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人生의道

    산내들 2014. 12. 24. 09:18

    우리들 사람은 스스로 지혜로워지길 추구했는지 창조한 자의 뜻을 살피려 하지 않고 우리 눈에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생각되는 것을 쫒아 살아왔나 보다.

    창조주의 대화상대로 창조된 사람이 자신을 창조한 자를 마음에 두길 싫어함을 감지한 사탄이 재빨리 찾아와 네 눈에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한 것이면 족하지 않겠느냐? 무슨 쓸데없는 금기사항이라니...

    그래 네 말이 맞지 하며 자신을 창조한 자의 얼굴을 피해 잠적해 버린 사건에 대하여 창조주께서 이르시기를 이제부터 너희 사람은 땀을 흘려야만이 살아갈 것이라는 기록(창세기)이 있다.

    솔로몬이 전한 전도서에도 사람의 수고는 입을 위한 것이라고 했듯이 생명활동이 계속되는 한 부단히 땀을 흘려야 하는 것이 우리들 인생인 것 같다.

    묘하게도 땀 흘리지 않고 공짜로 얻은 것으로는 낙을 누릴 수도 없는 것 같다.
    바람이 시원하다고 좋아할 수 있는 자는 분명 땀 흘려 산마루에 올라간 자만이 그렇할 것이다.
    탈 것으로 올라간 자는 불어대는 바람이 오히려 춥게 느껴지면서 즐겁지도 않을 것이다.

    창조주가 정한 절대적인 내용을 비웃기나 하듯이 땀 흘리지 않고서도 즐겁게 살 수 있다며 수단 찾기에 골몰했으니 오늘날의 문명사회가 비롯되었으리라.

    증기기관을 만들어 사람의 노동력을 대신케 했으니 땅속 깊히 숨겨진 것들도 찾아내어 우리들의 삶이 윤택해 졌다.
    사람의 판단력을 대신케 할만한 기기(컴퓨터)를 개발하여 그녀석의 도움으로 지구 이편에서 저편까지 하늘과 바다를 빠르게 이동할 수 있고 우주공간까지도 나가 볼 수 있게 되었으니 지난날 불가능했던 것들이 가능해진 세상이라 할만 하지 않은가?

    오늘날엔 일상생활 깊숙히 컴퓨터(스마트폰 등)가 끼어 들면서 우리들의 삶은 밤낮으로 빠르게 변해가고 있다.
    건설현장이나 공장은 사람 만나 보기가 어려울지라도 예전보다 높은 생산성과 안정된 품질수준으로 실행속도가 빨라졌다.

    사람보다 정확한 서비스를 무한대로 제공받을 수 있으니 땀 흘리지 않고서도 삶을 즐길만하지 않은가?
    하지만 그림자처럼 따라 붙은 것이 있었는지 우리들 삶은 빠르게 생기를 잃어가는 것 같다.

    오늘날까지의 경험과 지식중에 최고수준으로 입력된 컴퓨터가 있으니 화면에 뵈는 그림만 눌러대면 높은 수준의 지식과 판단력이 필요했던 것들을 한치의 오차도 없이 손쉽게 얻어낼 수 있다.

    높은 수준의 판단력을 필요로 했던 고급 일감을 컴퓨터가 독차지 했으니 대학까지 배운 것들이 활용기회를 얻기 어렵고, 우리들의 판단능력과 사색능력도 마비되어 가는 것 같다.

    사람이 양심과 합당한 가치관으로 사색할 줄 알아야만이 사람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것이다.
    자연을 보며 사색할 때 그로부터 합당한 가치관을 배우게 될 것인데 갈수록 사색력이 마비되어 간다면 동물과 다를 것이 무엇이겠는가?

    창조주의 유일한 대화상대로 창조된 사람이 동물을 닮아 감을 창조주께서도 방관할 수만은 없었으리라.
    사람 창조하심을 후회(창세기)하실지라도 곧바로 관계회복을 위한 대장정의 역사를 기획하시어 실행에 착수하셨으니 이같은 기록이 오늘날까지 성경으로 전해지고 있지 않은가?

    가출해서 떠돌다 감옥에 갇혀버린 자를 탈출시키는 것처럼 사탄이 요구하는대로 온갖 대가를 지불했으니 어서빨리 아비 집으로 돌아와 창조의 본래취지대로 살아갈 것을 여러방식을 동원하여 전달했지만 우리들의 눈과 귀는 여전히 엉뚱한 것만을 고집함에 급기야 모든 피조물중에 가장 사악한 자라고 까지 탄식하신 바도 있으니...

    우리들의 속성은 참으로 묘한 것 같다.
    잘못을 반성하기는 커녕 징벌에 대해 반발하며 비웃고, 오늘날까지 스스로 잔꽤 부리길 좋아했으니...

    창조주께서 대화상대로 창조하실지라도 자율권까지는 부여하지 말았어야 했을텐데...
    그 놈의 자율권이 이런 모양새를 야기하다니?

    창조주께서도 이렇게 될 줄을 모르셨을까?
    그래도 그렇지 자율권 없이 어찌 창조주와의 자율적인 대화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일차 실패했을지라도 그 분은 분명 창조의 뜻을 포기하지는 않았으리라.
    우리 눈과 귀에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아니할지라도 ....
    영의 눈과 귀가 열린다면 조금씩 아주 조금씩 창조주의 뜻을 살필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