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시 이야기

재휘애비.溢空 2021. 8. 13. 20:56
고문진보 제10권 행류
211.兵車行(병거행) - 杜甫(두보)
당시삼백수 권2 칠언악부
86.兵車行(병거행) - 杜甫(두보)

 

兵車行(병거행)

 

杜甫(두보)

 

車轔轔(거린린), 馬蕭蕭(마소소),

行人弓箭各在腰(행인궁전각재요).

 

수레는 삐걱삐걱, 말들은 히힝대고

출정하는 병사는 활과 화살 허리에 찼다

 

爺娘妻子走相送(야랑처자주상송),

塵埃不見咸陽橋.(진애불견함양교).

 

부모처자 총총대며 전송을 하느라

먼지 날려 함양교도 보이지 않네

 

牽衣頓足攔道哭(견의돈족란도곡),

哭聲直上干雲霄(곡성직상간운소).

 

옷 끌고 발 구르며 길 막고 통곡하니

통곡소리 솟아올라 하늘을 뒤흔드네

 

道旁過者問行人(도방과자문행인),

行人但云點行頻(행인단운점행빈).

 

길 가던 이가 병사에게 물으니

병사는 단지 말하길 징병이 매우 잦다오

 

或從十五北防河(혹종십오북방하),

便至四十西營田(지사십서영전).

 

어떤 이는 열다섯에 북쪽 하수(河水) 방어하다

마흔에 서쪽으로 가 둔전 노역을 한다네

 

去時里正與裹頭(거시리정여과두),

歸來頭白還戍邊(귀래두백환수변).

 

떠날 때 이장(里長)이 두건을 싸주었는데

돌아와 백발에도 다시 변방에 수자리 살러간다네

 

邊庭流血成海水(변정류혈성해수),

武皇開邊意未已(무황개변의미이).

 

변방에서 흘린 피는 바다를 이루었는데

황제의 정벌의 뜻 아직 끝나지 않았구려

 

君不聞漢家山東二百州(군불문한가산동이백주),

千村萬落生荊杞(천촌만락생형기).

 

그대는 듣지 못했는가, 한나라 산동 이백 고을

천촌만락에 잡초만 자라나

 

縱有健婦把鋤犁(종유건부파서리),

禾生隴畝無東西(화생롱무무동서).

 

비록 건장한 아녀자가 호미 쟁기 잡는다해도

논 밭의 벼들은 제멋대로 자란다오

 

況復秦兵耐苦戰(황복진병내고전),

被驅不異犬與雞(피구불이견여계).

 

더구나 진() 땅 병사 힘든 전투 잘 견딘다고

내몰리는 것이 개와 닭이나 다를 바 없구려

 

長者雖有問(장자수유문),

役夫敢申恨(역부감신한)?

 

어른께서 비록 물어본다 한들

병사가 감히 어찌 원한을 말하리오

 

且如今年冬(차여금년동),

未休關西卒(미휴관서졸).

 

또 금년과 같은 겨울에도

관서의 병사들 쉬지도 못했다오

 

縣官急索租(현관급색조),

租稅從何出(조세종하출)?

 

고을 관리 급하게 조세 독촉하지만

조세는 어디로부터 나온단 말인가

 

信知生男惡(신지생남오),

反是生女好(반시생녀호).

 

진실로 알겠구나, 아들 낳기 싫어하고

도리어 딸 낳으면 좋아한다는 것을

 

生女猶得嫁比鄰(생녀유득가비린),

生男埋沒隨百草(생남매몰수백초).

 

딸 낳으면 오히려 이웃집에 시집이나 보내지만

아들 낳으면 잡초에 묻히고 만다네

 

君不見靑海頭(군불견청해두),

古來白骨無人收(고래백골무인수).

 

그대는 보지 못 했는가 청해호 주변에

예전부터 백골을 거두는 사람 없어

 

新鬼煩冤舊鬼哭(신귀번원구귀곡),

天陰雨濕聲啾啾(천음우습성추추).

 

새 귀신은 원통해하고 옛 귀신은 곡을 하니

날 흐리면 비에 젖어 흐느껴 운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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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출처> 維基文庫自由的圖書館

作者杜甫 唐 本作品收錄於:《唐詩三百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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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釋] 수레는 삐걱거리며 지나가고 말들은 히힝 울면서 지나가는 가운데, 출정하는 병사들은 활과 화살을 허리에 차고 있는 모습이다. 원정 나가는 그들을 전송하기 위해 부모들은 총총 걸음으로 좇고, 수레, , 인파로 흙먼지가 날려 함양교가 보이지 않는다. 헤어지는 것이 너무나 서글퍼 옷을 끌어당기고 발을 구르며 가지 말라 길을 막고 통곡하니, 통곡소리가 하늘을 찌르는 것 같다.

 

그 광경을 목도하며 지나가고 있던 내가 출정 나가는 병사에게 경위를 묻자 병사는 말한다. “징병이 너무 잦다오. 듣자하니 어떤 이는 열다섯 어린 나이에 북쪽으로 하수를 방어하러 갔는데, 마흔이 된 여태까지도 쉬지 못하고 서쪽 둔전에 종사하고 있다오. 그가 떠날 때 그 마을 촌장이 두건을 싸주었는데, 백발이 되어 돌아와서는 다시 변방으로 수자리 나간답니다. 변방에서는 싸우다가 세상을 떠난 병사들의 피가 바다를 이룰 만큼 그 희생이 많았지만 황제는 변방 개척의 뜻을 그치지 않는구려.

 

그대는 듣지 못했는가. 관동(關東) 지방의 2백 고을에는 남자들이 모두 징병당하여 일할 사람이 없어, 고을 곳곳에 가시덤불과 잡초가 무성히 자라나 있소. 비록 아녀자들이 대신해서 쟁기와 호미를 들고 밭을 맨다고 해도, 벼는 두둑과 이랑에 제멋대로 자라나 길에 동서 구분이 안 될 지경에 이르렀소. ()나라 땅 즉 관중(關中)의 병사들은 힘든 전투를 잘 견딘다고 하여 마치 닭이나 개처럼 내몰리고 있다오.

 

하지만 어른께서 일개 병사에게 고충을 물어본다 한들 어찌 감히 그 원한을 말할 수 있겠소. 올 겨울에는 특히 관서(關西)의 병사들이 연이은 징병으로 인해 더더욱 쉬지도 못했는데, 고을의 관리는 그저 조세를 거두는 것에만 급급하다오. 하지만 그 조세를 어디에서 마련한단 말이오. 모두들 아들 낳기 싫어하고 딸을 낳으면 오히려 좋아한다는데 진실로 그 이유를 알겠소. 딸을 낳으면 이웃집에 시집을 보낼 수 있지만, 아들을 낳으면 징병 당해 전쟁터에서 백초에 묻히는 신세가 되기 때문이라오.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변방의 오랑캐와 싸움이 잦던 청해호 주변에는 오래전부터 싸우다 죽은 병사의 유골들이 수습되지 않은 채 뒹굴고 있다오. 죽은 지 얼마 안되는 병사들의 원혼은 번민하며 원통해하고, 오래 전에 죽은 병사들의 원혼은 곡을 하니, 날이 흐려 비가 추적추적 내릴 때면 마치 그들이 오열하는 것처럼 느껴지는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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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解題] 이 시는 두보가 창작한 신제악부시(新題樂府詩), 대략 천보(天寶) 10(751)에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당 현종은 무공을 세우기 좋아하여, 변방을 개척하기 위해서 자주 병사를 징집하였다. 천보 86, 가서한(哥舒翰)은 토번(吐藩)의 석보성(石堡城)을 공격하였는데 그 당시 당나라 병사들 수만 명이 전사하였다. 천보 104월에는 검남절도사(劍南節度使) 선우중통(鮮于仲通)이 사사로운 원수를 갚고자 남조(南詔)에 진격하였는데 크게 패하자 사졸들 6만 명이 전사하였다.

 

양국충(楊國忠)이 패전의 실상을 엄폐하고자 거짓으로 전공을 알리고 또 다시 양경(兩京: 長安洛陽)과 하남(河南), 하북(河北)에서 병사들을 크게 모집하여 남조(南詔)를 공격하려 하였으나, 백성들이 징집에 응하려 하지 않았다고 한다. 두보의 병거행은 이 당시 느낀 감회를 쓴 것이다. 두보는 이 시를 통해 당 현종의 용병과 무력 전쟁 정책을 비판함과 동시에 징병당한 백성들의 고통에 깊은 연민을 드러냈다.

 

시는 의미상 두 단락으로 구분할 수 있다. 앞의 여섯 구가 첫 단락인데, 이는 부모처자와 이별한 뒤 전쟁에 출정하는 처절한 장면과 더불어 전쟁이 백성들에게 가져다주는 불행과 비참함을 묘사하였다. 둘째 단락은 문답의 방식을 통해 이렇게 불행하고 비참하게 된 원인과 결과를 그려내고, 통치자에 대한 풍자(諷刺)의 뜻도 담아내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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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集評] 사람이 우는 것으로 시작해서 귀신이 우는 것으로 끝맺었다. 성부(聲調)는 고악부에서 비롯되었으며, 필법(筆法)은 고초(高峭)하고 질박(質朴)하면서도 문채(文彩)가 있다.

 

두보의 병거행에서 長者雖有問(장자수유문) 役夫敢申恨(역부감신한)’이라는 구절을 심상하게 읽어보면 만어(漫語)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일을 겪은 후에야 비로소 이 말의 진실됨을 알게 된다. 대개 부렴(賦斂)의 가혹함과 지독한 빈궁의 괴로움은 그것을 방문하고 조사하는 관원과 진술하는 법령이 없는 것은 아니나, 이를 말한다고 해도 반드시 바로 잡히는 것은 아니며 간혹 도리어 해를 입기도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행히 다시 말할 기회가 있다하더라도 다른 때에 (관원이) 진노하여 보복하는 화()가 더 심해진다. 이것이 백성들이 감히 말하지 못하는 까닭이다. ‘()’자와 ()’자는 그 사정을 곡진히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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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

역주1> 兵車行(병거행) : 兵車行(병거행)麗人行(여인행)과 더불어 두보가 창작한 신제(新題) 악부시(樂府詩)이다.

 

역주2> 轔轔(린린) : 수레가 지나가며 내는 소리이다.

 

역주3> 蕭蕭(소소) : 말이 히힝거리며 우는 소리이다.

 

역주4> 行人(행인) : 출정(出征)하러 나간 이를 지칭한다.

 

역주5> 咸陽橋(함양교) : 함양(咸陽)의 서남쪽 위수(渭水)가에 있던 다리인데, 장안(長安)에서 서쪽으로 가려면 반드시 이 다리를 지나야 한다.

 

역주6> 干雲霄(간운소) : ‘()’()이나 ()’의 의미이다.

 

역주7> 道旁過者(도방과자) : 길가에 지나가는 사람으로, 여기서는 두보 자신을 가리킨다.

 

역주8> 點行頻(점행빈) : ‘點行(점행)’은 호적이나 명부(名簿)에 기재된 사람들을 강제로 징집하는 것이고, ‘點行頻(점행빈)’은 그러기를 빈번하게 했다는 뜻이다.

 

역주9> 北防河(북방하) : 당시 토번(吐藩)이 황하 서쪽 지역을 자주 침범하여 당()왕조는 농우(隴右), 關中(관중), 朔方(삭방) 지역의 군사들을 하서(河西)일대(黃河서쪽지역으로 지금의 감숙(甘肅), 영하(寧夏)일대)에 주둔시켜 방어(防禦)를 좀 더 견고히 하였다. 이 지역이 장안(長安)의 북쪽에 위치해 있으므로 북방하(北防河)’라 일컬은 것이다.

 

역주10> 西營田(서영전) : 서쪽 변두리 지역의 둔전(屯田)을 경영하는 것이다. 한 대(漢代)에는 둔전제(屯田制)가 있어, 평상시에는 농사를 짓다가 전쟁시에는 작전을 수행하도록 하였는데 당대(唐代)에도 이 제도가 있었다. 당시 둔전(屯田)은 서북쪽 일대에 두었으니, 이는 토번(吐藩)의 침범을 막기 위한 방비였기 때문에 서영전(西營田)’이라 칭한 것이다.

 

역주11> 里正(이정) : 里長(이장)이다. 당제(唐制)에 백호(百戶)를 일리(一里)라고 하였으며 리()마다 이정(里正)을 두었다.

 

역주12> 裹頭(과두) : 옛날에 출정(出征)하는 남자에게 둘러주던 흑색(黑色) 나사(羅紗)로 만든 두건이다. 출정하는 이의 나이가 年少할 경우, 어리게 보이는 것을 방지하게 위해 이정(里正)이 머리에 두건을 둘러주었다고 한다.

 

역주13> 流血成海水(유혈성해수) : 변방에 수자리 사는 병사들이 전쟁에 희생되어 흘린 피가 바다를 이룰 만큼 많다는 의미이다. 천보(天寶) 86월에 가서한(哥舒翰)이 병사 3천명을 이끌고 토번의 석보성(石堡城)을 공격하였는데, 의 군졸들이 수만 명이나 목숨을 잃었다.

 

역주14> 武皇開邊意未已(무황개변의미이) : ‘武皇(무황)’은 본래 무공(武功)으로 저명하였던 한무제(漢 武帝)인데, 여기서는 당 현종(唐 玄宗)을 지칭한다.

 

역주15> 漢家山東二百州(한가산동이백주) : 여기서 漢家(한가)’唐家(당가)이며, ‘山東(산동)’華山(화산) 동쪽을 지칭하는데 여기서는 관동과 같다. 十道四藩志(십도사번지)에는 관동(關東) 칠도(七道)가 대략 이백십칠주(二百十七州)라 되어 있는데, ‘이백주(二百州)’는 이를 두고 한 말이다.

 

역주16> 生荊杞(생형기) : ‘()’荊棘(형극)이며, ‘()’杞柳(기묘)인데 잡초를 말한다.

 

역주17> 無東西(무동서) : 밭의 남북을 (두렁 천)’이라 하고 동서를 (두렁 맥)’이라 한다. ‘無東西(무동서)’는 즉 阡陌(천맥)이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논밭의 벼싹이 어지럽게 자라 있어 東西를 구분할 수 없게 되었다는 뜻이다.

 

역주18> 長者(장자) : 노인에 대한 존칭인데, 여기서는 행인이 두보를 두고 한 말이다.

 

역주19> 敢申恨(감신한) : 어찌 감히 마음속의 한을 펼 수 있단 말인가. 이 말은 반어적 의미로, 가슴속에 쌓인 비분강개가 많다는 뜻이다.

 

역주20> 今年冬(금년동) : 당 현종 天寶 10(751) 겨울을 가리킨다.

 

역주21> 未休關西卒(미휴관서졸) : ‘關西卒(관서졸)’函谷關(함곡관) 서쪽의 병사들을 말한다. 자치통감에 의하면, 천보 9(750) 12월에 병사를 징발하여 토번(吐藩)을 공격했다고 한다. 이처럼 천보 9년에도 병사를 징발하였는데, 천보 10년 겨울에도 병사를 징발하였기 때문에 未休關西卒(미휴관서졸)’이라 한 것이다.

 

역주22> 比鄰(비린) : 가까운 이웃이다. 당제(唐制)에 사가(四家)()’으로 하고, 오가(五家)()’로 하였다. ‘()’ 또한 가까운 이웃이라는 뜻이다.

 

역주23> 靑海頭(청해두) : 靑海湖(청해호)의 주변으로, 지금의 청해(靑海) 서녕(西寧)시 부근이다. () 고종(高宗) 의풍(儀風)년간을 기점으로 하여 당()과 토번(吐藩)은 자주 이 지역에서 교전하였는데, 이로 인해 당나라 兵力의 손실이 상당했다.

 

역주24> 啾啾(추추) : 보통은 동물들이 작게 우는 소리를 지칭하지만, 여기서는 귀신이 우는 소리를 형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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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자료의 번역은 전통문화연구회의

동양고전종합DB(http://db.juntong.or.kr)에서
인용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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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고문진보/당시삼백수]兵車行(병거행) - 杜甫(두보)|작성자 swings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