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음요전

재휘애비.溢空 2014. 7. 19. 19:30

원리편. 제1장 위대한 가르침 4.불성은 누구에게나 있다.

 

1 .

부처님께서는 '일체 생명에 불성이 깃들어 있으니

일체가 다 부처' 라고 선언하셨다.

이 얼마나 감격적인 말씀인가.

부처님께서 가르쳐 주신 이러한 평등과 긍정의 정신은

너무도 광활한 것이어서

크다느니 높다느니 하는 말조차 초라하다.



2 .

우리에게도 위덕을 구족하신 부처님과 동등한

불성이 있다는 사실은 세상에서 듣는 그 어떤 소식보다도

기쁜 소식이요 놀랍고 신비스러운 소식인 것이다.



3 .

나의 불성이나 석가모니 부처님의 불성이나

역대 조사님들의 불성이나 불성은 똑같다.

그러므로 따로 불성을 찾겠다고 다닐 일이 없다.



4 .

사람에게는 남여의 차이가 있고, 학식의 차이가 있고,

출신의 차이가 있고, 모습에 차이가 있을지언정 불성에는

그러한 차이가 없다.

남여의 차이가 없고, 모습에 차이가 없고,

학식에 차이가 없고, 출신에 차이가 없다.

 

5 .

거룩하신 부처님을 배신했던 데바닷타나 아흔아홉의 사람을 죽인

앙구리마라까지도 부처를 이룬다 했으니

모든 생명은 비록 타락해 있더라도 본래는 부처요

불성은 물들지 않아 밝고 꿋꿋할 뿐이다.



6 .

자기의 본래 성품은 불성과 둘이 아니다.

누구나 본성 자체는 부처이다.

따라서 이 자기 부처가 참 부처이니

만약에 본래 성품이 불성과 다르다 하면

어디 가서 참 부처를 구할 것인가.



7 .

아침 해가 뜰 때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햇살이 퍼져 나가

비추어 주지만 모든 햇살이 하나의 해에서 나오는 것처럼

우리의 근본적인 실상도 다 불성에서 나온 것이다.

 
 
 

한마음요전

재휘애비.溢空 2014. 7. 19. 19:27

원리편 제1장 위대한 가르침

3.부처님의 세계

 

1 .

부처님의 세계는 형언할 길이 없다. 무한하다, 장엄하다는 말로도

그 크기를 표현할 수 없고 신묘하다, 불가사의하다는 말로도

그 참 맛을 전할 수 없다. 부처님은 일체와 더불어 계시면서

일체를 초월해 계신다. 또 수없는 방편으로 중생을 교화하시는

부처님의 공덕은 삼계를 덮고, 삼계를 싣고, 삼계를 꿰뚫고,

삼계에 나투신다.

2 .

부처님은 자재하시고 무량하시다. 일체 만물에 응하시고

일체 만물을 제도하신다. 부처님은 지옥에도 계시고 극락에도 계신다.

삼계에 아니 계신 곳이 없다. 깨끗한 곳에만 계신 게 아니라

질척하고 더러운 곳, 똥통 안에도 계신다.

왜냐? 구더기를 건지려면 구더기가 되어야 하고

짐승을 건지려면 짐승 속으로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3 .

우리들의 마음에 따라 부처님은 항상 나투신다.

사람에게만 나투시는 게 아니라 짐승들, 일체 만물 만생에 나투신다.

세상의 온갖 것들을 다 따르고 온갖 것에 다 응해 주시면서도

결국은 세상의 온갖 것을 다 제도하신다.

삼계의 어느 구석 한 군데라도 비워두시지 않는다.

그러기에 삼십이상이 구족했다 하고

삼십이응신이 구족했다고 하는 것이다.

내고 들이는 데 조금도 걸림이 없기에 구족했다고 한다.

아니 디디시는 곳이 없기에 평편족이라 한다.

 

4 .

부처님의 손이 닿지 않는 데가 없고, 팔이 닿지 않는 데가

없다는 것은 진실이다. 우주의 어느 혹성과 어느 은하계라 할지라도

그 구석구석 어느 틈이건 평등하게 나투어져 있다.

어느 곳에서 누가 무슨 소리를 하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를 다 안다.

뿐만 아니라 어느 생명의 차원과 어떤 혹성의 발전된 단계와

정신적 능력의 정도를 훤히 알고 있고, 또 발전시켜 줄 수도 있고

낮춰 줄 수도 있을 뿐만 아니라 이곳의 능력을

저곳에다 심어 줄 수도 있는가 하면 저곳의 능력을 이곳에

맞춰 줄 수도 있는 것이다.

이처럼 부처님이 중생의 마음에 자유 자재로 들락날락해도 중생들은

모른다. 제 주장자가 있어야 주장자를 얻을 수도 있고 줄 수도 있다.



5 .

부처님의 자비는 모든 생명에 대한 크고도 넓은 자비이다.

고로 대자대비라 한다. 또 그 대자대비는 중생과 근본으로부터

한 몸이 되신 것이기에 동체 대비라 한다.



6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바르고 고통 없는 경계에

들어가게 하는 것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우려내고 우려내어도 끝없이 진한 국물이 나오는

뼈다귀라 할 수 있다.

일체 중생이 배불리 먹고 나서도 부족함이 없다.

얼마나 감사하고 또 감사해야 할 일인가.

7 .

부처님의 세계만이 영원하다.

부처님의 법은 결코 효력이 상실되는 법이 없다.

부처님은 영원한 생명이며 한량없는 빛이며

모든 것의 본질이기도 하다.



8 .

부처님께서는 마음 발견하는 것을 전하려 몸을 나투셨다.

부처님께서는 법계에 충만하여 중생 앞에 두루 안 가는 곳이 없지만

그러는 중에도 진리를 가르치고자 몸을 나투셨다.

 

 
 
 

한마음요전

재휘애비.溢空 2014. 7. 19. 19:24

원리편 제1장 위대한 가르침

2.마음속의 부처

 

 

1 .

부처는 나의 마음에 있다. 우주를 감싸고 삼세를 덮는 부처님,

조사와 선지식들, 일체 생명이 다 내 마음 가운데 있으며,

누구든, 조상님들도 다 내 마음 가운데 있다.

무엇이 있어 밖에서 찾을 것인가.



2 .

부처란 말이 깨달은 사람을 지칭할 때도 있다.

그러나 깨달은 사람이 있어서 부처가 있는 게 아니며,

그의 가르침이 있어서 진리가 성립하는 것도 아니다.

그 가르침이 마음을 발견하는 최상승의 법이라도 진리는

깨달은 이가 있든 없든 진리이니 부처라는 말에는

부처가 없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법등명 자등명을 말씀하셨다.



3 .

부처님은 한 분이다 할 수도 없고 많다고 할 수도 없다.

아니 계시다 할 수도 없고 수없이 계시다 할 수도 없다.

누구나 깨달으면 이이도 부처, 저이도 부처,

수만 명이 부처인 것이나 또 모습은 달라도 깨달음의 마음은

다 하나요, 궁극에는 그 하나조차도 없다 할 것이니

이렇다 저렇다 말할 수 없는 것이다.

 

4 .

사생이 다 부처라면 어떤 분만을 부처라 하겠는가.

다 부처이기에 부처는 없는 게 부처다 라고 하는 것이다.

모습 모습 화해서 돌아가는 일체 만법이 다 부처의 모습

아닌 게 없고 그 마음, 그 도량 아닌 게 없다.

우리가 이렇게 살아 있고 생동력 있으며 푸르게 움직이는 한

부처는 있다.



5 .

부처란 이름 없는 것을 부처라 하지 이름 있는 것을

부처라고 하지는 않는다.

부처란 부처로 가만히 있는 게 부처가 아니다.

모든 중생을 위해 수없는 모습으로 그 몸을 나투기에

사생자부인 것이다.

진짜 부처는 자유 자재함을 이름한다.



6 .

부처님이 있다고 하면 부처님은 없는 것이다.

일체를 포함하기 때문에 부처님이라고 이름지은 것이다.

우러러볼 뿐이라면 그런 말속에는 부처란 없다.

부처란 아무것도 내세울 게 없는 게 부처다.

우리가 찰나 찰나로 돌아가는 살림살이를 하는 가운데

어느 것 할 때의 나를 나라고 할 수 없듯이

부처님은 없는 것이다.

그러기에 '똥친 막대기' 라고 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시공을 초월해서 찰나로 돌아가기에

부처님이라는 이름이 나온 것이다.

 

7 .

부처가 없다고 함은 내 마음 근본의 주인공에 같이 있어

따로 부처라 할 수 없기에 없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밖으로 드러난 형상으로 부처를 찾는다는 것은

그러면 그럴수록 부처를 잃게 되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8 .

부처는 전체다. 산신·지신·용신이 따로따로이지만

다 부처의 품안에 있다.

비유하여서 산신·지신을 눈·귀라고 한다면

부처는 얼굴 전체이다.

눈이 가고 귀가 갈 때 얼굴이 따로 도는 게 아니듯

산신·지신도 부처의 일부로 돌아가는 것이다.



9 .

부처는 하나의 완성이 아니라 전체가 합쳐진 완성이다.

영원불변의 진리인 법신이다.

그러므로 어떤 것이 아니 되는 게 없고

아니 미치는 게 없고

아니 듣는 데가 없다.

 

10 .

부처란 개별적인 어떤 존재를 말하는 게 아니라

전체가 한마음으로 한데 합쳐 평등하게 돌아가는 것을 말한다.

또 부처에겐 과거·현재·미래도 없다.

과거불·현재불·미래불 하는 것은 다만 이름일 뿐이다.



11 .

부처란 일체를 포함하여 아무것도 내세울 수 없기에 부처이다.

부처라는 칭호를 붙여 우러러 존경하기에 부처가 되는 것은 아니다.

부처다, 보살이다, 선지식이다 하여 높은 자리에 있다면

어떻게 이 우주 법계에 두루하겠는가.

참 부처는 결코 중생의 사량심이나 중생의 육안에는 보이지 않는다.

색도 상도 없으므로 비교할 수도 없다.

도인이다, 명안종사다, 큰스님이다, 선지식이다, 보살이다,

부처다 하는 것은 족히 의지할 바가 못된다.

왜냐하면 부처라는 말 속에는 부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르침을 깨우친 자는 어디서나 부처를 뵐 수 있다.



12 .

중생이 있는 것만큼 부처가 있고,

부처가 있는 것만큼 중생이 있다.

 

13 .

내가 있기에 부처가 있다.

부처의 형상이 내 형상이며 부처의 마음이 내 마음이며,

불성 또한 다를 바 없다.



14 .

모든 부처의 몸은 하나의 법신, 하나의 마음이다.

모든 부처의 국토는 평등하고 장엄하다.

그러나 중생들의 업이 다르므로 보는 바도 같지 않다.

부처는 자재함이기에 중생의 마음과 업·과보에 따라

각기 모습을 달리하기도 한다.



15 .

하나가 만 개로 돌아가고 만 개가 하나로 돌아가고,

또 만 개가 제각기 흩어졌다가 하나가 되니

부처라는 이름도 없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부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