 바꾸겠다고 했다. 박지원 대표에 대해 말이 많이 나오는데, 안철수의 정치적 순결성을 지켜주기 위해 흙탕물을 대신 맞는 경우도 있다고 본다. 오히려 '전략적 모호함' 뒤에 숨은 쪽은 문재인이 아닌가."

―현재 안철수의 딜레마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전통적인 야권표에 중도 보수 성향의 표가 더해져야 그가 이길 수 있다. 한쪽을 견인하면 다른 쪽을 잃을 수 있다. 표를 얻어야 하는 선거니까 이런 딜레마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럼에도 보수 정권의 실패로 인해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치러지는 이번 대선은 '야 대(對) 야'의 선거임을 잊어선 안 된다. 정체성이 여권 후보처럼 보여선 안 된다."

―이번 대선의 특징은 보수표가 방황하고 영호남에서 몰표가 사라지는 것인데?

"영남 표가 나뉘고, 호남에서 세대 간으로 표가 양분되는 건 첫 경험이다. 지역 구도가 무너질 수 있을까 희망적으로 본다."

'홍준표 변수'가 있다. 시간이 갈수록 전통적 보수표가 결집될 가능성이 크다. 3분할로 가면 문재인 당선이 확실한데?

"그렇게 돼서는 안 된다. 우리 정치의 고질적인 행태를 극복해야 한다면 안철수를 선택해줄 것이다."

―보수 입장에서는 '반기문 불출마'에 아쉬움이 많을 것이다.

"여당의 한 의원이 찾아와 '반기문과 같이해 보자'고 제안했을 때 '나는 무작정 그렇게 할 군번이 아니다. 그분이 노란색(보수)인데 파란색(진보)이 돼야 이긴다고 파란색 시늉을 할 수 없지 않은가'라고 말했다. 반기문이 귀국한 지 얼마 안 돼 나를 찾아왔다. 개인적인 인연이 없는데 조언을 구하러 온 것이다. 나는 '야 대(對) 야 선거가 될 것'이라고 말해줬다."


그게 전부인가?

"그분의 지지율이 계속 떨어지고 있을 때 또 찾아왔다. 내가 '좋은 말만 들으려고 오신 게 아닐 거다. 냉정하게 보면 총장님께서는 보수의 소모품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틀 뒤 그분이 불출마를 선언했다. 하버드대학으로 가기 전에 다시 찾아와 '솔직하게 얘기해줘서 고맙다'고 말하더라."

―김종인 전 민주당 대표의 '제3지대' 구상에도 관계했다고 들었는데?

"촛불 정국에서 그분이 개헌을 매개로 그런 구상을 내비쳤을 때 '민주당 의원을 하고 있으면서 협상을 주재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다가 탄핵 정국 이후 제3지대가 이미 없어진 시점에 '의원직을 그만두고 나서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어떻게 해보겠다는 건지 본인 생각이 없었다. 내게 '그림을 그려주시오'라고 했다. 나는 '현실성이 없다'고 대답했다."

―왜 당신에게 그런 부탁을 하나?

"큰 선거를 직접 관리해봤기 때문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 '3대 선거 공신(功臣)' 중 한 명으로 내가 꼽혔다. 노무현 선거 때는 내가 후보 단일화를 이뤄냈다."

―노무현 선거 캠프에서는 친노 세력이 주축이었지 않나?

"노무현이 경선 승리를 했을 때 지지율이 58%였다. 노 후보 캠프에서는 당선은 떼놓은 당상으로 여겼다. 자기들끼리 선거를 치르겠다며 내 도움은 필요 없다고 했다. 하지만 그 뒤로 지지율이 계속 하락했다. 결국 노무현이 내게 보자고 요청했다. 내가 세 가지 방안을 제시하자 그는 얼굴이 벌게지면서 '나는 배짱에 안 맞는 짓은 안 해요'라고 벌떡 일어났다. 의자가 넘어졌을 정도다."

―무슨 방안이었기에?

"그 내용은 기억이 잘 안 나는데, 어쨌든 그런 반응이 황당했다. 내가 '지금 당원들이 밤낮으로 뛰고 있는데 노 후보는 자기 배짱 안 맞는 일은 안 하겠다고 말하느냐'고 되받으니, 그는 나가버렸다. 화장실 갔는 줄 알았는데 오지를 않았다. 비서진에 알아보니 다른 일정이 있어 갔다는 거다. 나도 열 받았다."

―'노무현답다'고 해야 할까?

"결국 그의 지지율이 바닥을 찍었고 당내에서 후보 교체가 논의됐다. 대선이 석 달쯤 남았을 때다. 내가 지역구에서 당원 단합 대회를 하고 있는데 사전 연락도 없이 노 후보가 찾아왔다. 그가 마이크를 잡고는 '김 의원이 날 도와주면 지지율이 올라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노 캠프에 합류했나?

"당시 정몽준 후보 쪽에서도 도와 달라는 부탁이 있었다. 열흘쯤 생각하다가 노 캠프에 '특별본부장'으로 합류했다. 그때는 노 후보나 친노가 내 의견을 다 받아들였다. 하지만 판세가 기울어져 있었다. 내가 직접 노 후보에게 '이대로 가면 이회창한테 정권을 바치는 것'이라며 정몽준과의 단일화를 압박했다."

―노무현은 뭐라고 답했나?

"그는 '전국을 돌며 후보 단일화는 없다고 말했던 나다. 지금 와서 내 입으로는 못 한다'고 했다. 알아서 하라는 뜻이었다. 곧장 정몽준 후보 측과 단일화 협상에 들어갔다. 1차 협상은 결렬됐다. 후보 등록 마감 시간에 쫓겨 2차 협상을 했다. 그날 밤 협상 와중에 김원기 고문이 '선대본부장들이 모두 단일화에 부정적이다. 협상을 깨고 오라'고 연락해왔다."

―왜 갑자기 그런 전화가?

"후보 단일화 조건인 여론조사에서 이길 자신이 없었던 거다. 만약 제1야당이 대통령 후보를 못 내게 되면 후유증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고민하다가 단일화 협상안에 사인했다. 그때 여론조사에서 졌으면 내가 다 뒤집어썼을 것이다. 노무현은 당선되자 처음엔 내게 청와대 비서실장을 제의했다."

―문재인과의 인연은?

"노무현 인수위 시절 내가 당선자 기획특보였다. 어느 날 노 당선인이 '부산에서 내 친구 올라온다'고 말했다. 그때 처음 문재인을 봤다. 엘리베이터에 같이 탔는데 그의 첫마디가 '서울에서는 방을 어떻게 구합니까?'라는 질문이었다. 그게 기억이 난다. 그 뒤 만날 일이 별로 없다가 몇 년 전 당(黨)을 같이하게 된 것이다."

―지금 와서 문재인과는 왜 다시 못 만날 관계처럼 됐나?

"같은 당에 있으면서 그와 여러 번 얘기했다. 대화가 잘됐고 어느 선에서 의견 조정이 이뤄졌다고 생각하는데, 끝나고 나면 그는 180도 전혀 다른 얘기를 했다. 몇 번 당했다. 친문 패권 세력이 뒤에서 그를 움직였다고 본다."

―어느 정당이든 현실적으로 보스와 계파가 있다. 왜 문재인 계파만 '패권 세력'이라고 문제 삼는가?

"김대중 정부에서 나는 젊은 나이에 청와대 수석과 장관을 하면서 '정치권력은 두려운 것'임을 배웠다. 자칫 너무나 많은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 정치권력은 제도와 시스템에 의해 관리돼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친문 세력은 당내의 공고한 다수로서 권력을 휘둘렸다. 이들의 뜻에 동의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다. 내가 당대표로 있으면서 실제 겪었다. 그래서 문재인이 촛불 집회에 올라타 '적폐 세력 청산'을 내세울 때 염치가 없어 보였다."

'적폐 세력 청산'은 촛불 집회의 요구로 볼 수 있지 않은가?

"최순실의 국정 농단이 이뤄진 것은 제도와 시스템에서 정치권력을 관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촛불은 '정치가 이래서는 안 된다'는 질타였다. 패권, 계파, 비선 실세 정치를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재인은 박근혜와 그 친박 세력에 대해서만 질타하고 정작 자신과 관련된 '친문 적폐 세력'에 대해서는 침묵했다. 정당민주주의에 대한 각성이 없었다."

―현재 구도로 가면 안철수의 승산은 얼마나 되나?

"쉽지 않다. 안철수가 여러 번 도와 달라는 요청을 해왔다. 결국 백의종군하겠다고 말했다."

그가 칩거할 때만큼이나 나와야 할 때도 잘 아는지는 선거 결과가 답할 것이다.





김한길(58)·최명길(49) 부부 - 2011.2.19.중앙 外  http://blog.daum.net/chang4624/32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