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人生의道

    산내들 2015. 11. 10. 22:14

    듣는 자로 하여금 울게 하고 웃게 할 수 있는 재주가 모든 재주중에 제일 좋은 것 같다.
    그에 더하여 흠모할만한 용모를 지녔다면 얼마나 좋을까?

    종교계의 거물들이 하나같이 그러한 인물임에 부정할 수는 없다 할 것이다.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하다고 느껴지면 물고기가 미끼를 삼키듯 아무런 의심도 없이 즐겨 삼켜버리는 것 같다.

    자신을 흠모하며 모여들고 자신이 들려주는 말로서 많은 청중이 울고 웃는다면 청중을 얻은 것처럼 즐거워 할 것이다.
    우리들 모두는 그런 재주를 소망하여 말과 글재주를 익히고 외모를 가꾸어 가지만 천부적인 소질이 없이는 불가한 것 같다.

    다윗의 장남(압살롬)이 외모가 특출했다는 기록이 있고, 그가 왕권을 물려받아야 한다며 추종자들이 단합대회(전당대회)를 열었다 하지 않은가?

    정부의 맏아들로서 신뢰할만한 외모와 능력을 갖추었다고 객관적으로 인정됨에도 창조주는 엉뚱하게도 첩의 아들(솔로몬)을 택하지 않았는가?
    마치 창조주가 망령든 것처럼...
    우리들 생각과는 늘 반대로 진행된 것 같으니 참으로 오묘한 것 같다.

    우리들은 흔히 감동적인 설교를 듣고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펑펑 쏟아내면 큰 은혜를 받은 줄로 여기는데....
    모든 종교단체마다 저마다 감동적인 설교를 통해 신도의 마음을 붙들어 가고 있다 할 것이다.
    사기꾼도 하나같이 감동적인 언행으로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 모여들게 하는 천부적인 외모와 재주가 있는 것 같다.

    창조주의 말씀이 사람을 통해 전해 지는 과정에서도 자칫 사람의 천부적인 재주로 인해 변질되기 쉬운 것 같다.
    백옥처럼 하얀 옷감은 아주 적은 것으로도 오염되기 쉬운 것처럼...,

    말씀이 전해지는 과정에서 군중의 마음을 사로잡아 보고픈 사심이 끼어들면 자칫 엉뚱한 내용으로 변질되기 쉬울 것이다.
    종교적인 속성을 부추긴다면 더더욱 그렇게 되기 쉽다 할 것이다.

    사도 바울도 종교적 속성으로 진실이 왜곡되어감을 경계해야 한다며 지탄한 적이 있지 않은가?
    정말 어려운 것인가 보다.
    말씀에 제대로 눈을 떳다 할지라도 그 세대가 끝나기까지 말씀이 변함없이 지켜진 역사가 없었다며 항상 말씀에 유의해야 한다고 했는데...

    눈물만 흘리면 은혜로 착각하는 것도 경계해야 하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