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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휘애비.溢空 2021. 8. 29. 13:03
당시삼백수 권2 칠언악부
089.哀王孫(애왕손) - 杜甫(두보)
왕손을 애달파하다

 

哀王孫(애왕손)

 

杜甫(두보)

 



長安城頭頭白烏(장안성두두백오)夜飛延秋門上呼(야비연추문상호)
又向人家啄大屋(우향인가탁대옥)屋底達官走避胡(옥저달관주피호)
金鞭斷折九馬死(금편단절구마사)骨肉不待同馳驅(골육부대동치구)

 

장안성 머리의 흰 머리 까마귀

밤에 날아와 연추문(延秋門) 위에서 울고

 

인가를 향해 날아가 큰 집을 쪼아대니

집 안의 대관들은 오랑캐 피해 달아난다

 

금채찍 끊어지고 구마(九馬)는 죽었는데

피붙이들 함께 달아나지도 못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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頭白烏(두백오) : 흰 머리 까마귀를 말한다. 예전에는 까마귀를 상서롭지 못한 새로 여겼는데 특히 흰 머리 까마귀는 더더욱 그러했다고 전한다. 이 시에서는 안록산(安祿山)의 반란을 암시하는 불길(不吉)한 징조로 사용되었다.

 

延秋門(연추문) : () 궁원(宮苑)의 서문(西門)으로, 함양교(咸陽橋)가 있어 그 아래로 위수(渭水)가 흐른다. 천보 15(756) 6월에 동관(潼關)을 지켜내지 못해, () 현종(玄宗)이 이 문을 통해 도망하였다.

 

又向人家啄大屋(우향인가탁대옥) 屋底達官走避胡(옥저달관주피호) : 이 구절은 머리 하얀 까마귀가 먼저 연추문 위에서 우니, 현종이 곧 연추문을 통해 달아났고, 이후에 까마귀가 고관대작들의 집을 쪼아대자 그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도주했다는 의미이다. 여기서 ()’는 안록산의 반군들을 의미한다.

 

金鞭斷折九馬死(금편단절구마사) : 당 현종이 탄 수레가 금채찍을 휘둘러 빨리 달렸던 까닭에 채찍이 모두 끊어질 정도였다고 한다. ‘九馬(구마)’는 황제의 말인데, 이들 역시 미친 듯 달리다 모두 죽었다고 전한다.

 

骨肉不待同馳驅(골육부대동치구) : ‘骨肉(골육)’은 왕손(王孫)을 뜻한다. 현종이 창망하게 도주함에, 왕손들을 일일이 챙기지 못하였던 것을 말한다. 여기에는 단지 자신의 생명만을 보전하려 했던 황제에 대한 풍자가 깃들어 있다. ‘不待(부대)’不得(부득)’으로 되어 있는 본도 있다. 馳驅(치구) : 말이나 수레 따위를 타고 달림

 



腰下寶玦青珊瑚(요하보결청산호)可憐王孫泣路隅(가련왕손읍로우)
問之不肯道姓名(문지불긍도성명)但道困苦乞為奴(단도곤고걸위노)
已經百日竄荊棘(이경백일찬형극)身上無有完肌膚(신상무유완기부)
高帝子孫盡隆準(고제자손진륭준)龍種自與常人殊(용종자여상인수)
豺狼在邑龍在野(시랑재읍룡재야)王孫善保千金軀(왕손선보천금구)
不敢長語臨交衢(불감장어림교구)且為王孫立斯須(차위왕손립사수)

 

허리에는 옥패와 푸른 산호를 차고서

가련하다 왕손이여, 길가에서 울고 섰네

 

누구인지 물으니 이름은 말하려하지 않고

그저 힘들고 괴로우니 종으로 삼아 달라고만 하네

 

백일이 넘도록 가시밭길로 도망 다녀

몸에는 피부가 온전한 곳 없어라

 

고제(高帝)의 자손 콧마루가 높다더니

왕손은 스스로 보통사람과 다르구나

 

이리떼는 도읍에 있고 용은 들에 있으니

왕손이여 천금 같은 옥체를 잘 보전하시길

 

네거리에서 감히 길게 말하지 못하고

왕손을 위하여 잠시 서있기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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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帝(고제) : () 고조(高祖) 유방(劉邦)이다.

 

隆準(융준) : 콧마루가 높이 솟아있는 것이다. 史記(사기)》 〈高祖本紀(고조본기), “한 고조는 그 모습이 콧마루가 높아서 용의 얼굴을 지니고 있다.[高祖 爲人隆準而龍顔]”라 하였다. 여기서는 한()에 당()을 비유하여 황족들의 특징을 설명하려 하였다.

 

龍種(용종) : 용을 군주(君主)에 비유하여, 그 자손을 용종(龍種) 즉 용()의 종자(種子)라 지칭하였다. 여기서도 왕손을 지칭한다.

 

豺狼在邑龍在野(시랑재읍룡재야) : 이 구절은 안록산이 이미 동도(東都)인 낙양(洛陽)을 점령하고 황제로 칭하였던 일을 말한 것이다. ‘龍在野(용재야)’는 현종이 촉 땅으로 도주한 것을 의미한다.

 



昨夜東風吹血腥(작야동풍취혈성)東來橐駝滿舊都(동래탁타만구도)
朔方健兒好身手(삭방건아호신수)昔何勇銳今何愚(석하용예금하우)
竊聞天子已傳位(절문천자이전위)聖德北服南單于(성덕북복남선우)
花門剺面請雪恥(화문리면청설치)慎勿出口他人狙(신물출구타인저)
哀哉王孫慎勿疏(애재왕손신물소)五陵佳氣無時無(오릉가기무시무)


<원문출처> 哀王孫/作者杜甫 
本作品收錄於:《全唐詩/216唐詩三百首
維基文庫自由的圖書館

 

어젯밤 동풍에 피비린내 실려 불어오더니

동쪽에서 온 낙타 옛 도읍에 가득 찼습니다

 

북방의 건아들은 솜씨가 좋다했는데

예전엔 용맹하더니 지금 어찌 그리 우둔한지

 

듣자니 천자께서 이미 왕위 물려주어

거룩한 덕으로 북쪽의 남선우(南單于)를 복종시켰다 하고

 

화문의 회흘(回紇)이 얼굴 그어 설욕하길 청했답니다

다른 사람 엿들을까 말조심 하소서

 

애닯구나 왕손이여 삼가 소홀히 하지 마시길

오릉의 상서로운 기운은 없을 때가 없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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橐駝(탁타) : 낙타이다. 唐書(당서)》 〈史思明傳(사사명전), “안록산이 양경(兩京)을 함락하여 낙타로 어부(御府)의 진귀한 보화들을 범양(范陽)으로 옮긴 것이 그 끝을 알지 못할 정도였다.[祿山陷兩京 以駱駝運御府珍寶于范陽 不知紀極]”고 하였다.

 

舊都(구도) : 여기서는 장안(長安)을 지칭한다.

 

朔方健兒(삭방건아) : 가서한(哥舒翰)이 거느리던 삭방의 군사들을 지칭한다.

 

昔何勇銳今何愚(석하용예금하우) : 이는 천보 15년에 가서한(哥舒翰)이 동관(潼關)을 지키다 안록산에게 크게 패배한 일을 말한다.

 

天子已傳位(천자이전위) : 안록산의 난이 일어난 이듬해에 현종(玄宗)이 숙종(肅宗)에게 황위를 물려주었음을 말한다. 천보 157월에 숙종이 영무(靈武)에서 황제의 지위에 올랐다.

 

聖德北服南單于(성덕불북남선우) : ‘南單于(남선우)’는 회흘(回紇)인데, 숙종이 즉위한 후 사신을 파견하여 화친을 청하니 그 이듬해에 수령(首領)이 입조(入朝)하여 반란의 평정을 도왔다.

 

花門剺面請雪恥(화문리면청설치) : 화문산보(花門山堡)는 연해(延海:지금의 甘肅省) 북쪽 300 리에 위치하고 있다. 여기서 花門(화문)’이라 함은 화문산보(花門山堡)에 거주하는 회흘(回紇)을 의미한다. ‘剺面(리면)’은 고대 흉노 풍속 가운데 얼굴을 칼로 그어 피를 내는 의식이다. 이는 충성과 통분을 표시하는 것인데, 여기서는 회흘이 병사를 내어 당이 안록산의 반란을 평정하는데 도움을 주고자 한 일을 지칭한다.

 

五陵(오릉) : 장안성(長安城) 북쪽에 있는 한대(漢代) 제왕(帝王)의 묘역(墓域)이다. 고제(高帝) 유방(劉邦)장릉(長陵)’, 혜제(惠帝) 유영(劉盈)안릉(安陵)’, 경제(景帝) 유계(劉啓)양릉(陽陵)’, 무제(武帝) 유철(劉徹)무릉(茂陵)’, 소제(昭帝) 유불릉(劉弗陵)평릉(平陵)’이 있으며. 당나라 현종 이전에 당실(唐室) 역시 다섯 기의 선제(先帝)의 능묘(陵墓)가 있었으니, 고조(高祖)의 헌릉(獻陵), 태종(太宗)의 소릉(昭陵), 고종의 건릉(乾陵), 중종(中宗)의 정릉(定陵), 예종(睿宗)의 교릉(橋陵)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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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釋] 장안성 언저리에 흰 머리의 까마귀가 밤에 연추문 위로 날아와 우짖자 현종이 그 문을 통해 달아났다. 흰 머리 까마귀가 다시 큰 집으로 나아가 쪼아대자 집에 있던 고관대작들은 모두 안록산의 반군을 피해 달아나기 바쁘다. 천자의 수레가 속력을 내며 달리니 금 채찍이 끊어지고 황제의 수레를 끌던 구마(九馬)는 모두 도주 하던 중에 죽어버렸다. 이렇게 몰래, 그리고 황급히 피난 가느라 황제의 피붙이조차 함께 가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가련한 왕손이 길가에 서서 울고 있는데, 차림을 보니 허리에는 옥패와 푸른 산호 같은 보옥(寶玉)을 차고 있다. 그의 성명을 물었으나 말하려 하지 않고, 단지 매우 힘드니 다른 이의 노예라도 되게 해달라는 말을 한다. 그는 매우 오랜 기간 동안 가시덤불 속에 몸을 숨기며 도망 다녀 피부가 온전한 곳 없이 모두 상처가 나 있었다. 한고조(漢高祖)의 자손은 콧마루가 높다고 하더니 황제의 자손이라 그런지 보통 사람과는 다른 모습이다. 지금 이리떼와 같은 반군들은 경도에 있는데 황제께서는 타향에 유락해 있으니, 왕손께서 천금 같은 옥체를 잘 보전하시길 바랄 뿐이다.
나는 네거리에 서서 감히 왕손과 많은 이야기를 하지 못하지만 잠깐이나마 그를 모시며 함께 서있었다. 나는 왕손에게 말한다. “어젯밤 동풍이 불어올 때 안록산의 반군이 사람들을 무수히 죽여 생긴 피비린내가 실려 오더니, 수많은 낙타들이 황실의 보물을 싣고 동쪽에서부터 장안(長安)으로 와 있습니다. 가서한(哥舒翰)이 북방의 군사들을 통솔함에, 평소에는 솜씨가 좋고 용맹하여 싸움에 능하더니 이번에는 어찌된 연유로 동관(潼關)의 수비에 실패하여 이렇게 우둔함을 보이는지요. 듣건대, 현종께서는 이미 숙종에게 보위를 물려주셨다고 합니다. 천자의 성덕(聖德)으로 남선우를 복종시켰고, 회흘은 얼굴을 긋는 의식으로 당(唐)을 도와 설욕하기를 청하고 있다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말을 왕손께서는 다른 이에게 함부로 해서는 안 되니, 그들이 왕손을 해칠 기회를 염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애닯구나 왕손이여. 부디 소홀히 하지 말기를 바랄 뿐이다. 오릉의 상서로운 기운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解題] 이 시는 왕손(王孫)이 안록산(安祿山)의 난 때 곤액을 당한 모습을 보고 애달파 하는 내용의 기사시(紀事詩)에 해당한다. 이는 지덕(至德) 2년(757) 봄, 두보가 장안에 있을 때 지은 작품으로 〈哀江頭(애강두)〉와 대체적으로 비슷한 시기에 지어졌다. 두보는 당시 장안에 있으면서 겨울 내내 밖으로 다니지 못하다가, 봄이 오자 곡강(曲江) 등지를 몰래 다녔는데, 길가에서 우연히 왕손을 만난 것이다. 그는 왕손에게 매우 깊은 동정을 느끼고 위로해주며, 아울러 옥체를 잘 보전하라는 당부의 말을 전한다.
시는 의미상 세 단락으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단락은 ‘興(흥)’의 작법을 사용하여 당시 혼란했던 세사(世事)를 암시하고 다음 단락을 이끌어낸다. 둘째 단락은 왕손이 피난하며 유락(流落)한 신세가 된 것을 묘사하였다. 셋째 단락은 작자가 전문(傳聞)한 내용을 통해 왕손을 위로하고, 시대를 걱정하는 작자 자신의 심회를 표출하였다.

 

본 자료의 번역은 전통문화연구회의 동양고전종합DB(http://db.juntong.or.kr)에서
인용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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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당시삼백수]哀王孫(애왕손) - 杜甫(두보)|작성자 swings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