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을 낳은 후궁들 - 최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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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5. 25.




 

왕을 낳은 후궁들-최선경

 

조선조엔 후궁의 자식이 왕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역사를 통해서 아는 사실도 있지만 

드라마 속의 이야기에 확실성을 가해 주는 책이었다.


드라마 동이에서 숙빈 최 씨 이야기를 재미있게 시청한 적이 있었다.

숙빈 최씨도 인현황후 민씨의 집안에 의해 어렸을 때 궁에 들어온 것 같았다.

사도세자의 이야기와 그의 죽음 이면의 그의 생모 영빈 이씨의 속내가 알려졌다.


세손의 안위와 직결된 이야기를 들어본다.

정식 간택을 통하여서 양반가의 딸을 후궁으로 들일 때도 있지만 

일개 궁인 출신으로 후궁이 된 분들도 있었다.


궁정동의 칠궁은 이들 후궁들의 사당이라고 한다.

단종의 어머니 현덕왕후 권씨

연산군의 어머니 폐비 윤씨

광해군의 어머니 공빈 김씨

경종의 어머니 희빈 장씨

영조의 어머니 숙빈 최씨

사도세자의 어머니 영빈 이씨

대비가 된 순조의 어머니 수빈 박씨

영친왕의 어머니 황 귀비 엄씨

 

후궁이 낳은 왕이 늘어남에 따라서 그 모친의 추존의 논쟁이 빈번해 졌다.

조선왕조 500년 역사에 비극으로 남은 왕 단종,

연산군, 광해군, 경종, 영조, 사도세자는 모두 후궁의 아들이었다.


조선 최고의 권력자인 왕.

정통성 논란과 생모의 비극적인 삶에 상처를 당하기도 한 임금의 내면과 

그 모든 상황을 극복하고 가장 오래 임금의 자리에 있었던 영조.

성군으로 역사에 남은 왕이 있었는가 하면 그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퇴출당한 광해군과 연산군 같은 왕들도 있었다.

 

고려 태조 왕건은 흩어져 있던 호족들의 세력을 모우기 위하여 황후가 29명이었다니 

그의 권력적인 구조를 바로 세우기 위하여서 결혼 정책을 통하여 

나라의 기초를 다지려고 했음은

합스부르크 왕가가 결혼 정책으로 영토를 넓힌 경우와 비슷하다 .

 

자손이 없는 후궁들의 말로는 임금이 승하 한 후에는 사가로 나가야 하며 

비구니의 신분으로 살아야 했다고 한다.

참 쓸쓸한 후궁들의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