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시 이야기

재휘애비.溢空 2022. 4. 7. 12:57
당시삼백수 권3 오언율시
119.酬張少府(수장소부) - 王維(왕유)
장소부에게 답하다

 

酬張少府(수장소부)

 

- 王維(왕유) -

 

晚年唯好靜(만년유호정)

萬事不關心(만사불관심)

 

만년에 고요함을 좋아하여

만사에 마음 쓰지 않네

 

自顧無長策(자고무장책)

空知返舊林(공지반구림)

 

스스로 생각해도 훌륭한 계책 없고

옛 산림으로 돌아가는 것만 그저 알 뿐이지

 

松風吹解帶(송풍취해대)

山月照彈琴(산월조탄금)

 

솔바람이 불어오니 허리띠를 풀고

산에 달이 비추니 거문고를 탄다

 

君問窮通理(군문궁통리)

漁歌入浦深(어가입포심)

 

그대가 나에게 궁통(窮通)의 이치를 물어보는데

어부의 노랫소리 포구 깊이 사라지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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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출처> 酬張少府/作者王維 /全唐詩·126

本作品收錄於:《唐詩三百首/ 維基文庫自由的圖書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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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釋]

나는 만년에 고요한 것을 좋아하여 세상일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다. 스스로 생각해봐도 나라에 공헌할 훌륭한 책략이 없고, 다만 예전에 살던 산림으로 돌아가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 뿐이다. 소나무 사이에서 미풍이 불어오니 옷과 허리띠를 편안히 풀어놓고, 산달이 비추니 그윽하게 거문고를 연주한다. 그대가 나에게 저 인생의 곤궁(困窮)과 통달(通達)의 이치를 물어보지만, 세상의 변화에 발맞추어 살아가라는 어부의 노랫소리는 포구 깊숙이 들어가며 점점 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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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解題]

이것은 수답시(酬答詩)로 왕유의 만년작(晩年作)이다. 장소부(張少府)는 생평(生平)이 자세하지 않은데, 왕유에게 출사(出仕)를 권했을 가능성이 있으며, 이 시는 그에 대한 대답이다. 시에서 왕유는 자신의 생각을 표명하며 산림으로 귀은(歸隱)할 것을 결심하고 있다. 그가 산림에 은거하려 한 데에는 불교사상의 영향도 있지만 그가 정치적으로 실의(失意)한 것과도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안록산(安祿山)의 반군(叛軍)이 장안(長安)을 점령했을 때 왕유는 압력을 받아 위직(僞職)을 받아들였고, 후에 당() 숙종(肅宗)은 그 죄를 추궁하여 태자중윤(太子中允)으로 그를 강등시켰다. 한 시대의 天下文宗(천하문종)’으로서 만년에 상서우승(尙書右丞)에 이르렀지만, 그의 마음에 변화가 생겼음을 감지할 수 있다.

 

4구에서는 자신의 심사(心思)를 직접적으로 설명하였는데, 3·4구는 萬事不關心(만사불관심)’에 대한 해석으로 볼 수 있다. 5·6구는 산림 속에서 유유자적하게 사는 즐거움을 묘사하였다. 7·8구는 장소부에게 답한 것인데, 궁통(窮通)의 이치를 바로 설명하지 않고 포구의 어가(漁歌)를 한번 들어보라고 청하였다. 은거를 선택한 시인이 여세추이(與世推移)를 권하는 어부의 노래를 들어보라 한 것은 일면 모순이 되는 듯하지만, 노랫소리가 포구로 사라지며 일체 공()의 상태가 되는 정황을 상상하면 그 속에 담긴 선리(禪理)가 오묘하다.

 

왕유가 쓴 시는 종종 언외지의(言外之意)가 있다. 그래서 처음 읽을 때에는 짙은 시주화의(詩中畫意)만이 독자에게 전해지지만, 음미해보면 하나의 신운(神韻)이 그 사이에 온축(蘊蓄)되어 있음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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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

역주1> 張少府(장소부) : 생평(生平)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소부(少府)는 현위(縣尉)의 별칭으로, 현령(縣令)을 보좌하는 벼슬아치이다. ‘張少甫(장소보)’로 되어 있는 도 있다.

 

역주2> 長策(장책) : 훌륭한 계책을 말한다.

 

역주3> 舊林(구림) : 전에 살았던 산림(山林), 곧 망천(輞川)의 옛 집을 가리킨다.

 

역주4> 窮通(궁통) : ()은 곤궁함, 곧 벼슬길에서 뜻을 얻지 못함을 말하고, ()은 득의(得意), 곧 벼슬길에서 현달(顯達)함을 뜻한다.

 

역주5> 漁歌入浦深(어가입포심) : 여기에서 漁歌(어가)’는 굴원(屈原)漁父辭(어부사)에 등장하는 어부의 노래,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나의 갓끈을 씻을 만하고, 창랑의 물이 탁하면 나의 발을 씻을 만하다.[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고 했던 것을 가리킨다. ‘()’는 작은 강의 지류가 강해(江海)로 들어가는 입구이다.

<참고>  漁父辭(어부사) - 屈原(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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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자료의 원문 및 번역은 전통문화연구회의

동양고전종합DB(http://db.juntong.or.kr)에서
인용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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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유(왕웨이, 王維, 699년 ~ 759년)는 중국 성당(盛唐)의 시인·화가로서 자는 마힐(摩詰)이다. 그의 시는 친교가 있던 맹호연을 닮은 데가 많으나 맹호연의 시보다 날카롭다. 또한 불교신자로서 관념적인 '공(空)'의 세계에의 동경을 노래한 것이 있다. 한때 관직을 물러났을 때 망천(輞川=지금의 허난성)에 별장을 짓고, 그 별장의 경물을 소재로 하여 노래한 〈죽리관(竹里館)〉이나 〈녹시(鹿柴)〉(모두 5언절구)는 특히 유명하다. 왕유는 또한 화가로서도 뛰어나서, 남송화(南宋畵)의 시조(始祖)로서 추앙된다.<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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