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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휘애비.溢空 2021. 12. 31. 15:32

歲夜詠懷

세밑 밤에 회포를 노래하다

 

劉禹錫

유우석

 

 

彌年不得意 미년부득의

新歲又如何 신세우여하

念昔同遊者 염석동유자

而今有幾多 이금유기다

以閑爲自在 이한위자재

將壽補蹉跎 장수보차타

春色無情故 춘색무정고

幽居亦見過 유거역견과

 

해가 갈수록 뜻대로 되는 일 없어

새해에는 어찌 될지 알 수 없는데

생각해보면 한마음으로 함께했던 사람들

지금은 몇이나 살아 있는가

나는 지금 한적함을 자유로 알고

허송한 세월 장수로 만회했다 여기는데

세상 인정 상관 않는 봄빛 너만은

물러난 사람 잊지 않고 찾아주겠지

 

▶ 歲夜: 제석除夕, 즉 섣달 그믐날 밤을 가리킨다. 백거이白居易는 「三年除夜」란 시에서 ‘嗤嗤童雉戱, 迢迢歲夜長(아이들 요란스레 장난치는 소리 / 깊어가는 기나긴 섣달 그믐 밤)’이라고 했다.

▶ 彌年: 한 해가 지나다. 몇 해가 지나는 동안을 가리키기도 한다.

▶ 念昔 두 구절: 한마음 한뜻으로 함께했던 사람들 가운데 떠난 사람들을 빼면 남아있는 이들이 많지 않은 것을 탄식하듯 말한 것이다.

▶ 以閑 두 구절: 한적함을 매인 데 없는 자유로움으로 알고, 뜻을 얻지 못한 아쉬움을 것을 오래 사는 것으로 채운다는 뜻으로 말한 것으로 새겨 읽었다. ‘蹉跎’는 뜻을 펼치지 못한 채 흘러버린 세월을 가리킨다.

 

정원貞元 21년(805) 봄, 덕종德宗의 뒤를 이어 순종純宗이 즉위했는데,

왕숙문王叔文 등을 앞세워 실시한 영정혁신永貞革新이

환관宦官과 번진藩鎭, 그리고 고관들의 집단적인 반발에 부딪쳐 실패한 뒤,

퇴위한 순종에 이어 즉위한 헌종憲宗에 의해 개혁에 앞장섰던 왕숙문, 육질陸質, 왕비王伾가 죽고

유우석과 유종원柳宗元 등 여덟 명은 사마司馬로 좌천되어 벽지로 유배되었다.

유우석은 원화 14년(819)에 세상을 뜬 모친의 운구를 위해 형양衡陽으로 가던 중

동년 진사급제자이자 ‘유유劉柳’로 병칭되던 유종원의 사망 소식까지 들었는데,

이 시는 이때의 거상居喪 기간 중에 쓴 것이다.

 

◈ 유우석劉禹錫 [772~842]

당조唐朝의 저명한 시인이다. 소주蘇州 가흥嘉興(지금은 저장성浙江省에 속함) 사람이고 자는 몽득夢得이다. 선조가 북방에서 왔으며 스스로 중산中山(지금은 허베이성河北省 정주시定州市) 출신이라 했다. 정원貞元 9년(793)에 유종원柳宗元과 함께 진사가 되었다. 백거이는 그를 시호詩豪라 칭했으며, 사람들은 태자빈객太子賓客을 지낸 그를 유빈객劉賓客으로 불렀다. 만년에 검교예부상서, 비서감 등의 빈 직함을 가진 적도 있어서 비서유상서秘書劉尙書로도 불렸다. 시와 문장에 두루 능하고 제재 또한 광범하여 유종원柳宗元과는 ‘유유劉柳’로 병칭되고 위응물韋應物, 백거이白居易와는 ‘삼걸三杰’로 불렸으며 백거이와는 ‘유백劉白’으로 합칭되었다. 「누실명陋室銘」과 「죽지사竹枝詞」, 「양류지사楊柳枝詞」, 「오의항烏衣巷」 등의 명편을 남겼고, 철학 저작으로는 《천론天論》(3편)을, 문집으로는 《유몽득문집劉夢得文集》과 《유빈객집劉賓客集》을 남겼다.

[출처] 유우석 - 세야영회|작성자 들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