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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휘애비.溢空 2021. 7. 2. 15:39

 

당시삼백수 권2 칠언악부
76.낙양여아행(洛陽女兒行)-왕유(王維)
낙양 여인의 노래-왕유(王維)

 

洛陽女兒行(낙양녀아행)

 

王維(왕유)

 

洛陽女兒對門居(낙양녀야대문거)纔可容顏十五餘(재가용안십오여)

良人玉勒乘驄馬(양인옥륵승총마)侍女金盤鱠鯉魚(시녀금반회리어)

 

畫閣朱樓盡相望(화각주루진상망)紅桃綠柳垂簷向(홍도녹류수첨향)

羅幃送上七香車(나유송상칠향거)寶扇迎歸九華帳(보선영귀구화장)

 

狂夫富貴在青春(광부부귀재청춘)意氣驕奢劇季倫(의기교사극계륜)

自憐碧玉親教舞(자련벽옥친교무)不惜珊瑚持與人(부석산호지여인)

 

春窗曙滅九微火(춘창서멸구미화)九微片片飛花璅(구미편편비화소)

戲罷曾無理曲時(희파증무리곡시)妝成秪是薰香坐(장성저시훈향좌)

 

城中相識盡繁華(성중상식진번화)日夜經過趙李家(일야경과조리가)

誰憐越女顏如玉(수련월녀안여옥)貧賤江頭自浣紗(빈천강두자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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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출처 : 維基文庫

自由的圖書館 - 本作品收錄於:《唐詩三百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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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양의 여자아이 문을 마주하고 사는데

예쁘장한 얼굴에 나이는 열다섯 남짓

 

낭군은 옥 재갈 물린 청총마(靑驄馬)를 타고

시녀는 금 쟁반에 잉어회를 바치네

 

단청한 누각들이 끝없이 연이었고

분홍빛 복사꽃 푸른 버들이 처마 향해 드리웠네

 

나갈 땐 비단 휘장 친 칠향거(七香車)에 태워 보내고

돌아올 땐 아름다운 부채로 가려 구화장(九華帳)으로 들어서네

 

방탕한 남편은 부귀한데다 청춘이라

교만하고 사치한 마음이 석숭(石崇)을 능가한다

 

벽옥(碧玉)같은 미녀를 어여삐 여겨 친히 춤을 가르치고

산호수를 남에게 주는 것도 아끼지 않는다

 

봄 창에 새벽 되자 구미등(九微燈)을 끄니

구미(九微)의 불꽃들 조각조각 꽃잎처럼 날린다

 

놀기를 끝마치도록 노래를 익힐 시간 없고

화장한 채 향기 속에 앉아 있을 뿐

 

성 안의 아는 이들 모두 부귀한 집안이요

밤낮으로 들르는 곳 조가(趙家)와 이가(李家)라네

 

누가 불쌍히 여기리오 옥같은 얼굴의 월녀(越女)

빈천한 몸으로 강가에서 손수 비단 빠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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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釋] 낙양 인가의 여자아이가 우리 집과 대문을 마주하고 사는데, 꽤 어여쁜 얼굴에 나이는 열다섯 남짓 되었다. 그녀의 남편은 옥으로 된 재갈을 물린 청총마(靑驄馬)를 타고, 시녀들은 그녀 곁에서 시중 들며 금 쟁반에 잉어회를 담아 가져온다.

 

그녀의 집 옆으로는 그림 그린 누각과 붉게 칠한 화려한 집들이 연이어 있고, 처마 앞에는 푸른 버들과 붉은 복사꽃들이 드리워져 있다. 외출할 때에는 비단 휘장을 쳐서 칠향거(七香車)에 그녀를 태워 보내고, 돌아올 때에는 아름다운 부채로 가려 구화(九華)의 휘장으로 들어오는 그녀를 맞이한다.

 

그녀의 남편은 부귀한 데다 나이가 어려서 그 마음의 교만과 사치가 진대(晉代)의 석숭(石崇)을 능가할 정도이다. 그는 그녀를 너무나 사랑하여 친히 노래와 춤을 가르치고, 부유함을 자랑하기 좋아하여 다른 사람에게 산호수(珊瑚樹) 주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는다.

 

봄날 해가 환하게 창문을 비추니 불을 밝히고 있던 구미등(九微燈)을 불어 끄는데, 등잔의 불꽃들이 마치 잘게 부서져 떨어지는 꽃잎과 같다. 두 사람이 하루 종일 얘기하고 웃고 장난을 치는 통에 그녀는 가무를 연습할 시간이 없어, 다만 새로 화장을 하고 향()을 쐬면서 고요히 앉아 있을 뿐이다.

 

그녀의 남편이 아는 성 안의 사람들은 모두 부귀한 집안의 출신들이고, 밤낮으로 그가 왕래하며 들르는 곳도 모두 황제의 친인척들이다. 그 누가 불쌍히 여기겠는가, 저 서시처럼 아름다운 여인이 빈천한 몸으로 시냇가에서 손수 비단빨래 하는 것을.

 

[解題] 洛陽女兒行(낙양녀아행)은 가행체(歌行體)의 악부시(樂府詩)로 첫 구를 표제로 삼았다. 全唐詩(전당시)에 있는 시제(詩題) ()에 의하면, “당시 나이가 열여섯이었다. 다른 데에는 열여덟이라고 되어 있다.[時年十六 一作十八]”라 하였으니, 이 시는 왕유가 소년 시절에 지은 작품이다.

 

왕유는 시인으로서는 조숙해서 소년 시절에 이미 뛰어난 작품을 지었으니, 15세에 지은 過始皇臺(과시황대), 16세에 지은 洛陽女兒行(낙양녀아행), 17세에 지은 九月九日憶山東兄弟(구월구일억산동형제)같은 작품들은 그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이 시는 표면적으로는 일개 낙양(洛陽) 여아(女兒)의 호사스러운 생활을 묘사하였지만, 그 이면에는 당시 권귀(權貴)들의 사치하고 방탕한 생활을 풍자하고 있다. 이와 비슷한 우의시(寓意詩)로는 당초(唐初) 노조린(盧照隣)長安古意(장안고의), 낙빈왕(駱賓王)帝京篇(제경편)등을 들 수 있다.

 

이 시에서 말하고 있는 낙양 여아는, 여남왕(汝南王)에게 시집간 벽옥(碧玉)처럼 본래는 보잘것없는 집안의 딸이었지만 부잣집 권문세도가(權門勢道家)로 시집가고 난 후에는 오로지 어여쁜 용모만을 치장하며 사치와 향락의 삶을 살고 있다. 이로써 본다면 인생에 부귀를 어찌 바라리오. 일찌감치 동가왕(東家王)에게 시집가지 못한 것이 한스럽다.[人生富貴何所望 恨不早嫁東家王]’(梁 武帝 河中之歌의 마지막 두 )는 탄식이 절로 나오는바, 현자들은 불우하고, 선택된 자들은 적임자들이 아닌 현실의 부조리에 대하여 시인은 불만과 분개함을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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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

역주1> 洛陽女兒行(낙양녀아행) : 악부(樂府) 가운데 신악부(新樂府)에 속한다. () 무제(武帝) 소연(蕭衍)河中之水歌(하중지수가), “하중의 물 동쪽으로 흐르니, 낙양의 여자아이 이름은 막수라. 막수는 나이 열셋에 비단 짤 줄 알았고, 열넷에 남쪽 길머리에서 뽕을 땄다네. 열다섯에 노씨(盧氏) 집으로 시집가고, 열여섯에 아이 낳으니 자()가 아후(阿侯).[河中之水向東流 洛陽女兒名莫愁 莫愁十三能織綺 十四采桑南陌頭 十五嫁爲盧家婦 十六生兒字阿侯]”고 했는데, 여기에서 시제(詩題)를 가져왔다. ()은 시가(詩歌) 형식의 한 종류이다.

 

역주2> 良人玉勒乘驄馬(양인옥늑승총마) : ‘良人(양인)’은 남편에 대한 존칭이다. ‘玉勒(옥륵)’寶玉으로 장식한 재갈이다. ‘驄馬는 푸른색과 흰색의 털이 섞여 있는 준마이다.

 

역주3> 侍女金盤鱠鯉魚(시녀금반회리어) : ‘侍女는 여종이고, ‘鯉魚는 잉어를 회치는 것이다.

 

역주4> 畫閣朱樓(화각주루) : 단청을 칠한 화려한 누각으로 주택의 화미(華美)함을 형용하는 말이다.

 

역주5> 七香車(칠향거) : 꽃향기가 나는 화려한 수레이다. 조조(曹操)與太尉楊彪書(여태위양표서), “삼가 족하께 사방으로 휘장이 쳐진 칠향거 한 대를 드립니다.[謹贈足下四望通幰七香車一乘]”라고 했는데, 장초(章樵), “칠향거는 일곱 종류의 향목으로 수레를 만든 것이다.[以七種香木爲車]”고 하였다.

 

역주6> 九華帳(구화장) : 꽃무늬로 장식된 화려한 휘장을 말한다.

 

역주7> 狂夫(광부) : 옛날 婦人이 자신의 남편을 부르던 겸사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실제적인 의미도 담고 있으니, 狂放(광방), 放蕩(방탕)한 남편을 가리킨다.

 

역주8> 意氣驕奢劇季倫(의기교사극계륜) : ‘極甚의 뜻으로 여기서는 능가한다는 의미이다. ‘季倫石崇이다. 晉代富豪인 석숭은 교만과 사치로 세상에 이름이 높았다.

 

역주9> 碧玉(벽옥) : 남조(南朝)의 송()나라 여남왕(汝南王)의 시첩(侍妾)의 이름인데, 여기에서는 낙양녀아(洛陽女兒)를 가리킨다. () 원제(元帝)채련부(採蓮賦), “벽옥은 소가(小家)의 여자, 여남왕에게 시집왔네.[碧玉小家女 來嫁汝南王]”라고 하였다.

 

역주10> 不惜珊瑚持與人(부석산호지여인) : 晉書(진서)》 〈石崇傳(석숭전), “왕개(王愷)는 무제(武帝)의 외삼촌이므로무제(武帝)가 매양 왕개(王愷)를 도와 주었다. 일찍이 산호수(珊瑚樹)를 그에게 하사하였는데, 높이는 두 자 쯤 되고 가지가 무성하여 세상에 그와 같은 것이 드물었다. 왕개가 그것을 석숭(石崇)에게 보여주자, 석숭은 곧 철여의(鐵如意)를 가지고 그것을 쳐서 손닿는 대로 부수었다. 왕개는 한탄하고 아까워하며 자신의 보물을 석숭이 질투하여 그렇게 한 것이라 여겨 목소리와 얼굴빛이 사나워졌다. 그러자 석숭이, ‘한스러워할 것 없소. 지금 경()에게 돌려주리다.’ 하고는 좌우에 명하여 높이 서너 자 되는 산호수 예닐곱 그루를 모두 가져오게 하였다. 그 줄기는 뛰어나게 아름다웠고 광채 또한 찬란하였으며, 왕개의 산호수와 비슷한 것이 매우 많으니 왕개가 망연자실하였다.[武帝每助()愷 嘗以珊瑚樹賜之 高二尺許 枝柯扶疏 世所罕比 愷以示崇 崇便以鐵如意擊之 應手而碎 愷旣惋惜 又以爲嫉己之寶 聲色方厲 崇曰 不足多恨 今還卿 乃命左右悉取珊瑚樹有高三四尺者六七株 條幹絶俗 光彩耀目 如愷比者甚衆 愷怳然自失矣]”라고 하였다.

 

역주11> 九微火(구미화) : ()의 이름이다. 博物志(박물지), “() 무제(武帝)가 선도(仙道)를 좋아하여 77일 서왕모(西王母)가 자운거(紫雲車)를 타고 대전(大殿)의 서쪽에 이르러 남면동향(南面東向)하면, 이때 구미등(九微燈)을 켜 놓고 황제는 동면서향(東面西向)하였다.[漢武帝好仙道 七月七日 王母乘紫雲車而至於殿西 南面東向 時設九微燈 帝東面西向]”고 되어 있다.

 

역주12> 薰香(훈향) : 향을 태워 그 향기가 옷에 배게 하는 것을 말한다.

 

역주13> 趙李家(조이가) : 본래는 한() 성제(成帝)의 후비(后妃)였던 조비연(趙飛燕)과 이평李平 두 여인의 집안을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황친(皇親) 귀적(貴戚)을 뜻한다.

 

역주14> 越女(월녀) : ()나라 미인 서시(西施)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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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자료의 원문 및 번역은

전통문화연구회의 동양고전종합DB(http://db.juntong.or.kr)에서
인용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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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숭(石崇, 249~ 300)은 중국 서진의 문인으로, 석포의 막내아들이며, 자는 계륜(季倫), 아명은 제노(齊奴)이며 청주(靑州) 발해군(渤海郡) 남피현(南皮縣) 사람이다.

 

매우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였는데, <진서(晉書)><세설신어(世說新語)> 등에는 황제의 인척인 왕개(王愷)와 부를 다투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는 낙양[洛陽] 서쪽에 금곡원(金谷園)을 지었는데, 집안을 매우 호화롭게 꾸며 뒷간도 화려한 옷을 입은 십 여명의 시녀들이 화장품과 향수를 들고 접대하게 하여 손님들은 침실인 줄 알고 놀라 돌아올 정도였다고 한다.

 

그는 금곡원(金谷園)에 관리와 문인들을 초대하여 주연(酒宴)을 자주 열며 풍류를 즐겼는데, 주연(酒宴)에서 시를 짓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벌로 세 말의 술을 마시게 하였다고 한다. 이 고사에서 '금곡주수(金谷酒數)'라는 말은 '술자리에서 받는 벌주'를 가리키게 되었다..

 

효성황후 조비연(孝成皇后 趙飛燕, ? ~ 기원전 1)은 전한 성제의 황후로, 성양후 조임(趙臨)의 딸이다.

본명은 의주(宜主). 녀의 출신은 미천한 신분이였고, 유년기에 부모를 잃고, 정도태후가 거둬들였다고 한다. 정도에서 정도왕과 사랑하는사이가 되었고 태후는 크게 노하여 두사람을 갈라놓았다. 얼마후 양아공주 집으로 보내어졌고 이름을 비연으로 개명하였다.

 

가무에 뛰어난 소질을 타고났고, 그녀의 미모에 반한 한 성제가 그녀를 후궁으로 맞이하였다. 후궁이 된 이후에는 성제의 총애를 받아 여동생 조합덕을 입궁시켜 후궁이 되게 한 뒤에 조합덕은 소의가 되었다. 성제는 조비연을 황후로 책봉할 계획을 세운다. 태후의 강한 반대를 받았고, 기원전 1812월에 허황후를 쫓아내고, 기원전 16년 결국에는 조비연은 황후가 되었다.

 

왕유(왕웨이, 王維, 699~ 759)는 중국 성당(盛唐)의 시인·화가로서 자는 마힐(摩詰)이다.

그의 시는 친교가 있던 맹호연을 닮은 데가 많으나 맹호연의 시보다 날카롭다. 또한 불교신자로서 관념적인 '()'의 세계에의 동경을 노래한 것이 있다. 한때 관직을 물러났을 때 망천(輞川지금의 허난성)에 별장을 짓고, 그 별장의 경물을 소재로 하여 노래한 죽리관(竹里館)이나 녹시(鹿柴)(모두 5언절구)는 특히 유명하다. 왕유는 또한 화가로서도 뛰어나서, 남송화(南宋畵)의 시조(始祖)로서 추앙된다. "왕유의 시를 보면, 시 중에 그림이 있다"고 송()의 소식은 평하고 있다.

 

[출처] [당시삼백수]낙양여아행(洛陽女兒行:낙양 여인의 노래)-왕유(王維)|작성자 swings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