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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휘애비.溢空 2022. 3. 20. 18:21
당시삼백수 권3 오언율시
117.歸嵩山作(귀숭산작) - 王維(왕유)
嵩山으로 돌아가며 짓다

 

 

清川帶長薄(청천대장박)

車馬去閑閑(거마거한한)

 

맑은 내는 긴 수풀을 끼고 있고

수레로 한가롭게 가노라니

 

流水如有意(유수여유의)

暮禽相與還(모금상여환)

 

흐르는 물은 뜻이 있는 것 같고

저물녘에 새들은 서로 함께 돌아오는구나

 

荒城臨古渡(황성림고도)

落日滿秋山(낙일만추산)

 

황량한 옛 성 오래된 나루에 접해 있고

지는 해 가을 산에 가득하다

 

迢遞嵩高下(초체숭고하)

歸來且閉關(귀래차폐관)

 

멀고 높은 숭산 아래

돌아가 장차 문 닫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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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출처> 歸嵩山作/作者王維 / 全唐詩·126 /

作品收錄於:《唐詩三百首》/ 維基文庫自由的圖書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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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釋] 

맑은 내를 따라 무성한 수풀이 쭉 이어져 있고 그 길을 따라 즐거운 마음으로 말과 수레를 몰아 한가롭게 천천히 지나간다. 흐르는 물은 무슨 뜻이 있는 듯 자기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 같고, 날이 저물자 새들은 무리를 지어 자기가 머물 곳으로 돌아간다. 무너진 옛 성이 오래된 나루를 굽어보며 서 있고 해가 지면서 가을 산에 석양이 가득 찼다. 저 멀리 아득히 보이는 숭산 아래에 돌아가 문에 빗장을 지르고 세상과 관계를 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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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解題] 

이 시는 왕유가 벼슬을 그만두고 숭산에 은거하는 시기에 쓴 작품으로 본다. 왕유는 21 (開元 9, 721)에 진사에 급제, 대악승(大樂丞)의 벼슬을 받았는데 얼마 안 되어 황제 앞에서만 공연할 수 있는 황사자(黃獅子) 춤을 사석(私席)에서 추게 했다 하여 제주(濟州:현재 山東의 치평(茌平) 방면)로 좌천된다. 

 

유배지에서 6년을 보낸 후 마침내 벼슬을 버리고 왕유는 장안으로 돌아온다. 開元 22(734) 왕유의 나이 34세 때 장구령이 중서령(中書令)이 되자, 장구령에게 자신을 발탁해달라는 편지를 보냈는데, 그 후 왕유는 우습유(右拾遺)로 발탁되어 조정에 복귀하게 된다. 장구령에게 편지를 보낸 후 우습유로 발탁되기 전에 숭산으로 들어가며 쓴 작품이 이 시다.

 

제주(濟州) 유배시기에 이미 탈속과 은둔 경향의 시가 보이는데 이 시도 그런 경향이 뚜렷하다. 산으로 들어가면서 느끼는 심적 동요를 묘사했는데, 1련과 제2련은 안한(安閒)한 심사를, 3련은 처연한 심경을 묘사했다. 한편으로는 출사(出仕)하려는 포부와 다른 한편으로는 정사(政事)에서 벗어나려는 갈등 등, 숭산에 가까워지면서 은둔하려는 사람의 내면을 표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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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

역주1> 嵩山(숭산) : 현재 하남성(河南省) 등봉현(登封縣) 북쪽에 주봉(主峰)이 있는데 옛날에는 중악(中嶽)이라고 불렀다. 오악(五嶽)의 중앙에 위치하고 높아(옛사람들은 높이가 20라 했다) 숭고(嵩高)라고도 한다. 외방산(外方山)이라고도 했는데 동쪽은 태실산(太室山), 서쪽은 소실산(小室山)이라 하며 총칭이 嵩山(숭산)’이다. 태실산(太室山)에는 중악묘(中嶽廟)가 있고, 소실산(小室山)에는 유명한 소림사(少林寺)가 있다.

 

역주2> 淸川帶長薄(청천대장박) : ‘ 으로 되어 있는 본도 있다. ‘淸川(청천)’은 이수(伊水)로 보기도 한다. ‘長薄(장박)’, 굴원(屈原) 楚辭(초사)≫ 〈九章 涉江(구장 섭강) 신초(申椒)와 목란(木蘭) 같은 향초(香草)가 숲에서 죽어가네.[露申辛夷 死林薄兮]”라는 글귀가 보이는데, 왕일(王逸)은 주석에서 나무가 우거진 것을 숲[]이라 하고 풀과 나무가 뒤섞여 함께 자라난 것을 박()이라 한다.[叢林曰林 草木交錯曰薄]”고 했다. 초목이 무성한 것을 말하는데 쓰임새가 오래된 말이다. 육기(陸機)의 시 君子有所思行(군자유소사) 곡지(曲池)는 얼마나 물이 맑았던가, 청천(淸川)은 무성한 수풀을 띠고 있구나.[曲池何湛湛 淸川帶華薄]”라는 시구도 있다.

 

역주3> 閑閑(한한) : 여유롭고 한가한 모습을 말한다.

 

역주4> 流水如有意(유수여유의) : 물도 자기 마음을 이해하는 듯하다고 의인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일거불분(一去不反)으로 은거하려는 의지가 굳건함을 나타낸 것이다. ‘淸川과 호응한다.

 

역주5> 暮禽相與還(모금상여환) : ‘ 으로 되어 있는 본도 있다. ‘暮禽은 첫째 구절의 長薄과 호응한다. 도연명의 飮酒  산 기운 날 저물어 아름다운데, 날아다니던 새들 서로 함께 돌아오는구나.[山氣日夕佳 飛鳥相與還]”라는 구절이 있고,  歸去來辭 구름은 무심하게 산굴에서 나오고, 새들은 날기에 지쳐 돌아올 줄 아는구나.[雲無心以出岫 鳥倦飛而知還]”라는 구절이 있는데 참고할 수 있다.

 

역주6> 迢遞嵩高(초체숭고) : ‘ 으로 되어 있는 본도 있다. ‘迢遞(초체)’는 아득히 먼 모양을 말한다.

 

역주7> 且閉關(차폐관) : ‘ 으로 되어 있는 본도 있다. ‘는 장차라는 말로 미래형을 표시한다. ‘잠시라는 뜻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시 전체가 아직 도연명처럼 완전한 은둔자가 되지 못한 처지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 뒤 시인의 행적을 볼 때 곧바로 벼슬에 나아갔으므로 잠시라고 해석하는 것도 가능하다. ‘閉關(폐관)’은 문을 닫고 세상과 관계를 끊겠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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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유(왕웨이, 王維, 699 ~ 759)는 중국 성당(盛唐)의 시인·화가로서 자는 마힐(摩詰)이다.

그의 시는 친교가 있던 맹호연을 닮은 데가 많으나 맹호연의 시보다 날카롭다. 또한 불교신자로서 관념적인 '()'의 세계에의 동경을 노래한 것이 있다. 한때 관직을 물러났을 때 망천(輞川지금의 허난성)에 별장을 짓고, 그 별장의 경물을 소재로 하여 노래한 죽리관(竹里館)이나 녹시(鹿柴)(모두 5언절구)는 특히 유명하다. 왕유는 또한 화가로서도 뛰어나서, 남송화(南宋畵)의 시조(始祖)로서 추앙된다. "왕유의 시를 보면, 시 중에 그림이 있다"고 송()의 소식은 평하고 있다.<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