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시 이야기

재휘애비.溢空 2022. 4. 17. 07:36
당시삼백수 권3 오언율시
121. 송재주리사군(送梓州李使君)-왕유(王維)
재주로 이 사군을 보내며

送梓州李使君(송재주리사군)

 

王維

萬壑樹參天 만학수삼천

千山響杜鵑 천산향두견

 

골짜기마다 나무들 하늘을 찌르고

산마다 두견새 울음소리

 

山中一夜雨 산중일야우

樹杪百重泉 수초백중천

 

산중에 내린 밤비에

나무 끝에 흐르는 백 갈래 물길

 

漢女輸橦布 한녀수동포

巴人訟芋田 파인송우전

 

촉한(蜀漢)의 여자들은 솜베(橦布) 실어 나르고

파촉의 남자들은 토란 밭을 다투리

 

文翁翻敎授 문옹번교수

不敢倚先賢 부감의선현

문옹이 교화시켜 풍습을 바꾸었으니

감히 선현에 의지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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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釋] 

당신이 가려는 梓州(재주)는 골짜기마다 높이 솟은 나무들이 하늘을 찌를 듯하고 첩첩 산중에서 두견새의 울음소리가 들려오며, 하룻밤 사이, 산속에 비가 내린 뒤에는 멀리서 보면 나뭇가지 끝마다 백 갈래의 물길이 흘러내리는 듯한 곳이다.

 

梓州(재주) 땅에서, 예전에는 촉한의 여인들이 동포를 짜서 조세를 바쳤고, 그 지역의 구황작물로 쓰이기도 했던 토란 때문에 남자들은 토란 밭을 두고 소송을 많이 벌였었다. 한나라 때 촉 땅의 태수로 갔던 문옹이 편벽되었던 그 지방의 풍습을 교화시켰듯이 그대도 그를 본받아 선정을 펴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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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集評]

 결구의 뜻은, 당시의 급한 바는 변경 수비에 있으나, 문옹은 촉 땅을 다스림에 교화로써 풍습을 바꾸었으니 지금의 사람들도 본받아야 하는데, 감히 선현에 의지하지 않을까 걱정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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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解題] 

이 시는 李使君(이사군) 梓州刺史(재주자사)가 되어 임지로 떠나려 할 적에 왕유가 그에게 준 증별시(贈別詩)이다. 시의 전반부는 울창한 계곡과 숲, 그리고 그 사이에서 들리는 두견새 울음소리를 묘사함으로써 촉 땅의 웅장하고 수려한 자연풍광을 묘사하였다. 

 

시인은 이를 통해 이사군이 부임하는 지역이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가를 그려내어 먼 지역으로 가는 벗을 위로하고자 하는 뜻을 담아내었다. 시의 후반부는 옛 한나라 지역이었던 촉 땅의 순박하지 못한 풍속을 묘사하고, 한나라 경제(景帝) 때 촉 땅의 태수로 부임하여 미개한 땅을 교화시켰다고 전해지는 문옹의 전고를 들어 이사군 역시 그처럼 선정을 베풀기를 염원하였다. 이 시의 7·8구는 자고로 불가해(不可解)’하다고 해서 여러 가지로 해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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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

역주1> 梓州(재주) : 당대(唐代)에는 검남도(劍南道)에 속하였으며, 주치(州治)는 지금의 사천성(四川省) 삼태현(三台縣)에 있다.

() : 골짜기

 

역주2> 李使君(이사군) : 생애는 미상(未詳)이다. 사군(使君)은 고대 주군장관(州郡長官)에 대한 존칭으로, 즉 자사(刺史)를 일컫는다. 唐宋詩擧要(당송시거요)에 실린 고보영(高步瀛)의 말에 의하면, ‘杜子美(두보) 역시 送李梓州使君之任詩(송이재주사군지임시)를 지었는데, 이 사람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라 하였다.

 

역주3> 漢女輸橦布(한녀수동포) : 左思(좌사) 蜀都賦(촉도부) ()에는 동화(橦華)가 있다. [布有橦華(포유동화)]”라 하였는데, 劉淵林(유연림)의 주()에 이르기를 橦華(동화)라는 것은 나무이니 이름은 ()’이며 그 꽃은 부드럽고 솜털 같아서 모아서 옷감을 짤 수 있다.[橦華者 樹名橦 其花柔毳 可績爲布也]”라 하였다. 橦布(동포)는 곧 木棉布(목면포)를 가리킨다. 元和郡縣志(원화군현지)에 의하면, 촉한(蜀漢)의 여인들은 동화(橦花)로 포()를 짜서 관부(官府)에 부세로 냈다고 한다.

 

역주4> 巴人訟芋田(파인송우전) : () 古國(고국)의 명칭이며, 지금의 사천성(四川省) 동부 지역에 있다. 촉 지역에는 토란[]이 많이 생산되어 구황작물(救荒作物)로 쓰였는데, 이 지역 사람들이 토란밭을 경작하면서 많은 소송이 발생되기도 하였다. 左思(좌사) 蜀都賦(촉도부)에 이러한 내용이 보인다.

 

역주5> 文翁(문옹) : 漢書(한서)≫ 〈循吏傳(순리전)에 의하면, ()나라 경제(景帝) 때에 문옹(文翁)이 촉군(蜀郡)의 태수가 되었는데 촉 지방의 풍습이 편벽되고 비루한 것을 보고 學宮을 조성하여 인재를 길러내, 촉 지방이 이때부터 점점 변화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역주6> 敎授(교수) : 덕업(德業)을 사람들에게 전수해주는 것을 일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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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유(왕웨이, 王維, 699년 ~ 759년)는 중국 성당(盛唐)의 시인·화가로서 자는 마힐(摩詰)이다.
그의 시는 친교가 있던 맹호연을 닮은 데가 많으나 맹호연의 시보다 날카롭다. 또한 불교신자로서 관념적인 '공(空)'의 세계에의 동경을 노래한 것이 있다. 한때 관직을 물러났을 때 망천(輞川=지금의 허난성)에 별장을 짓고, 그 별장의 경물을 소재로 하여 노래한 〈죽리관(竹里館)〉이나 〈녹시(鹿柴)〉(모두 5언절구)는 특히 유명하다. 왕유는 또한 화가로서도 뛰어나서, 남송화(南宋畵)의 시조(始祖)로서 추앙된다. "왕유의 시를 보면, 시 중에 그림이 있다"고 송(宋)의 소식(蘇軾)은 평하고 있다.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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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시 이야기

재휘애비.溢空 2022. 4. 8. 15:24
당시삼백수 권3 오언율시
120.過香積寺(과향적사) - 王維(왕유)
<향적사를 지나며>

 

過香積寺(과향적사)

 

王維(왕유)

 

不知香積寺(부지향적사)

數里入雲峰(수리입운봉)

 

향적사가 어디인지 모르면서

구름 봉우리 속으로 몇 리를 들어간다

 

古木無人徑(고목무인경)

深山何處鐘(심산하처종)

 

고목 사이에 사람이 다니는 길은 없는데

깊은 산 종소리 어디에서 들려올까?

 

泉聲咽危石(천성열위석)

日色冷青松(일색랭청송)

 

샘물 소리는 가파른 바위에서 목메어 울고

햇살의 빛은 푸른 소나무를 차갑게 비춘다

 

薄暮空潭曲(박모공담곡)

安禪制毒龍(안선제독룡)

 

어스름 저녁, 텅 빈 못 굽이에서

선정(禪定)에 들어 망념을 제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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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출처> 過香積寺 / 王維/ 全唐詩·126

本作品收錄於:《唐詩三百首/ 維基文庫自由的圖書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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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釋]

향적사가 어디 있는지 모르면서 구름 봉우리 속으로 몇 리를 들어가니, 고목이 무성하여 사람이 다니던 길은 보이지 않건만, 깊은 산 어디선가 절의 종소리가 들려온다. 길을 가다 만난 샘물은 가파른 바위 사이에서 목메어 울 듯 소리를 내고, 햇살은 푸른 소나무를 차갑게 비추고 있다. 해질 무렵, 텅 빈 못 굽이에 앉아 있자니 선정(禪定)에 들어 마치 독룡(毒龍)을 복종시키듯 마음의 욕망이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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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解題]

이 작품은 독특한 회화적 구성과 선취(禪趣)가 절묘하게 결합된, 왕유의 대표작이다. 향적사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다만 청정(淸淨)하고 유심(幽深)한 외경(外景)을 통하여 향적사의 정취를 암시적으로 형상화시키고 있다. 산수자연의 아름다움과 선적(禪的) 정취를 내용은 물론 표현 방식에 있어서도 일치시킨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정경교융(情景交融)의 오묘한 경지를 보여준 작품으로 평가를 받는다.

 

정경교융(情景交融) 또는 정경상생(情景相生)은 친 자연적 성향을 띠는 중국의 문학이론에서 중요한 비중을 지닌 예술 심미 기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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香積寺(향적사) : 당나라 때 건립된 사찰로, 현재 섬서성(陝西省) 서안시(西安市) 남쪽에 터가 남아 있다. 大淸一統志(대청일통지)180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향적사는 장안현(長安縣) 남쪽 신화원(神禾原) 부근에 있다. 長安志(장안지)에는 개리사(開利寺)가 현의 남쪽 30리 황보촌(皇甫村)에 있는데 당나라 때의 향적사이다. 영융(永隆) 2(618)에 건축하였으며 송나라 태평흥국(太平興國) 3(978)에 개명했다.’ 하였다.[在長安縣南神禾原上 長安志開利寺 在縣南三十里皇甫村 唐香積寺也 永隆二年建 宋太平興國三年改]”

 

雲峰(운봉) 구름을 이고 있는 산봉우리

危石(위석) : 높고 큰 암석을 뜻한다.

空潭(공담) : 인기척이 없는 물가

 

薄暮(박모) : 해가 진 뒤로 껌껌하기 전까지의 어둑어둑하여 지는 어둠, 땅거미, 황혼(黃昏)

安禪制毒龍(안선제독룡) : ‘安禪(안선)은 심신이 평안하게 선정에 들어감을 말한다. ‘毒龍(독룡)은 불가(佛家)에서 불법(佛法)에 대항한 괴물을 지칭하는데, 후에 욕망이나 망념을 상징하는 개념으로 쓰였다. 양신(楊愼)藝林伐山(예림벌산)≫ 〈譬喩經(비유경)“오근(五根)의 화(禍)는 독룡보다 심하다.[五根之禍 劇於毒龍]”라고 하였다.

妄念(망념) : 이치(理致)에 어긋나는 헛된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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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자료의 번역은 전통문화연구회의

동양고전종합DB(http://db.juntong.or.kr)에서
인용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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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유(왕웨이, 王維, 699~ 759)는 중국 성당(盛唐)의 시인·화가로서 자는 마힐(摩詰)이다. 그의 시는 친교가 있던 맹호연을 닮은 데가 많으나 맹호연의 시보다 날카롭다. 또한 불교신자로서 관념적인 '()'의 세계에의 동경을 노래한 것이 있다. 한때 관직을 물러났을 때 망천(輞川지금의 허난성)에 별장을 짓고, 그 별장의 경물을 소재로 하여 노래한 죽리관(竹里館)이나 녹시(鹿柴)(모두 5언절구)는 특히 유명하다. 왕유는 또한 화가로서도 뛰어나서, 남송화(南宋畵)의 시조(始祖)로서 추앙된다.<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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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시 이야기

재휘애비.溢空 2022. 4. 7. 12:57
당시삼백수 권3 오언율시
119.酬張少府(수장소부) - 王維(왕유)
장소부에게 답하다

 

酬張少府(수장소부)

 

- 王維(왕유) -

 

晚年唯好靜(만년유호정)

萬事不關心(만사불관심)

 

만년에 고요함을 좋아하여

만사에 마음 쓰지 않네

 

自顧無長策(자고무장책)

空知返舊林(공지반구림)

 

스스로 생각해도 훌륭한 계책 없고

옛 산림으로 돌아가는 것만 그저 알 뿐이지

 

松風吹解帶(송풍취해대)

山月照彈琴(산월조탄금)

 

솔바람이 불어오니 허리띠를 풀고

산에 달이 비추니 거문고를 탄다

 

君問窮通理(군문궁통리)

漁歌入浦深(어가입포심)

 

그대가 나에게 궁통(窮通)의 이치를 물어보는데

어부의 노랫소리 포구 깊이 사라지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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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출처> 酬張少府/作者王維 /全唐詩·126

本作品收錄於:《唐詩三百首/ 維基文庫自由的圖書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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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釋]

나는 만년에 고요한 것을 좋아하여 세상일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다. 스스로 생각해봐도 나라에 공헌할 훌륭한 책략이 없고, 다만 예전에 살던 산림으로 돌아가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 뿐이다. 소나무 사이에서 미풍이 불어오니 옷과 허리띠를 편안히 풀어놓고, 산달이 비추니 그윽하게 거문고를 연주한다. 그대가 나에게 저 인생의 곤궁(困窮)과 통달(通達)의 이치를 물어보지만, 세상의 변화에 발맞추어 살아가라는 어부의 노랫소리는 포구 깊숙이 들어가며 점점 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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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解題]

이것은 수답시(酬答詩)로 왕유의 만년작(晩年作)이다. 장소부(張少府)는 생평(生平)이 자세하지 않은데, 왕유에게 출사(出仕)를 권했을 가능성이 있으며, 이 시는 그에 대한 대답이다. 시에서 왕유는 자신의 생각을 표명하며 산림으로 귀은(歸隱)할 것을 결심하고 있다. 그가 산림에 은거하려 한 데에는 불교사상의 영향도 있지만 그가 정치적으로 실의(失意)한 것과도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안록산(安祿山)의 반군(叛軍)이 장안(長安)을 점령했을 때 왕유는 압력을 받아 위직(僞職)을 받아들였고, 후에 당() 숙종(肅宗)은 그 죄를 추궁하여 태자중윤(太子中允)으로 그를 강등시켰다. 한 시대의 天下文宗(천하문종)’으로서 만년에 상서우승(尙書右丞)에 이르렀지만, 그의 마음에 변화가 생겼음을 감지할 수 있다.

 

4구에서는 자신의 심사(心思)를 직접적으로 설명하였는데, 3·4구는 萬事不關心(만사불관심)’에 대한 해석으로 볼 수 있다. 5·6구는 산림 속에서 유유자적하게 사는 즐거움을 묘사하였다. 7·8구는 장소부에게 답한 것인데, 궁통(窮通)의 이치를 바로 설명하지 않고 포구의 어가(漁歌)를 한번 들어보라고 청하였다. 은거를 선택한 시인이 여세추이(與世推移)를 권하는 어부의 노래를 들어보라 한 것은 일면 모순이 되는 듯하지만, 노랫소리가 포구로 사라지며 일체 공()의 상태가 되는 정황을 상상하면 그 속에 담긴 선리(禪理)가 오묘하다.

 

왕유가 쓴 시는 종종 언외지의(言外之意)가 있다. 그래서 처음 읽을 때에는 짙은 시주화의(詩中畫意)만이 독자에게 전해지지만, 음미해보면 하나의 신운(神韻)이 그 사이에 온축(蘊蓄)되어 있음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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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

역주1> 張少府(장소부) : 생평(生平)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소부(少府)는 현위(縣尉)의 별칭으로, 현령(縣令)을 보좌하는 벼슬아치이다. ‘張少甫(장소보)’로 되어 있는 도 있다.

 

역주2> 長策(장책) : 훌륭한 계책을 말한다.

 

역주3> 舊林(구림) : 전에 살았던 산림(山林), 곧 망천(輞川)의 옛 집을 가리킨다.

 

역주4> 窮通(궁통) : ()은 곤궁함, 곧 벼슬길에서 뜻을 얻지 못함을 말하고, ()은 득의(得意), 곧 벼슬길에서 현달(顯達)함을 뜻한다.

 

역주5> 漁歌入浦深(어가입포심) : 여기에서 漁歌(어가)’는 굴원(屈原)漁父辭(어부사)에 등장하는 어부의 노래,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나의 갓끈을 씻을 만하고, 창랑의 물이 탁하면 나의 발을 씻을 만하다.[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고 했던 것을 가리킨다. ‘()’는 작은 강의 지류가 강해(江海)로 들어가는 입구이다.

<참고>  漁父辭(어부사) - 屈原(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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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자료의 원문 및 번역은 전통문화연구회의

동양고전종합DB(http://db.juntong.or.kr)에서
인용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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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유(왕웨이, 王維, 699년 ~ 759년)는 중국 성당(盛唐)의 시인·화가로서 자는 마힐(摩詰)이다. 그의 시는 친교가 있던 맹호연을 닮은 데가 많으나 맹호연의 시보다 날카롭다. 또한 불교신자로서 관념적인 '공(空)'의 세계에의 동경을 노래한 것이 있다. 한때 관직을 물러났을 때 망천(輞川=지금의 허난성)에 별장을 짓고, 그 별장의 경물을 소재로 하여 노래한 〈죽리관(竹里館)〉이나 〈녹시(鹿柴)〉(모두 5언절구)는 특히 유명하다. 왕유는 또한 화가로서도 뛰어나서, 남송화(南宋畵)의 시조(始祖)로서 추앙된다.<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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