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시 이야기

재휘애비.溢空 2022. 1. 25. 15:16

陋室銘

(누실명)

<초라한 집에 대한 명>

- 당(唐) 劉禹錫(유우석 772-842 )

山不在高 有仙則名

(산부재고 유선즉명)

산은 높음에 있지 않나니 신선이 있으면 이름나고/

水不在深 有龍則靈

(수부재심 유룡즉령)

물은 깊음에 있지 않나니 용이 있으면 영험하나니/

斯是陋室 惟吾德馨

(사시누실 유오덕형)

여기는 초라한 집이지만 오로지 나의 덕의 향기 뿐이로다!/

苔痕上階綠 草色入簾靑

(태흔상계록 초색입렴청)

이끼의 흔적이 섬돌을 올라 푸르고, 풀빛이 발에 비쳐들어 파랗구나!/

談笑有鴻儒 往來無白丁

(담소유홍유 왕래무백정)

웃고 얘기하는 이로 큰 선비들은 있어도, 오고 가는 이로 백정들은 없어/

可以調素琴 閱金經

(가이조소금 열금경)

소박한 거문고를 어루만지고 불경을 펼쳐볼 수가 있으며/

無絲竹之亂耳 無案牘之勞形

(무사독지란이 무안독지노형)

현악 관악의 풍악이 귀를 어지럽힘이 없고, 책상 위의 공문서가 몸을 수고롭게 함이 없어/

南陽諸葛廬 西蜀子雲亭

(남양제갈려 서촉자운정)

남양 땅 제갈량의 오두막이고, 서촉 땅 양자운의 정자로구나!/

孔子云 何陋之有

(공자운 하루지유)

공자께서 말씀하셨네. "(군자가 거처하니) 무슨 초라함이 있으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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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중당(中唐)의 시인 유우석(劉禹錫)이 지은 자계(自戒)의 글이다.

유우석은 자가 몽득(夢得)이며, 21세에 진사가 되었다.

중앙정부의 젊은 관료로서 왕숙문(王叔文)·유종원(柳宗元) 등과 함께 정치 개혁에 나섰으나 실패하여 지방의 하급관리로 좌천되었다.

'누실(陋室)'은 '누추한 집'이라는 뜻이며, '명(銘)'은 대개 쇠북이나 솥, 비석 따위에 스스로 경계하거나 남의 공덕을 길이 잊어버리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지은 문장의 한 종류를 말한다.

작자는 누추한 집에 살지만 덕(德)의 향기로 가득 채우겠노라며 자신이 놓인 초라한 환경에 굴하지 않는 기개를 드러내면서, 일세를 풍미한 촉나라의 제갈량(諸葛亮)과 한나라의 양웅(揚雄)이 살던 초라한 집을 언급하여 자부심을 높이고 있다.

나아가 마지막 구절에서는 공자(孔子)의 말을 인용하여 자신을 그와 같은 군자(君子)로 끌어올리고 있다. 《논어(論語)》의 <자한(子罕)>편에 공자가 구이(九夷) 땅에 거하려고 하였을 때 누군가 누추한 곳에서 어떻게 살겠느냐고 하자 공자는 "군자가 사는 곳에 무슨 누추함이 있겠는가"라고 말한 구절이 있다.

 
 
 

한시.시 이야기

재휘애비.溢空 2022. 1. 20. 06:25

友人會宿(우인회숙)

벗들과 모여서

 

이백(李白)

 

滌蕩千古愁(척탕천고수)

천고의 시름이 씻어지도록

留連百壺飮(유연백호음)

한자리에 연거푸 술을 마시네.

 

良宵宜淸談(양소의청담)

좋은 밤 얘기는 길어만 가고

皓月未能寢(호월미능침)

달이 밝아 잠에 못 들게 하네.

 

醉來臥空山(취래와공산)

취하여 고요한 산에 누우니

天地卽衾枕(천지즉금침)

천지가 곧 베게이고 이불이어라.

 

해석2

벗들과 모여서 천고의 시름 씻어 내고저,

내리닫이 일백 병의 술을 마신다.

이렇게 좋은 밤 더불어 청담을 나누고,

휘영청 밝은 달에 잠을 잘 수도 없지 않는가!

얼큰히 취하여 텅 빈 산에 벌렁 누우니,

하늘과 땅이 이불이요 베개로다!

 

내용 연구

滌蕩(척탕): 말끔히 씻어낸다.

壺(호) : 병, 배가 불룩하고 입이 작은 병으로 주로 술을 담는다.

良宵(양소) : 좋은 밤.

宜(의) : 당연히, 마땅히, 이치에 맞음.

皓月(호월) : 밝고 맑은 달. 희고 깨끗함,

衾枕(금침) : 이불과 베개.

淸談(청담) : 고상하고 맑은

 

지은이 : 이백(이태백)

시대 : 당나라(701~761)

갈래 : 오언율시

성격 : 서정적, 서사적

 
 
 

한시.시 이야기

재휘애비.溢空 2022. 1. 19. 15:57
당시삼백수 권3 오언율시
115.輞川閑居 贈裴秀才迪(망천한거 증배수재적) - 王維(왕유)
망천에서 한가롭게 지내며 배적 수재에게 주다

 

輞川閑居 贈裴秀才迪

(망천한거 증배수재적)

王維(왕유)

 

寒山轉蒼翠(한산전창취)秋水日潺湲(추수일잔원)

倚杖柴門外(의장시문외)臨風聽暮蟬(임풍청모선)

渡頭餘落日(도두여락일)墟里上孤煙(허리상고연)

復值接輿醉(복치접여취)狂歌五柳前(광가오류전)

 

 

<원문출처> 輞川閑居贈裴秀才迪 / 作者王維 /

全唐詩·126 /本作品收錄於:《唐詩三百首

維基文庫自由的圖書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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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산 점점 검푸르게 되고

가을 물은 날마다 졸졸 흐른다

 

지팡이 짚고 사립문 밖에 서서

바람을 쏘이며 늦 매미 소리를 듣네

 

나루터에 지는 해가 남아 있고

마을에는 외로운 연기가 오른다

 

다시 술취한 접여를 만났는데

오류선생 집 앞에서 미친 듯 노래 부르네

 

 

[通釋] 가을 산의 모습은 검푸른 빛을 띠게 되고, 가을 물 역시 날마다 졸졸 흐른다. 나는 지팡이에 몸을 의지한 채 사립문에 서서, 불어오는 가을 바람을 맞으며 늦매미 소리를 듣고 있다. 나룻머리를 바라보니 석양의 빛이 남아 있고, 마을에서는 밥 짓는 연기가 한 줄기 피어오른다. 우연히 접여처럼 취해 있는 그대를 만났는데, 우리 집 앞에서 강개(慷慨)한 듯 노래부르고 있구나.

 

 

[解題] 이 시는 왕유(王維)가 망천(輞川)의 별장에서 한거(閑居)할 때, 배적(裴迪)이라는 벗을 위해 쓴 것이다. 당시 왕유는 조정에서 벼슬을 하고 있었지만 이미 관직생활에 염증을 느낀 터여서 송지문(宋之問)의 소유였던 망천의 별장을 매입하여 반관반은(半官半隱)의 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 시는 전체적으로 망천(輞川)의 아름다운 산수를 묘사하여 시인의 은거생활이 얼마나 한적한가를 보여주고 있다. 1·2구는 가을의 경치를 묘사한 사경(寫景)이며, 3·4구는 자신의 정황을 그려낸 사인(寫人)에 해당한다. 5·6구는 배적을 기다리며 시간이 경과하는 모습과 저녁풍경을 보여주는 사경(寫景)에 해당하며, 7·8구는 배적과 만나게 되어 기쁜 심정을 그려낸 사인(寫人)이라 할 수 있다.

도연명의 歸園田居(귀원전거)를 연상시키면서도 閑居之樂(한거지락)’을 사경과 사인을 적절하게 교차시켜 숙련된 정형시의 구법을 구사한 작품이다.

詩人玉屑(시인옥설)에 소식(蘇軾)일찍이 마힐(摩詰)의 시를 음미해보면 시 속에 그림이 있고, 마힐(摩詰)의 그림을 살펴보면 그림 속에 시가 있다.[東坡云 味摩詰之詩 詩中有畵 觀摩詰之畵 畵中有詩]”라 하였는데, 이 시야말로 망천(輞川)의 저물녘 모습을 정채(精彩)롭고 아름답게 그려낸 한 폭의 그림과도 같다고 할 수 있다.

 

 

역주1> 輞川(망천) : 물 이름이다. 지금의 섬서성(陝西省) 남전현(藍田縣) 종남산(終南山) 아래 있다. 송지문(宋之問)이 여기에 남전(藍田) 별장을 지었었는데, 왕유가 만년에 이 별장을 사서 은거하였다. 이곳에는 화자강(華子岡), 의호(欹湖), 죽리관(竹里館), 유랑(柳浪), 수유반(茱萸泮), 신이오(辛夷塢) 등의 승경(勝景)이 많았으며, 왕유가 배적(裴迪)과 이곳에서 수창(酬唱)하며 즐겼다고 전해지는데, 이들이 주고받은 시는 王右丞集(왕우승집)13輞川集(망천집)으로 묶여 있다.

 

역주2> 裴秀才迪(배수재적) : 배적은 관중(關中: 지금의 섬서성 경내) 사람이다. 처음에 왕유와 종남산에 함께 살다가 후에는 망천의 별장에서 함께 살면서 거문고를 타고 시를 짓고 창수하며 지냈다. 천보(天寶) 연간(年間) 이후 촉주자사(蜀州刺史)와 상서성랑(尙書省郞)을 지낸 바 있으며 두보(杜甫), 이기(李頎) 등과도 절친했다.

 

역주3> 寒山(한산) : 가을에 날씨가 싸늘하게 변하므로 寒山(한산)’이라 표현한 것이다. 가을 산이라는 의미이다.

 

역주4> () : ‘()’으로 되어 있는 본도 있다.

 

역주5> 潺湲(잔원) : 물이 흘러가는 소리를 형용한 것이다.

 

역주6> 暮蟬(모선) : 한선(寒蟬)이라고도 한다. 늦가을까지 남아 있는 매미를 말한다.

 

역주7> 墟里(허리) : 촌락(村落)을 의미한다.

 

역주8> 孤煙(고연) : 여기서는 저녁 무렵 마을에서 밥 짓는 연기가 피어오른 것을 지칭한 것이다.

 

역주9> () : ‘만나다라는 의미로 쓰였다.

 

역주10> 接輿(접여) : 춘추시대(春秋時代) ()나라의 은사(隱士)였던 육통(陸通)의 자()가 접여(接輿)이다. 論語(논어)≫ 〈微子(미자)에 접여(接輿)가 공자(孔子) 앞을 지나가면서 봉황이여! 봉황이여! 어찌하여 덕이 쇠하였는가.[鳳兮鳳兮(봉혜봉혜) 何德之衰(하덕지쇠)]”라고 노래하였는데, 이는 봉황으로써 공자(孔子)를 비유하고 공자(孔子)가 숨지 못함은 덕()이 쇠했기 때문이라고 비난한 것이다. 여기서는 배적(裴迪)을 접여(接輿)에 비유해서 쓴 것이다.

 

역주11> 五柳前(오류전) : 오류(五柳)는 도연명(陶淵明)을 지칭한다. 도연명의 五柳先生傳(오류선생전)……宅邊有五柳樹(택변유오류수) 因以爲號焉(인이위호언)’이라는 구절이 있으므로, ‘五柳前(오류전)’은 오류선생(五柳先生)의 집 앞을 의미한다

 

 

본 자료의 번역은 전통문화연구회의

동양고전종합DB(http://db.juntong.or.kr)에서
인용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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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여(接與) : 춘추시대(春秋時代) 때 초나라의 은사(隱士). 성은 육(陸)이고 이름은 통(通)이다. 접여(接輿)는 그의 자(字)이다. 일부러 미친 척하여 세상을 피해 다녔으며 자기가 직접 농사를 지어먹는 것을 해결했다. 초나라의 미치광이 접여 “ 楚狂接輿(초광접여)”라는 별명으로 부르기도 했다. 공자(孔子)가 그의 나이 62세 때인 초소왕(楚昭王)이 재위하던 기원전 488년에 초나라에 들렸을 때 접여는 공자가 타고 지나가던 수레 옆에서 공자를 비웃으며 노래했다. 공자가 마차에서 내려 그와 이야기를 나누어 보려 했으나 그가 급히 몸을 피해 달아났음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없었다.

 

왕유(왕웨이, 王維, 699년 ~ 759년)는 중국 성당(盛唐)의 시인·화가로서 자는 마힐(摩詰)이다. 그의 시는 친교가 있던 맹호연을 닮은 데가 많으나 맹호연의 시보다 날카롭다. 또한 불교신자로서 관념적인 '공(空)'의 세계에의 동경을 노래한 것이 있다. 한때 관직을 물러났을 때 망천(輞川=지금의 허난성)에 별장을 짓고, 그 별장의 경물을 소재로 하여 노래한 〈죽리관(竹里館)〉이나 〈녹시(鹿柴)〉(모두 5언절구)는 특히 유명하다. 왕유는 또한 화가로서도 뛰어나서, 남송화(南宋畵)의 시조(始祖)로서 추앙된다.<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