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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 2012. 3. 1. 05:53

김성현 기자

입력 : 2012.03.01 03:06 조선일보

[음반업계, 매출 격감에 공연 시장 진출… 양측 동지에서 敵이 되다]
음반업계 먼저 영역파괴 - 공연기획사 만든 유니버설뮤직, 네트렙코 등 인기 성악가 영입
공연업계도 반격 나서 - 자체 음반사 만들어 녹음 작업… 역사적 연주 되살리기 한창

눈 감은 채 엄숙한 표정으로 베를린 필을 지휘했던 카라얀. 그는 베를린 필이나 빈 필과 평생 400여 종에 이르는 방대한 음반 목록을 남겼다. 하지만 그의 사망과 함께 음반 시장의 황금기는 종언(終焉)을 고했다. 시장 조사업체 닐슨미디어의 2010년 통계에 따르면 클래식 음반 연(年)매출은 전년보다 26%나 격감했다. 오케스트라는 순회공연 횟수를 늘리고 온라인 실황 중계를 시작하는 등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음반 시장의 불황 속에서 세계 클래식 음악 시장의 두 기둥, 공연과 음반의 경계가 급속하게 무너지고 있다. 음반 판매량이 급감하면서 음반업계가 공연 시장 진출을 선언하고 '영역 파괴'에 나선 것. '과거의 동지'였던 음반업계와 공연업계가 '오늘의 적'으로 바뀌면서, 음악계의 지각 변동도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총을 먼저 빼든 세계 음반업계

선공(先攻)에 나선 쪽은 음반 시장 불황으로 사정이 다급해진 음반업계 쪽이다. 지난해 유니버설뮤직은 공연기획사 CSAM(센터 스테이지 아티스트 매니지먼트)을 영국 런던독일 베를린에 설립, 안나 네트렙코(소프라노)와 롤란도 빌라존(테너), 토마스 햄슨(바리톤) 등 인기 성악가를 대거 영입했다. 유디트 노이호프 CSAM 대표는 "세계 오페라 극장이나 콘서트 홀, 음반사, 홍보 회사와 긴밀한 협조를 통해 연주자들에게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당연한 말처럼 들리지만, 과거에는 이 분야가 공연업계의 고유 영역으로 여겨졌다는 점이 갈등을 낳고 있다.

유니버설 뮤직의 계열사로 이적한 바리톤 토마스 햄슨.
공연업계도 자체 음반사를 설립하면서 반격에 나섰다. 지휘자 마이클 틸슨 토마스(샌프란시스코 심포니)와 피아니스트 백건우 등이 활동 중인 영국계 매니지먼트 회사인 ICA는 지난해 세계 유수의 공연 기획사 중 처음으로 자체 음반사 'ICA 클래식스'를 만들었다.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가 1958년 영국 로열 오페라하우스에서 불렀던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등 지금까지는 역사적 녹음을 되살리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ICA의 스티븐 라이트 회장은 "메이저 음반사가 맡기 어려운 음반이나 영상 작업에도 적극적으로 뛰어들겠다"고 선언했다. 음반과 공연의 수평적 통합을 통해 음악 시장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샅바 싸움'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평화롭게만 보였던 클래식 음악계가 공연 기획사와 음반업계의 격돌로 요동치고 있다. 사진은 구노의 오페라‘로미오와 줄리엣’에 함께 출연한 테너 롤란도 빌라존(왼쪽)과 소프라노 안나 네트렙코. 두 사람은 최근 음반사 유니버설 뮤직이 설립한 매니지먼트 회사로 나란히 이적했다. /로스앤젤레스 오페라 극장 제공

◇국내에도 옮겨 붙은 '클래식 목장의 결투'

공연업계와 음반업계의 신경전은 이미 국내에도 번졌다. 지난 2010년 바이올리니스트 이차크 펄만의 리사이틀 당시에 국내 공연 기획사와 외국계 직배 음반사가 공연 주관을 두고서 갈등을 벌인 것. 당시에는 음반사의 판정승으로 끝났지만, 별개의 영역으로 여겼던 두 업계가 이해관계의 충돌을 보여준 첫 사례로 남았다.

올 초에는 유니버설 뮤직 코리아가 연주자 매니지먼트와 공연 업무를 주관하는 계열사를 설립하면서, 공연업계의 판도 변화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유니버설 뮤직 코리아 관계자는 "기존 인기 연주자를 두고 공연 기획사와 다투기보다는, 신인 발굴 등에 집중해서 공생(共生)하는 관계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음악 칼럼니스트 유정우씨는 "예전에는 음반과 공연이 별도의 분야로 존립 가능했다면, 지금은 음반 자체가 연주자의 홍보 수단으로 변하고 있다"며 "음반과 공연의 '원스톱 서비스'를 통해서 비용을 절감하고 효율성을 극대화하려는 시도는 앞으로도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