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

재휘애비.溢空 2016. 9. 5. 22:28


중국 상()의 마지막 임금인 주왕()의 이복형으로서 상()이 멸망한 뒤에 주() 성왕()에게 송()의 제후로 봉()해졌다. 비간(), 기자()와 함께 상() 말기의 세 명의 어진 사람[]으로 꼽힌다.


이름은 계()이며, 상()의 29대 제을()의 장자()로서 주왕()의 이복형이다. 어머니가 정후()가 아니었기 때문에 왕위()를 계승받지 못했으며, 미()에 봉()해져 미자()라고 불렸다.


봉작()과 이름을 합쳐 미자계()라고 나타내는 경우가 많으며, 한 대()의 사서()에서는 경제(, BC 188~BC 141) 유계()의 이름을 피해 계()가 아니라 개()로 표기되어 있다. 춘추() 시대의 제후국()인 송()의 시조()이기도 하여 송미자()라고도 하며, 송()이 자()를 국성()으로 하였기에 자계()라고도 한다. 그는 은인자중()하는 성격으로 사람들의 신망()을 받았으며, 비간(), 기자()와 함께 상() 말기의 세 명의 어진 사람[]으로 꼽힌다.

상()의 주왕()은 술과 음악을 지나치게 즐겼으며,
달기()를 총애하여 그녀의 말이면 무엇이든 들어주었다. 그는 ‘녹대()’라는 화려한 궁궐을 짓고, 연못을 술로 채우고 고기를 숲처럼 매달아 놓고 즐긴다는 ‘주지육림()’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방탕한 생활을 하였다. 주왕()의 폭정()에 대해 미자()는 여러 차례 간언()을 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나 미자()는 상()의 예악()을 담당하는 태사(), 소사()와 상의를 하여 아우인 자연()과 함께 상()을 떠나 봉지()인 미()로 돌아갔다. 결국 기원전 1046년 주왕()은 주() 무왕()에게 목야()의 전투에서 패하고 자살하였다.

상()이 멸망한 뒤 미자()는 주() 무왕()을 찾아가 투항하였다. 당시 미자()는 두 손을 뒤로 묶은 채 왼손으로는 양()을 끌고 오른손으로는 띠[]를 잡고 무릎을 꿇으며 상()의 종사()를 유지할 수 있도록 간청했다. 무왕()은 미자()의 청을 받아들여 주왕()의 아들인
무경[, 녹보()라고도 한다]을 상()의 도읍인 은(, 지금의 )에 봉()하여 상()의 종사()를 잇도록 하였다.

기원전 1043년 무렵 무왕()이 죽고 나이 어린 성왕()이 즉위하자, 무왕()의 동생인
주공() 희단()이 섭정()이 되어 주()를 통치하였다(주공이 왕위를 이었다는 학설도 있다). 그러자 무경()은 이에 불만을 품은 무왕()의 다른 형제들인 관숙(), 채숙(), 곽숙()과 함께 반란을 일으켰다. 이를 ‘삼감()의 난()’이라고 하는데, 반란은 3년 만에 진압되었고 무경()은 주살()되었다.


주공()은 반란을 진압한 뒤 옛 상()의 영역를 송(, 지금의 )과 위(, 지금의 )의 둘로 나누었다. 그리고 위()에는 자신의 막내동생인 강숙() 희봉()을 봉()하여 상()의 유민()들을 통제하였고, 송()에는 미자()를 봉()하여 상()의 종사()를 잇도록 하였다. 미자()는 상()의 문화 전통을 계승하여 송()을 훌륭히 통치하여 안정시켰다. 그는 자식을 남기지 않아 아우인 자연()이 그의 뒤를 계승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미자 [微子] (두산백과)


대부분 혁명으로 정권을 잡으면...
패전국에 대해서는 말살하는게 고대사회에서 상식에 가까운데...
송나라 만들어 은나라 유민들이 자치적으로 전통을 잇어서 살수 있도록 한점...

주공의 위대함을 느낄수 있네요.
그래서 공자님도 그렇게 주공을 사랑했나봅니다.

 
 
 

서경

재휘애비.溢空 2016. 9. 5. 19:41


*서경 ; 주서 ; 다방(多方)

 

▣ 다방(多方)

 

『成王卽政한대 奄與淮夷又叛이어늘 成王滅奄歸하여 作此篇하니라 按費誓에 言±3玆淮夷徐戎竝興이 卽其事也라 疑當時扇亂이 不特殷人이요 如徐戎淮夷四方에 容或有之라 故로 及多方하니 亦誥體也라 今文古文皆有하니라』

『○ 蘇氏曰 大誥, 康誥, 酒誥, 梓材, 召誥, 洛誥, 多士, 多方八篇은 雖所誥不一이나 然大略은 以殷人心不服周而作也라 予讀泰誓, 武成하고 常怪周取殷之易러니 及讀此八篇하고는 又怪周安殷之難也로라 多方所誥는 不止殷人하고 乃及四方之士하니 是紛紛焉不心服者 非獨殷人也라 予乃今에 知湯已下七王之德이 深矣로라 方殷之虐엔 人如在膏火中하여 歸周如流하여 不暇念先王之德이러니 及天下粗定하여 人自膏火中出하여는 卽念殷先七王을 如父母하여 雖以武王周公之聖이 相繼撫之로되 而莫能禦也라 夫以西漢道德을 比之殷하면 猶?풵之與美玉이로되 然王莽, 公孫述, ?-¶之流 終不能使人忘漢하여 光武成功이 若建?然하니 使周無周公이런들 則亦殆矣리니 此周公之所以畏而不敢去也시니라』

 

『 성왕(成王)이 정사에 나아가자, 엄(奄)나라와 회이(淮夷)가 다시 반하므로 성왕(成王)이 엄(奄)나라를 멸하고 돌아와 이 편을 지었다. 〈비서(費誓)〉를 살펴보면 “지난번에 회이(淮夷)와 서융(徐戎)이 함께 일어났다.”는 것이 바로 이 일이다. 의심컨대 당시에 난을 선동한 것이 비단 은(殷)나라 사람만이 아니요, 서융(徐戎)과 회이(淮夷) 등 사방에 혹 있었던 듯하다. 그러므로 다방(多方)『[많은 지방]』에 미친 것이니, 또한 고체(誥體)이다. 금문(今文)과 고문(古文)에 모두 있다.』

『 ○ 소씨(蘇氏)가 말하였다. “〈대고(大誥)〉•〈강고(康誥)〉•〈주고(酒誥)〉•〈재재(梓材)〉•〈소고(召誥)〉•〈낙고(洛誥)〉•〈다사(多士)〉•〈다방(多方)〉의 8편은 비록 가르친 내용이 똑같지 않으나 대략은 은(殷)나라 사람들이 마음으로 주(周)나라에 복종하지 않기 때문에 지은 것이다. 나는 〈태서(泰誓)〉와 〈무성(武成)〉을 읽고는 항상 주(周)나라가 은(殷)나라를 취하기 쉬움을 괴이하게 여겼는데, 이 8편을 읽고는 또 주(周)나라가 은(殷)나라를 안정시키기 어려움을 괴이하게 여겼다. 〈다방(多方)〉에서 가르친 것은 은(殷)나라 사람에 그치지 않고 마침내 사방의 선비에게 미쳤으니, 분분하여 마음으로 복종하지 않은 자가 다만 은(殷)나라 사람뿐만이 아니었다. 나는 지금에야 탕왕(湯王) 이하 일곱 왕의 덕(德)이 깊은 것을 알았다. 은(殷)나라가 학정(虐政)을 할 때에는 사람들이 기름불 속에 있는 것처럼 여겨서 주(周)나라로 돌아오기를 물이 아래로 흘러가듯이 하여 선왕(先王)의 덕(德)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는데, 천하가 다소 안정되어 사람들이 기름불 속에서 나오자, 은(殷)나라의 일곱 선왕(先王)을 생각하기를 부모와 같이 하여 비록 무왕(武王)•주공(周公)의 성인(聖人)이 서로 이어 어루만졌으나 능히 막지 못하였다. 서한(西漢)의 도덕을 은(殷)나라에 비교하면 옥돌이 아름다운 옥을 상대하는 것과 같은데도 왕망(王莽)과 공손술(公孫述)•외효(?-¶)의 무리가 끝내 사람들로 하여금 한(漢)나라를 잊게 하지 못하여, 광무제(光武帝)가 성공함이 물병을 거꾸로 세우듯이 쉽게 하였으니, 가사 주(周)나라에 주공(周公)이 없었더라면 또한 위태로웠을 것이니, 이는 주공이 두려워하여 감히 떠나가지 못한 이유이다.”』

 

『○ 서경 ; 주서 ; 다방 ; 제1장+1』

『○ 서경 ; 주서 ; 다방 ; 제2장+2』

『○ 서경 ; 주서 ; 다방 ; 제3장+3』

『○ 서경 ; 주서 ; 다방 ; 제4장+4』

『○ 서경 ; 주서 ; 다방 ; 제5장+5』

『○ 서경 ; 주서 ; 다방 ; 제6장+6』

『○ 서경 ; 주서 ; 다방 ; 제7장+7』

『○ 서경 ; 주서 ; 다방 ; 제8장+8』

『○ 서경 ; 주서 ; 다방 ; 제9장+9』

『○ 서경 ; 주서 ; 다방 ; 제10장+10』

『○ 서경 ; 주서 ; 다방 ; 제11장+11』

『○ 서경 ; 주서 ; 다방 ; 제12장+12』

『○ 서경 ; 주서 ; 다방 ; 제13장+13』

『○ 서경 ; 주서 ; 다방 ; 제14장+14』

『○ 서경 ; 주서 ; 다방 ; 제15장+15』

『○ 서경 ; 주서 ; 다방 ; 제16장+16』

『○ 서경 ; 주서 ; 다방 ; 제17장+17』

『○ 서경 ; 주서 ; 다방 ; 제18장+18』

『○ 서경 ; 주서 ; 다방 ; 제19장+19』

『○ 서경 ; 주서 ; 다방 ; 제20장+20』

『○ 서경 ; 주서 ; 다방 ; 제21장+21』

『○ 서경 ; 주서 ; 다방 ; 제22장+22』

『○ 서경 ; 주서 ; 다방 ; 제23장+23』

『○ 서경 ; 주서 ; 다방 ; 제24장+24』

『○ 서경 ; 주서 ; 다방 ; 제25장+25』

『○ 서경 ; 주서 ; 다방 ; 제26장+26』

『○ 서경 ; 주서 ; 다방 ; 제27장+27』

『○ 서경 ; 주서 ; 다방 ; 제28장+28』

『○ 서경 ; 주서 ; 다방 ; 제29장+29』

『○ 서경 ; 주서 ; 다방 ; 제30장+30』

『○ 서경 ; 주서 ; 다방 ; 제31장+31』

 

*서경 ; 주서 ; 다방 ; 제1장

 

▣ 제1장(第一章)

 

『惟五月丁亥에 王이 來自奄하사 至于宗周하시다』

 

『 5월 정해일(丁亥日)에 성왕(成王)이 엄(奄)나라로부터 와서 종주(宗周)『[호경(鎬京)]』에 이르렀다.』

 

『成王卽政之明年에 商奄又叛이어늘 成王征滅之하니라 杜預云 『奄은 不知所在주:엄부지소재』라 宗周는 鎬京也라 呂氏曰 王者定都면 天下之所宗也라 東遷之後에 定都于洛하니 則洛亦謂之宗周라 衛孔폩之鼎銘曰 隨難于漢陽하고 卽宮于宗周라하니 是時에 鎬已封秦하니 宗周는 蓋指洛也라 然則宗周는 初無定名이요 隨王者所都而名耳니라』

 

『 성왕(成王)이 정사에 나아간 다음해에 상엄(商奄)이 다시 반하므로 성왕(成王)이 정벌하여 멸한 것이다. 두예(杜預)는 이르기를 “엄(奄)은 어느 곳에 있는지 알지 못한다.” 하였다. 종주(宗周)는 호경(鎬京)이다.』

『 여씨(呂氏)가 말하였다. “왕자(王者)가 도읍을 정하면 천하가 종주(宗主)로 삼는다. 동천(東遷)한 뒤에 낙양(洛陽)에 도읍을 정하니, 낙양을 또한 종주(宗周)라 일렀다. 위(衛)나라 공리(孔폩)의 정명(鼎銘)에 이르기를 ‘한양(漢陽)으로 난(難)을 따르고 종주(宗周)에 나아가 집을 정했다.’ 하였는데, 이때에 호경을 이미 진(秦)나라에 봉했으니, 종주(宗周)는 낙양(洛陽)을 가리킨 것이다. 그렇다면 종주(宗周)는 애당초 정한 이름이 없고, 왕자(王者)의 도읍한 곳에 따라 이름한 것이다.”』

 

*서경 ; 주서 ; 다방 ; 제2장

 

▣ 제2장(第二章)

 

『周公曰 王若曰 猷라 告爾四國多方하노라 惟爾殷侯尹民아 我惟大降爾命호니 爾罔不知니라』

 

『 주공(周公)이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왕이 대략 이렇게 말씀하였다. ‘아! 너희 사국(四國)과 다방(多方)『[여러 지방]』에 고하노라. 너희 은후(殷侯)『[은(殷)나라 등의 후왕(侯王)]』로서 백성을 맡은 자들아! 내가 크게 죄를 강등하여 너희 목숨을 살려주었으니, 너희들은 알지 않음이 없어야 할 것이다.』

 

『呂氏曰 先曰周公曰而復曰王若曰은 何也오 明周公傳王命이요 而非周公之命也라 周公之命誥가 終於此篇이라 故發例於此하여 以見大誥諸篇의 凡稱王曰者 無非周公傳成王之命也라 成王滅奄之後에 告諭四國殷民하고 而因以曉天下也니 所主殷民이라 故로 又專提殷侯之正民者告之하니라 言殷民이 罪應誅戮이어늘 我大降宥爾命하니 爾宜無不知也라』

 

『 여씨(呂氏)가 말하였다. “먼저 ‘주공왈(周公曰)’을 말하고 다시 ‘왕약왈(王若曰)’이라고 말한 것은 어째서인가? 주공이 왕명을 전한 것이요, 주공의 명이 아님을 밝힌 것이다. 주공의 명고(命誥)가 이 편에서 끝났으므로 여기에서 예(例)를 발하여 〈대고(大誥)〉 등 여러 편에서 무릇 ‘왕왈(王曰)’이라고 칭한 것은 모두 주공이 성왕(成王)의 명을 전한 것임을 나타낸 것이다.”』

『 성왕(成王)이 엄(奄)나라를 멸한 뒤에 사국(四國)의 은(殷)나라 백성에게 고유(告諭)하고 인하여 천하를 깨우친 것이니, 주장한 바가 은(殷)나라 백성이므로 또 오로지 은후(殷后)로서 백성을 바로잡는 자들을 제기하여 고한 것이다. 은나라 백성들은 죄가 모두 마땅히 주륙을 당하여야 할 터인데, 내가 크게 죄를 강등하여 너희 목숨을 용서하였으니, 너희들은 마땅히 알지 않음이 없어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서경 ; 주서 ; 다방 ; 제3장

 

▣ 제3장(第三章)

 

『洪惟圖天之命하여 弗永寅念于祀하니라』

 

『 크게 하늘의 명(命)을 도모하여 길이 공경히 생각해서 제사를 보존하지 못하였다.』

 

『圖는 謀也라 言商奄이 大惟私意로 圖謀天命하여 自底滅亡하여 不深長敬念以保其祭祀라 呂氏曰 天命은 可受而不可圖니 圖則人謀之私요 而非天命之公矣라 此蓋深示以天命不可妄干이니 乃多方一篇之綱領也라 下文에 引夏商所以失天命, 受天命者하여 以明示之하니라』

 

『 도(圖)는 도모함이다. 상엄(商奄)이 크게 사의(私意)로 천명(天命)을 도모하여 스스로 멸망에 이르러서 심장(深長)하게 공경히 생각해서 그 제사를 보존하지 못했음을 말한 것이다. 여씨(呂氏)가 말하기를 “천명은 받을 수는 있으나 도모할 수는 없으니, 도모한다면 인모(人謀)의 사사로움이요, 천명(天命)의 공(公)이 아니다.” 하였다. 이는 천명을 함부로 요구할 수 없음을 깊이 보여준 것이니, 바로 〈다방(多方)〉 한 편의 강령(綱領)이다. 하문(下文)에 하(夏)나라와 상(商)나라가 천명을 잃고 천명을 받은 것을 인증하여 분명히 보여주었다.』

 

*서경 ; 주서 ; 다방 ; 제4장

 

▣ 제4장(第四章)

 

『『惟帝降格于夏주:유제강격우하』어시늘 有夏誕厥逸하여 不肯?言于民하고 乃大淫昏하여 不克終日勸于帝之迪은 乃爾攸聞이니라』

 

『 상제(上帝)가 하(夏)나라에 내려와 이르셨는데 하(夏)나라가 크게 방일(放逸)하여 백성을 근심하는 말을 즐겨하지 않고, 마침내 크게 음혼(淫昏)하여 능히 종일토록 상제의 인도함에 힘쓰지 않았음은 네가 들어서 아는 바이다.』

 

『言帝降災異하여 以譴告桀이어늘 桀不知戒懼하고 乃大肆逸豫하여 憂民之言도 尙不肯出諸口하니 況望其有憂民之實乎아 勸은 勉也라 迪은 啓迪也니 視聽動息日用之間은 洋洋乎皆上帝所以啓迪開導斯人者라 桀乃大肆淫昏하여 終日之間에 不能少勉於是하니 天理或幾乎息矣라 況望有惠迪而不違乎아 此乃爾之所聞이니 欲其因桀而知紂也라 厥逸이 與多士引逸不同者는 猶亂之爲亂爲治耳라 逸豫는 以民言하고 淫昏은 以帝言은 各以其義也라 此章上에 疑有缺文이라』

 

『 상제(上帝)가 재이(災異)를 내려서 걸왕(桀王)에게 견책하여 고하였으나 걸왕(桀王)은 경계하고 두려워할 줄을 모르고 마침내 크게 일예(逸豫)하여 백성을 근심하는 말도 오히려 입에서 내기를 즐겨하지 않았으니, 하물며 백성을 근심하는 실제가 있기를 바라겠는가. 권(勸)은 힘씀이다. 적(迪)은 열어 인도함이니, 보고 듣고 동하고 그치는 일상생활하는 사이는 양양(洋洋)히 모두 상제(上帝)가 이 사람들을 계적(啓迪)하여 개도(開導)하는 것이다. 걸왕(桀王)은 마침내 크게 음혼(淫昏)하여 종일의 사이에 조금도 이에 힘쓰지 않았으니, 천리(天理)가 혹 거의 종식된 것이다. 하물며 인도함에 순종하여 어기지 않음이 있기를 바라겠는가. 이는 바로 너희들이 들은 것이니, 이는 걸왕(桀王)을 인하여 주왕(紂王)을 알고자 한 것이다. 궐일(厥逸)이 〈다사(多士)〉의 인일(引逸)과 같지 않은 것은 난(亂)이 혼란함이 되고 다스림이 되는 것과 같다. 일예(逸豫)는 백성에게 말하고, 음혼(淫昏)은 상제에게 말한 것은 각기 그 의(義)에 따른 것이다. 이 장(章)의 위에 결문(缺文)이 있는 듯하다.』

 

*서경 ; 주서 ; 다방 ; 제5장

 

▣ 제5장(第五章)

 

『厥圖帝之命하여 不克開于民之麗『(리)』하고 乃大降罰하여 崇亂有夏하니 因甲于內亂하여 不克靈承于旅하며 罔丕惟進之恭하여 洪舒于民이요 亦惟有夏之民의 쩵ë*를 日欽하여 ¯夏邑하니라』

 

『 상제(上帝)의 명을 도모하여, 능히 백성들이 붙어서 사는 것을 열어주지 못하고 크게 벌을 내려 하(夏)나라에 난을 숭상하니, 인함이 안의 혼란함에서 비롯되어 능히 무리들을 잘 받들지 못하며, 크게 공손함에 나아가 크게 백성들을 펴주지 못하고, 또한 하(夏)나라의 백성 중에 탐욕스럽고 분(忿)해 하는 자들을 날로 공경하여 하읍(夏邑)『[하(夏)나라 고을]』을 해쳐서이다.』

 

『此章은 文多未詳이라 麗는 猶日月麗乎天之麗니 謂民之所依以生者也니 依於土, 依於衣食之類라 甲은 始也라 言桀이 矯誣上天하고 圖度『(탁)』帝命하여 不能開民衣食之原하여 於民依恃以生者에 一皆抑塞촀絶之하고 猶乃大降威虐于民하여 以增亂其國하니 其所因則始于內嬖하여 蠱其心, 敗其家하여 不能善承其衆하고 不能大進於恭하여 而大寬裕其民이요 亦惟夏邑之民의 貪쩵忿ë*者를 則日欽崇而尊用之하여 以캓害於其國也라』

 

『 이 장(章)은 글이 미상(未詳)한 것이 많다. 리(麗)는 해와 달이 하늘에 붙어 있다는 리(麗)와 같으니, 백성들이 의지하여 사는 것을 이르니, 땅에 의지하고 의식(衣食)에 의지하는 따위이다. 갑(甲)은 비롯함이다. 걸왕(桀王)이 상천(上天)을 칭탁하여 속이고 상제(上帝)의 명을 도모해서 백성들의 의식(衣食)의 근원을 열어주지 못하여, 백성들이 의지하여 믿고 사는 것을 한결같이 억제하고 막아 끊고 오히려 위엄과 사나움을 백성들에게 크게 내려서 그 나라에 혼란을 더하니, 그 원인이 안의 총애함에서 비롯되어 마음을 혹하고 집을 망쳐 그 무리들을 잘 받들지 못하고, 크게 공손함에 나아가 그 백성들을 크게 너그럽게 대하지 못하며, 또한 하읍(夏邑)의 백성 중에 탐욕스럽고 분해 하는 자들을 날마다 공경하고 높여 등용해서 그 나라를 해쳐서임을 말한 것이다.』

 

*서경 ; 주서 ; 다방 ; 제6장

 

▣ 제6장(第六章)

 

『天이 惟時求民主하사 乃大降顯休命于成湯하사 刑殄有夏하시니라』

 

『 하늘이 이에 백성의 군주를 구하시어 드러나고 아름다운 명을 성탕(成湯)에게 크게 내리시어 하(夏)나라를 형벌하여 끊으신 것이다.』

 

『言天惟是爲民求主耳라 桀旣不能爲民之主일새 天乃大降顯休命於成湯하사 使爲民主하여 而伐夏殄滅之也라』

『○ 呂氏曰 曰求, 曰降은 豈眞有求之降之者哉아 天下無統하여 渙散漫流면 勢不得不歸其所聚어늘 而湯之一德은 乃所謂顯休命之實이니 一衆離而聚之者也라 民不得不聚於湯이요 湯不得不受斯民之聚니 是豈人爲之私哉리오 故로 曰天求之, 天降之也라하니라』

 

『 하늘이 이 백성을 위하여 훌륭한 군주를 구하였다. 걸왕(桀王)이 이미 백성의 군주가 될 수 없으므로 하늘이 마침내 드러나고 아름다운 명을 성탕(成湯)에게 크게 내려서 백성의 군주가 되어 하(夏)나라를 쳐서 끊어 멸하게 하였음을 말한 것이다.』

『 ○ 여씨(呂氏)가 말하였다. “구한다 하고 내린다 함은 어찌 참으로 구하고 내림이 있겠는가? 천하에 통(統)『[기강]』이 없어 흩어지고 함부로 흐르면 세(勢)가 모이는 곳으로 돌아가지 않을 수 없는데, 탕왕(湯王)의 한결같은 덕(德)이야말로 바로 드러나고 아름다운 명의 실제이니, 여러 흩어진 것을 하나로 통일시켜 모으는 것이다. 백성들은 탕왕에게 모이지 않을 수 없고, 탕왕은 이 백성들이 모인 것을 받지 않을 수 없었으니, 이 어찌 인위(人爲)의 사사로움이겠는가. 그러므로 하늘이 구했다고 하고, 하늘이 내렸다고 한 것이다.』

 

*서경 ; 주서 ; 다방 ; 제7장

 

▣ 제7장(第七章)

 

『惟天이 不퓒純은 乃惟以爾多方之義民으로 不克永于多享이요 惟夏之恭多士는 大不克明保享于民이요 乃胥惟虐于民하여 至于百爲히 大不克開하니라』

 

『 하늘이 걸왕(桀王)에게 주지 않음이 큰 것은 바로 너희 다방(多方)의 의민(義民)『[현자(賢者)]』들을 데리고 길이 복록을 많이 누리지 못하고, 하(夏)나라에서 공경하는 많은 선비들이 크게 백성들을 밝게 보존하여 누리지 못하고, 서로 백성들에게 포악히 하여 백 가지 행위에 이르기까지 크게 능히 열어주지 못해서였다.』

 

『純은 大也요 義民은 賢者也라 言天이 不與桀者大는 乃以爾多方賢者로 不克永于多享하여 以至于亡也라 言桀於義民에 不能用하고 其所敬之多士는 率皆不義之民이니 上文所謂쩵ë*日欽者라 同惡相濟하여 大不能明保享于民이요 乃相與播虐于民하여 民無所措其手足하여 凡百所爲가 無一能達하니 上文所謂不克開于民之麗者라 政暴民窮은 所以速其亡也라 此는 雖指桀多士나 爾殷侯尹民은 嘗逮事紂者니 寧不쾩然內愧乎아』

 

『 순(純)은 큼이요, 의민(義民)은 현자이다. 하늘이 걸왕에게 주지 않음이 큰 것은 바로 너희 다방(多方)의 현자들을 데리고 복록을 많이 누림에 영원하지 못하여 멸망함에 이름을 말한 것이다. 걸왕(桀王)이 의민(義民)에 있어서는 등용하지 못하고, 공경하는 많은 선비들은 대체로 모두 의롭지 않은 백성이었으니, 상문(上文)에 이른바 ‘탐욕스럽고 분해 하는 자들을 날로 공경했다.’는 것이다. 악을 함께 하여 서로 이루어서 크게 백성들을 밝게 보존하여 복록을 누리지 못하고, 서로 더불어 사나움을 백성들에게 끼쳐서 백성들이 수족을 둘 곳이 없어 무릇 백 가지 행하는 바가 하나도 도달되지 못하였으니, 상문(上文)에 이른바 ‘능히 백성들이 붙어서 사는 것을 열어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정사가 포악하고 백성들이 곤궁함은 그 망함을 재촉한 것이다. 이는 비록 걸왕(桀王)의 많은 선비들을 가리킨 것이나 너희 은후(殷侯)로서 백성을 맡은 자들은 일찍이 주왕(紂王)을 미처 섬긴 자들이니, 어찌 척연(쾩然)히 안에 부끄럽지 않겠는가.』

 

*서경 ; 주서 ; 다방 ; 제8장

 

▣ 제8장(第八章)

 

『乃惟成湯이 克以爾多方簡으로 代夏하사 作民主하시니라』

 

『 이에 성탕(成湯)이 너희 다방(多方)의 간택『[선발]』에 따라 하(夏)나라를 대신하여 백성들의 군주가 되셨다.』

 

『簡은 擇也니 民擇湯而歸之라』

 

『 간(簡)은 간택함이니, 백성들이 탕왕(湯王)을 간택하여 돌아온 것이다.』

 

*서경 ; 주서 ; 다방 ; 제9장

 

▣ 제9장(第九章)

 

『愼厥麗하여 乃勸하신대 厥民이 刑하여 用勸하니라』

 

『 그 붙어 사는 것을 삼가 권면하시자, 백성들이 본받아 권면하였다.』

 

『湯深謹其所依하여 以勸勉其民이라 故로 民皆儀刑而用勸勉也라 人君之於天下에 仁而已矣니 仁者는 君之所依也라 君仁이면 則莫不仁矣니라』

 

『 탕왕(湯王)이 그 의지하는 바를 깊이 삼가 백성들을 권면하였다. 이 때문에 백성들이 모두 의형(儀刑)『[본받음]』하여 권면한 것이다. 인군은 천하에 있어서 인(仁)할 뿐이니, 인(仁)은 인군이 의지하는 것이다. 인군이 인(仁)하면 인(仁)하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서경 ; 주서 ; 다방 ; 제10장

 

▣ 제10장(第十章)

 

『以至于帝乙히 罔不明德愼罰하사 亦克用勸하시니라』

 

『 제을(帝乙)에 이르기까지 덕을 밝히고 형벌을 삼가지 않음이 없어 또한 능히 권면하였다.』

 

『明德則民愛慕之하고 謹罰則民畏服之하나니 自成湯으로 至于帝乙히 雖歷世不同이나 而皆知明其德, 謹其罰이라 故로 亦能用以勸勉其民也라 明德, 謹罰은 所以謹厥麗也니 明德은 仁之本也요 謹罰은 仁之政也라』

 

『 덕(德)을 밝히면 백성들이 사랑하여 사모하고, 형벌을 삼가면 백성들이 두려워하여 복종하니, 성탕(成湯)으로부터 제을(帝乙)에 이르기까지 비록 지나온 대는 똑같지 않으나 모두 덕을 밝히고 형벌을 삼갈 줄 알았다. 그러므로 또한 능히 그 백성들을 권면한 것이다. 덕을 밝히고 형벌을 삼감은 그 붙어서 사는 것을 삼가는 것이니, 덕을 밝힘은 인(仁)의 근본이고, 형벌을 삼감은 인(仁)의 정사이다.』

 

*서경 ; 주서 ; 다방 ; 제11장

 

▣ 제11장(第十一章)

 

『要囚를 殄戮多罪도 亦克用勸이며 開釋無辜도 亦克用勸이니라』

 

『 요수(要囚)『[죄수를 판결함]』를 죄가 많은 자를 끊어 죽임도 또한 능히 권면하는 것이며, 죄가 없는 자를 열어 석방함도 또한 능히 권면하는 것이다.』

 

『德은 明之而已요 罰은 有µ?焉하고 有宥焉이라 故로 再言µ?而當罪도 亦能用以勸勉이요 宥而赦過도 亦能用以勸勉이라하니 言µ?與宥皆足以使人勉於善也라』

 

『 덕은 밝힐 뿐이요, 형벌은 죽임도 있고 용서함도 있다. 그러므로 다시 말하기를 “죽여서 죄에 마땅하게 함도 또한 능히 권면하는 것이며, 용서하여 잘못을 사면하는 것도 또한 능히 권면하는 것이다.” 하였으니, 죽이고 용서함이 모두 사람으로 하여금 선을 권면하게 하는 것임을 말하였다.』

 

*서경 ; 주서 ; 다방 ; 제12장

 

▣ 제12장(第十二章)

 

『今至于爾µ?하여 弗克以爾多方으로 享天之命하니라』

 

『 이제 너희의 임금에 이르러 능히 너희 다방(多方)으로도 천명을 누리지 못하였다.』

 

『呂氏曰 爾µ?은 謂紂也라 商先哲王이 世傳家法하여 積累維持如此어늘 今一朝至于汝君하여 乃以爾全盛之多方으로 不克坐享天命而亡之하니 是誠可悶也라 天命至公하여 操則存하고 舍則亡이라 以商先王之多, 基圖之大로도 紂曾不得席其餘蔭하여 其亡忽焉하니 危微操舍之幾를 周公所以示天下深矣니 豈徒曰慰解之而已哉아』

 

『 여씨(呂氏)가 말하기를 “이벽(爾µ?)은 주왕(紂王)을 이른다. 상(商)나라의 선철왕(先哲王)들이 대대로 가법(家法)을 전하여 많이 쌓고 유지함이 이와 같았는데 이제 하루아침에 너희 군주에 이르러 마침내 너희 전성(全盛)한 다방(多方)으로써도 앉아서 천명을 누리지 못하고 망하였으니, 이는 진실로 민망해할 만한 것이다. 천명은 지극히 공정(公正)하여, 잡으면 보존되고 놓으면 망한다. 그리하여 상(商)나라 선왕(先王)의 많음과 기도(基圖)『[터를 닦고 도모함]』의 큼으로도 주왕(紂王)이 일찍이 그 여음(餘蔭)을 이용하지 못해서 그 망함이 갑작스러웠으니, 위미(危微)와 조사(操舍)의 기미를 주공(周公)이 천하에 보여주심이 깊은 것이니, 어찌 다만 위로하여 풀뿐이라고 말하겠는가.』

 

*서경 ; 주서 ; 다방 ; 제13장

 

▣ 제13장(第十三章)

嗚呼라 王若曰 誥告爾多方하노라 非天이 庸釋有夏며 非天이 庸釋有殷이시니라』

 

『 아! 왕이 이렇게 말씀하였다. ‘너희 다방(多方)에게 가르침으로 고(告)하노라. 하늘이 하(夏)나라를 버리려는데 뜻을 둔 것이 아니며, 하늘이 은(殷)나라를 버리려는데 뜻을 둔 것이 아니다.』

 

『先言嗚呼而後言王若曰者는 唐孔氏曰 周公이 先自歎息而後에 稱王命以誥之也라 庸은 用也니 有心之謂라 釋은 去之也라 上文에 言夏殷之亡하고 因言非天有心於去夏요 亦非天有心於去殷이라하고 下文에 遂言乃惟桀紂自取亡滅也하니라』

『○ 呂氏曰 周公이 先自歎息하고 而始宣布成王之誥告하니 以見周公未嘗稱王也라 入此篇之始하여 周公曰, 王若曰이 複語相承하니 書無此體也요 至於此章하여 先嗚呼而後王若曰하니 書亦無此體也라 周公이 居聖人之變하시니 史官이 豫憂來世傳疑襲誤하여 蓋有竊之爲口實矣라 故로 於周公誥命終篇에 發新例二하여 著周公實未嘗稱王하니 所以別嫌明微而謹萬世之防也니라』

 

『 먼저 오호(嗚呼)를 말하고 뒤에 ‘왕약왈(王若曰)’을 말한 것은 당(唐)나라 공씨(孔氏)가 말하기를 “주공(周公)이 먼저 스스로 탄식한 뒤에 왕명을 칭하여 고한 것이다.” 하였다. 용(庸)은 씀이니, 마음을 둠을 이른다. 석(釋)은 버림이다. 상문(上文)에 하(夏)와 은(殷)의 망함을 말하고, 인하여 하늘이 하(夏)나라를 버리려는데 마음이 있었던 것이 아니며, 또한 하늘이 은(殷)나라를 버리려는데 마음이 있었던 것이 아님을 말씀하고, 하문(下文)에 마침내 바로 걸(桀)•주(紂)가 스스로 멸망을 취하였음을 말씀하였다.』

『 ○ 여씨(呂氏)가 말하였다. “주공(周公)이 먼저 스스로 탄식하고 비로소 성왕(成王)의 고고(誥告)를 선포하였으니, 이는 주공이 일찍이 왕을 칭하지 않았음을 나타낸 것이다. 이 편의 처음에 들어와 ‘주공왈(周公曰)’ ‘왕약왈(王若曰)’의 중복된 말이 서로 이어지니, 《서경(書經)》에는 이러한 체재가 없고, 이 장(章)에 이르러 ‘오호(嗚呼)’를 먼저 말하고 ‘왕약왈(王若曰)’을 뒤에 말하였으니, 《서경(書經)》에 또한 이러한 체재가 없다. 주공이 성인(聖人)의 변고에 처하시니, 사관(史官)이 미리 내세(來世)가 의심을 전하고 잘못됨을 이어서 이것을 훔쳐 구실로 삼는 자가 있을까 근심하였다. 그러므로 주공의 고명(誥命) 마지막 편에 새로운 예(例) 두 가지를 발하여, 주공이 일찍이 왕을 칭하지 않았음을 나타내었으니, 혐의를 분별하고 은미함을 밝혀서 만세(萬世)의 제방을 삼간 것이다.』

 

*서경 ; 주서 ; 다방 ; 제14장

 

▣ 제14장(第十四章)

 

『乃惟爾µ?이 以爾多方으로 大淫圖天之命하여 屑有辭하니라』

 

『 마침내 너희 군주가 너희 다방(多方)의 많음으로써 크게 음탕하여 하늘의 명(命)을 도모해서 자질구레한 말을 두었다.』

 

『紂以多方之富로 大肆淫칊하여 圖度『(탁)』天命하여 ?屑有辭하니 與多士言桀大淫칊有辭로 義同이라 殷之亡이 非自取乎아 以下二章推之컨대 此章之上에 當有缺文이라』

 

『 주왕(紂王)이 다방(多方)의 많음으로써 크게 음일(淫칊)하여 천명을 도모해서 쇄설(?屑)한 말을 두었으니, 〈다사(多士)〉에 “걸왕(桀王)이 크게 음일하여 말을 두었다.”는 것과 뜻이 같다. 은나라의 멸망은 자취(自取)한 것이 아니겠는가. 아래 두 장(章)을 가지고 미루어 보면 이 장(章)의 위에 마땅히 빠진 글이 있을 것이다.』

 

*서경 ; 주서 ; 다방 ; 제15장

 

▣ 제15장(第十五章)

 

『乃惟有夏 圖厥政호되 不集于享한대 天降時喪하사 有邦으로 間之하시니라』

 

『 바로 하(夏)나라가 정사를 도모하되 향유(享有)함에 모이지 못하자, 하늘이 이 망함을 내리시어 유방(有邦)『[은나라]』으로 대신하신 것이다.』

 

『集은 萃也라 享은 享有之享이라 桀圖其政호되 不集于享하고 而集于亡이라 故로 天降是喪亂하여 而쯸有殷代之하시니 夏之亡이 非自取乎아』

 

『 집(集)은 모임이다. 향(享)은 향유(享有)의 향(享)이다. 걸왕(桀王)이 정사를 도모하되 향유함에 모이지 못하고 망함에 모였다. 그러므로 하늘이 이 상란(喪亂)을 내려서 은(殷)나라로 하여금 대신하게 한 것이니, 하(夏)나라의 망함은 자취(自取)한 것이 아니겠는가.』

 

*서경 ; 주서 ; 다방 ; 제16장

 

▣ 제16장(第十六章)

 

『乃惟爾商後王이 逸厥逸하여 圖厥政호되 不줃烝한대 天惟降時喪하시니라』

 

『 너희 상(商)나라의 후왕(後王)이 그 편안함으로 편안하여 정사를 도모하되 깨끗하게 하지 못하고 나아가지 못하자, 하늘이 이 망함을 내리셨다.』

 

『줃은 潔이요 烝은 進也라 紂以逸居逸하여 淫쭚無度라 故로 其爲政이 不줃潔而穢惡하고 不烝進而怠惰한대 天以是降喪亡于殷하시니 殷之亡이 非自取乎아 此上三節은 皆應上文非天庸釋之語라』

 

『 견(줃)은 깨끗함이요, 증(烝)은 나아감이다. 주왕(紂王)은 편안함으로써 편안함에 거하여 음탕함에 빠져서 법도가 없었다. 그러므로 그 정사가 깨끗하지 아니하여 더럽고 나아가지 아니하여 게을리 하자, 하늘이 이 때문에 상망(喪亡)을 은(殷)나라에 내리신 것이니, 은(殷)나라의 망함은 자취(自取)한 것이 아니겠는가? 이 위의 세 절(節)은 다 상문(上文)에 ‘하늘이 버리려는데 뜻을 둔 것이 아니다’라는 말에 응한 것이다.』

 

*서경 ; 주서 ; 다방 ; 제17장

 

▣ 제17장(第十七章)

 

『惟聖이라도 罔念하면 作狂하고 惟狂이라도 克念하면 作聖하나니 天惟五年을 須暇之子孫하사 誕作民主어시늘 罔可念聽하니라』

 

『 성인(聖人)이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광인(狂人)이 되고, 광인(狂人)이라도 능히 생각하면 성인(聖人)이 되니, 하늘이 5년 동안 자손에게 기다리고 여가를 주어 크게 백성의 군주가 되게 하였으나 생각하고 들을 만함이 없었다.』

 

『聖은 通明之稱이라 言聖而罔念則爲狂矣요 愚而能念則爲聖矣라 紂雖昏愚나 亦有可改過遷善之理라 故로 天又未忍遽絶之하여 猶五年之久를 須待暇寬於紂하여 쨤其克念하여 大爲民主어시늘 而紂無可念可聽者라 五年은 必有指實而言이니 孔氏牽合歲月者는 非是라 或曰 狂而克念이면 果可爲聖乎아 曰 聖은 固未易爲也어니와 狂而克念이면 則作聖之功이 知所向方이니 太甲이 其庶幾矣인저 聖而罔念이면 果至於狂乎아 曰 聖은 固無所謂罔念也어니와 禹戒舜曰 無若丹朱傲하사 惟慢遊是好라하시니 一念之差 雖未至於狂이나 而狂之理는 亦在是矣라 此人心惟危니 聖人拳拳告戒가 豈無意哉아』

 

『 성(聖)은 통명(通明)함을 일컫는다. 성인(聖人)이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광인(狂人)이 되고 어리석은 자라도 능히 생각하면 성인(聖人)이 됨을 말한 것이다. 주왕(紂王)이 비록 혼우(昏愚)하나 또한 개과천선할 이치가 있었다. 그러므로 하늘이 또 차마 대번에 끊지 못하여 오히려 5년의 오램을 주왕(紂王)에게 기다리고 여가를 주어서 능히 생각하여 크게 백성의 군주가 되기를 바랬는데, 주왕(紂王)의 행실은 생각하고 들을 만한 것이 없었다. 5년은 반드시 실제를 가리켜 말한 것일 것이니, 공씨(孔氏)가 세월을 억지로 끌어다대어 부합시킨 것은 옳지 않다.』

『 혹자가 말하기를 “광인(狂人)이라도 능히 생각하면 과연 성인(聖人)이 될 수 있겠는가?” 하기에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성인(聖人)은 진실로 쉽게 될 수 없으나 광인(狂人)이라도 능히 생각하면 성인(聖人)이 되는 공부가 향방(向方)을 알 것이니, 태갑(太甲)이 이에 가까울 것이다.” 말하기를 “성인(聖人)이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과연 광인(狂人)에 이르는가?” 하기에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성인(聖人)은 진실로 이른바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 없으나 우왕(禹王)이 순제(舜帝)를 경계하기를 ‘단주(丹朱)처럼 오만하여 태만히 노는 것을 좋아하지 말라.’ 하였으니, 한 생각의 잘못이 비록 광인(狂人)에 이르지는 않으나 광인이 되는 이치는 또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인심(人心)은 위태로운 것이니, 성인(聖人)이 권권(拳拳)히 고하여 경계한 것이 어찌 뜻이 없겠는가.”』

 

*서경 ; 주서 ; 다방 ; 제18장

 

▣ 제18장(第十八章)

『天惟求爾多方하사 大動以威하여 開厥顧天이어시늘 惟爾多方이 罔堪顧之하니라』

 

『 하늘이 〈백성의 군주를〉 너희 다방(多方)에서 구하여 크게 위엄으로 동(動)하여 하늘의 돌아보는 명을 받을 자를 개발하였는데, 너희 다방(多方)은 하늘의 돌아보는 명을 감당하지 못하였다.』

 

『紂旣罔可念聽이라 天於是에 求民主於爾多方하사 大警動以?祥譴告之威하여 以開發其能受眷顧之命者어시늘 而爾多方之衆이 皆不足以堪眷顧之命也라』

 

『 주왕(紂王)이 이미 생각하고 들음이 없었다. 하늘이 이에 백성의 군주를 너희 다방(多方)에서 구하여 크게 재앙과 상서로 견고(譴告)하는 위엄을 가지고 경동(警動)해서 하늘의 돌아보는 명을 받을 자를 개발하였는데, 너희 다방(多方)의 무리가 다 족히 하늘의 돌아보는 명을 감당하지 못하였다.』

 

*서경 ; 주서 ; 다방 ; 제19장

 

▣ 제19장(第十九章)

 

『惟我周王이 靈承于旅하사 克堪用德하사 惟典神天이실새 天惟式敎我用休하사 簡퓒殷命하사 尹爾多方하시니라』

 

『 우리 주왕(周王)이 무리를 잘 이어 능히 덕(德)을 이겨내어 써서 신(神)과 하늘을 주장하시기에 하늘이 우리를 가르치시되 아름다움으로써 하여, 간택해서 은(殷)나라의 명(命)을 주시어 너희 다방(多方)을 바로잡게 하셨다.』

 

『典은 主요 式은 用也라 克堪者는 能勝之謂也라 德å4如毛하나 民鮮克擧之하니 言德擧者를 莫能勝也라 文武善承其衆하여 克堪用德하시니 是誠可以爲神天之主矣라 故로 天式敎文武하사되 用以休美하여 簡擇퓒付殷命하여 以正爾多方也라 呂氏曰 式敎用休者는 如之何而敎之也오 文武旣得乎天하시니 天德日新하여 左右逢原하여 其思也若或起之하고 其行也若或翼之하시니 乃天之所以敎而用以昌大休明者也요 非諄諄然而敎之也라 此章은 深論天下向者天命未定하여 眷求民主之時에 能者則得之하니 孰有촀汝者리오 乃無一能當天之眷이라가 今天이 旣命我周而定于一矣어늘 爾猶洶洶不靖은 欲何爲耶아 明指天命하여 而ß4服四海姦雄之心者 莫切於是하니라』

 

『 전(典)은 주장함이요, 식(式)은 씀이다. 극감(克堪)은 능히 이겨냄을 이른다. 덕(德)은 가볍기가 털과 같으나 백성들이 능히 행하는 이가 적으니, 덕을 행하는 자를 이겨낼 수 없음을 말한 것이다. 문왕(文王)과 무왕(武王)은 그 무리를 잘 이어서 능히 덕(德)을 이겨 쓰시니, 이는 진실로 신(神)과 하늘의 주장이 될 수 있었다. 그러므로 하늘이 써 문왕(文王)•무왕(武王)을 가르치시되 아름다움으로써 하여, 간택해서 은나라의 명을 맡겨주어 너희 다방(多方)을 바로잡게 한 것이다.』

『 여씨(呂氏)가 말하였다. “가르치되 아름다움으로 하였다는 것은 어떻게 하여 가르친 것인가? 문왕(文王)•무왕(武王)이 이미 하늘에 명을 얻으니, 천덕(天德)이 날로 새로워져 좌우에서 근원을 만나 생각함에 혹 일으켜 주는 듯하고 행함에 혹 도와주는 듯하였으니, 이는 하늘이 가르쳐 주어서 창대(昌大)하고 휴명(休明)하게 한 것이요, 순순연(諄諄然)히 가르쳐 준 것이 아니다.”』

『 이 장(章)은 천하가 지난번에 천명이 아직 정해지지 않아서 백성의 군주를 돌아보아 구할 때에 능한 자이면 얻을 수 있었으니, 어찌 너를 막는 자가 있었겠는가. 마침내 한 사람도 하늘의 돌아봄을 감당하는 자가 없다가 이제 하늘이 이미 우리 주(周)나라에게 명하여 하나로 정해졌는데 너희들이 오히려 흉흉하여 안정되지 않음은 무엇을 하고자 하는 것인가를 깊이 논한 것이다. 천명(天命)을 분명히 가리켜서 사해(四海)의 간웅(姦雄)들의 마음을 두렵게 하고 복종시킴이 이보다 간절한 것이 없다.』

 

*서경 ; 주서 ; 다방 ; 제20장

 

▣ 제20장(第二十章)

 

『今我는 曷敢多誥리오 我惟大降爾四國民命하니라』

 

『 이제 내가 어찌 감히 많이 가르치겠는가. 나는 크게 죄를 강등하여 너희 사국의 백성들의 목숨을 살려주었다.』

 

『言今我何敢如此多誥리오 我惟大降宥爾四國民命이라하니 擧其宥過之恩하여 而責其遷善之實也라』

 

『 이제 내가 어찌 감히 이와 같이 많이 가르치겠는가. 나는 오직 크게 죄를 강등하여 너희 사국의 백성들의 목숨을 용서했다 하였으니, 허물을 용서한 은혜를 들어 개과천선의 실제를 책한 것이다.』

 

*서경 ; 주서 ; 다방 ; 제21장

 

▣ 제21장(第二十一章)

 

『爾는 曷不´0裕之于爾多方고 爾는 曷不夾介乂我周王享天之命고 今爾尙宅爾宅하며 °[爾田하나니 爾는 曷不惠王하여 熙天之命고』

 

『 너희는 어찌 너희 다방(多方)에게 성실하고 관유(寬裕)하지 않는가. 너희는 어찌 우리 주왕(周王)이 천명을 누리는 것을 협조하고 돕지 않는가. 지금 너희가 아직도 너희 집에 거주하고 너희 토지를 경작하니, 너희는 어찌 왕실에 순종하여 천명을 넓히지 않는가.』

 

『夾은 夾輔之夾이요 介는 賓介之介라 爾何不誠信寬裕於爾之多方乎아 爾何不夾輔介助我周王享天之命乎아 爾之叛亂을 據法定罪하면 則°9其宅, 收其田이 可也어늘 今爾猶得居爾宅하고 耕爾田하니 爾何不順我王室하여 各守爾典하여 以廣天命乎아 此三節은 責其何不如此也라』

 

『 협(夾)은 협보(夾輔)의 협(夾)이고, 개(介)는 빈개(賓介)『[부이(副貳)]』의 개(介)이다. 너희는 어찌 너희 다방(多方)에게 성신(誠信)하고 관유(寬裕)하지 않는가. 너희는 어찌 우리 주왕(周王)이 천명을 누리는 것을 협보(夾輔)하고 개조(介助)하지 않는가. 너희의 반란을 법에 의거하여 죄를 단정하면 그 집에 못을 파고 토지를 환수하는 것이 옳은데, 이제 너희가 아직도 너희 집에 거주하고 너희 토지를 경작하니, 너희는 어찌 우리 왕실에 순종하여 각각 너희 법을 지켜서 천명을 넓히지 않는가. 이 세 절(節)은 어찌하여 이와 같이 하지 않느냐고 책한 것이다.』

 

*서경 ; 주서 ; 다방 ; 제22장

 

▣ 제22장(第二十二章)

 

『爾乃迪屢不靜하나니 爾心未愛아 爾乃不大宅天命가 爾乃屑播天命가 爾乃自作不典하여 圖´0于正가』

 

『 너희가 여러 번 안정하지 못함을 따르니, 너희 마음이 사랑하지 않는가. 너희는 천명을 크게 편안히 여기지 않는가. 너희는 천명을 하찮게 버리는가. 너희는 스스로 부전(不典)『[불법(不法)]』을 저지르면서 바름에 믿음을 받기를 도모하는가.』

 

『爾乃屢蹈不靜하여 自取亡滅하니 爾心이 其未知所以自愛耶아 爾乃大不安天命耶아 爾乃輕棄天命耶아 爾乃自爲不法하여 欲圖見信于正者를 以爲當然耶아 此四節은 責其不可如此也라』

 

『 네가 여러 번 불정(不靜)을 따라 스스로 멸망을 취하니, 너희 마음이 스스로 사랑하는 바를 알지 못하는가. 너희는 스스로 천명을 크게 편안히 여기지 않는가. 너희는 천명을 가볍게 버리는가. 너희는 스스로 불법을 저지르면서 바름에 믿음을 받기를 도모하고자 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여기는가. 이 네 절(節)은 이와 같이 해서는 안됨을 책한 것이다.』

 

*서경 ; 주서 ; 다방 ; 제23장

 

▣ 제23장(第二十三章)

 

『我惟時其敎告之하며 我惟時其戰要囚之호되 至于再하며 至于三하니 乃有不用我의 降爾命하면 我乃其大罰튷之하리니 非我有周 秉德不康寧이라 乃惟爾自速辜니라』

 

『 내가 이렇게 가르쳐 고하며, 내가 이렇게 두려워하여 죄수를 결단하되 재심(再審)에 이르고 삼심(三審)에 이르니, 너희가 나의 목숨을 내려줌을 따르지 않으면 내 크게 형벌하여 죽일 것이니, 우리 주(周)나라가 덕을 잡음이 강녕(康寧)『[안정]』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바로 너희 스스로 죄를 부르는 것이다.’』

 

『我惟是敎告而誨諭之하고 我惟是戒懼而要囚之호되 今至于再, 至于三矣로니 爾不用我降宥爾命하고 而猶»7於叛亂反覆하면 我乃其大罰튷殺之하리니 非我有周 持德不安靜이라 乃惟爾自爲凶逆하여 以速其罪耳니라』

 

『 내가 이렇게 가르치고 타이르며, 내가 이렇게 계구(戒懼)하여 죄수를 결단하되 이제 재심에 이르고 삼심에 이르니, 내가 죄를 강등하여 너희 목숨을 용서함을 따르지 않고 오히려 반란과 반복을 익히면 내 크게 벌하여 죽일 것이니, 우리 주(周)나라가 덕(德)을 잡음이 안정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바로 너희 스스로 흉역(凶逆)을 저질러서 그 죄를 부르는 것이다.』

 

*서경 ; 주서 ; 다방 ; 제24장

 

▣ 제24장(第二十四章)

 

『王曰 嗚呼라 猷라 告爾有方多士와 쨑殷多士하노라 今爾奔走臣我監이 五祀어니라』

 

『 왕(王)이 말씀하였다. “아! 너희 유방(有方)의 많은 선비와 은(殷)나라의 많은 선비에게 고하노라. 이제 너희가 분주히 우리 감(監)에게 신하노릇한 지가 5사(祀)『[5년]』이다.』

 

『監은 監洛邑之遷民者也라 猶諸侯之分民하여 有君道焉하니 所以謂之臣我監也라 言商士遷洛하여 奔走臣服我監이 於今五年矣라 不曰年而曰祀者는 因商俗而言也라 又按成周旣成에 而成王卽政하고 成王卽政에 而商奄繼叛하니 事皆相因하여 °.一二年耳어늘 今言五祀하니 則商民之遷이 固在作洛之前矣 尤爲明驗이니라』

 

『 감(監)은 낙읍(洛邑)에 옮긴 백성을 감독하는 자이다. 제후가 백성을 나누어 다스리는 것과 같아서 군주의 도(道)가 있으니, 이 때문에 우리 감(監)에게 신하 노릇하였다고 말한 것이다. 상(商)나라 선비가 낙읍으로 옮겨와서 분주히 우리 감(監)에게 신하로 복종한 지가 지금 5년이 되었다고 말한 것이다. 연(年)이라 말하지 않고 사(祀)라고 말한 것은 상(商)나라의 풍속을 따라서 말한 것이다.』

『 또 살펴보건대 성주(成周)가 이미 이루어지자 성왕(成王)이 정사에 나아갔고, 성왕(成王)이 정사에 나아가자 상엄(商奄)이 뒤이어 반란하였으니, 일이 모두 서로 이어져서 겨우 1∼2년 사이인데, 이제 5사(祀)라고 말하였으니, 그렇다면 상(商)나라 백성을 옮긴 것이 진실로 낙읍을 짓기 이전에 있었음이 더욱 분명한 증거가 된다.』

 

*서경 ; 주서 ; 다방 ; 제25장

 

▣ 제25장(第二十五章)

 

『越惟有胥伯小大多正아 爾罔不克쵐이어다』

 

『 서(胥)와 백(伯)과 대소(大小)의 많은 정(正)들아! 너희들은 일을 잘하지 않음이 없도록 할지어다.』

 

『쵐은 事也라 『周官은 多以胥以伯以正爲名주:주관다이서이백이정위명』하니 胥伯小大衆多之正은 蓋殷多士授職於洛하여 共長治遷民者也라 其奔走臣我監이 亦久矣니 宜相體悉하여 竭力其職이요 無或反側偸惰而不能事也라』

 

『 얼(쵐)은 일이다. 주(周)나라 관직은 서(胥)와 백(伯)과 정(正)으로 이름을 삼은 것이 많으니, 서(胥)와 백(伯)과 대소(大小)의 많은 정(正)은 은(殷)나라의 많은 선비로 낙읍(洛邑)에서 직책을 주어 옮겨온 백성들을 함께 다스리는 자이다. 분주히 우리 감(監)에게 신하노릇한 지가 또한 오래이니, 마땅히 서로 체득하고 알아서 그 직책에 힘을 다할 것이요, 혹시라도 반측하고 게을리 하여 일을 잘하지 않음이 없어야 할 것이다.』

 

*서경 ; 주서 ; 다방 ; 제26장

 

▣ 제26장(第二十六章)

 

『自作不和하니 爾惟和哉어다 爾室이 不睦하니 爾惟和哉어다 爾邑克明이라사 爾惟克勤乃事니라』

 

『 스스로 불화(不和)를 저지르니, 너희가 화(和)하게 할지어다. 너희 왕실이 화목하지 못하니, 너희가 화목하게 할지어다. 너희 고을이 능히 밝아야 너희가 능히 너희 일을 부지런히 할 것이다.』

 

『心不安靜이면 則身不和順矣요 身不安靜이면 則家不和順矣라 言爾惟和哉者는 所以勸勉之也라 和其身, 睦其家而後에 能協于其邑이요 驩然有恩以相愛하고 粲然有文以相接하여 爾邑克明이라야 始爲不負其職而可謂克勤乃事矣라 前旣戒以罔不克쵐이라 故로 以克勤乃事로 期之也라』

 

『 마음이 안정되지 못하면 몸이 화순(和順)하지 못하고, 몸이 안정하지 못하면 집이 화순(和順)하지 못하다. 너희가 화목하게 하라고 말한 것은 권면한 것이다. 그 몸을 화하게 하고 그 집안을 화목하게 한 뒤에야 그 고을을 화합하게 할 수 있으며, 환연(驩然)히 은혜로써 서로 사랑하고 찬연(粲然)히 문채로써 서로 접함이 있어 너희 고을이 능히 밝아야 비로소 그 직책을 저버리지 아니하여 너희 일을 부지런히 한다고 이를 수 있는 것이다. 앞에 이미 일을 잘하지 않음이 없어야 한다고 경계하였으므로 너희 일을 부지런히 하라는 것으로 기대한 것이다.』

 

*서경 ; 주서 ; 다방 ; 제27장

 

▣ 제27장(第二十七章)

 

『爾尙不忌于凶德하여 亦則以穆穆으로 在乃位하며 克閱于乃邑하여 謀介하라』

 

『 너희는 부디 흉덕(凶德)을 두려워하지 아니하여 또한 목목(穆穆)함으로써 너희 지위에 거하며, 너희 고을에서 잘 간열(簡閱)하여 도와줄 사람을 도모하도록 하라.』

 

『忌는 畏也라 穆穆은 和敬貌라 頑民이 誠可畏矣나 然如上文所言爾多士 庶幾不至畏忌頑民凶德하여 亦則以穆穆和敬으로 端處爾位하여 以潛消其悍逆悖戾之氣하고 又能簡閱爾邑之賢者하여 以謀其助하면 則民之頑者 且革而化矣리니 尙何可畏之有哉아 成王이 誘掖商士之善하여 以化服商民之惡하니 其轉移感動之機가 微矣哉인저』

 

『 기(忌)는 두려워함이다. 목목(穆穆)은 화하고 공경하는 모양이다. 완악한 백성은 진실로 두려울 만하나 상문(上文)에 말한 바와 같이 너희의 많은 선비들이 거의 완민(頑民)의 흉덕을 두려워함에 이르지 아니하여, 또한 목목(穆穆)히 화경(和敬)함으로써 너희 지위에 단정히 처해서 한역(悍逆)하고 패려(悖戾)한 기운을 은근히 사라지게 하고, 또 너희 고을의 현자(賢者)들을 잘 간열(簡閱)하여 도와줄 사람을 도모하면 백성 중에 완악한 자들이 장차 고쳐서 교화될 것이니, 그러고도 어찌 두려워할 것이 있겠는가. 성왕(成王)이 상(商)나라 선비 중에 선(善)한 자들을 유액(誘掖)하여 상(商)나라 백성 중에 악(惡)한 자들을 교화시키니, 전이(轉移)하고 감동하는 기틀이 은미하다.』

 

*서경 ; 주서 ; 다방 ; 제28장

 

▣ 제28장(第二十八章)

 

『爾乃自時洛邑으로 尙永力°[爾田하면 天惟퓒矜爾하시며 我有周도 惟其大介賚爾하여 迪簡在王庭호리니 尙爾事어다 有服이 在大僚니라』

 

『 너희가 이 낙읍(洛邑)으로부터 부디 길이 힘써서 너희 토지(土地)를 경작하면 하늘이 너희에게 주고 가엾게 여기실 것이며, 우리 주(周)나라도 크게 너희를 믿고 가엾게 여겨 주어서 계적(啓迪)하고 간발(簡拔)하여 왕정(王庭)에 있게 할 것이니, 부디 너희의 일을 할지어다. 일함이 대료(大僚)『[대관(大官)]』에 있을 것이다.”』

 

『爾乃自時洛邑으로 庶幾可以保有其業하여 力°[爾田하면 天亦將퓒予矜憐於爾요 我有周亦將大介助賚錫於爾하여 啓迪簡拔하여 置之王朝矣리니 其庶幾勉爾之事어다 有服在大僚가 不難至也라 多士篇에 商民이 嘗以夏迪簡在王庭, 有服在百僚로 爲言이라 故로 此因以勸쪵之也라』

 

『 너희가 이 낙읍(洛邑)으로부터 거의 생업(生業)을 보유하여 힘써 너희 토지를 경작하면 하늘이 장차 너희에게 주고 가엾게 여길 것이요, 우리 주(周)나라 역시 장차 너희를 크게 돕고 주어서 계적(啓迪)하고 간발(簡拔)하여 왕조(王朝)에 둘 것이니, 부디 너희 일을 힘쓸지어다. 일함이 대료(大僚)에 있는 것이 이르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다사(多士)〉에 상(商)나라 백성들이 일찍이 “하(夏)나라의 신하들이 계도하고 간발하여 왕(王)의 조정에 있었으며, 일하는 자들이 백료(百僚)에 있었다.”고 말하였으므로 여기에서는 인하여 권려(勸쪵)『[권면]』한 것이다.』

 

*서경 ; 주서 ; 다방 ; 제29장

 

▣ 제29장(第二十九章)

 

『王曰 嗚呼라 多士아 爾不克勸´0我命하면 爾亦則惟不克享이라 凡民惟曰不享이라하리니 爾乃惟逸惟頗하여 大遠王命하면 則惟爾多『(方)』『[士]』 探天之威라 我則致天之罰하여 離캨爾土호리라』

 

『 왕이 말씀하였다. “아! 많은 선비들아. 너희가 능히 나의 명을 권면하고 믿지 않으면 너희가 또한 능히 윗사람을 받들지 못하는 것이므로 모든 백성들이 굳이 윗사람을 받들지 않아도 된다고 할 것이니, 너희가 마침내 안일하고 편벽되어 크게 왕명을 멀리하면 너희 많은 선비들이 하늘의 위엄을 취하는 것이다. 나는 하늘의 벌을 이루어서 너희가 살던 땅을 떠나 멀리 가게 할 것이다.”』

 

『誥告將終일새 乃歎息言 爾多士如不能相勸信我之誥命하면 爾亦則惟不能享上이라 凡爾之民이 亦惟曰上不必享矣라하리니 爾乃放逸頗僻하여 大違我命하면 則惟爾多士 自取天威라 我亦致天之罰하여 播流蕩析하여 쯸爾離遠爾土矣리니 爾雖欲宅爾宅, °[爾田이나 尙可得哉아 多方은 疑當作多士라 上章엔 旣勸之以休하고 此章則董之以威하니 商民이 不惟有所慕而不敢違越이라 且有所畏而不敢違越矣리라』

 

『 고고(誥告)가 장차 끝나므로 마침내 탄식하고 말씀하기를 “너희 많은 선비들이 만일 나의 고명(誥命)을 서로 권면하고 믿지 않으면 너희가 또한 윗사람을 잘 받들지 못하는 것이므로, 무릇 너희 백성들도 또한 말하기를 ‘윗사람을 굳이 받들 것이 없다.’고 할 것이니, 너희가 방일(放逸)하고 파벽(頗僻)하여 나의 명령을 크게 어기면 너희 많은 선비가 스스로 하늘의 위엄을 취하는 것이다. 내가 또한 하늘의 벌을 이루어서 파류(播流)하고 탕석(蕩析)하여 너희로 하여금 너희가 살던 땅을 떠나 멀리 가게 할 것이니, 너희가 비록 너희 집에 거주하고 너희 토지를 경작하고자 하나 오히려 될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다방(多方)’은 의심컨대 마땅히 ‘다사(多士)’가 되어야 할 듯하다. 상장(上章)에서는 이미 권면하기를 아름다움으로써 하였고, 이 장(章)에서는 책하기를 위엄으로써 하였으니, 상(商)나라 백성들이 오직 사모하는 바가 있어 감히 어기지 못할 뿐만 아니라, 또 두려워하는 바가 있어 감히 어기지 못할 것이다.』

 

*서경 ; 주서 ; 다방 ; 제30장

 

▣ 제30장(第三十章)

 

『王曰 我不惟多誥라 我惟祗告爾命이니라』

 

『 왕이 말씀하였다. “내가 많이 고하려는 것이 아니라, 나는 너희에게 명령을 공경히 고할 뿐이다.”』

 

『我豈若是多言哉아 我惟敬告爾以上文勸勉之命而已라』

 

『 내 어찌 이와 같이 말을 많이 하려는 것이겠는가. 나는 너희에게 상문(上文)에 권면하는 명령을 공경히 고할 뿐이다.』

 

*서경 ; 주서 ; 다방 ; 제31장

 

▣ 제31장(第三十一章)

 

『又曰 時惟爾初니 不克敬于和하면 則無我怨하리라』

 

『 또 말씀하였다. “이는 너희가 처음 출발하는 것이니, 화(和)함에 공경하지 않으면 나를 원망하지 못할 것이다.”』

 

『與之更始라 故로 曰時惟爾初也라 爾民至此에도 苟又不能敬于和하여 猶復乖亂하면 則自底誅戮이니 毋我怨尤矣라 開其爲善하고 禁其爲惡하니 周家忠厚之意를 於是篇에 尤爲可見이니라』

『○ 呂氏曰 又曰二字는 所以形容周公之짏짏斯民하여 會已畢而猶有餘情하고 誥已終而猶有餘語하니 顧眄之光이 猶曄然溢於簡冊也니라』

 

『 더불어 다시 시작하므로 “이는 너희가 처음 출발하는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너희 백성들이 이에 이르러서도 만일 화함에 공경하지 아니하여 아직도 다시 괴란(乖亂)하면 스스로 주륙(誅戮)에 이르는 것이니, 나를 원망하지 못할 것이다. 선(善)을 하도록 열어주고 악(惡)을 함을 금하였으니, 주(周)나라의 충후(忠厚)한 뜻을 이 편에서 더욱 볼 수 있다.』

『 ○ 여씨(呂氏)가 말하였다. ‘우왈(又曰)’ 두 글자는 주공(周公)이 이 백성들을 연연해하여, 모임이 이미 끝났는데도 오히려 남은 정이 있고 가르침이 이미 끝났는데도 오히려 남은 말이 있음을 형용한 것이니, 돌아보는 빛이 아직도 간책(簡冊)에 분명히 넘쳐 흐른다.』


 




*서경 ; 주서 ; 입정(立政)

 

▣ 입정(立政)

 

『吳氏曰 此書는 戒成王以任用賢才之道니 而其旨意는 則又上戒成王專擇百官有司之長이니 如所謂常伯, 常任, 準人

等云者라 蓋古者에 外之諸侯 一卿은 已命於君하고 內之卿大夫는 則亦自擇其屬하니 如周公以蔡仲爲卿士하고 伯¢(謹

簡乃僚之類라 其長旣賢이면 則其所擧用이 無不賢者矣니라 葛氏曰 誥體也니 今文古文皆有하니라』

 

『 오씨(吳氏)가 말하였다. “이 글은 성왕(成王)에게 현재(賢才)를 임용하는 도를 경계한 것이니, 그 뜻은 또 위로

성왕(成王)에게 백관(百官)과 유사(有司)의 장(長)을 오로지 선택할 것을 경계한 것이니, 이른바 상백(常伯)

•상임(常任)•준인(準人) 등과 같은 것이다. 옛날에 밖의 제후(諸侯)는 한 경(卿)은 군주에게서 임명받고 안『[천자국

(天子國)]』의 경대부(卿大夫)는 또한 스스로 그 관속(官屬)을 가려 뽑았으니, 주공(周公)이 채중(蔡仲)을 경사(卿士)

로 삼고 백경(伯¢()이 관료를 삼가 간발한 것과 같은 따위이다. 그 장(長)이 이미 어질면 들어 쓰는 바가 현자가 아님이

없을 것이다.”』

 

『 갈씨(葛氏)는 “고체(誥體)이다.” 하였으니, 금문(今文)과 고문(古文)에 모두 있다.』

『○ 서경 ; 주서 ; 입정 ; 제1장+1』

『○ 서경 ; 주서 ; 입정 ; 제2장+2』

『○ 서경 ; 주서 ; 입정 ; 제3장+3』

『○ 서경 ; 주서 ; 입정 ; 제4장+4』

『○ 서경 ; 주서 ; 입정 ; 제5장+5』

『○ 서경 ; 주서 ; 입정 ; 제6장+6』

『○ 서경 ; 주서 ; 입정 ; 제7장+7』

『○ 서경 ; 주서 ; 입정 ; 제8장+8』

『○ 서경 ; 주서 ; 입정 ; 제9장+9』

『○ 서경 ; 주서 ; 입정 ; 제10장+10』

『○ 서경 ; 주서 ; 입정 ; 제11장+11』

『○ 서경 ; 주서 ; 입정 ; 제12장+12』

『○ 서경 ; 주서 ; 입정 ; 제13장+13』

『○ 서경 ; 주서 ; 입정 ; 제14장+14』

『○ 서경 ; 주서 ; 입정 ; 제15장+15』

『○ 서경 ; 주서 ; 입정 ; 제16장+16』

『○ 서경 ; 주서 ; 입정 ; 제17장+17』

『○ 서경 ; 주서 ; 입정 ; 제18장+18』

『○ 서경 ; 주서 ; 입정 ; 제19장+19』

『○ 서경 ; 주서 ; 입정 ; 제20장+20』

『○ 서경 ; 주서 ; 입정 ; 제21장+21』

『○ 서경 ; 주서 ; 입정 ; 제22장+22』

『○ 서경 ; 주서 ; 입정 ; 제23장+23』

『○ 서경 ; 주서 ; 입정 ; 제24장+24』

 

*서경 ; 주서 ; 입정 ; 제1장

 

▣ 제1장(第一章)

 

『周公若曰 拜手稽首하여 告嗣天子王矣로이다 用咸戒于王曰 王左右는 常伯과 常任과 準人과 綴『(추)』衣와 虎賁

이니이다 周公曰 嗚呼라 休玆나 知恤이 鮮哉니이다』

 

『 주공(周公)이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배수계수(拜手稽首)『[손에 절하고 머리를 조아림]』하여 사천자(嗣天子)

인 왕께 아뢰옵니다.” 〈여러 관원들이〉 함께 왕에게 경계하기를 “왕의 좌우에 있는 신하는 상백(常伯)과 상임(常任)

과 준인(準人)과 철의(綴衣)와 호분(虎賁)입니다.” 하였다. 주공(周公)이 말씀하였다. “아! 이 관직이 아름다우나 근심

할 줄을 아는 자가 적습니다.』

 

『此篇은 周公所作而記之者周史也라 故稱若曰이라 言周公帥群臣하여 進戒于王하여 贊之曰 拜手稽首하여 告嗣天子

王矣라하니 群臣이 用皆進戒曰 王左右之臣은 有牧民之長曰常伯이요 有任事之公卿曰常任이요 有守法之有司曰準人

이며 三事之外에 掌服器者曰綴衣요 『執射御者曰虎賁주:집사어자왈호분』이니 皆任用之所當謹者라 周公이 於是에

歎息言曰 美矣此官이나 然知憂恤者 鮮矣라하시니 言五等官職之美나 而知憂其得人者 少也라 吳氏曰 綴衣, 虎賁은

近臣之長也니라 葛氏曰 綴衣는 周禮司服之類요 虎賁은 周禮之虎賁氏也라』

 

『 이 편(篇)은 주공(周公)이 지은 것인데 기록한 것은 주(周)나라 사관(史官)이므로 ‘약왈(若曰)’이라고 칭한 것이다.

주공(周公)이 군신(群臣)들을 거느리고 왕에게 경계를 올려 돕기를 “배수계수(拜手稽首)하여 사천자(嗣天子)인 왕께

고합니다.” 하니, 군신(群臣)들이 모두 경계를 올려 왕의 좌우에 있는 신하는 백성을 기르는 장(長)으로 상백(常伯)이

있고, 일을 맡은 공경(公卿)으로 상임(常任)이 있고, 법을 지키는 유사(有司)로 준인(準人)이 있으며,

삼사(三事)의 밖에 의복과 기물을 관장하는 자는 철의(綴衣)이고, 활 쏘고 말 모는 것을 관장하는 자는 호분(虎賁)

이니, 모두 임용함에 마땅히 삼가야 할 자들이라고 한 것이다. 주공(周公)이 이에 탄식하고 말씀하기를 “이 관직이

아름다우나 근심할 줄을 아는 자가 적다.” 하였으니, 5등(等)의 관직이 아름다우나 그 인물을 얻음을 근심할 줄을 아는

자가 적다고 한 것이다.』

 

『 오씨(吳氏)가 말하였다. “철의(綴衣)와 호분(虎賁)은 근신(近臣)의 장(長)이다.”』

『 갈씨(葛氏)가 말하였다. “철의(綴衣)는 《주례(周禮)》의 사복(司服) 따위이고, 호분(虎賁)은 《주례(周禮)》의

호분씨(虎賁氏)이다.”』

 

*서경 ; 주서 ; 입정 ; 제2장

 

▣ 제2장(第二章)

 

『古之人이 迪하니 惟有夏乃有室大競하여 츖俊尊上帝하니 迪知´0恂于九德之行하여 乃敢告敎厥后曰 拜手稽首后矣

로이다 曰 宅乃事하며 宅乃牧하며 宅乃準이라사 玆惟后矣니이다 謀面하여 用丕訓德이라하여 則乃宅人하면 玆乃

三宅에 無義民하리이다』

 

『 옛사람들은 이 도(道)를 잘 행하였으니, 하(夏)나라가 왕실이 크게 강하자 준걸스러운 자들을 불러 상제(上帝)를

높이니, 구덕(九德)의 행실을 실천하여 알고 참으로 믿고서 마침내 감히 그 임금에게 고하고 가르치기를 ‘임금님께

배수계수(拜手稽首)합니다. 당신의 사(事)를 거하게 하고 당신의 목(牧)을 거하게 하고 당신의 준(準)을 거하게

하여야 임금이 될 수 있습니다. 얼굴만 보고 도모하여 덕(德)에 크게 순하다고 여겨서 마침내 사람을 거하게 하면 이

삼택(三宅)에 의민(義民)『[현자(賢者)]』이 없을 것입니다.’ 하였습니다.』

『古之人이 有行此道者하니 惟有夏之君이 當王室大强之時하여 而求賢以爲事天之實也라 迪知者는 蹈知而非苟知也요

´0恂者는 誠信而非輕信也라 言夏之臣이 蹈知誠信于九德之行하고 乃敢告敎其君이라 曰拜手稽首后矣云者는 致敬以尊

其爲君之名也요 曰宅乃事, 宅乃牧, 宅乃準, 玆惟后矣云者는 致告以敍其爲君之實也라 玆者는 此也니 言如此而後可以

爲君也니 卽皐陶與禹言九德之事라 謀面者는 謀人之面貌也라 言非迪知´0恂于九德之行이요 而徒謀之面貌하여 用以爲

大順於德이라하여 乃宅而任之면 如此則三宅之人이 豈復有賢者乎아 蘇氏曰 事는 則向所謂常任也요 牧은 則向所謂常

伯也요 準은 則向所謂準人也라 一篇之中에 所論宅俊者 參差『(치)』不齊나 然大要는 不出是三者요 其餘는 則皆小臣

百執事也라 吳氏曰 古者에 凡以善言語人을 皆謂之敎니 不必自上敎下而後謂之敎也니라』

 

『 옛사람이 이 도를 행한 자가 있으니, 유하(有夏)의 군주가 왕실이 크게 강할 때를 당하여 현자(賢者)를 구해서 하늘

을 섬기는 실제로 삼았다. 적지(迪知)는 실천하여 알고 구차히 아는 것이 아니며, 침순(´0恂)은 진실로 믿고 가벼이

믿는 것이 아니다. 하(夏)나라의 신하들이 구덕(九德)의 행실을 실천하여 알고 참으로 믿고서 감히 그 군주에게

고하고 가르쳤음을 말한 것이다. 임금님께 배수계수(拜手稽首)하였다고 말한 것은 공경을 지극히 하여 군주가 된

명칭을 높인 것이며, 네 사(事)를 거하게 하고 네 목(牧)을 거하게 하고 네 준(準)을 거하게 하여야 임금님이 될 수

있다고 말한 것은 고함을 지극히 하여 군주가 된 실제를 서술한 것이다.

자(玆)는 이것이니, 이와 같이 한 뒤에야 군주가 될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니, 바로 고요(皐陶)와 우(禹)와 더불어 말한

구덕(九德)의 일이다. 모면(謀面)은 사람의 얼굴과 모양만 보고 도모하는 것이다. 구덕(九德)의 행실을 실천하여 알고

참으로 믿지 않고 한갓 얼굴과 모양만 보고 도모하여 덕에 크게 순하다고 여겨서 마침내 거하게 하여 임명하면 이와

같이 할 경우 삼택(三宅)의 사람이 어찌 다시 현자가 있겠는가.』

『 소씨(蘇氏)가 말하였다. “사(事)는 위에서 말한 상임(常任)이고, 목(牧)은 위에서 말한 상백(常伯)이고,

준(準)은 위에서 말한 준인(準人)이다. 한 편의 가운데에 논한 택(宅)과 준(俊)이 어긋나서 똑같지 않으나 그러나 대요

(大要)는 이 세 가지에 벗어나지 않고 그 나머지는 모두 작은 신하로 백집사(百執事)이다.』

『 오씨(吳氏)가 말하였다. “옛날에 무릇 선한 말로 사람을 가르침을 다 교(敎)라 하였으니, 반드시 위에서 아래를

가르친 뒤에야 교(敎)라고 하지는 않았다.”』

 

*서경 ; 주서 ; 입정 ; 제3장

 

▣ 제3장(第三章)

 

『桀德은 惟乃弗作往任하고 是惟暴德이라 罔後하니이다』

 

『 걸왕(桀王)의 악덕(惡德)은 옛날에 임용한 것을 따르지 않고 포악한 덕을 가진 자를 임용하였기 때문에 뒤가

없습니다.』

 

『夏桀惡德은 弗作往昔先王任用三宅하고 而所任者乃惟暴德之人이라 故로 桀以喪亡無後라』

 

『 하걸(夏桀)의 악덕은 왕석(往昔)에 선왕(先王)이 삼택(三宅)을 임용한 것을 따르지 않고, 임명한 자가 바로 포악한

덕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걸왕(桀王)이 상망(喪亡)하여 뒤가 없는 것이다.』

 

*서경 ; 주서 ; 입정 ; 제4장

 

▣ 제4장(第四章)

 

『亦越成湯이 陟丕釐上帝之耿命하심은『(하산든)』 乃用三有宅이 克卽宅하며 曰三有俊이 克卽俊하여 嚴惟丕式하여

克用三宅三俊하심으로『(하산들로)』 其在商邑하여는 用協于厥邑하며 其在四方하여는 『用丕式見德주:용비식견덕』

하니이다』

 

『 또한 및 성탕(成湯)이 올라가 천자가 되시어 상제(上帝)의 밝은 명을 크게 다스린 것은 등용한 삼유택(三有宅)이

능히 택(宅)『[지위]』에 나아가며 이른바 삼유준(三有俊)이 능히 준(俊)『[덕]』에 나아가서 엄숙히 생각하고 크게

본받아 삼택(三宅)과 삼준(三俊)을 능히 등용하였으므로 상(商)나라 도읍에서는 그 읍(邑)에 화합하였으며, 사방에

서는 크게 본받아 덕을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亦越者는 繼前之辭也라 耿은 光也라 湯이 自七十里로 升爲天子하여 典禮命討가 昭著於天下하시니 所謂陟丕釐上

帝之光命也라 三宅은 謂居常伯常任準人之位者요 三俊은 謂有常伯常任準人之才者라 克卽者는 言湯所用三宅이 實能

就是位而不曠其職하고 所稱三俊이 實能就是德而不浮其名也라 三俊을 說者謂 他日次補三宅者라하니 詳宅은 以位言

이요 俊은 以德言이니 意其儲養待用이 或如說者所云也라 惟는 思요 式은 法也라 湯於三宅三俊에 嚴思而丕法之라

故能盡其宅俊之用하여 而宅者得以效其職하고 俊者得以著其才하여 賢智奮庸하여 登于至治라 其在商邑하여는 用協

于厥邑하니 近者는 察之詳하여 其情이 未易齊하니 畿甸之協이면 則純之至也요 其在四方하여는 用丕式見德하니

遠者는 及之難하여 其德이 未易킂하니 觀法之同하면 則大之至也라 至純, 至大면 治道無餘蘊矣라 曰邑, 曰四方者는

各極其遠近而言耳라』

 

『 역월(亦越)은 앞을 잇는 말이다. 경(耿)은 빛남이다. 탕왕(湯王)이 70리로부터 올라가 천자가 되어서 전례(典禮)와

명토(命討)가 천하에 밝게 드러났으니, 이른바 ‘올라가 상제의 빛나는 명을 크게 다스렸다’는 것이다.

삼택(三宅)은 상백(常伯)•상임(常任)•준인(準人)의 지위에 거한 자를 이르고, 삼준(三俊)은 상백(常伯)•상임(常任)

•준인(準人)의 재주가 있는 자를 이른다. 극즉(克卽)은 탕왕(湯王)이 등용한 삼택(三宅)이 실제로 이 지위에 나아가

그 직책을 폐하지 않고, 삼준(三俊)이라고 칭한 자들이 실제로 이 덕에 나아가 그 이름에 과(過)하지 않음을 말한 것

이다.

삼준(三俊)을 해설하는 자들은 “후일에 다음으로 삼택(三宅)에 보임될 자”라고 하였는데, 살펴보건대 택(宅)은 지위로

 말하였고 준(俊)은 덕(德)으로 말하였으니, 짐작컨대 저양(儲養)하여 등용되기를 기다리는 것이 혹 해설하는 자가

말한 바와 같을 듯하다. 유(惟)는 생각함이요, 식(式)은 본받음이다. 탕왕(湯王)이 삼택(三宅)과 삼준(三俊)에 대하여

엄숙히 생각하고 크게 본받았다. 그러므로 그 택(宅)•준(俊)의 등용을 다하여 지위에 거한 자는 그 직책을 바칠 수

있고, 준걸스러운 자는 그 재주를 드러낼 수 있어서 어질고 지혜로운 자가 분용(奮庸)하여 지치(至治)에 오른 것이다.

상(商)나라 도읍에 있어서는 그 도읍에 화합하였으니, 가까운 곳은 살핌이 상세하여 정(情)이 똑고르기가 쉽지 않은데

기전(畿甸)이 화합하였다면 순수함이 지극한 것이며, 사방에 있어서는 크게 본받아 덕을 나타내었으니, 먼 곳은 미치

기가 어려워서 덕이 두루 미치기가 쉽지 않은데 법이 같음을 보면 큼이 지극한 것이다. 지극히 순수하고 지극히 크면

치도(治道)가 남음이 없는 것이다. 읍(邑)이라고 말하고 사방(四方)이라고 말한 것은 각각 원근(遠近)을 지극히 하여

말한 것이다.』

 

*서경 ; 주서 ; 입정 ; 제5장

 

▣ 제5장(第五章)

 

『嗚呼라 其在受德쮁하여 惟羞刑暴德之人으로 同于厥邦하며 乃惟庶習逸德之人으로 同于厥政한대 帝欽罰之하사

乃伻我有夏하여 式商受命하여 奄甸萬姓하시니이다』

 

『 아! 수(受)『[주왕(紂王)]』의 덕이 어두울 적에, 형벌을 숭상하는 포덕(暴德)의 사람들과 나라를 함께 다스리며,

여러 가지 추악한 것을 익힌 일덕(逸德)『[방일(放逸)한 덕]』의 사람들과 정사를 함께 하니, 상제(上帝)가 공경히

벌을 내리시어 마침내 우리로 하여금 하(夏)『[중화(中華)]』를 소유하여 상(商)나라가 받았던 명을 써서 문득

만성(萬姓)을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羞刑은 進任刑戮者也요 庶習은 備諸衆醜者也라 言紂德强暴하고 又所與共國者 惟羞刑暴德之諸侯요 所與共政者

惟庶習逸德之臣下라 上帝敬致其罰하사 乃使我周로 有此諸夏하여 用商所受之命하여 而奄甸萬姓焉하니 『甸者는

井牧其地하고 什伍其民주:전자정목기지』也라』

 

『 수형(羞刑)은 형륙(刑戮)을 진임(進任)『[숭상하여 씀]』하는 자이고, 서습(庶習)은 여러 추악함을 갖춘 자이다.

주왕(紂王)의 덕이 강폭(强暴)하였고, 또 더불어 나라를 함께 다스린 자가 오직 형벌을 숭상하는 포덕(暴德)의

제후(諸侯)였으며, 더불어 정사를 함께 한 자가 오직 여러 가지 추악함을 익힌 일덕(逸德)의 신하였다.

상제(上帝)가 공경히 그 벌을 내려서 마침내 우리 주(周)나라로 하여금 이 제하(諸夏)를 소유하여 상(商)나라가 받았던

천명을 써서 문득 만성(萬姓)을 다스리게 한 것이니, 전(甸)이라는 것은 그 땅을 정목(井牧)『[구획]』하고 그 백성을

십오(什伍)로 편성하는 것이다.』

 

*서경 ; 주서 ; 입정 ; 제6장

 

▣ 제6장(第六章)

 

『亦越文王武王이 克知三有宅心하시며 灼見三有俊心하사 以敬事上帝하시며 立民長伯하시니이다』

 

『 또한 및 문왕(文王)•무왕(武王)이 능히 삼유택(三有宅)의 마음을 알고 삼유준(三有俊)의 마음을 분명히 보시어,

공경히 상제를 섬기며 백성의 장(長)과 백(伯)을 세우셨습니다.』

 

『三宅, 三俊을 文武克知灼見호되 皆曰心者는 卽所謂迪知´0恂而非謀面也라 三宅은 已授之位라 故曰克知요 三俊은

未任以事라 故曰灼見이라 以是敬事上帝하면 則天職修而上有所承이요 以是立民長伯하면 則體統立而下有所寄하니

人君이 位天人之兩間하여 而俯仰無칱者는 以是也라 夏之尊帝와 商之丕釐와 周之敬事가 其義一也라 長은 如王制所

謂五國以爲屬하니 屬有長이요 伯은 如王制所謂二百一十國以爲州하니 州有伯이 是也라』

 

『 삼택(三宅)과 삼준(三俊)을 문왕(文王)과 무왕(武王)이 능히 알고 분명히 보았는데, 모두 심(心)이라고 말한 것은

이른바 ‘실천하여 알고 진실로 믿어서 얼굴만 보고 도모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삼택(三宅)은 이미 지위를 주었기

때문에 능히 안다고 말하였고, 삼준(三俊)은 아직 일을 맡기지 않았기 때문에 분명히 보았다고 말한 것이다.

이로써 공경히 상제를 섬기면 천직(天職)이 닦여져서 위로 받들 바가 있고, 이로써 백성의 장(長)과 백(伯)을 세우면

체통이 서서 아래로 맡길 바가 있으니, 인군이 하늘과 인간의 둘 사이에 위치하여 굽어보고 우러러봄에 부끄러움이

없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하(夏)나라가 상제를 높임과 상(商)나라가 크게 다스림과 주(周)나라가 공경히 섬김이 그 의(義)가 똑같다. 장(長)은

〈왕제(王制)〉에 이른바 “5국(國)을 속(屬)으로 삼으니, 속(屬)에 장(長)이 있다.”는 것과 같으며,

백(伯)은 〈왕제(王制)〉에 이른바 “2백 10국(國)을 주(州)로 삼으니 주(州)에 백(伯)이 있다.”는 것과 같은 것이다.』

 

*서경 ; 주서 ; 입정 ; 제7장

 

▣ 제7장(第七章)

 

『立政에 任人과 準夫와 牧으로 作三事하시니이다』

 

『 정사를 세움에 임인(任人)과 준부(準夫)와 목(牧)으로 세 가지 일을 하게 하셨습니다.』

 

『言文武立政三宅之官也라 任人은 常任也요 準夫는 準人也요 牧은 常伯也니 以職言이라 故曰事라』

 

『 문왕(文王)과 무왕(武王)이 정사를 세우는 삼택(三宅)의 관원을 말한 것이다. 임인(任人)은 상임(常任)이고,

준부(準夫)는 준인(準人)이고, 목(牧)은 상백(常伯)이니, 직책을 말했기 때문에 일이라고 한 것이다.』

 

*서경 ; 주서 ; 입정 ; 제8장

 

▣ 제8장(第八章)

 

『虎賁과 綴『(추)』衣와 趣馬와 小尹과 左右?僕과 百司와 庶府와』

 

『 호분(虎賁)과 추의(綴衣)와 취마(趣馬)와 소윤(小尹)과 좌우(左右)의 휴복(?僕)과 백사(百司)와 서부(庶府)와』

 

『此는 侍御之官也라 趣馬는 掌馬之官이요 小尹은 小官之長이요 ?僕은 ?持僕御之人이요 百司는 若司裘司服이요

庶府는 若內府大府之屬也라』

 

『 이는 시어(侍御)하는 관원이다. 취마(趣馬)는 말을 관장하는 관직이고, 소윤(小尹)은 소관(小官)의 장(長)이고,

휴복(?僕)은 물건을 휴대하고 복어(僕御)하는 사람이고, 백사(百司)는 사구(司裘)•사복(司服)과 같은 것이고,

서부(庶府)는 내부(內府)•대부(大府)와 같은 등속이다.』

 

*서경 ; 주서 ; 입정 ; 제9장

 

▣ 제9장(第九章)

 

『大都와 小伯과 藝人과 表臣百司와 太史와 尹伯이 庶常吉士니이다『(러라)』』

 

『 대도(大都)의 백(伯)과 소도(小都)의 백(伯)과 예인(藝人)과 표신(表臣)인 백사(百司)와 태사(太史)와

윤백(尹伯)이 모두 떳떳한 길한 선비였습니다.』

 

『此는 都邑之官也라 呂氏曰 大都小伯者는 謂『大都之伯, 小都之伯주:대도지백』也니 大都에 言都不言伯하고 小伯에

言伯不言都는 互見之也라 藝人者는 卜祝巫匠이니 執技以事上者라 表臣百司는 表는 外也니 表는 對裏之詞라 上文百司

는 蓋內百司니 若內府, 內司服之屬이니 所謂裏臣也요 此百司는 蓋外百司니 若外府, 外司服之屬이니 所謂表臣也라

太史者는 史官也라 尹伯者는 有司之長이니 如µ#人, 內饔, 膳夫는 則是數尹之伯也요 鐘師尹鐘, 磬師尹磬, 大『(太)』

師司樂은 則是數尹之伯也라 凡所謂官吏는 莫不在內外百司之中이어늘 至於特見『(현)』其名者는 則皆有意焉이라

虎賁, 綴衣, 趣馬, 小尹, 左右?僕은 以扈衛親近而見이요 庶府는 以冗賤하여 人所易忽而見이요 藝人은 恐其或興淫巧

機詐하여 以蕩上心而見이요 太史는 以『奉諱惡주:봉휘악』하여 公天下後世之是非而見이요 尹伯은 以大小相維, 體

統所係而見이요 若大都小伯은 則分治郊畿하니 不預百司之數者라 旣條陳歷數文武之衆職하고 而總結之曰庶常吉士

라하니 庶는 衆也니 言在文武之廷이 無非常德吉士也라』

 

『 이는 도읍(都邑)의 관원이다. 여씨(呂氏)가 말하기를 “대도(大都)와 소백(小伯)은 대도(大都)의 백(伯)과 소도

(小都)의 백(伯)을 이르니, 대도(大都)에는 도(都)를 말하고 백(伯)을 말하지 않고, 소백(小伯)에는 백(伯)을 말하고

도(都)를 말하지 않은 것은 서로 나타낸 것이다.” 하였다.

예인(藝人)은 복축(卜祝)과 무장(巫匠)이니, 기예(技藝)를 잡아 임금을 섬기는 자이다. 표신(表臣)과 백사(百司)는

표(表)는 밖이니, 표(表)는 이(裏)와 대칭되는 말이다. 상문(上文)의 백사(百司)는 내백사(內百司)이니, 내부(內府)

•내사복(內司服)과 같은 등속으로 이른바 이신(裏臣)이라는 것이며, 여기의 백사(百司)는 외백사(外百司)이니,

외부(外府)•외사복(外司服)과 같은 등속으로 이른바 표신(表臣)이라는 것이다. 태사(太史)는 사관(史官)이다.

윤백(尹伯)은 유사(有司)의 장(長)이니, 포인(µ#人)•내옹(內饔)•선부(膳夫)와 같은 것은 여러 윤(尹)의 백(伯)이며,

종(鐘)을 맡은 종사(鐘師)와 경(磬)을 맡은 경사(磬師)와 악(樂)을 맡은 태사(太師)는 곧 여러 윤(尹)의 백(伯)이다.

무릇 이른바 관리라는 것은 내외의 백사(百司) 가운데 들어있지 않음이 없는데, 특별히 그 이름을 나타냄에 이른

것은 모두 뜻이 있다. 호분(虎賁)•추의(綴衣)•취마(趣馬)•소윤(小尹)•좌우(左右)의 휴복(?僕)은 임금을 호위하고

친근히 하기 때문에 나타낸 것이며, 서부(庶府)는 잡되고 천하여 사람들이 소홀히 하기 쉽기 때문에 나타낸 것이며,

예인(藝人)은 혹 지나친 공교로움과 기사(機詐)를 일으켜 임금의 마음을 방탕하게 할까 염려하여 나타낸 것이며,

태사(太史)는 휘(諱)와 악(惡)을 받들어 기록해서 천하 후세의 시비를 공정(公正)히 하기 때문에 나타낸 것이며,

윤백(尹伯)은 대소(大小)가 서로 유지하여 체통이 관계되기 때문에 나타낸 것이며,

대도(大都)의 백(伯)과 소도(小都)의 백(伯)으로 말하면 교(郊)와 기(畿)를 나누어 다스리니 백사(百司)의 수에 참여

되지 않는다. 이미 문왕(文王)•무왕(武王)의 여러 직책을 조목조목 진열하여 일일이 세고, 총결(總結)하기를 “모두

떳떳한 길사(吉士)이다.” 하였으니, 서(庶)는 여럿이니, 문왕(文王)•무왕(武王)의 조정에 있는 자가 떳떳한 덕을

간직한 길사(吉士)가 아님이 없음을 말한 것이다.』

 

*서경 ; 주서 ; 입정 ; 제10장

 

▣ 제10장(第十章)

 

『司徒와 司馬와 司空과 亞, 旅와』

 

『 사도(司徒)와 사마(司馬)와 사공(司空)과 아(亞)와 여(旅)와』

 

『此는 諸侯之官也라 司徒는 主邦敎하고 司馬는 主邦政하고 司空은 主邦土하며 餘見牧誓하니 言諸侯之官이 莫不得

人也라 諸侯之官에 獨擧此者는 以其名位 通於天子歟아』

 

『 이는 제후의 관원이다. 사도(司徒)는 나라의 가르침을 주관하고, 사마(司馬)는 나라의 정사를 주관하고,

사공(司空)은 나라의 토목을 주관하며, 나머지는 〈목서(牧誓)〉에 보이니, 제후의 관원이 인재를 얻지 않음이 없음

을 말한 것이다. 제후의 관원에 유독 이를 든 것은 그 명칭과 지위가 천자국과 공통되기 때문인 듯하다.』

 

*서경 ; 주서 ; 입정 ; 제11장

 

▣ 제11장(第十一章)

 

『夷와 微와 盧烝과 『三¨]이 阪(반)에 尹주:삼박반윤』이니이다『(이러라)』』

 

『 이(夷)와 미(微)와 노(盧)의 증(烝)과 삼박(三¨])이 판(阪)의 윤(尹)이었습니다.』

 

『此는 王官之監於諸侯四夷者也라 微盧는 見經하고 ¨]은 見史하니라 三¨]은 蒙爲北¨]이요 穀熟爲南¨]이요 偃師

爲西¨]이라 烝은 或以爲衆이라하고 或以爲夷名이라 阪은 未詳이라 古者에 險危之地의 封疆之守를 或不以封하고 而

使王官治之하여 參錯於五服之間하니 是之謂尹이라 地志에 載王官所治 非一이니 此特擧其重者耳라 自諸侯三卿以降

으로 惟列官名而無他語는 承上庶常吉士之文하여 以內見外也라 夫上自王朝로 內而都邑과 外而諸侯와 遠而夷狄이

莫不皆得人以爲官使하니 何其盛歟아』

 

『 이는 왕(王)의 관원으로서 제후와 사방 오랑캐들을 감시하는 자이다. 미(微)와 노(盧)는 경전(經傳)에 보이고,

박(¨])은 《사기(史記)》에 보인다. 삼박(三¨])은 몽(蒙)은 북박(北¨])이고, 곡숙(穀熟)은 남박(南¨])이고,

언사(偃師)는 서박(西¨])이다. 증(烝)은 혹자는 무리라 하고, 혹자는 오랑캐의 이름이라고 한다. 반(阪)은 미상이다.

옛날에 위험한 지역에 봉강(封疆)『[국경]』을 지키는 사람을 혹 봉해주지 않고 왕의 관원으로 하여금 다스리게

해서 오복(五服)의 사이에 참여하여 섞이게 하였으니, 이것을 윤(尹)이라 이른다. 〈지지(地志)〉에 왕관(王官)의

다스린 바를 기재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니, 이는 다만 그 중한 것을 들었을 뿐이다. 제후의 삼경(三卿)으로부터

이하로는 오직 관명(官名)만 나열하고 다른 말이 없는 것은 위의 “모두 떳떳한 길사(吉士)”라는 글을 이어서 안으

로써 밖을 나타낸 것이다. 위로 왕조(王朝)로부터 안으로 도읍과 밖으로 제후와 멀리 이적(夷狄)에 이르기까지 모두

인재를 얻어서 관사(官使)를 삼지 않음이 없으니, 어쩌면 그리도 훌륭한가.』

 

*서경 ; 주서 ; 입정 ; 제12장

 

▣ 제12장(第十二章)

 

『文王이 惟克厥宅心하사 乃克立玆常事司牧人하사되 以克俊有德하시니이다『(으로하더시다)』』

 

『 문왕(文王)이 삼택(三宅)의 마음에 능하시어 이 상사(常事)와 사목인(司牧人)을 세우시되 능히 준걸스런 자와

덕이 있는 자로 하셨습니다.』

 

『文王이 惟能其三宅之心이라 能者는 能之也니 知之至, 信之篤之謂라 故能立此常任常伯하되 用能俊有德也라 不言

準人者는 因上章言文王用人하여 而申克知三有宅心之說이라 故略之也라』

 

『 문왕(文王)이 삼택(三宅)의 마음을 능하셨다. 능(能)은 능한 것이니, 앎이 지극하고 믿음이 돈독함을 이른다.

그러므로 능히 이 상임(常任)과 상백(常伯)을 세우되 능히 준걸스럽고 덕이 있는 자를 등용한 것이다. 준인(準人)을

말하지 않은 것은 상장(上章)에 문왕(文王)이 인재를 등용한 것을 말하여 능히 삼유택(三有宅)의 마음을 알았다는

말을 거듭하였으므로 생략한 것이다.』

 

*서경 ; 주서 ; 입정 ; 제13장

 

▣ 제13장(第十三章)

 

『文王은 罔攸兼于庶言庶獄庶愼하시고 惟有司之牧夫를 是訓用違하시니라』

 

『 문왕(文王)은 서언(庶言)•서옥(庶獄)•서신(庶愼)을 겸하신 바가 없으셨고, 오직 유사(有司)인 목부(牧夫)에게만

명령을 따르는 자와 어기는 자를 훈계하셨습니다.』

 

『庶言은 號令也요 庶獄은 獄訟也요 庶愼은 國之禁戒儲備也라 有司는 有職主者요 牧夫는 牧人也라 文王이 不敢下侵

庶職하사 惟於有司牧夫에 訓勅用命及違命者而已라 漢孔氏曰 勞於求才하고 逸於任賢이니라』

 

『 서언(庶言)은 호령이고, 서옥(庶獄)은 옥송(獄訟)이고, 서신(庶愼)은 나라의 금계(禁戒)와 저비(儲備)『[대비]』

이다. 유사(有司)는 맡음이 있는 자이고, 목부(牧夫)는 목인(牧人)이다. 문왕(文王)이 감히 아래로 여러 직책을 침해

하지 아니하여 오직 유사인 목부에게만 명령을 따르는 자와 명령을 어기는 자를 훈칙(訓勅)했을 뿐이다.

한(漢)나라 공씨(孔氏)는 말하기를 “인재를 구함에 수고롭고 현자를 임용함에 편안하다.” 하였다.』

 

*서경 ; 주서 ; 입정 ; 제14장

 

▣ 제14장(第十四章)

 

『庶獄庶愼을 文王이 罔敢知于玆하시니라』

 

『 서옥(庶獄)과 서신(庶愼)을 문왕(文王)은 감히 이에 대하여 알려 하지 않으셨습니다.』

 

『上言罔攸兼은 則猶知之로되 特不兼其事耳요 至此罔敢知하여는 則若未嘗知有其事하니 蓋信任之益專也라 上言庶

言이로되 此不及者는 號令은 出於君하여 有不容不知者故也라 呂氏曰 不曰罔知于玆하고 而曰罔敢知于玆者는 徒言

罔知면 則是莊老之無爲也요 惟言罔敢知然後에 見文王敬畏하여 思不出位之意하니 毫釐之辨을 學者宜精察之니라』

 

『 위에 ‘망유겸(罔攸兼)’이라고 말한 것은 오히려 알되 다만 그 일을 겸하지 않았을 뿐이요, 여기에 ‘망감지(罔敢知)’

라고 한 것에 이르러서는 일찍이 그 일이 있었는지 알지 못한 것이니, 신임함이 더욱 전일(專一)한 것이다. 위에는

서언(庶言)을 말했으나 여기에는 언급하지 않은 것은 호령은 군주에게서 나와 알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 여씨(呂氏)가 말하였다. “이에 대하여 알지 않았다고 말하지 않고, 감히 이에 대하여 알려 하지 않았다고 말한 것은

한갓 알지 않았다고 말하면 이는 노장(老莊)의 무위(無爲)이고, 오직 감히 알려 하지 않았다고 말한 뒤에야 문왕(文王)

이 경외(敬畏)하여 생각이 지위를 벗어나지 않은 뜻을 볼 수 있으니, 호리(毫釐)의 구분을 배우는 자가 마땅히 정밀히

살펴야 한다.”』

 

*서경 ; 주서 ; 입정 ; 제15장

 

▣ 제15장(第十五章)

 

『亦越武王이 率『(솔)』惟쭵功하사 不敢替厥義德하시며 率惟謀하사 從容德하사 以竝受此丕丕基하시니라』

 

『 또한 무왕(武王)은 문왕(文王)의 편안히 한 공을 따르시어 감히 의덕(義德)이 있는 자들을 버리지 않으셨으며,

문왕(文王)의 계책을 따르시어 용덕(容德)이 있는 자들을 따라 함께 이 크고 큰 기업을 받으셨습니다.』

 

『率은 循也라 쭵功은 安天下之功이라 義德은 義德之人이요 容德은 容德之人이라 蓋義德者는 有撥亂反正之才하고

容德者는 有休休樂善之量하니 皆成德之人也라 周公이 『[承]』上文言 武王이 率循文王之功하여 而不敢替其所用義

德之人하시고 率循文王之謀하여 而不敢違其容德之士라하시니 意如¹~叔, 쥺夭, 散宜生, 泰顚, 南宮括之徒 所以輔成

王業者 文用之於前하고 武任之於後라 故周公이 於君奭에 言五臣이 克昭文王하여 受有殷命하고 武王은 惟玆四人이

尙迪有祿이라하시니 正猶此敍文武用人하고 而言竝受此丕丕基也니라』

 

『 솔(率)은 따름이다. 공(功)은 천하를 편안히 하는 공이다. 의덕(義德)은 의(義)로운 덕(德)이 있는 사람이요,

용덕(容德)은 포용하는 덕이 있는 사람이다. 의덕(義德)은 난을 다스려 바름으로 돌아오는 재주가 있고,

용덕(容德)은 휴휴(休休)『[마음이 곱고 고움]』하여 선(善)을 좋아하는 도량이 있으니, 모두 성덕(成德)한 사람이다.

주공(周公)이 상문(上文)을 이어 말씀하기를 “무왕(武王)이 문왕(文王)의 공을 따르시어 감히 등용한 바의 의덕(義德)

이 있는 사람을 버리지 않으시고, 문왕(文王)의 계책을 따르시어 감히 용덕(容德)이 있는 선비를 어기지 않았다.” 하였

으니, 짐작컨대 괵숙(¹~叔)•굉요(쥺夭)•산의생(散宜生)•태전(泰顚)•남궁괄(南宮括)과 같은 무리로서 왕업(王業)을

보성(輔成)한 자들을 문왕(文王)이 앞에서 등용하였고 무왕(武王)이 뒤에서 임명하였다. 그러므로 주공(周公)이

〈군석(君奭)〉에서 “다섯 신하가 능히 문왕(文王)의 덕을 밝혀 은(殷)나라의 명을 받았고, 무왕(武王)은 이 네 사람이

인도하여 녹을 두었다.”고 말하였으니, 바로 여기에서 문왕(文王)•무왕(武王)의 인재 등용을 서술하고 함께 “이 크고

큰 기업을 받았다.”고 아울러 말한 것과 똑같다.』

 

*서경 ; 주서 ; 입정 ; 제16장

 

▣ 제16장(第十六章)

 

『嗚呼라 孺子王矣시니 繼自今으로 我其立政에 立事와 準人과 牧夫를 我其克灼知厥若하여 丕乃쯸亂하여 相我受民

하시며 和我庶獄庶愼하시고 時則勿有間之하소서』

 

『 아! 유자(孺子)께서 왕(王)이 되셨으니, 지금으로부터 이어서 우리 왕(王)께서는 정사를 세우실 적에 입사(立事)

와 준인(準人)과 목부(牧夫)의 임용을 우리 왕(王)께서 그 순히 여기는 바를 분명히 아시어 크게 다스려서 우리 왕

께서 받으신 백성을 돕게 하시며, 우리 서옥(庶獄)과 서신(庶愼)을 화(和)하게 하시고, 이에 소인(小人)으로 끼게

하지 마소서.』

 

『我者는 指王而言이라 若은 順也라 周公이 旣述文武基業之大하시고 歎息而言曰 孺子今旣爲王矣시니 繼此以往

으로 王其於立政에 立事, 準人, 牧夫之任을 當能明知其所順이라하시니 順者는 其心之安也라 孔子曰 察其所安이면

人焉첦哉리오하시니 察其所順者는 知人之要也라 夫旣明知其所順하여 果正而不他然後에 推心而大委任之하여 使展

布四體以爲治하여 相助左右所受之民하고 和調均齊獄愼之事하며 而又戒其勿以小人間之하여 使得終始其治하니

此는 任人之要也라 民而謂之受者는 言民者는 乃受之於天이요 受之於祖宗이니 非成王之所自有也라』

 

『 아(我)는 왕(王)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약(若)은 순함이다. 주공(周公)이 이미 문왕(文王)•무왕(武王)의 기업의

큼을 서술하고, 탄식하여 말씀하기를 “이제 유자(孺子)가 왕(王)이 되었으니, 이를 이어 이후로는 왕께서는 정사를

세울 적에 입사(立事)•준인(準人)•목부(牧夫)의 임용함에 마땅히 순(順)히 여기는 바를 분명히 알라.” 하였으니,

순(順)은 그 마음에 편안히 여기는 것이다. 공자(孔子)가 말씀하기를 “편안히 여기는 바를 살피면 사람이 어찌 숨기

겠는가?” 하였으니, 순히 여기는 바를 살피는 것은 사람을 아는 요점이다. 이미 그 순히 여기는 바를 분명히 알아서

과연 바르고 딴 마음이 없은 뒤에야 마음을 미루어 크게 위임해서 사체(四體)를 펴 다스려서 받은 바의 백성을

상조(相助)하고 좌우(佐佑)하게 하며, 서옥(庶獄)과 서신(庶愼)의 일을 화조(和調)하고 균제(均齊)할 것이며,

또 소인(小人)을 끼게 하지 말아서 그 다스림을 끝마치도록 경계하였으니, 이는 사람을 임용하는 요점이다.

백성을 받았다고 말한 것은 백성은 바로 하늘에게서 받았고 조종(祖宗)에게서 받은 것이니, 성왕(成王)이 스스로

소유한 것이 아님을 말한 것이다.』

 

*서경 ; 주서 ; 입정 ; 제17장

 

▣ 제17장(第十七章)

 

『自一話一言으로 我則末惟成德之彦하사 以乂我受民하소서』

 

『 한 대화와 한 말씀으로부터 우리 왕께서는 마침내 성덕(成德)한 아름다운 선비들을 생각하시어 우리가 받은

백성을 다스리게 하소서.』

 

『末은 終이요 惟는 思也라 自一話一言之間으로 我則終思成德之美士하여 以治我所受之民하여 而不敢斯須忘也라』

 

『 말(末)은 마침이요, 유(惟)는 생각함이다. 한 대화와 한 말씀의 사이로부터 우리 왕께서는 마침내 성덕한 아름다운

선비들을 생각하시어 우리가 받은 백성을 다스려서 감히 잠시라도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

 

*서경 ; 주서 ; 입정 ; 제18장

 

▣ 제18장(第十八章)

 

『嗚呼라 予旦은 已受人之徽言으로 咸告孺子王矣로니 繼自今으로 文子文孫은 其勿誤于庶獄庶愼하시고 惟正을 是乂

之하소서』

 

『 아! 나 단(旦)은 이미 남에게서 받은 아름다운 말씀을 모두 유자(孺子)인 왕(王)께 아뢰었사오니, 지금부터 이후로

문자(文子), 문손(文孫)은 서옥(庶獄)과 서신(庶愼)을 그르치지 마시고, 오직 정(正)『[담당관]』을 다스리소서.』

 

『前所言禹湯文武任人之事는 無非至美之言이니 我聞之於人者를 已皆告孺子王矣라 文子文孫者는 成王은 武王之文

子요 文王之文孫也라 成王之時에 法度彰하고 禮樂著하여 守成尙文이라 故曰文이라 誤는 失也니 有所兼, 有所知하여

不付之有司하고 而以己誤之也라 正은 猶康誥所謂正人과 與官正酒正之正이니 指當職者爲言이라 不以己誤庶獄庶愼

하고 惟當職之人을 是治之니 下文에 言其勿誤庶獄하고 惟有司之牧夫가 卽此意라』

 

『 앞에서 말한 우왕(禹王)•탕왕(湯王)•문왕(文王)•무왕(武王)이 사람을 임용한 일은 지극히 아름다운 말 아님이

없으니, 내가 남에게서 들은 것을 이미 유자(孺子)인 왕에게 모두 아뢰었다. 문자(文子)와 문손(文孫)은 성왕(成王)은

무왕(武王)의 문자(文子)이고, 문왕(文王)의 문손(文孫)이다. 성왕(成王) 때에 법도가 밝고 예악(禮樂)이 드러나서

이룸을 지키고 문(文)을 숭상하므로 문(文)이라 한 것이다. 오(誤)는 그르침이니,

겸하는 바가 있고 알려는 바가 있어서 유사(有司)에게 맡기지 않고 자기로써 그르치는 것이다.

정(正)은 〈강고(康誥)〉에 이른바 정인(正人)과 관정(官正)•주정(酒正)의 정(正)과 같으니, 직책을 담당한 자를

가리켜 말한 것이다. 자기로써 서옥(庶獄)과 서신(庶愼)을 그르치지 말고 오직 직책을 담당한 사람을 이에 다스려야

하니, 하문(下文)에 서옥(庶獄)을 그르치지 말고 오직 유사(有司)인 목부(牧夫)에게 맡기라고 말씀한 것이 바로 이

뜻이다.』

 

*서경 ; 주서 ; 입정 ; 제19장

 

▣ 제19장(第十九章)

 

『自古商人과 亦越我周文王이 立政에 立事와 牧夫와 準人을 則克宅之하시며 克由繹之하시니 玆乃쯸乂하시니이다』

 

『 자고(自古)『[옛날]』와 상(商)나라 사람과 또한 우리 주(周)나라 문왕(文王)께서 정사를 세울 적에 입사(立事)와

목부(牧夫)와 준인(準人)을 능히 거하게 하시며, 능히 말미암아 생각하시니, 이에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自古及商人及我周文王이 於立政에 所以用三宅之道는 則克宅之者는 能得賢者하여 以居其職也요 克由繹之者는

能紬繹用之하여 而盡其才也라 旣能宅其才하여 以安其職하고 又能繹其才하여 以盡其用하시니 玆其所以能쯸乂也歟

인저』

 

『 자고(自古)와 상(商)나라 사람과 우리 주(周)나라 문왕(文王)이 정사를 세울 적에 삼택(三宅)을 임용하는 도(道)는

능히 거하게 했다는 것은 능히 현자를 얻어 직책에 거하게 한 것이고, 능히 말미암아 생각했다는 것은 능히

주역(紬繹)하여 써서 그 재주를 다하게 한 것이다. 이미 그 인재를 자리에 거하게 하여 직책을 편안히 수행하게 하고,

또 인재를 생각하여 그 씀을 다하였으니, 이 때문에 능히 이들로 하여금 다스리게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서경 ; 주서 ; 입정 ; 제20장

 

▣ 제20장(第二十章)

 

『國則罔有立政에 用첊人이니 不訓于德이라 是罔顯在厥世하리이다 繼自今으로 立政에 其勿以첊人하시고 其惟吉士

하사 用퐞『(國家)』相我國家하소서』

 

『 나라에서는 정사를 세울 적에 섬인(첊人)『[약삭빠른 사람]』을 쓰지 말아야 하니, 이들은 덕(德)에 순하지 못하

므로 광현(光顯)하여 세상에 있지 못할 것입니다. 지금부터는 정사를 세울 적에 섬인(첊人)을 쓰지 마시고 오직

길사(吉士)『[선인(善人)]』를 등용하시어 힘써 우리 국가를 돕게 하소서.』

 

『自古爲國에 無有立政用첊利小人者하니 小人而謂之첊者는 形容其沾沾便捷之狀也라 첊利小人은 不順于德하니

是無能光顯以在厥世라 王當繼今以往으로 立政에 勿用첊利小人하시고 其惟用有常吉士하사 使勉力以輔相我國家也라

呂氏曰 君子는 陽類라 用則升其國於明昌하고 小人은 陰類라 用則降其國於촇昧하니 陰陽升降이 亦各從其類也니라』

 

『 예로부터 나라를 다스림에 정사를 세우면서 섬리(첊利)한 소인(小人)을 등용한 자가 있지 않으니, 소인(小人)을

섬(첊)이라고 이른 것은 첨첨(沾沾)히 편첩(便捷)『[약삭빠름]』한 모양을 형용한 것이다. 섬리(첊利)한 소인(小人)은

덕에 순하지 못하니, 능히 광현(光顯)하여 세상에 있지 못할 것이다. 왕은 마땅히 지금부터 이후로는 정사를 세울 적에

섬리(첊利)한 소인(小人)을 등용하지 말고 오직 떳떳함이 있는 길사(吉士)를 등용하여 힘써 우리 국가를 돕게 하여야

할 것이다.』

『 여씨(呂氏)가 말하였다. “군자(君子)는 양(陽)의 유(類)이므로 등용하면 그 나라를 밝고 창성함에 올려 놓고,

소인(小人)은 음(陰)의 유(類)이므로 등용하면 그 나라를 어둡고 어둠에 내려 놓으니, 음양(陰陽)의 오르내림이 또한

각기 그 유(類)를 따르는 것이다.”』

 

*서경 ; 주서 ; 입정 ; 제21장

 

▣ 제21장(第二十一章)

 

『今文子文孫孺子王矣시니 其勿誤于庶獄하시고 惟有司之牧夫하소서』

 

『 지금 문자(文子), 문손(文孫)이신 유자(孺子)께서 왕이 되셨으니, 서옥(庶獄)을 그르치지 마시고 오직 유사(有司)인

목부(牧夫)에게 맡기소서.』

 

『始言和我庶獄庶愼하여 時則勿有間之라하고 繼言其勿誤于庶獄庶愼하고 惟正是乂之라하고 至是하여는 獨曰其勿誤

于庶獄하고 惟有司之牧夫라하니 蓋刑者는 天下之重事라 픫其重而獨擧之하여 使成王으로 尤知刑獄之可畏하여 必專

有司牧夫之任이요 而不可以己誤之也라』

 

『 처음에는 “우리 서옥(庶獄)과 서신(庶愼)을 화(和)하게 하고 이에 소인(小人)으로 끼게 하지 말라.” 하였고, 뒤이어

“서옥(庶獄)과 서신(庶愼)을 그르치지 말고 오직 정(正)을 다스리라.” 하였고, 이에 이르러는 홀로 “서옥(庶獄)을

그르치지 말고 오직 유사(有司)인 목부(牧夫)에게 맡기라.” 하였으니, 형벌은 천하의 중요한 일이므로 그 중한 것을

들어 홀로 거론해서 성왕(成王)으로 하여금 더욱 형옥(刑獄)이 두려울 만함을 알아, 반드시 유사(有司)인 목부(牧夫)의

임무를 오로지 하게 하고 자기로써 그르치지 않게 한 것이다.』

 

*서경 ; 주서 ; 입정 ; 제22장

 

▣ 제22장(第二十二章)

 

『其克詰爾戎兵하여 以陟禹之迹하여 方行天下하여 至于海表히 罔有不服케하사 以覲文王之耿光하시며 以揚武王之

大烈하소서』

 

『 능히 너의 융복(戎服)『[전투복]』과 병기를 다스려서 우왕(禹王)의 옛 자취에 올라 사방으로 천하에 행해서

해표(海表)『[해외(海外)]』에 이르기까지 복종하지 않는 자가 없게 하시어, 문왕(文王)의 밝은 빛을 보시고

무왕(武王)의 큰 공렬(功烈)을 드날리소서.』

 

『詰은 治也니 治爾戎服兵器也라 陟은 升也라 禹迹은 禹服舊迹也라 方은 四方也요 海表는 四裔也니 言德威所及에

無不服也라 覲은 見也라 耿光은 德也요 大烈은 業也니 於文王稱德하고 於武王稱業은 各於其盛者에 稱之라 呂氏曰

兵은 刑之大也라 故로 旣言庶獄하고 而繼以治兵之戒焉이니라 或曰 周公之訓은 稽其所弊하면 得無啓後世好大喜功

之患乎아 曰 周公詰兵之訓이 繼勿誤庶獄之後하니 ¬;獄之間에도 尙恐一刑之誤어든 況六師萬衆之命을 其敢不審而誤

擧乎아 推勿誤庶獄之心하여 而奉克詰戎兵之戒하면 必非得已不已而輕用民命者也리라』

 

『 힐(詰)은 다스림이니, 너의 융복(戎服)과 병기를 다스리는 것이다. 척(陟)은 오름이다. 우적(禹迹)은 우복(禹服)의

옛 자취이다. 방(方)은 사방이고, 해표(海表)는 사예(四裔)이니, 덕과 위엄이 미치는 바에 복종하지 않음이 없음을

말한 것이다. 근(覲)은 봄이다. 경광(耿光)은 덕(德)이고, 대렬(大烈)은 공업(功業)이니, 문왕(文王)에게는 덕을 말

하고 무왕(武王)에게는 업을 말한 것은 각각 그 성대(盛大)한 것을 가지고 말한 것이다. 여씨(呂氏)는 말하기를

“병(兵)은 형벌 중에 큰 것이므로 이미 서옥(庶獄)을 말하고 병(兵)을 다스리라는 경계로써 이은 것이다.” 하였다.』

『 혹자는 말하기를 “주공(周公)의 가르침은 그 병폐를 상고해 보면 후세에 큰 것을 좋아하고 공을 기뻐하는 병통을

열어 놓지 않겠는가?” 하기에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주공(周公)의 병(兵)을 다스리라는 가르침이 서옥(庶獄)을

그르치지 말라는 말 뒤에 이어졌으니, 안옥(¬;獄)『[감옥]』의 사이에도 오히려 한 형벌이라도 잘못될까 두려워

하는데 하물며 육사(六師)『[육군(六軍)]』의 수많은 무리의 목숨을 어찌 감히 신중히 하지 않고 함부로 동원하겠

는가. 서옥(庶獄)을 그르치지 말라는 마음을 미루어서 융복(戎服)과 병기를 다스리라는 경계를 받든다면 반드시

그만 둘 수 있는데도 그만두지 아니하여 백성의 목숨을 가볍게 쓰는 자가 아닐 것이다.”』

 

*서경 ; 주서 ; 입정 ; 제23장

 

▣ 제23장(第二十三章)

 

『嗚呼라 繼自今으로 後王은 立政에 其惟克用常人하소서』

 

『 아! 지금으로부터 후왕(後王)께서는 정사를 세울 적에 능히 떳떳한 사람을 등용하소서.”』

 

『幷周家後王而戒之也라 常人은 常德之人也라 皐陶曰 彰厥有常이 吉哉라하니 常人與吉士는 同實而異名者也라』

 

『 주가(周家)의 후왕(後王)까지 아울러 경계한 것이다. 상인(常人)은 떳떳한 덕을 간직한 사람이다. 고요(皐陶)가

말하기를 “몸에 드러나서 시종 떳떳함이 있는 것이 길사(吉士)이다.” 하였으니, 상인(常人)과 길사(吉士)는 실제는

같으나 이름이 다른 것이다.』

 

*서경 ; 주서 ; 입정 ; 제24장

 

▣ 제24장(第二十四章)

 

『周公이 若曰 太史아 司寇蘇公이 『式敬爾由獄주:식경이유옥』하여 以長我王國하니 玆式有愼하면 以列로 用中罰

하리라『(하리이다)』』

 

『 주공(周公)이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태사(太史)야! 사구(司寇)인 소공(蘇公)이 그 행할 옥사(獄事)를 공경하여

우리 왕국(王國)을 장구히 하였으니, 이에 법받아 삼감을 두면 조열(條列)로써 알맞은 형벌을 쓸 것이다.”』

 

『此는 周公이 因言愼罰하여 而以蘇公敬獄之事로 告之太史하여 使其幷書하여 以爲後世司獄之式也라 蘇는 國名也니

 左傳에 蘇忿生이 以溫爲司寇라하니라 周公이 告太史하사되 以蘇忿生爲司寇하여 用能敬其所由之獄하여 培植基本

하여 以長我王國하니 令於此取法而有謹焉이면 則能以輕重條列로 用其中罰하여 而無過差之患矣라하시니라』

 

『 이는 주공(周公)이 인하여 형벌을 삼감을 말해서 소공(蘇公)이 옥사(獄事)를 공경한 일을 태사(太史)에게 고하여

아울러 기록해서 후세에 옥(獄)을 맡은 자의 법식으로 삼게 한 것이다. 소(蘇)는 나라 이름이니, 《좌전(左傳)》에

“소분생(蘇忿生)이 온읍(溫邑)으로 사구(司寇)가 되었다.” 하였다. 주공(周公)이 태사(太史)에게 고하기를

“소분생(蘇忿生)을 사구(司寇)로 삼아 행할 바의 옥사를 공경해서 기본(基本)을 배식(培植)하여 우리 왕국을 장구

하게 하였으니, 여기에서 법(法)을 취하여 삼가게 하면 경중(輕重)의 조열(條列)을 가지고 알맞은 형벌을 써서

과차(過差)의 병통이 없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서경 ; 주서 ; 주관(周官)

 

▣ 주관(周官)

 

『成王이 訓迪百官이어늘 史錄其言하고 以周官名之하니 亦訓體也라 今文無, 古文有하니라』

『○ 按此篇은 與今周禮不同하니 如三公, 三孤는 周禮皆不載라 或謂 公孤는 兼官이요 無正職이라 故로 不載라 然三公은 論道經邦하고 三孤는 貳公弘化하니 非職乎아 職任之大가 無踰此矣니라 或又謂師氏는 卽太師요 保氏는 卽太保라 然以師保之尊으로 而反屬司徒之職은 亦無是理也니라 又此言六年에 五服一朝어늘 而周禮에 『六服諸侯 有一歲一見者하고 二歲一見者하고 三歲一見者주:육복제후』하여 亦與此不合하니 是固可疑라 然周禮는 非聖人이면 不能作也니 意周公이 方條治事之官而未及師保之職이니 所謂未及者는 鄭重而未及言之也라 書未成而公亡하니 其間에 法制有未施用이라 故로 與此異요 而冬官亦缺이라 要之컨대 周禮는 首末未備하니 周公未成之書也니 惜哉라 讀書者參互而考之면 則周公經制를 可得而論矣리라』

 

『 성왕(成王)이 백관들을 훈적(訓迪)『[훈도(訓導)]』하자, 사관(史官)이 그 말씀을 기록하고 ‘주관(周官)’이라고 이름하였으니, 또한 훈체(訓體)이다. 금문(今文)에는 없고 고문(古文)에는 있다.』

『 ○ 살펴보건대, 이 편은 지금의 《주례(周禮)》와 같지 않으니, 삼공(三公)•삼고(三孤)와 같은 것은 《주례(周禮)》에 모두 실려 있지 않다. 혹자는 말하기를 “공(公)•고(孤)는 겸관(兼官)『[겸직]』이고 정직(正職)이 없으므로 기재하지 않은 것이다.”라고 한다. 그러나 삼공(三公)은 도(道)를 논하고 나라를 다스리며, 삼고(三孤)는 공(公)에 다음가고 조화를 넓히니, 이것이 직책이 아니겠는가. 직임(職任)의 큼이 이보다 더할 수 없다. 혹자는 또 말하기를 “사씨(師氏)는 바로 태사(太師)이고, 보씨(保氏)는 바로 태보(太保)이다.”라고 한다. 그러나 사(師)•보(保)의 높음으로 도리어 사도(司徒)의 직책에 소속됨은 또한 이러할 이치가 없다. 또 여기에서는 6년에 오복(五服)이 한 번 조회한다고 말하였는데, 《주례(周禮)》에는 육복(六服)의 제후가 1년에 한 번 뵙는 자가 있고, 2년에 한 번 뵙는 자가 있고, 3년에 한 번 뵙는 자가 있어 또한 이와 부합되지 않으니, 이는 진실로 의심할 만하다. 그러나 《주례(周禮)》는 성인(聖人)이 아니면 지을 수 없으니, 짐작컨대 주공(周公)이 일을 다스리는 관직을 조열(條列)하여 사(師)•보(保)의 직책에는 미치지 못한 듯하니, 이른바 ‘미치지 못했다’는 것은 정중히 여겨 미처 말하지 않은 것이다. 책이 이루어지기 전에 공(公)이 별세하니, 그 사이에 법제가 시행되지 못함이 있었기 때문에 이와 다른 것이며, 〈동관(冬官)〉 역시 빠져 있다. 요컨대 《주례(周禮)》는 처음과 끝이 완비되지 못했으니, 주공(周公)의 미완성된 책이니, 애석하다. 책을 읽는 자가 참호(參互)하여 살펴보면 주공(周公)의 나라를 다스린 제도를 논할 수 있을 것이다.』

 

『○ 서경 ; 주서 ; 주관 ; 제1장+1』

『○ 서경 ; 주서 ; 주관 ; 제2장+2』

『○ 서경 ; 주서 ; 주관 ; 제3장+3』

『○ 서경 ; 주서 ; 주관 ; 제4장+4』

『○ 서경 ; 주서 ; 주관 ; 제5장+5』

『○ 서경 ; 주서 ; 주관 ; 제6장+6』

『○ 서경 ; 주서 ; 주관 ; 제7장+7』

『○ 서경 ; 주서 ; 주관 ; 제8장+8』

『○ 서경 ; 주서 ; 주관 ; 제9장+9』

『○ 서경 ; 주서 ; 주관 ; 제10장+10』

『○ 서경 ; 주서 ; 주관 ; 제11장+11』

『○ 서경 ; 주서 ; 주관 ; 제12장+12』

『○ 서경 ; 주서 ; 주관 ; 제13장+13』

『○ 서경 ; 주서 ; 주관 ; 제14장+14』

『○ 서경 ; 주서 ; 주관 ; 제15장+15』

『○ 서경 ; 주서 ; 주관 ; 제16장+16』

『○ 서경 ; 주서 ; 주관 ; 제17장+17』

『○ 서경 ; 주서 ; 주관 ; 제18장+18』

『○ 서경 ; 주서 ; 주관 ; 제19장+19』

『○ 서경 ; 주서 ; 주관 ; 제20장+20』

『○ 서경 ; 주서 ; 주관 ; 제21장+21』

 

*서경 ; 주서 ; 주관 ; 제1장

 

▣ 제1장(第一章)

 

『惟周王이 撫萬邦하사 巡侯甸하사 四征弗庭하사 綏厥兆民하신대 六服群µ?이 罔不承德이어늘 歸于宗周하사 董正治官하시다』

 

『 주왕(周王)이 만방(萬邦)을 어루만져 후복(侯服)•전복(甸服)에 순행하시어 곧지 않은 자들을 사방으로 정벌하여 조민(兆民)들을 편안히 하시자, 육복(六服)의 여러 제후들이 덕(德)을 받들지 않는 자가 없었다. 이에 종주(宗周)로 돌아와 다스리는 관원들을 감독하여 바로잡으셨다.』

 

『此는 書之本序也라 『庭은 直也니 葛氏曰 弗庭은 弗來庭者주:정직야』라하니라 六服은 侯, 甸, 男, 采, 衛에 幷畿內爲六服也라 禹貢五服은 通畿內요 周制五服은 在王畿外也라 周禮에 又有九服하니 侯, 甸, 男, 采, 衛, 蠻, 夷, 鎭, 蕃이라 與此不同하니라 宗周는 鎬京也라 董은 督也라 治官은 凡治事之官也라 言成王이 撫臨萬國하여 巡狩侯甸하여 四方征討不庭之國하여 以安天下之民한대 六服諸侯之君이 無不奉承周德이어늘 成王이 歸于鎬京하여 督正治事之官하니 外攘之功擧에 而益嚴內治之脩也라 唐孔氏曰 周制엔 無萬國하고 惟伐淮夷요 非四征也니 大言之爾니라』

 

『 이는 〈주관(周官)〉의 본서(本序)이다. 정(庭)은 곧음이니, 갈씨(葛氏)가 말하기를 “불정(弗庭)은 바름에 오지 않는 자이다.” 하였다. 육복(六服)은 후(侯)•전(甸)•남(男)•채(采)•위(衛)에 기내(畿內)를 아울러 육복(六服)이라 한 것이다. 〈우공(禹貢)〉의 오복(五服)은 기내(畿內)까지 통틀은 것이고, 주(周)나라 제도의 오복(五服)은 왕기(王畿)의 밖에 있다. 《주례(周禮)》에는 또 구복(九服)이 있으니, 후(侯)•전(甸)•남(男)•채(采)•위(衛)•만(蠻)•이(夷)•진(鎭)•번(蕃)으로 이와 같지 않다. 종주(宗周)는 호경(鎬京)이다. 동(董)은 감독함이다. 치관(治官)은 무릇 일을 다스리는 관원이다. 성왕(成王)이 만방(萬邦)을 어루만지고 임하여 후(侯)•전(甸)을 순수(巡狩)해서 불정(不庭)의 나라들을 사방으로 정토(征討)하여 천하의 백성을 편안히 하니, 육복(六服)의 제후의 군주들이 주(周)나라 덕(德)을 받들지 않는 자가 없으므로 성왕(成王)이 호경(鎬京)으로 돌아와 일을 다스리는 관원을 감독하여 바로잡음을 말한 것이니, 외양(外攘)『[밖으로 적을 물리침]』하는 공이 거행됨에 내치(內治)의 닦음을 더욱 엄하게 한 것이다.』

『 당(唐)나라 공씨(孔氏)가 말하였다. “주(周)나라 제도에는 만국(萬國)이 없으며, 오직 회이(淮夷)를 정벌한 것이요 사방을 정벌한 것이 아니니, 이는 크게 말했을 뿐이다.”』

 

*서경 ; 주서 ; 주관 ; 제2장

 

▣ 제2장(第二章)

 

『王曰 若昔大猷에 制治于未亂하며 保邦于未危하시니라』

 

『 왕(王)이 말씀하였다. “옛날 대유(大猷)『[대도(大道)]』의 세상에는 혼란하지 않을 때에 다스림을 만들고 위태롭지 않을 때에 나라를 보존하였다.”』

 

『若昔大道之世에 制治保邦于未亂未危之前하니 卽下文明王立政이 是也라』

 

『 옛날 대도(大道)의 세상에는 아직 혼란하고 위태롭기 전에 다스림을 만들고 나라를 보존하였으니, 하문(下文)에 명왕(明王)이 정사를 세웠다는 것이 이것이다.』

 

*서경 ; 주서 ; 주관 ; 제3장

 

▣ 제3장(第三章)

 

『曰 唐虞稽古하여 建官惟百하시니 內有百揆四岳하고 外有州牧侯伯하여 庶政이 惟和하여 萬國이 咸寧하니라 夏商은 官倍하나『(하여)』 亦克用乂하니 明王立政은 不惟其官이라 惟其人이니라』

 

『 왕(王)이 말씀하셨다. “당(唐)•우(虞)가 옛날 제도를 상고하여 관원을 세우되 백(百)으로 하였으니, 안에는 백규(百揆)와 사악(四岳)이 있고 밖에는 주목(州牧)과 후백(侯伯)이 있어 모든 정사가 조화로와 만국(萬國)이 다 편안하였다. 하(夏)와 상(商)은 관원이 배가되었으나 또한 다스려졌으니, 명왕(明王)이 정사를 세움은 오직 관원을 많게 하려는 것이 아니요, 오직 훌륭한 인물을 얻을 뿐이었다.』

 

『百揆는 無所不總者요 四岳은 總其方岳者요 州牧은 各總其州者요 侯伯은 次州牧而總諸侯者也라 百揆, 四岳은 總治于內하고 州牧, 侯伯은 總治于外하여 內外相承하여 體統不紊이라 故로 庶政惟和하여 而萬國咸安이라 夏商之時엔 世變事繁하니 觀其會通하여 制其繁簡하여 官數加倍나 亦能用治하니 明王立政은 不惟其官之多라 惟其得人而已니라』

 

『 백규(百揆)는 총괄하지 않는 바가 없는 자이고, 사악(四岳)은 방악(方岳)을 총괄하는 자이고, 주목(州牧)은 각각 그 주(州)를 총괄하는 자이고, 후백(侯伯)은 주목(州牧)의 다음이 되어 제후를 총괄하는 자이다. 백규(百揆)와 사악(四岳)은 안에 다스림을 총괄하고 주목(州牧)과 후백(侯伯)은 밖에 다스림을 총괄하여, 내외가 서로 이어서 체통이 문란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모든 정사가 조화로워 만국(萬國)이 다 편안한 것이다. 하(夏)•상(商)의 때에는 세상이 변하고 일이 많아졌으니, 그 회(會)•통(通)『[회합(會合)과 변통(變通)]』을 보아 번(繁)•간(簡)을 맞게 하여 관원의 수가 배가(倍加)되었으나 또한 다스려졌으니, 명왕(明王)이 정사를 세움은 오직 관원을 많게 하려는 것이 아니요, 오직 훌륭한 인물을 얻을 뿐이었다.』

 

*서경 ; 주서 ; 주관 ; 제4장

 

▣ 제4장(第四章)

 

『今予小子는 祗勤于德하여 夙夜에 不逮하여 仰惟前代時若하여 訓迪厥官하노라』

 

『 이제 나 소자(小子)는 공경히 덕(德)에 부지런하여 밤낮으로 미치지 못할 듯이 여겨서 전대(前代)를 우러러 이에 순히 하여 관원들을 훈도(訓導)하노라.』

 

『逮는 及이요 時는 是요 若은 順也라 成王이 祗勤于德하여 早夜에 若有所不及然하니 蓋修德者는 任官之本也라』

 

『 체(逮)는 미침이요, 시(時)는 이것이요, 약(若)은 순함이다. 성왕(成王)이 덕(德)에 공경히 부지런해서 밤낮으로 미치지 못하는 바가 있는 듯이 여겼으니, 덕을 닦음은 관원을 임용하는 근본이다.』

 

*서경 ; 주서 ; 주관 ; 제5장

 

▣ 제5장(第五章)

 

『立太師太傅太保하노니 玆惟三公이니 論道經邦하며 燮理陰陽하나니 官不必備라 惟其人이니라』

 

『 태사(太師)•태부(太傅)•태보(太保)를 세우노니, 이가 삼공(三公)이니, 도(道)를 논하고 나라를 다스리며 음양(陰陽)을 조화하여 다스리니, 관원을 반드시 구비할 것이 아니요, 오직 그러한 사람이 있으면 임명하여야 한다.』

 

『立은 始辭也니 三公이 非始於此로되 立爲周家定制는 則始於此也라 賈誼曰 保者는 保其身體요 傅者는 傅之德義요 師는 道之敎訓이라하니 此所謂三公也라 陰陽은 以氣言이요 道者는 陰陽之理니 恒而不變者也라 易曰一陰一陽之謂道 是也라 論者는 講明之謂요 經者는 經綸之謂요 燮理者는 和調之也니 非經綸天下之大經, 參天地之化育者면 豈足以任此責이리오 故로 官不必備요 惟其人也라』

 

『 입(立)은 비로소란 말이니, 삼공(三公)이 이 때에 비롯된 것은 아니나 세워서 주(周)나라의 정한 제도를 삼은 것은 이 때에 비롯된 것이다. 가의(賈誼)가 말하기를 “보(保)는 신체를 보호함이요, 부(傅)는 덕의(德義)를 붙여줌이요, 사(師)는 교훈으로 인도함이다.” 하였으니, 이것이 이른바 삼공(三公)이다. 음양(陰陽)은 기(氣)로 말하였고 도(道)는 음양(陰陽)의 이치이니, 항상하여 변치 않는 것이다. 《주역(周易)》에 “한 번 음(陰)하고 한 번 양(陽)하는 것을 도(道)라 한다.” 한 것이 이것이다. 논(論)은 강명(講明)함을 이르고, 경(經)은 경륜함을 이르고, 섭리(燮理)는 화하여 고르는 것이니, 천하의 대경(大經)을 경륜하고 천지의 화육(化育)에 참여하는 자가 아니면 어찌 이 책임을 맡겠는가. 그러므로 관원을 굳이 구비할 것이 없고 오직 그러한 사람이 있으면 임명하는 것이다.』

 

*서경 ; 주서 ; 주관 ; 제6장

 

▣ 제6장(第六章)

 

『少師少傅少保는 曰三孤니 貳公弘化하여 寅亮天地하여 弼予一人하나니라』

 

『 소사(少師)•소부(少傅)•소보(少保)를 삼고(三孤)라 하니, 공(公)의 다음이 되어 조화를 넓혀 천지를 공경하여 밝혀서 나 한 사람을 보필한다.』

 

『孤는 特也니 三少는 雖三公之貳나 而非其屬官이라 故曰孤라 天地는 以形言이요 化者는 天地之用이니 運而無迹者也라 易曰範圍天地之化 是也라 弘者는 張而大之요 寅亮者는 敬而明之也라 公은 論道하고 孤는 弘化하며 公은 燮理陰陽하고 孤는 寅亮天地하며 公은 論於前하고 孤는 弼於後하니 公孤之分이 如此니라』

 

『 고(孤)는 특별함이니, 삼소(三少)는 비록 삼공(三公)의 이(貳)『[부관]』이나 속관(屬官)이 아니므로 고(孤)라 한 것이다. 천지(天地)는 형체로 말한 것이고 화(化)는 천지의 용(用)이니, 운행하되 흔적이 없는 것이다. 《주역(周易)》에 “천지의 조화를 범위한다.”는 것이 이것이다. 홍(弘)은 넓혀서 키움이요, 인량(寅亮)은 공경하여 밝힘이다. 공(公)은 도(道)를 논하고 고(孤)는 조화를 넓히며, 공(公)은 음양을 조화하여 다스리고 고(孤)는 천지를 공경하여 밝히며, 공(公)은 앞에서 논하고 고(孤)는 뒤에서 보필하니, 공(公)과 고(孤)의 구분이 이와 같다.』

 

*서경 ; 주서 ; 주관 ; 제7장

 

▣ 제7장(第七章)

 

『¾4宰는 掌邦治하니 統百官하고『(하여)』 均四海하나니라』

 

『 총재(¾4宰)는 나라의 다스림을 관장하니, 백관(百官)을 통솔하고 사해(四海)를 고르게 다스린다.』

 

『¾4은 大요 宰는 治也라 天官卿은 治官之長이니 是爲¾4宰라 內統百官하고 外均四海하니 蓋天子之相也라 百官異職이어늘 管攝하여 使歸于一을 是之謂統이요 四海異宜어늘 調劑하여 使得其平을 是之謂均이라』

 

『 총(¾4)은 큼이요, 재(宰)는 다스림이다. 천관경(天官卿)은 다스리는 관원의 우두머리이니, 이를 총재(¾4宰)라 한다. 안으로 백관을 통솔하고 밖으로 사해를 고르게 하니, 천자의 정승이다. 백관이 맡은 직책이 다른데 관섭(管攝)하여 하나에 돌아가게 함을 통(統)이라 이르며, 사해에 마땅함이 다른데 조제(調劑)하여 균평함을 얻게 함을 균(均)이라 이른다.』

 

*서경 ; 주서 ; 주관 ; 제8장

 

▣ 제8장(第八章)

 

『司徒는 掌邦敎하니 敷五典하여 擾兆民하나니라』

 

『 사도(司徒)는 나라의 교육을 관장하니, 오전(五典)을 펴서 조민(兆民)을 길들인다.』

 

『擾는 馴也라 地官卿은 主國敎化하니 敷君臣父子夫婦長幼朋友五者之敎하여 以馴擾兆民之不順者하여 而使之順也라 唐虞司徒之官이 固已職掌如此하니라』

 

『 요(擾)는 길들임이다. 지관경(地官卿)은 나라의 교화를 관장하니, 군신(君臣)•부자(父子)•부부(夫婦)•장유(長幼)•붕우(朋友) 다섯 가지의 가르침을 펴서 조민(兆民)의 순하지 않은 자를 길들여 순하게 하는 것이다. 당(唐)•우(虞) 시대에 사도(司徒)의 관직이 진실로 이미 주장하여 맡음이 이와 같았다.』

 

*서경 ; 주서 ; 주관 ; 제9장

 

▣ 제9장(第九章)

 

『宗伯은 掌邦禮하니 治神人하여 和上下하나니라』

 

『 종백(宗伯)은 나라의 예(禮)를 관장하니, 신(神)과 사람을 다스려 상하를 화(和)하게 한다.』

 

『春官卿은 主邦禮하니 治天神地祗人鬼之事하여 和上下尊卑等列이라 春官은 於四時之序에 爲長이라 故로 其官을 謂之宗伯이라 成周는 合樂於禮官하니 謂之和者는 蓋以樂而言也라』

 

『 춘관경(春官卿)은 나라의 예(禮)를 주관하니, 천신(天神)과 지기(地祗)와 인귀(人鬼)의 일을 다스려서 상하와 존비의 등렬(等列)을 화하게 한다. 춘관(春官)은 사시(四時)의 순서에 우두머리가 되므로 그 관원을 종백(宗伯)이라 한 것이다. 성주(成周)는 악(樂)을 예관(禮官)에 합하였으니, 화(和)라고 이른 것은 악(樂)을 가지고 말한 것이다.』

 

*서경 ; 주서 ; 주관 ; 제10장

 

▣ 제10장(第十章)

 

『司馬는 掌邦政하니 統六師하여 平邦國하나니라』

 

『 사마(司馬)는 나라의 정사를 관장하니, 육사(六師)를 통솔하여 방국(邦國)을 평치(平治)한다.』

 

『夏官卿은 主戎馬之事하여 掌國征伐하니 統御六軍하여 平治邦國이라 平은 謂强不得陵弱하고 衆不得暴寡하여 而人皆得其平也라 軍政은 莫急於馬라 故以司馬名官이라 何莫非政이리오마는 獨戎政을 謂之政者는 用以征伐하여 而正彼之不正이니 王政之大者也일새라』

 

『 하관경(夏官卿)은 융마(戎馬)의 일을 주관하여 나라의 정벌을 관장하니, 육군(六軍)을 통솔하여 방국(邦國)을 평치(平治)한다. 평(平)은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능멸하지 못하고 많은 자가 적은 자를 포악히 하지 못하여, 사람이 모두 공평함을 얻음을 이른다. 군정(軍政)은 말보다 급한 것이 없으므로 사마(司馬)라고 관명(官名)을 한 것이다. 어느 것인들 정사가 아니겠는가마는 유독 융정(戎政)『[군정(軍政)]』을 정(政)이라 이른 것은 정벌하여 저의 바르지 않은 것을 바로잡으니, 왕정(王政)의 큰 것이기 때문이다.』

 

*서경 ; 주서 ; 주관 ; 제11장

 

▣ 제11장(第十一章)

 

『司寇는 掌邦禁하니 詰姦慝하며 刑暴『(포)』亂하나니라』

 

『 사구(司寇)는 나라의 금함을 관장하니, 간특함을 다스리며 포악하여 난을 일으키는 자들을 형벌한다.』

 

『秋官卿은 主寇賊法禁하니 群行攻劫曰寇라 詰姦慝하고 刑彊暴作亂者라 掌刑을 不曰刑而曰禁者는 禁於未然也라 呂氏曰 姦慝은 隱而難知라 故謂之詰이니 推鞠窮詰而求其情也요 暴亂은 顯而易見하니 直刑之而已니라』

 

『 추관경(秋官卿)은 구적(寇賊)과 법금(法禁)을 주관하니, 떼지어 다니며 공격하고 겁탈함을 구(寇)라 한다. 간특함을 다스리고 강포(强暴)하여 난을 일으키는 자를 형벌한다. 형(刑)을 관장함을 형(刑)이라고 말하지 않고 금(禁)이라고 말한 것은 미연에 금하기 때문이다.』

『 여씨(呂氏)가 말하였다. “간특은 숨어서 알기 어려우므로 힐(詰)이라고 일렀으니 추국(推鞠)하고 궁힐(窮詰)『[힐문]』하여 그 실정을 구하는 것이며, 포란(暴亂)은 드러나서 보기 쉬우니 곧바로 형벌할 뿐이다.”』

 

*서경 ; 주서 ; 주관 ; 제12장

 

▣ 제12장(第十二章)

 

『司空은 掌邦土하니 居四民하며 時地利하나니라』

 

『 사공(司空)은 나라의 땅을 관장하니, 사민(四民)을 거하게 하며 지리(地利)를 때에 맞추어 일으킨다.』

 

『冬官卿은 主國空土하여 以居士農工商四民하고 順天時하여 以興地利라 按周禮冬官은 則記考工之事하여 與此不同하니 蓋本闕冬官이어늘 漢儒以考工記當之也라』

 

『 동관경(冬官卿)은 나라의 빈 땅을 주관하여 사(士)•농(農)•공(工)•상(商)의 사민(四民)을 거하게 하고, 천시(天時)에 순응하여 지리(地利)를 일으킨다. 살펴보건대 《주례(周禮)》의 〈동관(冬官)〉은 고공(考工)의 일을 기록하여 이와 같지 않으니, 본래 〈동관(冬官)〉이 빠져 있었는데 한(漢)나라 유자들이 ‘고공기(考工記)’로 대신한 것이다.』

 

*서경 ; 주서 ; 주관 ; 제13장

 

▣ 제13장(第十三章)

 

『六卿이 分職하여 各率其屬하여 以倡九牧하여 阜成兆民하나니라』

 

『 육경(六卿)이 직책을 나누어 각기 관속을 거느려서 구목(九牧)을 창도하여 조민(兆民)을 후하게 이룬다.』

 

『六卿分職하여 各率其屬官하여 以倡九州之牧하여 自內達之於外하여 政治明하고 敎化洽하여 兆民之衆이 莫不阜厚而化成也라 按周禮에 每卿은 六十屬이니 六卿은 三百六十屬也라 呂氏曰 ¾4宰는 相天子, 統百官하니 則司徒以下 無非¾4宰所統이어늘 乃均列一職하여 而倂數之爲六者는 綱在網中也일새라 『乾坤之與六子주:건곤지여륙자』 쯂列於八方하고 ¾4宰之與五卿이 쯂列於六職也라』

 

『 육경(六卿)이 직책을 나누어 각각 그 속관(屬官)을 거느려 구주(九州)의 목(牧)을 창도해서 안으로부터 밖에 이르게 하여 정치가 밝아지고 교화가 흡족해서 조민(兆民)의 무리가 부후(阜厚)하여 화성(化成)하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살펴보건대 《주례(周禮)》에 경(卿)마다 60명의 관속이 있으니, 육경(六卿)은 총 3백60명의 관속이 있는 것이다.』

『 여씨(呂氏)가 말하였다. “총재(¾4宰)는 천자를 도와 백관을 통솔하니, 사도(司徒) 이하는 총재의 통솔하는 바 아님이 없는데, 마침내 똑같이 한 직책에 나열하여 아울러 세어서 육경(六卿)이라 한 것은 그물에 벼릿줄이 그물 가운데 있기 때문이다. 건(乾)•곤(坤)과 육자(六子)가 아울러 팔방(八方)에 진열되고, 총재(¾4宰)와 오경(五卿)이 아울러 육직(六職)에 진열된 것이다.』

 

*서경 ; 주서 ; 주관 ; 제14장

 

▣ 제14장(第十四章)

 

『六年에 五服이 一朝어든 又六年에 王乃時巡하여 考制度于四岳이어시든 諸侯各朝于方岳이어든 大明黜陟하나니라』

『 6년에 오복(五服)이 한 번 조회하거든 또 6년에 왕이 때로 순행하여 제도를 사악(四岳)에게서 상고하며, 제후는 각기 방악(方岳)에서 조회하거든 크게 출척(黜陟)을 밝힌다.”』

 

『五服은 侯甸男采衛也니 六年에 一朝會京師어든 十二年에 王一巡狩라 時巡者는 猶舜之四仲巡狩也요 考制度者는 猶舜之協時月正日同律度量衡等事也라 諸侯各朝方岳者는 猶舜之肆覲東后也요 大明黜陟者는 猶舜之黜陟幽明也라 疏數『(삭)』異時하고 繁簡異制하니 帝王之治 因時損益者를 可見矣니라』

 

『 오복(五服)은 후(侯)•전(甸)•남(男)•채(采)•위(衛)이니, 6년에 한 번 경사(京師)에 조회하면 12년에 왕이 한 번 순수(巡狩)한다. 때로 순수한다는 것은 순(舜)이 사중(四仲)에 순수한 것과 같은 것이며, 제도를 상고한다는 것은 순(舜)이 시(時)와 월(月)을 맞추고 일(日)을 바로잡으며, 율(律)•도(度)•양(量)•형(衡)를 통일하는 등의 일과 같은 것이다. 제후가 각기 방악(方岳)에서 조회한다는 것은 순(舜)이 동후(東后)를 만나본 것과 같은 것이며, 크게 출척(黜陟)을 밝힌다는 것은 순(舜)이 유명(幽明)을 출척함과 같은 것이다. 드물게 하고 자주함이 때가 다르고, 번거롭고 간략함이 제도가 다르니, 제왕의 다스림이 때에 따라 손익(損益)『[가감(加減)]』함을 볼 수 있다.』

 

*서경 ; 주서 ; 주관 ; 제15장

 

▣ 제15장(第十五章)

 

『王曰 嗚呼라 凡我有官君子아 欽乃攸司하며 愼乃出令하라 令出은 惟行이라 弗惟反이니 以公滅私하면 民其允懷하리라』

 

『 왕이 말씀하였다. “아! 무릇 우리의 관직을 소유한 훌륭한 군자들아! 너희가 맡은 직책을 공경하며 너희가 내는 명령을 삼가라. 명령을 냄은 행하려 함이요 역행하려 함이 아니니, 공(公)으로 사(私)를 멸하면 백성들이 믿고 복종할 것이다.』

 

『建官之體統은 前章에 旣訓迪之矣요 此則居守官職者咸在하니 曰凡有官君子者는 合尊卑小大而同訓之也라 反者는 令出에 不可行而壅逆之謂라 言敬汝所主之職하고 謹汝所出之令하라 令出은 欲其行이니 不欲其壅逆而不行也라 以天下之公理로 滅一己之私情이면 則令行而民莫不敬信懷服矣리라』

 

『 관직을 세운 체통은 전장(前章)에 이미 훈적(訓迪)하였고, 여기에는 관직에 거하여 맡은 자가 모두 있으니, ‘무릇 관직을 소유한 군자’라고 말한 것은 존비(尊卑)와 소대(小大)를 합하여 함께 훈계한 것이다. 반(反)은 명령이 나옴에 행할 수가 없어 막히고 거슬림을 이른다. 너희가 맡은 바의 직책을 공경하고 너희가 내는 바의 명령을 삼가라. 명령을 냄은 행하려고 하는 것이니, 막히고 거슬려 행하지 않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천하의 공리(公理)로 일신(一身)의 사정(私情)을 멸하면 명령이 행해져서 백성들이 공경하여 믿고 그리워하여 복종하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

 

*서경 ; 주서 ; 주관 ; 제16장

 

▣ 제16장(第十六章)

 

『學古入官하여 議事以制하여사 政乃不迷하리니 其爾는 典常으로 作之師하고 無以利口로 亂厥官하라 蓄疑하면 敗謀하며 怠忽하면 荒政하며 不學하면 牆面이라 쬜事惟煩하리라』

 

『 옛법을 배우고서 관(官)에 들어가 일을 의논하여 맞게 하여야 정사가 마침내 잘못되지 않을 것이니, 너희는 떳떳한 법을 스승으로 삼고, 말 잘하는 입으로 관직을 어지럽히지 말라. 의심이 쌓이면 계책을 무너뜨리며, 게으르고 소홀히 하면 정사를 황폐시키며, 배우지 않으면 담장에 얼굴을 대고 서 있는 것과 같아서 일에 임함에 번거로울 것이다.』

 

『學古는 學前代之法也라 制는 裁度『(탁)』也요 迷는 錯繆『(착류)』也라 典常은 當代之法也라 周家典常은 皆文武周公之所講턛이라 至精至備하니 凡쬜官者 謹師之而已요 不可³&³&利口로 更『(경)』改而紛亂之也라 積疑不決하면 必敗其謀하고 怠惰忽略하면 必荒其政하며 人而不學이면 其猶正牆面而立하니 必無所見하여 而擧錯煩擾也리라』

『○ 蘇氏曰 鄭子産이 鑄刑書한대 晉叔向이 譏之曰 昔先王이 議事以制하여 不爲刑µ?이라하니 其言이 蓋取諸此라 先王은 人法竝任이로되 而任人爲多라 故로 律은 設大法而已요 其輕重之詳은 則付之人하여 臨事而議하여 以制其出入이라 故로 刑簡而政淸이라 自唐以前으로는 治罪科條 止於今『律令주:율령』而已하니 人之所犯은 日變無窮하고 而律令은 有限이라 以有限으로 治無窮이로되 不聞有所闕하니 豈非人法兼行하여 吏猶得臨事而議乎아 今엔 律令之外에 科條數萬이로되 而不足於用하여 有司請立新法者 日益不已하니 嗚呼라 任法之弊 一至於此哉인저』

 

『 학고(學古)는 전대(前代)의 법(法)을 배우는 것이다. 제(制)는 재탁(裁度)『[헤아려 맞게 함]』함이요, 미(迷)는 착류(錯繆)『[그릇되고 잘못됨]』함이다. 전상(典常)은 당대의 법이다. 주(周)나라의 전상(典常)은 모두 문왕(文王)•무왕(武王)•주공(周公)이 강론하고 계획한 것이므로 지극히 정밀하고 지극히 구비하였으니, 무릇 관직에 임한 자들은 삼가 이것을 본받을 뿐이요, 첩첩(³&³&)히 말 잘하는 입으로 고쳐서 분란시키지 말아야 한다. 의심을 쌓고 결단하지 않으면 반드시 계책을 무너뜨리고, 게으르고 소홀히 하면 반드시 정사를 황폐시키며, 사람이 배우지 않으면 바로 얼굴을 담장에 대고 선 것과 같으니, 반드시 보는 바가 없어서 거조(擧措)가 번거롭고 어지러울 것이다.』

『 ○ 소씨(蘇氏)가 말하였다. “정(鄭)나라 자산(子産)이 형서(刑書)를 주조(鑄造)하자, 진(晉)나라 숙향(叔向)이 비판하기를 ‘옛날 선왕(先王)은 일을 의논하여 맞게 해서 형벽(刑µ?)의 글을 만들지 않았다’ 하였으니, 그 말이 여기에서 취해 온 것이다. 선왕(先王)은 사람과 법에 함께 맡겼으나 사람에게 맡김이 많았다. 이 때문에 율(律)은 큰 법을 설치했을 뿐이요, 경중(輕重)의 자세함은 사람에게 맡겨 일에 임해 의논해서 그 출입(出入)을 맞게 하였으므로 형벌이 간략하고 정사가 깨끗하였다. 당(唐)나라로부터 그 이전에는 죄를 다스리는 과조(科條)가 지금의 율령(律令)에 그쳤을 뿐이니, 사람들의 범죄는 날로 변하여 무궁하고 율령(律令)은 한계가 있다. 한계가 있는 율령으


로 무궁한 죄를 다스리되 부족한 바가 있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으니, 어찌 사람과 법이 함께 행해져서 관리가 오히려 일에 임해 의논할 수 있었던 때문이 아니겠는가. 지금은 율령(律令) 이외에 과조(科條)가 수만 가지인데도 씀에 부족해서 유사(有司)가 새 법을 만들 것을 청하는 자가 날로 늘어나 그치지 않으니, 아! 법에 맡기는 폐단이 마침내 이에 이르렀단 말인가.』

 

*서경 ; 주서 ; 주관 ; 제17장

 

▣ 제17장(第十七章)

 

『戒爾卿士하노니 功崇은 惟志요 業廣은 惟勤이니 惟克果斷하야사 乃罔後艱하리라』

 

『 너희 경사(卿士)들에게 경계하노니, 공(功)이 높음은 뜻 때문이요, 업(業)이 넓음은 부지런함 때문이니, 능히 과단하여야 뒤에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此下는 申戒卿士也라 王氏曰 功以智崇이요 業以仁廣이요 斷以勇克이니 此三者는 『天下之達道주:천하지달도』也라 呂氏曰 功者는 業之成也요 業者는 功之積也니 崇其功者는 存乎志요 廣其業者는 存乎勤이요 勤은 由志而生하고 志는 待勤而遂하며 雖有二者라도 當幾而不能果斷이면 則志與勤虛用하여 而終蹈後艱矣리라』

 

『 이 이하는 경사(卿士)들을 거듭 경계한 것이다. 왕씨(王氏)가 말하였다. “공(功)은 지(智)로 말미암아 높아지고, 업(業)은 인(仁)으로 말미암아 넓어지고, 과단은 용맹으로 말미암아 능해지니, 이 세 가지는 천하의 달도(達道)이다.”』

『 여씨(呂氏)가 말하였다. “공은 업이 이루어진 것이요 업은 공이 쌓여진 것이니, 공을 높이는 것은 뜻에 달려 있고, 업을 넓히는 것은 부지런함에 달려 있으며, 부지런함은 뜻으로 말미암아 생기고, 뜻은 부지런함을 기다려 이루어진다. 그러나 비록 이 두 가지가 있더라도 기회를 당하여 과단하지 못하면 뜻과 부지런함이 헛되이 쓰여져서 끝내 뒤에 어려움을 밟을 것이다.”』

 

*서경 ; 주서 ; 주관 ; 제18장

 

▣ 제18장(第十八章)

 

『『位不期驕주:위불기교』며 祿不期侈니 恭儉惟德이요 無載爾僞하라 作德하면 心逸하여 日休하고 作僞하면 心勞하여 日拙하나니라』

 

『 지위는 교만함과 기약하지 않아도 교만해지고 녹(祿)은 사치함과 기약하지 않아도 사치해지니, 공검(恭儉)을 덕으로 삼고 너의 거짓을 행하지 말라. 덕(德)을 행하면 마음이 편안하여 날로 아름다워지고, 거짓을 행하면 마음이 수고로워 날로 졸렬해진다.』

 

『貴는 不與驕期로되 而驕自至하고 祿은 不與侈期로되 而侈自至라 故로 居是位면 當知所以恭이요 饗是祿이면 當知所以儉이라 然恭儉을 豈可以聲音笑貌爲哉리오 當有實得於己요 不可從事於僞라 作德하면 則中外惟一이라 故로 心逸而日休休焉하고 作僞하면 則헩護不暇라 故로 心勞而日著其拙矣라 或曰 期는 待也니 位는 所以崇德이요 非期於爲驕며 祿은 所以報功이요 非期於爲侈라하니 亦通이니라』

 

『 귀함은 교만함과 기약하지 않아도 교만함이 스스로 이르고, 녹은 사치함과 기약하지 않아도 사치함이 스스로 이른다. 그러므로 이 지위에 거하면 마땅히 공손할 것을 알아야 하고, 이 녹을 누리면 마땅히 검소할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공손함과 검소함을 어찌 음성과 웃음과 모양으로 하겠는가. 마땅히 자신에게 실제로 얻음이 있어야 하고, 거짓에 종사하지는 말아야 한다. 덕을 하면 중심과 외모가 하나가 되므로 마음이 편안하여 날로 아름다워지고, 거짓을 행하면 잘못을 가리고 비호하기에 겨를이 없으므로 마음이 수고로워 날로 졸렬함이 드러나는 것이다. 혹자는 말하기를 “기(期)는 기대함이니, 지위는 덕이 있는 이를 높이기 위한 것이요 교만한 짓을 하라고 기대한 것이 아니며, 녹은 공이 있는 자에게 보답하기 위한 것이요 사치함을 하라고 기대한 것이 아니다.” 하니, 또한 통한다.』

 

*서경 ; 주서 ; 주관 ; 제19장

 

▣ 제19장(第十九章)

 

『居寵思危하여 罔不惟畏하라 弗畏면 入畏하리라』

 

『 총성(寵盛)에 거하면 위태로움을 생각하여 두려워하지 않음이 없도록 하라. 두려워하지 않으면 두려움으로 들어갈 것이다.』

 

『居寵盛이면 則思危辱하여 當無所不致其祗畏니 苟不知祗畏하면 則入于可畏之中矣리라 後之患失者는 與思危相似나 然思危者는 以寵利爲憂하고 患失者는 以寵利爲樂하니 所存이 大不同也니라』

 

『 총성(寵盛)에 거하면 위태로움과 욕됨을 생각하여 마땅히 공경과 두려움을 지극히 하지 않음이 없어야 하니, 만일 공경하고 두려워할 줄을 알지 못하면 두려워할 만한 가운데로 들어갈 것이다. 후세에 부귀(富貴)를 잃을까 근심하는 자는 위태로움을 생각하는 자와 서로 유사하나 위태로움을 생각하는 자는 총리(寵利)를 걱정으로 삼고, 부귀를 잃을까 근심하는 자는 총리(寵利)를 낙으로 삼으니, 마음에 두고 있는 것이 크게 같지 않다.』

 

*서경 ; 주서 ; 주관 ; 제20장

 

▣ 제20장(第二十章)

 

『推賢讓能하면 庶官이 乃和하고 不和하면 政쮙하리니 擧能其官이 惟爾之能이며 稱匪其人이 惟爾不任이니라』

 

『 어진이에게 미루고 능한 이에게 사양하면 모든 관원들이 화(和)하고, 화하지 않으면 정사가 잡될 것이니, 천거한 자가 관직을 잘 수행하면 이는 너희가 능한 것이며, 천거한 자가 훌륭한 사람이 아니면 이는 너희가 책임을 감당하지 못하는 것이다.”』

 

『賢은 有德者也요 能은 有才者也라 王氏曰 道는 二니 義利而已라 推賢讓能은 所以爲義니 大臣이 出於義면 則莫不出於義하리니 此庶官所以不爭而和요 蔽賢害能은 所以爲利니 大臣이 出於利면 則莫不出於利하리니 此庶官所以爭而不和니 庶官不和면 則政必雜亂而不理矣리라 稱亦擧也니 所擧之人이 能修其官이면 是亦爾之所能이요 擧非其人이면 是亦爾不勝任이라 古者大臣이 以人事君에 其責如此하니라』

 

『 현(賢)은 덕(德)이 있는 자이고, 능(能)은 재주가 있는 자이다. 왕씨(王氏)가 말하였다. “도(道)『[길]』는 두 가지이니 의(義)와 이(利) 뿐이다. 어진이에게 미루고 능한 이에게 사양함은 의(義)를 하는 것이니, 대신(大臣)이 의(義)에서 나오면 의(義)에서 나오지 않음이 없을 것이니, 이는 여러 관원들이 다투지 아니하여 화(和)한 까닭이며, 현자(賢者)를 가리고 능한 이를 해침은 이(利)를 하는 것이니, 대신이 이(利)에서 나오면 이(利)에서 나오지 않음이 없을 것이니, 이는 여러 관원들이 다투어 불화(不和)하게 되는 이유이니, 여러 관원이 불화(不和)하면 정사가 반드시 잡란하여 다스려지지 못할 것이다.”』

『 칭(稱) 또한 듦이니, 들어서 쓴 사람이 관직을 잘 수행하면 이 또한 너희가 능한 것이며, 들어서 쓴 사람이 현자가 아니면 이 또한 너희가 책임을 감당하지 못하는 것이다. 옛날 대신(大臣)이 사람으로써 군주를 섬김에 그 책임이 이와 같았다.』

 

*서경 ; 주서 ; 주관 ; 제21장

 

▣ 제21장(第二十一章)

 

『王曰 嗚呼라 三事쨑大夫아 『敬爾有官하며 亂爾有政주:경이유관』하여 以佑乃µ?하여 永康兆民하여 萬邦이 惟無쪝케하라』

 

『 왕이 말씀하였다. “아! 삼사(三事)와 대부(大夫)들아. 네가 보유한 관직을 공경히 수행하며, 네가 보유한 정사를 다스려서 너희 군주를 도와 길이 조민(兆民)을 편안히 해서 만방(萬邦)이 싫어함이 없게 하라.”』

 

『三事는 卽立政三事也라 亂은 治也라 篇終에 歎息하여 上自三事로 下至大夫히 而申戒勅之也라 其不及公孤者는 公孤는 德尊位隆하여 非有待於戒勅也일새니라』

 

『 삼사(三事)는 곧 〈입정(立政)〉의 삼사(三事)이다. 난(亂)은 다스림이다. 편의 마지막에 탄식하여 위로 삼사(三事)로부터 아래로 대부(大夫)에 이르기까지 거듭 경계하고 신칙한 것이다. 공(公)•고(孤)에 미치지 않은 것은 공(公)•고(孤)는 덕이 높고 지위가 높아서 경계하고 신칙함을 기다림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서경 ; 주서 ; 군진(君陳)

 

▣ 군진(君陳)

『君陳은 臣名이라 唐孔氏曰 周公이 遷殷頑民於下都하고 周公親自監之러니 周公旣歿에 成王이 命君陳하여 代周公하니 此其策命之詞라 史錄其書하고 以君陳名篇이라하니 今文無, 古文有하니라』

『 군진(君陳)은 신하의 이름이다. 당(唐)나라 공씨(孔氏)는 말하기를 “주공(周公)이 은(殷)나라의 완악한 백성들을 하도(下都)『[낙양(洛陽)]』에 옮기고 주공(周公)이 친히 감시하였는데, 주공(周公)이 별세하자 성왕(成王)이 군진(君陳)을 명하여 주공(周公)을 대신하게 하니, 이것이 그 책명(策命)한 말이다. 사관(史官)이 그 글을 기록하고 군진(君陳)이라고 편명을 하였다.” 하였으니, 금문(今文)에는 없고 고문(古文)에는 있다.』

 

『○ 서경 ; 주서 ; 군진 ; 제1장+1』

『○ 서경 ; 주서 ; 군진 ; 제2장+2』

『○ 서경 ; 주서 ; 군진 ; 제3장+3』

『○ 서경 ; 주서 ; 군진 ; 제4장+4』

『○ 서경 ; 주서 ; 군진 ; 제5장+5』

『○ 서경 ; 주서 ; 군진 ; 제6장+6』

『○ 서경 ; 주서 ; 군진 ; 제7장+7』

『○ 서경 ; 주서 ; 군진 ; 제8장+8』

『○ 서경 ; 주서 ; 군진 ; 제9장+9』

『○ 서경 ; 주서 ; 군진 ; 제10장+10』

『○ 서경 ; 주서 ; 군진 ; 제11장+11』

『○ 서경 ; 주서 ; 군진 ; 제12장+12』

『○ 서경 ; 주서 ; 군진 ; 제13장+13』

『○ 서경 ; 주서 ; 군진 ; 제14장+14』

 

*서경 ; 주서 ; 군진 ; 제1장

 

▣ 제1장(第一章)

 

『王若曰 君陳아 惟爾令德은 『孝恭이니 惟孝주:효공유효』하며 友于兄弟하여 克施有政할새 命汝하여 尹玆東郊하노니 敬哉하라』

 

『 왕(王)이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군진(君陳)아! 너의 훌륭한 덕은 효도와 공손함이니, 효도하고 형제에게 우애하여 능히 정사에 시행하기에 너에게 명하여 이 동교(東郊)를 다스리게 하노니, 공경하라.』

 

『言君陳이 有令德하여 事親孝하고 事上恭하니 惟其孝友於家라 是以로 能施政於邦이라 孔子曰 居家理라 故로 治可移於官이라하시니라 陳氏曰 天子之國은 五十里爲近郊니 自王城言之하면 則下都는 乃東郊之地라 故로 君陳, 畢命에 皆指下都爲東郊하니라』

 

『 군진(君陳)이 훌륭한 덕(德)이 있어 어버이를 섬김이 효성스럽고 윗사람을 섬김에 공손하였으니, 집에서 효도하고 우애하였기 때문에 나라에 정사를 베풀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공자(孔子)가 말씀하기를 “집에 거(居)함에 다스려지기 때문에 다스려짐을 관청에 옮길 수 있다.” 하였다.』

『 진씨(陳氏)가 말하기를 ‘천자의 나라는 50리가 근교(近郊)가 되니, 왕성(王城)으로부터 말하면 하도(下都)는 바로 동교(東郊)의 땅이다. 그러므로 〈군진(君陳)〉과 〈필명(畢命)〉에 모두 하도(下都)를 가리켜 동교(東郊)라 하였다.”』

 

*서경 ; 주서 ; 군진 ; 제2장

 

▣ 제2장(第二章)

 

『昔에 周公이 師保萬民하신대 民懷其德하나니 往愼乃司하여 玆率厥常하여 懋昭周公之訓하면 惟民其乂하리라』

 

『 옛날에 주공(周公)이 만민(萬民)을 가르치고 보호하였으므로 백성들이 그 덕을 그리워하니, 가서 네가 맡은 직책을 삼가 그 떳떳함을 따라서 주공(周公)의 가르침을 힘써 밝히면 백성들이 다스려질 것이다.』

 

『周公之在東郊에 有師之尊하고 有保之親하니 師敎之하고 保安之하여 民懷其德하나니 君陳之往에 但當謹其所司하여 率循其常하여 勉明周公之舊訓이면 則民其治矣라 蓋周公旣歿에 民方思慕周公之訓하니 君陳이 能發明而光大之면 固宜其翕然聽順也라』

 

『 주공(周公)이 동교(東郊)에 있을 적에 스승의 존귀함이 있고 보(保)의 친함이 있었다. 스승이 되어 가르치고 보(保)가 되어 편안히 하여 백성들이 그 덕을 그리워하고 있으니, 군진(君陳)이 감에 다만 맡은 바를 삼가 그 떳떳함을 따라서 주공(周公)의 옛 가르침을 힘써 밝히면 백성들이 다스려질 것이다. 주공(周公)이 별세함에 백성들이 막 주공(周公)의 가르침을 사모하고 있으니, 군진(君陳)이 발명하여 밝히고 크게 하면 진실로 흡연(翕然)히 따라 순종할 것이다.』

 

*서경 ; 주서 ; 군진 ; 제3장

 

▣ 제3장(第三章)

 

『我聞호니 曰 至治는 馨香하여 感于神明하나니 黍稷이 非馨이라 明德이 惟馨이라하니 爾尙式時周公之猷訓하여 惟日孜孜하여 無敢逸豫하라』

 

『 내 들으니 이르기를 ‘지극한 정치는 향기로워 신명(神明)에 감동되니 서직(黍稷)이 향기로운 것이 아니라 밝은 덕이 향기롭다.’ 하였다. 너는 부디 이 주공(周公)의 유훈(猷訓)을 본받아서 날로 부지런히 하고 부지런히 하여 감히 일예(逸豫)하지 말라.』

 

『呂氏曰 成王이 旣勉君陳昭周公之訓하고 復擧周公精微之訓하여 以告之하니 至治馨香以下四語는 所謂周公之訓也라 旣言此하고 而揭之以爾尙式是周公之猷訓이면 則是四言은 爲周公之訓이 明矣라 物之精華는 固無二體나 然形質止而氣臭升하니 『止者는 有方하고 升者는 無間주:지자유방』하니 則馨香者는 精華之上達者也라 至治之極에 馨香發聞하여 感格神明하여 不疾而速하니 凡昭薦黍稷之苾芬이 是豈黍稷之馨哉아 所以苾芬者는 實明德之馨也라 至治는 擧其成이요 明德은 循其本이니 非有二馨香也라 周公之訓이 固爲精微어시늘 而擧以告君陳하니 尤當其可라 自殷頑民言之하면 欲其感格인댄 非可刑驅而勢迫이니 所謂洞達無間者를 蓋當深省也요 自周公法度言之하면 典章雖具나 苟無前人之德이면 則索然萎틦하여 徒爲陳迹也라 故로 勉之以用是猷訓하여 惟日孜孜하여 無敢逸豫焉이라 是訓也 至精至微하니 非日新不已하여 深致敬篤之功이면 孰能與於斯리오』

 

『 여씨(呂氏)가 말하였다. “성왕(成王)이 이미 군진(君陳)에게 주공(周公)의 가르침을 밝힐 것을 권면하고 다시 주공(周公)의 정미한 가르침을 들어 고(告)하였으니, ‘지치형향(至治馨香)’ 이하의 네 말씀은 이른바 주공(周公)의 가르침이란 것이다. 이미 이것을 말하고 “너는 부디 주공(周公)의 유훈(猷訓)을 본받으라.”고 게시하였다면 이 네 말씀은 주공(周公)의 가르침이 됨이 분명하다.”』

『 물건의 정화(精華)는 진실로 두 체(體)가 없으나 형질(形質)은 그치고 기취(氣臭)는 올라간다. 그치는 것은 방소(方所)가 있고 올라가는 것은 간격이 없으니, 형향(馨香)은 정화(精華)가 위로 도달하는 것이다. 지치(至治)가 지극함에 형향(馨香)이 발문(發聞)『[풍김]』하여 신명(神明)을 감동시켜서 빠르지 않으면서도 속하니, 무릇 향기로운 서직(黍稷)을 밝게 올리는 것이 어찌 서직(黍稷)의 향기로움 때문이겠는가. 향기로운 까닭은 실로 명덕(明德)이 향기롭기 때문이다. 지치(至治)는 그 이룸을 든 것이요, 명덕(明德)은 그 근본을 따른 것이니, 두 가지 향기로움이 있는 것이 아니다. 주공(周公)의 가르침이 진실로 정미한데 들어서 군진(君陳)에게 고하였으니, 더욱 그 가(可)함에 마땅하다. 은(殷)나라의 완악한 백성을 가지고 말하면 이들을 감동시키고자 할진댄 형벌로 몰고 세력으로 핍박할 것이 아니니, 이른바 ‘통달(通達)하여 간격이 없다’는 것을 마땅히 깊이 살펴야 할 것이며, 주공(周公)의 법도를 가지고 말하면 전장(典章)이 모두 갖춰졌으나 만약 전인(前人)의 덕이 없으면 색연(索然)히 위날(萎틦)『[피폐]』하여 한갓 묵은 자취가 될 뿐이다. 그러므로 이 유훈(猷訓)을 따라 날로 부지런히 부지런히 해서 감히 일예(逸豫)하지 말라고 권면한 것이다. 이 교훈은 지극히 정하고 지극히 은미하니, 날로 새로워지고 그치지 아니하여 공경하고 돈독히 하는 공부를 깊이 이루는 자가 아니면 누가 능히 여기에 참여하겠는가.』

 

*서경 ; 주서 ; 군진 ; 제4장

 

▣ 제4장(第四章)

 

『凡人이 未見聖하여는 若不克見하다가 旣見聖하여는 亦不克由聖하나니 爾其戒哉어다 爾惟風이요 下民은 惟草니라』

 

『 무릇 사람들이 성인(聖人)을 보기 전에는 능히 보지 못할 듯이 여기다가 성인(聖人)을 보고 나서는 또한 성인(聖人)을 따르지 않으니, 너는 이것을 경계할지어다. 비유하면 너는 바람이고 하민(下民)은 풀이다.』

 

『未見聖하여는 如不能得見하다가 旣見聖하여는 亦不能由聖은 人情皆然이로되 君陳은 親見周公故로 特申戒以此하니라 君子之德은 風也요 小人之德은 草也니 草上『(尙)』之風이면 必偃하나니 君陳이 克由周公之訓이면 則商民이 亦由君陳之訓矣리라』

 

『 성인(聖人)을 보기 전에는 능히 보지 못할 듯이 여기다가 이미 성인(聖人)을 보고 나서는 또한 성인(聖人)을 따르지 못함은 인정(人情)이 다 그러하나 군진(君陳)은 친히 주공(周公)을 보았으므로 특별히 이로써 거듭 훈계한 것이다. 군자(君子)의 덕(德)은 바람이고 소인(小人)의 덕(德)은 풀이니, 풀에 바람이 가해지면 반드시 쏠리니, 군진(君陳)이 주공(周公)의 가르침을 잘 따르면 상(商)나라 백성들 또한 군진(君陳)의 가르침을 따를 것이다.』

 

*서경 ; 주서 ; 군진 ; 제5장

 

▣ 제5장(第五章)

 

『圖厥政호되 莫或不艱하여 有廢有興에 出入을 自爾師虞하여 庶言同則繹하라』

 

『 정사를 도모하되 혹시라도 어렵게 여기지 않음이 없어서 폐할 것이 있고 일으킬 것이 있을 적에 출입『[반복]』하기를 너의 무리들로부터 헤아려 여러 말이 같거든 다시 생각하라.』

 

『師는 衆이요 虞는 度『(탁)』也라 言圖謀其政호되 無小無大히 莫或不致其難하여 有所當廢하고 有所當興에 必出入反覆을 與衆共虞度之하여 衆論旣同이어든 則又紬繹而深思之而後行也라 蓋出入自爾師虞者는 所以合乎人之同이요 庶言同則繹者는 所以斷於己之獨이라 孟子曰 國人皆曰賢然後察之하고 國人皆曰可殺然後察之라하시니 庶言同則繹之謂也니라』

 

『 사(師)는 무리이고 우(虞)는 헤아림이다. 정사를 도모하되 작은 것이나 큰 것 할 것 없이 혹시라도 어렵게 여기지 않음이 없어서 마땅히 폐할 것이 있고 마땅히 일으킬 것이 있을 적에 반드시 출입하고 반복하기를 무리들과 함께 헤아려서 여러 의논이 이미 같거든 또 주역(紬繹)하여 깊이 생각한 뒤에 행하라고 말한 것이다. 출입하기를 너의 무리들로부터 헤아리라는 것은 남들과 똑같이 함에 합하는 것이며, 여러 말이 같거든 다시 생각하라는 것은 자기 혼자함에 결단하는 것이다. 맹자(孟子)가 말씀하기를 “국인(國人)이 모두 어질다고 말한 뒤에 살펴보고, 국인이 모두 죽일 만하다고 말한 뒤에 살펴본다.” 하였으니, 여러 말이 같으면 다시 생각함을 말한 것이다.』

 

*서경 ; 주서 ; 군진 ; 제6장

 

▣ 제6장(第六章)

 

『爾有嘉謀嘉猷어든 則入告爾后于內하고 爾乃順之于外하여 曰 斯謀斯猷 惟我后之德이라하라 嗚呼라 臣人이 咸若時라사 惟良顯哉인저』

 

『 너는 아름다운 꾀와 아름다운 계책이 있거든 들어와 안에서 네 임금에게 고(告)하고, 너는 마침내 밖에 가르쳐 말하기를 ‘이 꾀와 이 계책은 우리 임금님의 덕이다.’라고 하라. 아! 신하가 모두 이와 같이 하여야 어질고 드러날 것이다.”』

『言切於事를 謂之謀요 言合於道를 謂之猷니 道與事 非二也요 各擧其甚者言之라 良은 以德言이요 顯은 以名言이라 或曰 成王이 擧君陳前日已陳之善하여 而歎息以美之也라』

『○ 葛氏曰 成王이 殆失斯言矣라 欲其臣善則稱君은 人臣之細行也라 然君旣有是心인댄 至於有過면 則將使誰執哉아 禹는 聞善言則拜하시고 湯은 改過不吝하시니 端不爲此言矣시리라 嗚呼라 此其所以爲成王歟인저』

 

『 말이 일에 간절함을 모(謀)라 하고, 말이 도(道)에 합함을 유(猷)라 하니, 도(道)와 일은 두 가지가 아니요 각기 그 심한 것을 들어 말한 것이다. 양(良)은 덕으로 말하였고, 현(顯)은 명성으로 말한 것이다. 혹자는 말하기를 “성왕(成王)이 군진(君陳)이 전일(前日)에 이미 말했던 선언(善言)을 거론하여 탄식하고 찬미(贊美)한 것이다.” 한다.』

『 ○ 갈씨(葛氏)가 말하였다. “성왕(成王)이 자못 이 말씀을 실수하였다. 신하가 선(善)한 것에는 군주를 칭하고자 함은 신하의 작은 행실이다. 그러나 군주가 이러한 마음이 있다면 잘못이 있음에 이를 경우 장차 누구로 하여금 잡게 하겠는가. 우왕(禹王)은 선언(善言)을 들으면 절하였고, 탕왕(湯王)은 과실을 고침에 인색하지 않았으니, 결단코 이러한 말씀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 이것이 그 성왕(成王)이 된 이유일 것이다.”』

 

*서경 ; 주서 ; 군진 ; 제7장

 

▣ 제7장(第七章)

 

『王曰 君陳아 爾惟弘周公丕訓하여 無依勢作威하며 無倚法以削하고 寬而有制하며 從容以和하라』

 

『 왕(王)이 말씀하였다. “군진(君陳)아! 너는 주공(周公)의 큰 가르침을 넓혀서 세력에 의지하여 위엄을 부리지 말며, 법에 의지하여 〈백성들을〉 침삭(侵削)『[침해(侵害)]』하지 말고, 너그러우면서도 제재가 있으며, 종용(從容)히 하여 화(和)하도록 하라.』

 

『此篇에 言周公訓者三이니 曰懋昭라하고 曰式時라하고 至此則弘周公之丕訓이라하니 欲其益張而大之也라 君陳이 何至依勢以爲威하고 倚法以侵削者리오 然勢는 我所有也요 法은 我所用也니 喜怒予奪에 毫髮不於人而於己면 是私意也요 非公理也니 安能不作威以削乎아 君陳之世는 當寬和之時也라 然寬不可一於寬이요 必寬而有其制며 和不可一於和요 必從容以和之니 而後에 可以和厥中也니라』

 

『 이 편에 주공(周公)의 가르침을 말한 것이 세 번이니, “힘써 밝히라.” 하고, “이것을 본받으라.” 하였고, 이에 이르러서는 “주공(周公)의 큰 가르침을 넓히라.” 하였으니, 더욱 넓혀서 키우고자 한 것이다. 군진(君陳)이 어찌 세력에 의지하여 위엄을 부리며, 법에 의지하여 백성들을 침삭(侵削)함에 이르는 자이겠는가. 그러나 세력은 자신이 소유하였고 법은 자신이 쓰고 있으니, 기뻐하고 노여워하고 주고 빼앗음에 털끝만큼이라도 상대방에게 〈객관적으로〉 하지 않고 자신에게 한다면 이것은 사의(私意)이고 공리(公理)가 아니니, 어찌 위엄을 부리고 침해하지 않겠는가. 군진(君陳)의 세대는 마땅히 너그럽고 화해야 할 때이다. 그러나 너그러움은 너그러움에 한결같지 말고 반드시 너그러우면서도 제재가 있어야 하며, 화함은 화함에 한결같지 말고 반드시 종용히 화해야 하니, 그런 뒤에야 중도(中道)에 화할 것이다.』

 

*서경 ; 주서 ; 군진 ; 제8장

 

▣ 제8장(第八章)

 

『殷民이 在µ?이어든 予曰µ?이라도 爾惟勿µ?하며 予曰宥라도 爾惟勿宥하고 惟厥中하라』

 

『 은(殷)나라 백성이 형벌『[죄]』에 있거든 내가 죄를 주라 하여도 너는 죄를 주지 말며, 내가 용서하라 하여도 너는 용서하지 말고 오직 알맞게 하라.』

 

『上章은 成王이 慮君陳之徇己하고 此則慮君陳之徇君也라 言殷民之在刑µ?者를 不可徇君以爲生殺이요 惟當審其輕重之中也라』

 

『 상장(上章)은 성왕(成王)이 군진(君陳)이 자신의 사욕을 따름을 염려하였고, 여기서는 군진(君陳)이 임금을 따름을 염려한 것이다. 은(殷)나라 백성 중에 형벽에 있는 자를 군주를 따라 살리거나 죽이지 말고, 오직 그 경중의 알맞음을 살펴야 함을 말한 것이다.』

 

*서경 ; 주서 ; 군진 ; 제9장

▣ 제9장(第九章)

『有弗若于汝政하며 弗化于汝訓이어든 µ?以止µ?이라사 乃µ?하라』

 

『 너의 정사에 순종하지 않고 너의 가르침에 교화되지 않는 자가 있거든 형벌하여 형벌을 그칠 수 있어야 이에 형벌하라.』

 

『其有不順于汝之政하며 不化于汝之訓이면 刑之可也라 然刑期無刑이니 刑而可以止刑者라야 乃刑之라 此는 終上章之µ?이라』

 

『 너의 정사에 순종하지 않고 너의 가르침에 교화되지 않는 자가 있으면 형벌함이 가하다. 그러나 형벌은 형벌이 없음을 기약하여야 하니, 형벌하여 형벌이 그칠 수 있는 경우에야 이에 형벌하라. 이는 상장(上章)의 형벌함을 끝맺은 것이다.』

 

*서경 ; 주서 ; 군진 ; 제10장

 

▣ 제10장(第十章)

 

『»7于姦宄하며 敗常亂俗은 三細라도 不宥니라』

 

『 간궤(姦宄)에 익숙하며 떳떳함을 무너뜨리고 풍속을 어지럽힘은 이 세 가지는 작은 죄라도 용서하지 말아야 한다.』

 

『»7는 習也라 常은 典常也요 俗은 風俗也라 »7于姦宄와 與夫毁敗典常, 壞亂風俗은 人犯此三者면 雖小罪라도 亦不可宥니 以其所關者大也라 此는 終上章之宥라』

 

『 유(»7)는 익힘이다. 상(常)은 떳떳한 법이요, 속(俗)은 풍속이다. 간궤(姦宄)에 익숙한 자와 전상(典常)을 훼패(毁敗)하고 풍속을 괴란(壞亂)시킴은 사람이 이 세 가지를 범하면 비록 작은 죄라도 또한 용서하지 말아야 하니, 관계되는 바가 크기 때문이다. 이는 상장(上章)의 용서함을 끝맺은 것이다.』

 

*서경 ; 주서 ; 군진 ; 제11장

 

▣ 제11장(第十一章)

 

『爾無忿疾于頑하며 無求備于一夫하라』

 

『 너는 완악함에 분해하거나 미워하지 말며, 한 지아비에게 완비하기를 구하지 말라.』

 

『無忿疾人之所未化하고 無求備人之所不能이라』

 

『 사람이 교화되지 않는 것에 분해하거나 미워하지 말며, 사람이 능하지 못한 것에 완비하기를 구하지 말라.』

 

*서경 ; 주서 ; 군진 ; 제12장

 

▣ 제12장(第十二章)

『必有忍이라사 其乃有濟하며 有容이라사 德乃大하리라』

 

『 반드시 참음이 있어야 이에 이룸이 있으며, 포용함이 있어야 덕이 이에 커질 것이다.』

 

『孔子曰 小不忍則亂大謀라하시니 必有所忍而後에 能有所濟라 然此猶有堅制力蓄之意요 若洪裕寬綽하여 恢恢乎有餘地者는 斯乃德之大也라 忍은 言事요 容은 言德이니 各以深淺言也라』

 

『 공자(孔子)가 말씀하기를 “작은 일을 참지 않으면 큰 일을 어지럽힌다.” 하였으니, 반드시 참는 바가 있은 뒤에 이루는 바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오히려 억지로 제재하고 힘써 저지하는 뜻이 있으며, 홍유(洪裕)하고 관작(寬綽)하여 회회(恢恢)하게 여지(餘地)가 있는 것으로 말하면 이는 바로 덕의 큼이다. 인(忍)은 일을 말하고 용(容)은 덕을 말하였으니, 각기 깊고 얕음으로써 말한 것이다.』

 

*서경 ; 주서 ; 군진 ; 제13장

 

▣ 제13장(第十三章)

 

『簡厥修호되 亦簡其或不修하며 進厥良하여 以率其或不良하라』

 

『 직무를 잘 닦는 자를 간발(簡拔)『[선발]』하되 또한 혹 닦지 못하는 자를 간발하며, 어진 사람을 진용(進用)하여 혹 어질지 못한 자를 이끌도록 하라.』

 

『王氏曰 修는 謂其職業이요 良은 謂其行義라 職業이 有修與不修하니 當簡而別之면 則人勸功이요 進行義之良者하여 以率其不良이면 則人勵行이라』

 

『 왕씨(王氏)가 말하였다. “수(修)는 직업『[직무]』을 이르고 양(良)은 행의(行義)『[품행]』를 이른다. 직업은 닦여지고 닦여지지 않음이 있으니, 마땅히 간발하여 구별하면 사람들이 공(功)을 권면하고, 행의(行義)가 어진 자를 등용하여 어질지 못한 자를 이끌게 하면 사람들이 행실을 힘쓴다.”』

 

*서경 ; 주서 ; 군진 ; 제14장

 

▣ 제14장(第十四章)

 

『惟民生厚하나 因物有遷이라 違上所命하고 從厥攸好하나니 爾克敬典在德하면 時乃罔不變이라 允升于大猷하리니 惟予一人이 膺受多福하며 其爾之休도 終有辭於永世하리라』

 

『 백성들이 태어날 때는 후(厚)하나 물건에 따라 옮겨간다. 윗사람의 명령하는 바를 어기고 그『[윗사람]』의 좋아하는 바를 따르니, 네가 능히 떳떳한 도(道)를 공경하되 덕에 있게 하면 이에 변하지 않는 자가 없어 진실로 대유(大猷)『[대도]』에 오를 것이니, 나 한 사람이 많은 복을 응하여 받을 것이며, 너의 아름다움도 끝내 영원한 세상에 훌륭한 명성이 있을 것이다.”』

 

『言斯民之生이 其性本厚나 而所以?7薄者는 以誘於習俗하여 而爲物所遷耳라 然厚者旣可遷而薄이면 則薄者豈不可反而厚乎아 反薄歸厚는 特非聲音笑貌之所能爲爾라 民之於上에 固不從其令이요 而從其好하나니 大學言 其所令이 反其所好면 則民不從이라하니 亦此意也라 敬典者는 敬其君臣父子兄弟夫婦朋友之常道也요 在德者는 得其典常之道하여 而著之於身也라 蓋知敬典而不知在德이면 則典與我猶二也요 惟敬典而在德焉이면 則所敬之典이 無非實有諸己하니 實之感人이 捷於쯆鼓라 所以時乃罔不變하여 而信升于大猷也라 如是면 則君受其福하고 臣成其美하여 而有令名於永世矣리라』

 

『 이 백성이 태어날 때에는 그 성(性)이 본래 후(厚)하나 흐리고 탁하게 되는 까닭은 습속(習俗)에 유인되어 물건에게 옮겨지는 바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후한 것이 옮겨져서 박해졌으면 박한 것이 어찌 돌아가 후해지지 않겠는가. 박한 것을 돌이켜 후함으로 돌아가게 함은 다만 음성이나 웃음과 모양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백성들은 윗사람에 대하여 진실로 그 명령을 따르지 않고 그 좋아함을 따르니, 《대학(大學)》에 “그 명령하는 바가 좋아하는 바와 반대이면 백성이 따르지 않는다.”고 하였으니, 또한 이러한 뜻이다. 경전(敬典)은 군신(君臣)•부자(父子)•형제(兄弟)•부부(夫婦)•붕우(朋友)의 떳떳한 도를 공경하는 것이며, 재덕(在德)은 떳떳한 도를 얻어 몸에 드러나는 것이다. 떳떳한 도를 공경할 줄만 알고 덕에 있을 줄을 모르면 떳떳한 도와 내가 오히려 둘이 되고, 오직 떳떳한 도를 공경하면서 덕에 있게 하면 떳떳한 도가 실제로 자기 몸에 있지 않음이 없을 것이니, 실제가 사람을 감동시킴이 북채로 북을 치는 것보다도 빠르다. 이 때문에 이에 변화하지 않는 자가 없어 진실로 대유(大猷)에 오르는 것이다. 이와 같다면 군주가 복을 받고 신하가 아름다움을 이루어서 영원한 세상에 훌륭한 명성이 있을 것이다.』

 

*서경 ; 주서 ; 고명(顧命)

 

▣ 고명(顧命)

 

『顧는 還視也라 成王將崩할새 命群臣하여 立康王이어늘 史序其事爲篇하니 謂之顧命者는 鄭玄云 回首曰顧니 臨死에 回顧而發命也라 今文古文皆有하니라』

『○ 呂氏曰 成王이 經三監之變하여 王室幾搖라 故로 此는 正其終始에 特詳焉이라 顧命은 成王所以正其終이요 康王之誥는 康王所以正其始니라』

 

『 고(顧)는 돌아봄이다. 성왕(成王)이 장차 별세할 적에 군신(群臣)들에게 명하여 강왕(康王)을 세우게 하였는데, 사관(史官)이 이 일을 서술하여 편을 만들었으니, 이를 고명(顧命)이라고 말한 것은 정현(鄭玄)이 이르기를 “머리를 돌림을 고(顧)라 하니, 죽음에 임하여 머리를 돌려 명령을 낸 것이다.” 하였다. 금문(今文)과 고문(古文)에 모두 있다.』

『 ○ 여씨(呂氏)가 말하였다. “성왕(成王)이 삼감(三監)의 변란을 겪어 왕실(王室)이 거의 흔들렸다. 그러므로 이는 그 종(終)과 시(始)를 바룸에 특별히 자세한 것이다. 〈고명(顧命)〉은 성왕(成王)이 마침을 바룬 것이고, 〈강왕지고(康王之誥)〉는 강왕(康王)이 그 시작을 바룬 것이다.”』

 

『○ 서경 ; 주서 ; 고명 ; 제1장+1』

『○ 서경 ; 주서 ; 고명 ; 제2장+2』

『○ 서경 ; 주서 ; 고명 ; 제3장+3』

『○ 서경 ; 주서 ; 고명 ; 제4장+4』

『○ 서경 ; 주서 ; 고명 ; 제5장+5』

『○ 서경 ; 주서 ; 고명 ; 제6장+6』

『○ 서경 ; 주서 ; 고명 ; 제7장+7』

『○ 서경 ; 주서 ; 고명 ; 제8장+8』

『○ 서경 ; 주서 ; 고명 ; 제9장+9』

『○ 서경 ; 주서 ; 고명 ; 제10장+10』

『○ 서경 ; 주서 ; 고명 ; 제11장+11』

『○ 서경 ; 주서 ; 고명 ; 제12장+12』

『○ 서경 ; 주서 ; 고명 ; 제13장+13』

『○ 서경 ; 주서 ; 고명 ; 제14장+14』

『○ 서경 ; 주서 ; 고명 ; 제15장+15』

『○ 서경 ; 주서 ; 고명 ; 제16장+16』

『○ 서경 ; 주서 ; 고명 ; 제17장+17』

『○ 서경 ; 주서 ; 고명 ; 제18장+18』

『○ 서경 ; 주서 ; 고명 ; 제19장+19』

『○ 서경 ; 주서 ; 고명 ; 제20장+20』

『○ 서경 ; 주서 ; 고명 ; 제21장+21』

『○ 서경 ; 주서 ; 고명 ; 제22장+22』

『○ 서경 ; 주서 ; 고명 ; 제23장+23』

『○ 서경 ; 주서 ; 고명 ; 제24장+24』

『○ 서경 ; 주서 ; 고명 ; 제25장+25』

『○ 서경 ; 주서 ; 고명 ; 제26장+26』

『○ 서경 ; 주서 ; 고명 ; 제27장+27』

『○ 서경 ; 주서 ; 고명 ; 제28장+28』

『○ 서경 ; 주서 ; 고명 ; 제29장+29』

 

*서경 ; 주서 ; 고명 ; 제1장

 

▣ 제1장(第一章)

 

『惟四月哉生魄에 王이 不쵞하시다』

 

『 4월 재생백(哉生魄)에 왕이 기쁘지 않으셨다.』

 

『始生魄은 十六日이라 王有疾이라 故로 不悅쵞이라』

 

『 비로소 어둠이 생긴 것은 16일이다. 왕이 병이 있기 때문에 기쁘지 않은 것이다.』

 

*서경 ; 주서 ; 고명 ; 제2장

 

▣ 제2장(第二章)

 

『甲子에 王이 乃쩿턼水어시늘 相이 被冕服한대 憑玉¤!하시다』

 

『 갑자일(甲子日)에 왕이 물로 손을 씻고 얼굴을 씻자 상(相)『[부축하는 자]』이 면복(冕服)을 입히니, 옥궤(玉¤!)에 기대었다.』

 

『王이 發大命, 臨群臣엔 必齊戒沐浴이로되 今疾病危殆라 故但쩿쥫턼面이어늘 扶相者被以袞冕하니 憑玉¤!以發命이라』

 

『 왕이 대명(大命)을 발하고 군신(群臣)에게 임할 때에는 반드시 재계하고 목욕하는데 지금 질병이 위태하므로 다만 손을 씻고 얼굴을 씻자 부축하여 돕는 자가 곤면(袞冕)을 입히니, 옥궤(玉¤!)에 기대어 명령을 발한 것이다.』

 

*서경 ; 주서 ; 고명 ; 제3장

 

▣ 제3장(第三章)

『乃同召太保奭과 芮伯과 쪐伯과 畢公과 衛侯와 毛公과 師氏와 虎臣과 百尹과 御事하시다』

 

『 이에 태보(太保)인 석(奭)•예백(芮伯)•동백(쪐伯)•필공(畢公)•위후(衛侯)•모공(毛公)•사씨(師氏)•호신(虎臣)•백윤(百尹)•어사(御事)들을 함께 불렀다.』

 

『同召六卿하고 下至御治事者라 太保, 芮伯, 쪐伯, 畢公, 衛侯, 毛公은 六卿也니 ¾4宰第一이니 『召公領之주:소공령지』하고 司徒第二니 芮伯爲之하고 宗伯第三이니 쪐伯爲之하고 司馬第四니 畢公領之하고 司寇第五니 衛侯爲之하고 司空第六이니 毛公領之라 太保, 畢, 毛는 三公兼也요 芮, 쪐, 畢, 衛, 毛는 皆國名이니 入爲天子公卿이라 師氏는 大夫官이요 虎臣은 虎賁氏요 百尹은 百官之長及諸御治事者라 平時則召六卿하여 使帥其屬하나니 此則將發顧命일새 自六卿至御事히 同以王命召也라』

 

『 육경(六卿)을 함께 부르고 아래로 일을 다스리는 자에 이른 것이다. 태보(太保)•예백(芮伯)•동백(쪐伯)•필공(畢公)•위후(衛侯)•모공(毛公)은 육경(六卿)이다. 총재(¾4宰)가 제일이니, 소공(召公)이 거느리고『[겸직]』, 사도(司徒)가 두 번째이니 예백(芮伯)이 하고, 종백(宗伯)이 세 번째이니 동백(쪐伯)이 하고, 사마(司馬)가 네 번째이니 필공(畢公)이 거느리고, 사구(司寇)가 다섯 번째이니 위후(衛侯)가 하고, 사공(司空)이 여섯 번째이니 모공(毛公)이 거느렸다. 태보(太保)와 필공(畢公)과 모공(毛公)은 삼공(三公)을 겸하였고, 예(芮)•동(쪐)•필(畢)•위(衛)•모(毛)는 모두 나라의 이름이니 들어와서 천자의 공경(公卿)이 된 것이다. 사씨(師氏)는 대부(大夫)의 관원이고, 호신(虎臣)은 호분씨(虎賁氏)이고, 백윤(百尹)은 백관(百官)의 우두머리 및 여러 일을 다스리는 자이다. 평상시에는 육경(六卿)을 불러 그 관속을 거느리게 하는데, 이때에는 장차 고명(顧命)을 내려 하였으므로 육경(六卿)으로부터 어사(御事)에 이르기까지 똑같이 왕명으로 부른 것이다.』

 

*서경 ; 주서 ; 고명 ; 제4장

 

▣ 제4장(第四章)

 

『王曰 嗚呼라 疾이 大漸惟幾하여 病日臻하여 旣彌留할새 恐不獲誓言嗣하여 玆予審訓命汝하노라』

 

『 왕(王)이 말씀하였다. “아! 병이 크게 번져 위태로워서 병이 날로 이르러 이미 더 심해지고 오래 지체하므로 맹세하는 말을 하여 〈내 뜻을〉 잇지 못할까 두려워, 이에 내 살펴 가르쳐 너를 명하노라.』

 

『此下는 成王之顧命也라 自嘆其疾大進하여 惟危殆하여 病日至하여 旣彌甚而留連할새 恐遂死하여 不得誓言以嗣續我志하니 此我所以詳審發訓命汝라 統言曰疾이요 甚言曰病이라』

 

『 이 이하는 성왕(成王)의 고명(顧命)이다. 스스로 탄식하기를 “병이 크게 진전되어 위태로워서 병이 날로 이르러 이미 더 심해지고 유련(留連)하기에 마침내 죽어서 맹세하는 말을 하여 나의 뜻을 잇지 못할까 두려우니, 이 때문에 내 자세히 살펴 훈계를 내어 너를 명하는 것이다. 통틀어 말하면 질(疾)이라 하고, 심한 것으로 말하면 병(病)이라 한다.』

 

*서경 ; 주서 ; 고명 ; 제5장

 

▣ 제5장(第五章)

 

『昔君文王武王이 宣重光하사 奠麗『(리)』陳敎하신대 則肄『(예)』하여 肄不違하여 用克達殷하여 集大命하시니라』

 

『 옛날 군주이신 문왕(文王)•무왕(武王)이 거듭 빛난 덕(德)을 베푸시어 〈백성들이〉 의지하여 살 바를 정해주고 가르침을 펴시자, 백성들이 익혀 익히고 어기지 아니하여 능히 은(殷)나라에 도달해서 큰 명을 모으셨다.』

 

『武猶文일새 謂之重光하니 猶舜如堯일새 謂之重華也라 奠은 定이요 麗는 依也라 言文武宣布重明之德하사 定民所依하고 陳列敎條하신대 則民習服하여 習而不違하여 天下化之하니 用能達於殷邦하여 而集大命於周也라』

 

『 무왕(武王)이 문왕(文王)과 같으므로 중광(重光)이라 이른 것이니, 순(舜)이 요(堯)와 같으므로 중화(重華)라 이른 것과 같다. 전(奠)은 정함이고, 이(麗)는 의지함이다. 문왕(文王)•무왕(武王)이 거듭 밝은 덕을 선포하여 백성들이 의지할 바를 정해주고 가르침의 조목을 진열하자, 백성들이 습복(習服)『[익혀 잘 행함]』하여 익히고 어기지 아니하여 천하가 교화되었으니, 이 때문에 은(殷)나라에 도달해서 대명(大命)을 주(周)나라에 모았다고 말한 것이다.』

 

*서경 ; 주서 ; 고명 ; 제6장

 

▣ 제6장(第六章)

 

『在後之쪋하여 敬¬,天威하여 嗣守文武大訓하여 無敢昏逾호라』

 

『 뒤의 어리석은 나에 있어서는 하늘의 위엄을 공경히 맞이하여 문왕(文王)•무왕(武王)의 큰 교훈을 이어 지켜서 감히 어둡거나 넘음이 없었노라.』

 

『쪋은 愚也니 成王自稱이라 言其敬迎上天威命하여 而不敢少忽하여 嗣守文武大訓하여 而無敢昏逾라 天威는 天命也요 大訓은 述天命者也라 於天에 言天威하고 於文武에 言大訓하니 非有二也니라』

 

『 동(쪋)은 어리석음이니, 성왕(成王)이 자칭한 것이다. 공경히 상천(上天)의 위명(威命)을 맞이해서 감히 소홀히 하지 아니하여, 문왕(文王)•무왕(武王)의 큰 교훈을 이어 지켜서 감히 어둡거나 넘음이 없었음을 말한 것이다. 천위(天威)는 천명(天命)이고, 대훈(大訓)은 천명을 기술한 것이다. 하늘에는 천위(天威)를 말하고, 문왕(文王)•무왕(武王)에는 대훈(大訓)을 말했으니, 두 가지가 있는 것이 아니다.』

 

*서경 ; 주서 ; 고명 ; 제7장

 

▣ 제7장(第七章)

 

『今天이 降疾하사 殆弗興弗悟로소니 爾尙明時朕言하여 用敬保元子釗『(소)』하여 弘濟于艱難하라』

 

『 이제 하늘이 병을 내리시어 위태로워 일어나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게 되었으니, 너는 부디 이 나의 말을 밝혀서 원자(元子)인 소(釗)를 공경히 보호하여 어려움을 크게 구제하도록 하라.』

 

『釗는 康王名이라 成王言 今天이 降疾我身하여 殆將必死하여 弗興弗悟로소니 爾庶幾明是我言하여 用敬保元子釗하여 大濟于艱難이라 曰元子者는 正其統也라』

 

『 소(釗)는 강왕(康王)의 이름이다. 성왕(成王)이 말씀하기를 “이제 하늘이 내 몸에 병을 내려 위태로워 장차 반드시 죽어서 일어나지 못하고 깨닫지 못할 것이니, 너는 바라건대 나의 이 말을 밝혀서 공경히 원자인 소(釗)를 보호하여 어려움을 크게 구제하라.” 한 것이다. 원자(元子)라고 말한 것은 왕통(王統)을 바르게 한 것이다.』

 

*서경 ; 주서 ; 고명 ; 제8장

 

▣ 제8장(第八章)

 

『柔遠能邇하며 安勸小大庶邦하라』

 

『 멀리 있는 자를 회유하고 가까이 있는 자를 잘 길들이며, 작고 큰 여러 나라들을 편안히 하고 권면하라.』

 

『懷來馴擾하고 安寧勸導는 皆君道所當盡者라 合遠邇小大而言하니 又以見君德所施 公平周溥하여 而不可有所偏滯也라』

 

『 회유하고 오게 하고 길들이며, 안녕하게 하고 권도(勸導)함은 모두 군주의 도리에 마땅히 다해야 할 것들이다. 원이(遠邇)와 소대(小大)를 합하여 말했으니, 또 군주의 덕을 베푸는 것이 공평(公平)하고 두루하여 편벽되고 막히는 바가 있어서는 안됨을 나타낸 것이다.』

 

*서경 ; 주서 ; 고명 ; 제9장

 

▣ 제9장(第九章)

 

『思夫人은 自亂于威儀니 爾無以釗로 冒貢于非幾하라』

 

『 생각하건대 사람은 스스로 위의(威儀)를 다스려야 하니, 너희들은 소(釗)를 데리고 비기(非幾)『[나쁜 기미(幾微)]』에 무릅쓰고 나아가지 말라.”』

 

『亂은 治也라 威者는 有威可畏요 儀者는 有儀可象이니 擧一身之則而言也라 蓋人이 受天地之中以生이라 是以로 有動作威儀之則하니 成王이 思夫人之所以爲人者는 自治於威儀耳라 自治云者는 正其身而不假於外求也라 貢은 進也라 成王이 又言 群臣은 其無以元子而冒進於不善之幾也라 蓋幾者는 動之微而善惡之所由分也니 非幾는 則發於不善而陷於惡矣라 威儀는 擧其著於外者而勉之也요 非幾는 擧其發於中者而戒之也라 威儀之治 皆本於一念一慮之微하니 可不謹乎아 『孔子所謂知幾와 子思所謂謹獨과 周子所謂幾善惡주:공자소위지기』者 皆致意於是也라 成王垂絶之言에 而拳拳及此하니 其有得於周公者 亦深矣라』

『○ 蘇氏曰 死生之際는 聖賢之所甚重也라 成王將崩之一日에 被冕服하여 以見百官하여 出經遠保世之言하니 其不死於燕安婦人之手也 明矣라 其致『刑措주:형조』 宜哉인저』

 

『 난(亂)은 다스림이다. 위(威)는 위엄이 있어 두려울 만한 것이요, 의(儀)는 예의가 있어 본받을 만한 것이니, 한 몸의 법칙을 들어 말한 것이다. 사람이 천지의 중(中)『[이치]』을 받아 태어났다. 이 때문에 동작(動作)과 위의(威儀)의 법칙이 있으니, 성왕(成王)이 생각하건대 사람이 사람이 되는 까닭은 스스로 위의를 다스리기 때문이라고 여긴 것이다. ‘스스로 다스린다’는 것은 자기 몸을 바루고 밖에 구함을 빌리지 않는 것이다. 공(貢)은 나아감이다. 성왕(成王)이 또 말씀하기를 “여러 신하들은 원자(元子)를 데리고 불선(不善)한 기미(幾微)에 무릅쓰고 나아가지 말라.” 하였다. 기(幾)는 동함이 은미한 것으로 선(善)•악(惡)이 말미암아 나누어지는 것이니, 비기(非幾)는 불선(不善)에서 발하여 악(惡)에 빠지는 것이다. 위의(威儀)는 밖에 드러나는 것을 들어 권면한 것이요, 비기(非幾)는 마음속에 발하는 것을 들어 경계한 것이다. 위의(威儀)의 다스림이 모두 한 생각과 한 사려(思慮)의 작은 것에서 근본하니, 삼가지 않겠는가. 공자(孔子)의 이른바 ‘기미를 안다’는 것과, 자사(子思)의 이른바 ‘홀로를 삼간다’는 것과, 주자(周子)의 이른바 ‘기(幾)에 선(善)•악(惡)이 있다’는 것이 다 여기에 뜻을 다한 것이다. 성왕(成王)의 수절(垂絶)『[임종]』하는 말씀에 권권(拳拳)히 여기에 미쳤으니, 주공(周公)에게서 얻음이 또한 깊은 것이다.』

『 ○ 소씨(蘇氏)가 말하였다. “사생(死生)의 즈음은 성현(聖賢)이 매우 중하게 여기는 바이다. 성왕(成王)이 장차 별세하려는 일일(一日)에 면복(冕服)을 입고서 백관을 만나 영원(永遠)히 지나도록 세상을 보존할 말씀을 내었으니, 편안히 부인의 손에서 죽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형벌을 버려두고 쓰지 않음을 이룬 것이 당연하구나.”』

 

*서경 ; 주서 ; 고명 ; 제10장

 

▣ 제10장(第十章)

 

『玆旣受命還커늘 出綴『(추)』衣于庭하더니 越翼日乙丑에 王이 崩하시다』

 

『 이미 명을 받고 돌아가자, 철의(綴衣)를 노침(路寢)의 뜰에 내놓았는데, 다음날 을축일(乙丑日)에 왕(王)이 별세하였다.』

 

『『綴衣는 幄帳也주:추의악장야』니 群臣旣退에 徹出幄帳於庭이라 喪大記云 疾病이어든 君徹懸하고 東首於北츐下 是也라 於其明日에 王崩이라』

 

『 추의(綴衣)는 악장(幄帳)『[휘장]』이니, 군신(群臣)이 이미 물러가자 악장(幄帳)을 뜰에 거두어 내놓았다. 〈상대기(喪大記)〉에 “군주가 병이 심해지면 매달아 놓은 악기『[종경(鐘磬)]』를 철거하고 북쪽 창문 아래에 동쪽으로 머리를 둔다.”는 것이 이것이다. 그 다음날에 왕(王)이 별세한 것이다.』

 

*서경 ; 주서 ; 고명 ; 제11장

 

▣ 제11장(第十一章)

 

『太保命仲桓, 南宮毛하여 쯸爰齊侯呂伋으로 以二干戈와 虎賁百人으로 逆子釗於南門之外하여 延入翼室하여 恤宅宗하시다』

 

『 태보(太保)가 중환(仲桓)과 남궁모(南宮毛)에게 명하여 제후(齊侯)인 여급(呂伋)으로 하여금 간과(干戈) 둘과 호분(虎賁) 백 명으로 태자(太子) 소(釗)를 남문(南門)의 밖에서 맞이하여, 익실(翼室)로 인도해 들어와 휼택(恤宅)『[여막]』에 종주가 되게 하였다.』

 

『桓, 毛는 二臣名이라 伋은 太公望子니 爲天子虎賁氏라 延은 引也라 翼室은 路寢旁左右翼室也라 太保以¾4宰攝政하여 命桓毛二臣하여 使齊侯呂伋으로 以二干戈, 虎賁百人으로 逆太子釗于路寢門外하여 引入路寢翼室하여 爲憂居宗主也라 呂氏曰 發命者는 ¾4宰요 傳命者는 兩朝臣이요 承命者는 勳戚顯諸侯라 體統尊嚴하고 樞機周密하니 防危慮患之意 深矣라 入自端門하여 萬姓咸覩는 與天下共之也요 延入翼室하여 爲憂居之宗은 示天下不可一日無統也라 唐穆敬文武以降으로 쵖寺執國命하여 易主於宮掖호되 而外廷猶不聞하니 然後에 知周家之制 曲盡備豫하여 雖一條一節이라도 亦不可廢也로라』

 

『 환(桓)과 모(毛)는 두 신하의 이름이다. 급(伋)은 태공(太公) 망(望)의 아들이니, 천자국의 호분씨(虎賁氏)가 되었다. 연(延)은 인도함이다. 익실(翼室)은 노침(路寢) 곁에 있는 좌우(左右)의 익실(翼室)이다. 태보(太保)가 총재로서 섭정하여 환(桓)•모(毛) 두 신하에게 명해서 제후(齊侯)인 여급(呂伋)으로 하여금 간과(干戈) 둘과 호분(虎賁) 백 명으로 태자(太子) 소(釗)를 노침(路寢)의 문(門) 밖에서 맞이하여 노침(路寢)의 익실(翼室)로 인도해 들어와 우거(憂居)의 종주가 되게 한 것이다.』

『 여씨(呂氏)가 말하였다. “명령을 발한 것은 총재(¾4宰)이고, 명령을 전달한 것은 두 조신(朝臣)이며, 명령을 받든 것은 훈척(勳戚)『[공로가 있는 외척]』의 드러난 제후였다. 체통이 존엄하고 추기(樞機)가 주밀(周密)하니, 위험을 막고 화를 염려한 뜻이 깊다. 단문(端門)『[궁전의 정문(正門)]』으로부터 들어와 만성(萬姓)이 모두 보게 한 것은 천하와 함께 한 것이며, 익실(翼室)로 맞이하여 들어와 우거(憂居)의 종주가 되게 한 것은 천하에 하루라도 통솔자가 없어서는 안됨을 보여준 것이다. 당(唐)나라는 목종(穆宗)•경종(敬宗)•문종(文宗)•무종(武宗) 이후로 엄시(쵖寺)『[환관]』들이 나라의 정사를 잡아 궁액(宮掖)『[궁중]』에서 군주를 바꿔도 밖의 조정에서는 오히려 듣지 못하였으니, 이러한 뒤에야 주(周)나라의 제도가 곡진하고 미리 대비하여 비록 한 조목과 한 절목(節目)이라도 또한 폐할 수 없음을 알았다.”』

 

*서경 ; 주서 ; 고명 ; 제12장

 

▣ 제12장(第十二章)

 

『丁卯에 命作冊度하시다』

『 정묘일(丁卯日)에 명하여 책과 법도를 만들게 하였다.』

『命史하여 爲冊書法度하여 傳顧命於康王이라』

『 사관(史官)에게 명하여 책서(冊書)와 법도(法度)를 만들어 고명(顧命)을 강왕(康王)에게 전한 것이다.』

 

*서경 ; 주서 ; 고명 ; 제13장

 

▣ 제13장(第十三章)

 

『越七日癸酉에 伯相이 命士須材하니라』

 

『 7일이 지난 계유일(癸酉日)에 백상(伯相)『[소공(召公)]』이 사(士)에게 명하여 〈관곽(棺槨)의〉 재목을 취해오게 하였다.』

 

『伯相은 召公也니 召公이 以西伯爲相이라 須는 取也니 命士取材木하여 以供喪用이라』

 

『 백상(伯相)은 소공(召公)이니, 소공(召公)이 서백(西伯)으로 상(相)『[정승]』이 되었다. 수(須)는 취함이니, 사(士)에게 명하여 재목을 취해 오게 해서 상사(喪事)에 쓰도록 한 것이다.』

 

*서경 ; 주서 ; 고명 ; 제14장

 

▣ 제14장(第十四章)

 

『狄이 設©,훱『(依)』綴衣하니라』

 

『 적(狄)이 보의(©,훱)와 추의(綴衣)를 진설하였다.』

 

『狄은 下士라 祭統云 狄者는 樂吏之賤者也라하고 喪大記에 狄人이 設階라하니 蓋供喪役而典設張之事者也라 ©,훱는 屛風畵爲斧文者니 設©,훱幄帳하여 如成王生存之日也라』

 

『 적(狄)은 하사(下士)이다. 〈제통(祭統)〉에 “적(狄)은 악리(樂吏) 중에 천한 자이다.” 하였고, 〈상대기(喪大記)〉에 “적인(狄人)이 계단을 설치한다.” 하였으니, 상역(喪役)에 종사하여 진설하고 베푸는 일을 맡은 자이다. 보의(©,훱)는 병풍에 도끼 문양을 그린 것이니, 보의(©,훱)와 악장(幄帳)을 진설하여 성왕(成王)이 생존했던 날과 같이 한 것이다.』

 

*서경 ; 주서 ; 고명 ; 제15장

 

▣ 제15장(第十五章)

 

『츐間에 南嚮하여 敷重쭟席©,純『(준)』하니 華玉仍¤!러라』

 

『 유(츐)의 사이에 남향하여 이중으로 된 멸석(쭟席)을 보(©,)로 선두른 것을 펴니, 화옥(華玉)으로 된 궤(¤!)는 그대로 두었다.』

 

『此는 平時見群臣覲諸侯之坐也라 敷設重席은 所謂天子之席三重者也라 쭟席은 『桃竹枝席주:도죽지석』也라 『©,는 白黑雜繒주:보백흑잡증』이라 純은 緣也라 華는 彩色也니 華玉以飾¤!라 仍은 因也니 因生時所設也라 周禮에 吉事變¤!, 凶事仍¤! 是也라』

 

『 이는 평상시 군신(群臣)을 만나보고 제후들에게 조회 받는 자리이다. 중석(重席)을 편 것은 이른바 천자의 자리가 삼중이라는 것이다. 멸석(쭟席)은 도지(桃枝)의 대로 만든 자리이다. 보(©,)는 백색과 흑색이 섞여 있는 비단이다. 순(純)은 선을 두른 것이다. 화(華)는 채색이니, 화옥(華玉)으로 궤(¤!)를 꾸민 것이다. 잉(仍)은 인함이니, 생시에 설치했던 것을 그대로 따른 것이다. 《주례(周禮)》에 “길사(吉事)『[제례(祭禮)]』에는 궤(¤!)를 변하고 흉사(凶事)『[상례(喪禮)]』에는 궤(¤!)를 그대로 둔다.”는 것이 이것이다.』

 

*서경 ; 주서 ; 고명 ; 제16장

 

▣ 제16장(第十六章)

 

『西序에 東嚮하여 敷重底席綴純하니 文貝仍¤!러라』

 

『 서서(西序)에 동향하여 이중으로 된 저석(底席)을 여러 문채로 선두른 것을 펴니, 문패(文貝)로 꾸민 궤(¤!)는 그대로 두었다.』

 

『此는 旦夕聽事之坐也라 東西廂을 謂之序라 底席은 蒲席也라 綴는 雜彩라 文貝는 有文之貝니 以飾¤!也라』

 

『 이는 아침저녁으로 정사를 다스리는 자리이다. 동서(東西)의 상(廂)을 서(序)라 이른다. 저석(底席)은 부들로 만든 자리이다. 추(綴)는 여러 가지 채색이다. 문패(文貝)는 무늬가 있는 조개이니, 이것으로 궤(¤!)를 꾸민 것이다.』

 

*서경 ; 주서 ; 고명 ; 제17장

 

▣ 제17장(第十七章)

 

『東序에 西嚮하여 敷重豊席턛純하니 雕玉仍¤!러라』

 

『 동서(東序)에 서향하여 이중으로 된 풍석(豊席)을 채색으로 선두른 것을 펴니, 조옥(雕玉)으로 꾸민 궤(¤!)는 그대로 두었다.』

 

『此는 養國老, 饗群臣之坐也라 『豊席은 [筍]〔莞〕席也주:풍석순석야』라 턛는 彩色이라 雕는 刻鏤也라』

 

『 이는 국로(國老)를 기르고 군신(群臣)을 연향하는 자리이다. 풍석(豊席)은 완석(莞席)『[왕골자리]』이다. 화(턛)는 채색이다. 조(雕)는 조각한 것이다.』

 

*서경 ; 주서 ; 고명 ; 제18장

 

▣ 제18장(第十八章)

 

『西夾에 南嚮하여 敷重筍席玄紛純하니 漆仍¤!러라』

 

『 서협(西夾)에 남향하여 이중으로 된 순석(筍席)을 검정색을 섞어 선두른 것을 펴니, 옻칠한 궤(¤!)는 그대로 두었다.』

 

『此는 親屬私燕之坐也니 西廂夾室之前이라 筍席은 竹席也라 紛은 雜也니 以玄黑之色으로 雜爲之緣이라 漆은 漆¤!也라 츐間兩序西夾에 其席有四하니 츐戶之間을 謂之훱라 天子는 負훱朝諸侯하니 則츐間南嚮之席은 坐之正也요 其三席은 各隨事以時設也라 將傳先王顧命일새 知神之在此乎아 在彼乎아 故로 兼設平生之坐也라』

 

『 이는 친속(親屬)을 사사로이 잔치하는 자리이니, 서상(西廂) 협실(夾室)의 앞이다. 순석(筍席)은 대자리이다. 분(紛)은 섞임이니, 현흑(玄黑)의 색깔을 섞어 선두른 것이다. 칠(漆)은 옻칠한 궤(¤!)이다. 유(츐)의 사이와 양서(兩序)와 서협(西夾)에 자리 네 개가 있으니, 유호(츐戶)의 사이를 의(훱)라 이른다. 천자는 의(훱)를 등지고 제후에게 조회받으니, 유(츐)의 사이에 남향한 자리는 자리 중에 바른 것이며, 나머지 세 자리는 각각 일에 따라 때로 설치한다. 장차 선왕(先王)의 고명(顧命)을 전하려 하는데 신(神)이 여기에 있는지 저기에 있는지 알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평소의 자리를 겸하여 설치한 것이다.』

 

*서경 ; 주서 ; 고명 ; 제19장

 

▣ 제19장(第十九章)

 

『越玉五重하며 陳寶하니 赤刀와 大訓과 弘璧과 琬琰은 在西序하고 大玉과 夷玉과 天球와 河圖는 在東序하고 胤之舞衣와 大貝와 ?鼓는 在西房하고 兌之戈와 和之弓과 垂之竹矢는 在東房하니라』

 

『 및 옥(玉)을 오중(五重)으로 진열하고 보물을 진열하니, 적도(赤刀)와 대훈(大訓)과 홍벽(弘璧)『[큰 벽옥]』과 완염(琬琰)은 서서(西序)에 있고, 대옥(大玉)『[큰 옥]』과 이옥(夷玉)『[보통 옥]』과 천구(天球)와 하도(河圖)는 동서(東序)에 있고, 윤(胤)나라에서 만든 춤추는 옷과 대패(大貝)와 큰 북은 서방(西房)에 있고, 태(兌)가 만든 창과 화(和)가 만든 활과 수(垂)가 만든 대나무 화살은 동방(東房)에 있었다.』

 

『於東西序坐北에 列玉五重하고 及陳先王所寶器物이라 赤刀는 赤削也라 大訓은 三皇五帝之書니 訓誥亦在焉이요 文武之訓을 亦曰大訓이라 弘璧은 大璧也라 琬琰은 圭名이라 夷는 常也요 球는 鳴球也라 河圖는 伏羲時에 龍馬負圖하여 出於河하니 一六位北하고 二七位南하고 三八位東하고 四九位西하고 五十居中者니 易大傳所謂河出圖 是也라 胤은 國名이니 胤國所制舞衣라 『大貝는 如車渠주:대패여차거』라 ?鼓는 長八尺이라 兌, 和는 皆古之巧工이요 垂는 舜時共工이라 舞衣, ?鼓, 戈弓, 竹矢는 皆制作精巧하여 中法度라 故로 歷代傳寶之하니라 孔氏曰 弘璧, 琬琰, 大玉, 夷玉, 天球는 玉之五重也라 呂氏曰 西序所陳은 不惟赤刀弘璧이라 而大訓參之하고 東序所陳은 不惟大玉夷玉이라 而河圖參之하니 則其所寶者를 斷可識矣니라 愚謂寶玉器物之陳은 非徒以爲國容觀美라 意者컨대 成王平日之所觀閱로 手澤在焉하니 陳之는 以象其生存也라 楊氏中庸傳曰 宗器를 於祭陳之는 示能守也요 於顧命陳之는 示能傳也라하니라』

 

『 동•서의 서(序) 자리 북쪽에 옥(玉)을 오중으로 진열하고 선왕(先王)이 보물로 여긴 기물을 진열한 것이다. 적도(赤刀)는 붉은 삭도(削刀)이다. 대훈(大訓)은 삼황(三皇)•오제(五帝)의 글이니, 훈고(訓誥)가 또한 여기에 들어 있으며, 문왕(文王)•무왕(武王)의 가르침을 또한 대훈(大訓)이라 한다. 홍벽(弘璧)은 큰 벽옥(璧玉)이다. 완염(琬琰)은 규(圭)의 이름이다. 이(夷)는 보통이요, 구(球)는 명구(鳴球)『[석경(石磬)]』이다. 하도(河圖)는 복희씨(伏羲氏) 때에 용마(龍馬)가 그림을 지고 하수에서 나오니, 1•6은 북쪽에 위치하고 2•7은 남쪽에 위치하고 3•8은 동쪽에 위치하고 4•9는 서쪽에 위치하고 5•10은 중앙에 위치하였으니, 《주역(周易)》의 〈대전(大傳)〉에 이른바 “하(河)에서 도(圖)가 나왔다.”는 것이 이것이다. 윤(胤)은 나라의 이름이니, 윤(胤)나라에서 만든 춤추는 옷이다. 대패(大貝)는 차거(車渠)와 같은 것이다. 분고(?鼓)는 길이가 8척이다. 태(兌)와 화(和)는 모두 옛날에 공교로운 공인(工人)이며, 수(垂)는 제순(帝舜) 때의 공공(共工)이다. 춤추는 옷과 큰 북과 창과 활과 대나무 화살은 모두 제작이 정교하여 법도에 맞는 까닭에 역대에 전하여 보물로 여긴 것이다.』

『 공씨(孔氏)가 말하였다. “홍벽(弘璧)•완염(琬琰)•대옥(大玉)•이옥(夷玉)•천구(天球)는 오중의 옥(玉)이다.”』

『 여씨(呂氏)가 말하였다. “서서(西序)에 진열한 것은 단지 적도(赤刀)•홍벽(弘璧) 만이 아니요 대훈(大訓)이 참여되었으며, 동서(東序)에 진열한 것은 단지 대옥(大玉)•이옥(夷玉) 만이 아니요 하도(河圖)가 참여되었으니, 그렇다면 그 보물로 여긴 것을 결단코 알 수 있다.”』

『 내가 생각하건대 보옥(寶玉)과 기물을 진열한 것은 한갓 나라의 위용을 보기에 아름답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요, 짐작컨대 성왕(成王)이 평소에 보던 것으로 손때가 남아 있으니, 이것을 진열한 것은 그 생존함을 형상한 것이다. 양씨(楊氏)의 《중용전(中庸傳)》에 “종기(宗器)를 제사할 때에 진열함은 잘 지킴을 보이는 것이며, 고명(顧命)에 진열함은 잘 전함을 보이는 것이다.” 하였다.』

 

*서경 ; 주서 ; 고명 ; 제20장

 

▣ 제20장(第二十章)

 

『大輅는 在賓階하여 面하고 綴輅는 在?階하여 面하고 先輅는 在左塾之前하고 次輅는 在右塾之前하니라』

 

『 대로(大輅)는 빈계(賓階)『[서쪽 뜰]』에 있어 면(面)『[남향]』하고, 철로(綴輅)는 조계(?階)『[동쪽 뜰]』에 있어 면(面)하고, 선로(先輅)는 좌숙(左塾)의 앞에 있고, 차로(次輅)는 우숙(右塾)의 앞에 있었다.』

 

『大輅는 玉輅也요 綴輅는 金輅也요 先輅는 木輅也요 次輅는 象輅, 革輅也라 『王之五輅주:왕지오로』에 玉輅는 以祀不以封하니 爲最貴요 金輅는 以封同姓하니 爲次之요 象輅는 以封異姓하니 爲又次之요 革輅는 以封四衛하니 爲又次之요 木輅는 以封蕃國하니 爲最賤이라 其行也는 貴者宜自近이요 賤者宜遠也라 王乘玉輅하니 綴之者는 金輅也라 故로 金輅를 謂之綴輅요 最遠者는 木輅也라 故로 木輅를 謂之先輅라 以木輅爲先輅면 則革輅, 象輅 爲次輅矣라 賓階는 西階也요 ?階는 東階也라 面은 南嚮也라 塾은 門側堂也라 五輅陳列은 亦象成王之生存也라 周禮典路『(輅)』云 若有大祭祀면 則出路하고 大喪, 大賓客에도 亦如之라하니 是大喪出輅는 爲常禮也라 又按 所陳寶玉器物을 皆以西爲上者는 成王殯이 在西序故也라』

 

『 대로(大輅)는 옥로(玉輅)이고, 추로(綴輅)는 금로(金輅)이고, 선로(先輅)는 목로(木輅)이고, 차로(次輅)는 상로(象輅)와 혁로(革路)이다. 왕(王)의 다섯 수레 중에 옥로(玉輅)는 제사에만 쓰고 봉하는 데는 쓰지 않으니 가장 귀하고, 금로(金輅)는 동성(同姓)을 봉할 때에 쓰니 다음이 되고, 상로(象輅)는 이성(異姓)을 봉할 때에 쓰니 또 다음이 되고, 혁로(革輅)는 사위(四衛)를 봉할 때에 쓰니 또 그 다음이 되고, 목로(木輅)는 번국(蕃國)을 봉할 때에 쓰니 가장 천하다. 그 항렬은 귀한 것이 자연 가까워야 하고 천한 것이 마땅히 멀어야 한다. 왕은 옥로(玉輅)를 타니, 그 사이를 연결하는 것은 금로(金輅)이므로 금로(金輅)를 추로(綴輅)라 하였고, 가장 멀리 있는 것은 목로(木輅)이므로 목로를 선로(先輅)라 하였다. 목로(木輅)를 선로(先輅)라 한다면 혁로(革輅)와 상로(象輅)가 차로(次輅)가 되는 것이다. 빈계(賓階)는 서쪽 계단이고, 조계(?階)는 동쪽 계단이다. 면(面)은 남향이다. 숙(塾)은 문 곁에 있는 당(堂)이다. 오로(五輅)를 진열한 것은 또한 성왕(成王)이 생존함을 형상한 것이다. 《주례(周禮)》의 〈전로(典路)〉에 “만약 큰 제사가 있으면 수레를 내고, 큰 초상과 큰 빈객에도 또한 이와 같이 한다.” 하였으니, 이 대상(大喪)에 수레를 냄은 떳떳한 예(禮)이다. 또 살펴보건대 진열한 보옥(寶玉)과 기물을 모두 서쪽을 상(上)으로 삼은 것은 성왕(成王)의 빈소가 서서(西序)에 있기 때문이다.』

 

*서경 ; 주서 ; 고명 ; 제21장

 

▣ 제21장(第二十一章)

 

『二人은 雀弁으로 執惠하여 立于畢門之內하고 四人은 쨚弁으로 執戈上刃하여 夾兩階Ý|하고 一人은 冕으로 執劉하여 立于東堂하고 一人은 冕으로 執鉞하여 立于西堂하고 一人은 冕으로 執º\하여 立于東垂『(«_)』하고 一人은 冕으로 執瞿하여 立于西垂하고 一人은 冕으로 執『(銳)』『[鈗]』하여 立于側階하니라』

 

『 두 사람은 작변(雀弁)으로 혜(惠)『[세모진 창]』를 잡고서 필문(畢門)의 안에 서 있고, 네 사람은 기변(쨚弁)『[얼룩무늬 두건]』으로 창을 잡되 칼날을 위로 하여 두 계단의 섬돌에 좌우로 늘어서고, 한 사람은 면복(冕服)으로 창을 잡고서 동당(東堂)에 서 있고, 한 사람은 면복(冕服)으로 도끼를 잡고서 서당(西堂)에 서 있고, 한 사람은 면복(冕服)으로 규(º\)『[양지창]』를 잡고서 동쪽 귀퉁이에 서 있고, 한 사람은 면복으로 창을 잡고서 서쪽 귀퉁이에 서 있고, 한 사람은 면복으로 창을 잡고서 옆 계단에 서 있었다.』

 

『弁은 士服이라 雀弁은 赤色弁也요 쨚弁은 以文鹿子皮爲之라 惠는 三隅矛라 路寢門을 一名畢門이라 上刃은 刃外嚮也라 堂廉曰Ý|라 冕은 大夫服이라 劉는 鉞屬이요 º\, 瞿는 皆戟屬이라 銳는 當作鈗이니 說文曰 鈗은 侍臣所執兵이니 從金允聲이라 周書曰 一人은 冕執鈗하니 讀若允이라하니라 東西堂은 路寢東西廂之前堂也요 東西垂는 路寢東西序之階上也요 側階은 北陛之階上也라』

『○ 呂氏曰 古者에 執戈戟하여 以宿衛王宮이 皆士大夫之職이라 無事而奉燕私면 則從容養德하여 而有膏澤之潤하고 有事而司禦侮면 則堅明守義하여 而無腹心之虞하니 下及秦漢에도 陛楯執戟이 尙餘一二라 此制旣廢에 人主接士大夫者 僅有視朝數刻이요 而『周廬陛楯주:주려폐순』을 或環以椎埋¯)悍之徒하니 有志於復古者는 當深繹也니라』

 

『 변(弁)은 사(士)의 복식이다. 작변(雀弁)은 적색의 변이고, 기변(쨚弁)은 얼룩무늬의 사슴새끼 가죽으로 만든 것이다. 혜(惠)는 세모진 창이다. 노침(路寢)의 문을 일명 필문(畢門)이라 한다. 상인(上刃)은 칼날이 밖을 향하게 한 것이다. 당(堂)의 모서리를 사(Ý|)라 한다. 면(冕)은 대부(大夫)의 복식이다. 유(劉)는 월(鉞)의 등속이고, 규(º\)와 구(瞿)는 모두 극(戟)의 등속이다. 예(銳)는 마땅히 윤(鈗)이 되어야 하니, 《설문(說文)》에 “윤(鈗)은 모시는 신하가 잡는 병기이니, 금(金)을 따르고 윤(允)의 음이다. 〈주서(周書)〉에 “한 사람은 면복으로 윤(鈗)을 잡았다.” 하였는데, 읽기를 윤(允)과 같이 한다.” 하였다. 동서당(東西堂)은 노침(路寢)의 동•서 상(廂)의 앞에 있는 당(堂)이며, 동서수(東西垂)는 노침(路寢)의 동•서 서(序)의 뜰 계단 위이고, 측계(側階)는 북쪽 뜰의 계단 위이다.』

『 ○ 여씨(呂氏)가 말하였다. “옛날에 과(戈)와 극(戟)을 잡아 왕궁(王宮)을 숙위(宿횞)하는 것은 모두 사(士)와 대부(大夫)의 직책이었다. 일이 없어 사사로울 때 받들어 모시면 종용(從容)히 덕(德)을 길러 고택(膏澤)의 윤택함이 있고, 일이 있어 어모(禦侮)를 맡으면 굳게 밝히고 의(義)를 지켜 복심(腹心)의 근심이 없었으니, 아래로 진(秦)•한(漢)에 이르기까지 폐순(陛楯)과 창을 잡는 자들이 오히려 한두 명 남아 있었다. 이 제도가 이미 폐해짐에 임금이 사(士)와 대부(大夫)를 접하는 것은 겨우 조회볼 때의 몇 시각일 뿐이며, 주려(周廬)와 폐순(陛楯)을 혹 추매(椎埋)『[사람을 때려 죽여 파묻음]』하는 어리석고 사나운 무리로 빙둘러 놓았으니, 옛날의 제도를 회복하려는 데 뜻이 있는 자는 마땅히 깊이 생각하여야 할 것이다.』

 

*서경 ; 주서 ; 고명 ; 제22장

 

▣ 제22장(第二十二章)

 

『王이 麻冕©,裳으로 由賓階하여 Ç*커시늘 卿士邦君은 麻冕蟻裳으로 入卽位하니라』

 

『 왕(王)이 마면(麻冕)과 보상(©,裳)으로 빈계(賓階)를 따라 오르시자, 경사(卿士)와 방군(邦君)『[제후왕]』들은 마면(麻冕)과 의상(蟻裳)『[검은 치마]』으로 들어가 자리에 나아갔다.』

 

『麻冕은 三十升麻로 爲冕也라 Ç*는 升也라 康王이 吉服으로 自西階升堂하여 以受先王之命이라 故로 由賓階也라 蟻는 玄色이니 公卿大夫及諸侯 皆同服하니 亦廟中之禮라 不言升階者는 從王賓階也라 入卽位者는 各就其位也라』

『○ 呂氏曰 麻冕©,裳은 王祭服也라 卿士邦君祭服之裳이 皆텛이어늘 今蟻裳者는 蓋無事於奠祝하니 不欲純用吉服이요 有位於班列하니 不可純用凶服일새 酌吉凶之間하여 示禮之變也니라』

 

『 마면(麻冕)은 30승(升) 삼베로 면류관을 만든 것이다. 제(Ç*)는 오름이다. 강왕(康王)이 길복(吉服)을 입고 서쪽 계단으로부터 당(堂)에 올라 선왕(先王)의 명령을 받았으므로 빈계(賓階)를 따라 올라간 것이다. 의(蟻)는 검정색이니, 공경(公卿)•대부(大夫)와 제후(諸侯)가 모두 똑같은 의복을 입었으니, 또한 사당 가운데의 예(禮)이다. 계단을 오름을 말하지 않은 것은 왕의 빈계(賓階)를 따라 올랐기 때문이다. 들어가 자리에 나아갔다는 것은 각기 그 자리로 나아간 것이다.』

『 ○ 여씨(呂氏)가 말하였다. “마면(麻冕)과 보상(©,裳)은 왕(王)의 제복(祭服)이다. 경사(卿士)와 방군(邦君)의 제복(祭服)의 치마는 모두 붉은 색인데 이제 검은 치마를 입은 것은 제수를 올리고 축(祝)을 읽을 일이 없으니 순전히 길복(吉服)을 쓰고자 하지 않은 것이고, 반렬(班列)에 자리가 있으니 순전히 흉복(凶服)을 쓸 수가 없으므로 길•흉의 중간을 참작하여 예(禮)의 변(變)을 나타낸 것이다.”』

 

*서경 ; 주서 ; 고명 ; 제23장

 

▣ 제23장(第二十三章)

 

『太保와 太史와 太宗은 皆麻冕쪐裳이러니 太保는 承介圭하고 上宗은 奉同瑁하여 由?階Ç*하고 太史는 秉書하여 由賓階Ç*하여 御王冊命하니라』

 

『 태보(太保)와 태사(太史)와 태종(太宗)은 모두 마면(麻冕)에 붉은 치마를 입었는데, 태보(太保)는 개규(介圭)『[큰 규(圭)]』를 받들고, 상종(上宗)은 동(同)『[술잔]』과 모(瑁)를 받들어 조계(?階)로부터 오르고, 태사(太史)는 책을 잡고서 빈계(賓階)로부터 올라 왕(王)에게 책명(冊命)을 바쳤다.』

 

『太宗은 宗伯也라 쪐은 텛也라 太保受遺하고 太史奉冊하고 太宗相禮라 故로 皆祭服也라 介는 大也라 大圭는 天子之守니 長尺有二寸이라 同은 爵名이니 祭以酌酒者라 瑁는 方四寸이니 邪刻之하여 以冒諸侯之珪璧하여 以齊瑞信也라 太保, 宗伯은 以先王之命으로 『奉符寶주:봉부보』하여 以傳嗣君하니 有主道焉이라 故升自?階요 太史는 以冊命御王이라 故持書하여 由賓階以升이라 蘇氏曰 凡王所臨所服用을 皆曰御라』

 

『 태종(太宗)은 종백(宗伯)이다. 동(쪐)은 붉음이다. 태보(太保)는 유명(遺命)을 받고, 태사(太史)는 책을 받들고, 태종(太宗)은 예(禮)를 돕는 까닭에 모두 제복(祭服)을 입은 것이다. 개(介)는 큼이다. 대규(大圭)는 천자가 지키는 것이니, 길이가 1척 2촌이다. 동(同)은 술잔의 이름이니, 제사에 술을 따르는 것이다. 모(瑁)는 방(方)이 4촌이니, 기울게 새겨서 제후의 규벽(珪璧)에 뒤집어 씌워 서신(瑞信)『[규(圭)]』을 맞추는 것이다. 태보(太保)와 종백(宗伯)은 선왕(先王)의 명으로 부보(符寶)를 받들어 사군(嗣君)에게 전하니, 주인(主人)의 도가 있으므로 조계(?階)로부터 올라가고, 태사(太史)는 책명(冊命)을 가지고 왕에게 올리므로 책을 잡고서 빈계(賓階)를 따라 올라간 것이다.』

『 소씨(蘇氏)가 말하였다. “무릇 왕이 임하는 바와 입고 쓰는 것을 모두 어(御)라 한다.”』

 

*서경 ; 주서 ; 고명 ; 제24장

 

▣ 제24장(第二十四章)

 

『曰 皇后憑玉¤!하사 道揚末命하사 命汝嗣訓하노니 臨君周邦하여 率循大卞하여 燮和天下하여 用答揚文武之光訓하라하시다』

 

『 〈태사(太史)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황후(皇后)『[위대한 군주]』께서 옥궤(玉¤!)에 기대어 마지막 명령을 도양(道揚)『[말씀]』하사 너에게 명하여 가르침을 잇게 하시니, ‘주(周)나라에 임하여 군주노릇해서 대변(大卞)『[큰 법]』을 따라 천하를 섭화(燮和)『[조화]』하여 문왕(文王)•무왕(武王)의 빛나는 가르침을 답양(答揚)하라.’ 하셨다.”』

 

『成王顧命之言은 書之冊矣니 此는 太史口陳者也라 皇은 大요 后는 君也라 言大君成王이 力疾하여 親憑玉¤!하여 道揚臨終之命하여 命汝嗣守文武大訓이라 曰汝者는 父前子名之義라 卞은 法也라 臨君周邦은 位之大也요 率循大卞은 法之大也요 燮和天下는 和之大也니 居大位, 由大法, 致大和然後에 可以對揚文武之光訓也라』

 

『 성왕(成王)의 고명(顧命)한 말씀은 책에 썼으니, 이는 태사(太史)가 입으로 진술한 것이다. 황(皇)은 큼이요, 후(后)는 군주이다. 대군(大君)인 성왕(成王)이 힘을 다해 병든 몸을 부축하여 친히 옥궤(玉¤!)에 기대어 임종의 명령을 말씀해서 너에게 명하여 문왕(文王)•무왕(武王)의 큰 가르침을 이어 지키라고 하였음을 말한 것이다. 너라고 말한 것은 아버지 앞에서는 자식의 이름을 부르는 의(義)이다. 변(卞)은 법이다. 주(周)나라에 임하여 군주노릇함은 지위의 큰 것이요, 큰 법을 따름은 법의 큰 것이요, 천하를 섭화(燮和)함은 화함의 큰 것이니, 대위(大位)에 거하고 대법(大法)을 따르고 대화(大和)를 이룬 뒤에야 문왕(文王)•무왕(武王)의 빛나는 가르침을 대양(對揚)할 수 있는 것이다.』

 

*서경 ; 주서 ; 고명 ; 제25장

 

▣ 제25장(第二十五章)

 

『王이 再拜興하사 答曰 ¨3¨3予末小子는 其能而『(如)』亂四方하여 以敬忌天威아』

『 왕(王)이 재배하고 일어나 답하였다. “묘묘(¨3¨3)한 나 말소자(末小子)가 그 능히 〈부(父)•조(祖)와〉 같이 사방을 다스려 하늘의 위엄을 공경하고 삼가겠는가.”』

 

『¨3는 小요 而는 如요 亂은 治也라 王拜受顧命하여 起答太史曰 ¨3¨3然予微末小子 其能如父祖治四方하여 以敬忌天威乎아하니 謙辭退托於不能也라 顧命에 有敬¬,天威, 嗣守文武大訓之語라 故太史所告와 康王所答이 皆於是致意焉하니라』

 

『 묘(¨3)는 작음이고, 이(而)는 여(如)『[같음]』이고, 난(亂)은 다스림이다. 왕(王)이 절하고 고명(顧命)을 받은 다음 일어나 태사(太史)에게 답하기를 “묘묘(¨3¨3)한 나 미말(微末)의 소자(小子)가 능히 부(父)•조(祖)와 같이 사방을 다스려 하늘의 위엄을 공경하고 삼가겠는가.” 하였으니, 겸사로 능하지 못하다고 퇴탁(退托)한 것이다. 고명(顧命)에 “공경히 하늘의 위엄을 맞이하고 문왕(文王)•무왕(武王)의 큰 가르침을 이어 지키라.”는 말이 있었다. 그러므로 태사(太史)가 고한 것과 강왕(康王)이 답한 것이 모두 여기에 뜻을 다한 것이다.』

 

*서경 ; 주서 ; 고명 ; 제26장

 

▣ 제26장(第二十六章)

 

『乃受同瑁하사 王이 三宿, 三祭, 三咤하신대 上宗曰 饗이라하다』

 

『 마침내 동(同)과 모(瑁)를 받아 왕(王)이 세 번 숙(宿)『[술잔을 잡고 신(神)에게 나아감]』하고 세 번 제(祭)하고『[땅에 부음]』 세 번 타(咤)『[다시 술잔을 신(神)에게 올림]』하시자, 상종(上宗)이 “흠향했노라.” 하였다.』

 

『王受瑁爲主하고 受同以祭라 宿은 進爵也요 祭는 祭酒也요 咤는 奠爵也니 禮成於三이라 故로 三宿, 三祭, 三咤라 葛氏曰 受上宗同瑁면 則受太保介圭를 可知라 宗伯曰饗者는 傳神命하여 以饗告也라』

 

『 왕(王)이 모(瑁)를 받아 상(喪)의 주(主)가 되고 동(同)을 받아 제(祭)한 것이다. 숙(宿)은 잔을 올리는 것이요, 제(祭)는 술을 제(祭)하는 것이요, 타(咤)는 잔을 제자리에 놓는 것이니, 예(禮)가 세 번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세 번 숙(宿)하고 세 번 제(祭)하고 세 번 타(咤)한 것이다.』

『 갈씨(葛氏)가 말하기를 “상종(上宗)의 동(同)과 모(瑁)를 받았으면 태보(太保)의 개규(介圭)를 받았음을 알 수 있다.” 하였다. 종백(宗伯)이 “흠향했다.”고 말한 것은 신(神)의 명령을 전달해서 “흠향했노라.”고 고한 것이다.』

 

*서경 ; 주서 ; 고명 ; 제27장

 

▣ 제27장(第二十七章)

 

『太保受同하여 降쥫하고 以異同으로 秉璋以酢하고 授宗人同하고 拜한대 王이 答拜하시다』

 

『 태보(太保)가 동(同)을 받아 내려와 손을 씻고는 딴 동(同)으로 장(璋)을 잡아 술을 따르고 종인(宗人)에게 동(同)을 준 다음 절하자, 왕(王)이 답배하였다.』

 

『太保受王所咤之同하여 而下堂쥫洗하고 更用他同하여 秉璋以酢이라 酢은 報祭也니 祭禮에 君執圭瓚祼尸어든 太宗이 執璋瓚亞祼이라하니 報祭는 亦亞祼之類라 故로 亦秉璋也라 以同授宗人하고 而拜尸에 王答拜者는 代尸拜也라 宗人은 小宗伯之屬이니 相太保酢者也라 太宗供王이라 故로 宗人供太保라』

 

『 태보(太保)는 왕(王)이 타(咤)한 동(同)을 받아 당(堂)에서 내려와 손을 씻고는 다시 딴 동(同)을 사용하여 장(璋)을 잡고 술을 따른 것이다. 초(酢)은 보제(報祭)『[아헌(亞獻)]』이니, 〈제례(祭禮)〉에 “군주가 규찬(圭瓚)을 잡고 시(尸)에게 술을 따르거든 태종(太宗)이 장찬(璋瓚)을 잡고 아관(亞祼)을 한다.” 하였으니, 보제(報祭)는 또한 아관의 유(類)이므로 또한 장(璋)을 잡은 것이다. 동(同)을 종인(宗人)에게 주고 시(尸)에 절하자 왕(王)이 답배한 것은 시(尸)를 대신하여 절한 것이다. 종인(宗人)은 소종백(小宗伯)의 관속이니, 태보(太保)를 도와 술을 따른 자이다. 태종(太宗)이 왕을 위해 술을 따르므로 종인(宗人)이 태보(太保)를 위해 술을 따른 것이다.』

 

*서경 ; 주서 ; 고명 ; 제28장

 

▣ 제28장(第二十八章)

 

『太保受同하여 祭?하고 宅하여 授宗人同하고 拜한대 王이 答拜하시다』

 

『 태보(太保)가 동(同)을 받아 제(祭)하고 술을 이에만 대고는 물러가 자기 자리로 가서 종인(宗人)에게 동(同)을 준 다음 절하자, 왕(王)이 답배하였다.』

 

『以酒至齒曰?니 太保復受同以祭하고 飮福至齒라 宅은 居也라 太保退居其所하여 以同授宗人하고 又拜한대 王復答拜라 太保飮福至齒者는 方在喪즫하여 歆神之賜로되 而不甘其味也라 若王則喪之主니 非徒不甘味라 雖飮福이라도 亦廢也니라』

 

『 술을 이『〔齒〕』에만 대는 것을 제(?)라 하니, 태보(太保)가 다시 동(同)을 받아 제(祭)하고, 음복하여 이에 이른 것이다. 택(宅)은 거(居)함이다. 태보(太保)가 물러가 자기 자리에 거(居)하여 동(同)을 종인(宗人)에게 주고 다시 절하자, 왕(王)이 다시 답배한 것이다. 태보(太保)가 음복하되 이에만 댄 것은 막 상구(喪즫)『[상중]』에 있어 신(神)이 주신 것을 먹되 그 맛을 달게 여기지 않은 것이다. 왕(王)으로 말하면 상주(喪主)이니, 비단 맛을 달게 여기지 않을 뿐만 아니라, 비록 음복이라도 폐해야 한다.』

 

*서경 ; 주서 ; 고명 ; 제29장

 

▣ 제29장(第二十九章)

 

『太保降커늘 收하더니 諸侯出廟門하여 俟하니라』

 

『 태보(太保)가 내려오자 거두더니, 제후가 묘문(廟門)을 나와 기다렸다.』

 

『太保下堂이어늘 有司收撤器用이라 廟門은 路寢之門也니 成王之殯在焉이라 故로 曰廟라 言諸侯則卿士以下를 可知라 俟者는 俟見新君也라』

 

『 태보(太保)가 당(堂)을 내려오자, 유사(有司)가 기용(器用)을 거둔 것이다. 묘문(廟門)은 노침(路寢)의 문이니, 성왕(成王)의 빈소가 있기 때문에 묘(廟)라 한 것이다. 제후를 말했으면 경사(卿士) 이하를 알 수 있다. 사(俟)는 새 군주를 뵙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서경 ; 주서 ; 강왕지고(康王之誥)

 

▣ 강왕지고(康王之誥)

 

『今文古文皆有로되 但今文은 合于顧命하니라』

『 금문(今文)과 고문(古文)에 모두 있으나 다만 금문(今文)은 〈고명(顧命)〉에 합쳐져 있다.』

『○ 서경 ; 주서 ; 강왕지고 ; 제1장+1』

『○ 서경 ; 주서 ; 강왕지고 ; 제2장+2』

『○ 서경 ; 주서 ; 강왕지고 ; 제3장+3』

『○ 서경 ; 주서 ; 강왕지고 ; 제4장+4』

『○ 서경 ; 주서 ; 강왕지고 ; 제5장+5』

『○ 서경 ; 주서 ; 강왕지고 ; 제6장+6』

『○ 서경 ; 주서 ; 강왕지고 ; 제7장+7』

 

*서경 ; 주서 ; 강왕지고 ; 제1장

 

▣ 제1장(第一章)

 

『王이 出在應門之內어시늘 太保는 率西方諸侯하여 入應門左하고 畢公은 率東方諸侯하여 入應門右하니 皆布乘黃朱러라 賓이 稱奉圭兼幣하여 曰 一二臣衛는 敢執壤奠이라하고 皆再拜稽首한대 王이 義嗣德이라 答拜하시다』

 

『 왕(王)이 나가서 응문(應門)의 안에 있자, 태보(太保)는 서방(西方)의 제후를 거느려 응문(應門)으로 들어와 왼쪽에 서고, 필공(畢公)은 동방(東方)의 제후를 거느려 응문(應門)으로 들어와 오른쪽에 서니, 모두 승황(乘黃)『[네 마리의 황마(黃馬)]』에 갈기가 붉은 것을 진열하였다. 빈(賓)『[제후왕]』이 받든 규(圭)와 겸하여 폐백을 들어 올리며 말하기를 “한두 명의 신위(臣衛)는 감히 토지에서 나오는 것을 잡아 올립니다.” 하고, 모두 재배하고 머리를 조아리자, 왕(王)이 덕(德)을 이음이 마땅하므로 답배하였다.』

 

『漢孔氏曰 王出畢門하여 立應門內라 鄭氏曰 周禮五門이니 一曰皐門이요 二曰雉門이요 三曰庫門이요 四曰應門이요 五曰路門이니 路門은 一曰畢門이라 外朝는 在路門外하니 則應門之內는 蓋內朝所在也라 周中分天下諸侯하여 主以二伯하여 自陝以東은 周公主之하고 自陝以西는 召公主之하니 召公率西方諸侯는 蓋西伯舊職이요 畢公率東方諸侯는 則繼周公하여 爲東伯矣라 諸侯入應門하여 列于左右하니라 布는 陳也요 乘은 四馬也니 諸侯皆陳四黃馬而朱其쫖하여 以爲廷『(庭)』實이라 或曰 黃朱는 若?厥玄黃之類라 賓은 諸侯也라 稱은 擧也니 諸侯擧所奉圭兼幣라 曰一二臣衛는 一二는 見非一也니 爲王蕃衛故로 曰臣衛라 敢執壤地所出奠贄라하고 皆再拜, 首至地하여 以致敬이라 義는 宜也니 義嗣德云者는 史氏之辭也라 康王이 宜嗣前人之德이라 故로 答拜也라 吳氏曰 穆公이 使人弔公子重耳한대 重耳稽챓而不拜하니 穆公曰 仁夫라 公子稽챓而不拜하니 則未爲後也라하니 蓋爲後者는 拜하나니 不拜라 故로 未爲後也라 弔者, 含者, Á2者 升堂致命이어든 主孤拜稽챓하나니 成爲後者也라 康王之見諸侯에 若以爲不當拜라하여 而不拜면 則疑未爲後也요 且純乎吉也니 答拜는 旣正其爲後요 且知其以喪見也니라』

 

『 한(漢)나라 공씨(孔氏)가 말하기를 “왕(王)이 필문(畢門)을 나가 응문(應門)의 안에 섰다.” 하였다. 정씨(鄭氏)는 말하기를 “《주례(周禮)》에 다섯 개의 문이니, 첫번째는 고문(皐門)이고, 두번째는 치문(雉門)이고, 세번째는 고문(庫門)이고, 네번째는 응문(應門)이고, 다섯번째는 노문(路門)이니, 노문(路門)은 일명 필문(畢門)이라 한다.” 하였다. 바깥 조정은 노문(路門)의 밖에 있으니, 응문(應門)의 안은 안 조정이 있는 곳이다. 주(周)나라는 천하의 제후를 반으로 나누어 두 백(伯)에게 주관하게 하여, 섬(陝) 이동 지방은 주공(周公)이 주관하고 섬(陝) 이서 지방은 소공(召公)이 주장하였으니, 소공(召公)이 서방의 제후를 거느린 것은 서백(西伯)의 옛 직책이고, 필공(畢公)이 동방(東方)의 제후를 거느린 것은 주공(周公)을 이어 동백(東伯)이 된 것이다. 제후가 응문(應門)에 들어와 좌•우로 진열하였다. 포(布)는 진열함이요, 승(乘)은 네 필의 말이니, 제후가 모두 네 마리의 황마에 갈기가 붉은 것을 진열하여 정실(庭實)로 삼은 것이다. 혹자(或者)는 말하기를, “황주(黃朱)는 《시경(詩經)》의 ‘비궐현황(?厥玄黃)『[검은 비단과 누른 비단을 광주리에 담음]』’과 같다.” 한다. 빈(賓)은 제후이다. 칭(稱)은 듦이니, 제후가 받든 바의 규(圭)와 겸하여 폐백을 들어 올린 것이다. ‘한두 명의 신위(臣衛)’라고 말한 것은, 일이(一二)는 하나가 아님을 나타낸 것이니, 왕(王)의 번위(蕃衛)가 되었기 때문에 신위(臣衛)라고 한 것이다. 감히 토지에서 나오는 것을 잡아 폐백을 올린다 하고, 모두 재배하고 머리가 땅에 이르러 공경을 지극히 하였다. 의(義)는 마땅함이니, 덕을 이음이 마땅하다는 것은 사관(史官)의 말이다. 강왕(康王)이 전인(前人)의 덕을 이음이 마땅하므로 답배한 것이다.』

『 오씨(吳氏)가 말하였다. “진목공(秦穆公)이 사람으로 하여금 공자(公子) 중이(重耳)에게 조문하게 하자, 중이가 머리를 조아리기만 하고 절하지 않으니, 목공(穆公)이 말하기를 ‘인(仁)하다. 공자(公子)가 머리를 조아리기만 하고 절하지 않으니, 후계자가 되지 않은 것이다.’ 하였으니, 후계자가 된 자는 절하는데, 절하지 않았으므로 후계자가 되지 않은 것이다. 조문하는 자와 반함(飯含)『[시신의 입에 쌀을 넣어줌]』하는 자와 수의(Á2衣)를 입히는 자가 당(堂)에 올라가 명령을 올리면 상주(喪主)인 고(孤)가 절하고 머리를 조아리니, 이는 후계자가 됨을 이룬 것이다. 강왕(康王)이 제후를 만나볼 때에 만일 마땅히 절하지 않아야 한다 하여 절하지 않으면 후계자가 되지 않는가 의심되고 또 길함에 순수하니, 답배한 것은 이미 후계자가 됨을 바르게 하고, 또 상례(喪禮)로써 만나봄을 알게 한 것이다.”』

 

*서경 ; 주서 ; 강왕지고 ; 제2장

 

▣ 제2장(第二章)

 

『太保쨑芮伯으로 咸進相揖하고 皆再拜稽首하여 曰 敢敬告天子하노이다 皇天이 改大邦殷之命이어시늘 惟周文武誕受羑若하사 克恤西土하시니이다』

 

『 태보(太保)가 예백(芮伯)과 더불어 함께 나아가 서로 읍하고는 모두 재배하고 머리를 조아려 말하기를 “감히 천자께 공경히 아뢰옵니다. 황천(皇天)이 대방(大邦)인 은(殷)나라의 명을 바꾸시자, 주(周)나라의 문왕(文王)•무왕(武王)께서 크게 유약(羑若)을 받으시어 능히 서쪽 지방을 구휼하셨습니다.』

 

『¾4宰及司徒與群臣이 皆進相揖하여 定位하고 又皆再拜稽首하여 陳戒於王曰 敢敬告天子라하니 示不敢輕告요 且尊稱之는 所以重其聽也라 曰大邦殷者는 明有天下 不足恃也라 羑若은 未詳이라 蘇氏曰 羑는 羑里也니 文王이 出羑里之囚에 天命自是始順이라하고 或曰 羑若은 卽下文之厥若也라하니 羑厥에 或字有訛謬라 西土는 文武所興之地니 言文武所以大受命者는 以其能恤西土之衆也라 進告에 不言諸侯는 以內見外라』

 

『 총재(¾4宰)와 사도(司徒)와 군신(群臣)이 모두 나아가 서로 읍하여 자리를 정하고는 또 모두 재배하고 머리를 조아려 왕(王)에게 경계 말씀을 올리기를 “감히 공경히 천자에게 고한다.” 하였으니, 이는 감히 가볍게 고하지 못함을 보인 것이며, 또 천자라고 존칭한 것은 그 들음을 중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대방(大邦)인 은(殷)이라고 말한 것은 천하를 소유함이 믿을 것이 못됨을 밝힌 것이다. 유약(羑若)은 상세하지 않다. 소씨(蘇氏)는 말하기를 “유(羑)는 유리(羑里)이니, 문왕(文王)이 갇혀 있던 유리(羑里)에서 나오자, 천명이 이로부터 비로소 순했다.” 하였고, 혹자는 “유약(羑若)은 곧 하문(下文)의 궐약(厥若)이다.”라고 하니, 유(羑)와 궐(厥)에 혹 글자가 오류가 있는 듯하다. 서쪽 지방은 문왕(文王)•무왕(武王)이 일어난 지역이니, 문왕(文王)•무왕(武王)이 크게 천명을 받은 까닭은 서쪽 지방의 무리를 구휼했기 때문임을 말한 것이다. 나아가 고할 적에 제후를 말하지 않은 것은 안으로 밖을 나타낸 것이다.』

 

*서경 ; 주서 ; 강왕지고 ; 제3장

 

▣ 제3장(第三章)

 

『惟新陟王이 畢協賞罰하사 戡定厥功하사 用敷遺後人休하시니 今王은 敬之哉하사 張皇六師하사 無壞我高祖寡命하소서』

 

『 새로 승하하신 왕(王)『[성왕(成王)]』께서 상(賞)과 벌(罰)을 모두 합당하게 하시어 그 공을 이겨 정해서 후인에게 아름다움을 펴서 끼쳐 주셨으니, 금왕(今王)께서는 공경하여 육사(六師)를 장황(張皇)해서 우리 고조(高祖)께서 어렵게 얻은 명을 무너뜨리지 마소서.”』

 

『陟은 升遐也니 成王初崩하여 未葬未諡라 故로 曰新陟王이라 畢은 盡이요 協은 合也라 好惡在理하고 不在我라 故로 能盡合其賞之所當賞, 罰之所當罰하여 而克定其功하여 用施『(이)』及後人之休美하니 今王嗣位에 其敬勉之哉인저 皇은 大也니 張皇六師하고 大戒戎備하여 無廢壞我文武艱難寡得之基命也라 按召公此言은 若導王以尙威武者라 然守成之世엔 多溺宴安하여 而無立志하나니 苟不詰爾戎兵하여 奮揚武烈이면 則廢弛怠惰하여 而陵遲之漸이 見矣라 成康之時에 病正在是라 故로 周公於立政에 亦懇懇言之하시니라 後世에 墜先王之業하고 忘祖父之讐하여 上下苟安하여 甚至於口不言兵하니 亦異於召公之見矣니 可勝嘆哉아』

 

『 척(陟)은 승하(昇遐)함이니, 성왕(成王)이 처음 별세하여 아직 장례하지 않고 시호를 짓지 않았으므로 ‘새로 승하한 왕’이라고 한 것이다. 필(畢)은 다이고, 협(協)은 합함이다. 좋아하고 미워함이 이치에 있고 자신에게 있지 않았으므로 상은 마땅히 상주어야 할 바에 벌은 마땅히 벌주어야 할 바에 모두 합하여 그 공을 이겨 정해서 뻗쳐 후인의 아름다움에 미치게 하였으니, 금왕(今王)은 지위를 이음에 공경하여 힘써야 할 것이다. 황(皇)은 큼이니, 육사(六師)를 장황(張皇)하고 융비(戎備)『[국방(國防)]』를 크게 경계하여 우리 문왕(文王)•무왕(武王)이 어렵게 얻은 기명(基命)을 폐괴(廢壞)하지 말라.』

『 살펴보건대 소공(召公)의 이 말은 왕을 위엄과 무력을 숭상함으로 인도하는 듯하다. 그러나 수성(守成)의 세대에는 연안(宴安)에 빠져서 입지(立志)가 없는 경우가 많으니, 만약 너의 융병(戎兵)을 다스려 무열(武烈)을 뽐내고 드날리지 않는다면 폐이(廢弛)하고 태타(怠惰)하여 능지(陵遲)『[침체]』의 징조가 나타난다. 성왕(成王)•강왕(康王)의 때에는 병통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 그러므로 주공(周公)이 〈입정(立政)〉에서 또한 간곡히 말씀한 것이다. 후세에는 선왕(先王)의 기업(基業)을 실추하고 조(祖)•부(父)의 원수를 잊어서 상하(上下)가 구차히 편안하여 심지어는 입으로 병사(兵事)를 말하지 않기까지 하였으니, 또한 소공(召公)의 소견과 다르니, 이루 다 탄식할 수 있겠는가.』

 

*서경 ; 주서 ; 강왕지고 ; 제4장

 

▣ 제4장(第四章)

『王若曰 庶邦侯甸男衛아 惟予一人釗는 報誥하노라』

 

『 왕(王)이 이렇게 말씀하였다. “여러 나라의 후(侯)•전(甸)•남(男)•위(衛)야! 나 한 사람 소(釗)는 고(誥)에 답하노라.』

 

『報誥而不及群臣者는 以外見內라 康王在喪이라 故로 稱名하니 春秋嗣王在喪에도 亦書名也하니라』

 

『 고(誥)에 답하면서 군신(群臣)을 언급하지 않은 것은 밖으로써 안을 나타낸 것이다. 강왕(康王)이 상중(喪中)에 있었으므로 이름을 칭한 것이니, 《춘추(春秋)》에 사왕(嗣王)이 상중에 있을 때에도 또한 이름을 썼다.』

 

*서경 ; 주서 ; 강왕지고 ; 제5장

 

▣ 제5장(第五章)

 

『昔君文武 丕平富하시며 不務咎하사 底『(지)』至齊信하사 用昭明于天下어시늘 則亦有熊찈之士와 不二心之臣이 保乂王家하여 用端命于上帝하시니 皇天이 用訓厥道하사 付퓒四方하시니라』

 

『 옛날 군주이신 문왕(文王)•무왕(武王)께서 크게 공평하고 부유하게 하시며 허물『[처벌]』을 힘쓰지 아니하사, 지극함을 이루며 가지런히 지극히 하고 정성스럽게 하시어 천하에 밝히시자, 또한 웅비(熊찈)와 같은 용사(勇士)와 두 마음을 품지 않은 신하들이 왕가(王家)『[왕실]』를 보존하고 다스려서 상제(上帝)에게 바른 명을 받으시니, 황천(皇天)이 그 도를 순히 하시어 사방을 맡겨 주셨다.』

 

『丕平富者는 溥博均平하고 薄斂富民이니 言文武德之廣也요 不務咎者는 不務咎惡하여 輕省刑罰이니 言文武罰之謹也라 底至者는 推行而底其至也요 齊信者는 兼盡而極其誠也라 文武務德不務罰之心을 推行而底其至하고 兼盡而極其誠하여 內外充實이라 故로 光輝發越하여 用昭明于天下하니 蓋誠之至者 不可헩也요 而又有熊찈武勇之士와 不二心忠實之臣이 戮力同心하여 保乂王室하여 文武用受正命於天하시니 上天이 用順文武之道하여 而付之以天下之大也라 康王言此者는 求助群臣諸侯之意라』

 

『 크게 균평하여 부유하게 했다는 것은 부박(溥博)하게 균평(均平)하고 세금을 적게 거두어 백성을 부유하게 한 것이니 문왕(文王)•무왕(武王)의 덕이 넓음을 말한 것이며, 허물을 힘쓰지 않았다는 것은 구악(咎惡)을 힘쓰지 아니하여 형벌을 가볍게 하고 줄인 것이니 문왕(文王)•무왕(武王)이 형벌을 삼가함을 말한 것이다. 지지(底至)는 미루어 행해서 그 지극함을 이루는 것이요, 제신(齊信)은 겸하여 다해서 그 성신(誠信)을 지극히 하는 것이다. 문왕(文王)•무왕(武王)이 덕을 힘쓰고 형벌을 힘쓰지 않는 마음을 미루어 행해서 지극함을 이루고, 겸하여 다해서 성신(誠信)을 지극히 하여 내외(內外)가 충실하였다. 그러므로 광휘(光輝)가 발월(發越)『[발양(發揚)]』하여 천하에 밝혀졌으니 성신(誠信)이 지극함을 가릴 수 없으며, 또 웅비(熊찈)와 같은 무용(武勇)을 갖춘 용사(勇士)와 두 마음을 품지 않은 충실(忠實)한 신하들이 힘을 합하고 마음을 함께 하여 왕실(王室)을 보호하고 다스려서 문왕(文王)•무왕(武王)이 하늘에게 바른 명을 받으셨으니 상천(上天)이 문왕(文王)•무왕(武王)의 도(道)를 순히 하여 천하의 큼을 맡겨주신 것이다. 강왕(康王)이 이것을 말한 것은 군신(群臣)과 제후(諸侯)들에게 도움을 구하는 뜻이다.』

 

*서경 ; 주서 ; 강왕지고 ; 제6장

 

▣ 제6장(第六章)

 

『乃命建侯樹屛은 在我後之人이니 今予一二伯父는 尙胥쨑顧綏爾先公之臣服于先王하여 雖爾身在外하나 乃心은 罔不在王室하여 用奉恤厥若하여 無遺鞠子羞하라』

 

『 명하여 후(侯)를 세워 번병(藩屛)을 세우심은 뜻이 우리 후인(後人)에게 있으시니, 지금 우리 한두 명의 백부(伯父)들은 부디 서로 더불어 너희들의 선공(先公)이 선왕(先王)께 신복(臣服)했던 것을 돌아보고 편안히 하여, 비록 너희들의 몸은 밖에 있으나 너희들의 마음은 왕실에 있지 않음이 없어, 근심함을 받들어 순히 이어서 국자(鞠子)에게 부끄러움을 끼치지 말도록 하라.”』

 

『天子稱同姓諸侯曰伯父라 康王言 文武所以命建侯邦하여 植立蕃屛者는 意蓋在我後之人也니 今我一二伯父 庶幾相與顧綏爾祖考 所以臣服于我先王之道하여 雖身守國在外하나 乃心은 當常在王室하여 用奉上之憂勤하여 其順承之하여 毋遺我稚子之恥也라』

 

『 천자(天子)가 동성(同姓)의 제후를 칭하여 백부(伯父)라 한다. 강왕(康王)이 말씀하기를 “문왕(文王)•무왕(武王)이 명하여 제후나라를 세워 번병(藩屛)을 세운 까닭은 뜻이 우리 후인(後人)에게 있었으니, 지금 우리 한두 명의 백부(伯父)들은 부디 서로 더불어 너희들의 조(祖)•고(考)가 우리 선왕(先王)에게 신복(臣服)했던 바의 도(道)를 돌아보고 편안히 하여, 비록 몸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밖에 있으나 너희들의 마음은 항상 왕실에 있어 윗사람의 근심하고 수고로운 마음을 받들어 순히 이어서 나 치자(稚子)에게 부끄러움을 끼치지 말라.”고 한 것이다.』

 

*서경 ; 주서 ; 강왕지고 ; 제7장

 

▣ 제7장(第七章)

 

『群公이 旣皆聽命하고 相揖趨出이어늘 王이 釋冕하시고 反喪服하시다』

 

『 여러 공(公)들이 모두 명령을 듣고는 서로 읍하고 추창하여 나가자, 왕(王)이 면복(冕服)을 벗고 다시 상복(喪服)을 입었다.』

 

『始相揖者는 揖而進也요 此相揖者는 揖而退也라 蘇氏曰 成王崩未葬에 君臣皆冕服이 禮歟아 曰 非禮也니라 謂之變禮 可乎아 曰 不可하다 禮는 變於不得已하나니 嫂非溺이면 終不援也라 三年之喪에 旣成服하고 釋之而卽吉은 無時而可者니라 曰 成王顧命을 不可以不傳이요 旣傳이면 不可以喪服受也니라 曰 何爲其不可也오 孔子曰 將冠子할새 未及期日하여 而有齊衰大功之喪이면 則因喪服而冠이라하시니 冠은 吉禮也로되 猶可以喪服行之하니 受顧命, 見諸侯에 獨不可以喪服乎아 太保使太史奉冊하여 授王于次어든 諸侯入哭於路寢하고 而見王於次하며 王은 喪服으로 受敎戒諫하고 哭踊答拜니 聖人復起라도 不易斯言矣시리라 春秋傳曰 鄭子皮如晉하여 葬晉平公할새 將以幣行한대 子産曰 喪에 安用幣리오호되 子皮固請以行이러니 旣葬에 諸侯之大夫 欲因見新君한대 叔向이 辭之曰 大夫之事畢矣어늘 而又命孤하시니 孤는 斬焉在衰²'之中하시니 其以嘉服見이면 則喪禮未畢이요 其以喪服見이면 是는 重受弔也니 大夫將若之何오하니 皆無辭以退하니라 今康王이 旣以嘉服見諸侯하고 而又受乘黃玉帛之幣하니 使周公在면 必不爲此하시리라 然則孔子何取此書也오 曰 至矣라 其父子君臣之間에 敎戒深切著明하여 足以爲後世法하니 孔子何爲不取哉시리오 然이나 其失禮則不可不辨이니라』

 

『 처음에 서로 읍(揖)한 것은 읍하고 나아간 것이며, 여기에 서로 읍한 것은 읍하고 물러간 것이다.』

『 소씨(蘇氏)가 말하였다. “ ‘성왕(成王)이 별세하여 장례하지 않았는데, 군주와 신하가 모두 면복(冕服)을 입는 것이 예(禮)인가?’ ‘예(禮)가 아니다.’ ‘변례(變禮)라고 하는 것이 가하겠는가?’ ‘가(可)하지 않다. 예(禮)는 부득이하여 변하는 것이니, 수(嫂)『[형수나 제수]』가 물에 빠지지 않았으면 끝내 손으로 구원할 수 없는 것이다. 3년상에 이미 성복(成服)한 뒤에 상복을 벗고 길복(吉服)에 나아감은 가(可)한 때가 없는 것이다.’ ‘성왕(成王)의 고명(顧命)을 전하지 않을 수 없고, 이미 전한다면 상복으로 받을 수 없다.’ ‘어찌하여 불가(不可)하겠는가. 공자(孔子)가 말씀하기를 「장차 자식을 관례(冠禮)하려 할 적에 기일에 미치지 못하여 제최(齊衰)『[기년(期年)]』와 대공(大功)의 상(喪)이 있으면 상복을 그대로 입고 관례한다.」 하였으니, 관례(冠禮)는 길례(吉禮)인데도 오히려 상복을 입고 행하니, 고명(顧命)을 받고 제후를 만나봄에 홀로 상복으로 할 수 없단 말인가. 태보(太保)가 태사(太史)로 하여금 책을 받들어 상차(喪次)『[여막]』에서 왕(王)에게 올리거든 제후들이 노침(路寢)에 들어가 곡(哭)하고 왕(王)을 상차(喪次)에서 뵈며, 왕(王)은 상복으로 가르침과 경계와 간언을 받고는 곡(哭)하고 용(踊)하고 답배하여야 하니, 성인(聖人)이 다시 나오셔도 이 말을 바꾸지 않으실 것이다. 《춘추전(春秋傳)》에 「정(鄭)나라 자피(子皮)가 진(晉)나라에 가서 진(晉)나라 평공(平公)을 장례할 적에 장차 폐백을 가지고 가려 하자, 자산(子産)이 말하기를 ‘상사에 폐백을 어디에다가 쓰겠는가’하였으나 자피(子皮)가 굳이 청하여 가지고 갔었다. 장례를 마친 다음 제후의 대부(大夫)들이 인하여 새 군주를 뵙고자 하자, 숙향(叔向)이 사양하기를 ‘대부의 일이 끝났는데 다시 고(孤)『[상주]』에게 명하니, 고(孤)는 참언(斬焉)히 최질(衰²')의 가운데 계시니, 가복(嘉服)『[길복]』으로 만나본다면 상례(喪禮)가 아직 다하지 않았고, 상복으로 만나 본다면 이는 거듭 조문을 받는 것이니, 대부(大夫)가 장차 어쩌겠는가?’라고 하니, 모두 할 말이 없어 스스로 물러갔다.」 하였다. 이제 강왕(康王)이 가복(嘉服)으로 제후를 만나보고 또 승황(乘黃)과 옥백(玉帛)의 폐백을 받았으니, 가령 주공(周公)이 계셨다면 반드시 이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공자(孔子)가 어찌하여 이 글을 취하였는가? 지극하다. 부자간과 군신간에 가르침과 경계가 깊고 간절하고 저명하여 후세의 법이 될 만하니, 공자(孔子)가 어찌하여 취하지 않으시겠는가. 그러나 그 실례(失禮)는 분변하지 않을 수 없다.”』

 
 
 

서경

재휘애비.溢空 2016. 9. 3. 20:47

서경 ; 주서 ; 필명(畢命)

 

▣ 필명(畢命)

 

『康王이 以成周之衆으로 命畢公保釐하니 此其冊命也라 今文無, 古文有하니라』

『○ 唐孔氏曰 漢律曆志云 康王畢命豊刑曰 惟十有二年六月庚午?에 王命作冊書豊刑이라하니 此僞作者 傳聞舊語

하여 得其年月하고 不得以下之辭하여 妄言作豊刑耳라 亦不知豊刑之言이 何所道也로라』

 

『 강왕(康王)이 성주(成周)의 무리를 필공(畢公)에게 명하여 보리(保釐)『[보호하고 다스림]』하게 하니,

이것이 그 책명(冊命)『[책명(策命)]』이다. 금문(今文)에는 없고 고문(古文)에는 있다.』

『 ○ 당(唐)나라 공씨(孔氏)가 말하였다. “《한서(漢書)》〈율력지(律曆志)〉에 ‘강왕(康王)의 필명(畢命) 풍형

(豊刑)에 12년 6월 경오비(庚午?)『[초사흘]』에 왕이 명하여 책서(冊書)인 풍형(豊刑)을 짓게 했다.’ 하였는데,

이는 위작(僞作)한 자가 옛말을 전해 들어 그 연월(年月)만 알고 그 이하의 말은 알지 못하고서 망령되이 풍형

(豊刑)을 지었다고 말한 것이다. 또한 풍형(豊刑)이란 말이 무엇을 말한 것인지 알 수 없다.”』

 

『○ 서경 ; 주서 ; 필명 ; 제1장+1』

『○ 서경 ; 주서 ; 필명 ; 제2장+2』

『○ 서경 ; 주서 ; 필명 ; 제3장+3』

『○ 서경 ; 주서 ; 필명 ; 제4장+4』

『○ 서경 ; 주서 ; 필명 ; 제5장+5』

『○ 서경 ; 주서 ; 필명 ; 제6장+6』

『○ 서경 ; 주서 ; 필명 ; 제7장+7』

『○ 서경 ; 주서 ; 필명 ; 제8장+8』

『○ 서경 ; 주서 ; 필명 ; 제9장+9』

『○ 서경 ; 주서 ; 필명 ; 제10장+10』

『○ 서경 ; 주서 ; 필명 ; 제11장+11』

『○ 서경 ; 주서 ; 필명 ; 제12장+12』

『○ 서경 ; 주서 ; 필명 ; 제13장+13』

『○ 서경 ; 주서 ; 필명 ; 제14장+14』

『○ 서경 ; 주서 ; 필명 ; 제15장+15』

 

 

*서경 ; 주서 ; 필명 ; 제1장

 

▣ 제1장(第一章)

 

『惟十有二年六月庚午?越三日壬申에 王朝步自宗周하사 至于豊하사 以成周之衆으로 命畢公하여 保釐東郊하시다』

 

『 12년 6월 경오비(庚午?)에서 3일이 지난 임신일(壬申日)에 왕(王)이 아침에 종주(宗周)로부터 걸어 풍(豊)땅에

이르러서 성주(成周)의 무리를 필공(畢公)에게 명하여 동교(東郊)를 보리(保釐)하게 하였다.』

 

『康王之十二年也라 畢公이 嘗相文王이라 故로 康王이 就豊文王廟하여 命之라 成周는 下都也라 保는 安이요 釐는

理也니 保釐는 卽下文旌別淑慝之謂니 蓋一代之治體요 一篇之宗要也라』

 

『 강왕(康王)이 즉위(卽位)한 12년이다. 필공(畢公)이 일찍이 문왕(文王)을 도왔으므로 강왕(康王)이 풍(豊)땅에

있는 문왕(文王)의 사당에 가서 명한 것이다. 성주(成周)는 하도(下都)『[낙읍(洛邑)]』이다. 보(保)는 편안함이요

이(釐)는 다스림이니, 보리(保釐)는 곧 하문(下文)에 선(善)과 악(惡)을 표창하고 구별함을 말하니, 일대(一代)의

다스리는 체통(體統)이고 한 편(篇)의 종요(宗要)이다.』

 

 

*서경 ; 주서 ; 필명 ; 제2장

 

▣ 제2장(第二章)

 

『王若曰 嗚呼라 父師아 惟文王武王이 敷大德于天下하사 用克受殷命하시니라』

 

『 왕(王)이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아! 부사(父師)야. 문왕(文王)과 무왕(武王)이 큰 덕(德)을 천하에 펴시어

능히 은(殷)나라의 명(命)을 받으셨다.』

 

『畢公이 代周公爲太師也라 文王武王이 布大德于天下하사 用能受殷之命하니 言得之之難也라』

 

『 필공(畢公)이 주공(周公)을 대신하여 태사(太師)가 되었다. 문왕(文王)과 무왕(武王)이 큰 덕(德)을 천하에

펴시어 능히 은(殷)나라의 명을 받았으니, 얻기 어려움을 말한 것이다.』

 

*서경 ; 주서 ; 필명 ; 제3장

 

▣ 제3장(第三章)

 

『惟周公이 『左右先王주:자우선왕』하여 綏定厥家하시고 毖殷頑民하여 遷于洛邑하여 密邇王室하시니 式化厥訓

하여 旣歷三紀하여 世變風移하여 四方無虞하니 予一人이 以寧호라』

 

『 주공(周公)이 선왕(先王)을 도와 집『[국가]』을 편안히 안정시키시고, 은(殷)나라의 완악한 백성들을 삼가

낙읍(洛邑)으로 옮겨서 왕실(王室)에 가깝게 하시니, 그 가르침에 교화되어 이미 3기(紀)가 지나 대(代)가 변하고

풍속이 바뀌어 사방이 근심이 없으니, 나 한 사람이 편안하노라.』

 

『十二年曰紀요 父子曰世라 周公이 左右文武成王하여 安定國家하고 謹毖頑民하여 遷于洛邑하여 密近王室하니

用化其敎하여 旣歷三紀하여 世已變而風始移하여 今四方이 無可虞度之事하니 而予一人이 以寧이니 言化之之難

也라』

 

『 12년을 기(紀)라 하고, 부자간(父子間)을 세(世)라 한다. 주공(周公)이 문왕(文王)•무왕(武王)•성왕(成王)을

도와서 국가를 안정시키고 완악한 백성들을 삼가 낙읍(洛邑)으로 옮겨서 왕실에 가깝게 하니, 그 가르침에 교화

되어 이미 3기(紀)가 지났다. 그리하여 대(代)가 이미 변하고 풍속이 비로소 바뀌어서 이제 사방이 헤아릴

『[걱정할]』 만한 일이 없으니 나 한 사람이 편안하다 하였으니, 교화하기 어려움을 말한 것이다.』

 

*서경 ; 주서 ; 필명 ; 제4장

 

▣ 제4장(第四章)

 

『道有升降하며 政由俗革하니 不臧厥臧하면 民罔攸勸하리라』

 

『 도(道)는 오르내림이 있으며 정사는 풍속을 따라 변혁하니, 선(善)을 선(善)하게 여기지 않으면 백성들이 권면

됨이 없을 것이다.』

 

『有升有降은 猶言有隆有汚也라 周公은 當世道方降之時요 至君陳畢公之世하여는 則將升於大猷矣라 爲政者 因俗

變革이라 故로 周公毖殷而謹厥始하고 君陳有容而和厥中하니 皆由俗爲政者라 當今之政은 旌別淑慝之時也니 苟不

善其善이면 則民無所勸慕矣라』

 

『 오름이 있고 내림이 있다는 것은 성함이 있고 쇠함이 있다는 말과 같다. 주공(周公)은 세도(世道)가 막 내려가는

때를 당하였고, 군진(君陳)과 필공(畢公)의 세대에 이르러서는 장차 대유(大猷)『[대도(大道)]』에 오르게 되었다.

정사를 하는 자는 풍속을 따라 변혁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주공(周公)은 은(殷)나라 백성들을 삼가 그 처음을 삼갔고,

군진(君陳)은 포용함이 있어 그 중간(中間)을 화(和)하게 하였으니, 모두 풍속을 따라 정사한 것이다.

당금(當今)의 정사는 선(善)과 악(惡)을 표창하고 구별해야 할 때이니, 만약 선을 선하게 여기지 않으면 백성들이

권면되고 사모하는 바가 없을 것이다.』

 

*서경 ; 주서 ; 필명 ; 제5장

 

▣ 제5장(第五章)

 

『惟公이 懋德으로 克勤小物하여 弼亮四世하여 正色率下한대 罔不祗師言하여 嘉績이 多于先王하니 予小子는

垂拱仰成하노라』

 

『 공(公)『[필공(畢公)]』이 성대한 덕(德)으로 능히 작은 행실을 부지런히 힘써 4대(代)를 보필하고 밝혀서

얼굴빛을 바르게 하고 아랫사람들을 거느리자, 태사(太師)의 말을 공경하지 않음이 없어 아름다운 공적이 선왕

(先王)의 세대보다 많으니, 나 소자(小子)는 의상(衣裳)을 드리우고 손을 마주잡고서 이루어지기만을 바라노라.”』

 

『懋는 盛大之義니 予懋乃德之懋라 小物은 猶言細行也라 言畢公이 旣有盛德하고 又能勤於細行하여 輔導四世하여

風采凝峻하여 『表儀朝著주:표의조저』하여 若大若小히 罔不祗服師訓하여 休嘉之績이 蓋多於先王之時矣라 今我

小子 復何爲哉아 垂衣拱手하여 以仰其成而已라 康王이 將付畢公以保釐之寄라 故로 敍其德業之盛하여 而歸美之

也라』

 

『 무(懋)는 성대한 뜻이니, “내 너의 덕을 성대히 여긴다.『〔予懋乃德〕』”는 무(懋)이다. 소물(小物)은 세행(細行)

『[작은 행실]』이란 말과 같다. 필공(畢公)이 이미 성대한 덕이 있고 또 작은 행실을 부지런히 힘써 4대(代)를

보도(輔導)해서 풍채가 응준(凝峻)하여 조저(朝著)에 의표(儀表)가 되어서 큰 사람과 작은 사람이 태사(太師)의

가르침에 공경히 복종하지 않음이 없어 아름다운 공적(功績)이 선왕(先王)의 때보다 많다. 지금 나 소자(小子)는

다시 무엇을 하겠는가. 의상(衣裳)을 드리우고 손을 마주잡고서 그 이루어지기만을 우러를 뿐이다.

강왕(康王)이 장차 필공(畢公)에게 보리(保釐)를 맡기려 하였으므로 덕업(德業)의 성대함을 서술하여 그에게 아름

다움을 돌린 것이다.』

 

*서경 ; 주서 ; 필명 ; 제6장

 

▣ 제6장(第六章)

 

『王曰 嗚呼라 父師아 今予祗命公以周公之事하노니 往哉어다』

 

『 왕(王)이 말씀하였다. “아! 부사(父師)야. 지금 나는 공(公)에게 주공(周公)의 일을 공경히 명하노니, 갈지어다.』

『今我敬命公以周公化訓頑民之事하노니 公其往哉어다 言非周公所爲면 不敢屈公以行也라』

『 지금 나는 공(公)에게 주공(周公)이 완민(頑民)을 교화하고 가르쳤던 일을 공경히 명하노니, 공(公)은 갈지어다.

이는 주공(周公)이 행한 바가 아니면 감히 공(公)을 굽혀서 가게 할 수 없음을 말한 것이다.』

 

*서경 ; 주서 ; 필명 ; 제7장

 

▣ 제7장(第七章)

 

『旌別淑慝하여 表厥宅里하며 彰善¥>『(탄)』惡하여 樹之風聲하며 弗率訓典이어든 殊厥井疆하여 쯸克畏慕하며

申턛『(획)』郊圻하며 愼固封守하여 以康四海하라』

 

『 선(善)과 악(惡)을 표창하고 구별하여 거주하는 마을을 정표(旌表)하며, 선(善)을 표창하고 악(惡)을 병들게 하여

풍성(風聲)『[명성]』을 세워주며, 가르치는 법을 따르지 않거든 정강(井疆)을 달리하여 두려워하고 사모하게 하며,

거듭 교기(郊圻)를 구획하며 봉강(封疆)의 지킴을 삼가고 튼튼히 하여 사해(四海)를 편안하게 하라.』

 

『淑은 善이요 慝은 惡이요 ¥>은 病也라 旌善別惡은 成周今日에 由俗革之政也라 表異善人之居里는 如後世旌表門閭

之類라 顯其爲善者하고 而病其爲不善者하여 以樹立爲善者風聲하여 使顯於當時而傳於後世니 所謂旌淑也요 其不率

訓典者는 則殊異其井里疆界하여 使不得與善者雜處라 禮記曰 不變이어든 移之郊하고 不變이어든 移之遂가 卽其法

也라 使能畏爲惡之禍하고 而慕爲善之福이니 所謂別慝也라 圻는 與畿同하니 郊圻之制를 昔固規턛矣니 曰申云者는

申明之也요 封域之險을 昔固有守矣니 曰謹云者는 戒嚴之也라 疆域障塞는 歲久則易湮하고 世平則易玩이니 時緝而

屢省之 乃所以尊嚴王畿니 王畿安이면 則四海安矣리라』

 

『 숙(淑)은 선(善)이요, 특(慝)은 악(惡)이요, 탄(¥>)은 병들게 함이다. 선을 표창하고 악을 구별함은 성주(成周)가

오늘날 풍속을 따라 변혁하는 정사이다. 선인(善人)이 거주하는 마을을 표이(表異)함은 후세에 문려(門閭)를 정표

(旌表)하는 유(類)와 같은 것이다. 선(善)을 하는 자를 드러내고 불선(不善)을 하는 자를 병들게 하여, 선을 하는

자의 풍성(風聲)을 세워주어 당시에 드러나고 후세에 전해지게 하니 이른바 ‘선(善)을 표창한다.’는 것이며,

가르치는 법을 따르지 않는 자는 그 정리(井里)와 강계(疆界)를 다르게 하여 선(善)한 자와 뒤섞여 살지 못하게 한다.

《예기(禮記)》에 “변하지 않거든 교(郊)로 옮기고 변하지 않거든 수(遂)로 옮긴다.”는 것이 바로 이 법이다. 악(惡)을

하는 화(禍)를 두려워하고 선(善)을 하는 복(福)을 사모하게 하는 것이니 이른바 ‘악(惡)을 구별한다.’는 것이다.

기(圻)는 기(畿)와 같으니, 교기(郊圻)의 제도를 옛날에 진실로 구획하였으니 거듭한다고 말한 것은 거듭 밝히는

것이다.

봉역(封域)의 험함을 옛날에 진실로 지킴이 있었으니, 삼간다고 말한 것은 경계하고 엄하게 하는 것이다.

강역(疆域)과 장새(障塞)는 세월이 오래되면 무너지기 쉽고 세상이 태평하면 하찮게 여기기 쉬운 바, 때때로 보수

하고 여러 번 살핌이 바로 왕기(王畿)를 존엄히 하는 것이니, 왕기(王畿)가 편안하면 사해(四海)가 편안할 것이다.』

 

*서경 ; 주서 ; 필명 ; 제8장

 

▣ 제8장(第八章)

 

『政貴有恒이요 辭尙體要라 不惟好異니 商俗이 靡靡하여 利口를 惟賢이러니『(하던)』 餘風이 未殄하니 公其念哉

어다』

 

『 정사는 항상함이 있음을 귀하게 여기고, 말은 체(體)와 요(要)를 숭상한다. 괴이함을 좋아하지 않아야 하니,

상(商)나라 풍속이 미미(靡靡)『[사치하고 화려함]』하여 말 잘하는 것을 어질게 여겼는데 남은 풍속이 아직도

끊어지지 않았으니, 공(公)은 이것을 생각할지어다.』

 

『對暫之謂恒이요 對常之謂異라 趣完具而已之謂體요 衆體所會之謂要라 政事純一하고 辭令簡實이니 深戒作聰明,

趨浮末, 好異之事라 凡論治體者 皆然이로되 而在商俗하여는 則尤爲對病之藥也라 蘇氏曰 張釋之諫漢文帝호되 秦任

刀筆之吏하여 爭以짞疾苛察로 相高하니 其弊徒文具요 無惻隱之實이라 以故로 不聞其過하여 陵夷至於二世에 天下

土崩이니이다 今以『嗇夫口辯而超遷之주:색부구변이초천지』하시면 臣恐天下隨風靡하여 爭口辯無其實하노이다

하니 凡釋之所論은 則康王以告畢公者也니라』

 

『 잠(暫)과 대칭되는 것을 항(恒)이라 하고, 상(常)과 대칭되는 것을 이(異)라 한다. 지취(志趣)가 완전히 갖추어졌

을 뿐인 것을 체(體)라 하고, 여러 체(體)가 모인 것을 요(要)라 한다. 정사(政事)는 순일(純一)하고 사령(辭令)은

 간략하고 진실하여야 하니, 총명(聰明)을 일으키고『[사사롭게 쓰고]』 부말(浮末)에 달려서 괴이함을 좋아하는

일을 깊이 경계한 것이다. 무릇 다스리는 체통(體統)을 논한 것이 모두 그러하나 상(商)나라의 풍속에 있어서는

더욱 병에 대한 약이 된다.』

『 소씨(蘇氏)가 말하였다. “장석지(張釋之)가 한(漢)나라 문제(文帝)에게 간하기를 ‘진(秦)나라는 도필(刀筆)의

아전에게 맡겨서 빨리하고 까다롭게 살핌을 다투어 서로 숭상하니, 그 병폐가 한갓 문구(文具)『[문식(文飾)]』만

있고 측은(惻隱)해 하는 실제가 없었습니다. 이 때문에 과실을 듣지 못하여 능이(陵夷)『[침체]』해서 이세(二世)에

이르러 천하(天下)가 토붕(土崩)하였습니다. 지금 색부(嗇夫)가 구변(口辯)이 있다 하여 크게 승진시키신다면

신(臣)은 천하가 바람을 따라 쏠려서 구변만을 다투고 실제는 없을까 두렵습니다.’ 하였으니, 무릇 장석지(張釋之)가

논한 것은 강왕(康王)이 필공(畢公)에게 고한 것이다.”』

 

*서경 ; 주서 ; 필명 ; 제9장

 

▣ 제9장(第九章)

 

『我聞호니 曰 世祿之家 鮮克由禮하여 以蕩陵德하며 實悖天道하여 킒化奢麗 萬世同流니라』

 

『 내가 들으니, ‘세록(世祿)의 집안들은 능히 예(禮)를 따르는 이가 적어, 방탕함으로 덕(德)있는 이를 능멸하며 실로

천도(天道)를 어지럽혀, 교화(敎化)를 무너뜨려 사치하고 화려함이 만세(萬世)에 한 가지로 흐른다.’ 하였다.』

 

『古人論 世祿之家 逸樂턣養하여 其能由禮者鮮矣라 旣不由禮면 則心無所制하여 肆其驕蕩하여 陵蔑有德하고 悖亂

天道하여 킒壞風化하여 奢侈美麗 萬世同一流也라 康王이 將言殷士¶:侈滅義之惡이라 故로 先取古人論世族者하여

 發之하니라』

 

『 옛사람이 논하기를 “세록(世祿)의 집안은 일락(逸樂)하고 환양(턣養)『[잘 길러줌]』하여 능히 예(禮)를 따르는

자가 적다. 이미 예(禮)를 따르지 않으면 마음이 제재하는 바가 없어서 교만함과 방탕함을 부려 덕(德)있는 이를

능멸하고 천도(天道)를 패란(悖亂)하여, 풍화(風化)를 무너뜨려 사치하고 화려함이 만세(萬世)에 동일하게 흐른다.”

하였다. 강왕(康王)이 장차 은(殷)나라 선비들이 세력을 믿고 사치하여 의(義)를 멸한 악(惡)을 말하려 하였으므로,

먼저 고인(古人)이 세족(世族)을 논한 것을 취하여 말씀한 것이다.』

 

*서경 ; 주서 ; 필명 ; 제10장

 

▣ 제10장(第十章)

 

『玆殷庶士 席寵이 惟舊하여 『¶:侈滅義주:호치멸의』하며 服美于人하여 驕淫矜쥏하여 將由惡終이러니 雖收放心

하나 閑之惟艱하니라』

 

『 이 은(殷)나라의 여러 선비들은 은총을 빙자(憑藉)한 지가 오래여서 세력을 믿고 사치하여 의(義)를 멸하며

의복을 남에게 아름다움을 자랑하여 교음(驕淫)하고 긍과(矜쥏)해서 장차 악(惡)으로 말미암아 마치게 되었었는데,

지금은 비록 방심(放心)을 거두었으나 막기가 어렵다.』

 

『呂氏曰 殷士憑藉光寵하여 助發其私欲者 有自來矣라 私欲公義 相爲消長이라 故로 ¶:侈면 必至滅義니 義滅이면

則無復羞惡之端하여 徒以服飾之美로 쥏之於人하고 而身之不美는 則莫之恥也라 流而不反하여 驕淫矜쥏하여 百邪

竝見하여 將以惡終矣러니 洛邑之遷에 式化厥訓하여 雖已收其放心이나 而其所以防閑其邪者 猶甚難也라』

 

『 여씨(呂氏)가 말하였다. “은(殷)나라 선비들이 광총(光寵)을 빙자해서 사욕(私慾)을 조장하여 냄은 유래(由來)가

있었다. 사욕(私慾)과 공의(公義)는 서로 사라지고 자란다. 그러므로 세력을 믿어 사치하면 반드시 의(義)를 멸함에

이르니, 의(義)가 멸하면 다시는 수오(羞惡)하는 마음이 없어 한갓 복식(服飾)의 아름다움을 남에게 과시하고 몸의

아름답지 못함은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흘러가고 돌아오지 아니하여 교음(驕淫)하고 긍과(矜쥏)하여 온갖 사악함이

아울러 나타나서 장차 악(惡)으로 마치게 되었는데, 낙읍(洛邑)으로 옮김에 써 가르침에 교화되어 이미 그 방심

(放心)을 거두었으나 사악함을 막기가 오히려 심히 어려운 것이다.』

 

*서경 ; 주서 ; 필명 ; 제11장

 

▣ 제11장(第十一章)

 

『資富能訓이 惟以永年이니 惟德惟義 時乃大訓이니라 不由古訓이면 于何其訓이리오』

 

『 물자(物資)가 풍부하거든 가르치는 것이 연수(年數)를 길게 하는 것이니, 덕(德)과 의(義) 이것이 바로 큰 가르침

이다. 옛날을 따라 가르치지 않으면 무엇으로 가르치겠는가.”』

 

『言殷士不可不訓之也라 資는 資財也라 資富而能訓이면 則心不遷於外物하여 而可全其性命之正也라 然이나 訓은

非外立敎條也요 惟德惟義而已니 德者는 心之理요 義者는 理之宜也라 德義는 人所同有也니 惟德義以爲訓이 是乃天

下之大訓이라 然訓은 非可以己私言也요 當稽古以爲之說이라 蓋善無證이면 則民不從이니 不由古以爲訓이면 于何以

爲訓乎아』

 

『 은(殷)나라 선비를 가르치지 않을 수 없음을 말한 것이다. 자(資)는 자재(資財)이다. 자재(資財)가 풍부하고서

가르치면 마음이 외물(外物)에 옮겨가지 아니하여 성명(性命)의 바름을 온전히 할 수 있다. 그러나 가르침은 겉으로

교조(敎條)를 세우는 것이 아니요 오직 덕(德)과 의(義)로써 할 뿐이니, 덕(德)은 마음의 이치이고 의(義)는 이치에

마땅한 것이다. 덕(德)과 의(義)는 사람이 똑같이 가지고 있는 것이니, 덕(德)과 의(義)로써 가르치는 것이 바로

천하의 큰 가르침이다. 그러나 가르침은 자기의 사사로운 생각으로 말할 것이 아니요, 마땅히 옛날을 상고하여 말

해야 한다. 선(善)은 증거가 없으면 백성들이 따르지 않으니, 옛날을 따라 가르치지 않으면 무엇으로 가르치겠는가.』

 

*서경 ; 주서 ; 필명 ; 제12장

 

▣ 제12장(第十二章)

 

『王曰 嗚呼라 父師아 邦之安危는 惟玆殷士니 不剛不柔라사 厥德이 允修하리라』

 

『 왕(王)이 말씀하였다. “아! 부사(父師)야. 나라의 안위가 이 은(殷)나라 선비들에게 달려 있으니, 강(剛)하지도

않고 유(柔)하지도 않아야 그 덕(德)이 진실로 닦여질 것이다.』

 

『是時에 四方無虞矣요 ³4爾殷民도 化訓三紀之餘하니 亦何足慮리오마는 而康王拳拳以邦之安危 惟繫於此라하여

其不苟於小成者如此하니 文武周公之澤이 其深長也 宜哉인저 不剛은 所以保之요 不柔는 所以釐之니 不剛不柔면

其德이 信乎其修矣리라』

 

『 이때에 사방이 근심할 만한 일이 없었고, 작은 은(殷)나라 백성들도 가르침에 교화된 지가 3기(紀)인 뒤였으니,

또한 어찌 우려할 것이 있겠는가마는 강왕(康王)이 권권(拳拳)히 나라의 안위(安危)가 여기에 달려 있다고 하여

작은 이룸에 구차하지 않음이 이와 같았으니, 문왕(文王)•무왕(武王)과 주공(周公)의 은택이 깊고 긺이 당연하다.

강(剛)하지 않음은 보호하는 것이요 유(柔)하지 않음은 다스리는 것이니, 강(剛)하지도 않고 유(柔)하지도 않으면

그 덕(德)이 진실로 닦여질 것이다.』

 

*서경 ; 주서 ; 필명 ; 제13장

 

▣ 제13장(第十三章)

 

『惟周公이 克愼厥始하여늘 惟君陳이 克和厥中하여늘 惟公이 克成厥終하여 三后協心하여 同底『(지)』于道하여

道洽政治하여 澤潤生民하여 四夷左칍이 罔不咸賴하니 予小子는 永膺多福이로다』

 

『 주공(周公)이 능히 그 처음을 삼가고 군진(君陳)이 능히 그 중간을 화(和)하게 하였으니, 공(公)이 능히 그 끝을

이루어서 세 후(后)가 마음을 합하여 함께 도(道)에 이르러, 도(道)가 흡족하고 정사가 다스려져서 은택이 생민

(生民)들에게 윤택하여 좌임(左칍)한 사방의 오랑캐들이 모두 의뢰하지 않음이 없으니, 나 소자(小子)는 길이 많은

복을 응(應)할 것이다.』

 

『殊厥井疆은 非治之成也니 使商民皆善然後에 可謂之成이어늘 此曰成者는 預期之也라 三后所治者는 洛邑이로되

而施及四夷하니 王畿는 四方之本也라 吳氏曰 道者는 致治之道也라 始之, 中之, 終之 雖時有先後나 皆能卽其行事

하여 觀其用心而有以濟之가 若出於一時하고 若成於一人하니 謂之協心이 如此니라』

 

『 정강(井疆)을 달리함은 다스림을 이룬 것이 아니니, 상(商)나라 백성들을 모두 선(善)하게 한 뒤에야 이루었다고

말할 수 있는데, 여기에 이루었다고 말한 것은 미리 기약한 것이다. 세 후(后)가 다스린 것은 낙읍(洛邑)이었으나

뻗쳐 사이(四夷)에 미쳤으니, 왕기(王畿)는 사방(四方)의 근본이다.』

『 오씨(吳氏)가 말하였다. “도(道)는 다스림을 지극히 하는 도(道)이다. 시작하고 중간에 이어가고 끝마침이 비록

때에는 선후(先後)가 있으나 모두 행사(行事)에 나아가 용심(用心)을 살펴보아 이룸이 있는 것이 마치 한 때에 나온

듯하고 한 사람에게서 이루어진 듯하니, 마음을 합했다고 이른 것이 이와 같다.』

 

*서경 ; 주서 ; 필명 ; 제14장

 

▣ 제14장(第十四章)

 

『公其惟時成周에 建無窮之基하면 亦有無窮之聞하리니 子孫이 訓其成式하여 惟乂하리라』

 

『 공(公)이 이 성주(成周)에 무궁한 기업(基業)을 세우면 또한 무궁한 명예가 있을 것이니, 자손(子孫)이 이루어

놓은 법을 순히 하여 다스려질 것이다.』

 

『建은 立이요 訓은 順이요 式은 法也라 成周는 指下都而言이라 呂氏曰 畢公은 四世元老니 豈區區立後世名者리

오마는 而勳德之隆을 亦豈少리오 此는 康王이 所以望之者라 蓋相期以無窮事業이니 乃尊敬之至也니라』

 

『 건(建)은 세움이요, 훈(訓)은 순함이요, 식(式)은 법이다. 성주(成周)는 하도(下都)를 가리켜 말한 것이다.』

『 여씨(呂氏)가 말하였다. “필공(畢公)은 4대(代)의 원로(元老)이니, 어찌 후세에 이름을 세우는 데 구구한 자이겠

는가마는 공덕(功德)이 융성함을 어찌 하찮게 여기겠는가. 이는 강왕(康王)이 바란 것이다. 서로 무궁한 사업으로

기약하였으니, 존경함이 지극하다.”』

 

*서경 ; 주서 ; 필명 ; 제15장

 

▣ 제15장(第十五章)

 

『嗚呼라 罔曰弗克이라하여 惟旣厥心하며 罔曰民寡라하여 惟愼厥事하여 欽若先王成烈하여 以休于前政하라』

 

『 아! 능하지 못하다고 말하지 말아 그 마음을 다하며, 백성이 적다고 말하지 말아 그 일을 삼가하여, 선왕(先王)이

이룬 공렬(功烈)을 공경하고 순히 하여 옛 정사에 아름답게 하라.”』

 

『蘇氏曰 曰弗克者는 畏其難而不敢爲者也요 曰民寡者는 易其事以爲不足爲者也라 前政은 周公君陳也라』

 

『 소씨(蘇氏)가 말하기를 “능하지 못하다는 것『〔弗克〕』은 그 어려움을 두려워하여 감히 하지 못하는 것이요,

백성이 적다는 것『〔民寡〕』은 그 일을 쉽게 여겨 할 것이 없다고 여기는 것이다.” 하였다.

전정(前政)은 주공(周公)과 군진(君陳)이다.』

 

*서경 ; 주서 ; 군아(君牙)

 

▣ 군아(君牙)

 

『君牙는 臣名이라 穆王이 命君牙하여 爲大司徒하니 此其誥命也라 今文無, 古文有하니라』

 

『 군아(君牙)는 신하의 이름이다. 목왕(穆王)이 군아(君牙)를 명하여 대사도(大司徒)를 삼으니,

이것이 그 고명(誥命)이다. 금문(今文)에는 없고 고문(古文)에는 있다.』

 

『○ 서경 ; 주서 ; 군아 ; 제1장+1』

『○ 서경 ; 주서 ; 군아 ; 제2장+2』

『○ 서경 ; 주서 ; 군아 ; 제3장+3』

『○ 서경 ; 주서 ; 군아 ; 제4장+4』

『○ 서경 ; 주서 ; 군아 ; 제5장+5』

『○ 서경 ; 주서 ; 군아 ; 제6장+6』

『○ 서경 ; 주서 ; 군아 ; 제7장+7』

 

 

*서경 ; 주서 ; 군아 ; 제1장

 

▣ 제1장(第一章)

 

『王若曰 嗚呼라 君牙아 惟乃祖乃父 世篤忠貞하여 服勞王家하여 厥有成績이 紀于太常하니라』

 

『 왕(王)이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아! 군아(君牙)야. 네 할아버지와 네 아버지가 대대로 충정(忠貞)을 돈독히

하여 왕가(王家)에 복로(服勞)『[수고로운 일을 함]』하여 그 이룩한 업적이 태상(太常)에 기록되어 있다.』

 

『王은 穆王也니 康王孫이요 昭王子라 周禮司勳云 凡有功者는 銘書於王之太常이라하고 司常云 日月爲常이니

턛日月於旌旗也라하니라』

 

『 왕(王)은 목왕(穆王)이니, 강왕(康王)의 손자이고 소왕(昭王)의 아들이다.

《주례(周禮)》의 〈사훈(司勳)〉에 “무릇 공(功)이 있는 자는 왕(王)의 태상(太常)에 이름을 쓴다.” 하였고,

〈사상(司常)〉에 “해와 달을 상(常)이라 하니, 해와 달을 정기(旌旗)에 그리는 것이다.” 하였다.』

 

*서경 ; 주서 ; 군아 ; 제2장

 

▣ 제2장(第二章)

 

『惟予小子 嗣守文武成康遺緖함은『(혼든)』 亦惟先王之臣이 克左右하여 亂四方하니 心之憂危 若蹈虎尾하며

涉于春ª-호라』

 

『 나 소자(小子)가 문왕(文王)•무왕(武王)•성왕(成王)•강왕(康王)이 남기신 전통을 이어 지킴은 또한 선왕(先王)의

신하들이 능히 자우(左右)『[보좌]』하여 사방(四方)을 다스리기 때문이니, 마음에 근심하고 위태롭게 여김이 범의

꼬리를 밟는 듯하며 봄에 살얼음을 건너는 듯하다.』

 

『緖는 統緖也라 若蹈虎尾는 畏其챡요 若涉春ª-은 畏其陷이라 言憂危之至하여 以見求助之切也라』

『 서(緖)는 통서(統緖)이다. 범의 꼬리를 밟는 듯하다는 것은 물릴까 두려워하는 것이요, 봄에 살얼음을 건너는 듯

하다는 것은 빠질까 두려워하는 것이다. 근심하고 위태롭게 여김이 지극함을 말하여 도움을 구함이 간절함을 나타

낸 것이다.』

 

*서경 ; 주서 ; 군아 ; 제3장

 

▣ 제3장(第三章)

 

『今에 命爾하노니 予翼하여 作股肱心쪺하여 纘乃舊服하여 無쿈祖考하라』

 

『 지금에 너를 명하노니, 너는 나를 도와서 고굉(股肱)과 심려(心쪺)가 되어 네 조(祖)•고(考)가 옛날 일하던 것을

이어서 조(祖)•고(考)에게 욕됨이 없도록 하라.』

 

『쪺는 脊也라 舊服은 忠貞服勞之事라 쿈은 辱也라 欲君牙以其祖考事先王者로 而事我也라』

 

『 여(쪺)는 등뼈이다. 구복(舊服)은 충정(忠貞)으로 복로(服勞)한 일이다. 첨(쿈)은 욕됨이다.

군아(君牙)가 그 조(祖)•고(考)가 선왕(先王)을 섬기던 것으로 자신을 섬겨주기를 바란 것이다.』

 

*서경 ; 주서 ; 군아 ; 제4장

 

▣ 제4장(第四章)

 

『弘敷五典하여 式和民則하라 爾身이 克正하면 罔敢弗正하리니 民心이 罔中이라 惟爾之中이니라』

 

『 오전(五典)을 키워 넓혀서 백성의 법을 공경하여 화(和)하라. 네 몸이 능히 바르면 감히 바르지 않음이 없을

것이니, 백성들의 마음이 중(中)하지 못하니, 너의 중(中)으로 하여야 한다.』

 

『弘敷者는 大而布之也요 式和者는 敬而和之也라 則은 有物有則之則이니 君臣之義, 父子之仁, 夫婦之別, 長幼之序,

朋友之信이 是也라 典은 以設敎言이라 故曰弘敷요 則은 以民彛言이라 故曰式和라 此는 司徒之敎也나 然敎之本은

則在君牙之身이라 正也中也는 民則之體니 而人之所同然也라 正은 以身言이니 欲其所處無邪行也요 中은 以心言

이니 欲其所存無邪思也라 孔子曰 子率以正이면 孰敢不正이리오하시고 周公曰 率自中이라하시니 此는 告君牙以司

徒之職也니라』

 

『 홍부(弘敷)는 크게 하여 폄이요, 식화(式和)는 공경하여 화하게 하는 것이다. 칙(則)은 ‘사물이 있으면 법칙이

있다.『〔有物有則〕』’는 칙(則)이니, 군신(君臣)의 의(義)와 부자(父子)의 인(仁)과 부부(夫婦)의 별(別)과 장유

(長幼)의 서(序)와 붕우(朋友)의 신(信)이 이것이다. 전(典)은 가르침을 베푸는 것으로 말하였기 때문에 크게 하여

편다고 말하였고, 칙(則)은 백성의 떳떳함으로 말하였기 때문에 공경하여 화한다고 말한 것이다.

이는 사도(司徒)의 가르침이나 가르침의 근본은 군아(君牙) 자신에게 있는 것이다. 정(正)과 중(中)은 백성의

법(法)의 체(體)이니, 사람들이 똑같이 옳게 여기는 것이다. 정(正)은 몸으로 말하였으니 처하는 바에 사악한 행실이

없고자 함이요, 중(中)은 마음으로 말하였으니 마음에 둔 것이 사악한 생각이 없고자 한 것이다. 공자(孔子)가 말씀

하기를 “그대가 바름으로 이끌면 누가 감히 바르지 않겠는가.” 하였고, 주공(周公)이 말씀하기를 “거느리기를 중(中)

으로부터 하라.” 하였으니, 이는 군아(君牙)에게 사도(司徒)의 직책을 말한 것이다.』

 

*서경 ; 주서 ; 군아 ; 제5장

 

▣ 제5장(第五章)

 

『夏暑雨에 小民이 惟曰怨咨하며 冬祁寒에 小民이 亦惟曰怨咨하나니 厥惟艱哉인저 思其艱하여 以圖其易『(이)』

하면 民乃寧하리라』

 

『 여름에 무덥고 비가 내리면 소민(小民)들이 원망하며 겨울에 크게 추우면 소민(小民)들이 또한 원망하니,

어려운 것이다. 그 어려움을 생각하여 쉽게 해줄 것을 도모하면 백성들이 이에 편안해질 것이다.』

 

『祁는 大也라 暑雨, 祁寒에 小民怨咨는 自傷其生之艱難也라 厥惟艱哉者는 嘆小民之誠爲艱難也니 思念其難하여

以圖其易하면 民乃安也라 艱者는 飢寒之艱이요 易者는 衣食之易라 司徒는 敷五典하고 擾兆民하여 兼敎養之職하니

此는 又告君牙以養民之難也라』

 

『 기(祁)는 큼이다. 무덥고 비가 내리거나 크게 추움에 소민(小民)들이 원망함은 스스로 삶의 어려움을 서글퍼하는

것이다. 그 어렵다는 것은 소민(小民)들이 진실로 어려움이 됨을 한탄한 것이니, 그 어려움을 생각하여 쉽게 해줄

것을 도모하면 백성들이 이에 편안할 것이다. 간(艱)은 기한(飢寒)의 어려움이요, 이(易)는 의식(衣食)의 쉬움이다.

사도(司徒)는 오전(五典)을 펴고 조민(兆民)을 길들여서 가르치고 기르는 직책을 겸하였으니, 이는 또 군아(君牙)

에게 백성을 기르는 어려움을 말한 것이다.』

 

*서경 ; 주서 ; 군아 ; 제6장

 

▣ 제6장(第六章)

 

『嗚呼라 丕顯哉라 文王謨여 丕承哉라 武王烈이여 啓佑我後人하사되 咸以正罔缺하시니 爾惟敬明乃訓하여 用奉若

于先王하여 對揚文武之光命하며 追配于前人하라』

 

『 아! 크게 드러났다. 문왕(文王)의 가르침이여! 크게 계승하였다. 무왕(武王)의 공렬(功烈)이여! 우리 후인(後人)

들을 계도(啓導)하고 도와주시되 모두 바름으로써 하고 결함이 없게 하셨으니, 너는 네 가르침을 공경히 밝혀서

선왕(先王)을 받들어 순히 하여 문왕(文王)•무왕(武王)의 빛나는 명을 대양(對揚)하며 전인(前人)에게 추배(追配)

『[똑같게]』하라.”』

 

『丕는 大요 謨는 謀요 烈은 功也라 文顯於前하고 武承於後하니 曰謨, 曰烈은 各指其實而言之라 咸以正者는 無一

事不出於正이요 咸罔缺者는 無一事不致其周密이라 若은 順이요 對는 答이요 配는 匹也라 前人은 君牙祖父라』

 

『 비(丕)는 큼이요, 모(謨)는 꾀요, 열(烈)은 공이다. 문왕(文王)은 앞에서 드러났고 무왕(武王)은 뒤에서 이었으니,

모(謨)와 열(烈)은 각기 그 실제를 가리켜 말한 것이다. 모두 바름으로써 했다는 것은 한 가지 일도 바름에서 나오지

않음이 없는 것이요, 모두 결함이 없게 했다는 것은 한 가지 일도 주밀(周密)함을 지극히 하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약(若)은 순함이요, 대(對)는 답함이요, 배(配)는 짝함이다. 전인(前人)은 군아(君牙)의 조(祖)•부(父)이다.』

 

*서경 ; 주서 ; 군아 ; 제7장

 

▣ 제7장(第七章)

 

『王若曰 君牙아 乃惟由先正舊典하여 時式하라 民之治亂이 在玆하니 率乃祖考之攸行하여 昭乃µ?之有乂하라』

 

『 왕(王)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군아(君牙)야! 너는 선정(先正)의 옛 법을 따라서 이에 법받으라. 백성의 다스려

지고 어지러움이 이에 달려 있으니, 네 조(祖)•고(考)가 행하신 바를 따라 네 군주의 다스림을 밝혀라.”』

 

『先正은 君牙祖父也라 君牙由祖父舊職하여 而是法之니 民之治亂이 在此而已니 法則治하고 否則亂也라 循汝祖父

之所行하여 而顯其君之有乂라하니 復申戒其守家法以終之라 按此篇은 專以君牙祖父爲言하여 曰纘舊服, 曰由舊典,

曰無쿈, 曰追配, 曰由先正舊典, 曰率祖考攸行이라하니 然則君牙之祖父 嘗任司徒之職이요 而其賢을 可知矣라 惜載

籍之無傳也여 陳氏曰 康王時에 芮伯이 爲司徒하니 君牙豈其後耶아』

 

『 선정(先正)은 군아(君牙)의 조(祖)•부(父)이다. 군아(君牙)가 조(祖)•부(父)의 옛 직책을 따라 법받아야 하니,

백성의 다스려지고 어지러움이 이에 달려 있을 뿐이니, 법받으면 다스려지고 그렇지 않으면 어지러운 것이다.

네 조(祖)•부(父)가 행하신 바를 따라 군주의 다스림을 드러내라 하였으니, 다시 가법(家法)을 지킬 것을 거듭

경계하여 끝맺은 것이다.』

『 살펴보건대, 이 편은 오로지 군아(君牙)의 조(祖)•부(父)를 가지고 말하여 ‘옛 일을 이으라’ 하고, ‘옛 법을 따르라’

하고, ‘욕되게 하지 말라’ 하고, ‘추배(追配)하라’ 하고, ‘선정(先正)의 옛 법을 따르라’ 하고, ‘조(祖)•고(考)가 행하신

바를 따르라’ 하였으니, 그렇다면 군아(君牙)의 조(祖)•부(父)가 일찍이 사도(司徒)의 직책을 맡았고, 그 어질었음을

알 수 있다. 재적(載籍)에 전하지 않음이 애석하다. 진씨(陳氏)가 말하기를 “강왕(康王) 때에 예백(芮伯)이 사도

(司徒)가 되었으니, 군아(君牙)가 그 후손인가 보다.” 하였다.』

 

*서경 ; 주서 ; 경명(경命)

 

▣ 경명(¢(命)

 

『穆王이 命伯¢(하여 爲太僕正하니 此其誥命也라 今文無, 古文有하니라』

『○ 呂氏曰 陪僕첄御之臣을 後世에 視爲賤品하여 而不之擇者는 曾不知人主朝夕與居하여 氣體移養이 常必由之

하니 潛消默奪於冥冥之中하고 而明爭顯諫於昭昭之際는 抑末矣라 自周公作立政으로 而嘆綴衣虎賁知恤者鮮하니

則君德之所繫를 前此知之者 亦罕矣러니 周公이 表而出之하사 其選始重이라 穆王之用太僕正에 特作命書하여 至與

大司徒略等하니 其知本哉인저』

 

『 목왕(穆王)이 백경(伯¢()을 명하여 태복정(太僕正)을 삼았으니, 이것이 그 고명(誥命)이다. 금문(今文)에는 없고

고문(古文)에는 있다.』

『 ○ 여씨(呂氏)가 말하였다. “배복(陪僕)과 설어(첄御)의 신하를 후세에서는 천한 품류(品類)로 보아 선별하지

않으니, 이는 일찍이 인주(人主)가 조석으로 함께 거처하여 기체(氣體)를 기름이 항상 반드시 이에서 말미암음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어둡고 어두운 가운데에 은근히 사라지고 묵묵히 빼앗기고는 밝고 밝은 즈음에 밝게 간하고

드러나게 간하는 것은 말(末)이다. 주공(周公)이 〈입정(立政)〉을 지음으로부터 추의(綴衣)『[추의]』와 호분

(虎賁)이 근심할 줄 아는 자가 적음을 한탄하였으니, 군주의 덕(德)이 관계되는 것을 이보다 앞서 안 자가 또한

드물었는데, 주공(周公)이 표출(表出)하여 그 선임(選任)을 비로소 중하게 한 것이다.

목왕(穆王)은 태복정(太僕正)을 등용할 적에 특별히 명하는 글을 지어 대사도(大司徒)와 대략 비등하게 함에 이르

렀으니, 그 근본을 알았다고 할 것이다.』

 

『○ 서경 ; 주서 ; 경명 ; 제1장+1』

『○ 서경 ; 주서 ; 경명 ; 제2장+2』

『○ 서경 ; 주서 ; 경명 ; 제3장+3』

『○ 서경 ; 주서 ; 경명 ; 제4장+4』

『○ 서경 ; 주서 ; 경명 ; 제5장+5』

『○ 서경 ; 주서 ; 경명 ; 제6장+6』

『○ 서경 ; 주서 ; 경명 ; 제7장+7』

『○ 서경 ; 주서 ; 경명 ; 제8장+8』

『○ 서경 ; 주서 ; 경명 ; 제9장+9』

 

*서경 ; 주서 ; 경명 ; 제1장

 

▣ 제1장(第一章)

 

『王若曰 伯¢(아 惟予弗克于德하여 嗣先人宅丕后하니『(하여)』 ?쾩惟쪵하여 中夜以興하여 思免厥愆하노라』

 

『 왕(王)이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백경(伯¢()아! 나는 덕(德)에 능하지 못하면서 선인(先人)을 이어 큰 임금의

자리에 거하니, 두려워하고 위태롭게 여겨서 한밤중에 일어나 허물을 면할 것을 생각하노라.』

『伯¢(은 臣名이라 穆王言 我不能于德하여 繼前人하여 居大君之位하니 恐懼危쪵하여 中夜以興하여 思所以免其咎

過라』

『 백경(伯¢()은 신하의 이름이다. 목왕(穆王)이 말하기를 “내 덕(德)에 능하지 못하면서 전인(前人)을 이어 대군

(大君)의 지위에 거하니, 공구(恐懼)하고 위려(危쪵)하여 한밤중에 일어나 허물을 면할 것을 생각한다.” 한 것이다.』

 

*서경 ; 주서 ; 경명 ; 제2장

 

▣ 제2장(第二章)

 

『昔在文武하사 聰明齊聖이어시늘 小大之臣이 咸懷忠良하며 其侍御僕從이 罔匪正人이라 以旦夕에 承弼厥µ?일새

『(혼들로)』 出入起居에 罔有不欽하며 發號施令에『(을)』 罔有不臧한대 下民이 祗若하며 萬邦이 咸休하니라』

 

『 옛날 문왕(文王)•무왕(武王)에 있어 총명하고 공경하며 성(聖)스러우셨는데 작고 큰 신하들이 모두 충량(忠良)을

생각하며, 시어(侍御)하는 복종(僕從)들이 올바른 사람이 아닌 이가 없었다. 그리하여 아침저녁에 군주를 받들어

순종하고 보필하였으므로, 출입(出入)하고 기거(起居)함에 공경하지 않음이 없으며 호령을 냄에 불선(不善)함이

없으니, 하민(下民)들이 공경하여 순종하며 만방(萬邦)이 모두 아름다웠다.』

 

『侍는 給侍左右者요 御는 車御之官이라 僕從은 太僕群僕으로 凡從王者라 承은 承順之謂요 弼은 正救之謂라 雖文武

之君이 聰明齊聖하고 小大之臣이 咸懷忠良하니 固無待於侍御僕從之承弼者나 然其左右奔走 皆得正人이면 則承順正

救 亦豈小補哉아』

 

『 시(侍)는 좌우에서 심부름하고 모시는 자이고, 어(御)는 수레를 모는 관원이다. 복종(僕從)은 태복(太僕)과 군복

(群僕)으로 무릇 왕을 따르는 자이다. 승(承)은 받들어 순종함을 이르고, 필(弼)은 바로잡음을 이른다.

비록 문왕(文王)•무왕(武王)의 군주가 총명하고 공경하고 성스러웠으며 작고 큰 신하가 모두 충량(忠良)을 생각하

였으니, 진실로 시어(侍御)와 복종(僕從)이 받들어 순종하고 보필할 필요가 없었으나, 좌우에서 분주한 자들이 모두

올바른 사람을 얻는다면 받들어 순종하고 바로잡음이 또한 어찌 작은 도움이겠는가.』

 

*서경 ; 주서 ; 경명 ; 제3장

 

▣ 제3장(第三章)

 

『惟予一人이 無良하여 實賴左右前後有位之士의 匡其不及하며 繩愆糾謬하여 格其非心하여 쯸克紹先烈하노라』

 

『 나 한 사람이 어질지 못하여 실로 좌우(左右), 전후(前後)의 지위에 있는 선비들이 미치지 못함을 도우며 허물을

바로잡고 잘못을 바로잡아 나의 나쁜 마음을 바루어 선조(先祖)의 공렬(功烈)을 계승하게 함을 힘입고자 하노라.』

 

『無良은 言其質之不善也라 匡은 輔助也라 繩은 直이요 糾는 正也라 非心은 非僻之心也라 先烈은 文武也라』

『 무량(無良)은 자질(資質)이 좋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광(匡)은 보조(輔助)함이다. 승(繩)은 곧게 폄이요,

규(糾)는 바로잡음이다. 비심(非心)은 비벽(非僻)한 마음이다. 선렬(先烈)은 문왕(文王)•무왕(武王)이다.』

 

*서경 ; 주서 ; 경명 ; 제4장

 

▣ 제4장(第四章)

 

『今予命汝하여 作大正하노니 正于『群僕侍御之臣주:군복시어지신』하여 懋乃后德하여 交修不逮하라』

 

『 이제 나는 너를 명하여 대정(大正)을 삼노니, 군복(群僕)과 시어(侍御)하는 신하들을 바로잡아 네 임금의

덕(德)을 힘써서 여러 가지로 미치지 못하는 것을 닦아라.』

 

『大正은 太僕正也라 周禮에 太僕은 下大夫也라 群僕은 謂『祭僕, 隸僕, 戎僕, 齊僕주:제복예복융복제복』之類라

 穆王이 欲伯¢(正其群僕侍御之臣하여 以勉進君德하여 而交修其所不及이라 或曰 周禮에 下大夫는 不得爲正이라

漢孔氏 以爲太御는 中大夫라하니 蓋周禮에 太御最長하고 下又有群僕하니 與此所謂正于群僕者合이요 且與君同車

하여 最爲親近也라』

 

『 대정(大正)은 태복정(太僕正)이다. 《주례(周禮)》에 태복(太僕)은 하대부(下大夫)이다. 군복(群僕)은 제복(祭僕),

예복(隸僕), 융복(戎僕), 제복(齊僕)의 따위를 이른다. 목왕(穆王)은 백경(伯¢()이 군복(群僕)과 시어(侍御)하는 신하

를 바로잡아 군주(君主)의 덕(德)을 힘써 나아가게 하여 여러 가지로 미치지 못하는 바를 닦게 하고자 한 것이다.

혹자는 말하기를 “《주례(周禮)》에 ‘하대부(下大夫)는 정(正)이 될 수 없다.’ 하였고 한(漢)나라 공씨(孔氏)는 ‘태어

(太御)는 중대부(中大夫)이다.’ 하였으니, 《주례(周禮)》에 태어(太御)가 가장 우두머리이고 아래에 또 군복(群僕)

이 있는 바, 여기의 이른바 ‘군복(群僕)을 바로잡는다.’는 말과 합하며, 또 군주와 함께 수레를 타서 가장 친근함이

된다.” 한다.』

 

*서경 ; 주서 ; 경명 ; 제5장

 

▣ 제5장(第五章)

 

『愼簡乃僚호되 無以巧言令色便µ?側媚하고 其惟吉士하라』

 

『 네 막료(幕僚)들을 삼가 선발하되 말을 잘하고 얼굴빛을 좋게 하며 편벽(便µ?)되고 측미(側媚)한 자를 쓰지 말고

길사(吉士)를 쓰도록 하라.』

 

『巧는 好요 令은 善也니 好其言하고 善其色하여 外飾而無質實者也라 便者는 順人之所欲이요 µ?者는 避人之所惡『(오)』며 側者는 姦邪요 媚者는 諛悅이니 小人也라 吉士는 君子也라 言當謹擇汝之僚佐호되 無任小人이요 而惟用

君子也라 又按此言謹簡乃僚라하니 則成周之時에 凡爲官長者 皆得自擧其屬이요 不特µ?除『府史胥徒주:부사서도』

而已니라』

 

『 교(巧)는 아름다움이요 영(令)은 좋음이니, 말을 아름답게 하고 얼굴빛을 좋게 하여 겉만 꾸미고 실질(實質)이

없는 자이다. 편(便)은 남이 하고자 하는 바를 순종함이요 벽(µ?)은 남이 싫어하는 바를 피하는 것이며, 측(側)은

간사함이요 미(媚)는 아첨함이니, 소인(小人)이다. 길사(吉士)는 군자(君子)이다. 마땅히 너의 요좌(僚佐)들을 삼가

선택하되 소인(小人)에게 맡기지 말고 오직 군자(君子)를 쓰라고 말한 것이다. 또 살펴보건대 여기에 “네 막료(幕僚)

들을 삼가 선발하라.” 하였으니, 성주(成周)의 때에 모든 관장(官長)이 된 자들은 모두 스스로 관속(官屬)을 들어 쓸

수 있었고, 비단 부(府)•사(史)•서(胥)•도(徒)를 불러 제수할 뿐만이 아니었다.』

 

*서경 ; 주서 ; 경명 ; 제6장

 

▣ 제6장(第六章)

 

『僕臣正이면 厥后克正하고 僕臣諛면 厥后自聖하리니 后德도 惟臣이며 不德도 惟臣이니라』

 

『 복신(僕臣)이 바르면 군주가 능히 바르고 복신(僕臣)이 아첨하면 군주가 스스로 성인(聖人)이로라 할 것이니,

군주가 덕(德)이 있는 것도 신하 때문이며 덕이 없는 것도 신하 때문이다.』

 

『自聖은 自以爲聖也라 僕臣之賢否 係君德之輕重이 如此라 呂氏曰 自古小人之敗君德하여 爲昏, 爲虐, 爲侈, 爲縱이

曷其有極이리오 至於自聖하여는 猶若淺之爲害로되 穆王이 獨以是蔽之者는 蓋小人之蠱其君에 必使之虛美熏心하여

傲然自聖하면 則謂人莫己若이라하여 而欲予言莫之違하나니 然後에 法家拂『(弼)』士日遠하여 而快意肆情之事 亦莫

或齟齬其間이니 自聖之證이 旣見에 而百疾從之라 昏虐侈縱은 皆其枝葉이니 而不足論也니라』

 

『 자성(自聖)은 스스로 성인(聖人)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복신(僕臣)의 어질고 어질지 않음이 군주의 덕(德)의

경중(輕重)에 관계됨이 이와 같다.』

『 여씨(呂氏)가 말하였다. “자고(自古)로 소인(小人)들이 군주(君主)의 덕(德)을 무너뜨려 어둡게 하고 사납게 하고

사치하게 하고 방종하게 함이 어찌 다함이 있겠는가. 스스로 성인(聖人)이라고 여김에 이르러서는 오히려 해됨이

얕을 듯한데도 목왕(穆王)이 오히려 이것으로 결단한 것은 소인(小人)이 군주(君主)를 고혹(蠱惑)시킬 적에 반드시

헛된 칭찬으로 마음을 동요시켜 오만하게 스스로 성인(聖人)이라고 여기게 만든다. 그러면 군주는 사람들이 자기만

못하다고 여겨 자신의 말을 어기지 않기를 바라니, 그런 뒤에 법도(法度)있는 집안과 보필(輔弼)하는 신하가 날로

멀어져서 뜻을 쾌하게 하고 정(情)을 부리는 일이 또한 혹시라도 그 사이에 저어(齟齬)함이 없게 되니, 스스로 성인

(聖人)이라고 여기는 증세가 이미 나타남에 백 가지 병통이 따르게 된다. 어둡고 사납고 사치하고 방종함은 모두 그

지엽이니, 족히 논할 것이 없다.”』

 

*서경 ; 주서 ; 경명 ; 제7장

 

▣ 제7장(第七章)

 

『爾無昵于첊人하여 充耳目之官하여 迪上以非先王之典하라』

 

『 너는 간사한 사람을 친하여 이목(耳目)의 관원에 채워서 군상(君上)을 선왕(先王)의 법(法)이 아닌 것으로 인도

하지 말라.』

 

『汝無比近小人하여 充我耳目之官하여 導君上以非先王之典이라 蓋穆王이 自量其執德未固하여 恐左右以『異端주:

이단』進而蕩其心也라』

 

『 너는 소인(小人)들을 비근(比近)하여 나의 이목(耳目)의 관(官)에 채워서 군상(君上)을 선왕(先王)의 법(法)이

아닌 것으로 인도하지 말라. 목왕(穆王)이 스스로 헤아려봄에 덕(德)을 잡음이 견고하지 못하여 자우(左右)가 이단

(異端)을 올려 그 마음을 방탕하게 할까 두려워한 것이다.』

 

*서경 ; 주서 ; 경명 ; 제8장

 

▣ 제8장(第八章)

 

『非人其吉이요 惟貨其吉이면 若時?厥官하리니 惟爾大弗克祗厥µ?이라 惟予汝辜호리라』

 

『 사람을 선(善)하게 여기지 않고 재물을 선(善)하게 여기면 이에 그 관직을 폐할 것이니, 너는 네 군주를 크게

공경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너를 죄줄 것이다.”』

 

『戒其以貨賄任群僕也라 言不于其人之善이요 而惟以貨賄爲善이면 則是曠厥官이니 汝大不能敬其君이라 而我亦汝

罪矣리라』

 

『 재화(財貨)와 뇌물로 군복(群僕)을 선임(選任)함을 경계한 것이다. 사람의 선(善)함으로 하지 않고 오직 재화와

뇌물로 선(善)하게 여기면 이는 그 관직을 버리는 것이니, 네가 네 군주를 크게 공경하지 않는 것이다.

내가 또한 너를 죄줄 것이다.』

 

*서경 ; 주서 ; 경명 ; 제9장

 

▣ 제9장(第九章)

 

『王曰 嗚呼라 欽哉하여 永弼乃后于彛憲하라』

 

『 왕(王)이 말씀하였다. “아! 공경하여 네 군주를 떳떳한 법으로 길이 도와라.”』

 

『彛憲은 常法也라 呂氏曰 穆王卒章之命에 望於伯¢(者 深且長矣러니 此心不繼하여 造父『(보)』爲御하여 周遊

天下하여 將必有車轍馬迹하여 導其侈者 果出於僕御之間하니 抑不知伯¢(猶在職乎否也로라 穆王이 豫知所戒하여

憂思深長이로되 猶不免躬自蹈之하니 人心操捨之無常이 可懼哉인저』

 

『 이헌(彛憲)은 떳떳한 법이다. 여씨(呂氏)가 말하였다. “목왕(穆王)이 마지막 장(章)의 명령에 백경(伯¢()에게 바란

것이 깊고 또 길었는데, 이 마음이 이어지지 아니하여 조보(造父)를 마부로 삼아 천하를 주유(周遊)하여 장차 반드시

수레바퀴 자국과 말 발자국이 있어, 사치함으로 인도한 자가 과연 복어(僕御)의 사이에서 나왔으니, 백경(伯¢()이 이

 때까지도 직책에 있었는지 알 수 없다. 목왕(穆王)이 미리 경계할 바를 알아 근심하는 생각이 깊고 길었는데도

오히려 몸소 스스로 범함을 면치 못하였으니, 인심(人心)을 잡고 버림의 무상(無常)함이 두려울 만하다.”』

 

*서경 ; 주서 ; 여형(呂刑)

 

▣ 여형(呂刑)

 

『呂侯爲天子司寇어늘 穆王이 命訓刑하여 以詰四方한대 史錄爲篇하니 今文古文皆有하니라』

『○ 按此篇은 專訓贖刑하니 蓋本舜典金作贖刑之語나 今詳此書컨대 實則不然이라 蓋舜典所謂贖者는 官府學校之

刑爾요 若五刑則固未嘗贖也라 五刑之寬은 惟處以流하고 鞭©/之寬이라야 方許其贖이어늘 今穆王贖法은 雖大µ?

이라도 亦與其贖免矣라 漢張敞이 以討羌에 兵食不繼라하여 建爲入穀贖罪之法하니 初亦未嘗及夫殺人及盜之罪로되

而蕭望之等이 猶以爲如此면 則富者得生하고 貧者獨死하니 恐開利路하여 以傷治化라하니 曾謂唐虞之世에 而有是贖

法哉아 穆王이 巡遊無度하여 財¤#民勞하고 至其末年하여는 無以爲計일새 乃爲此一切權宜之術하여 以斂民財하니

夫子錄之는 蓋亦示戒라 然其一篇之書 哀矜惻쩊하여 猶可以想見三代忠厚之遺意云爾라 又按書傳引此에 多稱甫刑

이라하고 史記에 作甫侯言於王하여 作修刑µ?이라하니 呂後爲甫歟인저』

 

『 여후(呂侯)가 천자의 사구(司寇)가 되자, 목왕(穆王)이 명하여 형벌을 가르쳐 사방(四方)을 다스리게 하였다.

사관(史官)이 이것을 기록하여 편(篇)을 만들었으니, 금문(今文)과 고문(古文)에 모두 있다.』

『 ○ 살펴보건대, 이 편(篇)은 오로지 속형(贖刑)을 가르쳤으니, 〈순전(舜典)〉에 “금(金)으로 속형(贖刑)을 만든다.”

는 말에 근본한 것이나 이제 이 글을 살펴보면 실제는 그렇지 않다. 〈순전(舜典)〉에 이른바 ‘속형(贖刑)’이라는 것은

관부(官府)와 학교(學校)의 형(刑)일 뿐이요, 오형(五刑)으로 말하면 진실로 일찍이 속죄(贖罪)해 주지 않았다.

오형(五刑)의 관대함은 오직 유형(流刑)으로 처리하였고, 채찍과 회초리의 관대함이라야 비로소 속죄(贖罪)를 허락

하였는데, 이제 목왕(穆王)의 속죄법(贖罪法)은 비록 대벽(大µ?)이라도 또한 속면(贖免)에 참여시켰다.

한(漢)나라 장창(張敞)이 오랑캐를 토벌할 적에 병식(兵食)『[군량]』이 이어지지 못한다 하여 곡식을 납입하고

속죄받는 법을 만들 것을 건의하였는데, 애당초 또한 일찍이 살인자와 도둑질을 한 죄인에게는 미치지 않았다.

그러나 소망지(蕭望之) 등은 오히려 말하기를 “이와 같이 하면 부유한 자들은 살고 가난한 자들만이 죽을 것이니,

이익의 길을 열어 치화(治化)를 손상할까 두렵다.” 하였으니, 일찍이 당(唐)•우(虞)의 세대에 이러한 속법(贖法)이

있었다고 말하겠는가. 목왕(穆王)은 순유(巡遊)하기를 법도가 없이 하여 재물이 다하고 백성들이 수고로웠으며,

말년(末年)에 이르러는 계책을 할 수 없으므로 마침내 이러한 일체 권의(權宜)『[일시방편]』의 방법을 만들어 백성

들의 재물을 거둔 것이니, 부자(夫子)가 기록함은 또한 경계를 보인 것이다. 그러나 한 편의 글이 애긍(哀矜)하고

측달(惻쩊)하여 오히려 삼대(三代)의 충후(忠厚)한 남은 뜻을 상상해 볼 수 있다. 또 살펴보건대 《서전(書傳)》에

이 편을 인용하면서 많이 ‘보형(甫刑)’이라 칭하였고, 《사기(史記)》에 “보후(甫侯)가 왕(王)에게 말하여 형벽(刑µ?)

을 지어 닦았다.”라고 하였으니, 여씨(呂氏)가 뒤에 보씨(甫氏)가 되었는가 보다.』

 

『○ 서경 ; 주서 ; 여형 ; 제1장+1』

『○ 서경 ; 주서 ; 여형 ; 제2장+2』

『○ 서경 ; 주서 ; 여형 ; 제3장+3』

『○ 서경 ; 주서 ; 여형 ; 제4장+4』

『○ 서경 ; 주서 ; 여형 ; 제5장+5』

『○ 서경 ; 주서 ; 여형 ; 제6장+6』

『○ 서경 ; 주서 ; 여형 ; 제7장+7』

『○ 서경 ; 주서 ; 여형 ; 제8장+8』

『○ 서경 ; 주서 ; 여형 ; 제9장+9』

『○ 서경 ; 주서 ; 여형 ; 제10장+10』

『○ 서경 ; 주서 ; 여형 ; 제11장+11』

『○ 서경 ; 주서 ; 여형 ; 제12장+12』

『○ 서경 ; 주서 ; 여형 ; 제13장+13』

『○ 서경 ; 주서 ; 여형 ; 제14장+14』

『○ 서경 ; 주서 ; 여형 ; 제15장+15』

『○ 서경 ; 주서 ; 여형 ; 제16장+16』

『○ 서경 ; 주서 ; 여형 ; 제17장+17』

『○ 서경 ; 주서 ; 여형 ; 제18장+18』

『○ 서경 ; 주서 ; 여형 ; 제19장+19』

『○ 서경 ; 주서 ; 여형 ; 제20장+20』

『○ 서경 ; 주서 ; 여형 ; 제21장+21』

『○ 서경 ; 주서 ; 여형 ; 제22장+22』

 

*서경 ; 주서 ; 여형 ; 제1장

 

▣ 제1장(第一章)

 

『惟呂를 命하시니 王이 享國百年에 ¨!荒하여 度『(탁)』作刑하여 以詰四方하시다』

 

『 여후(呂侯)를 명하니, 왕(王)이 나라를 누린 지 백년에 모황(¨!荒)하여, 헤아려 형벌을 만들어 사방을 다스렸다.』

 

『惟呂命은 與『惟說命주:유열명』으로 語意同하니 先此하여 以見訓刑이 爲呂侯之言也라 ¨!는 老而昏亂之稱이요

荒은 忽也라 孟子曰 從獸無厭을 謂之荒이라하시니라 穆王이 享國百年에 車轍馬跡이 遍于天下라 故로 史氏以¨!荒二

字로 發之하니 亦以見贖刑이 爲穆王¨!荒所訓耳라 蘇氏曰 荒은 大也니 大度作刑은 猶『禹曰予荒度土功주:우왈여

황탁토공』이니 荒當屬下句라하니 亦通이라 然¨!亦貶之之辭也라』

 

『 ‘유려명(惟呂命)’은 ‘유열명(惟說命)’과 말뜻이 같으니, 이것을 먼저하여 형벌을 가르침이 여후(呂侯)를 위한

말임을 나타낸 것이다. 모(¨!)는 늙어서 혼란함을 일컫고 황(荒)은 소홀함이다. 맹자(孟子)가 말씀하기를 “사냥함에

짐승을 좇아 만족함이 없음을 황(荒)이라 한다.” 하였으니, 목왕(穆王)이 나라를 누린 지 백년에 수레바퀴 자국과 말

발자국이 천하에 두루 미쳤다. 그러므로 사관(史官)이 모황(¨!荒)이라는 두 글자로 발하였으니, 또한 속형(贖刑)은

목왕(穆王)이 모황(¨!荒)하여 가르친 것임을 나타낸 것이다. 소씨(蘇氏)가 말하기를 “황(荒)은 큼이니 크게 헤아려

형벌을 만들었다는 것은 우(禹)임금이 ‘내 크게 토공(土功)을 헤아렸다.’고 말씀한 것과 같으니, 황자(荒字)는 마땅히

아래 구(句)에 연결해야 한다.” 하였으니, 또한 통한다. 그러나 모(¨!)는 또한 폄하(貶下)하는 말이다.』

 

*서경 ; 주서 ; 여형 ; 제2장

 

▣ 제2장(第二章)

 

『王曰 若古에 有訓하니 『蚩尤주:치우』惟始作亂한대 延及于平民하여 罔不寇賊하여 ´(義姦宄하며 奪攘矯虔하니라』

 

『 왕(王)이 말씀하였다. “옛날에 가르침이 있었으니, 치우(蚩尤)가 처음으로 난을 일으키자 평민에게까지 미쳐서

구적(寇賊)이 되지 않는 자가 없어 치장(´(張)함을 의(義)로운 것으로 여겨 도둑질하고 빼앗으며 속이고 죽였다.』

 

『言鴻荒之世에 渾厚敦쮙이러니 蚩尤始開暴亂之端하여 驅扇熏炙에 延及平民하여 無不爲寇爲賊이라 ´(義者는 以´

(張跋扈爲義요 矯虔者는 矯詐虔劉也라』

 

『 홍황(鴻荒)의 세대에 혼후(渾厚)하고 돈방(敦쮙)하였는데, 치우(蚩尤)가 처음으로 포란(暴亂)의 단서를 열어

몰아서 선동하고 훈자(熏炙)함에 평민에게까지 뻗쳐 구적(寇賊)이 되지 않음이 없음을 말한 것이다. 치의(´(義)는

치장(´(張)하고 발호(跋扈)함을 의(義)로 여기는 것이며, 교건(矯虔)은 교사(矯詐)『[속임]』하고 건류(虔劉)

『[죽임]』하는 것이다.』

 

*서경 ; 주서 ; 여형 ; 제3장

 

▣ 제3장(第三章)

 

『『苗民주:묘민』이 弗用靈하여 制以刑이요 惟作五虐之刑曰法이라하여 殺戮無辜하니 爰始淫爲¯?¢;하여 越玆麗

『(리)』刑하고『(하여)』 幷制하여 罔差有辭하니라』

 

『 묘민(苗民)이 선(善)을 써서 형벌을 제재하지 않고, 오직 다섯 가지 사나운 형벌을 만들고는 법(法)이라고 하여

무고(無辜)한 자들을 살륙(殺戮)하니, 이에 처음으로 지나치게 코베고 귀베고 구멍『[음부(陰部)]』을 상하고 얼굴

을 자자(刺字)하여, 죄에 걸린 자들을 형벌하고 아울러 죄가 없는 자까지 제재하여 논죄(論罪)하는 말로 차별을 둠이

없었다.』

 

『苗民이 承蚩尤之暴하여 不用善而制以刑하고 惟作五虐之刑하여 名之曰法이라하여 以殺戮無罪라 於是에 始過爲¯

휈耳『?竅주:탁규』¢;面之法하여 於麗法者에 必刑之하고 幷制無罪하여 不復以曲直之辭로 爲差別하고 皆刑之也라』

 

『 묘민(苗民)이 치우(蚩尤)의 포악함을 이어 선(善)을 써서 형벌을 제재하지 않고, 오직 다섯 가지 사나운 형벌을

만들고는 법(法)이라고 이름하여, 무죄(無罪)한 자를 살육(殺戮)하였다. 이에 비로소 지나치게 코를 베고 귀를 베고

구멍을 상하고 얼굴을 자자(刺字)하는 법을 만들어 법에 걸린 자를 반드시 형벌하고 아울러 무죄한 자까지 제재

하여, 다시는 곡직(曲直)의 말로 차별하지 않고 모두 형벌한 것이다.』

 

*서경 ; 주서 ; 여형 ; 제4장

 

▣ 제4장(第四章)

 

『民興胥漸하여 泯泯©\©\하여 罔中于信이요 以覆詛盟하니 虐威庶戮이 方告無辜于上한대 上帝監民하시니 罔有

馨香德이요 刑發聞이 惟腥이러라』

 

『 백성들이 일어나 서로 물들어서 어둡고 어지러워 마음속에 성신(誠信)으로 하지 않고, 저맹(詛盟)『[저주와

맹약]』을 반복하니, 사나운 정사로 위엄을 베풀어 여러 형벌을 받은 자들이 바야흐로 무고(無辜)함을 상천(上天)에

하소연하였다. 상제(上帝)께서 백성들을 굽어 보시니, 향기로운 덕이 없고 형벌의 발문(發聞)『[냄새가 풍김]』이

비린내 뿐이었다.』

 

『泯泯은 昏也요 ©\©\은 亂也라 民相漸染하여 爲昏爲亂하여 無復誠信하고 相與反覆詛盟而已라 虐政作威하여 衆

被戮者 方各告無罪於天한대 天視苗民하니 無有馨香德이요 而刑戮發聞이 莫非腥穢라 呂氏曰 形於聲嗟는 窮之反也요

 動於氣臭는 惡之熟也라 馨香은 陽也요 腥穢는 陰也라 故로 德爲馨香이요 而刑發腥穢也라』

 

『 민민(泯泯)은 어두움이요, 분분(©\©\)은 어지러움이다. 백성들이 서로 물들어서 어두운 짓을 하고 어지러운

짓을 하여, 다시는 성신(誠信)이 없고 서로 저맹(詛盟)을 반복할 뿐이었다. 사나운 정사로 위엄을 세워 모든 형벌을

받은 자들이 바야흐로 각기 무죄함을 하늘에 하소연하였다. 하늘이 묘민(苗民)을 살펴보니, 향기로운 덕(德)이 없고

형륙(刑戮)의 발문(發聞)이 성예(腥穢)『[더러운 비린내]』 아님이 없었다.』

 

『 여씨(呂氏)가 말하였다. “목소리로 슬퍼함에 나타남은 궁하여 근본에 돌아감이요, 기운과 냄새에 동함은 악(惡)이

성숙한 것이다. 형향(馨香)은 양(陽)이고 성예(腥穢)는 음(陰)이다. 그러므로 덕은 형향이 되고 형벌은 성예를 풍기는

것이다.』

 

*서경 ; 주서 ; 여형 ; 제5장

 

▣ 제5장(第五章)

 

『皇帝哀矜庶戮之不辜하사 報虐以威하사 촀絶苗民하여 無世在下하시니라』

 

『 황제(皇帝)『[순제(舜帝)]』께서 여러 형벌을 받은 자의 무죄(無罪)함을 가엾게 여기시어 사나움을 갚되 위엄

으로써 하여 묘민(苗民)을 끊어서 대를 이어 하국(下國)에 있지 못하게 하였다.』

 

『皇帝는 舜也라 以書攷之컨대 治苗民과 命伯夷, 禹, 稷, 皐陶는 皆舜之事라 報苗之虐호되 以我之威라 絶은 滅也니

謂『竄與分北(背)之類주:찬여분배지류』니 촀絶之하여 使無繼世在下國이라』

『 황제(皇帝)는 순(舜)이다. 《서경(書經)》을 가지고 살펴보면 묘민(苗民)을 다스린 것과 백이(伯夷)와 우(禹)•

직(稷)•고요(皐陶)에게 명한 것은 모두 순(舜)의 일이다. 묘(苗)의 사나움을 갚되 자신의 위엄으로써 하였다.

절(絶)은 멸함이니, 찬(竄)과 분배(分北)의 유(類)를 이르니, 끊고 멸하여 대를 이어 하국(下國)에 있지 못하게 한

것이다.』

 

*서경 ; 주서 ; 여형 ; 제6장

 

▣ 제6장(第六章)

 

『乃命重黎하사 絶地天通하사 罔有降格케하신대 群后之逮在下 明明©~常하여 鰥寡無蓋하니라』

 

『 〈순(舜)은〉 마침내 중(重)•여(黎)에게 명하여 땅이 하늘과 통함을 끊어 강격(降格)『[강림]』함이 없게 하시니,

여러 제후와 아래에 있는 자들이 명명(明明)하게 떳떳한 도(道)를 도와 환과(鰥寡)가 가리움이 없었다.』

 

『重은 少昊之後요 黎는 高陽之後니 重은 卽羲요 黎는 卽和也라 呂氏曰 治世엔 公道昭明하여 爲善得福하고 爲惡得

禍하여 民曉然知其所由하여 則不求之渺茫冥昧之間이러니 當三苗昏虐하여는 民之得罪者 莫知其端하여 無所控訴

하여 相與聽於神하여 祭非其鬼하여 天地人神之典이 雜츗瀆亂하니 此는 妖誕之所以興이요 人心之所以不正也라

在舜에 當務之急이 莫先於正人心일새 首命重黎하여 修明祀典하사 天子然後에 祭天地하고 諸侯然後에 祭山川하여

高卑上下各有分限하여 絶地天之通하고 嚴幽明之分하여 『焄蒿妖誕之說주:훈호탄지설』이 擧皆屛息한대 群后及在

下之群臣이 皆精白一心하여 輔助常道하니 民卒善而得福하고 惡而得禍하여 雖鰥寡之微라도 亦無有蓋蔽而不得自

伸者也라』

『○ 按國語曰 少?氏之衰에 『九黎주:구려』亂德하니 民神雜츗하여 家爲巫史하고 民瀆齊盟하여 禍災쾶臻이러니

컉頊이 受之하여 乃命南正重司天하여 以屬神하고 北正黎司地하여 以屬民하여 使無相侵瀆이러니 其後에 三苗復九黎

之德이어늘 堯復育重黎之後하니 不忘舊者하여 使復典之라하니라』

 

『 중(重)은 소호(少昊)의 후손이고 여(黎)는 고양(高陽)『[전욱(컉頊)]』의 후손이니, 중(重)은 곧 희(羲)이고

여(黎)는 곧 화(和)이다. 여씨(呂氏)가 말하였다. “치세(治世)에는 공정한 도가 밝아져서 선을 하면 복을 얻고 악을

하면 화를 얻어, 백성들이 분명히 그 이유를 알아 아득하고 어두운 사이에 구하지 않는다.

그런데 삼묘(三苗)가 어둡고 사나운 때를 당해서는 백성 중에 죄를 얻은 자가 그 단서『[까닭]』를 알지 못하여

공소(控訴)『[하소]』할 곳이 없어서, 서로 더불어 신(神)에게 들어 자신의 조상신이 아닌 것에 제사하였다.

그리하여 하늘과 땅과 사람의 신(神)에 대한 예(禮)가 혼잡하고 독란(瀆亂)하니, 이는 요탄(妖誕)이 일어나는 이유

이고 인심(人心)이 바르지 못하게 된 까닭이다. 순(舜)에게 있어 마땅히 힘써야 할 급선무가 인심(人心)을 바로잡는

것보다 먼저할 것이 없으므로 먼저 중(重)•여(黎)에게 명하여 제사하는 예(禮)를 수명(修明)하여, 천자(天子)인 뒤

에야 천지(天地)에 제사하고 제후(諸侯)인 뒤에야 산천(山川)에 제사하여, 존비(尊卑)와 상하(上下)가 각각 분한

(分限)이 있어 천(天)•지(地)의 통함을 끊고 유(幽)•명(明)의 구분을 엄격히 하여 훈호(焄蒿)와 요탄(妖誕)한 말이

모두 감춰져 종식되니, 여러 제후와 아래에 있는 군신(群臣)들이 모두 한 마음을 정백(精白)히 하여 떳떳한 도(道)를

도왔다. 그리하여 백성들이 마침내 선하면 복을 얻고 악하면 화를 얻어 비록 환과(鰥寡)의 미천한 자라도 또한 가리

워져 스스로 폄을 얻지 못한 자가 없었다.”』

『 ○ 살펴보건대 《국어(國語)》에 “소호(少?)『[소호(少昊)]』씨(氏)가 쇠하자 구려(九黎)가 덕(德)을 어지럽히니,

백성과 신(神)이 혼잡하여 집집마다 무사(巫史)『[무당]』를 위하고 백성들이 번독(煩瀆)하게 서로 맹약하여 재앙

이 거듭 이르렀는데, 전욱(컉頊)이 이를 받아서 마침내 남정(南正) 중(重)을 명하여 하늘을 맡아 신(神)을 소속

시키고, 북정(北正) 여(黎)로 땅을 맡아 백성을 소속시켜 서로 침란(侵亂)하고 번독(煩瀆)함이 없게 하였다.

그후 삼묘(三苗)가 구려(九黎)의 덕(德)을 회복하므로 요(堯)가 다시 중(重)•여(黎)의 뒤를 길렀으니, 옛날을 잊지

아니하여 다시 주관하게 한 것이다.” 하였다.』

 

*서경 ; 주서 ; 여형 ; 제7장

 

▣ 제7장(第七章)

 

『皇帝淸問下民하시니 鰥寡有辭于苗어늘 德威하신대 惟畏하고 德明하신대 惟明하니라』

 

『 황제(皇帝)께서 하민(下民)들에게 겸허히 물으시니, 환과(鰥寡)가 묘(苗)에 원망하는 말이 있었다.

황제께서 덕(德)으로 위엄을 보이시자 두려워하고, 덕(德)으로 밝히시자 밝아졌다.』

 

『淸問은 虛心而問也라 有辭는 聲苗之過也라 苗以虐爲威하고 以察爲明이어늘 帝反其道하사 以德威而天下無不畏

하고 以德明而天下無不明也라』

 

『 청문(淸問)은 마음을 비우고 묻는 것이다. 유사(有辭)는 묘(苗)의 허물을 성토하는 것이다. 묘(苗)는 사나움을

위엄으로 삼고 살핌을 밝음으로 삼았는데, 순제(舜帝)가 그 도를 반대로 하여 덕으로 위엄을 보이자 천하가 두려워

하지 않음이 없고, 덕으로 밝히자 천하가 밝지 않음이 없었다.』

 

*서경 ; 주서 ; 여형 ; 제8장

 

▣ 제8장(第八章)

 

『乃命三后하사 恤功于民하시니 伯夷는 降典하여 折『(絶)』民惟刑하고 禹平水土하여 主名山川하고 稷降播種하여

農殖嘉穀하니 三后成功하여 惟殷于民하니라』

 

『 마침내 세 후(后)를 명하여 백성을 구휼하는 공을 세우게 하시니, 백이(伯夷)는 예(禮)를 내려 백성들이 형벌에 들어감을 끊고, 우(禹)는 수토(水土)를 다스려 유명한 산천(山川)을 주관하게 하고, 직(稷)은 파종하는 법을 내려 농사가 아름다운 곡식이 번식하니, 세 후(后)가 공을 이루어 백성들을 성하게 하였다.』

 

『恤功은 致憂民之功也라 典은 禮也라 伯夷降天地人之三禮하여 以折民之邪妄이라 蘇氏曰 失禮則入刑하니 禮刑이 一物也라 伯夷降典하여 以正民心하고 禹平水土하여 以定民居하고 稷降播種하여 以厚民生하니 三后成功하여 而致民之殷盛富庶也라 吳氏曰 二典에 不載有『兩刑官주:양형관』하니 蓋傳聞之謬也라 愚意皐陶未爲刑官之時에 豈伯夷實兼之歟아 下文에 又言伯夷播刑之迪이라하니 不應如此謬誤니라』

 

『 휼공(恤功)은 백성을 근심하는 공을 이루는 것이다. 전(典)은 예(禮)이다. 백이(伯夷)는 천(天)•지(地)•인(人)의 세 예(禮)를 내려 백성들의 사망(邪妄)한 짓을 끊었다.』

『 소씨(蘇氏)가 말하였다. “예(禮)를 잃으면 형벌로 들어가니, 예와 형벌이 한 물건이다. 백이(伯夷)가 예(禮)를 내려 민심을 바로잡고, 우(禹)가 수토(水土)를 다스려 백성들의 거처를 안정시키고, 직(稷)이 파종하는 법을 내려 백성들의 삶을 후(厚)하게 하니, 세 후(后)가 공을 이루어 백성들의 은성(殷盛)하고 부서(富庶)함을 이루었다.”』

『 오씨(吳氏)가 말하기를 “이전(二典)에 두 형관(刑官)이 실려 있지 않으니, 아마도 전문(傳聞)의 오류이다.” 하였는데, 내 생각에는 고요(皐陶)가 형관(刑官)이 되기 전에 아마도 백이(伯夷)가 실제로 겸직한 듯하다. 하문(下文)에 또 백이(伯夷)가 형벌을 베풀어 인도했다고 말하였으니, 응당 이와 같이 잘못되지 않았을 것이다.』

 

*서경 ; 주서 ; 여형 ; 제9장

 

▣ 제9장(第九章)

 

『士制百姓于刑之中하여 『以敎祗德주:이교지덕』하니라』

 

『 사(士)가 백성들을 형벌의 알맞음에 통제하여 공경하는 덕(德)을 가르쳤다.』

 

『命皐陶爲士하여 制百姓于刑µ?之中하니 所以檢其心而敎以祗德也라』

『○ 吳氏曰 皐陶不與三后之列하여 遂使後世로 以刑官爲輕이라 後漢楊賜 拜廷尉에 自以代非法家라하여 言曰 三后成功하여 惟殷于民이어늘 皐陶不與라하니 蓋吝之也라 是는 後世非獨人臣以刑官爲輕이요 人君亦以爲輕矣라 觀舜之稱皐陶曰 刑期于無刑하여 民協于中이 時乃功이라하시고 又曰 쯸予從欲以治하여 四方風動이 惟乃之休라하시니 其所繫 乃如此하니 是可輕哉아 呂氏曰 呂刑一篇은 以刑爲主라 故로 歷敍本末하고 而歸之於皐陶之刑하니 勢不得與伯夷禹稷雜稱이니 言固有賓主也니라』

 

『 고요(皐陶)를 명하여 사(士)를 삼아 백성들을 형벽(刑µ?)의 알맞음에 통제하니, 그 마음을 검속하여 덕을 공경함을 가르친 것이다.』

『 ○ 오씨(吳氏)가 말하였다. “고요(皐陶)가 세 후(后)의 열에 참여되지 아니하여, 마침내 후세로 하여금 형관(刑官)을 경시하게 하였다. 후한(後漢)의 양사(楊賜)가 정위(廷尉)에 배수(拜授)되자, 스스로 가문이 대대로 법가(法家)가 아니라 하여 말하기를 ‘세 후(后)가 공(功)을 이루어 백성을 성하게 하였는데, 고요(皐陶)가 참여되지 않았다.’ 하였으니, 정위(廷尉)를 하찮게 여긴 것이다. 이는 후세에 홀로 신하만이 형관(刑官)을 경시했을 뿐만 아니라 인군 또한 경시한 것이다. 순(舜)이 고요(皐陶)를 칭한 것을 보면 말씀하기를 ‘형벌은 형벌이 없음에 기약하여 백성이 중(中)에 화합함이 네 공이다.’ 하였고, 또 말씀하기를 ‘나로 하여금 하고자 하는 대로 따라 다스려져서 사방이 풍동(風動)함이 너의 아름다움이다.’ 하였으니, 그 관계되는 바가 이와 같으니, 가볍게 여길 수 있겠는가.”』

『 여씨(呂氏)가 말하였다. “〈여형(呂刑)〉 한 편은 형벌을 위주로 하였기 때문에 본말(本末)을 낱낱이 서술하고 고요(皐陶)의 형벌에 귀결하였으니, 문세(文勢)가 백이(伯夷)와 우(禹)와 직(稷)과 섞어서 칭할 수 없으니, 말에 진실로 빈(賓)•주(主)가 있는 것이다.”』

 

*서경 ; 주서 ; 여형 ; 제10장

 

▣ 제10장(第十章)

 

『穆穆在上하며 明明在下하여 灼于四方하여 罔不惟德之勤하니 故乃明于刑之中하여 率乂于民하여 ©~彛하니라』

 

『 군주는 목목(穆穆)히 위에 있고 신하는 명명(明明)히 아래에 있어 사방에 빛나서 덕을 부지런히 힘쓰지 않음이 없으니, 그러므로 마침내 형벌의 알맞음을 밝혀서 백성을 모두 다스려 떳떳한 성품을 도왔다.』

 

『穆穆者는 和敬之容也요 明明者는 精白之容也라 灼于四方者는 穆穆明明하여 輝光發越而四達也라 君臣之德이 昭明如是라 故로 民皆觀感動´[하여 爲善而不能自已也라 如是而猶有未化者라 故로 士師明于刑之中하여 使無過不及之差하여 率乂于民하여 輔其常性하니 所謂刑罰之精華也라』

 

『 목목(穆穆)은 화경(和敬)하는 모양이요, 명명(明明)은 정백(精白)한 모양이다. 사방에 빛났다는 것은 목목(穆穆)하고 명명(明明)하여 빛남이 발양(發揚)해서 사방으로 도달한 것이다. 군(君)•신(臣)의 덕(德)이 밝음이 이와 같았으므로 백성들이 모두 보고 감동하고 동탕(動´[)하여 선(善)을 해서 스스로 그치지 않았다. 그러나 이와 같은데도 오히려 교화되지 않는 자가 있었다. 그러므로 사사(士師)가 형벌의 알맞음을 밝혀서 과(過)•불급(不及)의 잘못이 없어 백성을 모두 다스려서 떳떳한 성품을 도왔으니, 이른바 형벌의 정화(精華)라는 것이다.』

 

*서경 ; 주서 ; 여형 ; 제11장

 

▣ 제11장(第十一章)

 

『典獄은 非訖于威라 惟訖于富니 敬忌하여 罔有擇言在身하여 惟克天德이라사 自作元命하여 配享在下하리라』

 

『 옥(獄)을 맡은 자는 위엄을 부리는 권력가에게만 법을 다할 것이 아니라, 뇌물을 주는 부자(富者)에게도 다해야 하니, 공경하고 조심해서 가릴 말이 몸이 있지 않게 하여 능히 하늘의 덕을 간직하여야 스스로 큰 명(命)을 만들어서 짝하여 누려 아래에 있을 것이다.”』

 

『訖은 盡也라 威는 權勢也요 富는 賄賂也라 當時典獄之官은 非惟得盡法於權勢之家라 亦惟得盡法於賄賂之人이니 言不爲威屈하고 不爲利誘也라 敬忌之至하여 無有擇言在身하면 大公至正하여 純乎天德하여 無毫髮不可擧以示人者하리니 天德在我하면 則大命自我作하여 而配享在下矣라 在下者는 對天之辭니 蓋推典獄用刑之極功하여 而至於與天爲一者 如此니라』

 

『 흘(訖)은 다함이다. 위(威)는 권세이고 부(富)는 뇌물이다. 당시에 옥(獄)을 맡은 관원은 오직 권세있는 집안에만 법을 다할 것이 아니라 또한 뇌물을 주는 사람에게도 법을 다해야 하니, 위엄에 굽히지 않고 이익에 유혹되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공경하고 조심함이 지극하여 가릴 말이 몸에 없으면 대공(大公)하고 지정(至正)하여 천덕(天德)에 순수해서 털끝만큼이라도 들어서 남에게 보일 수 없는 것이 없을 것이니, 천덕(天德)이 자신에게 있으면 큰 명(命)이 자신으로부터 만들어져서 짝하여 누려 아래에 있을 것이다. 아래에 있다는 것은 하늘과 상대한 말이니, 옥사를 주관하는 자가 형벌을 쓰는 지극한 공을 미루어서 하늘과 더불어 하나가 됨에 이름이 이와 같은 것이다.』

 

*서경 ; 주서 ; 여형 ; 제12장

 

▣ 제12장(第十二章)

 

『王曰 嗟四方司政典獄아 非爾惟作天牧가 今爾는 何監고 非時伯夷播刑之迪가 其今爾何懲고 惟時苗民이 匪察于獄之麗『(리)』하며 罔擇吉人하여 觀于五刑之中이요 惟時庶威奪貨로 斷制五刑하여 以亂無辜한대 上帝不줃하사 降咎于苗하시니 苗民이 無辭于罰하여 乃絶厥世하니라』

 

『 왕(王)이 말씀하였다. “아! 사방의 정사를 맡아 옥사를 주관하는 자들아. 네가 천목(天牧)이 되지 않았는가? 이제 너는 무엇을 볼 것인가? 이 백이(伯夷)가 형벌을 베풀어 인도함이 아니겠는가. 지금 너는 무엇을 징계할 것인가? 이 묘민(苗民)들이 옥사에 걸림을 살피지 않으며, 길인(吉人)을 가려 오형(五刑)의 알맞음을 보여주게 하지 않고 이 여러 위엄과 재물『[뇌물]』로 법을 빼앗은 자들로 하여금 오형(五刑)을 단제(斷制)하여 무고(無辜)한 자들을 어지럽히자, 상제(上帝)가 용서하지 아니하여 허물을 묘(苗)에 내리시니, 묘민(苗民)이 하늘의 벌에 할 말이 없어 마침내 그 대를 끊게 되었다.”』

 

『司政典獄은 漢孔氏曰 諸侯也니 爲諸侯主刑獄而言이라 非爾諸侯 爲天牧養斯民乎아 爲天牧民이면 則今爾何所監懲고 所當監者 非伯夷乎아 所當懲者 非有苗乎아 伯夷布刑하여 以啓迪斯民하니 捨皐陶而言伯夷者는 探本之論也라 麗는 附也라 苗民이 不察於獄辭之所麗하고 又不擇吉人하여 쯸觀于五刑之中이요 惟是貴者 以威亂政하고 富者以貨奪法하여 斷制五刑하여 亂虐無罪한대 上帝不줃貸而降罰于苗하시니 苗民이 無所辭其罰하여 而遂殄滅之也라』

 

『 사정전옥(司政典獄)은 한(漢)나라 공씨(孔氏)가 말하기를 “제후(諸侯)이니, 제후 중에 형옥(刑獄)을 주장하는 자를 위하여 말한 것이다.” 하였다. 너 제후는 하늘을 위하여 이 백성을 목양(牧養)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늘을 위하여 백성을 기른다면 지금 너는 무엇을 보고 징계할 것인가? 마땅히 보아야 것은 백이(伯夷)가 아니겠는가? 마땅히 징계해야 할 것은 묘(苗)가 아니겠는가? 백이(伯夷)가 형벌을 베풀어 이 백성을 계적(啓迪)하였으니, 고요(皐陶)를 버리고 백이(伯夷)를 말한 것은 근본을 탐구하는 말이다. 이(麗)는 붙음이다. 묘민(苗民)이 옥사에 걸림을 살피지 않으며 또 길인(吉人)을 가려 오형(五刑)의 알맞음을 보여주게 하지 않고, 오직 귀한 자는 위엄으로 정사를 어지럽히고, 부한 자는 재물로 법을 빼앗아서 오형(五刑)을 단제(斷制)하여 무죄한 자들을 어지럽히고 포악히 하자, 상제(上帝)가 용서하지 아니하여 묘(苗)에 벌을 내리시니, 묘민(苗民)이 그 벌에 할 말이 없어서 마침내 끊어져 멸하게 된 것이다.』

 

*서경 ; 주서 ; 여형 ; 제13장

 

▣ 제13장(第十三章)

 

『王曰 嗚呼라 念之哉어다 伯父와 伯兄과 仲叔과 季弟와 幼子와 童孫아 皆聽朕言하라 『庶有格命주:서유격명』하니라 今爾罔不由慰日勤하나니 爾罔或戒不勤하라 天齊于民이라 쯸我一日이시니 非終惟終이 在人하니 爾尙敬逆天命하여 以奉我一人하여 雖畏『(威)』나 勿畏하며 雖休나 勿休하여 惟敬五刑하여 以成三德하면 一人有慶하며 兆民賴之하여 其寧惟永하리라』

 

『 왕(王)이 말씀하였다. “아! 생각할지어다. 백부(伯父)와 백형(伯兄)과 중숙(仲叔)과 계제(季弟)와 유자(幼子)와 동손(童孫)들아. 모두 짐(朕)의 말을 들어라. 거의 지극한 명령이 있을 것이다. 지금 네가 말미암아 위로함이 날로 부지런하지 않음이 없으니, 너는 혹시라도 부지런하지 않음을 경계하지 말라. 하늘이 백성들을 가지런히 하기 위하여 나로 하여금 하루만 형벌을 쓰게 하신 것이니, 종(終)이 아님과 종(終)인 것이 사람에게 있으니, 너는 부디 천명(天命)을 공경히 맞이해서 나 한 사람을 받들어라. 그리하여 내가 비록 형벌하라 하더라도 형벌하지 말고 내가 비록 아름답게 용서하라 하더라도 용서하지 말아서 오형(五刑)을 공경하여 삼덕(三德)을 이루면 나 한 사람이 경사가 있을 것이며, 조민(兆民)들이 힘입어 그 편안함이 영원할 것이다.”』

 

『此는 告同姓諸侯也라 格은 至也라 參錯訊鞠하여 極天下之勞者 莫若獄이니 苟有毫髮怠心이면 則民有不得其死者矣라 罔不由慰日勤者는 爾所用以自慰者 無不以日勤이라 故로 職擧而刑當也라 爾罔或戒不勤者는 刑罰之用은 一成而不可變者也니 苟頃刻之不勤이면 則刑罰失中하여 雖深戒之나 而已施者亦無及矣라 戒固善心也나 而用刑을 豈可以或戒也哉아 且刑獄은 非所恃以爲治也니 天以是整齊亂民하여 使我爲一日之用而已라 非終은 卽康誥大罪非終之謂니 言過之當宥者요 惟終은 卽康誥小罪惟終之謂니 言故之當µ?者라 非終惟終이 皆非我得輕重이요 惟在夫人所犯耳니 爾當敬逆天命하여 以承我一人이라 畏威는 古通用이니 威는 µ?之也요 休는 宥之也라 我雖以爲µ?이라도 爾惟勿µ?하며 我雖以爲宥라도 爾惟勿宥하고 惟敬乎五刑之用하여 以成剛柔正直之德이면 則君慶於上하고 民賴於下하여 而安寧之福이 其永久而不替矣리라』

 

『 이것은 동성(同姓)의 제후(諸侯)에게 고한 것이다. 격(格)은 지극함이다. 교착(交錯)하여 신국(訊鞠)『[심문하고 국문함]』해서 천하의 수고로움을 지극히 함이 옥사(獄事)보다 더한 것이 없으니, 만일 털끝만치라도 게으른 마음이 있으면 백성들이 그 올바른 죽음을 얻지 못하는 자가 있을 것이다. ‘말미암아 위로함이 날로 부지런하지 않음이 없다’는 것은 스스로 위로함이 날로 부지런하지 않음이 없으므로 직책이 거행되어 형벌이 마땅한 것이다. ‘너는 혹시라도 부지런하지 않음을 경계하지 말라’는 것은 형벌의 씀은 한 번 이루어지면 다시는 변경할 수 없으니, 만일 경각(頃刻)이라도 부지런하지 않으면 형벌이 알맞음을 잃어서 비록 깊이 경계하더라도 이미 형벌을 시행한 자에게는 미칠 수가 없다. 경계함은 진실로 좋은 마음이나 형벌을 씀을 어찌 혹시라도 경계할 수 있겠는가. 또 형옥(刑獄)은 믿고서 다스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니, 하늘이 이로써 어지러운 백성들을 정제(整齊)하여 나로 하여금 하루의 씀을 하게 할 뿐이다. 비종(非終)은 곧 〈강고(康誥)〉에 큰 죄라도 종(終)이 아니라는 것이니 과실로 마땅히 용서할 자를 말한 것이며, 유종(惟終)은 곧 〈강고(康誥)〉에 작은 죄라도 종(終)이라는 것이니 고의범으로 마땅히 형벌해야 할 자를 말한 것이다. 비종(非終)과 유종(惟終)이 모두 내가 가볍거나 무겁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요, 오직 그 사람의 범한 바에 달려 있을 뿐이니, 너는 마땅히 천명(天命)을 공경히 맞이해서 나 한 사람을 받들라는 것이다. 외(畏)와 위(威)는 옛날에 통용되었으니, 위(威)는 형벌하는 것이고 휴(休)는 용서하는 것이다. 내가 비록 형벌하라 하더라도 너는 형벌하지 말고, 내가 비록 용서하라 하더라도 너는 용서하지 말고, 오직 오형(五刑)의 씀을 공경하여 강(剛)•유(柔)와 정직(正直)의 덕(德)을 이루면 군주는 위에서 경사스럽고 백성들은 아래에서 힘입어 안녕(安寧)한 복이 영구하여 폐해지지 않을 것이다.』

 

*서경 ; 주서 ; 여형 ; 제14장

 

▣ 제14장(第十四章)

 

『王曰 췕라 來하라 有邦有土아 告爾祥刑하노라 在今爾安百姓인댄 何擇고 非人가 何敬고 非刑가 何度『(탁)』고 非及가』

 

『 왕(王)이 말씀하였다. “아! 이리 오라. 나라를 소유하고 토지를 소유한 자들아. 너에게 상서로운 형벌을 고하노라. 이제 너에게 있어 백성들을 편안히 하려 할진댄 무엇을 가려야 하는가? 사람이 아니겠는가. 무엇을 공경해야 하는가? 형벌이 아니겠는가. 무엇을 헤아려야 하는가? 옥사에 미치는 것이 아니겠는가.』

 

『有民社者 皆在所告也라 夫刑은 凶器也어늘 而謂之祥者는 刑期無刑하여 民協于中이면 其祥莫大焉이라 及은 逮也라 漢世에 詔獄所逮 有至數萬人者하니 審度其所當逮者而後에 可逮之也라 曰何, 曰非는 問答以發其意하여 以明三者之決不可不盡心也라』

 

『 백성과 사직(社稷)을 소유한 자가 모두 고할 대상(對象)에 있는 것이다. 형벌은 흉기(凶器)인데 상서라고 말한 것은 형벌은 형벌이 없음을 기약하여 백성들이 중(中)에 맞으면 그 상서로움이 이보다 클 수 없다. 급(及)은 미침이다. 한(漢)나라 세대에 조명(詔命)으로 다스리는 옥사(獄事)에 미치는 바가 수만 명에 이른 경우가 있으니, 마땅히 미쳐야 할 것을 살펴 헤아린 뒤에 미치게 하는 것이다. ‘하(何)’라고 말하고 ‘비(非)’라고 말한 것은 문답하여 그 뜻을 나타내서 세 가지에 결코 마음을 다하지 않을 수 없음을 밝힌 것이다.』

 

*서경 ; 주서 ; 여형 ; 제15장

 

▣ 제15장(第十五章)

 

『兩造요 具備어든 師聽五辭호리니 五辭에 簡孚어든 正于五刑하며 五刑에 不簡이어든 正于五罰하며 五罰에 不服이어든 正于五過하라』

 

『 〈다투는 자가〉 두 사람 모두 법정(法庭)에 이르고 〈말과 증거(證據)가〉 구비되었으면 여러 사(士)가 오사(五辭)를 들을 것이니, 오사(五辭)에 진실하고 믿을 만하거든 오형(五刑)에 질정하며, 오형(五刑)에 진실하지 않거든 오벌(五罰)『[다섯 가지 벌금형]』에 질정하며, 오벌(五罰)에 복종하지 않거든 오과(五過)『[다섯 가지 과오]』에 질정하라.』

 

『兩造者는 兩爭者皆至也니 周官에 以兩造聽民訟하니라 具備者는 詞證皆在也라 師는 衆也라 五辭는 麗於五刑之辭也라 簡은 核其實也요 孚는 無可疑也라 正은 質也니 五辭簡核而可信이라야 乃質于五刑也라 不簡者는 辭與刑이 參差『(치)』不應이니 刑之疑者也라 罰은 贖也니 疑於刑則質于罰也라 不服者는 辭與罰이 又不應也니 罰之疑者也라 過는 誤也니 疑於罰이면 則質于過而宥免之也라』

 

『 양조(兩造)는 두 다투는 자가 모두 이르는 것이니, 《주관(周官)》에 “두 사람이 이르면 백성의 송사를 다스린다.” 하였다. 구비(具備)는 말과 증거가 모두 있는 것이다. 사(師)는 무리이다. 오사(五辭)는 오형(五刑)에 걸린 말이다. 간(簡)은 그 진실을 조사함이요, 부(孚)는 의심이 없는 것이다. 정(正)은 질정함이니, 오사(五辭)가 진실하여 믿을 만하여야 비로소 오형(五刑)에 질정하는 것이다. 불간(不簡)은 말과 형(刑)이 어긋나서 응하지『[맞지]』 않는 것이니, 형벌함에 의심스러운 것이다. 벌(罰)은 속(贖)『[벌금형]』이니, 형벌함에 의심스러우면 벌(罰)에 질정하는 것이다. 불복(不服)은 말과 벌(罰)이 또 응하지 않는 것이니, 벌에 의심스러운 것이다. 과(過)는 과오이니, 벌(罰)에 의심스러우면 과(過)에 질정하여 용서해서 면하는 것이다.』

 

*서경 ; 주서 ; 여형 ; 제16장

 

▣ 제16장(第十六章)

 

『五過之疵는 惟官과 惟反과 惟內와 惟貨와 惟來니 其罪惟均하니 其審克之하라』

 

『 오과(五過)의 병폐는 관권(官權)과 반(反)『[보답함]』과 내(內)『[궁녀의 청탁]』와 뇌물과 내(來)『[간청]』이니 그 죄가 똑같으니, 살펴서 능하게 하라.』

 

『疵는 病也라 官은 威勢也요 反은 報德怨也요 內는 女謁也요 貨는 賄賂也요 來는 干請也라 惟此五者之病으로 以出入人罪면 則以人之所犯으로 坐之也라 審克者는 察之詳而盡其能也니 下文에 屢言하여 以見其丁寧忠厚之志라 疵於刑罰에 亦然이로되 但言於五過者는 擧輕以見重也라』

 

『 자(疵)는 병통이다. 관(官)은 위세(威勢)요, 반(反)은 은덕과 원한에 보답함이요, 내(內)는 궁녀의 청탁이요, 화(貨)는 뇌물이요, 내(來)는 간청이다. 이 다섯 가지의 병폐로써 사람의 죄를 내고 들이면 그 사람이 범한 죄로 좌죄(坐罪)하는 것이다. 심극(審克)은 살피기를 자세히 하여 그 능함을 다하는 것이니, 하문(下文)에 여러번 말하여 정녕(丁寧)하고 충후(忠厚)한 뜻을 나타내었다. 병폐는 형(刑)과 벌(罰)에 있어서도 또한 그러하나 다만 다섯 가지 과오에만 말한 것은 가벼운 것을 들어 무거운 것을 나타낸 것이다.』

 

*서경 ; 주서 ; 여형 ; 제17장

 

▣ 제17장(第十七章)

 

『五刑之疑 有赦하고 五罰之疑 有赦하니 其審克之하라 簡孚有衆이어든 惟貌有稽니 無簡이어든 不聽하여 具嚴天威하라』

 

『 오형(五刑)에 의심스러운 것은 사면함이 있고, 오벌(五罰)에 의심스러운 것도 사면함이 있으니, 살펴서 능하게 하라. 진실을 조사하여 믿을 만한 것이 많거든 얼굴을 상고함이 있으니, 진실하지 않거든 듣지 말아서 모두 하늘의 위엄을 두려워 하라.』

 

『刑疑有赦는 正于五罰也요 罰疑有赦는 正于五過也라 簡核情實하여 可信者衆이면 亦惟考察其容貌니 『周禮所謂色聽주:주례소위색청』이 是也라 然聽獄은 以簡核爲本이니 苟無情實이면 在所不聽이라 上帝臨汝하시니 不敢有毫髮之不盡也라』

 

『 오형(五刑)에 의심스러운 것은 사면함이 있다는 것은 오벌(五罰)에 질정함이요, 오벌(五罰)에 의심스러운 것은 사면함이 있다는 것은 오과(五過)에 질정하는 것이다. 실정을 조사하여 믿을 만한 것이 많으면 또한 그 용모를 고찰하여야 하니, 《주례(周禮)》에 이른바 “얼굴빛을 보고 다스린다.”는 것이 이것이다. 그러나 옥사를 다스림은 진실을 조사함을 근본으로 삼으니, 만약 실정이 없으면 다스리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상제(上帝)가 너를 굽어보고 계시니, 털끝만큼이라도 미진함이 있어서는 안된다.』

 

*서경 ; 주서 ; 여형 ; 제18장

 

▣ 제18장(第十八章)

 

『墨µ?疑赦는 其罰이 百턥이니 閱實其罪하라 ¯?疑赦는 其罰이 惟倍니 閱實其罪하라 쯹µ?疑赦는 其罰이 倍差니 閱實其罪하라 宮µ?疑赦는 其罰이 六百턥이니 閱實其罪하라 大µ?疑赦는 其罰이 千턥이니 閱實其罪하라 墨罰之屬이 千이요 ¯之屬이 千이요 쯹罰之屬이 五百이요 宮罰之屬이 三百이요 大µ?之罰이 其屬이 二百이니 五刑之屬이 三千이니 上下比罪하여 無僭亂辭하며 勿用不行이요 惟察惟法하여 其審克之하라』

 

『 묵벽(墨µ?)의 의사(疑赦)『[의심스러워 사면함]』는 그 벌금이 1백 환(턥)이니, 그 죄를 열실(閱實)『[자세히 조사하여 진실히 함]』하라. 의벽(¯?)의 의사(疑赦)는 그 벌금이 배이니, 그 죄를 열실하라. 비벽(쯹µ?)의 의사(疑赦)는 벌금이 배하고 차이가 있으니, 그 죄를 열실하라. 궁벽(宮µ?)의 의사(疑赦)는 그 벌금이 6백 환이니, 그 죄를 열실하라. 대벽(大µ?)의 의사(疑赦)는 그 벌금이 1천 환이니, 그 죄를 열실하라. 묵벌(墨罰)의 종류가 천이고 의벌(¯)의 종류가 천이고 비벌(쯹罰)의 종류가 5백이고 궁벽(宮µ?)의 종류가 3백이고 대벽(大µ?)의 종류가 2백이니, 오형(五刑)의 종류가 3천 가지이다. 올리고 내려 죄를 붙여서 어지러운 말에 잘못되지 말며, 지금에 시행하지 않는 법을 쓰지 말고 법을 잘 살펴서, 살펴 능하게 하라.』

 

『墨은 刻챓而涅之也요 ¯ 割鼻也요 쯹는 췷足也라 宮은 淫刑也니 男子는 割勢하고 婦人은 幽閉라 大µ?은 死刑也라 六兩曰턥이라 閱은 視也라 倍는 二百턥也라 倍差는 倍而又差니 五百턥也라 屬은 類也라 三千은 總計之也라 『周禮에 司刑所掌은 五刑之屬이 二千五百이니 刑雖增舊나 然輕罪는 比舊爲多요 而重罪는 比舊爲減也주:주례사형소장』라 比는 附也니 罪無正律이면 則以上下刑하여 而比附其罪也라 無僭亂辭勿用不行은 未詳이라 或曰 亂辭는 辭之不可聽者요 不行은 舊有是法而今不行者니 戒其無差誤於僭亂之辭하고 勿用今所不行之法이요 惟詳明法意而審克之也라』

『○ 今按皐陶所謂罪疑惟輕者는 降一等而罪之耳어늘 今五刑疑赦而直罰之以金하니 是는 大µ?, 宮, 쯹, ¯ 墨이 皆不復降等用矣라 蘇氏謂 五刑疑를 各入罰不降은 當因古制라하나 非也라 舜之贖刑은 官府學校鞭©/之刑耳라 夫刑莫輕於鞭©/이니 入於鞭©/之刑하고 而又情法이 猶有可議者면 則是無法以治之라 故로 使之贖하니 特不欲遽釋之也어늘 而穆王之所謂贖은 雖大µ?이라도 亦贖也하니 舜豈有是制哉리오 詳見篇題하니라』

 

『 묵(墨)은 이마에 새겨 먹물을 들임이요, 의(¯는 코를 벰이요, 비(쯹)는 발꿈치를 벰이다. 궁(宮)은 음형(淫刑)이니, 남자(男子)는 거세(去勢)를 하고 부인(婦人)은 유폐시킨다. 대벽(大µ?)은 사형(死刑)이다. 여섯 냥을 환(턥)이라 한다. 열(閱)은 살펴봄이다. 배(倍)는 2백 환이다. 배차(倍差)는 배하고 또 차이가 있는 것이니, 5백 환이다. 속(屬)은 종류이다. 3천은 총계한 것이다. 《주례(周禮)》에 사형(司刑)이 관장하는 것은 오형(五刑)의 종류가 2천5백 가지이니, 형벌은 비록 옛날보다 증가하였으나 가벼운 죄는 옛날에 비하여 많고, 무거운 죄는 옛날에 비하여 줄어들었다. 비(比)는 붙임이니, 죄가 바른 율(律)이 없으면 형(刑)을 올리고 내려서 그 죄를 붙이는 것이다. ‘무참란사물용불행(無僭亂辭勿用不行)’은 자세하지 않다. 혹자는 말하기를 “난사(亂辭)는 말중에 들을 수 없는 것이요 불행(不行)은 옛날에는 이러한 법이 있었으나 지금은 시행하지 않는 것이니, 참란한 말에 차오(差誤)하지 말고 지금 시행하지 않는 법을 쓰지 말고, 오직 법의 뜻을 자세히 밝혀서 살펴 능하게 하라고 경계한 것이다.”라고 한다.』

『 ○ 지금 살펴보건대 고요(皐陶)의 이른바 ‘죄가 의심스러운 것을 가볍게 한다’는 것은 한 등급을 낮추어 죄주는 것이었는데 이제 오형(五刑)의 의사(疑赦)에 곧바로 벌금형으로 벌하였으니, 이는 대벽(大µ?)과 궁(宮)•비(쯹)•의(¯•묵형(墨刑)에 모두 다시는 강등하여 쓰지 않은 것이다. 소씨(蘇氏)는 이르기를 “오형(五刑)에 의심스러운 것을 각기 벌금형에 넣고 강등하지 않은 것은 마땅히 옛 제도를 따랐을 것이다.” 하였는데, 이는 잘못이다. 순(舜)의 속형(贖刑)은 관부(官府)와 학교(學校)의 채찍과 회초리의 형벌일 뿐이었다. 형벌은 채찍과 회초리보다 가벼운 것이 없으니, 채찍과 회초리의 형벌에 들어가고 또 정(情)과 법(法)이 오히려 의논할 만한 것이 있으면 이는 법으로 다스릴 수가 없으므로 속전(贖錢)을 내게 하였으니, 다만 대번에 석방시키고자 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런데 목왕(穆王)의 이른바 ‘속(贖)’은 비록 대벽(大µ?)이라도 또한 속면(贖免)하였으니, 순(舜)이 어찌 이러한 제도가 있었겠는가. 편 머리에 자세히 보인다.』

 

*서경 ; 주서 ; 여형 ; 제19장

 

▣ 제19장(第十九章)

 

『上刑이라도 適輕이어든 下服하며 下刑이라도 適重이어든 上服하라 輕重諸罰이 有權하며 刑罰이 世輕世重하나니 惟齊非齊나 有倫有要하니라』

 

『 죄목(罪目)이 상형(上刑)이라도 가벼움에 적당하거든 아래로 적용하며, 죄목이 하형(下刑)이라도 무거움에 적당하거든 위로 적용하라. 여러 벌을 가볍게 하고 무겁게 함이 권도(權道)가 있으며, 형과 벌을 세상에 따라 가볍게 하고 무겁게 하여야 하니, 똑같지 않은 형벌로 가지런히 하나 윤(倫)『[질서]』이 있고, 요(要)『[요점]』가 있는 것이다.』

 

『事在上刑이라도 而情適輕이면 則服下刑이니 舜之宥過無大와 康誥所謂大罪非終者 是也라 事在下刑이라도 而情適重이면 則服上刑이니 舜之刑故無小와 康誥所謂小罪非챞者 是也라 若『(謂)』『[諸]』罰之輕重이 亦皆有權焉하니 權者는 進退推移하여 以求其輕重之宜也라 刑罰世輕世重者는 周官에 刑新國에 用輕典하고 刑亂國에 用重典하고 刑平國에 用中典이라하니 隨世而爲輕重者也라 輕重諸罰有權者는 權一人之輕重也요 刑罰世輕世重者는 權一世之輕重也라 惟齊非齊者는 法之權也요 有倫有要者는 法之經也라 言刑罰이 雖惟權變是適하여 而齊之以不齊焉이나 至其倫要所在하여는 蓋有截然而不可紊者矣니 此兩句는 總結上意라』

 

『 일이 상형(上刑)에 있더라도 정(情)이 가벼움에 적당하면 하형(下刑)을 시행하여야 하니, 순(舜)의 과오를 용서하여 크게 하지 않음과 〈강고(康誥)〉의 이른바 큰 죄라도 종(終)이 아니라는 것이다. 일이 하형(下刑)에 있더라도 정(情)이 무거움에 적당하면 상형(上刑)을 시행하여야 하니, 순(舜)의 고의범을 형벌하여 작게 하지 않음과 〈강고(康誥)〉의 이른바 작은 죄라도 과오가 아니라는 것이다. 여러 벌의 가볍고 무겁게 함이 또한 권도(權道)가 있으니, 권(權)은 진퇴(進退)하고 추이(推移)하여 경중(輕重)의 마땅함을 구하는 것이다. 형벌을 세상에 따라 가볍게 하고 무겁게 한다는 것은 《주관(周官)》에 “새로 창건한 나라를 형벌할 때에는 가벼운 법을 쓰고, 어지러운 나라를 형벌할 때에는 무거운 법을 쓰고, 평범한 나라를 형벌할 때에는 중간의 벌을 쓴다.” 하였으니, 세상을 따라 경중(輕重)하는 것이다. 여러 벌의 가볍게 하고 무겁게 함이 권도(權道)가 있다는 것은 한 사람의 경중(輕重)을 저울질함이요, 형벌을 세상에 따라 가볍게 하고 무겁게 한다는 것은 한 세상의 경중(輕重)을 저울질함이다. 가지런하지 않음을 가지런히 한다는 것은 법의 권도(權道)이며, 윤(倫)이 있고 요(要)가 있다는 것은 법의 경(經)『[원칙]』이다. 형과 벌이 비록 권변(權變)을 맞추어 가지런하지 않음을 가지런히 하나 그 윤(倫)•요(要)가 있는 곳에 이르러는 절연(截然)『[엄격]』하여 문란할 수 없음을 말한 것이니, 이 두 구(句)는 상문(上文)을 총결(總結)한 것이다.』

 

*서경 ; 주서 ; 여형 ; 제20장

 

▣ 제20장(第二十章)

 

『罰懲이 非死나 人極于病하나니 非쨻이 折獄이라 惟良이 折獄이라사 罔非在中하리라 察辭于差하여 非從惟從하며 哀敬折獄하며 明啓刑書하여 胥占이라사 咸庶中正하리니 其刑其罰을 其審克之하여사 獄成而孚하며 輸而孚하리니 其刑을 上備호되 有幷兩刑하라』

 

『 벌금으로 징계함이 죽는 것은 아니나 사람들이 지극히 괴로워하니, 말 잘하는 자가 옥사를 결단할 것이 아니라 선량한 자가 옥사를 결단하여야 중(中)에 있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 말을 어긋남에 살펴 따르려 하지 않으면서 따르며 가엾게 여기고 공경하여 옥사를 결단하며 형서(刑書)를 밝게 열어 서로 점쳐야 모두 거의 중정(中正)할 것이다. 형과 벌을 살펴서 능하게 하여야 옥사가 이루어짐에 백성들이 믿으며, 위로 올림에 군주가 믿을 것이니, 형벌을 결단한 내용을 갖추어 올리되 두 형벌을 겸하여 올려라.』

 

『罰以懲過는 雖非致人於死나 然民重出贖하니 亦甚病矣라 쨻은 口才也라 非口才辯給之人이 可以折獄이요 惟溫良長者로 視民如傷者 能折獄이라야 而無不在中也니 此는 言聽獄者當擇其人也라 察辭于差者는 辭非情實이면 終必有差니 聽獄之要는 必於其差而察之라 非從惟從者는 察辭에 不可偏主니 猶曰不然而然이니 所以審輕重而取中也라 哀敬折獄者는 惻쩊敬畏하여 以求其情也요 明啓刑書胥占者는 言詳明法律하여 而與衆占度『(탁)』也요 咸庶中正者는 皆庶幾其無過큥也니 於是에 刑之罰之호되 又當審克之也라 此는 言聽獄者 當盡其心也니 若是면 則獄成於下而民信之하고 獄輸於上而君信之라 其刑上備有幷兩刑者는 言上其斷獄之書에 當備情節이니 一人而犯兩事면 罪雖從重이나 亦幷兩刑而上之也라 此는 言쵌獄者 當備其辭也라』

 

『 벌금으로 과오를 징계함은 비록 사람을 죽임에 이르게 하는 것은 아니나 백성들이 무겁게 속전(贖錢)을 내니, 또한 심히 괴로워한다. 영(쨻)은 말재주이다. 말재주가 변급(辯給)한 사람이 옥사를 결단할 것이 아니요, 오직 온량(溫良)한 장자(長者)로서 백성을 보기를 상할 듯이 여기는 자가 옥사를 결단하여야 중(中)에 있지 않음이 없을 것이니, 이는 옥사를 결단하는 자는 마땅히 훌륭한 사람을 가려야 함을 말한 것이다. 말을 어긋남에 살핀다는 것은 말이 실정이 아니면 끝내는 반드시 어긋남이 있으니, 옥사를 다스리는 요점은 반드시 그 어긋남에서 살펴야 한다. 따르려 하지 않으면서 따른다는 것은 말을 살필 적에 편벽되이 주장해서는 안되니, ‘그렇게 하려고 하지 않았는데 그렇게 되었다’는 말과 같으니, 경중을 살펴 알맞음을 취하는 것이다. 가엾게 여기고 공경하여 옥사를 결단한다는 것은 측달(惻쩊)하고 경외(敬畏)하여 그 실정을 찾는 것이며, 형서(刑書)를 밝게 열어 서로 점친다는 것은 법률을 자세히 밝혀 여러 사람과 함께 점치고 헤아리는 것이며, 모두 거의 중정(中正)하다는 것은 모두 거의 잘못됨이 없는 것이니, 이에 형벌을 하되 또 마땅히 살펴 능하게 하여야 한다. 이는 옥사를 다스리는 자가 마땅히 그 마음을 다해야 함을 말한 것이니, 이와 같으면 옥사가 아래에서 이루어짐에 백성들이 믿고, 옥사를 위로 올림에 군주가 믿는다. 형벌을 결단한 것을 올려 내용을 갖추되 두 형벌을 겸하여 올린다는 것은 옥사를 결단한 글을 올릴 적에 마땅히 정절(情節)『[심정과 행위]』을 구비하여야 하니, 한 사람이 두 가지 일을 범했으면 죄는 비록 무거운 것을 따르나 또한 두 형벌을 겸하여 올리는 것이다. 이는 옥사를 결단하는 자가 마땅히 그 말을 갖춰야 함을 말한 것이다.』

 

*서경 ; 주서 ; 여형 ; 제21장

 

▣ 제21장(第二十一章)

 

『王曰 嗚呼라 敬之哉어다 官伯族姓아 朕言多懼하노라 朕敬于刑하노니 有德이라사 惟刑이니라 今天이 相民이시니 作配在下어다 明淸于單辭하라 民之亂은 罔不中聽獄之兩辭니 無或私家于獄之兩辭하라 獄貨는 非寶라 惟府辜功하여 報以庶尤하나니 永畏는 惟罰이니라 非天이 不中이라 惟人이 在命하니 天罰이 不極이면 庶民이 罔有令政이 在于天下하리라』

 

『 왕(王)이 말씀하였다. “아! 공경할지어다. 옥사를 맡은 관원과 백(伯)『[제후]』과 동족(同族)과 이성(異姓)들아. 짐(朕)은 말하려 함에 많이 두렵노라. 짐은 형벌을 두려워하니, 덕(德)이 있어야 형벌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 하늘이 백성을 도우시니, 짝이 되어 아래에 있을지어다. 단사(單辭)『[한 말]』에 밝고 깨끗이 하라. 백성들의 다스림은 옥사(獄事)의 양사(兩辭)『[두 말]』를 알맞게 듣지 않음이 없으니, 혹시라도 옥사(獄事)의 양사(兩辭)로 사가(私家)에 치부(致富)하지 말라. 옥사를 재물로 여김은 보배가 아니요 고공(辜功)『[죄상]』을 모아서 온갖 허물로 보답하나니, 길이 두려워할 것은 형벌이다. 하늘이 중도(中道)로 대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잘못을 저질러 재앙의 명에 있는 것이니, 천벌이 지극하지 않으면 서민들이 훌륭한 정사가 천하에 있지 못할 것이다.”』

 

『此는 總告之也라 官은 典獄之官也요 伯은 諸侯也요 族은 同族이요 姓은 異姓也라 朕之於刑에 言且多懼하니 況用之乎아 朕敬于刑者는 畏之至也요 有德惟刑은 厚之至也라 今天이 以刑으로 相治斯民하시니 汝實任責하여 作配在下 可也라 明淸以下는 敬刑之事也라 獄辭는 有單有兩하니 單辭者는 無證之辭也니 聽之爲尤難이라 明者는 無一毫之蔽요 淸者는 無一點之汚라 曰明曰淸은 誠敬篤至하고 表裏洞徹하여 無少私曲이니 然後에 能察其情也라 亂은 治也라 獄貨는 ?獄而得貨也라 府는 聚也라 辜功은 猶云罪狀也라 報以庶尤者는 降之百殃也라 非天不中惟人在命者는 非天이 不以中道待人이라 惟人이 自取其殃禍之命爾라 此章은 文有未詳者하니 姑缺之하노라』

 

『 이는 총괄하여 고(告)한 것이다. 관(官)은 옥사를 주관하는 관원이고, 백(伯)은 제후이며, 족(族)은 동족(同族)이고, 성(姓)은 이성(異姓)이다. 짐은 형벌에 대하여 말하는 것도 많이 두려우니, 하물며 형벌을 씀에 있어서라. 짐은 형벌을 공경한다는 것은 두려움이 지극함이요, 덕이 있어야 형벌할 수 있다는 것은 후(厚)함이 지극한 것이다. 지금 하늘이 형벌로써 이 백성들을 도와 다스리시니, 너는 진실로 책임을 맡아 짝이 되어 아래에 있어야 할 것이다. 명청(明淸) 이하는 형벌을 두려워하는 일이다. 옥(獄)에 대한 말은 단(單)『[한 가지]』이 있고 양(兩)『[두 가지]』이 있으니, 단사(單辭)라는 것은 증거가 없는 말이니, 다스리기가 더욱 어렵다. 명(明)은 일호(一毫)의 가리움이 없는 것이요, 청(淸)은 한 점의 더러움이 없는 것이다. 명(明)과 청(淸)은 정성과 공경이 돈독하고 지극하며, 표리(表裏)가 동철(洞徹)해서 조금도 사곡(私曲)이 없는 것이니, 이렇게 한 뒤에야 그 정(情)을 살필 수 있는 것이다. 난(亂)은 다스림이다. 옥화(獄貨)는 옥사(獄事)를 팔아 재물을 얻는 것이다. 부(府)는 모음이다. 고공(辜功)은 죄장(罪狀)이라는 말과 같다. 온갖 허물로 보답한다는 것은 온갖 재앙을 내리는 것이다. 비천부중유인재명(非天不中惟人在命)은 하늘이 중도(中道)로 사람을 대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스스로 앙화(殃禍)의 명(命)을 취하는 것이다. 이 장(章)은 글이 자세하지 않은 것이 많으니, 우선 빼놓는다.』

 

*서경 ; 주서 ; 여형 ; 제22장

 

▣ 제22장(第二十二章)

 

『王曰 嗚呼라 嗣孫아 今往은 何監고 非德于民之中가 尙明聽之哉어다 哲人이 惟刑하여 無疆之辭는 屬于五極하여 咸中이라 有慶이니 受王嘉師는 監于玆祥刑이어다』

 

『 왕(王)이 말씀하였다. “아! 사손(嗣孫)아. 지금으로부터 무엇을 보아야 할 것인가? 덕으로 백성의 중(中)을 온전히 함이 아니겠는가. 부디 분명히 들을지어다. 철인(哲人)이 형벌하여 무궁한 칭찬의 말을 듣는 것은 오극(五極)『[오형]』에 붙여 모두 맞아서 경사가 있는 것이니, 왕의 아름다운 무리를 받은 자들은 이 상서로운 형벌을 거울삼을지어다.”』

 

『此는 詔來世也라 嗣孫은 嗣世子孫也라 言今往은 何所監視오 非用刑成德하여 而能全民所受之中者乎아 下文哲人은 卽所當監者라 五極은 五刑也라 明哲之人이 用刑而有無窮之譽는 蓋由五刑이 咸得其中이니 所以有慶也라 嘉는 善이요 師는 衆也라 諸侯受天子良民善衆이면 當監視于此祥刑이니 申言以結之也라』

 

『 이것은 내세(來世)에 고(告)한 것이다. 사손(嗣孫)은 대를 이은 자손들이다. 지금으로부터는 무엇을 거울로 삼아 살펴보아야 할 것인가? 형벌을 써서 덕을 이루어 백성들이 받은 바의 중(中)『[본성]』을 온전히 함이 아니겠는가. 하문(下文)의 철인(哲人)은 곧 마땅히 거울로 삼아야 할 자이다. 오극(五極)은 오형(五刑)이다. 명철한 사람이 형벌을 씀에 무궁한 명예가 있는 것은 오형(五刑)이 모두 알맞음을 얻어서이니, 이 때문에 경사가 있는 것이다. 가(嘉)는 선(善)함이요, 사(師)는 무리이다. 제후가 천자의 어진 백성과 선(善)한 무리를 받았으면 마땅히 이 상서로운 형벌을 거울로 삼아 보아야 할 것이니, 거듭 말하여 맺은 것이다.』

 

*서경 ; 주서 ; 문후지명(文侯之命)

 

▣ 문후지명(文侯之命)

 

『幽王이 爲犬戎所殺한대 晉文侯與鄭武公으로 迎太子宜臼하여 立之하니 是爲平王이라 遷於東都하다 平王이 以文侯爲方伯하고 賜以秬鬯弓矢할새 作策書하여 命之어늘 史錄爲篇하니 今文古文皆有하니라』

 

『 유왕(幽王)이 견융(犬戎)에게 살해당하자 진(晉)나라 문후(文侯)가 정(鄭)나라 무공(武公)과 함께 태자(太子) 의구(宜臼)를 맞이하여 세우니, 이가 평왕(平王)인데 동도(東都)『[낙양]』로 천도하였다. 평왕(平王)은 문후(文侯)를 방백(方伯)으로 삼고 검은 기장술과 활과 화살을 내려줄 적에 책서(策書)를 만들어 명하였는데, 사관(史官)이 이것을 기록하여 편을 만들었으니, 금문(今文)과 고문(古文)에 모두 있다.』

 

『○ 서경 ; 주서 ; 문후지명 ; 제1장+1』

『○ 서경 ; 주서 ; 문후지명 ; 제2장+2』

『○ 서경 ; 주서 ; 문후지명 ; 제3장+3』

『○ 서경 ; 주서 ; 문후지명 ; 제4장+4』

 

*서경 ; 주서 ; 문후지명 ; 제1장

 

▣ 제1장(第一章)

 

『王若曰 父義和아 丕顯文武 克愼明德하사 昭升于上하며 敷聞在下하신대 惟時上帝 集厥命于文王이어시늘 亦惟先正이 克左右하여 昭事厥µ?하여 越小大謀猷에 罔不率從이라 肆先祖 懷在位하시니라』

 

『 왕(王)이 대략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부(父)인 의화(義和)야! 크게 드러나신 문왕(文王)•무왕(武王)께서 능히 명덕(明德)을 삼가 밝게 위에 오르시며 펴져 아래에 있으면서 알려지시자, 이 상제(上帝)가 그 명을 문왕(文王)에게 모으셨는데 또한 선정(先正)들이 능히 도와서 그 임금을 밝게 섬겨 크고 작은 꾀와 계책에 따르지 않음이 없었다. 그러므로 선조(先祖)께서 지위에 편안히 계셨다.』

 

『同姓故로 稱父라 文侯는 名仇요 義和는 其字니 不名者는 尊之也라 丕顯者는 言其德之所成이요 克謹者는 言其德之所修요 昭升, 敷聞은 言其德之所至也라 文武之德如此라 故上帝集厥命於文王이요 亦惟爾祖父 能左右하여 昭事其君하여 於小大謀猷에 無敢背違라 故先王得安在位라』

 

『 동성(同姓)이므로 부(父)라 칭하였다. 문후(文侯)는 이름이 구(仇)이고 의화(義和)는 그의 자(字)이니, 이름을 부르지 않음은 높인 것이다. 비현(丕顯)은 그 덕(德)의 이룬 바를 말한 것이요, 극근(克謹)은 그 덕의 닦은 바를 말한 것이요, 소승(昭升)과 부문(敷聞)은 그 덕의 이른 바를 말한 것이다. 문왕(文王)•무왕(武王)의 덕이 이와 같았으므로 상제(上帝)가 그 명을 문왕(文王)에게 모았고, 또한 너의 조(祖)•부(父)가 능히 도와서 그 군주를 밝게 섬겨 작고 큰 꾀와 계책에 감히 위배함이 없었다. 그러므로 선왕(先王)이 지위에 편안히 계셨던 것이다.』

 

*서경 ; 주서 ; 문후지명 ; 제2장

 

▣ 제2장(第二章)

 

『嗚呼라 閔予小子는 嗣造天丕愆하여 殄資澤于下民이라 侵戎我國家純커늘 卽我御事 罔或耆壽俊이 在厥服하며 予則罔克호라 曰 惟祖惟父 其伊恤朕躬고 嗚呼라 有績予一人이면 永綏在位하리라』

 

『 아! 불쌍한 나 소자(小子)는 지위를 계승한 초기에 하늘의 큰 허물『[재앙]』을 만나 자택(資澤)이 하민(下民)들에게 끊겼다. 오랑캐가 우리 국가를 침해함이 컸는데 나의 어사(御事)들은 혹시라도 기수(耆壽)『[노성(老成)]』한 자와 준걸스러운 자가 신하의 자리에 있는 이가 없었으며, 나도 능하지 못하노라. 조(祖)•부(父)의 항렬에 있는 자들은 그 누가 짐(朕)의 몸을 구휼할 것인가? 아! 나 한 사람에게 공(功)이 있으면 길이 편안히 지위에 있을 것이다.』

 

『歎而自痛傷也라 閔은 憐也라 嗣造天丕愆者는 嗣位之初에 爲天所大譴하여 父死國敗也라 殄은 絶이요 純은 大也라 絶其資用惠澤於下民하여 本旣先撥이라 故로 戎狄이 侵陵하여 爲我國家之害甚大어늘 今我御事之臣이 無有老成俊傑在厥官者하며 而我小子도 又才劣無能하니 其何以濟難고 又言 諸侯在我祖父之列者 其誰能恤我乎아 又歎息言호되 有能致功予一人하면 則可永安厥位矣라 蓋悲國之無人하여 無有如上文先正之昭事而先王得安在位也라』

 

『 탄식하고 스스로 통상(痛傷)『[애통하고 서글퍼 함]』한 것이다. 민(閔)은 불쌍함이다. 사조천비건(嗣造天丕愆)은 사위(嗣位)하던 초기에 하늘에게 큰 견책을 당하여 아버지가 죽고 나라가 패망한 것이다. 진(殄)은 끊어짐이요, 순(純)은 큼이다. 자용(資用)과 혜택이 하민에게 끊겨 이미 근본이 먼저 뽑혔기 때문에 융적(戎狄)이 침릉(侵陵)하여 우리 국가의 폐해가 됨이 심히 컸는데, 지금 나의 일을 다스리는 신하들은 노성(老成)한 자와 준걸스러운 자가 그 관직에 있는 자가 없었으며, 나 소자(小子)도 재주가 용렬하여 능하지 못하니, 어떻게 어려움을 구제하겠는가. 또 말하기를 “제후로서 나의 조(祖)•부(父)의 항렬에 있는 자들은 그 누가 나를 구휼하겠는가?” 하고, 또 탄식하여 말하기를 “능히 나 한 사람에게 공을 이루는 자가 있으면 길이 그 지위를 편안하게 할 것이다.” 하였다. 이는 나라에 사람이 없어서 상문(上文)에 선정(先正)들이 밝게 섬겨 선왕(先王)이 편안히 지위에 계셨던 것처럼 하는 이가 없음을 슬퍼한 것이다.』

 

*서경 ; 주서 ; 문후지명 ; 제3장

 

▣ 제3장(第三章)

 

『父義和아 汝克昭乃顯祖하여 汝肇刑文武하여 用會紹乃µ?하여 追孝于前文人하라 汝多修Ì]我于艱하니 若汝는 予嘉니라』

 

『 부(父)인 의화(義和)야! 너는 능히 너의 훌륭하신 선조를 밝혀, 네가 비로소 문왕(文王)•무왕(武王)을 본받아 네 임금을 모으고 이어서 전문인(前文人)을 따라 효도하라. 네가 닦아서 나를 어려움에 호위함이 많으니, 너와 같은 이는 내 아름답게 여기노라.”』

 

『顯祖, 文人은 皆謂唐叔이니 卽上文先正昭事厥µ?者也라 後罔或耆壽俊在厥服이면 則刑文武之道 絶矣니 今刑文武 自文侯始라 故曰肇刑文武라 會者는 合之而使不離요 紹者는 繼之而使不絶이라 前文人은 猶云前寧人이라 汝多所修完Ì]衛我于艱難하니 若汝之功은 我所嘉美也라』

 

『 현조(顯祖)와 문인(文人)은 모두 당숙(唐叔)을 이르니, 곧 상문(上文)에 선정(先正)이 그 임금을 밝게 섬겼다는 것이다. 뒤에 혹시라도 노성(老成)한 자와 준걸스러운 자가 신하의 자리에 있는 이가 없다면 문왕(文王)•무왕(武王)의 도(道)를 본받음이 끊긴 것이니, 이제 문왕(文王)•무왕(武王)을 본받음이 문후(文侯)로부터 비롯되었다. 이 때문에 ‘비로소 문왕(文王)•무왕(武王)을 본받으라’고 한 것이다. 회(會)는 합하여 떠나지 않게 하는 것이요, 소(紹)는 이어서 끊기지 않게 하는 것이다. 전문인(前文人)은 전녕인(前寧人)이란 말과 같다. 네가 닦고 완전히 해서 나를 어려움에 한위(Ì]衛)『[호위]』함이 많으니, 너의 공(功)과 같은 것을 내 아름답게 여기는 바이다.』

 

*서경 ; 주서 ; 문후지명 ; 제4장

 

▣ 제4장(第四章)

 

『王曰 父義和아 其歸視爾師하여 寧爾邦하라 用賚爾秬鬯一卣와 쪐弓一과 쪐矢百과 盧弓一과 盧矢百과 馬四匹하노니 父往哉하여 柔遠能邇하며 惠康小民하여 無荒寧하여 簡恤爾都하여 用成爾顯德하라』

 

『 왕(王)이 말씀하였다. “부(父)인 의화(義和)야. 돌아가 네 무리를 돌아보아 네 나라를 편안히 하라. 써 너에게 검은 울창주(鬱鬯酒) 한 동이와 붉은 활 하나와 붉은 화살 백 개와 검은 활 하나와 검은 화살 백 개와 말 네 필을 하사하노니, 부(父)는 가서 멀리 있는 자를 회유하고 가까이 있는 자를 길들이며, 소민(小民)들을 은혜롭고 편안히 하여 황녕(荒寧)하지 말아서 네 도비(都鄙)를 간열하고 구휼하여 너의 드러난 덕(德)을 이루도록 하라.”』

 

『師는 衆也라 黑黍曰秬니 釀以鬯草라 卣는 中尊『(樽)』也라 諸侯受錫命이면 當告其始祖라 故賜鬯也라 쪐은 赤이요 盧는 黑也라 諸侯有大功이면 賜弓矢하나니 然後에 得專征伐이라 馬는 供武用이라 四匹曰乘이라 侯伯之賜는 無常하여 以功大小爲度也라 簡者는 簡閱其士요 恤者는 惠恤其民이라 都者는 國之都鄙也라』

『○ 蘇氏曰 予讀文侯篇하고 知東周之不復興也로라 宗周傾覆에 禍敗極矣니 平王이 宜若『衛文公, 越句踐주:위문공월구천』然이어늘 今其書乃旋旋焉하여 與平康之世로 無異라 春秋傳曰 쪵王之禍에 諸侯釋位하여 以間王政이러니 宣王이 有志而後에 效官이라하니 讀文侯之命하고 知平王之無志也로라 愚按 史記에 幽王이 娶於申하여 而生太子宜臼러니 後에 幽王이 嬖褒ª5하여 廢申后, 去太子한대 申侯怒하여 與繒西夷犬戎으로 攻王而殺之어늘 諸侯卽申侯而立故太子宜臼하니 是爲平王이라 平王은 以申侯立己爲有德하여 而忘其弑父爲當誅하고 方將以復讐討賊之衆으로 而爲『戍申戍許之擧주:수신수허지거』하니 其忘親背義하여 得罪於天이 已甚矣니 何怪其委靡頹墮而不自振也哉아 然則是命也는 孔子以其猶能言文武之舊而存之歟아 抑亦以示戒於天下後世而存之歟아』

 

『 사(師)는 무리이다. 검은 기장을 거(秬)라 하니, 울창초(鬱鬯草)『[울금초(鬱金草)]』로 빚는다. 유(卣)는 중준(中樽)『[중간 크기의 술동이]』이다. 제후가 석명(錫命)『[명을 내려줌]』을 받으면 마땅히 시조(始祖)에게 고유하여야 하므로 울창주(鬱鬯酒)를 하사한 것이다. 동(쪐)은 붉음이요, 노(盧)는 검음이다. 제후가 큰 공이 있으면 궁시(弓矢)를 하사하니, 그런 뒤에야 정벌을 자유로이 할 수 있는 것이다. 마(馬)는 군용(軍用)에 이바지한다. 네 필을 승(乘)이라 한다. 후백(侯伯)의 하사는 일정함이 없어서 공의 크고 작음으로 한도를 삼는다. 간(簡)은 군사들을 간열(簡閱)함이요, 휼(恤)은 백성들을 은혜롭게 구휼하는 것이다. 도(都)는 나라의 도(都)와 비(鄙)『[촌]』이다.』

『 ○ 소씨(蘇氏)가 말하였다. “나는 〈문후편(文侯篇)〉을 읽고 동주(東周)가 다시 흥하지 못할 줄을 알았노라. 종주(宗周)가 경복(傾覆)함에 화패(禍敗)가 지극하니, 평왕(平王)은 마땅히 위(衛)나라 문공(文公)과 월왕(越王) 구천(句踐)과 같이 하여야 할 터인데, 이제 그 글이 마침내 선선(旋旋)『[편안]』하여 평강(平康)한 세상과 다름이 없다. 《춘추전(春秋傳)》에 이르기를 ‘여왕(쪵王)의 화(禍)에 제후들이 자신의 지위를 버리고 왕정(王政)을 간섭하였는데, 선왕(宣王)이 의지(意志)가 있은 뒤에 제후들이 관직『[직책]』을 바쳤다.’ 하였으니, 〈문후지명(文侯之命)〉을 읽고서 평왕(平王)이 의지(意志)가 없었음을 알았노라.”』

『 내가 살펴보건대, 《사기(史記)》에 유왕(幽王)이 신(申)나라에서 장가들어 태자(太子) 의구(宜臼)를 낳았는데, 뒤에 유왕(幽王)이 포사(褒ª5)를 총애하여 신후(申后)를 폐하고 태자(太子)를 버리자, 신후(申侯)가 노하여 증(繒)나라와 서이(西夷)인 견융(犬戎)과 함께 왕(王)을 공격하여 살해하였다. 제후들이 신후(申侯)에게 나아가 옛 태자(太子)인 의구(宜臼)를 세우니, 이가 평왕(平王)이었다. 평왕(平王)은 신후(申侯)가 자기를 세워준 것을 은덕이 있다고 여겨, 아버지를 시해한 자는 마땅히 주벌해야 함을 잊고, 장차 복수하여 역적을 토벌해야 할 군대로써 신(申)나라를 지키고 허(許)나라를 지키는 조처를 하였으니, 어버이를 잊고 의(義)를 저버려 하늘에 죄를 얻음이 너무 심하다. 어찌 위미(委靡)하고 퇴타(頹墮)하여 스스로 떨치지 못함이 어찌 괴이하겠는가. 그렇다면 이 명(命)은 공자(孔子)가 오히려 문왕(文王)•무왕(武王)의 옛것을 말하였다 하여 둔 것인가? 아니면 또한 천하(天下) 후세(後世)에 경계를 보이기 위하여 둔 것인가?』

 

*서경 ; 주서 ; 비서(費誓)

 

▣ 비서(費誓)

 

『費는 地名이라 淮夷徐戎이 쯂起爲寇어늘 魯侯征之할새 於費誓衆이라 故로 以費誓名篇하니 今文古文皆有하니라』

『○ 呂氏曰 伯禽이 撫封於魯하니 夷戎이 妄意其未更『(경)』事하고 且乘其新造之隙이어늘 而伯禽應之者 甚整暇有序하여 先治戎備하고 次之以除道路하고 又次之以嚴部伍하고 又次之以立期會하여 先後之序 皆不可紊이라 又按 費誓, 秦誓는 皆侯國之事로되 而繫於帝王書末者는 猶詩之錄商頌魯頌也라』

 

『 비(費)는 지명이다. 회이(淮夷)와 서융(徐戎)이 함께 일어나 침략하자, 노후(魯侯)가 정벌할 적에 비(費)땅에서 군사들에게 맹세하였다. 그러므로 ‘비서(費誓)’라고 편명하였으니, 금문(今文)과 고문(古文)에 모두 있다.』

『 ○ 여씨(呂氏)가 말하였다. “백금(伯禽)이 노(魯)나라에서 무봉(撫封)『[봉내(封內)의 인민을 안무(安撫)함]』하니, 회이(淮夷)와 서융(徐戎)은 그가 일을 경험하지 못하였다고 망령되이 생각하였고 또 새로 나라를 만든 틈을 타려 하였는데, 백금(伯禽)이 이에 대응함이 심히 정돈되고 한가로와 차례가 있었다. 그리하여 먼저 융비(戎備)『[군비]』를 다스리고 다음에는 도로(道路)를 소제하고, 또 다음에는 부오(部伍)를 엄격히 하고, 또 다음에는 기회(期會)『[날짜를 약속하여 모임]』를 세워서 선후(先後)의 순서가 모두 문란할 수 없었다. 또 살펴보건대 〈비서(費誓)〉와 〈진서(秦誓)〉는 모두 제후국의 일인데 제왕의 글 끝에 단 것은 《시경(詩經)》에 〈상송(商頌)〉과 〈노송(魯頌)〉을 기록한 것과 같다.』

 

『○ 서경 ; 주서 ; 비서 ; 제1장+1』

『○ 서경 ; 주서 ; 비서 ; 제2장+2』

『○ 서경 ; 주서 ; 비서 ; 제3장+3』

『○ 서경 ; 주서 ; 비서 ; 제4장+4』

『○ 서경 ; 주서 ; 비서 ; 제5장+5』

 

*서경 ; 주서 ; 비서 ; 제1장

 

▣ 제1장(第一章)

 

『公曰 嗟人아 無譁하여 聽命하라 ±3玆淮夷徐戎이 竝興이로다』

 

『 공(公)이 말씀하였다. “아! 사람들아. 떠들지 말고서 나의 명령을 들으라. 지난번에 회이(淮夷)와 서융(徐戎)들이 함께 일어났었다.』

 

『漢孔氏曰 徐戎淮夷 竝起寇魯어늘 伯禽이 爲方伯하여 帥諸侯之師以征할새 歎而勅之하여 使無텤譁하여 欲其靜聽誓命이라 蘇氏曰 淮夷叛已久矣러니 及伯禽就國에 又脅徐戎竝起라 故로 曰±3玆淮夷徐戎竝興이라하니 ±3玆者는 猶曰往者云이라』

 

『 한(漢)나라 공씨(孔氏)가 말하였다. “회이(淮夷)와 서융(徐戎)이 함께 일어나 노(魯)나라를 침략하자, 백금(伯禽)이 방백(方伯)이 되어 제후의 군사들을 거느리고 정벌할 적에 탄식하고 신칙하여 떠들지 말고서 그의 맹세하는 명령을 고요히 듣게 하고자 한 것이다.”』

『 소씨(蘇氏)가 말하였다. “회이(淮夷)는 배반한 지가 이미 오래였는데, 백금(伯禽)이 나라에 나아가자 또 서융(徐戎)을 위협하여 함께 일어났다. 그러므로 ‘지난번에 회이(淮夷)와 서융(徐戎)이 함께 일어났었다.’고 말한 것이니, 조자(±3玆)는 왕자(往者)라는 말과 같다.”』

 

*서경 ; 주서 ; 비서 ; 제2장

 

▣ 제2장(第二章)

 

『善Ø6乃甲胄하며 퉮乃干호되 無敢不弔『(적)』하며 備乃弓矢하며 鍛乃戈矛하며 礪乃鋒刃호되 無敢不善하라』

 

『 네 갑주(甲胄)를 잘 수선하고 네 방패를 동여매되 감히 정밀하지 않음이 없으며, 네 궁시(弓矢)를 갖추고 네 과모(戈

矛)를 단련하고 네 칼날을 갈되 감히 좋지 않음이 없도록 하라.』

 

『Ø6는 縫完也니 縫完其甲胄하여 勿使斷毁라 퉮는 鄭氏云 猶繫也라하고 王肅云 퉮楯은 當有紛繫持之라하니라 弔은 精至也라 鍛은 쳕요 礪는 磨也라 甲胄는 所以衛身이요 弓矢戈矛는 所以克敵이니 先自衛而後攻人은 亦其序也라』

 

『 요(Ø6)는 꿰매어 완전히 함이니, 갑주(甲胄)를 꿰매어 완전하게 해서 끊어지거나 훼손되지 않게 한 것이다. 교(퉮)는 정씨(鄭氏)는 “계(繫)와 같다.” 하였고, 왕숙(王肅)은 “방패를 매닮은 마땅히 끈이 있어 동여매어 잡았을 것이다.” 하였다. 조(弔)은 정함이 지극한 것이다. 단(鍛)은 담금질이요, 여(礪)는 가는 것이다. 갑주(甲胄)는 몸을 호위하는 것이고 궁시(弓矢)와 과모(戈矛)는 적을 이기는 것이니, 자기를 호위함을 먼저하고 남을 공격함을 뒤에 함은 또한 그 순서이다.』

 

*서경 ; 주서 ; 비서 ; 제3장

 

▣ 제3장(第三章)

 

『今惟淫舍Ñ1牛馬호리니 杜乃턚하며 »%乃穽하여 無敢傷Ñ1하라 Ñ1之傷하면 汝則有常刑하리라』

 

『 이제 우마(牛馬)가 머물 곡(Ñ1)『[우리]』을 크게 만들 것이니, 네 덫을 막고『[거둠]』 네 함정을 막아서 감히 마소를 상하지 말라. 마소를 상하면 너는 떳떳한 형벌이 있을 것이다.』

 

『淫은 大也요 Ñ1은 閑牧也라 『턚은 機檻也주:확기함야』요 »%은 塞也라 師旣出이면 牛馬所舍之閑牧이 大布於野하니 當窒塞其턚穽이라 一或不謹하여 而傷閑牧之牛馬하면 則有常刑하니 此令軍在所之居民也라 擧此例之컨대 凡川梁藪澤險阻屛쵽에 有害於師屯者 皆在矣니 此는 除道路之事라』

 

『 음(淫)은 큼이요 곡(Ñ1)은 한목(閑牧)『[막아서 기름]』이다. 확(턚)은 기함(機檻)이요, 엽(»%)은 막음이다. 군대가 이미 출동하면 우마(牛馬)가 머무는 한목(閑牧)이 들판에 크게 펼쳐질 것이니, 마땅히 덫과 함정을 막아야 할 것이다. 한 가지라도 혹시 삼가지 아니해서 한목(閑牧)의 소와 말을 상하면 떳떳한 형벌이 있을 것이니, 이는 군(軍)이 머물고 있는 곳의 거주민에게 명령한 것이다. 이 예(例)를 들어보면 무릇 천량(川梁)과 수택(藪澤)의 험하고 막혀 가려진 곳으로 군대의 주둔에 장해가 되는 것은 모두 이 안에 들어 있으니, 이는 도로를 소제하는 일이다.』

 

*서경 ; 주서 ; 비서 ; 제4장

 

▣ 제4장(第四章)

 

『『馬牛其風주:마우기풍』하며 臣妾逋逃어든 勿敢越逐하며 祗復『(복)』之하라 我商賚汝호리라 乃越逐하며 不復하면 汝則有常刑하리라 無敢寇攘하며 踰垣墻하여 竊馬牛하며 誘臣妾하라 汝則有常刑하리라』

 

『 마소가 바람나 도망하고 신첩(臣妾)이 도망하거든 감히 군루(軍壘)를 넘어 쫓아가지 말며, 이것을 얻거든 공경히 반환하라. 내가 헤아려 너에게 상을 줄 것이다. 마침내 군루(軍壘)를 넘어 쫓아가며 주인에게 반환하지 않으면 너는 떳떳한 형벌이 있을 것이다. 감히 구양(寇攘)하며 담을 넘어 마소를 훔치고 신첩(臣妾)을 유인하지 말라. 너는 떳떳한 형벌이 있을 것이다.』

 

『役人賤者를 男曰臣이요 女曰妾이라 馬牛風逸하고 臣妾逋亡이어든 不得越軍壘而逐之라 失主雖不得逐이나 而人得風馬牛逃臣妾者는 又當敬還之니 我商度多寡하여 以賞汝하리라 如或越逐而失伍하고 不復而攘取면 皆有常刑이요 有故竊奪하며 踰垣墻하여 竊人牛馬하고 誘人臣妾者도 亦有常刑이니 此는 嚴部伍之事라』

 

『 사역하는 자 중에 천한 자를 남자(男子)는 신(臣)이라 하고, 여자(女子)는 첩(妾)이라 한다. 마소가 바람나 도망하고 신첩(臣妾)이 도망하거든 군루(軍壘)를 넘어 쫓아가지 말라. 이것을 잃은 주인은 비록 쫓아가지 못하나 사람 중에 바람난 마소와 도망한 신첩(臣妾)을 얻은 자는 또 마땅히 공경히 반환해야 하니, 내가 많고 적음을 헤아려 너에게 상을 줄 것이다. 만일 혹 군루(軍壘)를 넘어 쫓아가다가 대오를 잃거나 반환하지 않고 탈취하면 모두 떳떳한 형벌이 있을 것이요, 고의로 훔치고 빼앗으며 담을 넘어가 남의 마소를 훔치고 남의 신첩(臣妾)을 유인하는 자가 있으면 또한 떳떳한 형벌이 있을 것이니, 이는 부오(部伍)를 엄격히 하는 일이다.』

 

*서경 ; 주서 ; 비서 ; 제5장

 

▣ 제5장(第五章)

 

『甲戌에 我惟征徐戎호리니 峙乃£』糧호되 無敢不逮하라 汝則有大刑하리라 魯人三郊三遂아 峙乃楨¡9하라 甲戌에 我惟築하리니 無敢不供하라 汝則有無餘刑이나 非殺이니라 魯人三郊三遂아 峙乃芻Ò'호되 無敢不多하라 汝則有大刑하리라』

 

『 갑술일(甲戌日)에 나는 서융(徐戎)을 정벌할 것이니, 네 구량(£』糧)을 준비하되 감히 미치지 못함이 없도록 하라. 너는 큰 형벌이 있을 것이다. 노(魯)나라 백성들의 3교(郊)와 3수(遂)야! 네 정간(楨¡9)을 준비하라. 갑술일(甲戌日)에 내가 성을 쌓을 것이니, 감히 공급하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 너는 남은 형벌이 없을 것이나 죽이지는 않을 것이다. 노(魯)나라 백성들의 3교(郊)와 3수(遂)야! 네 추교(芻Ò')『[꼴과 마초]』를 준비하되 감히 많지 않게 하지 말라. 너는 큰 형벌이 있을 것이다.』

 

『甲戌은 用兵之期也라 峙는 儲備也라 £』糧은 食也라 不逮는 若今之乏軍興이라 淮夷徐戎이 竝起어늘 今所攻이 獨徐戎者는 蓋量敵之堅瑕緩急而攻之也라 國外曰郊요 郊外曰遂라 天子는 六軍이니 則六鄕六遂요 大國은 三軍이라 故로 魯三郊三遂也라 楨¡9은 板築之木이라 題曰楨이니 牆端之木也요 旁曰¡9이니 牆兩邊障土木也라 以是日征하고 是日築者는 彼方禦我之攻하여 勢不得擾我之築也일새라 無餘刑非殺者는 刑之非一이로되 但不至于殺爾라 芻Ò'는 供軍牛馬之用이라 軍은 以期會芻糧으로 爲急이라 故로 皆服大刑이라 楨¡9芻Ò'에 獨言魯人者는 地近而致便也일새라』

 

『 갑술(甲戌)은 용병하는 기일이다. 치(峙)는 저축하여 대비하는 것이다. 구량(£』糧)은 밥이다. 불체(不逮)는 지금에 군흥(軍興)『[군수품]』을 결핍함과 같은 것이다. 회이(淮夷)와 서융(徐戎)이 함께 일어났는데, 이제 유독 서융(徐戎)을 정벌한 것은 적(敵)의 견하(堅瑕)『[견고함과 하자]』와 완급(緩急)을 헤아려 공격한 것이다. 국(國)『[서울]』의 밖을 교(郊)라 하고, 교(郊)의 밖을 수(遂)라 한다. 천자(天子)는 6군(軍)이니, 6향(鄕)•6수(遂)이고, 대국(大國)은 3군(軍)이므로 노(魯)나라는 3교(郊)•3수(遂)인 것이다. 정간(楨¡9)은 판축(板築)하는 나무이다. 머리에 있는 것을 정(楨)이라 하니 담장 끝에 있는 나무이며, 곁에 있는 것을 간(¡9)이라 하니 담장의 양쪽 가에 있는 흙을 막는 나무이다. 이 날로 정벌하고 이 날로 축성하는 것은 저들이 우리의 공격을 방어하느라 형편상 우리의 축성을 소요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남은 형벌이 있으나 죽이지는 않는다는 것은 형벌하기를 한 가지로 하지 않으나 다만 죽임에는 이르지 않는 것이다. 추교(芻Ò')는 군중(軍中)의 마소의 씀에 공급하는 것이다. 군대는 기회(期會)와 마초와 군량을 시급한 것으로 삼기 때문에 모두 큰 형을 받는 것이다. 정간(楨¡9)과 추교(芻Ò')에 유독 노(魯)나라 사람을 말한 것은 땅이 가까워 가져오기가 편리하기 때문이다.』

 

*서경 ; 주서 ; 진서(秦誓)

 

▣ 진서(秦誓)

 

『左傳에 杞子自鄭으로 使告于秦曰 鄭人이 使我掌其北門之管하니 若潛師以來면 國可得也라하여늘 穆公이 訪諸蹇叔한대 蹇叔曰 不可라 公辭焉하고 使孟明, 西乞, 白乙로 伐鄭이러니 晉襄公이 帥師하여 敗秦師于턿하고 囚其三帥하니라 穆公이 悔過하여 誓告群臣이어늘 史錄爲篇하니 今文古文皆有하니라』

 

『 《좌전(左傳)》에 기자(杞子)가 정(鄭)나라에서 사람을 시켜 진(秦)나라에 알리기를 “정(鄭)나라 사람이 나로 하여금 북문(北門)의 열쇠를 관장하게 하니, 만약 군대를 은밀히 출동하여 오면 정(鄭)나라를 얻을 수 있다.” 하였다. 목공(穆公)이 이것을 건숙(蹇叔)에게 물으니, 건숙(蹇叔)은 “불가하다.” 하였으나, 목공(穆公)은 사절하고 맹명(孟明)•서걸(西乞)•백을(白乙)로 하여금 정(鄭)나라를 치게 하였는데, 진(晉)나라 양공(襄公)이 군대를 거느려 진군(秦軍)을 효(턿)땅에서 패퇴시키고 세 장수를 가두었다. 이에 목공(穆公)은 자신의 과오를 뉘우쳐 여러 신하들에게 맹세하여 고하였는데, 사관(史官)이 이것을 기록하여 편을 만들었으니, 금문(今文)과 고문(古文)에 모두 있다.』

 

『○ 서경 ; 주서 ; 진서 ; 제1장+1』

『○ 서경 ; 주서 ; 진서 ; 제2장+2』

『○ 서경 ; 주서 ; 진서 ; 제3장+3』

『○ 서경 ; 주서 ; 진서 ; 제4장+4』

『○ 서경 ; 주서 ; 진서 ; 제5장+5』

『○ 서경 ; 주서 ; 진서 ; 제6장+6』

『○ 서경 ; 주서 ; 진서 ; 제7장+7』

『○ 서경 ; 주서 ; 진서 ; 제8장+8』

 

*서경 ; 주서 ; 진서 ; 제1장

 

▣ 제1장(第一章)

 

『公曰 嗟我士아 聽無譁하라 予誓告汝群言之首하노라』

 

『 공(公)이 말씀하였다. “아! 나의 선비들아. 나의 말을 듣고 떠들지 말라. 내 맹세하여 너희에게 여러 말의 첫번째를 고하노라.』

 

『首之爲言은 第一義也라 將擧古人之言이라 故로 先發此라』

 

『 수(首)란 말은 제일이라는 뜻이다. 장차 고인(古人)의 말을 꺼내려 하므로 먼저 이것을 말한 것이다.』

 

*서경 ; 주서 ; 진서 ; 제2장

 

▣ 제2장(第二章)

 

『古人有言曰 民訖自若是多盤하나니 責人이 斯無難이라 惟受責쯸如流 是惟艱哉인저』

 

『 고인(古人)이 말하기를 ‘백성들은 모두 스스로 이와 같이 많이 편안하니, 사람을 책함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오직 책함을 받아들이기를 흐르는 물처럼 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訖은 盡이요 盤은 安也라 凡人은 盡自若是多安於徇己하니 其責人이 無難이라 惟受責於人을 쯸如流水하여 略無Ì]格이 是惟難哉인저 穆公이 悔前日安於自徇하여 而不聽蹇叔之言하고 深有味乎古人之語라 故로 擧爲誓言之首也라』

 

『 흘(訖)은 모두이고 반(盤)은 편안함이다. 범인(凡人)은 모두 스스로 이와 같이 자기를 따름에 편안하니, 사람을 책함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오직 사람에게 책함을 받아들이기를 흐르는 물처럼 하여 조금도 한격(Ì]格)『[막힘]』이 없는 것이 어려운 것이다. 목공(穆公)이 전일(前日)에 자신의 말을 따름에 편안하여 건숙(蹇叔)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을 후회하고, 깊이 고인(古人)의 말에 음미함이 있었으므로 이것을 들어 맹세하는 말의 첫번째로 삼은 것이다.』

 

*서경 ; 주서 ; 진서 ; 제3장

 

▣ 제3장(第三章)

 

『我心之憂는 日月이 逾邁라 若弗云來니라』

 

『 내 마음의 근심은 세월이 흘러가 다시는 오지 않을 듯함이다.』

 

『已然之過는 不可追어니와 未遷之善은 猶可及이나 憂歲月之逝하여 若無復有來日也라』

 

『 이미 지나간 잘못은 쫓을 수 없거니와 옮기지 않은 선(善)은 오히려 미칠 수 있으나 세월이 흘러가서 다시는 내일이 없을 듯함을 근심한 것이다.』

 

*서경 ; 주서 ; 진서 ; 제4장

 

▣ 제4장(第四章)

 

『惟古之謀人은『(으란)』 則曰未就予라하여 忌하고 惟今之謀人은 姑將以爲親하니 雖則云然이나 尙猷詢玆黃髮하면 則罔所愆하리라』

 

『 옛날의 모인(謀人)『[도모하는 사람]』은 자신을 따르지 않는다 하여 싫어하고, 지금의 모인(謀人)은 우선 순종한다 하여 친하였다. 비록 그러하나 오히려 거의 황발(黃髮)『[백발의 노인]』에게 물을 것을 도모하면 잘못되는 바가 없을 것이다.』

 

『忌는 疾이요 姑는 且也라 古之謀人은 老成之士也요 今之謀人은 新進之士也라 非不知其爲老成이나 以其不就己而忌疾之하고 非不知其新進이나 姑樂其順便而親信之라 前日之過 雖已云然이나 然尙謀詢玆黃髮之人이면 則庶罔有所愆이니 蓋悔其旣往之失하고 而冀其將來之善也라』

 

『 기(忌)는 미워함이요, 고(姑)는 우선이다. 옛날의 모인(謀人)은 노성(老成)한 선비이고, 지금의 모인(謀人)은 신진(新進)의 선비이다. 노성(老成)함을 모른 것은 아니나 자신을 따르지 않는다 하여 싫어하고 미워하였으며, 신진(新進)임을 모른 것은 아니나 우선 순종하고 익힘을 즐거워하여 친신(親信)하였다. 전일(前日)의 잘못은 비록 이미 그러하나 오히려 이 황발(黃髮)의 노인에게 물을 것을 도모하면 거의 잘못되는 바가 없을 것이니, 기왕의 잘못을 뉘우치고 장래의 선(善)을 바란 것이다.』

 

*서경 ; 주서 ; 진서 ; 제5장

 

▣ 제5장(第五章)

 

『番番『(큯큯)』良士 『旅力주:여력』旣愆은 我尙有之하고 •/•/勇夫 射御不違는 我尙不欲하니 惟截截善킉言하여 쯸君子로 易辭를 我皇『(遑)』多有之아』

 

『 파파(큯큯)한 어진 선비로 여력(旅力)이 이미 쇠한 자는 내 부디 소유하고, 흘흘(•/•/)한 용부(勇夫)로 활쏘기와 말타기를 어기지 않는 자는 내 부디 등용하고자 하지 않으니, 절절(截截)하게 말을 공교롭게 잘하여 군자(君子)로 하여금 말을 바꾸게 하는 자를 내 어느 겨를에 많이 소유하겠는가.』

 

『番番는 老貌요 •/•/은 勇貌요 截截은 辯給貌라 킉은 巧也라 皇은 遑通이라 旅力旣愆之良士는 前日所캛『墓木旣拱주:묘목기공』者니 我猶庶幾得而有之요 射御不違之勇夫는 前日所誇『過門超乘주:과문초승』者니 我庶幾不欲用之라 勇夫도 我尙不欲이어든 則辯給善巧言하여 能使君子로 變易其辭說者를 我遑暇多有之哉아 良士는 謂蹇叔이요 勇夫는 謂三帥요 킉言은 謂杞子라 先儒皆謂穆公悔用孟明이라하나 詳其誓意컨대 蓋深悔用杞子之言也라』

 

『 파파(番番)는 늙은 모양이요, 흘흘(•/•/)은 용맹한 모양이요, 절절(截截)은 말을 잘하는 모양이다. 편(킉)은 공교로움이다. 황(皇)은 황(遑)과 통한다. 여력(旅力)이 이미 쇠한 어진 선비는 전일(前日)에 묘(墓)의 나무가 이미 공(拱)이 되었을 것이라고 꾸짖은 자이니, 내 오히려 부디 얻어 소유할 것이요, 활쏘기와 말타기를 어기지 않는 용부(勇夫)는 전일에 문을 지나며 수레에 뛰어오름을 과시한 자이니, 내 부디 등용하려 하지 않는다. 용부(勇夫)도 내 오히려 등용하고자 하지 않는데 구변(口辯)으로 말을 공교롭게 잘하여 군자(君子)로 하여금 그 사설(辭說)을 변역하게 하는 자를 내 어느 겨를에 많이 소유하겠는가. 양사(良士)는 건숙(蹇叔)을 이르고 용부(勇夫)는 세 장수를 이르고, 편언(킉言)은 기자(杞子)를 이른다. 선유(先儒)는 모두 “목공(穆公)이 맹명(孟明)을 등용한 것을 뉘우쳤다.”고 말하였으나 맹세한 말을 자세히 살펴보면 기자(杞子)의 말을 따른 것을 깊이 뉘우친 것이다.』

 

*서경 ; 주서 ; 진서 ; 제6장

 

▣ 제6장(第六章)

『昧昧我思之호니 如有一介臣이 斷斷츯無他技나 其心이 休休焉한지 其如有容이라 人之有技를 若己有之하며 人之彦聖을 其心好之호되 不«?如自其口出하면 是能容之라 以保我子孫黎民이니『(이며)』 亦職有利哉인저』

 

『 매매(昧昧)히『[곰곰이]』 내 생각해보니, 만일 한 신하가 단단(斷斷)하고 딴 기예(技藝)가 없으나 그 마음이 곱고 고와 용납함이 있는 듯하여, 남이 가지고 있는 기예를 자신이 소유한 것처럼 여기며, 남의 훌륭하고 성(聖)스러움을 마음속에 좋아하되 입에서 나오는 것보다도 더 좋아한다면 이는 남을 포용하는 것이다. 나의 자손(子孫)과 여민(黎民)을 보호할 것이니, 또한 이로움이 있음을 주장할 것이다.』

 

『昧昧而思者는 深潛而靜思也라 介는 獨也니 大學에 作箇하니라 斷斷은 誠一之貌라 츯는 語辭니 大學에 作兮하니라 休休는 易直好善之意라 容은 有所受也라 彦은 美士也요 聖은 通明也라 技는 才요 聖은 德也라 心之所好가 甚於口之所言也라 職은 主也라』

 

『 매매(昧昧)히 생각한다는 것은 깊이 잠겨서 고요히 생각하는 것이다. 개(介)는 홀로이니, 《대학(大學)》에는 개(箇)로 되어 있다. 단단(斷斷)은 정성스럽고 한결같은 모양이다. 의(츯)는 어조사이니, 《대학(大學)》에는 혜(兮)로 되어 있다. 휴휴(休休)는 평이하고 정직하여 선을 좋아하는 뜻이다. 용(容)은 받아들이는 바가 있는 것이다. 언(彦)은 아름다운 선비이며, 성(聖)은 통명함이다. 기(技)는 재주요, 성(聖)은 덕이다. 마음에 좋아하는 바가 입으로 말하는 것보다 심한 것이다. 직(職)은 주장함이다.』

 

*서경 ; 주서 ; 진서 ; 제7장

 

▣ 제7장(第七章)

 

『人之有技를 冒疾以惡『(오)』之하며 人之彦聖을 而違之하여 쯸不達하면 是不能容이라 以不能保我子孫黎民이니『(이며)』 亦曰殆哉인저』

 

『 남이 가지고 있는 기예를 시기하고 미워하며, 남의 훌륭하고 성(聖)스러움을 어겨서 통달하지 못하게 한다면 이것은 포용하지 못하는 것이다. 나의 자손(子孫)과 여민(黎民)을 보호하지 못할 것이니, 또한 위태로울 것이다.』

 

『冒는 大學에 作쭥하니 忌也라 違는 背違之也라 達은 窮達之達이라 殆는 危也라 蘇氏曰 至哉라 穆公之論此二人也여 前一人은 似房玄齡이요 後一人은 似李林甫하니 後之人主 監此면 足矣니라』

 

『 모(冒)는 《대학(大學)》에는 모(쭥)로 되어 있으니, 시기함이다. 위(違)는 등지고 어김이다. 달(達)은 궁달(窮達)의 달(達)이다. 태(殆)는 위태로움이다. 소씨(蘇氏)가 말하였다. “지극하다. 목공(穆公)이 두 사람을 논함이여, 앞의 한 사람은 방현령(房玄齡)과 같고, 뒤의 한 사람은 이림보(李林甫)와 같으니, 후세의 군주가 이것을 거울로 삼으면 충분할 것이다.”』

 

*서경 ; 주서 ; 진서 ; 제8장

 

▣ 제8장(第八章)

 

『邦之?헣『(올날)』은 曰由一人이며 邦之榮懷는 亦尙一人之慶이니라』

 

『 나라가 올날(?헣)『[위태로움]』함은 한 사람 때문이며, 나라가 영화롭고 편안함은 또한 거의 한 사람의 경사이다.”』

 

『?헣은 不安也라 懷는 安也라 言國之危殆가 繫於所任一人之非하고 國之榮安이 繫於所任一人之是하니 申퇨上二章意라』

 

『 올날(?헣)은 편안하지 않음이다. 회(懷)는 편안함이다. 나라의 위태로움이 임용한바 한 사람의 나쁨에 달려 있고, 나라의 영화롭고 편안함이 임용한바 한 사람의 옳음에 달려 있음을 말하였으니, 위의 두 장(章)의 뜻을 거듭 맺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