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면칼럼이야기.

사랑채뜨락 2008. 5. 12. 15:27
저도주(低度酒) 경쟁이 위기를 자초한다. 소주업계 전문가들이 던지는 경고의 메시지다. 소주업계의 반응은 그러나 쇠귀에 경읽기다. 오히려 저도주 경쟁의 강도를 높일 태세다. 거의 혈투 수위이다.

‘톡 쏘는’ 소주 알코올 도수의 마지노선은 20도. 소주업계는 지난해 3월 이 장벽을 과감히 깼다. 16.9도까지 떨어졌다. 기록이 깨지는 건 비단 알코올 도수만이 아니다. 소주 브랜드 고유의 강한 맛도 그만큼 증발했다.

■날개없는 알코올 도수의 추락

1920년대에 풍미했던 35도짜리 강한 소주는 온데간데 없다. 지난해 3월 저도주 경쟁 촉발을 불러온 두산의 ‘처음처럼’이 20도이고 진로의 ‘참이슬 후레쉬’는 19.8도다. 지방 토박이 소주의 저도주 바람은 거의 태풍권이다. 금복주의 ‘더블루’는 17.9도, 무학의 ‘좋은데이’와 대선주조의 ‘씨유’는 각각 16.9도로 급전 직하했다.

국내 소주시장의 올 한해 목표치는 2조8000억원 규모. 목표대로라면 전년 한 해에 비해 5% 가까이 상승하는 수준이 된다. 소주업체들은 소비자들의 미각을 좇아 국민주로서 소주의 입지를 확실하게 굳혔다고 자화자찬한다. 그러나 속내는 시리도록 아리다. 영업이익률에 극심한 압박을 받고 있어서다. 지나친 저도주 마케팅 경쟁 탓이다.

과연 ‘날개 없는 알코올 도수의 추락’은 계속 이어질 것인가. 소비자 마음을 동하게 할 만한 또다른 비장의 마케팅전략이 없는 한 저도주 경쟁은 당분간 사그라들지 않을 전망이다. 벌써부터 16.5도짜리 소주도 곧 출시된다는 루머도 유통가에 파다하다.

■‘소주=고기안주’의 붙박이 안주등식 깨지나

소주업계의 알코올 저도수 경쟁은 ‘시소게임’ 양상마저 띠고 있다. 어느 한 쪽이 치고 나가면 다른 한 쪽이 치고 나가는 식이다. 2030 젊은 신세대와 여성 소비자를 선점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언필칭 맞는 말이다.

소주업계 전문가들은 그러나 알코올 도수 16도대에서는 0.1도만 떨어뜨려도 소주 고유의 맛이 확연히 떨어진다고 경고하고 있다. 만일 ‘알코올 도수 파괴’가 15도로 떨어질 경우 ‘소주=고기안주’라는 붙박이 안주등식도 깨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다른 주종의 공세도 예사롭지 않다. 맥주는 꺼꾸로 ‘고도주(高度酒)’바람이 일고 있다. 소주시장의 틈새를 파고들겠다는 얘기다. 웰빙 바람을 타고 소주 알코올 도수에 근접하려는 와인 역시 소주 마니아들을 점점 흡입하고 있다. 전통주의 공략도 만만치 않다. 고급화 전략으로 소주의 영역을 파고들고 있다. 그만큼 소주시장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는 것이다. 웰빙 트렌드가 주류시장의 판도를 바꾸고 있다.

■딜레마에 빠진 소주시장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 소비자들의 입맛은 점점 고급화되고 다양화를 추구한다. 미각도 덩달아 까다로워졌다. 변화무쌍한 소비자 욕구에 또다른 주종의 탄생을 예고하고 있는 셈이다.

다양한 주종에는 ‘개성’이 독특한 주종이 돋보이는 법이다. 생존경쟁에서 살아남는 비결이다. 소주의 승부처는 역시 ‘톡 쏘는 맛’ 강한 미각에 달려 있다. 맥주와 와인과의 차별화로 경쟁해야 하기 때문이다. 소주의 강한 고유의 맛을 저버리면서까지 저도주 경쟁만 벌여야 하는 소주업계가 딜레마에 빠지는 까닭이다.

술과 음식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궁합 관계다. 음식문화는 이제 글로벌화하고 있다. 회식 자리마다 주종을 가리지 않는다. ‘국민주’로 통칭되는 소주는 적어도 고기류와 생선류 음식만큼은 주주(主酒)로의 아성을 더욱 고수해야 하는 이유다. 톡 쏘는 강한 소주가 고기류와 생선류 음식을 삭여준다. 소주업계가 부드러운 맛만 좇다 ‘소주=저도주’라는 등식이 각인될 경우 소주가 어정쩡한 주종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게 주류업계 전문가들의 경고이다.

■고도주(高度酒)가 경쟁력

강한 소주맛은 오래 기억된다. 그래서일까. 국내 최대 소주회사인 진로가 도수를 끌어올린 30도짜리 프리미엄 소주 ‘일품 진로’를 내놨다. 순쌀 100%를 직접 발효시켜 증류하는 한국 전통의 소주 제조법을 이용했다, 주타깃은 외국 손님. 어떤 형태로든 한국의 대표 소주로 각인시키겠다는 전략이 담겨져 있다.

출고가는 450㎖들이 7500원이지만 업소 거래가는 3만5000원 안팎. 진로는 위스키 최저품보다는 ‘일품 진로’를 선택하는 사례가 늘 것으로 보고 있다. 고도주의 글로벌 경쟁력은 그만큼 강해진다는 얘기다. ‘일품 진로’가 급성장할 경우 소주업계에 ‘알코올 30도 회귀본능바람’이 거세게 일 전망이다.

저도주 경쟁의 진원지인 두산은 ‘일품 진로’의 등장을 의식해 20도짜리 ‘처음처럼 프리미엄’ 고급주를 내놨다. 하지만 알코올 도수 자체가 서로 달라 직접적인 경쟁이 되지 않는다. 두산은 향후 소득이 높아지면 위스키와 같은 고급주를 찾는 소비자가 늘 것으로 보고 30도 이상의 프리미엄급 상품판매 구상에 돌입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제는 글로벌 시장이다

소주문화도 이제 세계인들의 생활 속으로 파고들어야 한다. 술맛에는 국경의 장벽이 없다.자유무역협정(FTA)의 도래는 ‘소주 브랜드의 세계화’ 전망을 밝게 하고 있다. 값싼 비용으로 취할 수 있는 최적의 술인 소주가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는 절호의 찬스다. 현지 한국인도 점점 불어나는 추세다. 현지화 공략이 가능한 한국음식점도 덩달아 늘어나고 있다. 소주업계는 글로벌 식탁에 소주바람을 일으킬 수 있는 잠재력은 충분하다고 보는 이유다.

소주업체는 내수시장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속속 세계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브랜드의 글로벌 경쟁의 중심에는 진로와 두산이 있다. 진로 소주는 지난 1988년 난공불락으로 불리는 일본시장의 장벽을 뚫고 톱 브랜드에 등극해 ‘국내 소주의 글로벌화’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현재 진로의 수출 대상국은 일본 중국 인도네시아 네덜란드 영국 등 46개국이다. 두산소주는 일본 미국 중국 필리핀 러시아 등 35개국. 하지만 소주 브랜드의 가치를 강하게 각인시키기 위해서는 고도주 공략이 절실하다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joosik@fnnews.com 김주식 유통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