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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 2011. 7. 2. 11:45

마드리드(스페인)=이석호 기자

입력 : 2011.07.02 03:07 조선일보

노동계가 반대해도 스톱, 재계가 반대해도 스톱… 되는 일은 없다
스페인 최대 실수는 '늦었다'는 것, 정부는 계속 "괜찮다"고만 했다

지난달 21일 오후 스페인 마드리드의 중앙광장인 푸에르타 델 솔(Puerta del Sol·태양의 문). 광장 한가운데 파란색 천막이 펼쳐져 있고 그 아래에는 여행용 텐트 예닐곱 개가 세워져 있었다. 밑에선 20~30대로 보이는 남녀 10여명이 반바지에 샌들 차림으로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이들은 스페인 정부의 긴축정책에 반발해 5월 15일 이곳에서 열린 대규모 반정부 시위(2만명 참가)에 참가했던 대학생과 실업자들이다. 시위는 끝났지만 한 달 넘게 천막 농성을 벌이는 중이라고 했다.

유럽 6위, 세계 12위인 스페인의 올 1분기 경제성장률은 0.8%(전년 대비)였다. 유로존(유로화를 쓰는 17개국) 국가 가운데 경제성장률이 스페인보다 낮은 나라는 국가 부도 직전까지 갔던 그리스(-5.5%), 포르투갈(-0.6%), 아일랜드(0.1%) 뿐이다. 스페인의 실업률은 21.3%로 유럽에서 가장 높다. 30세 미만 청년 실업률은 45%에 달한다.

2008년 호세 사파테로(Zapatero) 총리(사회노동당)가 개혁에 착수했지만, 재계와 노동계의 반발에 밀려 아예 실행을 못 하거나, 실행한 경우에도 실기(失機)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3월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스페인 국가 신용등급을 'Aa1'에서 'Aa2'로 강등했다.

게티이미지 멀티비츠
불확실의 리더십
집값 거품 꺼지며 빚 늘고… 이민 행렬은 실업률 압박…
2011년 물러터진 스페인 1980년 "대처"가 필요해

확신의 리더십
조국 비판을 죄로 알던 英 "우린 심각한 위기다"
미국 기자들 앞에서 개혁 부르짖은 대처…
걱정하는 이에겐 말했다
"의심은 배반자다 얻을 수 있는 것도 두려움에 잃게 만드니까"

리더십의 한계 
鐵의 여인, 말년엔 외톨이…
'영국病' 고친 영국은 강력한 리더십 원치 않아
권력은 사용하는 대신 '남용'하는 순간 끝난다


지금 스페인에서는 오늘의 고통을 감내하게 설득할 리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여성으로서 처음 국회의장을 지냈고 지난달 마드리드 주지사가 된 에스페라사 아기레(Aguirre)는 취임사에서 "마거릿 대처(Thatcher) 전 영국 총리 같은 리더가 되겠다"고 말했다.

지난 6월 22일 마드리드에 만난 스페인 IE 경영대학원 후안 카를로스 파스토르(Pastor) 교수(글로벌 리더십센터 소장)도 스페인 위기의 해법으로 "리더십 재건(再建)"을 꼽으며 대처의 리더십을 예로 들었다.

위기의 순간에는 대처처럼 국민에게 위기상황을 확실히 인식시키고, 돋보기로 빛을 모으듯 핵심 정책 의제에 집중하며, 이해집단의 반발을 예상해 세밀하게 시나리오를 세우는 리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스페인 사회의 가장 큰 도적은 은행과 은행가이다. 그들의 부정(不正)이 우리를 경제위기로 몰아 넣었다. 그들 중 감옥에 간 사람이 있는가.’지난달 21일 스페인 마드리드의‘푸에르타 델솔’광장에 붙어 있던 한 팻말에 적힌 말이다. 스페인 정부의 경제 실정(失政)에 항의하는 반정부 시위대는 지난 5월 15 일부터 이 광장에서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다. 가운데 흰 팻말에는 빈부격차를 해소하라는 의미로‘경제 민주주의!(Democraciaeconomica!)’라고 적혔다. 오른쪽 사진은 후안 카를로스 파스토르 교수.
파스토르 교수는 인터뷰에 앞서 카이스트(KAIST) ‘이그제큐티브(Executive) MBA’ 학생들을 상대로 특별 강의도 했다. 주로 기업의 중간 간부들이다. 주제는 ‘대처의 리더십’. 파스토로 교수 입에서 “대처”라는 이름이 나오자 한국 학생들이 잠시 웅성거렸다. “대처? 이미 20년도 전에 물러난 옛날 사람 아닌가.”

―왜 지금 대처인가?

대처는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총리직에 올랐다. 이후 11년(1979~1990년) 동안 재정 긴축, 규제 완화, 노동시장 유연화 등을 통해 영국 경제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꿨다. 자기 신념과 원칙을 정책을 통해 구현하는 과정에서 타협하지 않았다. 물론 욕도 먹었다. 그러나 할 일은 하는 정치인이었다. 지금 스페인도 위기다. 남부 유럽도 마찬가지다. 개혁을 놓고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부딪히는 지금 상황에서는 대처가 보여준 강력한 리더십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당시 영국과 현재 남부 유럽 국가들의 위기 성격은 다르지 않나?

“똑같지는 않다. 대처가 총리가 되기 전 영국은 1차 오일 쇼크 이후 경제 성장이 둔화되고 인플레이션을 겪으면서 추락하기 시작했다. 경상수지 적자, 재정 적자가 겹치면서 1976년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해 36억달러를 지원받았다. 현재 유럽의 재정위기는 리먼브러더스 파산사태로 촉발됐지만 근본적으로 각국의 방만한 재정 운용이 누적된 결과다. 그리스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 채무가 140%에 이른다. 아일랜드, 그리스, 포르투갈과 달리 유럽에서 경제 규모 5~6위인 스페인이나 이탈리아마저 무너지게 놔둬선 안 된다. 관건은 문제 해결 능력을 지닌 정치 리더십이 있느냐다.”

마거릿 대처 前영국 총리
위기를 인정하지 않는 리더

―현재 스페인 경제는 무엇이 문제인가?

“건설 부문이 국내총생산(GDP)의 16%를, 고용의 12%를 차지했다. 1998년 이후 집값이 150% 올랐다. 그러다 거품이 꺼지면서 가계 부채가 10년 사이 3배 증가했다. 결국 기반이 약한 성장이었고 지금은 그 기반이 무너졌다.”

―상황이 악화될 때까지 정부는 뭘 했나?

“스페인 정부는 위기를 인정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는 데 주저했다. 이번 경제위기에 대한 사파테로 정부의 대응을 평가할 때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는 ‘늦었다(late)’이다. 지난해 눈덩이처럼 쌓인 국가 부채를 줄이기 위해 지방 정부를 설득해 지출을 줄여야 했다. 17개 주(州)가 쓰는 돈이 공공부문 지출 전체의 37%나 차지한다. 그러나 올해 5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재정 감축을 꺼려하는 주정부를 설득하는 데 사파테로의 리더십은 한계가 있었다.”

파스토르 교수는 노조와 정년 연장을 합의할 때 보여준 스페인 정부 태도도 비판했다. 지난 1월 정부와 노조는 2013년부터 2027년까지 단계적으로 현재 65세인 정년을 67세로 연장하기로 했다. 고령화로 연금 지출 부담이 늘어나자 개혁의 필요성을 느낀 것이다. 그러나 합의안은 이미 1년 전 도출될 수 있었다고 한다. 사파테로 총리는 정년 연장에 반대하는 대규모 거리 시위에 압박을 느끼고 정년 연장안 합의를 뒤로 미뤘다. 올 초 합의안엔 38.5년을 근무한 경우 종전대로 65세에 연금 100%를 받고 퇴직할 수 있도록 하는 노동계 요구가 그대로 담겼다.

“손바닥 뒤집듯 정책을 도입하고 취소하는 경우도 있었다. 일명 ‘아기 수표(baby check)’정책이 대표적이다. 낮은 출산율을 올리기 위해 2007년 도입됐다. 아이를 낳은 부모에게 출산보조금 명목으로 2500유로를 준 것이다. 그러나 재정위기가 심각해지자 이 제도를 올해 폐지했다. ‘아기 수표’는 사파테로 총리가 자기 복지정책의 간판으로 내세운 공약이다. 위기를 알고도 숨긴 건지는 모르지만 정부는 국민에게 계속 ‘위기가 아니다’고만 했다. 한마디로 불확실(uncertain)의 리더십이다.”

◆리더의 확실성

―대처 리더십의 특징은?

“대처는 혼란의 시기에 확실성을 역설한 리더였다. 대처는 빠른 의사 결정과 강한 추진력이 무기였는데, 이를 실현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알았다. 국민에게 위기 상황을 확실히 인식시키고, 돋보기로 빛을 모으듯 정책 의제를 집중하며, 이해집단의 반발을 예상해 세밀하게 시나리오를 세웠다.”

―위기를 인식시켰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예를 들어 대처는 총리에 오르기 전인 1975년 보수당 당수로 미국 워싱턴 내셔널 프레스클럽에서 이렇게 연설했다. ‘영국은 현재 심각한 문제에 부딪혀 있습니다. 그것에서 눈을 돌린다는 것은 우둔한 일입니다. 우리 영국 국민은 다른 나라 국민보다 더 극심한 물가 상승, 생산력 저하, 실업자 증가라는 악재에 직면해 있습니다. 문제는 기술적인 것만이 아닙니다. 국민의 정신이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와 결부된 것입니다.’ 외국에서 조국을 비판하지 않는 영국의 전통에서 파격이었다. 영국 언론은 연일 대처의 메시지를 전했다. 위기에도 괜찮을 것이라고 말하는 부류가 아니었다. 1979년 총리에 오른 뒤에도 영국 경제를 살리기 위해 생산성을 높여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권력이 된 노조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정책 의제를 세우고 여기에 집중했다. 대처는 개혁을 완화해야 한다고 걱정하는 이들에게 ‘의심은 배반자다. 해보려는 마음에 두려움을 갖게 함으로써 얻을 수 있을 것도 잃게 만든다’는 셰익스피어의 글을 편지에 써서 보내기도 했다.”

―구체적인 시나리오를 세웠다는 것은?

“대표적인 예가 1984년 탄광 20개를 폐쇄했을 때다. 대처가 영국 석탄공사의 탄광 가운데 적자가 누적된 곳을 폐쇄한다는 계획을 발표하자 아서 스카길(Scargill)이 이끄는 탄광노조는 파업에 돌입, 1년간 투쟁을 벌인다. 대처는 긴 싸움이 될 것을 예상하고 꼼꼼히 준비했다. 우선 자신의 철학을 이해하는 기업가 출신 이언 맥그리거(MacGregor)를 석탄공사 총재에 임명하고, 파업이 장기화되리라는 예상을 하고 석탄을 비축했다. 노조의 파업으로 석탄 공급이 차질을 빚었을 때 여론이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대처는 화력발전소를 가동할 분량의 석탄을 비축하는 한편 여론을 상대로 수익성 없는 탄광을 세금으로 보조하는 것이 낭비라는 점을 역설했다. 1년간의 파업으로 노조와 경찰 양측에서 사상자가 나왔지만 대처의 ‘여론전’에 생산성이 높은 탄광 노동자들이 이탈하면서 석탄노조는 1985년 파업을 접고 직장에 복귀했다.”

◆준비된 리더십

물론 이런 리더가 단번에 나오지는 않는다. 파스토르 교수는 대처의 리더십을 ‘준비된 확신의 리더십’이라고 정리했다. “대처의 리더십은 저절로 생긴 것이 아니다. 어릴 때부터 권력의 원천을 의식적으로 확보하려 했고, 그것을 거칠고 강력하게 사용했다.”

―대처가 가진 권력의 원천은 무엇인가?

“대처의 개인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개인적 차원의 원천으로는 기억력·노력·전문성·인간적 매력 등을 꼽을 수 있다. 대처는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았다. 잡화상을 운영하던 아버지는 훗날 지역 정치인으로 성공했는데 어린 딸의 교육에 열성적이었다. 놀지도 못하게 해서 친구도 별로 없었다고 한다. 매주 목요일 아버지를 따라 대학 공개 강의에 가서 수업을 듣고 의무적으로 질문을 해야 했다. 친구들은 재미없게 공부만 하는 대처를 ‘잘 난 체하는 아이(priggish)’나 ‘책벌레(bookish)’라며 놀렸다.”

―그런 환경이 어떻게 그의 리더십에 영향을 주었다는 건가?

“대처는 항상 ‘다수를 따르지 말고 너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하라’는 말을 들으며 자랐다. 대처도 이런 환경에 거부감이 없었고 적응하려 노력했다. 나중에 확고한 신념에 따라 강한 추진력을 발휘하는 데 영향을 줬다.”

대처는 재수 끝에 옥스퍼드 소머빌 칼리지에 입학한다. 전공은 화학인데 포부가 크고 정치에 관심이 많았다. 결국 옥스퍼드대 보수주의대학생연합회(OUCA) 회장을 맡게 된다. 보수당 인사들을 초청하기도 하면서 자연스럽게 교류했다. 옥스퍼드 졸업장과 OUCA 회장. 이러한 타이틀은 대처가 인맥을 쌓고 정계로 진출하는 발판이 됐다. 대처는 대학 졸업 이듬해인 1948년 OUCA 회장 자격으로 영국 보수당의 연례 회의에 초대된다. 화학도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하게 된다. 파스토르 교수는 “대처는 자기가 어디를 향해 가는지 명확하게 알고 의식적으로 행동했다”고 설명했다.

“대처는 어릴 때 아버지 권유로 웅변 레슨을 받으러 다녔다. 이때 기른 커뮤니케이션 능력도 그의 권력의 원천으로 볼 수 있다. 가령 이런 표현이다. 총리 시절 당 회의에서 ‘원한다면 돌아가라. 그 여자는 돌아가지 않겠다(You turn if you want to. The lady’s not for turning)’고 연설한 적이 있다. 자유주의 기조의 경제 개혁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에게 한 말인데 자신의 생각을 간결하고 강인한 메시지로 전달한 것이다. 총리가 되기 전 야당 의원 시절에 대변인을 맡는 기회도 그 덕분에 갖게 된 것이다.”

하지만 파스토르 교수는 대처와 같은 강력한 리더십이 가진 한계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대처는 총리 시절 후반부로 갈수록 외톨이가 됐다. 유럽 통합문제 등을 놓고 같은 당 사람들과도 이견을 보이다 결국 물러났다. 원인은 리더십의 ‘맥락(context)’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영국은 대처 덕분에서 ‘영국병’에서 벗어났지만, 부가 쌓이면서 강력한 리더십이 더 이상 영국에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이다. 맥락에 따라 권력을 사용(use)하지 않고 남용(abuse)하는 리더십은 인정받기 어렵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