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안은 어떻게 세계의 수도가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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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5. 1.



장안은 어떻게 세계의 수도가 되었나

 

장안은 이미 1400여 년 전부터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도시였다.

장안화제라는 말을 쓰는 것은 장안이 크고 유명한 세계적인 대도시란 말이기도 하다.

 

장안은 시안이라고 불리는 중국의 지명이며 중국의 여러 왕조의 도읍이란

 정도만 알고 있었던 상태에서 서안 여행을 한 적이 있었다.

 

세오 다쓰히코씨의 저서인 이 책은 장안에 대하여 많은 것을 가르쳐 준다.

세오 다쓰히코씨는 대학 2학년을 휴학한 후 동남아시아에서 유럽까지 동서 여행을 떠난 것은 

 유라시아 대륙의 역사 구조에 대한 깊은 생각을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귀국한 뒤 그는 중앙아시아와 직접 관련이 있는 중국 대륙의 당대 사회사에 마음이 끌려 

당대의 사회 경제사를 소제로 졸업 논문을 썼다고 한다.

 

오사카 대학의 대학원으로 진학 한 뒤에 그는 지도 교수인 시바 요시노부 선생님과 

누노메 조후 선생님의 영향으로 당송 도시 사에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장안과 낙양의 역사에 관심을 가지면서 그의 연구의 테마가 되어서 

섬서 교육대학에 유학하면서 당대의 문화와 사회에 대하여 

그의 이십대에서 사십대 중반까지의 학술 논문을 바탕으로

 이 책을 장안의 역사에 대하여 알기 쉽게 기록해 주었다.

 

장안의 역사를 세계사의 흐름 속에서 매우 알기 쉽게 풀이 해 준 셈이다.

다양한 연구 방법과 인간의 미시적이고 정치사적인 관념을 벗어나 자연적인 관점으로 

장안을 다른 도시들과 함께 설명하고 그 도시의 변천 과정을 알기 쉽게 풀이해 주었다.

 

지금은 시안(西安)으로 이름이 바뀐 장안은 바그다드 콘스탄티노플 등과 함께 세계 3대 도시 중 하나였다.

신라에서 온 유학생들과 선진 문물을 배우러 온 일본인들,

중앙아시아에서 비단을 싣고 실크로드를 건너온 소그드인들, 배를 타고 운하를 거슬러 온 아랍인들이

 뒤엉켜 서로 문화를 교환하고, 밤에는 함께 어울려 푸른 눈의 무희가 추는 춤을 감상했을 것이다.

(소그드인- 실크로드의 상인으로 페르시아 화폐를 사용했으며 당 현종 때에 호족이라고 한 안록산이 소그드인이었다.)

그들은 고국으로 돌아가 장안의 화려한 발전상을 알렸을 것이 분명하다.

 

장안이 자리 잡은 화북 지방의 황토고원은 오랫동안 유목 문화권과 농경 문화권의 대결의 장이었다.

싸움에서 이긴 유목민은 격자형(바둑판형) 계획도시를 만들었다.

우주의 왕도를 가르쳐 준 장안성 건축 양식은 후에 자금성 건축에도  그대로 이용 되었다고 한다.


장안의 역사는 깊다.

중국역사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서주(BC 1046~771) 시대부터 당나라까지 

 11개 왕조의 수도(서주··전한··전조·전진·후진·서위·북주··)였다.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것이 중국왕국 도읍지의 법칙이다.

 

장안성이 소멸된 지 1,100년이 흘렀다

정관의 치가 스며있는 곳. 양귀비의 화청지가 아니라도 좋다.

안내인의 설명과 세계의 수도가 된 시안이 다시 생각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