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 사기

재휘애비.溢空 2020. 4. 26. 16:21



74-3/3[史記列傳(사기열전)] 74 孟子荀卿列傳(맹자순경열전) (3/3)

<孟子列傳(맹자열전) : 孟子(맹자)/騶忌(추기)/騶衍(추연)/淳于髡(순우곤)

/慎到(신도)/田駢(전병)/環淵(환연)/接子(접자)/騶奭(추석)>

<荀卿列傳(순경열전) : 荀卿(순경)/公孫龍(공손룡)/墨翟(묵적)>

 

 

본 편은 맹자(孟子)와 순경(荀卿)의 합전(合傳)이며 전국시대의 유가, 음양가, 도가, 법가, 명가, 묵가의 대표적인 인물 12명에 대하여 기술하였다. 사마천은 <맹자>를 읽고 공자의 말을 인용하여 이로움에 따라서 행동하면 원망을 많이 받는다.”고 기술 하였다.

 

 

74-3/3[史記列傳(사기열전)] 74 孟子荀卿列傳(맹자순경열전) (3/3)



 

11.荀卿(순경: 荀子)

 

 

荀卿(순경)趙人(조인)年五十始來游學於齊(연오십시래유학어제)

騶衍之術迂大而閎辯(추연지술우대이굉변)奭也文具難施(석야문구난시)

淳于髡久與處(순우곤구여처)時有得善言(시유득선언)

故齊人頌曰(고제인송왈)

談天衍(담천연)雕龍奭(조룡석)炙轂過髡(자곡과곤)。」

 

 

순경(荀卿)은 조나라 사람이다. 나이 50살이 되어서야 비로소 제()나라에 와서 학문을 유세했다.

추연(騶衍)의 학술은 복잡하고도 대단한 변론이었으며, 추석(騶奭)의 학설은 글이 완벽하나 실행하기 어려웠고, 순우곤(淳于髡)과는 오랫동안 함께 지내면 때때로 유익한 말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러므로 제나라 사람들이 칭송하며 말했다.

하늘을 말하는 자는 추연(騶衍)이요, 용을 새기 듯 문장이 고상한 것은 추석(騶奭이요, 지혜가 끝없이 넘치는 것은 순우곤(淳于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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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경(荀卿) : 순자(荀子). 기원전 298? ~ 기원전 238?). 전국시대(戰國時代) 말기의 유가 사상가이자 학자로, 이름은 순황(荀況)이다. 전한(前漢) 선제(宣帝)의 유순(劉詢)과 이름이 비슷한 것을 피하기를 위해서 손황(孫況)이라고도 불렀다. 경칭으로 순경(荀卿) 또는 손경자(孫卿子)로도 불린다. 공자의 사상 중 예()를 강조하여 발전시켰는데, 사람의 본성은 착하다는 맹자의 성선설(性善說)에 반대하여, 악한 본성을 예()를 통해 변화시켜 선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성악설(性惡說)을 주장하였다

() : 비로소().

閎辯(굉변) : =宏辯(굉변). 대단한 변론.

談天(담천)고상하고 오묘한 의론을 끊임없이 주고받다.

雕龍奭(조룡석) : 추석(騶奭)은 용을 아로새긴 듯 문장을 꾸민다.

談天彫龍(담천조룡) : 천상(天象)을 이야기하고 용을 조각한다는 뜻으로, 변론(辯論)이나 문장이 원대하고 고상(高尙)함을 이르는 말.

炙轂過髡(자곡과곤) : 순우곤은 지혜가 많고 의론(議論)이 끊이지 않는다.

()은 수레 중심의 둥그런 나무. () 통하여 기름통의 뜻.

 

 

田駢之屬皆已死齊襄王時(전병지속개이사제양왕시)而荀卿最為老師(이순경최위로사)

齊尚修列大夫之缺(제상수렬대부지결)而荀卿三為祭酒焉(이순경삼위주언)

齊人或讒荀卿(제인혹참순경)荀卿乃適楚(순경내적초)

而春申君以為蘭陵令(이춘신군이위란능령)

春申君死而荀卿廢(춘신군사이순경폐)因家蘭陵(인가란릉)

李斯嘗為弟子(이사상위제자)已而相秦(이이상진)

 

 

전병(田駢)의 무리는 제 양왕(齊 襄王) 때 이미 모두 죽었으므로, 순경(荀卿)이 가장 나이 많은 스승이 되었다.

제나라에서는 항상 열대부(列大夫)에 결원이 생기면 채워 넣었는데, 순경은 세 번이나 좨주(祭酒)가 되었다.

제나라 사람 중에 어떤 자가 순경을 참소하자 순경은 초나라로 갔는데,

춘신군(春申君) 황헐(黃歇)이 그를 난릉(蘭陵)의 현령으로 삼았다.

춘신군이 죽자 순경도 면직되었으나 계속 난릉에서 살았다.

이사(李斯)는 일찍이 순경의 제자였는데, 후에 진()나라의 재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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老師(노사) : 연로한 스승.

() : 보충. 정비.

祭酒(좨주) : 중국 고대의 신에게 제사를 지낼 때 술을 올리는 일을 담담한 연장자. 좨주로 읽는다.

春申君(춘신군) : 황헐(黃歇)을 말한다.

蘭陵(난릉) : 지금의 산동성(山東省) 조장시(棗荘市).

李斯(이사) : ()나라 상채(上蔡:지금의 河南省 汝南縣 북쪽) 사람이다. 순경(荀卿)을 좇아 배우다가 공부를 끝마치자 서쪽으로 진()나라에 들어가 여불위(呂不韋)의 사인(舍人)이 되었다. 훗날 진()나라 왕()에게 등용되었는데, 진나라 왕(진 시황제)이 천하를 평정한 뒤에 이사(李斯)를 승상(丞相)으로 삼으니 법령이 대부분 그의 손에서 나왔다.

 

 

荀卿嫉濁世之政(순경질탁세지정)亡國亂君相屬(망국란군상)

不遂大道而營於巫祝(불수대도이영어무축)信禨祥(신기상)

鄙儒小拘(비유소구)如莊周等又猾稽亂俗(여장주등우활계란속)

於是推儒(어시추유)()道德之行事興壞(도덕지행사흥괴)

序列著數萬言而卒(서렬저수만언이졸)因葬蘭陵(인장란릉)

 

 

순경은 어지러운 정치가 행해지는 것과 나라를 망치는 문란한 군주가 계속 이어지는되는 것과 대도(大道)를 따르지 않고 무속에 미혹되어 길흉화복의 징조를 믿는 것,

천박한 선비가 하찮은 일에 얽매이며, 장주(莊周)와 같은 무리가 교활한 말로 세속을 어지럽히는 것을 증오하였으며,

이에 유가(儒家), 묵가(墨家), 도가(道家)의 행실과 흥망을 연구하고

차례대로 정리하여 수만 자의 저술을 남기고 죽었다. 그는 난릉(蘭陵) 땅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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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워하다. 증오하다.

濁世(탁세) : 난세(亂世).

() : 계속 이어짐.

() : ()과 통하여 미혹(迷惑)되다.

巫祝(무축) : 무당.

鄙儒(비유) : 견식이 천박한 유생.

猾稽(활교) : 교활하고 말이 많음.

 

 

12. 공손룡(公孫龍)

 

 

而趙亦有公孫龍為堅白同異之辯(이조역유공손룡위견백동이지변)

劇子之言(극자지언)魏有李悝(위유이회)盡地力之教(진지력지교)

楚有尸子(초유시자)長盧(장로)阿之吁子焉(아지우자언)

自如孟子至于吁子(자여맹자지우우자)世多有其書(세다유기서)

故不論其傳云(고불론기전운)

 

 

조나라에 공손룡(公孫龍)이 있어서 견백동이(堅白同異)라는 궤변을 주장하였으며,

또 극자(劇子)의 말이 있었고, 위나라에서는 이회(李悝)가 있어서 땅의 힘을 다하도록 가르쳤으며, 초나라에는 시자(尸子)와 장로(長盧)가 있었고, () 땅에는 우자(吁子)가 있었다.

맹자에서 우자에 이르기까지 세상에는 그들의 저술이 많기 때문에

그들의 전기는 논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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堅白同異之辯(견백동이지변) : 堅白論(견백론)同異論(동이론). 쓸데없이 논리나 따지고 궤변을 일삼는 이론. 견백론(堅白論)은 같은 것을 다르다고 하는 공손룡(公孫龍)의 주장이고, 동이론(同異論)은 다른 것을 같다고 하는 혜시(惠施)의 주장이다.

이회(李悝) : 전국시대(戰國時代) ()나라의 정치가로 법가(法家)의 대표적인 인물로 농법(濃法)에 정통하였으며, 개척 기술을 가르치고, 곡물을 사서 저장하여 곡가(穀價)를 조절하는 평적법(平翟法)을 창시(創始)하는 등 위()나라의 부강(富强)에 공헌(貢獻)하였다.

 

 


13. 墨翟(묵적: 墨子)

 

 

蓋墨翟(개묵적)宋之大夫(송지대부)善守御(선수어)為節用(위절용)

或曰并孔子時(혹왈병공자시)或曰在其後(혹왈재기후)

 

 

묵적(墨翟)은 송나라의 대부로 성을 지키는 기술에 능하였으며, 비용을 절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어떤 이는 그를 공자와 같은 시대의 사람이라고 말하고, 혹은 후대의 사람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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墨翟(묵적) : 묵자(墨子). 전국시대 초기의 사상가이며 목수 출신으로 기계를 만드는데 뛰어난 재주가 있었다. 묵자가 공수반을 만나 초나라와 송나라의 가상의 전쟁을 하는데 공수반이 성을 공격하는 방법을 아홉 번이나 바꾸면서 기계로 공격하였으나 묵자가 모두 이를 막아냈다.<墨翟之守(묵적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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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 사기

재휘애비.溢空 2020. 4. 26. 16:17

74-2/3[史記列傳(사기열전)] 74 孟子荀卿列傳(맹자순경열전) (2/3)


<孟子列傳(맹자열전) : 孟子(맹자)/騶忌(추기)/騶衍(추연)/淳于髡(순우곤)

/慎到(신도)/田駢(전병)/環淵(환연)/接子(접자)/騶奭(추석)>

 

 

본 편은 맹자(孟子)와 순경(荀卿)의 합전(合傳)이며 전국시대의 음양가, 도가, 법가, 명가, 묵가의 대표적인 인물 12명에 대하여 기술하였다.

 


 

3. 騶忌(추기)

 

 

齊有三騶子(제유삼추자)

其前騶忌(기전추기)以鼓琴干威王(이고금간위왕)

因及國政(인급국정)封為成侯而受相印(봉위성후이수상인)先孟子(선맹자)

 

 

()나라에는 세 명의 추자(騶子)가 있었다.

맨 앞은 추기(騶忌)로 거문고를 타는 것으로 제 위왕(齊 威王)에게 벼슬을 구해, 국정에 참여하여 성후(成侯)에 봉해지고 재상의 관인(官印)을 받으니 맹자보다도 선대의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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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騶子(삼추자) : 騶忌(추기), 騶衍(추연), 騶奭(추석)을 말한다.

騶忌(추기) : ? ~ BC 344?. 전국시대 제()나라 사람으로 키가 8척이나 되는 거구로 용모가 수려했다고 한다. 기원전 370년에 제 위왕에게 거문고를 뜯으면서 유세했으며, 순우곤에게서는 군주를 섬기는 것에 대한 조언을 들었다. 재상(宰相)에 등용되었고 기원전 369년에 하비(下邳) 땅에 봉해져 성후(成侯)로 불리웠다.

() : 구하다.

() : 참여.

相印(상인) : 재상의 관인(官印).

 

 


4. 騶衍(추연) (1)

 

 

其次騶衍(기차추연)後孟子(후맹자)

騶衍睹有國者益淫侈(추연도유국자익음치)不能尚德(불능상덕)

若大雅整之於身(약대아정지어신)施及黎庶矣(시급려서의)

乃深觀陰陽消息而作怪迂之變(내심관음양소식이작괴우지변)

終始大聖之篇十餘萬言(종시대성지편십여만언)

其語閎大不經(기어굉대불경)必先驗小物(필선험소물)

推而大之(추이대지)至於無垠(지어무은)

 

 

그 다음은 추연(騶衍)으로 맹자보다 후대의 사람이다.

추연은 봉지(封地)를 가진 제후들이 갈수록 음란하고 사치하여 덕을 숭상할 수 없는 것을 알고, 대아(大雅)에서 말한 것처럼 자신을 바르게 해야 백성에게 덕을 펼칠 수 있다고 보았다.

이에 음양의 소멸과 성장을 깊이 관찰하고. 괴상하고 바르지 않은 것의 변화에 대해 기술하고, ‘종시(終始)’, ‘대성(大聖)’편 등의 십여만 자를 지었다.

그의 학설은 광대하여 종잡을 수 없고, 반드시 먼저 작은 일을 살핀 후에

이것을 추론하고 확대해서 무한한 곳까지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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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연(鄒衍 또는 騶衍) : 전국시대(戰國時代)의 제()나라 제자백가 중 음양가(陰陽家)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맹자보다 약간 늦게 등장하여 음양오행설(陰陽五行說)을 제창하였다. 세상의 모든 사상(事象)은 토() ·() ·() ·() ·()의 오행상승(五行相勝) 원리에 의하여 일어나는 것이라 하였고, 이에 의하여 역사의 추이(推移)나 미래에 대한 예견(豫見)을 하였다. 이것은 오행상생설(五行相生說)과 더불어 중국의 전통적 사상의 기초가 되었다.

추연의 저서라고 하여 <추연(鄒衍)> 49, <추자종시(騶子終始)> 56편이 있었다고 하나 현존하지 않는다. 추연의 철학으로 유명한 것은 소위 오덕종시설(五德終始說)과 적현신주설(赤縣神洲說)이다.

有國者(유국자) : 봉지(封地)를 가진 제후.

大雅(대아)시경(詩經) 육의(六義)의 하나. 대부분 서주 왕실 귀족의 작품이다.

黎庶(여서) : 백성.

陰陽(음양) : 음양가(陰陽家)는 춘추전국시대의 제자백가 중 한 파로, 음양이원(陰陽二元)5(五行)을 조합하여 신비적인 종교철학을 주창한 학파이다. 음양과 5행을 조합하여 하나의 철학 체계로 만든 사람은 제()나라의 추연(鄒衍)이라고 한다. 그와 더불어 제나라()의 추석(鄒奭)이 음양가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消息(소식) : 소멸과 성장

怪迂(괴우) 괴상하고 바르지 않음.

終始(종시) : <추자종시鄒子終始>. 추연의 저서에 추자 49편과 추자종시 56편이 있으나 전해지지 않는다.<漢書·藝文志>

不經(불경) : 이치에 맞지 않다. 근거없다.

無垠(무은) : 무한하다. 끝없다.

 

 

先序今以上至黃帝(선서금이상지황제)學者所共術(학자소공술)

大并世盛衰(대병세성쇠)因載其禨祥度制(인재기기상도제)推而遠之(추이원지)

至天地未生(지천지미생)窈冥不可考而原也(요명불가고이원야)

先列中國名山大川(선렬중국명산대천)通谷禽獸(통곡금수)水土所殖(수토소식)

物類所珍(물류소진)因而推之(인이추지)及海外人之所不能睹(급해외인지소불능도)

 

 

먼저 현재로부터 황제(黃帝)로 거슬러 올라 학자들이 공통으로 서술한 것을 이용하여

대개는 세상의 흥망성쇠에 따라 논하며 길흉의 조짐과 법령제도를 실어서 거기에 설명을 더하고, 천지가 만들어지기 이전의 깊고 어두워 그 근원을 알 수 없는 시대에까지 서술했다.

먼저 중원의 명산대천과 계곡의 짐승, 물과 땅에서 생장하는 것,

온갖 진귀한 물건을 열거하고, 그것으로 다른 것을 유추하여 사람들이 볼 수 없는 해외에 까지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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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並(대병) : 대체로 따르다. 는 대체로.

禨祥(기상) : 길흉의 조짐. 귀신의 화복.

度制(도제) : 법도(法度), 제도(制度).

窈冥(요명) : 깊숙하고 컴컴하다.

 

 

稱引天地剖判以來(칭인천지부판이래)五德轉移(오덕전이)

治各有宜(치각유의)而符應若茲(이부응약자)

以為儒者所謂中國者(이위유자소위중국자)

於天下乃八十一分居其一分耳(어천하내팔십일분거기일분이)

中國名曰赤縣神州(중국명왈적현신주)

赤縣神州內自有九州(적현신주내자유구주)禹之序九州是也(우지서구주시야)

不得為州數(부득위줏수)

中國外如赤縣神州者九(중국외여적현신주자구)乃所謂九州也(내소위구주야)

 

 

천지가 개벽한 이래로 오덕(五德)의 움직임에 따라서

각 시대가 상응하는 정치제도와 길흉의 조짐이 이에 상응함을 설명했다.

유가(儒家)에서 말하는 중국이란 천하를 81개로 나누었을 때 그 한 부분만을 차지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그는 중국을 적현신주(赤縣神州)라고 불렀다.

적현신주 안에는 스스로 9개의 주()가 있는데, ()임금이 정리한 구주(九州)가 바로 그것이지만, (본래의 추연이 말한) 구주의 수에는 포함되지 못한다.

중국 밖에도 적현신주와 같은 것이 아홉 개 있는데, 이것이 바로 구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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剖判(부판) : 개벽(開闢). 둘로 갈라져 열림.

五德轉移(오덕전이) : 오덕종시(五德終始)라고도 하며 추연(鄒衍)의 학설이다. , (), (), (), (), ()의 다섯종류의 물질이 서로 상생하고 상극하는 변화를 살펴 왕조의 흥망의 원인을 찾는 것이다. 오덕종시설(五德終始說)은 왕조(王朝)는 그 왕조에 부여(附與)된 오행의 덕의 운행논리(運行論理)에 따라서 필연적으로 흥폐가 교체된다고 하는 일종의 신비적 역사철학이다.

符應若茲(부응약자) : 길흉의 조짐이 이에 상음함. 符應은 고대 미신으로 천명(天命)과 인사가 서로 일치함을 말한다. 와 같은 의미.

赤縣神州(적현신주) : 중국의 별칭. 적현신주설(赤縣神洲說)은 우주 전체는 81()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중의 9분의 19주를 점거하고 있는 것이 적현신주(赤縣神洲) 또는 간단히 신주(神洲)인데, 이것이 바로 중국이라는 주장이다. 일종의 신비적인 우주철학이다. 9주설(九洲說)서경(書經)》 〈우공편(禹貢篇)에 쓰인 것이다. 9()는 궁()으로 통한다. 적현신주설은 그 9()9()를 곱하여 우주를 설명하려는 단순한 관념론이다. 그러나 그 말하는 바는 역시 신비적 주설(呪說)이다.<위키백과>

九州(구주) : 고대 하나라의 우()임금이 나라를 기()()()()()()()()()의 구주(九州)로 구별하였으며, 중국 전체를 일컫는 말이 되었다.

 

 

於是有裨海環之(어시유비해환지)人民禽獸莫能相通者(인민금수막능상통자)

如一區中者(여일구중자)乃為一州(내위일주)

如此者九(여차자구)乃有大瀛海環其外(내유대영해환기외)天地之際焉(천지지제언)

其術皆此類也(기술개차류야)

然要其歸(연요기귀)必止乎仁義節儉(필지호인의절검)

君臣上下六親之施(군신상하육친지시)始也濫耳(시야람이)

王公大人初見其術(왕공대인초견기술)懼然顧化(구연고화)

其後不能行之(기후불능행지)

 

 

거기에 작은 바다가 있어 이 구주를 두르고 있고, 백성과 짐승들이 서로 통할 수 없는 하나의 구역이 있는데 이것이 하나의 주()이다.

이와 같은 주가 아홉 개 있으며 끝없이 넓은 바다가 고리처럼 그 밖을 두르고 있는데, 이것이 하늘과 땅이 서로 만나는 끝이다.

추연이 기술한 것은 모두 이와 같은 내용이다.

그 결론을 요약하면 반드시 인의 절검과 군신상하와 육친 사이의 일로 귀결되며 그 시작이 너무나 크고 넘칠 뿐이다.

신분이 높은 귀족은 그 학설을 처음 접하면 깜짝 놀라 감화되는 듯하지만,

나중에는 이를 실행할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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裨海(비해) : 작은 바다.

瀛海(영해) : 큰 바다.

王公大人(왕공대인) : 신분이 아주 높은 귀족.

懼然(구연) : 깜짝 놀라는 모양. 와 통하여 놀라는 모습.

 

 

5.騶衍(추연) (2)

 

 

是以騶子重於齊(시이추자중어제)

適梁(적량)惠王郊迎(혜왕교영)執賓主之禮(집빈주지례)

適趙(적조)平原君側行撇席(평원군측행별석)

如燕(여연)昭王擁彗先驅(소왕옹혜선구)

請列弟子之座而受業(청렬제자지좌이수업)筑碣石宮(축갈석궁)

身親往師之(신친왕사지)作主運(작주운)

其游諸侯尊禮如此(기유제후견존례여차)

豈與仲尼菜色陳蔡(기여중니채색진채)

孟軻困於齊梁同乎哉(맹가곤어제량동호재)

 

 

이 때문에 추연(騶衍)은 제()나라에서 존중을 받았다.

()나라로 갔을 때, 양 혜왕은 교외까지 나와 영접하여 빈객의 예로 대접했다.

()나라로 갔을 때, 평원군(平原君)이 곁에서 걸으며 앉을 자리의 먼지까지 닦아주었다.

()나라도 같아서 연 소왕(燕 昭王)은 빗자루를 들고 길을 쓸며 앞에서 인도하였고,

제자의 자리에 앉아서 가르침을 받고 싶다고 청했으며, 갈석궁(碣石宮)을 지어주고 몸소 찾아가서 스승으로 섬겼다. 여기서 <주운편(主運篇)>을 지었다.

그가 제후들을 유세하며 받은 존경과 예의가 이와 같으니,

어찌 공자가 진()나라와 채()나라에서 굶주린 얼굴빛이었으며,

맹가가 제()나라와 양()나라에서 곤욕을 치른 것과 같은 일이 있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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撇席(별석) : 자리의 먼지를 털고 닦다.

() 당하다. 받다.

仲尼菜色陳蔡(중니채색진채) : 공자(孔子)가 진()나라와 채()나라의 사이에서 궁지에 빠져 7일간 불로 익힌 음식을 먹지 못하고 명아주 국에 쌀을 섞어 넣지도 못하는 형편이었다. 그리하여 공자의 얼굴이 굶주린 얼굴빛이 되었다.

() : 곤란하고 고달픔.

 

 

 

武王以仁義伐紂而王(필무왕이인의벌주이왕)伯夷餓不食周粟(백이아불식주속)

衛靈公問陳(위령공문진)而孔子不答(이공자부답)

梁惠王謀欲攻趙(양혜왕모욕공조)孟軻稱大王去邠(맹가칭왕거빈)

此豈有意阿世俗茍合而已哉(차기유의아세속구합이이재)

持方枘欲內圜鑿(지방예욕내환)其能入乎(기능입호)

 

 

주무왕(周武王)이 인의를 내세워 주왕(紂王)을 정벌하여 왕이 되자 백이(伯夷)가 굶어 죽을지언정 주나라의 곡식을 먹지 않았다.

위 영공(衛 靈公)이 전투대형을 묻자 공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양 혜왕이 조()나라를 공격하는 계략을 원하니 맹자는 태왕(太王) 고공단보가 빈()을 떠난 고사를 일컬었다.

이런 일들이 어찌 세속에 아부하고 구차하게 영합하려는 것만을 생각하였다고 하겠는가!

네모진 자루를 둥근 구멍에 넣으려고 한들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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伯夷餓不食周粟(백이아불식주속) 백이(伯夷)가 굶어 죽을지언정 주나라의 곡식을 먹지 않았다. <史記·伯夷列傳>

衛靈公問陳(위령공문진) : 衛靈公問陳於孔子孔子對曰俎豆之事則嘗聞之矣軍旅之事未嘗學也.’ 明日遂行. : ()나라 영공(靈公)이 공자(孔子)에게 진법(陳法)을 묻자, 공자께서는 조두(俎豆:(祭器))에 대한 일은 일찍이 들었거니와, 군대에 관한 일은 배우지 못하였다.” 하시고, 다음날 마침내 떠나셨다. <論語 衛靈公 1> 과 같으며 교전시 전투대형을 말한다.

孟軻稱大王去邠(맹가칭태왕거빈) : 滕文公問曰:「齊人將築薛吾甚恐如之何則可?」 孟子對曰昔者大王居邠狄人侵之去之岐山之下居焉: 등나라 문공이 맹자께 물었다. “제나라 사람들이 설 땅에다 성을 쌓으려 합니다. 저는 무척 겁이 나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 맹자가 대답하였다. “옛날에 태왕이 빈에서 살 때 오랑캐들이 침입해 오자 그 곳을 버리고 기산 밑에 가서 살았습니다.”<孟子 梁惠王下 21>

大王은 주문왕(周文王)의 조부(祖父)인 고공단보(古公亶父)를 말하며, 와 같다.

去邠(거빈)은 임금이 난을 피하여 수도(首都)를 버리고 다른 곳으로 옮겨 가는 것을 말하며, ()나라 태왕(太王)이 오랑캐의 침입을 피하여 빈()을 버리고 기산(岐山) 밑으로 옮겨 간 고사(故事)에서 유래한 말이다.

() : 영합하다.

苟合(구합) : 형편대로 부합하다. 구차하게 부합하다.

方枘(방예) : 네모진 자루.

圜鑿(환조) : 둥근 구멍. 는 구멍 ’.

 

 

 

或曰(혹왈)伊尹負鼎而勉湯以王(이윤부정이면탕이왕)

百里奚飯牛車下而繆公用霸(백리해반우거하이목공용패)

作先合(작선합)然後引之大道(연후인지대도)

騶衍其言雖不軌(추연기언수불궤)儻亦有牛鼎之意乎(당역유우정지의호)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이윤(伊尹)은 솥을 짊어지고 요리사가 되어 탕왕(湯王)을 왕이 되도록 힘썼으며, 백리해(百里奚)는 수레 밑에서 소를 먹이다가 목공(繆公)을 만나 패업을 이루게 하였으니, 이는 먼저 상대의 뜻에 영합한 후 대도로 인도한 것이라고 했다.

추연의 말은 비록 궤도에서 벗어났으나 그 또한 소를 치던 백리해나 솥을 짊어진 이윤와 같은 뜻을 품은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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伊尹負鼎而勉湯以王(이윤부정이면탕이왕) : 伊尹名阿衡. 阿衡欲奸湯而無由, 乃爲有莘氏媵臣, 負鼎俎, 以滋味說湯, 致于王道. : 이윤의 이름은 아형(阿衡)이다. 아형이 탕을 만나고자 했으나 구실이 없었다. 이에 유신씨(有莘氏)의 폐백인 잉신(媵臣)이 되어 솥과 도마를 메고 와서는 음식의 맛으로 유세하여 왕도에 이르게 했다. <史記 卷3 殷本紀>

百里奚飯牛車下而繆公用霸(백리해반우거하이목공용패) : 萬章問曰:「或曰:『百里奚自鬻於秦養牲者五羊之皮食牛以要秦穆公。』信乎?」 : 만장이 물었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백리해는 스스로 진나라의 희생을 기르는 사람에게 다섯 마리의 양()의 가죽을 받고 자기를 팔아, 소먹이는 자가 되어 가지고, () 목공(穆公)에게 벼슬을 구하였다고 하는데, 사실입니까?" <孟子 萬章上 9> 백리 해(百里奚)는 중국 춘추 시대 진()나라의 재상으로, 자는 정백(井伯)이며 완() 사람이다.

不軌(불궤) : 궤도에서 벗어나다. 법도에서 벗어나다.

牛鼎之意(우정지의) : 소를 치던 백리해와 솥을 짊어진 이윤이 벼슬을 구한 것을 말한다.

 

 

6.騶衍(추연) (3)

 

自騶衍與齊之稷下先生(자추연여제지직하선생)

如淳于髡(여순우곤)慎到(신도)環淵(환연)接子(접자)田駢(전병)

騶奭之徒(추석지도)各著書言治亂之事(각저서언치란지사)

以干世主(이간세조)豈可勝道哉(기가승도재)

 

 

추연으로부터 제나라의 직하선생(稷下先生)들인 순우곤(淳于髡), 신도(慎到), 환연(環淵), 접자(接子), 전병(田駢), 추석(騶奭)과 같은 무리도 각각 글을 지어 혼란을 다스리는 일을 말하며

당대의 군주들에게 등용되기를 요구했으니 어찌 이루 다 말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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稷下先生(직하선생) : ()나라의 도성 임치성의 서문(西門)을 직문(稷門)이라 하였다. 제나라를 찾아온 학사들을 서문 밖에 모여 살게 하였기 때문에 이곳의 학사들을 직하학사라 하였다.<史記, 田敬仲完世家>

世主(세주) : 당대의 군주.

 

 

7. 淳于髡(순우곤)

 

 

淳于髡(순우곤)齊人也(제인야)

博聞彊記(박문강기)學無所主(학무소주)

其諫說(기간세)慕晏嬰之為人也(모안영지위인야)

然而承意觀色為務(연이승의관색위무)

客有見髡於梁惠王(객유곤어양혜왕)惠王屏左右(혜왕병좌우)

獨坐而再見之(독좌이재현지)終無言也(종무언야)

惠王怪之(혜왕괴지)以讓客曰(이양객왈)

子之稱淳于先生(자지칭순우선생)晏不及(,안불급)

及見寡人(급현과인)寡人未有得也(과인미유득야)

豈寡人不足為言邪(기과인부족위언야)何故哉(하고재)?」

客以謂髡(객이위곤)

 

 

순우곤(淳于髡)은 제()라 사람이다.

학문이 넓고 기억력이 뛰어났으나 한 가지 학문을 파고들지는 않았다.

그가 군주에게 간언하고 설득하는 방법은 안영(晏嬰)의 사람됨을 본받았으며,

군주의 뜻을 받들고 얼굴색을 살피기에 힘썼다.

어떤 손님이 순우곤을 양 혜왕과 소개해 주었는데, 양 혜왕이 측근들을 모두 물리치고

홀로 앉아 두 번이나 그를 보았으나,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양 혜왕은 이를 괴이하게 여기고 소개한 손님을 꾸짖으며 말했다.

그대가 순우곤선생은 관중(管仲)과 안영(晏嬰)도 따르지 못하는 인물이라고 칭찬했는데,

과인이 그와 만나서 아직 한마디도 들은 적이 없소.

과인이 그를 상대하기에 부족하다고 여기는 것이오? 무슨 까닭이오?”

손님이 순우곤에게 이 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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諫說(간세) : 군주에게 간언하고 설득하다.

晏嬰(안영) : ? ~ 기원전 500. 춘추시대 제나라()의 명재상이다. 자는 중(), 시호는 평(). 제 영공(靈公), 장공(莊公), 경공(景公) 3대를 섬긴 재상으로서 절약 검소하고 군주에게 기탄없이 간언한 것으로 유명하였다. 안평중(晏平仲) 혹은 안자(晏子)라는 존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客有見髡(개유현곤) : 어떤 손님이 순우곤을 소개하다. ()은 소개하다.

() : 물리치다.

() : 꾸짖다.

 

 

髡曰(곤왈):「固也(고야)吾前見王(오전현왕)王志在驅逐(왕지재구축)

後復見王(후부현왕)王志在音聲(왕지재음성)吾是以默然(오시이묵연)。」

客具以報王(객구이보왕)王大駭(왕대해)()

嗟乎(차호)淳于先生誠聖人也(순우선생성성인야)

前淳于先生之來(전순우선생지래)人有獻善馬者(인유헌선마자)

寡人未及視(과인미급시)會先生至(회선생지)

後先生之來(후선생지래)人有獻謳者(인유헌구자)

未及試(미급시)亦會先生來(역회선생래)

寡人雖屏人(과인수병인)然私心在彼(연사심재피)有之(유지)。」

 

 

순우곤이 말했다.

그렇습니다. 제가 전에 왕을 뵈었을 때 왕의 뜻은 달리는 말에 있었으며,

후에 다시 왕을 뵈었을 때 왕의 뜻이 음악 소리에 있었으니, 제가 할 말이 없었습니다.”

손님이 이 말을 왕에게 보고하자 왕이 매우 놀라며 말했다.

, 순우선생은 참으로 성인이로다!

전에 순우선생이 왔을 때, 어떤 사람이 좋은 말을 바쳤는데

과인이 그 말을 보기도 전에 마침 선생께서 오셨소.

후에 선생이 왔을 때, 어떤 사람이 노래를 잘하는 사람을 바쳤는데

그를 시험해보기도 전에 역시 선생께서 오셨소.

과인이 비록 사람들을 물리쳤으나 내 마음은 그쪽으로 쏠려있었으니, 그런 일이 있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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獻謳者(헌구자) : 노래를 잘하는 사람을 바침.

 

 

後淳于髡見(후순곤현)壹語連三日三夜無倦(일어연삼일삼야무권)

惠王欲以卿相位待之(혜왕욕이경상위대지)髡因謝去(곤인사거)

於是送以安車駕駟(어시송이안거가사)束帛加璧(속백가벽)黃金百鎰(황금백일)

終身不仕(종신불사)

 

 

그 뒤에 순우곤을 다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니 3일 밤낮을 이어갔으나 피곤한 줄을 몰랐다.

혜왕이 그에게 경상(卿相)의 지위를 주고 대우하려고 했으나, 순우곤은 사양하고 물러났다.

이에 혜왕은 사두마차의 편안한 수레와 비단 다섯 필에 벽옥을 더하고, 황금 이천 량을 주었다. 순우곤은 평생토록 벼슬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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束帛(속백) : 고대에 비단 다섯 필을 한데 묶은 것으로 예폐(禮幣)로 쓰였다.

() : 고대 중량의 단위로 1일은 20량 또는 24량이다.

 

 


8. 慎到(신도)田駢(전병)接子(접자)環淵(환연)

 

 

慎到(신도)趙人(조인)田駢(전병)接子(접자)齊人(제인)

環淵(환연)楚人(초인)

皆學黃老道德之術(개학황로도덕지술)因發明序其指意(인발명서기지의)

故慎到著十二論(고신도저십이론)環淵著上下篇(환연저상하편)

而田駢(이전병)接子皆有所論焉(접자개유소론언)

 

 

신도(慎到)는 조()나라 사람이다. 전병(田駢)과 접자(接子)는 제나라 사람이다.

환연(環淵)은 초나라 사람이다.

모두 황로(黃老)의 도덕에 관한 학술을 배워서 그 뜻을 기술하고 천명하였다.

이에 신도는 12론을 저술하였고, 환연(環淵)은 상하편을 저술했으며,

전병과 접자도 각각 저술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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愼到(신도) : 전국 시대 조()나라 사람. 황로술(黃老術)을 배워 법치를 주장하고, 옳고 그름을 다투는 의론을 모두 상대적인 것으로 보고 함께 하나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원전 4세기 무렵 제선왕(齊宣王)과 혼왕(涽王) 때 직하(稷下)의 학사가 되었는데, 추연(鄒衍), 순우곤(淳于髡), 접여(接予), 환연(環淵) 등과 함께 상대부(上大夫)가 되었다. <신자(慎子)> 42편을 저술하였으나 7편 만 전해진다.

田騈(전병) : 진병(陳騈)으로도 불린다. 전국 시대 제()나라 사람. 황로지학(黃老之學)을 익혔다. 제선왕(齊宣王) 때 직하(稷下)에 와서 강학(講學)했는데, 논변이 뛰어나 천구병(天口騈)’으로 불렸다. 신도(愼到)와 이름을 나란히 했다. 한서(漢書예문지(藝文志)에 전자(田子) 25편이 저록되어 있는데 지금은 전해지지 않는다.

黃老道德之術(황로도덕지술) : 황로학파(黃老學派)의 학설. 황로학파는 전국시대와 한() 나라 때에 성행했던 도가 사상의 한 유파로 노자의 사상을 기반으로 묵가, 명가, 법가 등의 사상을 흡수하여 청정무위(淸淨無爲)의 정치사상을 내세웠으며, 노자의 도() 개념을 발전시켜 기일원론(氣一元論)의 철학적 전통의 기초를 형성하였다. 황로학파의 사상은 제() 나라의 교육기관이었던 직하(稷下)에서 학문을 강론했던 환연(環淵전변(田騈신도(愼到접자(接子) 등에 의해 발전되었다.

發明(발명) : 해명하여 드러냄.

() : 진술하다.

 

 

9.騶奭(추석)

 

 

9

騶奭者(추석자)齊諸騶子(제제추자)亦頗采騶衍之術以紀文(역파채추연지술이기문)

 

10

於是齊王嘉之(어시제왕가지)自如淳于髡以下(자여순우곤이하)

皆命曰列大夫(개명왈열대부)為開第康莊之衢(위개제강장지구)

高門大屋(고문대옥)尊寵之(존총지)

覽天下諸侯賓客(남천하제후빈객)言齊能致天下賢士也(언제능치천하현사야)

 

 

9

추석(騶奭)은 제나라의 추자 중 한 명으로 그 역시 추연의 학술을 많이 받아들이고 저술하였다.

 

10

이에 제()나라 왕이 그들을 칭찬하며 순우곤으로부터 그 이하

모두에게 열대부(列大夫) 작위를 내리고, 번화한 거리에 저택을 짓고

높은 문이 달린 큰 집에 살게 하면서 그들을 존경하고 총애했다.

천하의 제후들과 손님들에게 보이며 제나라는 천하의 현명한 선비들을 불러왔다고 자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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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상당히.

紀文(기문) : 저술하다. 저작하다.

開第(개제) : 저택을 지음. 는 대주택(大住宅).

康莊之衢(강장지구) : 번화한 거리. 막힘없이 통해진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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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 사기

재휘애비.溢空 2020. 3. 28. 11:41



[史記列傳(사기열전)] 74 孟子荀卿列傳(맹자순경열전) (1/3)

<孟子列傳(맹자열전) : 孟子(맹자)/騶忌(추기)/騶衍(추연)/淳于髡(순우곤)

/慎到(신도)/田駢(전병)/環淵(환연)/接子(접자)/騶奭(추석)>

<荀卿列傳(순경열전) : 荀卿(순경)/公孫龍(공손룡)/墨翟(묵적)>

 

 

본 편은 맹자(孟子)와 순경(荀卿)의 합전(合傳)이며 전국시대의 음양가, 도가, 법가, 명가, 묵가의 대표적인 인물 12명에 대하여 기술하였다. 사마천은 <맹자>를 읽고 공자의 말을 인용하여 이로움에 따라서 행동하면 원망을 많이 받는다.”고 기술 하였다.

 

 

74-1/3[史記列傳(사기열전)] 74 孟子荀卿列傳(맹자순경열전) (1/3)

 

1.序文

 

 

太史公曰(태사공왈)

余讀孟子書(여독맹자서)至梁惠王問(지양혜왕문)何以利吾國(하이리오국))

未嘗不廢書而嘆也(미상불폐서이탄야)

()嗟乎(차호)利誠亂之始也(이성란지시야)

夫子罕言利者(부자한언리자)常防其原也(상방기원야)

故曰(고왈)放於利而行(방어리이행)多怨(다원)」。

自天子至於庶人(자천자지어서인)好利之獘何以異哉(호리지폐하이이재)

 

 

태사공은 말한다.

나는 <맹자(孟子)>를 읽다가 양 혜왕(梁 惠王)어찌하면 우리나라를 이롭게 하겠소.라고 묻는 구절에 이르러 책을 내려놓고 탄식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리고는 말하였다 , 이로움이란 진실로 혼란의 시작이구나! ’

무릇 공자가 이로움에 대해 거의 말하지 않은 것은

언제나 혼란의 근원을 막기 위함이었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이로움에 따라서 행동하면 원망을 많이 받는다.”고 하였다.

천자로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이 이로움을 좋아해서 생긴 폐해가 어찌 다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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孟子書(맹자서) : 유가(儒家)의 경전의 하나인 <孟子(맹자)>를 말한다. <맹자> 7편은 만년의 저술이라고 하나 일반적으로 맹가와 그의 제자 만장(萬章) 등이 공동으로 저술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梁惠王(양혜왕) : 위 혜왕(魏 惠王:기원전 400~ 기원전 334)을 말하며, 전국 시대 위나라의 제3대 군주이다. 혜성왕(惠成王)으로 불리기도 한다. 맹자에서는 양 혜왕(梁 惠王)으로 기록되었고, 장자에는 문혜군(文惠君)으로 기록되어 있다. 기원전 340년 위()나라는 제()나라와의 전쟁에 패하여 안읍(安邑)에서 동쪽인 대량(大梁)으로 천도하게 되며, 그 이후 위()나라는 양()나라로 불리게 되었다.

何以利吾國(하이리오국) : “어찌하면 우리나라를 이롭게 하겠소.”라는 양혜왕의 질문에 맹자는 웃사람과 아랫사람이 서로 이익만을 취하게 되니 나라가 위태로워질 것입니다.”라고 답하였다. <孟子 梁惠王章句 上>

() : 내려놓다.

夫子罕言利者(부자한언리자) : “子罕言利與命與仁。」 : 공자께서는 이()와 명()과 인()을 드물게 말씀하셨다.”<論語 子罕 1>

放於利而行(방어리이행) : 子曰:「放於利而行多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